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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ublished byΜέγαιρα Κυπραίος Modified 6년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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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가복음 7장 장로들의 유전과 부정한 것(7:1-13) 더러운 것에 관한 것(7:14-23) 수로보니게 여인(7:24-30)
귀먹고 어눌한 자의 자유(7:31-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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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바리새인들과 또 서기관 중 몇이 예 루살렘에서 와서 예수께 모여들었다가 2 그의 제자 중 몇 사람이 부정한 손 곧 씻지 아니한 손으로 떡 먹는 것을 보 았더라 3 (바리새인들과 모든 유대인들은 장 로들의 전통을 지키어 손을 잘 씻지 않 고서는 음식을 먹지 아니하며 4 또 시장에서 돌아와서도 물을 뿌리 지 않고서는 먹지 아니하며 그 외에도 여러 가지를 지키어 오는 것이 있으니 잔과 주발과 놋그릇을 씻음이러라) Mark 7:1-5 Mark 7:1 Kai. suna,gontai pro.j auvto.n oi` Farisai/oi kai, tinej tw/n grammate,wn evlqo,ntej avpo. ~Ierosolu,mwnÅ 2 kai. ivdo,ntej tina.j tw/n maqhtw/n auvtou/ o[ti koinai/j cersi,n( tou/tV e;stin avni,ptoij( evsqi,ousin tou.j a;rtouj 3 &oi` ga.r Farisai/oi kai. pa,ntej oi` VIoudai/oi eva.n mh. pugmh/| ni,ywntai ta.j cei/raj ouvk evsqi,ousin( kratou/ntej th.n para,dosin tw/n presbute,rwn( 4 kai. avpV avgora/j eva.n mh. bapti,swntai ouvk evsqi,ousin( kai. a;lla polla, evstin a] pare,labon kratei/n( baptismou.j pothri,wn kai. xestw/n kai. calki,wn Îkai. klinw/n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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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가는 이미 결합된 여러 전승들, 예수 의 사역에 근거한 전승(7:6-7, 9-13, 15), 교회의 정황에 근거한 건승 (7:18b-18, 20-22[23])를 알게 되었을 것으로 생각된다. 또한 6장에서 예수 가 이방인 지역으로 여행하기 직전에 행하였던 유대인의 시각에서는 더럽혀 진 것으로 여길만한 사역들과 7장에서 이방지역에서 행한 사역 즉 헬라인인 수로보니게 여인(7:24-30)와 데카볼리 의 귀먹고 어눌한 사람(7:31-37) 사역 은 예수가 유대인들과 이방인들을 구 별짓는 정결법에 찬동하지 않으며, 이 방인과 유대인들 나누는 사회적 경계 또한 거부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본문 의 내용은 6:6b-8:26에 속한 것으로 WBC, 전승사적 분류에 따르면 논쟁기사 (7:1-13)은 배경(7:1-2)과 삽입설명 (7:3-4), 비난(7:5), 그리고 이사야 29:13, 고르반 예화에 의해 예증된 장 로들의 유전에 관한 질문과 예수의 대 답(7:6-8, 9-13)로 구성되어 있다. 교훈 기사(7:14-23)는 먼저 대구적 병행법으 로 표현된 비유적 교훈(7:14-15)을 통 하여 무리에게 말하여 지고, 다름에 제 자들에게 상세하게 설명된 가름침 (7:18-19, 20-23)로 구성 되어 있다. Kummel, Heilsgeschehen, 2:29; idem, Wort, 37; Pesch, 1:367-77; Gnilka, 1:277-78; Ernst, 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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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절은 2절의 상황을 설명하는 역할을 한다. 1절에서 분사 ‘와서 (evlqo,ntej)이 바리세인들과 서기관을 수식하도록 위치시킨 본문은 이 사건이 갈릴리에서 일어났다는 생각을 갖게한다. 바리세인들과 서기관들 이 어떻게 나사렛에 내려오게 되었는지 알 수 없다. 다만 1세기에 나사렛 에 많은 바리세인들이 거주 했었다 는 사실은 확인이 된다. 생각해 볼 수 있는 사실은 가버나움 회당에서 바알세불 논쟁의 영향으로 예수는 바리새 인들로부터 요주의 인물로 낙인 찍혔고 그 결과 예수를 감시하려고 예루 살렘에서 나사렛으로 내려온 바리세인과 서기관들이 막 3:6에서의 바리세 인과 헤롯당이 연합한 것처럼 나사렛에서 모이지 않았을까 생각 된다. 서 기관은 율법을 기록하고 연구하는 직업의 사람들로 바리세인 들과 겹친다 는 주장과 성경에 여러 번에 걸쳐 서기관이 언급된 것으로 보아 이 직업이 따로 있었을 가능성이 있다. 다만 관심이 가는 것은 2:1-3:6의 논쟁의 핵심 이 율법에 관한 것이었으며, 당시 예수와 논쟁을 이어갔던 자들 또한 예루 살렘에서 온 자들이었다는 사실이다. 2:16에 처음으로 바리세인이 등장하 고 논쟁점은 예수가 죄인들과 식사를 나누는 것을 공격 하였다. 이런 면에 서 예루살렘은 예수를 비판하는 중심지로서 역할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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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로들의 유전(th.n para,dosin tw/n presbute,rwn), 바 리센인들이 기록된 율법과 동일한 구속력을 지닌다고 생각하는 구두 전승을 이야기 한다. 랍비 아키바(R. Akiba)는 구두 전승을 ‘율법의 울타리’라고 칭했다. A. D. 2세기 말에 기록된 미쉬나 율 법으로 성문화된 이 “유전”을 다룬 논문 m. Yadam은 손을 씻는 데 필요한 물, 물의 양, 방법들을 묘사하고 있다. 문제는 예수의 이야기는 1세기 상황을 이야기 하므로 2세기 말의 기록이 1세 기까지 소급 적용할 것인가 하는 문제가 제기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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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론적으로 이 본문은 유대인들은 그들의 전통에 따라 식사적 에 온몸을 물에 씻었는데 이는 그들이 시장에서 사람들과 접속 하면서 더럽혀진 것을 씻어 내는 행위였다. “잔과 주발과 놋그 릇”은 음식을 준비하거나 나눌 때 사용되는 그릇 들이다. 주발 (xestw/n)은 라틴어 어원을 갖고 있는데 약 1 파운드(1/2리터)에 해당하는 로마의 건량 단위다. 마 23:25-26과 눅 11:32-41에서 “잔의 곁은 깨끗이 하되 그 안에 는 탐욕과 방탕으로 가득하다”고 유대인들을 꾸짓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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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이에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 이 예수께 묻되 어찌하여 당신의 제자들은 장로들의 전통을 준행하 지 아니하고 부정한 손으로 떡을 먹나이까 6 이르시되 이사야가 너희 외식 하는 자에 대하여 잘 예언하였도다 기록하였으되 이 백성이 입술로는 나를 공경하되 마음은 내게서 멀도 다 7 사람의 계명으로 교훈을 삼아 가르치니 나를 헛되이 경배하는도 다 하였느니라 8 너희가 하나님의 계명은 버리 고 사람의 전통을 지키느니라 5 kai. evperwtw/sin auvto.n oi` Farisai/oi kai. oi` grammatei/j( Dia. ti, ouv peripatou/sin oi` maqhtai, sou kata. th.n para,dosin tw/n presbute,rwn( avlla. koinai/j cersi.n evsqi,ousin to.n a;rtonÈ 6 o` de. ei=pen auvtoi/j( Kalw/j evprofh,teusen VHsai<aj peri. u`mw/n tw/n u`pokritw/n( w`j ge,graptai Îo[tiÐ Ou-toj o` lao.j toi/j cei,lesi,n me tima/|( h` de. kardi,a auvtw/n po,rrw avpe,cei avpV evmou/\ 7 ma,thn de. se,bontai, me dida,skontej didaskali,aj evnta,lmata avnqrw,pwnÅ 8 avfe,ntej th.n evntolh.n tou/ qeou/ kratei/te th.n para,dosin tw/n avnqrw,pwn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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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구절은 의문으로 끝이나는 구절로 7:2을 그대로 반복하고 있 다
이 구절은 의문으로 끝이나는 구절로 7:2을 그대로 반복하고 있 다. 비평가들은 이 구절이 먹는 것 만을 문제삼은 2절의 질문이 “장로들의 유전”를 지키지 않는 이유에 대한 설명으로 이행하는 과정에서 생긴 것으로 생각한다. 더불어 이 구절은 7:6-13에 나 타난 예수 대답의 배경이 된다. 이런 변화는 “장로들의 유전”의 합법성에 관한 유대인의 두 그룹 중 장로들의 유전을 수용하는 바리세파와 받아들이지 않는 사두게파의 논쟁를 초대교회가 조 금은 다른 양상으로 받아들였을 가능성을 보여준다. 부정한 손 이 다시 거론된 것은 “장로들의 유전” 준수의 구체적인 예로 거 론 되었기 때문이다. 또 다른 면에서 살펴보면, 바리세인들과 서 기관의 공격이 왜 “장로들의 전통(th.n para,dosin tw/n presbute,rwn)”를 “준행하지 아니하고(ouv peripatou/sin)” 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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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판하고 있습니다. 준행한다는 의미의 “peripatou/sin”는 걷는다는 의미로 규율에 따라 살아가고 있다는 것이다
비판하고 있습니다. 준행한다는 의미의 “peripatou/sin”는 걷는다는 의미로 규율에 따라 살아가고 있다는 것이다. 유대인들의 규율에는 구전 율법인 할라카(Halakhah)와 율법으로 규정되지 않는 것들을 예를들어 설명하거나 설교들을 모은 하가닥(Haggadah)이 있다. 여기에서는 할라카의 규정을 의미한다. 다음으로는 왜 바리세인과 율법학자들이 예수의 제자들을 문제 삼았는가? 생각해 볼 수 있는 것은 예수는 구전율법을 잘 지켰기 때문으로 쉽게 생각 할 수 있지만 정황상 그럴리는 없어 보인다. 다만 제자들의 행동에 대한 감독의 책임이 스승에게 있으므로 예수에게 감독의 책임을 묻고 있는 것이다. 제자들을 공격하므로 예수를 공격하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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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본문은 이사야 29:13을 인용하고 있다. 마가는 맛소라 보다 는 칠십인역(LXX)를 인용하고 있다
이 본문은 이사야 29:13을 인용하고 있다. 마가는 맛소라 보다 는 칠십인역(LXX)를 인용하고 있다. 마소라 본문은 “기계적으로 가르침 받은 사람의 계명”으로 인하여 거짓 예배를 드린다고 비 난한다. 칠십인역은 “사람들이 가르치는 계명과 교훈들”로 기록 되어 있다. 골 2:22은 “사람의 명과 가르침을 좇는다”고 이야기 한다. WBC 주장은 마소라 번역을 택한 RSV와 NAS를 참고한 결 과이다. 하지만 막 7:6의 이사야 인용이 완벽한 인용이 아니라 중간 부분을 생략하고 인용하고 있어서 확실한 의미 해석에는 한계가 있다. 이사야 29:13절의 이해가 맛소라나 칠십인역 모두 “백성들의 행동의 불일치를 입술의 예배와 그들의 마음이 향하 는 곳이 실제로 다르다는데 있다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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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Kai. e;legen auvtoi/j( Kalw/j avqetei/te th. n evntolh
9 Kai. e;legen auvtoi/j( Kalw/j avqetei/te th.n evntolh.n tou/ qeou/( i[na th.n para,dosin u`mw/n sth,shteÅ 10 Mwu?sh/j ga.r ei=pen( Ti,ma to.n pate,ra sou kai. th.n mhte,ra sou( kai,( ~O kakologw/n pate,ra h' mhte,ra qana,tw| teleuta,twÅ 11 u`mei/j de. le,gete( VEa.n ei;ph| a;nqrwpoj tw/| patri. h' th/| mhtri,( Korba/n( o[ evstin ( Dw/ron( o] eva.n evx evmou/ wvfelhqh/|j( ouvke,ti avfi,ete auvto.n ouvde.n poih/sai tw/| patri. h' th/| mhtri,( avkurou/ntej to.n lo,gon tou/ qeou/ th/| parado,sei u`mw/n h-| paredw,kate\ kai. paro,moia toiau/ta polla. poiei/teÅ 9 또 이르시되 너희가 너희 전통을 지키려고 하나님의 계명을 잘 저버리 는도다 10 모세는 네 부모를 공경하라 하고 또 아버지나 어머니를 모욕하는 자는 죽임을 당하리라 하였거늘 11 너희는 이르되 사람이 아버지에 게나 어머니에게나 말하기를 내가 드 려 유익하게 할 것이 고르반 곧 하나 님께 드림이 되었다고 하기만 하면 그 만이라 하고 12 자기 아버지나 어머니에게 다시 아무 것도 하여 드리기를 허락하지 아 니하여 13 너희가 전한 전통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폐하며 또 이같은 일을 많이 행하느니라 하시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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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의 전통을 지킨다(kratei/te th
사람의 전통을 지킨다(kratei/te th.n para,dosin tw/n avnqrw,pwn)는 것은 유대인들이 말과 행동의 불일치는 사람의 계 명/장로들의 유전을 따라 하나님의 명령을 무시하였기 때문이다. 적 대자들은 그들이 잘못 가르쳤기 때문에 “외식하는 자”가 된 것이 아 니라 그들의 “잘못된 가르침”이 하나님의 계명을 무시하도록 유도하 여 “외식하는 작”가 된 것이다. 11절, 고르반(Korba/n)은 히브리어 카르반의 역어이다. 이 문구의 의미가 오경의 “제물”의 칭호에서 “서원이나 서약”으로 바뀌고, 후에 는 “기도”로 바뀌었다고 한다. 구약에는 “제물” 의미로 사용 되었어도 1세기 유대인들이 “서원이나 서약”으로 사용 했음을 마가복음은 이 야기 한다. 필로와 요세프스는 이런 증거를 제시해 주고 고고학자들 은 예루살렘 남동쪽 초대교회 것으로 추정되는 한 유대인의 묘비에 서 완벽한 병행구절을 찾아 내었다. 학자들은 물건을 하나님이나 성 전에 바치는 서원 형태의 헌사로 이해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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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 무리를 다시 불러 이르시 되 너희는 다 내 말을 듣고 깨달 으라 무엇이든지 밖에서 사람에 게로 들어가는 것은 능히 사람을 더럽게 하지 못하되 사람 안에서 나오는 것이 사람을 더럽게 하는 것이니라 하 시고 14 Kai. proskalesa,menoj pa,lin to.n o;clon e;legen auvtoi/j( VAkou,sate, mou pa,ntej kai. su,neteÅ 15 ouvde,n evstin e;xwqen tou/ avnqrw,pou eivsporeuo,menon eivj auvto.n o] du,natai koinw/sai auvto,n( avlla. ta. evk tou/ avnqrw,pou evkporeuo,mena, evstin ta. koinou/nta to.n a;nqrwponÅ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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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는 결코 손일 씻지 않는 문제를 가지고 유대인들과 논쟁하 지 않았다
예수는 결코 손일 씻지 않는 문제를 가지고 유대인들과 논쟁하 지 않았다. 예수가 유대인들을 공격하는 것은 유대지도자들이 가지고 있는 권위의 근거에 대한 의문이고, 공격이었다. 다시 불 러(proskalesa,menoj pa,lin) 아마도 복음서 기자는 예수께서 무 리들을 해산 시키고 있는 6:45에 근거하여 이 구절을 선택 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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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이든지 …밖에서” 여기에서 부정되는 것은 음식이 “더러운 손” 과의 접촉에 의해 부정해지며, “더러운 음식”을 먹음으로 부정한 사 람이 된다는 유대적 인식에 대한 거부이다. 7:19b는 “모든 식물”을 언급 함으로 이런 논리를 보다 한단계 성숙 시킨다. 스트라우스 (Strauss)는 마가는 마태(마 15:20) 보다 음식 문제에 집중하고 있다 고 주장한다. 마태는 마지막에 다시 “손 씻는 문제”을 언급함을 통하 여 마가에 비하여 음식문제에 대한 관심을 희석시켰다고 주장한다. 이 부분에서 호세아 6:6 “나는 인애를 원하고 제사를 원하지 아니하 고” 구절이 암시 되어 있다. (참고: 이사 11:11-17; 옘 7:22-23; 암 5:21-27). 이런 모든 구약성서의 구절들은 이스라엘의 실패의 원인이 제사 시스템의 실패가 아니라 그들의 의미 없는, 즉 마음이 없는 제 사에 있다고 주장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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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 무리를 떠나 집으로 들 어가시니 제자들이 그 비유를 묻자온대 예수께서 이르시되 너희 도 이렇게 깨달음이 없느냐 무 엇이든지 밖에서 들어가는 것 이 능히 사람을 더럽게 하지 못함을 알지 못하느냐 17 Kai. o[te eivsh/lqen eivj oi=kon avpo. tou/ o;clou( evphrw,twn auvto.n oi` maqhtai. auvtou/ th.n parabolh,nÅ 18 kai. le,gei auvtoi/j( Ou[twj kai. u`mei/j avsu,netoi, evsteÈ ouv noei/te o[ti pa/n to. e;xwqen eivsporeuo,menon eivj to.n a;nqrwpon ouv du,natai auvto.n koinw/sa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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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절, 4:13, 33-44과 마찬 가지로 제자들은 군중들과 달리 비유 에 대하여 특별한 가르침을 받는다
17절, 4:13, 33-44과 마찬 가지로 제자들은 군중들과 달리 비유 에 대하여 특별한 가르침을 받는다. 본문에서 의문동사 사용을 학자들은 전형적인 마가의 표현으로 본다. 막 4:10-14에서 예수 는 제자들에게 비유를 설명하면서 그들의 깨닫지 못함을 질책 하고 있다(4:13). 마가는 예수의 가르침이 급진적인 하나님 나라 의 도래와 깊은 관련이 있게 표현하고 있다. 18절, 너희도 이렇게 깨달음이 없느냐(Ou[twj kai. u`mei/j avsu,netoi, evsteÈ) 두가지 해석이 가능하다. 1] 비유를 들었던 무리가 비유를 깨닫지 못했다. 2) 비유를 깨닫지 못한 제자들은 무리와 다르지 않다. 하지만 예수의 이런 질책에도 제자들은 예수의 설명을 다시 듣고 있다. 이점이 무리들과 다른 제자들의 모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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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 o[ti ouvk eivsporeu,etai auvtou/ eivj th. n kardi,an avllV eivj th
19 o[ti ouvk eivsporeu,etai auvtou/ eivj th.n kardi,an avllV eivj th.n koili,an( kai. eivj to.n avfedrw/na evkporeu,etai( kaqari,zwn pa,nta ta. brw,mataÈ e;legen de. o[ti To. evk tou/ avnqrw,pou evkporeuo,menon( evkei/no koinoi/ to.n a;nqrwponÅ e;swqen ga.r evk th/j kardi,aj tw/n avnqrw,pwn oi` dialogismoi. oi` kakoi. evkporeu,ontai( pornei/ai( klopai,( fo,noi( 19 이는 마음으로 들어가지 아니하고 배로 들어가 뒤로 나감 이라 이러므로 모든 음식물을 깨 끗하다 하시니라 또 이르시되 사람에게서 나오는 그것이 사람을 더럽게 하 느니라 속에서 곧 사람의 마음에 서 나오는 것은 악한 생각 곧 음 란과 도둑질과 살인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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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 간음과 탐욕과 악독과 속임과 음탕과 질투와 비방과 교만과 우매함이니 23 이 모든 악한 것이 다 속 에서 나와서 사람을 더럽게 하 느니라
22moicei/ai( pleonexi,a i( ponhri,ai( do,loj( avse,lgeia( ovfqalmo.j ponhro,j( blasfhmi,a( u`perhfani,a( avfrosu, nh\ 23 pa,nta tau/ta ta. ponhra. e;swqen evkporeu,etai kai. koinoi/ to.n a;nqrwpon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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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절, 7:15의 본래의 취지가 변경 되었다. 부정한 손에 관한 처음 질문(7:1- 2, 5b)에 대해 예수는 일반적인 더러움에 대한 보다 광범위한 관점에서 답변함으로써 이 교훈이 후반절의 더럽게 하는 것(7:15b)에서 사람의 입으로 들어가는 음식에 대한 제한적인 논의로 강조점을 옮기고 있다. 예수는 밖에서 들어가는 것이 하나님과 사람의 관계인 최종적인 기준인, 인간의 마음(kardi,an)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고 주장한다. 이런 답변을 통하여 예수는 “유전”에 대한 질문에 대한 답변을 이사야 29:13(막 7:5a, 6-7)의 관점에서 답하고 있다. 그러므로 부정한 음식이 사람을 부정하게 만드는 것은 아니므로 제자들의 행동은 비난 받을 이유가 없다. 여기에서 마가의 관심은 음식 규정 보다는 사람을 더럽게 하는 것이 무엇인가? 보다 관심이 있어 보인다. 어떤 학자들은 이 부분에서 마가교회 안에서의 유대 음식법을 가지고 논쟁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고 한다(참고: 행 10:12-15; 15:5, 19-20; 롬 14:13-23; 갈 2:11-14; 골 2:21-23). 하지만 스트라우스(Strauss)는 마가가 거부한 것은 더 이상 구약의 음식법이 메시아 공동체의 믿음에 적용 되는 것이다고 주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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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절, 안에서 나와서 사람을 더럽게 하는 악한 것들의 목록을 제시하고 있다
22절, 안에서 나와서 사람을 더럽게 하는 악한 것들의 목록을 제시하고 있다. 첫 번째 악덕, 악한 생각에 열세 가지 악덕이 포함 된다. 뒤에 열거된 열두 가지 악덕들은 두 항목으로 분류 된다. 첫 번째는 여섯개는 단수로 두 번째 여섯개는 복수로 언급 되어 있다. 첫 번째 나오는 “악한 생각”는 사람의 마음이나 인격에서 생겨나며 뒤에 언급된 악한 행동과 태도들의 원인 이 되기 때문에 “악한 의지들”이 보다 적합한 표현이다. 이기심은 윤리적인 차원이 첨가된 ‘흘기는 눈(ovfqalmo.j ponhro,j)’으로 표현 될 수 있다. 이런 표현은 유대 문학작품들에도 발견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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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로보니게 여자의 믿음(마 15:21-28) 24 VEkei/qen de. avnasta.j avph/lqen eivj ta. o[ria Tu,rouÅ kai. eivselqw.n eivj oivki,an ouvde,na h;qelen gnw/nai( kai. ouvk hvdunh,qh laqei/n\ avllV euvqu.j avkou,sasa gunh. peri. auvtou/( h-j ei=cen to. quga,trion auvth/j pneu/ma avka,qarton( evlqou/sa prose,pesen pro.j tou.j po,daj auvtou/\ 26 h` de. gunh. h=n ~Ellhni,j( Surofoini,kissa tw/| ge,nei\ kai. hvrw,ta auvto.n i[na to. daimo,nion evkba,lh| evk th/j qugatro.j auvth/jÅ kai. e;legen auvth/|( :Afej prw/ton cortasqh/nai ta. te,kna( ouv ga,r evstin kalo.n labei/n to.n a;rton tw/n te,knwn kai. toi/j kunari,oij balei/nÅ 24 예수께서 일어나사 거기를 떠나 두 로 지방으로 가서 한 집에 들어가 아무도 모르게 하시려 하나 숨길 수 없더라 이에 더러운 귀신 들린 어린 딸을 둔 한 여자가 예수의 소문을 듣고 곧 와서 그 발 아래에 엎드리니 그 여자는 헬라인이요 수로보니 게 족속이라 자기 딸에게서 귀신 쫓아내 주시기를 간구하거늘 예수께서 이르시되 자녀로 먼저 배 불리 먹게 할지니 자녀의 떡을 취하여 개 들에게 던짐이 마땅치 아니하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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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기를(VEkei/qen), 이 단어는 게넷사레를 가르킨다
거기를(VEkei/qen), 이 단어는 게넷사레를 가르킨다. 하지만 마가는 집을 떠나는 문맥(6:1; 6:10-11; 9:30; 10:1)에서 마가가 줄곹 이 단어를 사용 하고 있다. 이런 정황은 마가의 편집과정에서 생성 된것으로 여기는 이유이기도 하다. 두로 지경(ta. o[ria Tu,rou)은 갈릴리 바다의 북쪽과 인접해 있는 해안 도시 두로의 관할 권 내에 있는 지역을 가르킨다. 두로는 갈릴리 북서쪽으로 56킬로미터쯤 떨어진 중동의 해안 도시로 35킬로미터 이상 떨어져 있다. 이 두시는 강력한 힘을 가진 지역으로 무역과 상업의 중심지 였으며 우상과 이방신앙의 상징적인 도시들이다. 성경에서는 종종 시돈과 함께 언급되곤 하는 두로는 이방인 지역이었으며, 요세프스는 이곳의 주민들을 악명높은 가장 무서운 적들로 표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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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절, 헬라인(~Ellhni,j), 헬라화 되거나, 헬라어로 교육받고 헬라어를 사용하는 말한다
26절, 헬라인(~Ellhni,j), 헬라화 되거나, 헬라어로 교육받고 헬라어를 사용하는 말한다. 예수당시에 상류층인란 의미로 사용 되었으나 초대교회는 이 표현을 유대인들과 종교적으로 대조 시키기 위하여 사용 하였다. 여기서는 이 지역이 이방지역임을 강조하기 위하여 사용 되었다. 수로보니게 족속이라(Surofoini,kissa tw/| ge,nei)은 리보페니카인(libuyoi/nix)이나 북아프리카의 카르타고 사람들과는 달리 그녀의 국적을 구체 하지화 하지는 않았다. 교회전승은 저스틴(Justa)은 그녀의 딸은 베로니체(Bernice)로 알려지고 있다. 그녀의 삶이 부정적으로 알려 지기도 하였지만 “날 때부터(tw/| ge,nei)는 그녀의 도덕적 특성보다는 이방인 출신임을 분명히 한다. ‘귀신 좇아 주시기를(hvrw,ta auvto.n i[na to. daimo,nion evkba,lh)’ 간구한 표현은 예수에게 축사의 능력을 의시하지 않는 그녀의 믿음의 표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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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 여자가 대답하여 이르되 주여 옳소이다마는 상 아래 개들 도 아이들이 먹던 부스러기를 먹 나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이 말 을 하였으니 돌아가라 귀신이 네 딸에게서 나갔느니라 하시매 여자가 집에 돌아가 본즉 아이가 침상에 누웠고 귀신이 나 갔더라 28 h` de. avpekri,qh kai. le,gei auvtw/|( Ku,rie( kai. ta. kuna,ria u`poka,tw th/j trape,zhj evsqi,ousin avpo. tw/n yici,wn tw/n paidi,wnÅ 29 kai. ei=pen auvth/|( Dia. tou/ton to.n lo,gon u[page( evxelh,luqen evk th/j qugatro,j sou to. daimo,nionÅ 30 kai. avpelqou/sa eivj to.n oi=kon auvth/j eu-ren to. paidi,on beblhme,non evpi. th.n kli,nhn kai. to. daimo,nion evxelhluqo,j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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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절, 자녀로 먼저 배불리 먹게 할지나(:Afej prw/ton cortasqh/nai ta
27절, 자녀로 먼저 배불리 먹게 할지나(:Afej prw/ton cortasqh/nai ta. te,kna),에서 자녀는 유대인을 언급하는 것이 분명하다. 배불리는 것은 구속에서의 이스라엘의 지위와 하나님의 축복을 받을 이스라엘의 권리와 관련이 있다. 예수의 처음 말씀은 하나님의 축복을 받은 이스라엘의 권리를 중시하고 있다. 먼저(prw/ton)라는 말은 선교의 원리를 이야기 하는 것이지 축복받을 권리가 이스라엘 만의 권리는 아니라는 표현이다. 후반적의 “자녀의 떡을 취하여 개들에게 던짐이 마땅치 아니하니라(ouv ga,r evstin kalo.n labei/n to.n a;rton tw/n te,knwn kai. toi/j kunari,oij balei/n)” 자녀(tw/n te,knwn)는 구약성서에 이스라엘을 은유화한 표현으로 사용 되었다. 개는 구약성경과 많은 랍비문헌에서 경멸적인 용어로 사용되었다. 여기의 예수의 경멸적인 표현은 주님의 입장에서 구원의 때가 아직 종료되지 않았기 때문에 예수는 여인에게 희망적인 말을 할 수 없었다. 예수가 이스라엘을 배불리 먹인다는 표현은 메시아적 연회에 이스라엘의 참여를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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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 먹고 말 더듬는 사람을 고치시다 31 Kai. pa,lin evxelqw.n evk tw/n o`ri,wn Tu,rou h=lqen dia. Sidw/noj eivj th.n qa,lassan th/j Galilai,aj avna. me,son tw/n o`ri,wn Dekapo,lewjÅ 32 kai. fe,rousin auvtw/| kwfo.n kai. mogila,lon kai. parakalou/sin auvto.n i[na evpiqh/| auvtw/| th.n cei/raÅ kai. avpolabo,menoj auvto.n avpo. tou/ o;clou katV ivdi,an e;balen tou.j daktu,louj auvtou/ eivj ta. w=ta auvtou/ kai. ptu,saj h[yato th/j glw,sshj auvtou/( 31 예수께서 다시 두로 지방에서 나와 시돈을 지나고 데가볼리 지방 을 통과하여 갈릴리 호수에 이르시 매 사람들이 귀 먹고 말 더듬는 자를 데리고 예수께 나아와 안수하 여 주시기를 간구하거늘 예수께서 그 사람을 따로 데 리고 무리를 떠나사 손가락을 그의 양 귀에 넣고 침을 뱉어 그의 혀에 손을 대시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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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가 수로보니게 여인과 만난 사건 뒤에 나오는 사건 뒤에 나 오며, 7:31의 여행 경로에 의해 시작된 이 기사의 배경은 이방인 들 사이에서 혹은 적어도 이방 지경에서의 예수의 사역을 다루 고 있다. 8:1의 도입부에서 언급된 무대 변화가 없었다면 같은 지역에서 금식의 이적이 잇달아 일어났음을 암시한다. 이 이야 기는 마가복음에만 나온다. 어떤 이들은 마태와 누가가 이 기사 를 생략한 것은 예수의 치유의 모습이 거의 마술사와 유사하기 때문이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복음주의 자들은 누가는 긴 생략 (막 6:45-8:26)에 포함 되었을 것으로 생각하고, 마태의 경우는 마 15:29-31에서 이사야 35:5-6을 연상 시키는 예수의 치유의 요약에 포함된 것으로 여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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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께서 그 사람을 따로 데리고 무리를 떠나사(kai. avpolabo,menoj auvto. n avpo
예수께서 그 사람을 따로 데리고 무리를 떠나사(kai. avpolabo,menoj auvto.n avpo. tou/ o;clou katV ivdi,an)은 1) 무리들을 피해 혼자 있으려는 예수에 대한 마가의 강조, 2) 마가의 메시아 비밀의 일부, 3) 무리들 중에 호기심 많은 추종자들을 피하려는 의도, 4) 치유의 과정을 숨기려는 의도 등으로 이해 된다. 침은 유대사회에서 치유의 기능을 지닌 것으로 간주 되었다. 요 9:1-7에서는 침과 약간의 진흑과 섞어 치유에 사용하고, 갈라디아서 4:14에서는 침은 악한 귀신과 질병을 물리치는 기능을 지난다고 한다. 휼(Hull)은 예수가 손가락을 귀에 넣는 행위에 의하여 마귀가 도망 갔다고 주장한다. 예수가 혀와 귀를 만지는 행위는 예수의 연민과 그의 능력이 환자에게 전이되는 과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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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4 kai. avnable,yaj eivj to. n ouvrano. n evste,naxen kai
34 kai. avnable,yaj eivj to.n ouvrano.n evste,naxen kai. le,gei auvtw/|( Effaqa( o[ evsti n( Dianoi,cqhtiÅ 35 kai. Îeuvqe,wjÐ hvnoi,ghsan auvtou/ ai` avkoai,( kai. evlu,qh o` desmo.j th/j glw,sshj auvtou/ kai. evla,lei ovrqw/jÅ 36 kai. diestei,lato auvtoi/j i[na mhdeni. le,gwsin\ o[son de. auvtoi/j dieste,lleto( auvtoi. ma/llon perisso,teron evkh,russonÅ 37 kai. u`perperissw/j evxeplh,ssonto le,gontej( Kalw/j pa,nta pepoi,hken( kai. tou.j kwfou.j poiei/ avkou,ein kai. Îtou.jÐ avla,louj lalei/nÅ 34 하늘을 우러러 탄식하시며 그 에게 이르시되 에바다 하시니 이는 열리라는 뜻이라 그의 귀가 열리고 혀가 맺힌 것이 곧 풀려 말이 분명하여졌더라 예수께서 그들에게 경고하사 아무에게도 이르지 말라 하시되 경 고하실수록 그들이 더욱 널리 전파 하니 사람들이 심히 놀라 이르되 그가 모든 것을 잘하였도다 못 듣 는 사람도 듣게 하고 말 못하는 사 람도 말하게 한다 하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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탄식하며(evste,naxen)은 요한복음 11:41에서 처럼 기도의 순간을 이해하게 한다
탄식하며(evste,naxen)은 요한복음 11:41에서 처럼 기도의 순간을 이해하게 한다. 예수가 하늘을 우러른 것은 굶주란 자를 먹이고, 병자를 치유하고, 죽은자를 살릴 수 있는 능력을 주시는 하나님과 관계를 나타내 준다. 예수가 하늘을 우러러 탄식하는 이유에 대하여는 여러 해석이 있어 왔다. 1) 마술 혹은 성육신의 한 부분이다. 2) 숨을 내쉬는 장면이다. 숨을 내쉼을 통하여 생명을 옴겨주고 치유하는 힘이다. 3) 파괴적인 병의 고통과 혹은 심적인 고통의 표현이다. 4) 그 고통에 감정이입의 증거이다. 5) 마음에서 온 기도의 표현이다. 스트라우스(Strauss)는 바로 이어서 하늘을 우러러라는 표현 때문에 다섯 번째를 지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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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바다(Effaqa)는 아람어로 어떤 이들은 마술의 주문으로 오해 하는 경우도 있으나 1) 이방 지역 사람들도 아람어를 이해 가능 하다는 사실, 2) 마가가 이를 번역하고 있다는 것, 3) 여기 뿐만 아니라 다른 곳에서도 아람어가 사용 된 경우가 있다는 사실에 근거에 볼때에 주문은 아니다. 오히려 이 치유가 너무 강렬하여 제자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고, 예수의 아람어 말까지도 기억 되어 복음서 기록에 들어 왔을 것으로 생각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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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다 잘하였도다(Kalw/j pa,nta pepoi,hken), 하나님의 창조 할 동에 관한 창세기 1:31의 말씀이 연상 된다. 이 선언은 타락한 피조물의 회복에 대한 희망, 곧 선지자들이 약속한 구원 의 시대에 대한 이스라엘의 희망을 반영한다. 이방인들의 환호 는 그들의 귀와 그들의 혀가 구원의 시대의 복음을 듣고 말할 수 있음을 증거한다. 예수의 침묵 명령은 주석가들을 당혹 스럽 게 한다. 예수는 5:1-20에서 이방지역에서 거라사 광인에게 침 묵명령을 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를 격려하고, 그에게 일어난 일 을 주변에 알리도록 격려 하였다. 아마도 그의 명성이 데카포리 스 지역에까지 넓게 퍼져 지나친 메시아져 열정을 가라 앉힐 필 요성 때문으로 여겨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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