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 1:9-45 세례를 받으시다 시험을 받으시다 갈릴리에서 복음을 전파하시 다 어부들을 부르시다 더러운 귀신 들린 사람을 고치 시다 많은 사람을 고치시다 전도 여행을 떠나시다 나병환자를 깨끗하게 하시다
세례를 받으시다(마 3:13-17; 눅 3:21-22) 막1:9-11 9 그 때에 예수께서 갈릴리 나사렛으로부터 와서 요단 강에서 요한에게 세례를 받으시 고 10 곧 물에서 올라오실새 하늘이 갈라짐과 성령이 비둘기 같이 자기에게 내려오심을 보시더니 11 하늘로부터 소리가 나기를 너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라 내가 너를 기뻐하노라 하시 니라 새로운 장면을 맞이하고 있다. 예수의 침례 받는 장면에서 마가, 마태, 누가, 요한이 다르다. 마가는 예수가 성령이 임하는 장면을 보고 있다. 마태에서는 다른 사람에 의하여 예수가 성령이 임하는 장면을 본 것으로 증거 되어 있다. 누가는 예수가 기도하는 중에 하늘이 열리고, 성령이 육채 형상(swmatikw/| ei;dei)을 가졌다고 이야 기 한다. 요한은 침례요한 (요1:30-34)의 설명을 전하고 있다.
10절에서 ‘하늘이 갈라짐'이런 표현은 15:38에서는 성전 휘 장이 갈라지는 모습으로 나타난다 10절에서 ‘하늘이 갈라짐'이런 표현은 15:38에서는 성전 휘 장이 갈라지는 모습으로 나타난다. ‘비둘기 같다’ 표현은 창 1:2의 모습을 연상 시킨다. 자기에게(eivj auvto,n) 부분에서 ‘epi’가 아니라 ‘eij’ 를 쓴 것을 성령이 예수의 몸안에 영원히 머물렸다는 이해 를 이끌어 내기도 한다. ‘비둘기 같이’는 형용사적 부사로 보면 ‘비둘기 같이 보이 는’으로, 부사적 부사로 보면 ‘비둘기가 내려온 것 처럼’으 로 해석 가능하다.
11절은 시편 2:7과 이사야 42:1의 인용이다. 시편 2:7은 왕이 세워지고, 시온산에 나타나고, 왕이 옴을 통하여 모 든 나라위에 설 것이라는 야회 하나님의 약속을 담고 있다. 쿰란문헌 4Q174에서 이 두 구약 성서 구절이 메시아적 본문으로 인용 되어 있다. 여기에서 모순은 시편은 승리자로서의 왕의 모습, 이사야는 종으로 서의 모습을 보여 준다. 마가는 이 두 모습을 그의 복음서 전체에서 잘 드러내고 있다. 이 부분에서 예수의 양자설을 이끌어 내기도 한다. 영지주의는 ‘인간 예 수가 침례받음으로 메시아가 되었고, 십자가에서 죽기 전에 성령을 떠 나서 시자가에서 죽은 이는 메시아 아닌 인간 예수가 죽었다’는 ‘가현설 '을 주장하기도 했다. 하지만 마가는 예수의 메시아 됨이 예수의 부활이 아니라 예수의 사역 초기에 그의 메시아 됨을 대중에게 인식 시키기 위하여 예수의 침례 의 식 장면에 신적인 현현 장면을 자세히 소개하고 있다고 본다.
시험을 받으시다(마 4:1-11; 눅 4:1-13) 12 성령이 곧 예수를 광야로 몰아내신지라 13 광야에서 사십 일을 계시면서 사탄에게 시험을 받으시며 들짐승과 함께 계시니 천 사들이 수종들더라 여기에서 주체는 예수가 아니다. 주체는 성령, 사탄, 천사 들이다. 여기에서 두 그룹(성령,천사와 사탄, 짐승)의 갈등이 그려져 있다. 요단강 장면에서 갑자기 광야로 옮겨지는 장면을 열왕기 상하와 에스겔서에서 하나님의 영이 선지자를 여기에서 저곳으로 옮기는 장면과 유사하다. 12절에서 ‘몰아내신지라’는 ‘내 던져지다’라는 표현이다. 이 갈등의 장면은 인간의 눈으로는 볼 수 없는 장면이다. 예수가 사탄에 의하여 시험 받는 장면은 욥기1:8에서 욥이 하나님에게 무혐의 판정을 받 은 후에 사탄에 의하여 시험을 받은 장면과 유사 하다.
13절, ‘사십 일'은 모세가 시내산에서 40일을 머무는 장면(출 24:18), 엘리 야가 40일을 여행하는 장면 (열상 19:8)이 연상 된다. 신명기에서 모세는 광야 생활을 가나안에서 나라를 세우기 위한 준비 기간으로 보았다. 여기에서 장면은 예수가 사탄에 의하여 ‘유혹’ 받는 것이 아니라 ‘시험' 받는 장면이다. 마태와 누가 복음은 예수의 시험 받는 장면을 보다 자세히 그려져 있는데 이는 Q에서 온적으로 본다. Q 자료의 핵심은 예수는 결코 사탄에 굴복하 지 않았다는 것이다. 여기에서 ‘짐승이 함께 한 것(meta. tw/n qhri,wn)’은 에덴 동산으로의 회복이라는 주장이 있지만 설득력이 부족하다. 본인은 고대 이야기 속에 현자들이 짐승들과 함께하는 장면을 여기에서 본다.
갈릴리에서 복음을 전파하시다(마 4:12-17; 눅 4:14-15) 갈릴리에서 복음을 전파하시다(마 4:12-17; 눅 4:14-15) 14 요한이 잡힌 후 예수께서 갈릴리에 오셔서 하나님의 복음을 전파하여 15 이르시되 때가 찼고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이 왔으니 회개하고 복음을 믿으 라 하시더라 막1:14-15은 마가복음의 핵심으로, 그 내용은 예수에 의하여 시작된 모든 설교와 예수를 따르는 사람들에게 위임된 사람들의 이야기 이다. 14절에서는 요한에 대하여 간결하게 이야기 하고 있다. 6장17-18 이하에서 보다 자세한 내용을 언급하고 있다. 9:31, 10:33, 14:1에서 예수도 요한과 같은 운명에 처해질 운명임을 이야기 한다. 요한의 역할은 끝났고, 새로운 시대가 도래 했다. 요한이 헤롯 안타파스에 의하여 죽음을 당하였다면, 같은 땅에서 활동하고 있는 예수도 같은 위험에 처하여 있다고 보아야 한다. 하지만 예수는 결코 이런 상황을 피하지 않았다. 막1:1-13에서의 복음이 메시아의 오실 것에 대한 이야기 였다면, 이제는 메시아가 이야기 한 내용이 복음이 된다. 예수는 복음의 목적이 되고, 주체가 되었다.
15절의 때가 찾다(peplh,rwtai o` kairo 15절의 때가 찾다(peplh,rwtai o` kairo.j)는 표현은 마4:17에 는 등장하지 않지만, 눅 4:21에서는 ‘성서의 말씀이 이루어 졌다’고 언급하고 있다. 이 표현은 선지자들이 희망했던 메시아가 왔음을 분명히 한 표현이다. 결정적 인 시간의 도래를 의미한다. 완료 수동 3인칭 단수를 사용하여 미래 혹은 가까운 시기로 오해 하지 않도록 하고 있다. 15절은 하나님이 왕으로 통치가 완벽하게 시작 되었으며, 이 왕국은 영원성과 종말론적의미를 가진다. 그러므로 예수의 사역은 시작 되었으며, 하나님의 사람들은 이에 반응을 보여 야만 한다. 그 반응은 ‘회계와 믿음’ 이여야 한다. 복음을 믿으라(pisteu,ete evn tw/| euvaggeli,w|)는 표현에는 하나 님의 사람들은 복음을 받아들이고 헌신 하여야 한다는 의미가 내포 되어 있다.
어부들을 부르시다(마 4:18-22; 눅 5:1-11) 16 갈릴리 해변으로 지나가시다가 시몬과 그 형제 안드레가 바다에 그 물 던지는 것을 보시니 그들은 어부라 17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를 따라오라 내가 너희로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게 하리라 하시니 18 곧 그물을 버려 두고 따르니라 19 조금 더 가시다가 세베대의 아들 야고보와 그 형제 요한을 보시니 그 들도 배에 있어 그물을 깁는데 20 곧 부르시니 그 아버지 세베대를 품꾼들과 함께 배에 버려 두고 예수 를 따라가니라
예수의 제자들의 특징은 흠이 많고 취약한 사람들을 통하여 하나님의 나라가 세워져 나 갔다. 하나님 나라는 팡파르와 함께 오는 것이 아니라 갈릴리 같은 외지고 잘 알려지지 않는 사 회적으로는 주목받지 못한 사람들에게서 점진적인 성장을 통하여 임한다. 예수의 제자들의 특징은 흠이 많고 취약한 사람들을 통하여 하나님의 나라가 세워져 나 갔다. 예수는 자신의 활동 무대를 헬라 색체가 짙은 Sepphoris, Tiberias을 피하고, 유대 색체가 강한 나사렛에서 설교와 교육을 이어 갔다. 어부라는 직업이 사회적으로 높은 지위가 아니었다. 베드로라라는 이름은 그가 ‘시몬' 으로 불리기 전까지 사용 되었다. 야고보와 요한 또한 어부라는 가업을 가지고 있음이 분 명하다. 17절에서 ‘나를 따라오라’는 열상 19:19-21에서 엘리야가 엘리사를 부르는 카리스마적인 모습을 연상 시킨다. ‘사람을 낚는 어부'라는 표현은 비유로 아모스 4:2과 하바국 1:14-17에 등장 한다. 이들 에언서에는 하나님의 심판을 내포하고 있다. 낙시는 사람을 낙시에 사로잡힌 사람과 그렇 지 않는 사람을 나누고 있다. 마가복음에서 예수의 사역과 제자들의 사역을 분명히 나누 어진다. 제자들의 사역의 목적은 심판을 위하여 사람들을 사로잡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을 구원하는데 있다. 20절에서 ‘따라 간다(avph/lqon)은 표현은 보다 극적으로 떠나 새로운 시작을 한다는 의 미다.
설교와 치유:1:21-39 네 사건이 하루 동안 일어난 일이다. 장소는 안식일에 회당에서 일어 난 사건이다. 갈릴리 사역은 1) 가르침(21-22, 27), 2) 귀신 축출(23-26, 32, 34, 39), 3) 치유(30-31, 32-34), 4) 선포(38-39)로 구성 되어 있다. 일련의 사건에서 예수는 그의 제자들과 함께 하였다. 처음에는 예수 홀로 부각 되다가, 나중에 그의 제자들이 사역에 동참하게 된다.
더러운 귀신 들린 사람을 고치시다(눅 4:31-37) 21 그들이 가버나움에 들어가니라 예수께서 곧 안식일에 회당에 들어가 가르치시매 22 뭇 사람이 그의 교훈에 놀라니 이는 그가 가르치시는 것이 권위 있는 자와 같고 서기관들과 같지 아니함일러라 23 마침 그들의 회당에 더러운 귀신 들린 사람이 있어 소리 질러 이르되 24 나사렛 예수여 우리가 당신과 무슨 상관이 있나이까 우리를 멸하러 왔나이까 나는 당신이 누 구인 줄 아노니 하나님의 거룩한 자니이다 25 예수께서 꾸짖어 이르시되 잠잠하고 그 사람에게서 나오라 하시니 26 더러운 귀신이 그 사람에게 경련을 일으키고 큰 소리를 지르며 나오는지라 27 다 놀라 서로 물어 이르되 이는 어찜이냐 권위 있는 새 교훈이로다 더러운 귀신들에게 명한즉 순종하는도다 하더라 28 예수의 소문이 곧 온 갈릴리 사방에 퍼지더라
예수의 사역은 귀신 축출과 깊은 관련이 있다. 당시 중동 지역에는 귀신 축출 능력은 예수와 그의 제자들에 국환 된 사건이 아 니었다. 하지만 예수의 귀신 축출은, ‘권위 있는 새 교훈(didach. kainh. katV evxousi,an)이었다. 귀신 축출에 국한된 것이 아니었다. 21절, 마가에 있어서 가르침은 메시아 사역에서 핵심적인 요소였다. 22절, 사람들이 놀란 이유는 역동성과 방법에 있어서 다양성에 있었을 것이다. 24절, ‘우리가 당신과 무슨 상관이 있나이까(Ti, h`mi/n kai. soi,)’구약에 서 전형적인 ‘분열 유형'이다. 메시아 능력은 마귀의 능력을 능가 하였다. ‘하나님의 거룩한 자’란 표현은 구약성서에 없다. 다만 하나님과 밀접한 관계를 가지고 있다는 표현이 있다(열하 4:6; 시편 106:16).
많은 사람을 고치시다(마 8:14-17; 눅 4:38-41) 29 회당에서 나와 곧 야고보와 요한과 함께 시몬과 안드레의 집에 들어가시니 30 시몬의 장모가 열병으로 누워 있는지라 사람들이 곧 그 여자에 대하여 예수 께 여짜온대 31 나아가사 그 손을 잡아 일으키시니 열병이 떠나고 여자가 그들에게 수종드 니라 32 저물어 해 질 때에 모든 병자와 귀신 들린 자를 예수께 데려오니 33 온 동네가 그 문 앞에 모였더라 34 예수께서 각종 병이 든 많은 사람을 고치시며 많은 귀신을 내쫓으시되 귀신 이 자기를 알므로 그 말하는 것을 허락하지 아니하시니라
29-30은 베드로 장모의 치유 이야기, 31-34는 회당을 벗어나 사람들을 치 유하는 이야기 이다. 이 두 이야기에서 마가는 예수의 여행이 단순 ‘치유자 '로서 일에 그친 것 이 아니라 사람들의 필요에 응답한 모습으로 그리고 있다. 29절에는 예수의 치유 사역이 안식일에도 계속 되었음을 보여 준다. 32에서 사람들은 자신들의 치유를 위하여 안식이 끝나길 기다렸 다는 것 을 알 수 있다. 베드로의 장모를 치유하는 방법에서 예수의 치유 법의 다양성을 보여 준 다. 병의 원인을 마귀로만 보지 않았다. 32, 데려오니(e;feron)는 미완료 과거로 환자를 데려오는 사람들의 행렬 이 끝임없이 이어지고 있음을 이야기 한다. 예수님은 밖에 나가 환자를 끌어 모의는 일을 하지 않았다. 34절에서 메시아 비밀 사상을 분명히 보고 있다.
전도 여행을 떠나시다(눅 4:42-44) 35 새벽 아직도 밝기 전에 예수께서 일어나 나가 한적한 곳으로 가사 거 기서 기도하시더니 36 시몬과 및 그와 함께 있는 자들이 예수의 뒤를 따라가 37 만나서 이르되 모든 사람이 주를 찾나이다 38 이르시되 우리가 다른 가까운 마을들로 가자 거기서도 전도하리니 내가 이를 위하여 왔노라 하시고 39 이에 온 갈릴리에 다니시며 그들의 여러 회당에서 전도하시고 또 귀 신들을 내쫓으시더라
이 부분에서 예수 사역의 확장되는 모습을 보여 준다. 35절, 예수가 어떻게 군중을 벗어났을 가를 이야기 한다. 누가복음은 ‘습관적으로 기도 했다’고 표현한다. 한적한 곳(e;rhmon to,pon)은 어떤 곳인가? 아마도 ‘아래나‘가 아 니었을까? 예수 사역의 목적은 사람들에게 놀랍다는 평가를 받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 나라’의 확장임을 보여 준다. 39절, 전도하시고(h=lqen khru,sswn)에서 ‘h=lqen’대신에 ‘h=n’ 이 보다 올바를 표현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도 있다. 이유는 ‘h=lqen’ 은 예수의 전도(설교)가 일회성으로 이해 될 수 있지만, ‘h=n’이라면 ‘습관적으로 회당에서 전도(설교) 했다로’ 이해 되기 때문이다.
나병환자를 깨끗하게 하시다(마 8:1-4; 눅 5:12-16) 40 한 나병환자가 예수께 와서 꿇어 엎드려 간구하여 이르되 원하시면 저를 깨끗하게 하실 수 있나이다 41 예수께서 불쌍히 여기사 손을 내밀어 그에게 대시며 이르시되 내가 원하노니 깨끗 함을 받으라 하시니 42 곧 나병이 그 사람에게서 떠나가고 깨끗하여진지라 43 곧 보내시며 엄히 경고하사 44 이르시되 삼가 아무에게 아무 말도 하지 말고 가서 네 몸을 제사장에게 보이고 네가 깨끗하게 되었으니 모세가 명한 것을 드려 그들에게 입증하라 하셨더라 45 그러나 그 사람이 나가서 이 일을 많이 전파하여 널리 퍼지게 하니 그러므로 예수께 서 다시는 드러나게 동네에 들어가지 못하시고 오직 바깥 한적한 곳에 계셨으나 사방에 서 사람들이 그에게로 나아오더라
여기에서 고려 해야 할 것은 1)나병환자에 대한 예수 당시의 이해, 2) 44절의 율 법에 대한 태도, 3) 예수의 엄한 침묵의 요구에도 더울 퍼져 나가는 예수의 명성 이다. 40에서 ‘나병 환자'가 예수에게 나왔다는 것은 예수의 무리가 마을이 아닌 마을 밖에 있었다는 이야기 이다. 레위기 13:46에 따르면 ‘나병환자'는 사람들이 모여 사는 곳 밖에 머물러야 했다. 예수에게 담대히 나아가는 ‘나병환자’는 무엇을 걱정 했을까? 아마도 그에게 익숙 한 거절을 걱정 했을 것이다. 43절의 ‘엄히 경고 하사(evmbrimhsa,menoj)’에 사용된 단어는 ‘꾸짓다, 질책하 다’ 의미를 담고 있다. 그렇다면 그 의미는? 1) 예수의 꾸짓음은 개인에 대한 것이 아니라 당시 사회에 대한 것이다. 2) 메시아 비밀 사상의 한 표현이다. 3) 그의 불 복종을 미리 알고 한 표현이다. 44절은 레위기 14:1-32의 요약이다. 예수의 사역은 성공 할 수록 그의 삶은 보다 옹색하여 졌다. 그 원인 중 하나는 그 에 대한 오해도 한목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