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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6년 4월 26일 체르노빌 원자력발전소에 불이 나면서 방사능 유출사고가 일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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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자력발전소 사고의 대한 원인 사고의 원인에 대한 공식적인 발표는 1986년 8월과 1992년에 각각 한 차례씩 있었다. 사고가 일어난 이후 국제 원자력 기구(IAEA)에서는 체르노빌 사고의 원인을 조사하기 위해, 국제 핵 안전 자문 그룹(International Nuclear Safety Advisory Group; INSAG)라는 이름으로 전문가 그룹을 구성하였다. 이들은 소련 정부가 제공한 자료와 전문가들의 증언을 토대로 원인을 조사한 후 1986년 8월에 INSAG-1이라는 이름으로 사고 원인 보고서를 처음 발행하였다. 사고 원인은 체르노빌 원자력 발전소의 구조적 결함이 가장 결정적이였다고 전문가들이 밝혔다.당시 체르노빌 원자력 발전소는 흑연을 감속재로 사용하는 RBMK형 원자로를 사용하였는데 이는 물을 감속재로 사용하는 PWR형에 비해 조작이 복잡하고 안전성이 결여된 구조를 가진 원자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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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자력발전소 사고의 대한 피해 사고가 일어난 시점에 4호기에서 근무하고 있던 직원 중 기수분리기에서 근무하던 순환펌프 기사 발레리 호뎀추크는 폭발로 인해 즉사하였으며, 다른 곳에서 일하던 자동제어시스템 기술자인 블라디미르 샤셰노크는 전신 화상을 입고 의식을 잃은 채 병원으로 후송되어 사고 당일 사망하였다. 이외에도 발전소 직원 중 물리학자 이반 오를로프를 포함한 3명이 폭발과 그로 인한 과다한 방사선 노출로 사망하였다. 또한 이 실험의 총책임자인 아나톨리 댜틀로프 역시 피폭 당해 이 사건이 발생한 지 9년 후인 1995년 숨을 거두게 된다. 또한 화재 진압과 초기 대응 과정에서 발전소 직원과 소방대원 등을 포함하여 약 1100명의 인원이 투입되었는데, 이들 중 237명이 급성 방사능 피폭 증상을 보였다. 최종적인 진단 결과 134명이 급성 방사능 피폭으로 확진 되었고 이들 중 28명(사고 직후 최초에 투입된 14명의 소방관 포함)이 사고 후 수 개월 이내에 사망하였다. 이후에 발생한 사망자를 포함하여, 2006년 우크라이나 정부의 집계로는 총 56명이 초기 대응 과정의 방사능 피폭으로 사망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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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자력발전소 사고의 대한 조치 5월 9일에 노심의 흑연 화재가 진압된 후에, 방사능의 누출을 막기 위한 최초의 조치로 냉각 장치를 내장한 콘크리트 판을 4호기의 지하에 설치하는 작업이 수행되었다. 이 판들은 고온의 노심을 냉각시키려는 목적과 함께, 노심의 열에 의해 용융된 액체 상태의 방사성 물질이 지하수로 흘러드는 것을 막으려는 목적으로 설치되었다. 이 작업은 약 400명의 작업자에 의해 15일간 진행되었다. 콘크리트 판 설치가 완료된 후, 지상에 노출된 노심에 남아있는 핵연료와 방사성 물질에 의한 방사능 누출을 막기 위하여, "석관"(sarcophagus)이라 불리는 콘크리트제 봉인 시설을 건설하는 작업과, 사고 지점 근처에 있는 댐과 호수의 방사능 오염 제거 등의 작업이 먼저 시작되었다. 이 작업에는 약 22만 6천명 정도의 인원이 참여하였다. 호수의 방사능 오염 제거 작업은 1986년 9월경에 완료되었으며, 봉인 시설은 11월에 완공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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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채:이런 사고는 정말 무서운 사고라고 느꼈다.
태양:다시는 이런 사고가 일어나지 않았으면 좋겠다. 도현:다시는 이런 사고가 일어나지 않게 조심해야겠다. 유민:이 사건을 좀 더 알 수 있게 되어서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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