서울의 도시 디자인과 도시 커뮤니티 2008년 2월 20일 / 삼성 박경원 / 자유기고가
서울시가 도시 디자인 경쟁력 제고에 나섰다. 올해부터 본격화될 4대 프로젝트는 '도심 재창조‘ '거리 르네상스 프로젝트' '동대문 디자인 플라자 조성' '한강 르네상스 프로젝트' 등. 거리의 간판과 현수막 등 광고물 정비 작업을 비롯해 가로 경관 개선과 창의적 디자인의 건축물 조성 등 도시디자인과를 중심으로 보여 주는 움직임도 활발하다. 이제 본격화된 '디자인 코리아'! 과연 어디를 향해 가야 하는지 생각해 보자.
1) '도시 디자인'의 궁극 목표는 도시민의 '삶의 질' 제고! 도시 디자인은 도시의 새로운 경쟁력이다. 전 세계 수많은 도시들이 이미 이 치열한 경쟁 대열에 나섰고, 많은 성공 사례를 만들어 내고 있다. 특히 주목할 만한 사례는 영국의 뉴캐슬이나 셰필드, 스페인의 빌바오처럼 도시 재생 사업을 통해 새로운 경쟁력을 회복한 도시들이다. 서울을 비롯한 우리나라 도시 디자인 프로젝트들의 대부분이 이 사례를 따를 것으로 보인다. 즉 도시 경쟁력 확보를 위해 도시를 '재디자인'하는 것이다. 최근 롯본기힐스, 미드타운 등으로 관심을 끌고 있는 일본의 도쿄도 도시 재디자인을 통해 새로운 경쟁력을 창출하고 있다. 도시 안에 같은 디자인의 건물을 짓지 못하도록 아예 법으로 규정해 놓은 두바이의 사례도 있지만, 도시 디자인의 궁극 목표는 단지 '눈으로 보이는 아름다움'을 창조하는 데 있지 않다. 멕시코의 환경 디자이너인 로렌스 할푸린(Lawrence Halprin)은 "도시환경 디자인은 물리적으로 아름답게 하는 것만이 아니라 그 환경 안에 살고 있는 주민들의 문화적 배경 등을 바탕으로 보다 살기 좋은 환경을 창조함으로써 시민생활의 질을 높이는 데 그 근본 목적이 있다"고 역설하고 있다. 즉 도시 디자인의 궁극 목표가 도시민의 '삶의 질' 제고에 있음을 분명히 한 것이다. 그렇다면 도시민의 원하는 삶의 질의 색깔은 어떤 것일까? 차 없는 보행자 중심의 지상 공간
한때 세계적으로 가장 성공적인 도시 환경 디자인의 모델로 손꼽혔던 프랑스 라데팡스(la defense)의 사례를 살펴 보자. 오직 보행자를 위한 지상공간이나 이용자 중심의 입체 동선으로 계획된 지하공간, 이용자의 편의를 최우선으로 배려한 지하의 대규모 상업공간, 랜드마크형 건축물 중심의 아름다운 공간 계획 등은 라데팡스를 파리의 새로운 명소로 등극시키는 데 부족함이 없었다. 그러나 이 아름다운 도시 라데팡스가 정작 시민들로부터는 시간이 지날수록 외면을 당하기 시작했다. "보기에 아름답고 이용하기 편리하지만, 거주하거나 즐겁게 어울려 놀 만한 곳은 아니다"라는 이유에서였다. 즉 라데팡스는 도시 커뮤니티 형성에 실패했던 것이다. 이용자 중심의 입체 동선으로 계획된 지하 공간
이것은 21세기의 도시민들이 가장 원하는 삶의 질의 방향이 커뮤니티에 있음을 반증하는 좋은 사례다. 이에 따라 최근의 도시 환경 디자인에서는 시민들이 쉴 수 있는 녹지공간의 설치와 확보, 다양한 이벤트가 가능한 테마파크형 문화광장의 설치 등 커뮤니티 형성을 위한 장치가 다른 어떤 요소보다도 우선시되고 있다. 시민의 삶의 질 제고를 위한 도시 디자인의 표본을 보여 주는 라데팡스 하지만 커뮤니티 형성에 실패함으로써 정작 도시의 주인인 시민들로부터 외면당하고 있다
2) '도시 커뮤니티'에 기여하는 도시 디자인을! 그렇다면 도시 커뮤니티란 무엇일까? 덴마크 왕립대학의 교수이자 저명한 건축가인 얀 겔 교수는 그의 유명한 저서 <삶이 있는 도시디자인>에서 "옥외공간에서 일어나는 사람들의 일상적인 삶에 대한 성찰은 도시 디자인의 가장 본질적인 문제"라고 지적하고 있다. 즉 "보도를 걸어가는 사람, 집 근처에서 놀고 있는 아이들, 벤치나 계단에 앉아 있는 사람들, 담당 구역을 도는 우편 배달부, 길거리에서 인사를 나누는 사람들…. 이런 평범한 거리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상적인 풍경이 살아 있는 디자인이 진정한 도시 디자인"이라고 말이다. 일상적인 풍경과 함께 존재하는 사람! 이것이 도시 커뮤니티에 대한 진정한 답이다. 불빛이 휘황한 서울의 야경
이런 관점에서 서울의 도시 풍경을 바라보면, 서울은 '사람'이 없는 도시다 이런 관점에서 서울의 도시 풍경을 바라보면, 서울은 '사람'이 없는 도시다. 곧게 뻗은 넓은 도로와 거리를 메운 자동차만이 있을 뿐이다. 심지어 주거 공간인 아파트에서도 놀고 있는 아이들을 찾아보기 어렵다. 길거리에서 인사를 나누는 사람들은커녕 거주자가 누구도 만날 필요 없는, 마치 섬처럼 격리돼 있는 주거공간일수록 최고급 아파트로 손꼽히는 삭막한 도시다. 이렇게 인간의 삶이 떠나 버린 도시는 사람을 위한 공간이 될 수 없고, 우리에게 행복을 가져다 줄 수 없다. 서울의 도시 디자인이 다른 무엇보다 '도시 커뮤니티'를 활성화시킬 수 있는 방향으로 기획되어야 하는 이유다. 유럽 여행을 다녀온 사람들이 공통적으로 인상깊게 느끼는 것 중 하나가 '광장' 문화다. 유럽의 어디를 가든 그 도시 규모에 걸맞은 광장이 있고, 그 광장과 거리는 언제나 사람들로 붐빈다. 우리 같으면 자동차가 달려야 할 광장 한복판에 사람들의 정담이 숨쉬는 거리 카페가 있다. 광장은 단지 사람들이 모이고 움직이는 공간만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우리 중 누구도 사람들이 붐비는 서울의 명동 거리를 광장으로 느끼지 않는 이유가 무엇일까를 생각해 보면 그 답은 하나뿐이다. 바로 커뮤니티의 부재다. 왜 유럽이 여전히 가장 가고 싶어하는 여행지로 손꼽히고 있는지 그 이유도 명백하다. 우리가 유럽에서 보고 싶은 건 단지 역사와 문화만이 아닌 일상 속에서 함께 존재하는 사람의 커뮤니티인 것이다. 한강 시민공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