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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교의 수호자 아기 예수의 성녀 소화 데레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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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resentation on theme: "선교의 수호자 아기 예수의 성녀 소화 데레사."— Presentation transcript:

1 선교의 수호자 아기 예수의 성녀 소화 데레사

2 소화 데레사의 생애

3 ‘아기 예수’, 작은 꽃‘소화 데레사’라 불리는 성녀는
‘아기 예수’, 작은 꽃‘소화 데레사’라 불리는 성녀는 1873년 1월 2일 프랑스 알랑송에서 시계 제조업을 하던 루이 마르탱과 젤리 궤렝의 딸로 태어남.

4 부모는 매우 신심이 두터웠고, 이웃에 대한 자선과 사랑의 실천에도 모범적임. 이러한 성가정의 분위기는 성녀의 다정한 성품과 깊은 신앙에 큰 영향을 줌.

5 아홉 명 중에서 막내로 어려서부터 경건함. 부모님과 언니들의 사랑을 독차지하며 자람.

6 겸손하고 양순하며 부모를 극진히 사랑했는데, 특히 아버지를 잘 따름. 다섯 살이 안되어 어머니가 돌아가신 후 큰 상실감과 아픔을 겪음.

7 8세에 리지외에 있는 베네딕토회 학교에 들어가 기숙사에 기거하게 되는데 그때부터 동료들 간에 모범이 됨.

8 9 세에 중병에 걸려 위독하게 되었으나, 동정 성모 마리아의 전구하심으로 치유됨.

9 13세 성탄절에 성녀는 특별한 은총을 받음. 「자서전」에서 이를 “완전한 회개의 은혜”라고 불렀고, 이때부터 성녀의 마음에는
애덕이 더욱 깊이 깃들기 시작했고, 다른 사람들에게 기쁨을 주고자 자신을 잊을 줄 아는 이타적 사랑을 실천하기 시작함.

10 15세에 사형수의 신문 기사를 읽고 죄인들의 구원을 위해 기도하며 수도자로 살기로 결심함.

11 리지외에 있는 가르멜회 수녀원에 들어가고 싶었으나 나이가 너무 어리다는 이유로 승낙을 받지 못함.

12 아버지와 함께 로마에 순례 여행을 갔었는데, “나이는 비록 어리지만 가르멜 수녀원에 꼭 들어가고 싶다”고 교황께 말씀을 드림. 교황은 "딸아, 안심하여라. 하느님의 뜻이라면 꼭 수녀원에 들어갈 수 있을 것이다”하고 위로해 줌.

13 귀국하자 곧 주교께 편지를 보냈고 얼마 후에는 수녀원에 들어갈 허락을 받음.

14 15세의 어린 데레사는 가르멜 수도원에 들어가 평범한 생활을 함. 이미 이곳에는 그녀의 두 언니도 수녀로 있었음.

15 9년 동안의 가르멜 생활은, 일상적인 기도와 일, 자만심에서 기인한 과오, 극복해야 했던 고집스런 성격 및
내외적인 갖가지 시련을 하느님의 사랑 안에서, 그 사랑을 위해서 ‘작은 길’을 용감하게 개척하며 전진해감.

16 어린이와 같은 완전한 순명의 덕을 배우기 위해 온갖 조력과 희생을 다함. 어떠한 천한 일이든 이를 즐겨 하고 자기를 완전히 극복하는 극기의 덕을 닦기에 전심함.

17 겸손과 복음적 단순성과 하느님에 대한 굳은 신뢰심을 익히고, 말과 행동으로 모범을 보이며 이 같은 덕행을 수련자들에게 가르침.

18 죄인들의 회개를 위하여, 사제들을 위하여, 특히 먼 지방에 가 있는 선교 사제들을 위하여 끊임없이 기도함.

19 본래 체질이 약해서 병에 걸리거나 불편을 느낄 때가 많았고, 오랜 중병으로 병석에
누워 있었던 마지막 순간에는 견디기 힘든 고통을 한마디 불평 없이 참아 견딤.

20 사후에도 좋은 일을 많이 하겠다고 함. 그녀가 임종 때 "내가 천국에 가면 지상에 장미의 비를 내리도록 하겠습니다.’ 장미의 비는 은총을 말하는 것.

21 사실 그녀는 천국에서 많은 사람의 영혼을 구하고, 많은 죄인들을 회개의 길로 인도한 것임.

22 1895년 초, 22세 때 자신의 어린 시절을 회상한 글을 쓰도록 지시를 받았고, 그 후에 또 다른 생활 기록을 첨가하였는데, 이것이 "한 영혼의 이야기”이다.

23 봉쇄구역 안에서 영혼들의 구원과 교회의 쇄신, 선교지역을 위한 놀라운 기도로 지낸 생애를 기리기 위해 교회는 그녀를
포교 사업의 수호자로 모시고 특별한 공경을 드리고 있음.

24 1897년 선종 1923년 시복 1925년 영광스런 시성식 데레사를 공경하는 신심은 그 사후 즉시 전 세계에 전파됨.

25 하느님을 사랑하는 마음에서 매일 매일의 자기의 본분, 사소한 일까지 빈틈 없이 충실히
지켰기 때문에 이런 큰 영광을 차지한 것임.

26 울타리에서 나온 적 없었지만 「선교지와 선교사들의 수호자」 로 선언되었고, 체계적 신학 논문 한 편도 쓴 적 없었지만
15세에 가르멜 수도원에 들어가 죽을 때까지 울타리에서 나온 적 없었지만 「선교지와 선교사들의 수호자」 로 선언되었고, 체계적 신학 논문 한 편도 쓴 적 없었지만 「교회 박사」로 선포됨.

27 그녀는 범인들이 접근하기 어려운 지고한 영성이나 엄격한 수덕을 주장하지 않고, 여느 사람과 별로 다를 바 없이
드러나지 않은 일상생활을 하다가 24세란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떠났는데 「현대의 가장 위대한 성인」이라(성 비오 10세가 담화 중 일컬음) 일컬어졌으며 시복, 시성 됨.

28 소화 데레사의 영성

29 그녀의 자서전과도 같은 「 한 영혼의 이야기 」 그녀의 숨은 희생에 대한 사랑은 참으로 영혼을 회개시켰다.

30 "나는 모든 황홀한 환시보다도 숨은 희생의 단조로움을 선택합니다. 사랑을 위해서 핀 한 개를 줍는 것이 한 영혼을 회개시킬 수 있습니다."

31 다른 성인들과 마찬가지로 다른 사람에게 봉사하기를 원했고, 자신의 밖에 있는 어떤 것을 하려 했으며, 조용한 사랑의 행위로써 자신을 잊으려고 애씀.

32 “우리가 생명을 잃으면 그 생명을 얻고,땅에 떨어진 씨앗이 살기 위해서는
썩어야 한다. ”는 복음적인 역설을 실제로 살아간 위대한 본보기 가운데 한 사람.

33 "영혼을 구하고 사제들을 위해 기도하기 위하여 가르멜 수녀원에 들어왔다."고 말함. 그리고 죽기 전에
"나는 지상에서 선행을 하면서 나의 천국에서 지내고 싶다."고 씀. (그녀의 비문에 새겨진 문구)

34 심리적으로 신앙의 빛이 모두 꺼진 것처럼 보이는 끝없는 어둠의 시기를 겪음. 그녀의 생명이 다해 가던 마지막 해에는 폐결핵으로 서서히 탈진됨.

35 죽기 얼마 전인 9월 30일 "아직도 나는 고통을 덜 받았다."고 중얼거림.

36 」 「작은 길」은 가장 기본적인 그리스도인의 삶의 이상으로서,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따라 걸어야 하는 길을 말한다.
영적 어린이의 「 작은 길 「작은 길」은 가장 기본적인 그리스도인의 삶의 이상으로서,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따라 걸어야 하는 길을 말한다. 작은 길의 목표는 하느님과의 일치인 성성 (완덕) 이다.

37 그녀는「작은 길」이라는 자신의 고유한 영성을 갖고 삼.
그것은 어떤 삶의 방법이나 형태가 아니라 영혼이 하느님 앞에서 지니는 가장 순수한 태도를 의미하는 것이며, 겸손과 단순성 그리고 신뢰심에 바탕을 둔 「사랑」인 것이다.

38 사랑의 길이란 자기 비하의 길이자 완전한 내적 가난의 길 성녀는 이 여정 속에서 자신이 작고 아무것도 아니라는 사실을 깊이 체험했으며 이를 겸손하게 인정하고 받아들임.

39 사랑은 모든 것을 하느님께 신뢰하고 의탁할 때, 그분께서 우리 마음 안에 부어주시는 사랑이다. 이런 하느님의 사랑을 얻고자 하는 길, 이 길이 바로 신뢰와 의탁의“작은 길” 이것은 나중에 “영적 어린이의 길”로 불리게 됨.

40 성녀는 “누가 작은 자이거든 내게로 오라.”( 잠언 9,4 )는 말씀과 “어머니가 자기 아이를 귀여워하는 것같이 나도 너희를 위로하고 너희를 품에 안고 무릎에 올려놓고 흔들어주겠다.”(이사 66,12-13 )는 말씀을 통해 특히 작은 자에게 자비로우신 하느님을 발견하기에 이른다.

41 『 예수의 팔 』 『저를 하늘에까지 들어 올려 줄 승강기는 오 예수님, 당신의 팔입니다. 이렇게 되려면 저는 커질 필요가 없을 뿐더러 오히려 작은 채로 있어야 하고 점점 더 작아져야 합니다.』

42 영적 어린이의 “ 작은 길”은 작은 채로 남아있으면서 자신의 보잘것없음을 인정하고, 어린아이가 아버지에게 모든 것을 맡기며 아무 걱정도 않듯이 모든 것을 선하신 주님께 내맡기는 것을 의미함.

43 데레사는 순교자처럼 순교를 하거나 커다란 업적을 남길 수 없지만 작은 일에 사랑을 베풀고 작은 봉사와 희생, 곧 예수님께 다가가는 “작은 길”을 통해 예수님과 이웃을 사랑할 수 있음을 깨달음.

44 침대에서 일어나기 싫을 때, 말투나 행동과 성격이 마음에 들지 않는 수녀를 대할 때, 자매가 빨래하다 비눗물을 튀길 때, 데레사는 예수님을 위해 이웃을 사랑하는 길을 찾음.

45 성녀는 평범 속에 비범이 있고 하찮음 속에 위대함이 존재한다는 역설적 진리를 실증함.

46 결핵의 증세가 나타나 처음 각혈을 하였을 때, 주님과 만날 때가 다가왔다는 예고를 기꺼이 받아들임. 그리고 믿음과 희망의 절정에 이름.

47 그녀는 1897년 9월 30일 숨을 거두면서 말하였다. “ 오, 저의 하느님, 사랑합니다. 저는 당신을 사랑합 니다! 저의 소명, 마침내 저는 그것을 찾았습니다. 제 소명은 바로 사랑입니다. 그렇습니다. 저는 교회의 품 안에서 제자리를 찾았습니다. 저의 어머니이신 교회의 심장 안에서 저는‘사랑’이 될 것입니다.“ 

48 데레사에게 하느님은 " 자신의 날개를 펴 깃 뿌리에 어린 새끼들을 태워 데려가는” (신명 32,11) 독수리와 같은 분. 데레사는 모든 그리스도인에게 “ 작은 길 ”을 따르라고 가르침.

49 “ 나는 하느님의 정원에 핀 이름 없는 작은 꽃입니다.
모든 꽃이 장미나 백합처럼 화려하다면 정원은 그다지 아름답지 않을 것입니다. 제비꽃이나 데이지 꽃이 자기만의 향기로 정원을 아름답게 가꾸듯이 나도 작은 꽃이 되어 하느님의 정원을 가꾸겠습니다. 화려하지 않아도 내가 가진 몫의 향기를 내뿜는 이름 없는 꽃이 되겠습니다.”

50 무엇이 그녀를 그토록 위대하게 했을까? 그 비결은 「일상적 일을 비상한 사랑으로」 수행한 그녀의 「작은 길」에 있었다.

51 부 록 자료출처 : 가톨릭신문, 가톨릭인터넷 굿 뉴스, 평화신문, 경향잡지, 정인숙 (젬마)교수님
가톨릭 인터넷서점 바오로딸 홈페이지

52 시기적으로 나누어 본 성녀의 생애 데레사 성녀의 탄생: 1873년 1월 2일 어머니, 젤리 마르땡의 죽음: 1877년 8월 28일 뽈리나의 가르멜 수녀원 입회: 1882년 10월 2일 이상한 병과 치유: 1883년 3월 말-5월 13일 세심증으로 고통을 받음: 1885년5월-1886년 10월 말 기적적인 성탄의 은총: 1886년 12월 25일 가르멜 수녀원 입회: 1888년 4월 9일

53 시기적으로 나누어 본 성녀의 생애 아버지 루이 마르땡 씨가 정신병원에 입원: 1889년 2월 12일-1892년 5월 10일
아녜스(뽈리나) 수녀가 원장으로 선출됨: 1893년 2월 20일 그의 독방에서 첫 번째 각혈: 1896년 4월 2-3일 신앙의 밤이 시작됨: 1896년 4월 5일 죽음: 1897년 9월 30일 “한 영혼 이야기”의 첫 출판: 1898년 9월 30일 시복식: 1923년 4월 29일 시성식: 1925년 5월 17일 교회박사로 선포됨: 1997년 10월 19일

54 성녀 소화 데레사와 가족들

55 1. 엄마 : 마리아 젤리 게렝 1831년 12월 23일 오르느에서 태어남 1858년 7월 13일 결혼
1877년 8월 28일 알랑송에서 죽음 9자녀를 우리가 두었을 때, 우리의 이상이 좀 바뀌었다. 우리는 그들 만을 위해서 살 뿐이고, 이것이 우리의 행복이었다. 그들 외에는 결코 찾지 않았다. 조금도 힘들지 않고 세상이 우리에게 부담스럽지 않았다 나로서는 커다란 보상이었고, 역시 천국에 더 많은 자녀들을 보내기 위해 더 많은 자녀들을 갖기 원했다 (뽈리나에 쓴 편지)

56 2. 아버지: 루이 스타니슬라오 마르땡 열심한 그리스도인: 1823년 8월 22일 보르도에서 태어남
1850년 알랑송, 퐁네프 15번지 1858년 7월 13일 결혼 가정에 충실함은 모범적 부인이 그를 한 성인으로 평가 열심한 그리스도인: 매일 미사와 성체조배, 자주 밤기도 보속의 정신으로 순례를 자주함 가게를 주일에는 닫음, 재계를 엄수 사제들을 존중, 위험에 있는 사람에게 극단적 애덕 실천, 가난한 이를 도움 수도원들에 희사를 많이 함 성 빈첸시오회의 활동적인 단원 가난한 이들을 환대, 이웃을 판단하지 않음 재담이 풍부하고 흉내를 잘 냄

57 2. 아버지: 루이 스타니슬라오 마르땡 딸들을 기꺼이 하느님께 봉헌함: 1882년 10월 2일 뽈리나
1882년 10월 2일 뽈리나 1885년 10월 15일 마리아 1886년 10월 7일 레오니아 1888년 4월 9일 데레사 1894년 9월 14일 셀리나 나의 작은 여왕 데레사가 어제 가르멜에 들어갔습니다. 하느님 홀로 그런 희생을 요구하실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 분은 매우 힘있게 나를 도우셔서, 나의 눈물 가운데서도 나의 마음은 기쁨으로 넘쳤습니다 1888년 6월 23일 정신이상이 왔음 1889년 1월 10일 깡의 구세주 요양원에 들어감 1892년 5월 10일 리지유로 돌아옴 1894년 7월 29일 죽음

58 3. 마리아 마르땡 1860년 2월 22일 출생 데레사의 영세 대모 별명: 다이아몬드, 집시
망에 있는 방문회 기숙사에서 교육을 받았다. 공부가 끝난 후에 셀리나를 가르침 어머니가 죽은 후, 데레사의 글쓰기를 가르쳤고, 그녀의 머리를 매일 지져주었다 뽈리나가 가르멜에 입회한 후에는 데레사의 유일한 지주가 됨 저를 지도하고 위로하고 덕행을 닦는 데 도와주었던 이는 마리아였습니다 오직 마리아 만이 제게 대하여 권위를 가졌습니다

59 3. 마리아 마르땡 1886년 10월 15일 가르멜 입회 성심의 마리아 수녀가 됨 후에 데레사가 입회했을 때
그녀의 수호천사가 됨 1896년 9월 13일 데레사의 작은 도리를 설명하기를 부탁. 자서전 두 번째 원고를 구성함 1940년 1월 19일 죽음

60 4. 뽈리나 마르땡 1861년 9월 7일 출생 엄마의 이상적인 딸, 데레사의 이상 데레사의 두 번째 엄마
1882년 10월 2일 리지유 가르멜에 입회 예수의 아녜스 수녀가 됨 1893년 2월 20일 원장 수녀가 됨 데레사를 부 수련장으로 임명 1894년 12월 말 데레사에게 어린 시절의 이야기를 쓸 것을 명함 1895년 10월 17일 벨리에르 신학생의 영적 누이로 데레사를 지정 1902년 원장으로 다시 선출 1908년에서 1909년 사이의 18개월을 빼고 교황 비오 11세의 뜻에 따라 죽기까지 원장으로 있었다 1951년 7월 28일에 죽음

61 5. 레오니아 마르땡 1863년 6월 3일 출생 착한 레오니아 1886년 10월 7일 알랑송의 글라라 수녀원에 입회
1887년 7월 16일 깡의 방문회 수녀원에 입회 1893년 6월 24일, 깡의 방문회에 재입회 1895년 7월 20일 집으로 돌아옴 1899년 6월 28일 재입회 데레사의 작은 길을 충실하게 살았다 1941년 6월 17일 죽음

62 6. 셀리나 마르땡 1869년 4월 28일 출생 대담한 자, 데레사의 어릴 때 친구 데레사의 가장 사랑하는 벗
대담한 자, 데레사의 어릴 때 친구 데레사의 가장 사랑하는 벗 1878년 1월 리지유의 학교에 입학 데레사의 위로자, 대담한 방어자 1885년 4월 28일 학교를 마침(16세) 1886년 2월 데레사는 학교를 그만 둠 1886년 12월 25일 이후 데레사의 영적 자매가 됨 1894년 7월 29일 아버지를 돌보아 드림 1894년 10월 14일 가르멜 입회 부 수련장이었던 데레사에게 맡겨짐 1897년 데레사의 두 번째 간호사 1959년 2월 25일 90세에 죽음 “권고와 추억”이란 책을 남김

63 7. 이시도르 게랭과 셀리나 후르네 데레사의 외삼촌, 리지유의 약사 신문편집자, 열렬한 가톨릭 신자
신문편집자, 열렬한 가톨릭 신자 데레사를 그의 “작은 햇빛”이라 부름 마르땡 가족의 보호자 1909년 죽음 외숙모: 외사촌 마리아와 요안나의 어머니 마리아: 1895년 8월 리지유 가르멜에 입회 성체의 마리아 수녀가 됨 1905년 4월 14일 폐결핵으로 죽음 요안나: 의사 네엘과 결혼 1900년에 죽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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