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벨라루스 국가 건설 2016년 10월 14일 양중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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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벨라루스 국가 건설 2016년 10월 14일 양중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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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최초의 벨라루스 국가 폴로츠크 공국 Polotsk , 9-12c
키예프 대공의 가신공국/ 독립 수준, 현 벨라루스의 1/3 영토 11c -12c 동슬라브 지역의 주도권 쟁탈을 위해 키예프 공국과 전투 - 성소피아 성당 건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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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리투아니아대공국 13-16C 벨라루스 도시세력과 발트부족의 리투아니아 공후들의 연합
공국 초기에는 경제, 군사적 기반이 인구의 다수를 차지하는 벨라루스인들(정교도)에 의해 유지. 벨라루스어, 관습, 문화가 대공국의 공식적 문화의 지위 13세기-16세기는 벨라루스인들의 정신적 문화와 민족적 정체성의 기초가 형성된 중요한 시기

7 1385 리투아니아- 폴란드 혼인동맹 - 요가일라 리투아니아 대공이 카톨릭으로 개종하고, 폴란드의 왕 (야기예워)지위 차지, 십자군의 팽창 저지 목표 1410 그룬발트에서 튜턴기사단 격퇴 모스크바 대공국과의 적대적관계 -이반3세(재위 ) 벨라루스 동부지역 회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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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폴란드 - 리투아니아 연방 1569-1795 리투아니아 대공국의 독립과 주권 상실, ‘폴란드화’ 과정과 강압적인 카톨릭 전파
1599 연합교회(Uniate Church, Greek Catholioc Church) 탄생 - 로마교황의 우월권을 인정, 정교회신자들의 관습과 의례, 종교 축일, 성인과 전통적 교회 장식들을 보존 허용 16-18세기동안 벨라루스는 끊임없이 전쟁터 - 코자크와 농민들의 반폴란드 반란 (1630/40년대)

10 러시아와의 전쟁 (1654-1667)- 러시아가 키예프를 포함한 우크라이나의 절반을 차지,
폴란드는 우크라이나 서부지역과 벨라루스 계속 보유 . - 러시아 우위 확보. 폴은 패망의 운명 - 북방전쟁 (스웨덴 vs 러시아, 1700 ) 전쟁으로 벨라루스 사회는 엘리트와 상류계층을 잃었고 사회적 계층구분이 무너지면서 농촌사회로 퇴보. 1696 폴란드어를 벨라루스의 공식언어로 선언 - 이후 벨라루스어는 농민이나 하층민이 사용 - 벨라루스 문화는 비주류의 시골문화로 전락

11 3국분할(러시아화 시작) 1772-1795 러시아학계는 러시아의 벨라루스땅을 지배할 권리를 정당화시킴
- 15세기 리투아니아 대공국의 형성과 발전과정에서 서부 루스 땅이 핵심적 역할 - 폴란드와의 통합을 통해 러시아땅은 이교도인 카톨릭권의 영향권 아래 들어가 압제를 받았고, 이후의 역사는 정교회 러시아와의 재통합을 지속적으로 갈망해 온 것

12 러시아혁명과 소연방 편입 러시아 혁명후 의회 소집, 벨라루스 인민공화국(BPR) 창설 선언(10월 혁명, 볼셰비키 정권에 반대) Soviet Socialist Republic of Belarus 정부에 의해 축출 1차대전의 종전으로 러시아 제국의 영역에서 폴란드, 핀란드, 에스토니아, 라트비아, 리투아니아 국가 탄생, - 벨라루스는 불발

13 Riga 조약 (1921.3.18 소-폴 전쟁후 폴란드 영토 인정)
- 그로드노, 브레스트, /민스크주와 비텝스크주의 절반이 폴란드에 넘겨졌다(10.8만 ㎢, 400만명), -벨라루스의 1/3(6만 ㎢ , 165만명)이 소비에트 러시아에 남다 소연방 편입 소비에트사회주의 공화국 연방 출범 선언 새로운 국경 설정으로 벨라루스는 리가조약에서 확정된 영토의 두배가 넘는 영토를 확보. 인구는 450만명, 이중 70% 이상이 벨라루스인.

14 제2차세계대전 1939. 9. 1 독일군의 폴란드 침공 - 9.25 소련군도 서부 벨라루스 전역 장악.
서부 벨라루스를 벨라루스(소련)영토에 편입 월초 벨라루스 전지역이 독일군에게 점령 얄타회담에서 소련 영토 인정 - 서벨라루스거주 폴란드인은 년대 폴란드로 이주 UN 창설회원국 ( 샌프란시스코 회의)

15 종전후 경제건설 종전후 벨라루스의 공업화가 집중적으로 지속 -중앙에서 계획된 대규모 산업투자
-디젤엔진과 중장비 트럭, 농업용 트랙터, 기계류, 전기 장비, 가정용품 생산공장 건설 기간 동안 벨라루스의 GDP 성장률은 소련 평균치의 1.5배 -벨라루스는 ‘현대적 산업공화국’ 성과물

16 1985 고르바쵸프 등장 1986.4.26. 체르노빌 원전 폭발 - 벨라루스 국토의 1/5 이 방사능에 오염
벨라루스의 정치적 민주화와 민족주의 운동은 인근 발트 3국에 비해 늦게 시작 -(1989년 조사) 벨라루스 대학생중 19% 만이 소련 시민권과 분리된 벨라루스 시민권 도입을 찬성. -에스토니아 대학생 96%, 라트비아 91%, 리투아니아 84% 가 자국 시민권 획득을 원한 것과 큰 차이.

17 벨라루스 독립 1991.8.25. 벨라루스 최고회의 독립선언 - 공산당 불법화, 슈슈케비치가 최고회의 의장직에 오름
Belavezha에서 러,우,벨 3공화국의 소연방 탈퇴와 CIS 창설 선언 고르바쵸프가 소련 대통령직에서 물러나고, 소련 해체

18 루카센코대통령체제 출범(‘94) 95. 5.14 루카셴코는 공식 언어와 국가 상징에 관한 국민투표 실시
- 러시아어를 공식언어로 인정 (대통령의 의회 해산권 인정하는 헌법개정) * 집에서 벨라루스어 사용(전국 25%, 도시지역 10% 약간 상회) -언론매체, 공공기관 벨어 거의 사용 안함

19 ‘국가 이데올로기’ 루카센코 체제는 국가건설이데올로기에 있어 인종-민족-문화-언어 중심기반을 배격
-70년간의 소비에트 체제 경험을 반영하여 국가와 영토를 기반으로한 정치적 통합을 정체성과 연계 - 자신을 벨라루스 사람으로 인정하지만, 벨라루스어 사용은 현저히 감소 (Russian speaking Belarusian nation with weak national identity) 러시아의 지원하에, a Soviet and Russia-oriented identity 강조 - 우크라이나 사태후 안보 위기감 - 독립성 강조, 벨라루스어 사용 빈도 증가

20 루카센코체제 20년 [업적] 낮은 범죄 수준 산업시설 유지 Hightech Park 설립(2005)
지구관측 인공위성 발사( ) 세계아이스하키대회 개최(2014) 사회 인프라 시설 확충(도로 등) 낮은 실업율 %(공식) 국가 전체 ‘가스’화 사회보장제도 충실 - 의료,교육, 교통요금 저렴 농촌 및 소도시 환경 개선

21 문제점 (TUT.BY) 경제개혁 안 됨. 부채 증가 - 대외부채가 GDP의 50% 상회 벨 루블화의 평가절하 – 환율 불안정
인권 위반국 평판 서방과의 관계 악화 - EU와 미국은 민주화 및 인권상황 개선을 요구하며 대벨라루스 제재를 장기간 실시 인구감소- 20년간 76만명 감소,현재 946만

22 민족문화, 언어가 사회생활 변두리에 놓여짐 알콜 소비량 증가 러시아에 대한 경제 정치 의존도 증가 (다양한 형태의 경제보조금 연 100억불 상당) 의사와 교사의 위상 저하, 숙련인력 해외 유출 정치적 경쟁 및 엘리트 교체가 사라짐

23 벨라루스 정치혁명가능성 낮다 1. 우크라이나에서는 ‘authoritarianism' 이 미확립
-벨라루스에서는 ‘권위주의’가 내부적으로 확립, 제도화 -국가가 ‘사회’ 생활에 침투, 존재 광범위, 대규모 조직적 반정부세력 조직 불가능 2. 우크라이나는 경제적 oligarchy 가 정치적 영향력 유지. 의회내 야당세력 - 벨라루스는 루카센코 이외는 정치인이 없고 언론 매체 독점. 대체 병행권력 없다

24 3. 우크라이나는 동부지역(친러)과 서부지역 갈등 (문화, 사회경제적)
- 벨라루스는 상대적으로 분열 소지 적다. 4. 야누코비치 정부는 사회. 경제 이슈에 적극 대처 못함(가족 자신들의 탐욕 위주) - 벨라루스 정부는 국민들의 ‘ minimum comfort' 보장, 질서유지 등을 통해 정당성 유지. 내부 안정성 유지 노력

25 공기업, 사회 복지 우선 공기업 위주(GDP의 70% 이상) - 시장경제개혁, 민영화 외면 사회복지 사회계약
- 소비자물가의 인위적 억제(보조금 지불 등) 로 실질임금 상승(실질생산성 상승보다) -국제경쟁력 하락

26 러시아에 대한 의존도 경제 의존 : 원유, 가스, 자본, 고용, 수출입 시장(48%) 의존 외교, 국방 의존 : 서방과의 갈등
문화 및 언론 의존 - 러시아 매체 영향력 크다 퇴역군인회 등 친러단체, 군부 등 친러인맥 ‘국가연합’ 체제 모색( )- 양국 국민은 거주·취업하는데 내국인대우 From a Partner to a Vassal

27 2015 주요 경제 지표 GDP: 620억 미불 / 1인당 GDP: 6,583 미불
경제성장율: -3.5%/ -3%( ) 인플레이션 : 15% 실업율 및 평균임금: 1.1% (‘16), 353 미불(’16.1) 무역: 569억불 (수출 266억불, 수입 303억불, 37억불 적자) - 석유제품, 덤프트럭, 트랙터, 칼리비료 등 주력상품 수출 부진 주요교역국 : 러시아 (48%), 우크라이나 (6%), 중국 (5.6%), 영국 (5.5%), 독일 (4.3%) 외환보유고 : 40억불 (‘16.2), 외채 : 124억불 (‘16.2) 환율(BYR/USD) 추이 : 11,900( ) → 19,907( )

28 현재 위기상황 20년이상 권위주의 체제 유지 (국민적지지 미약)
최근 3년 마이너스 경제성장률 기록, 수출 경쟁력 하락, 투자도 3년째 연속 (-) 성장 - 러시아 경제위기 영향(대러 제재, 국제 유가 하락)으로 경제 불안 가중 우크라이나 사태 이후 벨라루스 정부의 안보 위기감 고조 - 러시아의 입장을 추종하지 않고 크림합병 불승인, 우크라이나 연방제 도입 반대 벨라루스의 독자 생존 능력은 미약하다

29 미래 국가 건설 과제 어떻게 경제성장 동력을 찾는가 탈러시아, 친서방 가능한가 현 정권 유지(충성심) 가능한가
한국과의 관계는?

30 친서방정책 독립초기 친서방적 중립노선 - (94.7. 루카센코집권이전) 친유럽적 민족주의 세력이 벨라루스 민족정체성 재정립 시도 보혁간 권력투쟁 및 서방의 무관심으로 좌초 루카센코 집권이후 대통령 권력강화 헌법개정(1996)을 둘러싸고 의회, 헌법재판소 등 반대세력 탄압으로 서방정부의 제재 조치 시행 - 2001년, 2006년 대선이후 부정선거 시비로 서방 제재

31 2000.5. 푸틴 집권 – 벨라루스에 국가통합 압박, 국가기간산업의 민영화요구 (루카센코 흔들기)
벨과 러시아간 에너지보조금 분쟁이 주기적 발생 년 러시아의 공급 원유, 가스 가격 인상에 대해 파이프라인 폐쇄 및 통과료 인상 대응 * 조지아 장미혁명 우크라이나 오렌지혁명 * 폴란드, 체코, 발트3국 등 중동부 유럽 10개국이 EU 가입

32 2008.8. 조지아 사태시 남오세티야 독립불승인 및 국내 정치범 석방 등 유화 조치
- EU 비자발급금지 조치 중단, IMF 차관 제공, Eastern Partnership Programme에 벨라루스 포함 벨라루스 대선(4선)에서 야당세력 탄압 규탄 – 입국금지 및 경제제재 확대

33 2015.2. 민스크 평화협정 체결 주선 – 우크라이나, 러시아, 독일, 프랑스 정상 참석
정치범 6명 석방 루카센코 대통령 5선 EU 제재 해제 - 서방의 경제지원, IMF 차관 기대

34 중국과의 교류 확대 벨라루스는 구조적인 대러시아 의존도를 경감하고, 필요한 대외차관을 제공해줄 수 있는 중국과의 관계 발전에 적극 노력중 -루카센코 대통령은 9회에 걸쳐 중국을 방문 (최근 월말) 중국 또한 ‘일대일로’ 전략을 적극 추진중으로 유라시아 지역과 유럽간 연결로에 자리잡은 벨라루스에 전략적으로 진출하고 있음. - 시진핑 주석 방벨(2015.5) 등 고위급 교류 활성화, 대규모 차관 제공, 벨라루스 최대 FDI인 벨중 산업단지 건설 추진, 차량생산,민스크-베이징 직항로 개설(2015.5) 등

35 투자 환경 및 우리 기업 입장 벨라루스는 외국투자 유치 환경 열악
- 불완전한 시장경제제도, 법적 안정성 부실, 관료적 규제 등 요인 한국기업들 또한 벨라루스의 투자에 무관심 - 2014년 SK-하이닉스사가 우리 기업 최초로 벨라루스에 직접투자 (Softeq사 인수, 1,000만불 규모) IT 및 의료 보건 등 분야에서 일부 프로젝트 협의 - 자금 조달의 어려움(수출입 은행의 EDCF 제공 불허 등 낮은 신용평가)

36 한-벨라루스 교역 현황 (단위 : 천불, ( )는 전년동기대비 증감률 / 자료출처: 한국무역협회) 구 분 2008 2009
2010 2011 2012 2013 2014 2015 수 출 53,337 (52.1) 23,796 (△55.4) 39,171 (64.6) 58,445 (49.2) 43,937 (△24.8) 71,372 (62.4) 40,955 (▽42.6) 47,026 (△14.8) 수 입 16,361 (24.3) 8,374 (△48.8) 30,093 (259.4) 9,215 (△69.4) 38,086 (313.3) 29,654 (△22.1) 44,894 (△51.4) 46,940 (△4.6) 무역수지 36,976 15,421 9,078 49,229 5,851 41,718 -3,939 86 총교역액 69,698 32,170 69,264 61,660 82,023 101,026 85,849 93,966

37 유라시아 경제연합 (Eurasian Economic Union)
출범 --러시아 벨라루스 카자흐스탄 3국 관세동맹의 확대 – 아르메니아, 키르기즈스탄 추가 가입 상품, 서비스, 자본, 노동 이동의 자유를 단계적으로 보장하고, 회원국간 공동 거시경제 정책을 추진 - EEU 단일 시장의 단계적 확대 계획: 의약품 (2016), 전력(2019), 에너지(2025), 금융(2025) 러시아는 지정학적 관심 우선 - 카자흐스탄, 벨라루스는 경제적이익 추구하되 ,정치적 독립 손상치 않으려 노력

38 문제점(확장성, 실효성) 러시아와의 양자 교역에 지나친 의존
* 관세동맹 내 상품무역 현황: 러시아-벨라루스(61.9%), 러시아-카자흐스탄(36.6%), 벨라루스-카자흐스탄(1.5%) * 관세동맹 역내 교역 비중(총교역규모 대비) - 벨라루스 50.7%, 러시아 7.5%, 카자흐스탄은 18.4% * 카자흐의 대외 교역 비중(2014) - EU 44.4 %, 러시아 15.8%, 중국 14.4%

39 러시아의 추동력 약화 주도국인 러시아가 국제유가 하락으로 경제위기, 루블화 가치 평가절하, 서방의 경제제재 등을 겪고있어, EEU가입의 기대이익 감소 회원국간 수입제한조치 실시 사례 벨, 카자흐는 러시아의 서방 농식품에 대한 수입제한조치에 불참

40 통합 전망 러시아의 약화된 정치경제적 위상으로 향후 전망 불투명
- EEU는 러시아의 유라시아 역내 영향력 유지를 위한 대외정책 도구로서, - 러시아의 경제상황이 개선되어야 통합속도 빨라질 수 있을 것 경제통합수준 고도화를 위한 협상은 계속되나 개별 국가 경제사정으로 이견 노정 - 러시아의 입장 강요시 벨, 카자흐는 탈퇴 위협, 주권, 자국 산업이익 강조하며 자유화 예외조치 유지 시도

41 중국의 ‘일대일로’ 전략과의 연계 등 고려 필요
가입국들은 EEU의 단일시장 효과를 홍보하며 EU, 중국 등과의 개별경제협력 기회를 모색하는 한편, 또한 EEU와 제3국과의 FTA(베트남 등) 추진도 병행 중국의 ‘일대일로’ 전략과의 연계 등 고려 필요 (한국기업) 중장기적으로 순조롭게 통합이 이루어질 경우를 예상 확대되는 EEU 단일시장과 상응한 국가별 분업체계를 반영하여, 기업 진출 및 현지 생산 거점 확대 등 대비 필요 - 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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