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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라엘의 지정학적 위치 (1부) 은혜교회 문규열 장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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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라엘의 지정학적 위치 유프라테스 강과 티그리스 강 유역의 메소포다미아 문명과 나일(Nile)강 중심으로 한 이집트(Egypt)문명 사이에서 두 문명을 연결해 주는 교두보 역할을 하였다. 메소포타미아(Mesopotamia)는 고대 그리스어(Μεσοποταμία)에서 온 말로서 '강들의 사이'라는 뜻 앗시리아(Assyria), 바빌론(Babylon), 이집트(Egypt) 이들의 각축전에 언제나 틈새에서 위협을 당했다 이것이 구약 성경의 배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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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라엘의 근처,중동(中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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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고학 (考古學)적 고찰 인간이 남긴 유적 ·유물과 같은 물질 증거와 그 상관관계를 통하여 과거의 문화와 역사 및 생활방법을 연구하는 학문이다. 성서 고고학은 성경의 사실성을 증명하기 위해 성경에 나타난 사실과 지명이 실제로 있었는지 살펴 보기 위해 성서의 시대와 연관된 지역들의 유적과 유물들을 발굴하여 추적 분석하고, 당시의 물질문명을 구체적으로 확인하고 옛사람들의 생활상을 재구성해 보려는 학문적인 시도이다. 이스라엘의 성서시대 즉 초기 청동기시대 (BC )부터 신약시대인 서기 1세기까지의 고고학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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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아 홍수(BC 2304±11년) 아라락산 노아 홍수 이전의 지구 환경이 현재와는 전연 달라서 즉, 수증기층으로 인한 우주에서 오는 전자파나 자외선이 차단되지 않아 인간의 수명이 급격히 변함을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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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이스라엘의 역사 1. 석기시대(BC 3,200년경까지) 가장 오래된 도시형태로 여리고 성읍이다.
3. 중기 청동기(BC ) 이스라엘 족장들의 시대로서 아브라함이 메소포타미아 지역인 갈대아 우르에서 가나안 땅으로 이주해 온 시기이다. 우르는 BC 2050년으로 추정되는 우르-남무 법전이 만들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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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대아 우르(Ur of the Chalde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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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후기 청동기시대(BC 1540 - 1200) 하나님이 시내산에서 모세를 지명하여 불러 이스라엘의 지도자로 삼는다
4. 후기 청동기시대(BC ) 하나님이 시내산에서 모세를 지명하여 불러 이스라엘의 지도자로 삼는다. 모세를 통해 이스라엘을 애굽에서 가나안 곧 약속의 땅으로 인도하신다 메르넵타 통치시대(BC )의 한 비문에서는 ‘이스라엘’이라는 명칭이 언급되고 있다 5. 초기 철기시대(BC ) 이스라엘이 가나안에 정착한 시대이다 . 가나안을 정복한 여호수아는 12지파에게 땅을 분배한다. 이 시대의 이스라엘은 사사 시대가 계속된다 해양민족이었던 블레셋(Plesheth; Philistine)이 등장하여 가나안의 남부 지중해 해안지역에 나라를 형성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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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레셋의 이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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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나이반도, 신광야(Wildness of Sin) 이스라엘 민족이 40년간 거하였던 광야는 정말 뜨겁고 그늘진 곳도 없는 곳으로, 하나님이 구름기둥으로 가리고 밤에는 불기둥으로 보호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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싯딤나무(acacia; 아카시아) 광야에서 조각목으로 쓰이는 싯딤나무 아래서 기념 촬영(199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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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비딤(Rephidi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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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내산(Mt. Sina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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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라엘의 기원 이스라엘이란 단어의 의미는 ‘하나님과 겨루는 자’란 의미로, 야곱이 고향으로 돌아오던 중 얍복 나루터에서 천사와 씨름하여 얻은 이름이다. 그 후 야곱은 이스라엘로 불렸고, 그의 후손을 이스라엘 민족이라 부르게 되었다. 실제로 이스라엘의 기원은 아브라함의 부르심에서 시작한다. 아브라함이 갈대아 우르에서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고 팔레스타인으로 이주한 때를 기원으로 삼는다. 아브라함-이삭-야곱으로 이어지는 이스라엘의 족장들이 형성되면서 특히 야곱의 12 아들로 큰 민족이 형성되어 하나님의 인도로 이집트를 탈출해 나와 시내반도에서 작은 공동체를 이루어 40년 만에 가나안 땅으로 들어가 부족 동맹체제가 이루어졌을 때 비로서 이스라엘 국가의 역사는 시작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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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브라함의 이주 경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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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왕국시대(BC ) 신정정치(Theo-cracy)로 계속되어 오다가 왕정정치(Demo-cracy)로 넘어오게 된다. 사울은( BC 년) 이스라엘의 초대 왕으로 기브아를 수도로 삼는다. 그는 믿음과 겸손의 사람으로 시작하였으나 아말렉과의 전투에서 하나님의 명령에 불순종하여 하나님께 버림을 받는다. 사울 왕은 블레셋과의 길보아 전투에서 싸우던 중 전사한다. 다윗은( BC 년) 헤브론에서 왕이 된다(7년 동안 통치). 예루살렘을 수도로 삼고 다윗 성을 건축한다. 다윗은 길르앗 여라임에 방치되어 있던 하나님의 법궤를 옮겨와 예루살렘 다윗성 장막에 안치한다. 이것으로 다윗은 이스라엘을 하나님의 백성으로 결속시킨다 그 왕국은 하나님의 약속 위에 세워진 나라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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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로몬(BC 962-927)이 왕위에 있을 때 이스라엘은 대왕국으로 성장한다
솔로몬(BC )이 왕위에 있을 때 이스라엘은 대왕국으로 성장한다. 유프라테스 이편에서 가자, 에일랏까지 영토를 확장한다. 솔로몬은 겸손한 왕으로 시작한다. 그는 BC 960년경에 제1성전(7년 동안)과 궁전을 13년 동안을 건축한다. 그러나 말년에 하나님을 의지하지 아니하고, 사치와 향락(부인 700명, 후처 300명), 그리고 이방신전을 지어(예루살렘 동쪽산) 섬기므로 이방종교와 혼합종교로 여호와 유일신앙을 버렸다. 이스라엘은 분열을 되여 남북으로 갈라지게 된다. 북쪽을 이스라엘왕국, 남쪽을 유다 왕국 이라고 불렀다. 결국은 북쪽 이스라엘왕국은 앗시리아에게(BC 721), 남쪽 유다 왕국은 바빌론에게(BC 587) 함락되어 포로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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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페르시아시대(BC ) 바벨론 제1차 포로귀환이 예언대로(사 44:28; 스 1:1) 바벨론을 정복한 페르시아의 고레스 왕에 의하여 BC 537년경에 이루어진다. 스룹바벨에 의하여 BC 516년경에 제2성전이 봉헌된다. 그리고 2차 포로귀환자들을 이끌고 들어온 느헤미야와 에스라에 의해 BC 445년경에 예루살렘 성곽이 재건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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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헬라시대(BC ) BC 332년경에 마게도니아의 알렉산더 대왕에 의하여 페르시아 제국이 멸망당한다. 그러나 알렉산더 대왕의 갑작스런 죽음으로 헬라제국은 사등분 된다 이스라엘은 프톨레미왕조에 의해 통치된다. 프롤레미 2세 필라델푸스(BC )는 예루살렘의 경건한 석학 70인을 청해 알렉산드리아 앞 파라오 섬에서 히브리어를 알지 못하는 유대인들을 위하여 히브리 구약성경을 70인역 헬라어 성경으로 번역하게 한다. BC 200년경에는 안티오쿠스 3세에 의하여 지배되며, BC 년경에는 안티오쿠스 4세의 헬라주의 문화주입 정책에 의하여 유대인들을 박해하고 제우스 신전을 세우고 섬기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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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하스모니안시대(BC ) BC 164년경에 마카비 혁명에 의하여 예루살렘 성이 탈환된다. 그리고 성전이 재봉헌된다. 마카비의 가문인 하스모니안 왕가의 통치가 이루어진다. 그러나 이 왕가의 분열로 인하여 BC 63년경에 로마의 폼페이에 의하여 로마의 종속국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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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로마시대(BC 63 - AD 324) BC 40-4년경까지 이두메(에돔) 출신인 헤롯이 로마로 부터 유대인의 왕위를 얻어 이스라엘을 통치한다 헤롯은 유대인의 환심을 사기 위해 오랜 세월을 걸쳐 예루살렘 성전을 복원하고 미화한다. 예수님은 BC 3년-AD 30년경까지 활동하신다. 유대인들은 AD 66-70년경에 반란을 일으킨다. 그래서 디토 장군에 의하여 예루살렘이 정복되고 성전은 예수님의 예언대로 철저히 파괴된다. 디토 장군은 실바 장군(로마 10군단)으로 하여금 열심당원으로 구성되어 있던 마사다를 공격하게 한다. 3년 동안의 포위하고 인공축대를 쌓아 마사다 정상으로 들어 가서 그들이 본 것은 960여명의 시체였다. 마사다는 AD 73년경에 함락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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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사다(Masada, 히브리어 מצדה; 요새) 마사다는 고지 470m의 요새이지만 실제로 해발 59m에 지나지 않는다
마사다(Masada, 히브리어 מצדה; 요새) 마사다는 고지 470m의 요새이지만 실제로 해발 59m에 지나지 않는다 배경으로 보이는 사해의 수면이 해저 400m 정도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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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비잔틴시대(AD 324-640) AD 313년 로마 황제 콘스탄틴은 '밀라노 칙령'을 내려 기독교 공인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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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묘교회(Church of the Holy Sepulch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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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 초기 아랍시대(AD ) 모하메드가 메카에서 메디나로 옮겨간 AD 622년은 곧 이슬람의 시작이다. 이스라엘은 우마야드왕조( ), 칼립 하룬 알 라쉬드왕 때를 배경( ), 파티미드 왕조( )에 의하여 통치된다. AD 691년에 압드 알 말리크에 의하여 성전 자리에 모스크 바위사원(Dome of the Rock)이 세워져 오늘날까지 이른다. 아랍인들은 이스마엘의 후손들로서 아브라함의 자손들이다. 모슬렘들에게 있어 이 사원은 3대 메카 중 가장 아름다운 것이며, 모하메드 알리가 승천했다는 곳이고, 이곳에서의 한번의 기도는 다른 곳의 7000번의 기도에 해당한다는 이야기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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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금돔(Dome of the Rock / Mosque of Oma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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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 아크사 사원(Al Aqsa Mosqu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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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십자군시대(AD ) 1095년 교황 우르반 2세는 성지 해방을 위한 십자군을 창설한다. 우르반은 “성스러운 땅을 사악한 족속의 손아귀에서 뺏어내라. 세계의 중심에 자리잡은 그 고귀한 도시는 너희들이 와서 도와주기를 갈망한다. 너희들의 죄를 씻기 위하여 열렬하게 이 원정의 대열에 참여하라. 그러면 하늘에서 영원 무궁한 영광의 상을 반드시 받을 것이다”라는 연설로 십자군 원정을 시작한다. 이 십자군은 1099년 6월 15일에 예루살렘을 점령한다. 그러나 이들은 모슬렘과 유대인을 무자비하게 학살한다. 예루살렘 회당에 있던 유대인들을 불을 질러 죽인다. 그리스도의 살해자라는 명분으로 당시 예루살렘에 살고 있던 300,000명의 유대인 학살한다. 이 일로 인해 모슬렘과 유대인들에게 기독교에 대한 적대감을 심어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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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속적인 유대인들의 수난 1036년에 프랑스에서 유대인들이 10만 명 정도 사형되고 국외로 추방된다.
1218년에는 영국에서 처음으로 마긴 다비드(다윗의 별)를 유대인에게 배지로 구별하여 부착시킨다. 년 사이에 독일, 영국, 프랑스, 헝가리, 오스트리아에서 유대인들이 박해를 받는다. 십자군은 7회 원정을 가지나 그 끝은 실패로 돌아간다. 움직이는 하나님의 역사를 멈추게 할 수 없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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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 마멜루크시대(AD ) 1260년에 이집트의 마멜루크에게 점령당한다. 그 후 260년간 예루살렘은 가장 황폐화 된다. 마멜루크는 중앙아시아 지역에 살던 터키족 출신들이다. 동유럽에서는 년 사이에 페스트(흑사병)가 발병한다. 유대인들의 절반가량이 이 병으로 죽자 유대인들의 복수를 두려워한 기독교인들은 유대인들이 수원에 독을 뿌려 발생했다고 소문을 퍼트린다. 이 일로 100만명 가량의 유대인들이 도처에서 학살당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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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 오트만 터어키시대(AD ) 오토만의 모하메드 2세는 1453년 비잔틴 제국을 멸망시키고 콘스탄티노플을 이스탄불로 바꾼다. 포대를 갖춘 막강 화력의 오토만 터어키군은 1516년 예루살렘을 점령한다. 그리고 슐레이만 대제는 1538년에 현존하는 예루살렘 성벽을 재건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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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틴 루터의 종교 개혁(AD 1517) 루터는「예수는 유대인」이라는 소책자를 발간한다. 그러나 유대인들이 자신의 뜻대로 기독교로 개종하지 않자 그는 “유대인들은 가장 혹독한 벌을 받아 마땅하다 그들의 회당과 집은 무너뜨리고, 돈 많은 유대인들에게서 재산을 뺏아 개종하는 유대인들을 돕도록 해야 한다”. 이 글이 반유대주의 선전 문구로 사용되리라고 루터는 생각하지 못했다. 루터의 종교개혁으로 성경이 번역된 것은 새로운 신앙의 변혁을 가져왔다. 성경의 보급으로 하나님의 백성과 말씀과의 관계를 새롭게 인식하게 되고 영적인 눈을 뜨게 된다. 종교개혁의 의미는 카톨릭에 대한 반박에 있는 것이 아니라 성경을 직접 읽고, 하나님의 뜻을 알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스라엘에 대한 회복이 꿈이 아니라 하나님의 약속이라는 사실을 믿게 되고 루터는 말년에 유대인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돌이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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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온주의(Zionism)의 탄생 19세기말부터 유대인들 사이에는 시온주의가 생겨나기 시작했다. 하나님이 자신들에게 준 약속의 땅으로 되돌아가자는 운동이었다. 그러나 이때까지도 하나님의 약속(예레미야 16:14-15)을 기억하거나 그 약속이 반드시 이루어 질 것이라고 믿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년 첫 번째로 러시아에서 유대인 이민자가 들어온다. 1904-9년에 두 번째로 동부 유럽에서 유대인들이 이주해 온다. 1914년 세계 1차대전이 일어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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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 영국통치시대(AD ) 영국이 예루살렘을 정복하고 통치한다. 유대인 이민자들이 동부 유럽과 독일에서 들어 온다. 이 시기에 하나님께서는 북방의 유대인들을 불러 독립을 준비시키신다. 1917년에 있은 발포아선언으로 영국이 유대인에게 독립을 약속한다. 년에도 동부유럽에서 유대인들이 이주해 온다. 이때 이스라엘내에 키부츠와 모샤브가 이스라엘 계곡에 설립된다. 이것이 이스라엘 발전의 모티브이며 지금도 250여개의 키부츠와 모샤브가 있다. 1925년에 히브리대학이 설립되고, 히브리어가 공식어가 된다. 년에는 주로 나찌 독일에서 난민으로 구성된 유대인들이 이주해 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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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부츠(kibbu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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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9-45년에 2차 세계대전이 시작되며, 이 때 히틀러에 의해 폴란드 아우스비치에서 600만 유대인 학살이 시작된다.
이 역사를 잊지 않기 위해 이스라엘은 야드 바쉠에 홀로 코스트(기념관)를 만든다. 이로 인해 이스라엘의 모든 사람들이 조국을 지키기 위해 스스로 나서는 것이다. 아랍연합국가와의 수십 번의 싸움에서 패하지 않는 것은 자신들은 택함 받은 하나님의 백성이라는 것이다. 일 UN은 영국의 신탁통치를 종식시키고 팔레스타인 지역을 유대계와 아랍계 두 개의 독립국가로 분할했다. 아랍계는 유대계 국가를 인정하지 않고 팔레스타인 전역을 무력으로 점령하겠다고 선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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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 이스라엘 건국 이후의 역사 독립을 선언하고 이스라엘 국가의 탄생을 선포했으며 임시정부를 수립했다. 이스라엘의 건국은 철저한 하나님의 예비하신 계획 속에 이루어진 땅(육적)의 회복에 대한 약속의 성취이다. 이것은 이스라엘의 회복의 시작이다. 년에 독립전쟁을 치른다 주변 아랍국가들(이집트, 요르단,시리아, 레바논, 이라크)이 이스라엘을 공격했다. 이 전쟁으로 60만 명의 아랍인들이 난민으로 도망한다. 그리고 70만 명의 유대인이 아랍국가에서 도피한다. 일 독립전쟁은 휴전했다.(휴전협정은 조인됐으나 아랍연맹은 이스라엘과의 국경을 봉쇄하고 이스라엘과의 영원한 전쟁을 선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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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9. 2. 17 첫 국회가 예루살렘에서 열렸고 차임 웨이즈만을 첫 대통령으로 선출하였다
첫 국회가 예루살렘에서 열렸고 차임 웨이즈만을 첫 대통령으로 선출하였다. 그는 데이빗 벤구리온을 첫 수상으로 임명하고 첫 정부를 구성했다 이스라엘이 UN에 가입했다. 년 사이 유대인들의 집단 이주하고 1951년 세계 시온주의 대회가 예루살렘에서 처음 열렸다. 1952년-56년 사이에 아랍인들의 적대행위가 계속되다. 이집트는 1949년 이스라엘 선박의 스웨즈 운하 통과를 봉쇄하다. 1955년 이집트와 시리아는 군사협정을 맺었고 요르단도 함께 서명하였다. 월 영국과 프랑스의 지원을 받아 아랍국가들의 전쟁위협에 이스라엘은 선제공격 “시나이 작전”을 개시했다 월 이스라엘은 시나이 반도로부터 철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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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7년 6월 5일~10일 [6일 전쟁] 6일 전쟁은 예루살렘과 약속의 땅을 회복하는 전쟁이다. 여러가지 면에서 독립전쟁과 같은 기적적인 사건이었다. 6월 5일 이스라엘은 이집트, 시리아, 요르단, 이라크의 비행장을 폭격하여 3시간 만에 452대의 비행기를 파괴하였다. 이스라엘 지상군이 시나이에 있는 이집트군 을 향하여 진격하였다. 6월 7일 이스라엘은 AD70년 이후 처음으로 예루살렘의 옛성을 차지했다. 6월 9일 이스라엘은 철저하게 요쇄화된 골란고원에서 시리아를 몰아냈다. 이스라엘은 시나이를 거쳐 수에즈운하까지 들어가고 가자지역을 점령함. 6월10일 모든 당사국들이 휴전에 동의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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년 장기 소모 전쟁 계속 이집트는 시나이 국경을 계속 괴롭힘. 소련 전투기와 조종사 그리고 소련 요원들이 근무하고 있는 대공미사일 기지가 이집트에 많이 생겼다. 시리아도 소련의 원조를 받고 소련제 로켓으로 이스라엘의 북쪽 국경을 정기적으로 포격했다. 팔레스타인 테러분자들이 레바논 국경을 통해서 북쪽으로부터 테러활동을 증가시켰다. 이스라엘 밖에서도 아랍인들의 테러가 늘어남. 1971년 뮌휀 올림픽에서 이스라엘 선수들을 살해. 1976년 비행기 납치(엔테베작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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엔테베 구출작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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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3년 10월 5일 욤키퍼 전쟁 이집트와 시리아 군대는 휴전선에 대규모 공격을 시작하였다. 10월 6일 이스라엘 내각은 속죄 주일(욤 키퍼)날 회의를 갖고 곧 메이어 수상의 결정을 승인했다. 남쪽에서는 이집트 전투기와 포병이 시나이에 있는 이스라엘 군사시설을 폭격했다. 7만의 군대와 탱크 1천대가 스웨즈 운하를 건너 왔다. 북쪽에서는 1만의 군대와 탱크 8백대가 골란고원을 공격해 왔다. 소련제 대공 대전차 무기들이 이스라엘의 전투기와 탱크를 폭격했다. 이라크는 시리아 편으로 참전했다. 소련이 10월 10일 이집트와 시리아로 장비를 공수하기 시작하자 미국도 10월 14일 이스라엘에 탄약과 부속품을 공수하기 시작했다. 아랍국들이 전쟁에 지자 소련은 미국에 휴전을 제의했고 이스라엘은 이에 동의했다. 11월에 휴전이 성립된다 아랍국들과 이스라엘의 역사상 처음으로 직접 협상에 의한 휴전협정이 성립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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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5. 9월 이스라엘은 시나이 점령지역으로부터 철수하였고, 1951년 이후 처음으로 수에즈운하로 이스라엘 선박이 운항하게 된다.
년 이스라엘안에서 1,575회의 테러가 있었다. 이 시기에 PLO의 검은 9월단이 이스라엘을 지지하는 곳에서 테러를 행한다. 1975년 레바논에서는 기독교 레바논인과 PLO간의 내전이 발생한다. 이 일로 2만 명의 기독교인이 죽는다. 이들을 도와준 나라는 이스라엘뿐 이었다. 이스라엘은 국경을 열어 2,500명의 환자를 의료 지원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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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7년 11월 이집트 사다트 대통령이 베긴 수상의 초청으로 예루살렘에 방문하여 평화협상을 시작한다.
1979년 3월 26일 이스라엘과 이집트는 평화협상에 조인한다. 이 조인으로 이스라엘은 시나이 반도에서 철수한다. 1993년 이스라엘과 PLO가 평화조약을 맺는다. 1994년 이스라엘은 팔레스타인 자치지역(여리고, 가자지구)을 인정한다. 1995년 이스라엘은 요르단과 평화협정을 체결한다. 라빈 수상이 암살당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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