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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ewspaper Design + Identity 20092148 이아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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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resentation on theme: "Newspaper Design + Identity 20092148 이아름."— Presentation transcript:

1 Newspaper Design + Identity 이아름

2 Sports Music Movie Designer + Title Figure skating Trans
-피겨 스케이팅 Trans -유로댄스, 트랜스, 일렉트로니카 Movie Designer Pixar Animation Studio -픽사 애니메이션 스튜디오 Ettore Sottsass -디자이너 겸 건축가 에토레 소트사스

3 Imagine font + Font Arial Comic Sans MS Futura Lt BT 나눔고딕 피겨스케이팅
HY강B 픽사 애니메이션 스튜디오 휴먼모음 일렉트로니카 트랜스 맑은고딕 에토레 소트사스 Arial Figure skating Comic Sans MS Pixar Animation Studio Imagine font Trance Futura Lt BT Ettore Sottsass

4 + Grid 260 X 380 mm 단 간격 5mm 상,하 여백 20mm 안쪽 여백 10mm 바깥쪽 여백 15mm

5 Sports + Figure skating

6 + Sports Figure skating
스케이트를 타고 얼음판 위를 활주하며 여러 가지 동작으로 기술의 정확성과 율동의 아름다움을 겨루는 빙상경기의 한 종목. 19세기 중·후반에 유럽에서 시작되었다. 1850년 에드워드 부시넬(Edward Bushnell)이 금속제 날을 부착한 스케이트를 개발하였고, 1860년대 중반에 발레 교사인 잭슨 헤인즈(Jackson Haines)가 발레에 기반을 둔 예술적 동작을 고안하면서 현대 피겨스케이팅의 기반이 다져졌다. 1891년 제1회 유럽피겨선수권대회가 열렸고, 1892년 국제스케이팅연맹(ISU)이 결성된 뒤 1896년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제1회 세계피겨선수권대회가 개최되었다. 보수적인 19세기에는 남자 선수만 출전하다가 1902년 세계선수권대회에서 영국의 마지 시어스가 남자 선수들과 겨루어 은메달을 획득하였다. 이를 계기로 ISU는 남녀 선수가 함께 경쟁하는 것을 금지하고 1906년 여자 싱글 종목을 독립시켰으며, 이로부터 남녀 종목이 따로 열리게 되었다. 올림픽에서는 1908년 영국 런던에서 열린 제4회 하계올림픽 때 첫 선을 보였으며, 1924년 동계올림픽이 창설되면서 대표적 종목으로 자리를 잡게 되었다.

7 + Sports Figure skating
Single 오늘날의 싱글 부문은 쇼트프로그램과 프리스케이팅으로 치러진다. 쇼트프로그램은 제한 시간 안에 남자는 점프 3개, 스핀 3개, 스텝 2개의 과제를 연기하여야 하고, 여자는 점프 3개, 스핀 3개, 스텝 1개, 스파이럴 1개의 과제를 연기하여야 한다. 또 점프에는 트리플(3회전)-트리플 또는 더블(2회전)-트리플 그리고 더블 악셀(남자는 더블 또는 트리플 악셀)이 반드시 포함되어야 한다. 프리스케이팅은 제한 시간 안에 자유롭게 연기할 수 있지만, 여자의 경우에 점프는 7차례 이상 시도할 수 없고, 스핀 3개와 스텝 1개, 스파이럴 1개를 반드시 포함하여야 하며, 남자는 여자보다 점프를 1차례 더 포함하여야 한다.

8 + Sports Figure skating
Pair 페어 부문은 1908년 세계선수권대회에서 첫 선을 보였으며, 1924년 제1회 동계올림픽대회부터 정식종목으로 채택되었다. 한 쌍을 이룬 남녀가 똑같은 동작을 취하는 것이 기본이며, 남자 선수가 여자 선수를 머리 위로 들어올리는 리프트 동작, 남자 선수가 여자 선수의 허리를 잡거나 손을 잡고 던져서 점프 동작을 돕는 스로 점프, 남자 선수의 손을 잡은 여자 선수가 얼음판과 거의 수평을 이루도록 누워서 회전하는 데스 스파이럴 동작 등이 특징이다.

9 Music + Trans

10 + Music Trance 일렉트로니카 (Electronica)는 신디사이저를 기초로 한 음악 장르로써 댄스적인 느낌은 적은 반면 팝 그리고 락, 힙합 등 다른 스타일의 음악을 전자적인 기술로 믹스하는 고유의 장르이다. 큰 분류로 나누어본다면 테크노, 트랜스, 하우스, 드럼 앤 베이스등으로 나눌 수 있다. 일레트로니카의 음악적 특징은 멜로디보다는 비트를 중심으로 음이 이어지고 소리 자체의 파형을 변형시켜 만들어진 일정한 패턴이 미묘하게 변화하면서 반복된다는 것이다. 일렉트로니카의 감상 포인트는 이러한 미묘한 변화와 조화에서 온다. 대표적으로 프랑스의 Daft Punk, Justice 등이 있다. 트랜스(trance)는 1980년대에 만들어진 전자 음악의 한 종류로, 테크노와 하우스 음악에서 파생된 장르이다. 트랜스 음악은 BPM의 속도로 몽환적인 느낌의 신디사이저 멜로디가 사용되는 것이 특징이다. ‘트랜스’라는 이름은 반복되는 비트와 약동하는 멜로디가 듣는 사람을 무아지경(trance)의 상태로 만든다는 것에서 유래하였다. 트랜스 음악은 주로 클럽에서 연주되고 클럽 뮤직으로 분류되지만, 선율적인 트랜스는 클럽이 아닌 곳에서 즐기기 위해 듣는 사람도 있다.

11 + Music Trance 애시드 트랜스 (Acid Trance) : 애시드 테크노에서 파생된 초기 트랜스의 갈래 중 하나로, 1990년대 초반 유행했다. 롤랜드의 신디사이저인 TB-303의 소리가 자주 사용된 것이 특징이다. 업리프팅 트랜스/에픽 트랜스 (Uplifting Trance/Epic Trance) : 1990년대 후반에 등장한 트랜스의 갈래로 선율적인 멜로디와 기승전결이 뚜렷한 구성이 특징이다. 브레이크 다운 (일시적인 음량 감소나 정적) 후의 업 리프팅 (음량 증가 및 음원 추가) 이 두드러지는 비교적 대중적인 트랜스이다. 고아 트랜스 (Goa Trance) : 인도의 고아지방에서 탄생한 트랜스의 갈래로, 1990년대 초반에 만들어졌다. 후에 사이키델릭 트랜스로 발전했다.

12 + Music Trance 사이키델릭 트랜스 (Psychedelic Trance) : 고아 트랜스로부터 파생된 장르로, 고아 트랜스보다 하드하고 무기질적인 음원을 사용하는 것이 특징이다. 고아 트랜스와 함께 취급되는 경우가 많다. 고아 트랜스와 사이키델릭 트랜스를 통틀어서 사이트랜스(Psytrance)라고도 부르기도 하며, 사이트랜스(Psytrance)라는 말로 사이키델릭 트랜스(Psychedelic Trance)만을 가리키기도 한다. 하드스타일 (Hardstyle) 프로그레시브 트랜스 (Progressive Trance) : 기존 트랜스에 비해서 미니멀하고 그루브한 리듬이 특징으로, 트랜스의 몽환적 느낌에 하우스의 그루브함이 혼합된 형태이다. 프로그레시브 하우스(Progressive House)와 밀접한 관계를 가지고 있으며 일부 사람들은 동격으로 취급하기도 한다. 드림 트랜스 (Dream Trance) : 년 즈음에 유행했던 트랜스로, Robert Miles의 음악에 영향을 많이 받아 몽환적이고 아름다운 선율이 특징이다. 주로 피아노가 많이 등장한다. 에픽 트랜스에 영향을 주었다. 드림 하우스(Dream House)라고도 불린다.

13 Movie + Pixar Animation Studio

14 + Movie Pixar 픽사 애니메이션 스튜디오(Pixar Animation Studio)는 미국 캘리포니아 주 에머리빌에 위치한 컴퓨터 애니메이션 제작사이다. 《토이 스토리》, 《니모를 찾아서》, 《인크레더블》 등의 제작사로 알려져 있다. 컴퓨터 애니메이션 외에도 최신 3차원 컴퓨터 그래픽 기술을 개발하고 판매하기도 한다. 가장 유명한 것으로 고수준의 사실적인 이미지를 만들어내는 업계 표준 렌더링 소프트웨어 렌더맨이 있다. 2006년 1월 24일 월트 디즈니 회사는 74억 달러에 주식시장을 통해 픽사를 인수하는데 동의하였다. 디즈니와 픽사의 합병은 2006년 5월 5일 성사되어 현재 픽사는 디즈니의 자회사가 되었다. 소유주인 스티브 잡스는 합병 결과에 의해 디즈니의 최대 개인 주주가 되었다.

15 + Movie Pixar 1979년, 루카스필름 컴퓨터 사업부는 에드 캣멀을 고용하면서 그래픽 분야를 출범시켰다. 연구 분야에서 성공적인 결과를 다수 내놓고 스타 트렉 2와 젊은 셜록 홈즈와 같은 작품이 성공을 거두자, 애플 컴퓨터에서 쫓겨난 CEO 스티브 잡스가 1986년 이 회사를 천만달러에 사들였고, 이것이 픽사의 시작이었다. 이때 캣멀 박사는 CEO 겸 사장, 앨비 레이 스미스 박사는 부사장, 스티브 잡스는 회장의 직위를 차지했다. 픽사는 주로 정부와 의료기관에 고성능 그래픽 디자인용 컴퓨터인 픽사 이미지 컴퓨터를 판매하는 하드웨어 판매사로 시작했다. 디즈니 스튜디오도 수작업으로 처리하는 2차원 애니메이션 제작을 자동화하기 위해 이들의 컴퓨터를 구입하였다. 픽사 이미지 컴퓨터의 판매는 부진했지만, 이 컴퓨터를 홍보하기 위해 존 래세터가 제작한 짧은 애니메이션 필름 〈룩소 주니어〉는 그래픽스 학회 시그래프에 발표되어 큰 찬사를 받았다. 픽사 이미지 컴퓨터가 잘 팔리지 않아 회사가 재정 위기에 처하자 래세터가 이끄는 애니메이션 부서에서는 다른 회사의 컴퓨터 애니메이션 광고 제작을 맡게 되었다. 또한 픽사는 디즈니와도 지속적인 관계를 유지하여, 디즈니의 CAPS(컴퓨터를 이용한 애니메이션 제작 시스템) 프로젝트에서 소프트웨어 개발에 기술을 지원하였다. 1991년, 픽사는 컴퓨터 부서를 상당부분 정리한 후 디즈니와 2600만 달러에 《토이 스토리》를 비롯한 컴퓨터 애니메이션을 제작하기로 계약하였다.

16 + Movie Pixar 현재까지 픽사가 제작한 주된 애니메이션 작품은 월트 디즈니 회사와의 공동작업으로 개발한 것이다. 시나리오, 개발 등의 제작과정은 전부 픽사에서 담당하고, 제작비는 양사가 절반씩 분담하며 배급과 홍보, 그리고 그에 드는 비용은 전부 디즈니에서 담당하였다. 1997년 《토이 스토리》를 제작한 이후 픽사와 디즈니는 10년간 5개의 작품을 이같은 방식으로 제작하기로 계약하였다. 당시 애니메이션 업계에서 디즈니의 위치를 반영하듯, 디즈니는 5개 작품의 영화와 캐릭터의 모든 판권을 독점하고 각 영화가 내는 이득의 10 내지 15%를 배급료로 가져가기로 하였다. 픽사의 5개 작품은 평균 5억 달러가 넘는 이익을 창출했다. 2006년 1월 24일, 디즈니는 픽사를 약 74억달러어치(픽사 주식 1주당 디즈니 주식 2.3주)의 주식으로 인수할 것을 결정했다고 공식 발표했다. 같은 해 5월 5일에 완료된 이 계약으로 픽사 주식의 50.1%를 소유한 대주주 스티브 잡스는 디즈니의 주식 7%를 갖게 되어 디즈니의 최대 개인 주주가 되고 이사회석을 얻게 된다. 픽사 사장 에드 캣멀은 디즈니-픽사 애니메이션 스튜디오의 사장이 된다. 또한 픽사의 부사장 존 래세터는 새로 생겨날 디즈니-픽사 애니메이션 스튜디오의 최고책임자가 되는 동시에 디즈니 테마 파크를 설계하고 건축하는 월트 디즈니 이미지니어링의 고문역을 맡게 된다.

17 + Movie Pixar

18 Designer + Ettore Sottsass

19 + Designer Ettore Sottsass
1917년 오스트리아 인스부르크 태생. 1939년 토리노 폴리테크닉 건축과를 졸업한 그는 이탈리아 합리주의(Rationalism)의 핵심 건축가였던 아버지 에토레 소트사스 경과 일했다. 2차 대전이 끝난 직후 밀라노로 이주한 그는 스튜디오를 열고 건축과 디자인 프로젝트를 진행하였고, 1958년부터는 올리베티와 함께 20년 이상을 일하면서 수많은 아이템들을 디자인해왔다. 그의 작품들은 뉴욕 M.O.M.A., 파리의 퐁피두센터, 덴버 미술관, 예루살렘의 이스라엘 미술관을 비롯하여 여러 미술관에 영구 소장되어 있으며, 황금콤파스상을 수상한 바 있다. 그가 디자인한 작품은 수 백여 점에 이르는데, 대부분의 작품은 오로지 단 하나만 제작되었고, 이 오브제들은 전 세계의 갤러리와 미술관의 전시회를 통해 소개되었다. 같은 시기, 에토르 소트사스는 폴트로노바 사와 함께 일하면서 세라믹과 가구 제품들을 디자인했는데, 이 제품들도 세계적인 미술관들에 소장되어 있다. 60년대 말부터 70년대 중반까지의 왕성한 문화적 혁명기에 그는 아방가르드 문화의 중심인물로 활발한 활동을 벌이기도 했다.

20 + Designer Ettore Sottsass
에토레 소트사스는 현대 디자인 언어를 새롭게 창안하고자 끊임없이 노력해온 인물이다. 그의 활동은 인류학, 심리학, 시, 문학, 예술 등의 다양한 분야와 관련을 맺고 있다. 합리주의에 반하는 그의 태도는 대안 학교와 잡지를 탄생시켰고, 그의 독창적 저술, 디자인 드로잉, 사진 등은 끝없는 논쟁을 불러일으켰다. 이 즈음이 바로 '카운터 디자인(counter design)' 또는 '급진적 디자인'이라 불리는 디자인 운동기에 해당한다. 이러한 맥락의 일환으로1967년, 페르난다 피바노, 앨런 긴즈버그와 함께 <피아네타 프레스코>지를 창간했다. 1970년에는 런던의 로열 칼리지 오브 아트에서 명예학위를 받았고, 1973년에는 아키줌, 수퍼스튜디오, 그리고 이탈리아의 다른 아방가르드 대표자들과 함께 대안적 디자인 & 건축 대학인 '글로벌 툴스'를 설립했다. 1978년부터 알키미아 그룹과 일하다가, 1981년 마침내 '멤피스' 그룹을 탄생시켰다. 멤피스는 이탈리아와 국제적 아방가르드 운동을 대표하는 그룹으로 알려져 있는데, 여기에는 한스 홀라인, 아라타 이소자키, 마이클 그레이브스, 시로 쿠라마타, 안드레아 브란치, 미켈레 데 루키 등이 참여했다. 이들의 실험은 1985년까지 계속되었는데, 이 당시 제작된 가구와 오브제들은 전 세계 순회전시를 통해 소개되어 왔다. 오랜 연구의 성과인 멤피스는 모든 이성적 기대, 상징적, 감정적 일관성을 넘어 급진적인 도상학적 구상언어의 부활을 꾀했다. 멤피스가 설립된 같은 해, 마르코 자니니를 비롯한 다른 동료 디자이너들과 함께 '소트사스 아소치아티'를 오픈했고, 지금까지도 이 곳에서 일하고 있다. 소트사스 아소치아티에서 일하는 와중에도 지속적으로 저술, 디자인 드로잉, 가구와 오브제 제작 등의 개인적인 프로젝트들을 병행해 왔다. 주요한 수상 경력으로는, 프랑스에서 수여한 문예 훈장(1992), 미국 로드 아일랜드 디자인 대학의 명예 학위(1993), 런던 로열 칼리지 오브 아트의 명예 박사학위(1996), 그리고 일본에서 수여하는 오리베 상(1997) 등이 있다.

21 + Designer Ettore Sottsass

22 + Designer Ettore Sottsa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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