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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8 광주민주화 운동의 주역들 - 박관현 윤상원 윤한봉을 중심으로 5.18 민주화 운동 인물 완벽 공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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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관현 ((朴寬賢)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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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 일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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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불야학 광주최초 노동야학, ‘투사회보’의 기반 1980년 당시 전남대 총학생회장 들불야학의 핵심 일원으로 활동 5·18 직전까지 ‘민족민주화대성회’에서 광주시민과 학생들의 반독재 투쟁을 주도 5.17 비상계엄 전국확대 조치로 여수로 도피 민족민주화대성회 전라도민의 민주주의 포럼역할 집회 현 정국에 대한 인식 도움 학생회의 행동지침 82년 4월 내란죄 혐의로 체포, 모진 고문과 옥중 단식투쟁 도중 심근경색으로 사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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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2 논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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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란 박관현 ((朴寬賢)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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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상원 ((朴寬賢)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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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 일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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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상원 (朴寬賢) 시민군 대변인, 지도자 - 광주 태생, 전남대학교 정치외교학과 졸업
5·18을 민중항쟁과 봉기로 조직하고 방향을 세운 핵심 인물 조직적이고 규율이 없는 시민군이 계엄군에 의해 진압 당했다면 민중항쟁으로 기록될 수 없었을 것! 윤상원 (朴寬賢) 시민군 대변인, 지도자 - 광주 태생, 전남대학교 정치외교학과 졸업 - 1979년 들불야학 1기로 강학.투사회보의 발행인 - 5∙18 광주 민주화 운동 당시 시민군 지도자 활동 - 5월 27일 전남도청 본관에서 계엄군에 의해 사망 ※ 투사회보 윤상원은 '투사회보'를 조직해 광주의 여론을 주도 -> 항쟁 지도부 역할수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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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2 논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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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8 민주화운동 추모행사, 황석영의 「임을 위한 행진곡」
1997 : 5·18 운동 국가기념일 승격, 정부주관 기념식 본행사 말미 기념곡 제창 2009 : 이명박 정부 시기, 공식 식순에서 제외, 식전 행사로 밀림 2011 : 임을 위한 행진곡 제창이 폐지, 합창단의 기념공연 합창에 삽입 번경 2013 : 국가보훈처, '임을 위한 행진곡'을 대체할 별도의 5·18 민주화 운동 공식 기념곡 제정 추진발표 5·18 관련 단체는 2010년부터 정부주관 기념식 참석을 거부 별도의 기념식을 여는 등 이에 반발 폭동 주도설 시민군대변인으로 활약한 윤상원은 폭동과 거리가 먼 인물 계엄사상황일지 보안대일지, 윤상원의 무기고 습격에 참여한 기록이 전무 예비군무기고 습격과 TNT무장과는 관련이 없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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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한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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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 일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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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한봉 윤한봉 열사의 망명 12년동안 지켰었던 원칙 노동운동가, 전남강진출생 - 1974년 민청학련 사건 으로 투옥,
이후 재야운동가로 활동 - 1980년 5월 학생운동세력 주모자로 지목, 수배 - 1981년 4월 화물선 레오파드호에 숨어 미국 밀항 - 미국에서 민족학교와 재미한국청년연합 결성 - 1993년 5.18 수배자 중 마지막 수배 해제, 귀국 - 귀국이후 5.18기념재단 설립에 주도적인 역할 및 민족미래연구소장, 들불야학기념사업회장 역임 - 보상 거부 윤한봉 열사의 망명 12년동안 지켰었던 원칙 첫째, 미국 생활에 적응하지 않는다 둘째, 조국의 가난한 동포들과 감옥안의 동지들을 생 각해 침대에서 자지않는다 셋째, 도피 생활 때처럼 허리띠를 풀고 자지 않는다 이른바 '광주사태'의 배후 조종자로 몰려 수배되었고 0.5평의 화장실에서 35일 동안 8개의 생라면과 꿀 한 통으로 연명했으며, 재미교포 청년들과 고국의 민주화투쟁에 앞서 행동하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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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8 민주항쟁 열사들을 부정적으로 바라보는 주변적 관점
Q1. 당시 5.18 항쟁을 주도한 운동권에게 공산주의적 사상이 있었는가? A. 1980년대 초반 광주에는 큰 공장이 없어 노동운동, 사회주의가 주목을 못 받음 당시에는 국민이 독재에 맞서 사회 민주화를 쟁취하는 게 최대의 과제라고 생각함 -> 윤상원 열사를 비롯한 열사들의 항쟁의 목적을 노동운동이나 사회주의 혁명의 관점에서 볼 수 없다. Q2. 시민군이 조직적으로 군사적 기밀 장소인 무기고를 짧은 시간 내에 46곳이나 습격을 한 것은 당시 광주에 불순분자가 배후로 없었으면 불가능한 일이다? A. 90년대 초 예비군 무기를 군부대로 이관하는 사업이 추진될 때까지 향방 무기는 경찰서와 파출소의 예비군무기고에서, 직장 무기는 직장 예비군무기고에 보관되고 있었음 -> 결국 시민들이 찾기 쉬운 곳에 있었으며 이러한 요건에도 불구하고 군사적 기밀 장소라고 주장하는 하는 것은 시민군을 어떻게든 불순세력과 연관 짓고자 하려는 의도로 해석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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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8 민주항쟁 열사들을 부정적으로 바라보는 주변적 관점
Q3. 시민군은 도청에 TNT를 설치함으로써 대한민국을 전복하려 했다? A . 다이너마이트는 단순한 위협용으로 시민군은 도화선 자체를 설치하지 않았음 + 온건파의 요청에 의해 폭약 제거를 시도한 배승일 씨에 대한 명예회복 판결에 의하면 배승일 씨는 당시 뇌관과 신관을 제거하였고 이는 도화선을 설치하지 않았다는 증거이기도 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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