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esentation is loading. Please wait.

Presentation is loading. Please wait.

Cambridge Companion to Aquinas, 1993.

Similar presentations


Presentation on theme: "Cambridge Companion to Aquinas, 1993."— Presentation transcript:

1 Cambridge Companion to Aquinas, 1993.
토마스 아퀴나스 사상의 배경 2010년 아람제 철학동우회 학술발표자료 Cambridge Companion to Aquinas, 1993. Thomas Aquinas in historical settings Aristotele and Aquinas Islamic-Jewisch Philosophers and Aquinas

2 사상적 배경을 연구하는 이유 한 사상가의 의견은 결코 그 사람만의 것이 아니다. 그 사람의 주변환경, 문화적 배경, 교육 환경, 선배 사상가들의 연구 등이 그 사상가의 의견에 영향을 미치게 된다. 따라서 그 사람의 의견을 보다 공정하게 바라보기 위해서는 그 시대 자체가 가지고 있었던 분위기 혹은 한계점들을 인지할 수 있어야 한다. 또한 그 사상가가 자신의 의견을 빚지고 있는 다른 이들에 대해서도 인지해야 한다. 중세 학자들은 자신들을 ‘거인의 어깨에 올라탄 난장이’이라고 생각했다. 토마스 아퀴나스 역시 홀로 떨어져 자신의 사상을 개진한 것이 아니다. 그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 시대의 배경과 그가 자신의 사상을 개진하기 위해 적지 않게 차용한 아리스토텔레스와 이슬람-유다 사상가들을 아는 것도 필요하다.

3 아퀴나스 사상의 주요배경 토마스 아퀴나스 아랍-유대 철학 신플라톤주의 그리스도교 아리스토텔레스

4 차례 1. 토마스 아퀴나스의 생애 2. 중세 유럽의 대학과 토마스 아퀴나스 3. 아리스토텔레스와 토마스 아퀴나스
4. 이슬람-유다 사상과 토마스 아퀴나스

5 토마스 아퀴나스의 생애

6 당대의 유럽 분위기 12세기~13세기 지중해 사회의 분위기
- 서방과 동방 사이의 무역 통로에는 이슬람 문화권이 위치 - 십자군 전쟁으로 인해 서방과 동방 사이에 자유로운 교역이 불가능하게 되고, 동방 문물이 이슬람을 통해 유입. - 10세기 바그다드에서는 이미 논리학, 철학적 주석학, 번역, 형이상학의 근원적 작업뿐 아니라, 약학, 수학, 천문학 등에서 주목할 만한 성과가 나왔고 상당한 문화적 유산이 형성 - 당대 이슬람 문화권은 유럽문화권보다 우위 - 당대의 나폴리는 유럽 문화, 이슬람 문화, 유대 문화가 어울려 문화적 활기를 띤 도시로 형성 - 이런 배경 속에서 아퀴나스는 다른 학자들보다 이슬람 문화에 더 친숙하게 됨 - 대학의 설립으로 수도원 위주의 학문풍토에 변화

7 토마스 아퀴나스의 생애 * 1224(1225년) 나폴리 근교 로카세카(Roccasecca)에서 출생 * 몬테 카시노의 베네딕토회 대수도원에서 공부를 시작 * 1239년 나폴리대학에서 입학하여 인문학(Artes Liberales, Liberal Arts) 을 공부함. * 나폴리대학에서 수학 중 설교자회(도미니코회)를 접하게 됨. * 1244년 도미니코회 입회를 결심. * 가족들의 반대로 1년간 로카세카 성에 감금 * 1245년 가족들이 토마스의 뜻을 수용. 도미니코회 입회 * 입회 후 수도원 장상들의 뜻에 의해 파리(Paris)로 이동. * 이후 수도회가 설립한 일반학원(Studium Generale)이 위치한 쾰른(Koeln)으로 이동.

8 로카세카

9 토마스 아퀴나스의 생애 * 1248~1252: 쾰른의 일반학원에서 알베르투스 마뉴스(Albertus Magnus)의 제자로 수학 * 1252~1256: 신학과정을 마치기 위해 파리로 귀환 * 1256~1259: 파리대학의 신학부 교수로 재직 * 1259~1269: 나폴리, 로마 등 이탈리아 대학에서 재직 * 1269: 수도회의 요청으로 파리대학 교수로 이동 * 1272: 수도회의 요청으로 나폴리에 일반학원 설립 * 1274년 3월 7일. 49세의 나이로 선종. 1567년 비오 5세에 의해 “교회박사”로 선포 1879년 레오 13세 영원하신 아버지(Aeterni Patris) 회칙:가톨릭 교회의 공식철학으로 승인 교회법전 1366조 2항(1918): 사제직 지망자의 토마스적 교육 요한 바오로 2세 “신앙과 이성”

10 토마스 아퀴나스의 주요저술 존재자와 본질에 대하여(De ente et essentia) - 초기 저서: 아리스토텔레스 철학의 창조적 수용 이교도 대전(Summa Contra Gentiles) - 신학교수로서 저술 이외에도 이슬람 지역의 도미니코 선교사들을 위한 작품 저술 - 가톨릭 신앙을 가지지 않은 이들에게 가톨릭 신앙의 정당성을 입증하고자 저술 신학대전(SUMMA THEOLOGIAE) - 이탈리아 체류( ) 시절 저술 - 스콜라적 토론방식/ 신학부 입문교재 - 문제(Quaestatio) – 항목(Articulus) – 그에 따르는 패턴 - 패턴의 형태는 Videtur quod non/sed contra/respondeo dicendum quod/sed contra에 대한 답변의 형태로 이루어짐.

11 시대적 배경으로서 중세 대학 (신학부와 인문학부를 중심으로)
시대적 배경으로서 중세 대학 (신학부와 인문학부를 중심으로)

12 1. 중세 유럽의 대학 대학(Universitas)의 설립 - 13세기 지식의 인프라(infra) - 서양 문화에 있어 중세의 가장 위대한 성취 대학의 설립 배경 - 교수와 학생들 간의 지식 공유 길드(Guild) - 점차적으로 제도화된 고등교육 기관으로 발전 - 대학법이 형성, 커리큘럼과 학위 규정들이 서서히 발전 (Baccalureus, Magister=Licentia Docendi) - 기초 인문학 과정 6년 이후 신학부/법학부/의학부 각 과정으로 진입

13 중세대학의 인문학(7학예) 3道(Trivium): 말에 관련된 기초학문 문법학 수사학 논리학
4道(Quadrivium): 수에 관련된 기초학문 산술학: 수 자체 지리학: 공간 안의 수 음악[화성학]: 시간 안의 수 천문학[점성학]: 공간(우주)와 시간 안의 수

14 중세 대학을 그린 모습

15 1. 중세 유럽의 대학 중세 대학의 교육방식 강독(Lectio) - 교수가 텍스트를 읽고 해설하는 방식 - 권위있는 텍스트들이 대학 당국에 의해 지정됨 - 주석서(Commentarium)의 발전 2) 토론 - 해당 학년도에 수차례의 토론을 개최 - 교수에 의하여 마련된 주제에 대하여 찬반으로 문답. - 찬반의 논거가 미리 제시되고 그에 대해 학사(Baccalaureus)가 그 논거들에 대하여 의견을 제시 - 토론 다음날 교수가 찬반의 논거들에 대해 조심스레 논평하면서 문제에 대한 정식화된 결론을 도출 - 토론 문제집(Quaestationes Disputates) 장르의 발전

16 2. 아퀴나스와 중세 신학부 아퀴나스의 연학과정 - 인문학부 6년 과정을 마치고 인문학사학위취득 - 신학교수자격(magister) 취득을 위해 8년 소요 - 신학교수자격 취득을 위해 베드로 롬바르도의 명제집(Sententiarum)을 주석(현대적 의미에서 신학박사학위논문과 유사) 아퀴나스의 교수활동 - 명제집 주석가(sententinarius)로서 파리에서 1252~1256년 동안 강의. 롬바르도의 구성을 따르지 않고 신플라톤주의적 구도로 구성(발원exitus-귀환redditus) - 신학부 강독의 기초인 ‘성서’ 주석서도 저술 - 통상적으로 2주에 한번씩 토론회 개최 (신학과 철학의 다양한 주제들) - 파리대학의 공식적 자유토론회(대림/사순)에도 참여

17 3. 아퀴나스와 중세 인문학부 13세기의 또 다른 성취: 아리스토텔레스 사상의 유입
아리스토텔레스 작품의 라틴어 번역작품이 유럽에 유입 12세기 중반까지 아리스토텔레스의 논리학 작품만이 유에 유입. 이전의 철학은 아우구스티누스, 보에티우스, 위-디오니시우스 등 플라톤 사상에 영향을 받은 철학자들에 의존. 12세기 후반부터 아리스토텔레스 작품들이 유럽에 유입됨으로써 유럽의 철학배경에 혁명적 변화를 일으킴. 인간과 사물의 존재와 본질을 이데아에서 찾지 않고 개별실재에서 찾게 됨. 아리스토텔레스의 작품들이 중세 대학의 인문학부의 강독 교재로 사용

18 3. 아퀴나스와 중세 인문학부 과도하게 자연주의적이라는 이유로 1210년 지역 시노드가 파리대학의 아리스토텔레스 강독 에 대해 파문 경고하고, 이후로도 수 차례 경고가 있었으나 결국 승인. 1255년 3월 19일 아리스토텔레스 강독의 공식 승인. 인문학부가 아리스토텔레스 작품을 필수적으로 규정함으로써 13세기 철학부의 기초적 토대를 마련. 아리스토텔레스 강독에 대한 금지 규정은 어디까지나 지역적 차원으로 유보. 아퀴나스가 인문학 과정을 진행하던 나폴리 대학에서는 아리스토텔레스 강독의 자유가 허용. 시칠리아 왕국의 중심지로서 나폴리 대학은 아리스토텔레스 작품이 아랍어에서 라틴어로 번역되던 중심지. 인문학부 교수가 아니었음에도 당시 인문학의 중심인 아리스토텔레스 작품의 주석서를 저술.

19 4. 신학부와 인문학부의 갈등 1260년 이전까지 인문학은 신학의 기초과정으로 간주.
파리 대학의 인문학부가 1260년 이후로 철학 연구를 신학에서 독립시키고자 함. (칸트: “학부 간의 갈등”) 브라방의 시제(Siger de Brabant)의 주도 하에 철학 교수들이 철학과 자연이성의 자율성 옹호 - 아리스토텔레스 연구결과 그리스도교 교의와 상반되는 두 주제 발견 - 세상의 영원성/ 지성단일성 보나벤투라(Bonaventura)가 파리대학 철학교수들에 대하여 반대의견을 제시 1270년 파리 주교들이 파리대학 인문학 교수 13개 명제를 단죄 토마스 아퀴나스 역시 자신의 의견을 개진

20 4. 신학부와 인문학부의 갈등 De unitate intellectus(지성단일성에 대하여) - 지성의 단일성[아베로에스]은 이성적 영혼이 인간 존재의 실체적 형상이 아니라는 견해 - 아리스토텔레스의 영혼론(De Anima) 주석은 이 견해가 아리스토텔레스의 견해가 아님을 보여줌. - 철학적으로도 비판. “이해하는 것은 개별 인간존재자이다.” - 이 작품에서 아퀴나스는 교의적인 비판이 아닌 순수하게 철학적인 논증을 이용하여 문제를 해결하고 있다. De Aeternitate Mundi(세상 영원성에 대하여) - 동료 신학자들에게 이의제기 - 신의 창조과 영원이란 개념과 양립가능하다. - 존재론적 의존이 시간적 시작을 필연적으로 함축하지는 않는다. - 세상의 영원과 시간의 시작 모두 개연적일 뿐이며, 시간의 시작은 계시에 의해 알려진 것이다.

21 4. 신학부와 인문학부의 갈등 창조의 개념이 단순한 시작의 개념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사물의 본질에 필연적으로 종속되어 있는 존재가 지닌 본래적인 독립성의 개념을 의미하는 것임을 지적 창조 개념이 지니는 형이상학적 깊이를 제시 아퀴나스의 관점은 신학자들로부터 격렬한 반응을 불러일으킴. 그의 사후, 프란치스코회의 William de la Mare는 토마스 형제의 교정집(Correctorium Fratris Thomae)을 펴냄. 토마스가 주장한 세상의 시간적 시작에 대한 논증가능성의 거부에 대해 격렬히 반대함.

22 아리스토텔레스와 아퀴나스

23 아리스토텔레스철학과 아퀴나스 철학의 공통점
오늘날 양자 간의 연결은 일반적이며 다음과 같은 것들이 양자 간의 공통점이라고 여겨지고 있다. 형식논리학, 현실태, 가능태, 질료인, 목적인, 능동인, 형상인, 과학적-사색적 사고와 실천적-생산적 사고의 구분 지적 관조를 인류의 최고목표로 간주 자유로운 선택의 도덕적 행위의 기원 물질/비물질, 감각/지성, 일시적/영구적, 영혼/육체 구별 감각들, 공상, 혹은 언어 대신에 외부의 지각 가능한 것들에 대해 자연스럽게 알게 된 모든 인간 지식을 기초 인식을 인식의 현실태 안에서 지각하는 자와 지각된 것, 아는 자와 알려진 것의 하나이고 동일한 존재의 방식으로 간주하였다.

24 1:1대응의 어려움 일반적 인식에도 불구하고 아퀴나스는 아리스토텔레스 철학을 그대로 수용하지는 않았다는 연구결과가 나온다.
토미즘 형이상학이 주장하는 존재와 본질 사이의 실제적 구별은 그리스도교적 동기에 의한 것으로서 아리스토텔레스적이지 않다. 토마스 아퀴나스의 5가지 길(quinquae viae)-신존재증명-은 아리스토텔레스에 있어 그 기초적 뼈대도 부족하다. (구조적인 유사성은 존재) 두 사상가의 철학적 어법은 표면적 유사성을 지니지만, 유사한 표현에 부여된 의미들은 다르다. 각 사상가들은 자신에게 익숙한 환경 안에서 사상의 표현을 진행하였다. 따라서 아리스토텔레스와 아퀴나스의 역사적-문화적 배경의 비교는 두 사상가의 근본적 차이를 이해하는 데 일조한다.

25 아리스토텔레스의 역사적-문화적 배경 그리스 과학, 의학, 문화, 정치, 지적 분위기 속에서 성장 그리스의 多神崇拜 문화
헌신적이고 세심한 섭리를 주관하는 아버지 하느님에 대한 관념이 없음. 은총을 중심으로 하는 친밀한 가족적 감정을 공유하는 신관이 존재하지 않았음. 모든 인간 활동은 현세적으로 정향. 예술, 학문은 현세적 행복을 추구 파르메니데스의 추론을 수용하여 세상의 영원성이 주장 신적 계시는 발견되지 않음. 인간 행복은 마음 속 가장 상위의 목적에 대한 지적 관조를 통한 세상에서의 완벽한 삶 안에서 얻어짐 혹은 이러한 관조를 가능케 하는 실천적 덕목들을 행함으로써의 이차적인 방식 안에서 얻어짐.

26 아퀴나스의 역사적-문화적 배경 수도원 중심시대의 유럽 사회에서 성장 봉건시대의 투쟁사회 속에서 성장
개선을 추구한 투쟁들이 상황을 더 악화시키는 상황 폭정에 대한 개선보다 잠시 견뎌내기를 권고 정치적 염세주의: 죽음 뒤의 영혼의 행복이 진정한 행복이라고 볼 때, 논리적인 귀결로 이해될 수 있는 주장 어린 시절부터 베네딕토회 수도회에서 성장하면서 수도자로서의 분위기를 접함. 파리와 쾰른의 일반학원에서도 역시 수도자로서 성장 인간의 영원한 행복(영적인 행복)을 세속적인 성공보다 우위에 놓는 생각을 가지게 됨.

27 아리스토텔레스의 존재 개념 우리의 인식 속에서 마주친 모든 것은 존재자.
존재자에 대한 실체/우유 스케마 예) 실체(노트북) + 우유(노트북의 크기, 색깔, 관계 등) 존재자가 가시적으로 존재하면 ‘현실태’ 미래에 있게 될 예정이라면 ‘동력인’을 필요로 한다. 변화의 가능성이 없는 대상은 최초의 존재자(단지 존재) 사물과 존재 사이의 실제적 구별은 없다. 사물의 존재는 그것이 무엇인가와 일치한다. 그것은 정신적 작용에 의해 알려진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존재(existence) 개념 자체에 대해서는 큰 철학적 관심을 부여하지 않는다.

28 아퀴나스의 존재개념 성경의 창조는 동력인으로서 하느님 관념으로 이끎 최초의 존재자로서 하느님
Ego sum qui sum: ‘존재’는 하느님의 이름이자 본성 즉, 동력인으로서 하느님은 모든 것을 생겨나게(존재하게) 하시고, 동의하는 한 그것들을 보존하신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제1원인의 소원성과 분리성 대신 탈출기 3,14의 불가타 번역을 통해 존재론적 신관 확립 존재는 제일의 동력인인 하느님에 의해 모든 피조물의 작용 안에서의 창조, 보존, 그리고 협력을 통해 부여 창조주와 피조물의 깊어지는 구분에도 불구하고 존재의 관계 속에서 양자 간의 관계는 친밀함을 지니게 된다. 유한한 사물의 본질과 구분되는 현실태로서 존재[존재현실력] : 유한한 형상을 최고의 현실태로 본 아리스토텔레스와 구분

29 이슬람-유다 사상가들과 아퀴나스

30 아비첸나 아비첸나(이븐 쉬나, 980~1237) 기하학, 논리학, 법률학, 물리학, 코란, 신학 공부 16세에 의사가 됨
페르시아 태생 기하학, 논리학, 법률학, 물리학, 코란, 신학 공부 16세에 의사가 됨 아리스토텔레스의 이론을 적용하여 영원으로부터 필연적 창조 주장 지성의 등급 주장 본질과 존재의 구별을 시도 지성의 등급은 그리스도교 신학자들에 의해 대부분 거부되었지만 본질과 존재의 실제적 구별이라는 논제는 토마스 아퀴나스에 의해 수용되어 더욱 발전

31 모세 마이모니데스 모세 마이모니데스[모세 벤 마이몬](1135-1204) 유대교 랍비 마이몬의 아들로 코르도바에서 출생
무슬림 박해로 코르도바를 떠나 아프리카, 이집트 등을 방황 유대교 신앙이 철학적 사상과 조화를 이룰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아리스토텔레스 저서를 참고 창조의 문제에 있어 필연적이고 영원한 창조와 성서의 자유로운 창조 모두 개연적이지만 확실한 논거를 지니지는 않는다고 보며, 이는 신앙의 문제라고 생각 13세기 창조논쟁에 있어 토마스 아퀴나스에게 철학적 영감을 제공 주저: Dux perplexorum(Guide to the Perplexed)

32 아베로에스 아베로에스(이븐 루쉬드, 1128-1198) 1126년 스페인의 코르도바에서 태생
철학, 수학, 법률, 의학 및 신학을 공부하였다. 판사로 복직한 후 의사로 활동 아리스토텔레스 철학 주석 저술에 몰두 중세 대표적인 아리스토텔레스 주석가 파리 대학 인문학 교수들이 아베로에스의 아리스토텔레스 주석을 주로 인용(13세기 창조론과 지성론 논쟁의 시발점이 됨) 이성을 신앙의 우위에 두고 이성 및 철학의 자율성과 우위성을 강조(철학자/신학자/대중으로 구분)

33 이슬람-유다 사상에 대한 아퀴나스의 자세 당시 상황을 고려할 때, 이슬람-유다 사상에 관심을 기울인다는 것은 이례적
십자군 전쟁이 승인되던 시기: 반 이슬람주의 신약이 구약보다 우위에 있다는 입장: 유대교에 대한 우위 아퀴나스 자신은 진리 추구에 있어서 만큼은 언제나 ‘배우자’는 입장을 견지 아퀴나스는 아베로에스보다는 마이모니데스와 아비첸나의 입장을 수용

34 아비첸나의 존재론 아리스토텔레스의 제1실체(개별자-실체)와 제2실체(본질) 간의 존재론적 우위성에 대한 문제가 아포리아(근본질문)로 남게 되고, 이슬람 철학에서 알 파라비가 이 문제를 최초로 해결하고자 시도. 아비첸나에게서 이런 시도가 분명해 짐. 첫 존재자와 그로부터 나온 만물의 구별 시도. 필연유/우연유의 구별 맥락에서 본질로부터 분리된 존재함 개념 아비첸나에 이르기까지는 아직까지 존재가 偶有로 이해 그 자체 필연적 존재와 다른 것을 통한 필연적 존재보다 앞선 존재자를 설정함으로써 존재 개념을 하느님보다 선행시킴. 존재 자체가 아닌 보편적 존재에 대한 탐구.

35 아퀴나스에게 미친 영향 “모든 본질 또는 무엇임[何性]은 그 존재함에 관해 알지 않고서도 이해될 수 있다.”(아비첸나)
아비첸나 존재론의 특성을 더욱 발전시킴 “자신의 존재를 타자로부터 가지는 모든 것은, 아비첸나가 증명하는 바와 같이, 자기 자신을 통한 존재가 아니다. 그러므로 가능성은 그것이 존재하게끔 해주는 것에 종속됨을 뜻한다.” In II Sent., d.8, q.3, a.2

36 아퀴나스에게 미친 영향 본질과 구분되는 현실태로서 존재(偶有가 아님)
“존재함 그 자체는 사물의 형상 혹은 무엇임으로부터 산출된다고 절대로 볼 수 없다. (존재자와 본질에 대하여 4,7) “존재함 그 자체는 하느님으로부터 받은 존재함과 관련해서는 가능적이어야만 한다. 그리고 이 존재함은 현실태로서 받아들여진다. (존재자와 본질에 대하여 4,8) 존재함은 “제1원인이고 가장 보편적 원인인 하느님의 고유한 결과”(신학대전 1권 45문 5항)

37 마이모니데스의 창조론 자유로운 창조 vs 영원한 창조(까다로운 문제 안내서)
이성의 논증과 신앙의 계시 영역을 구별하여 문제 해결 세 가지를 ‘의견’ 차원에서 제시 1) 모세율법을 믿는 이들의 의견(성서적 시각) 2) 플라톤의 확신(영원한 질료에서 창조) 3) 아리스토텔레스의 확신 신성의 무감동성: 세상은 비존재 상태 이후에 만들어진 것이 아님을 함의한다 그러나 세상의 영원성에 대한 어떠한 확증적 논거도 아리스토텔레스에 의해 제시되지 않았다. 플라톤 철학의 내용이 확정적 증거에 의해 논증되지 않는다면 토라의 내용을 표면적으로 믿는 것은 가능하다.

38 아퀴나스의 마이모니데스 참조 신앙과 이성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참조 (보수적 아우구스티누스주의자들과 라틴 아베로에스주의)
마이모니데스: “까다로운 문제들에 대한 안내서”를 참조 세상의 영원성에 대하여(De Aeterniate Mundi) - 영원성이 정당한 의미에서 하느님에게만 속한다고 보면서도 마이모니데스를 따라 책의 제목을 정함. 신의 존재를 믿음의 차원이 아닌 확실한 논증의 차원에서 확인하기 위해 신의 존재와 세상의 영원성을 동시에 가정 자연 이성 안에서는 ‘영원한 창조’와 ‘시간 안의 창조’ 모두 개연적이지만, 확정적인 논거를 갖지는 못한다. 그러나 계시에 의해 세상이 ‘시간적 창조(temporal creation)’에 의해 창조되었음을 알 수 있다.

39 요약 토마스 아퀴나스의 사상적 배경에는 아리스토텔레스와 아비첸나, 모세 마이모니데스가 놓여 있다.
아리스토텔레스 철학의 용어들은 토마스 아퀴나스에 의해 전적으로 수용되었지만, 토마스주의 안에서 그 용어가 갖는 의미는 아리스토텔레스주의의 용어와 동일하지 않다. 토마스 아퀴나스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존재 개념을 차용하면서도 그리스도교적 입장에서 새롭게 철학적으로 분석한다. 아비첸나는 필연유와 우연유의 구분을 통해 새로운 형이상학적 동기를 아퀴나스에게 제공했다. 모세 마이모니데스는 신앙과 이성의 문제에 있어 주요한 통찰을 아퀴나스에게 제공하였다.

40 수고하셨습니다


Download ppt "Cambridge Companion to Aquinas, 1993."

Similar presentations


Ads by Googl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