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神 話 와 思 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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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신화인가? 모더니즘(Modernism)의 실패 포스트 모더니즘의 등장 뮈토스에서 로고스로 다시 인간 존재의 불안
서구 사회는 신화를 우화와 창작 혹은 허구와 환상으로 격하시켰다. 신화적이라는 말 자체는 이성에 대해서 매우 열등한 것으로, 비논리적이고 비합리적인 태도를 지칭하는 듯하다. 하지만 이러한 서구 사회의 신화에 대한 태도 속에는 이성에 대한 의도적인 숭배가 있지는 않는 것인가? 이성 자체를 만능으로 여기고서 이전의 모든 신화적 세계를 거세한 이후, 자기산출적인 방식에서 근거한 이성의 잉태는 결국 현대인들을 더 깊은 비이성적 행위의 망으로 밀어넣는 것은 아닌가? 우리는 현대인들의 뭔가 모르지만 어쨌든 버려서는 안 되는 것들을 버린, 그래서 무엇을 잃어버렸는지도 모르는 그러한 존재가 되어가는 것은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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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모더니즘의 실패 현대주의 또는 근대주의. 일반적으로는 기성도덕과 전통적 권위를 반대하고, 자유와 평등, 도시의 시민생활과 기계문명을 향유하고자 하는 사상적·예술적 사조를 의미하는 것이다. 계몽주의 이성에 대한 무한한 신뢰 기계론적 세계관 진보에 대한 낙관론적인 견해 모더니즘의 기반이 되는 계몽주의의 정신, 즉 현대성의 기본 이념을 세 가지로 말할 수 있겠다. 첫째는 이성에 대한 무한한 신뢰이다. 이러한 이성에 대한 신뢰는 전근대적인 형식과 내용을 거부한다. 이러한 토대에서는 어떤 신화적, 종교적인 이념은 발을 들여놓을 수 없게 된다. 이성은 모든 지식의 근거이며 자기 명증적인 형식으로 규정된다. 이러한 이성은 사유하는 자아의 본질을 구성한다. 따라서 자아, 주체는 신뢰의 근거가 되는 셈이다. 다음으로 종교적 자연관의 표현인 유기체적인 세계관은 엄격한 수학적 원리에 따른 기계론적 세계관으로 바뀐다. 여기서는 신의 손은 개입할 여지가 없다. 기적은 불가능한 것이다. 자연은 거대한 물체들의 단순한 운동으로 이루어진 질서 있게 구성된 하나의 기계이다. 셋째로 과학적인 세계관과 이성주의는 진보에 대한 낙관론적인 견해를 제공한다. 지식은 자연의 탐구를 통해서 그 신비에 들어가서 자연의 정체를 밝혀내고 그것을 개발하는 것이 신의 뜻으로 받아들인다. 자연은 더 이상의 숭배의 대상이 아니라 이성의 도구에 의해서 사용의 대상인 것이다. 여기에 생물학적인 진화론은 사회진화론으로 연결된다. 그러나 현대성, 모더니즘이 기반으로 하는 네 가지 기둥인 자족성, 이성, 진보, 그리고 낙관주의는 붕괴한다. 철학과 과학의 기초 위에서 신의 존재를 부정하는 것은 더 이상 유효하지 않는다는 사실이 드러난다. 즉 자족성의 붕괴이다. 다음으로 현대 정신은, 즉 이성은 도덕적인 사회를 구성하는 것에 실패한다. 진보에 대한 낙관론적인 견해는 점차 사라지고 인류가 어느 방향으로 나아가는 가에 대한 불안과 의심이 우리 주변을 맴돈다. 지식은 선한 것이고 학문은 선을 위한 도구일 것이라는 낙관적 신념은 유전공학과 핵무기의 위협 등으로 무너지게 된다. 결과적으로 모더니즘, 즉 현대성은 고향을 상실한 실향민들을 양산하여 잃어버린 낙원에 대한 염원 속에서 이성이 만들어 놓은 시장을 통해 그러한 갈증과 염원을 소비로 환원시키는 대중들을 양산하였고, 이러한 시원으로 향하는 열망들은 전체주의 기원으로 작동하기도 한다. 책임을 지는 이성은 끊임없이 요구하는 선택과 결정 앞에서 그 초라한 본색을 드러내고 마침내 그 이성의 왕좌를 낯선 이에게 물러주어야 할 판이다. 이러한 한계를 지니는 모더니즘, 현대성에 대한 심판은 일찍이 니체를 통해서 이루어진다. 그의 주저 ‘짜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에서 그는 신의 죽음을 선포한다. 여기서 신은 기독교적인 신이기도 하지만 오히려 이성에 기반한 형이상학적인 세계에 대한 종언이다. 즉 신의 자리를 차지하고 이 세계에 대해서 모든 것을 해석하고 설명하고 구성할 수 있다고 자랑하는 이성의 만능에 대해서 니체는 가차없이 그 형이상학적 세계의 역설적인 신화상을 폭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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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스트모더니즘의 선구자 “신은 죽었다” 무의식과 욕망
레켄 출생. 쇼펜하우어의 의지철학을 계승하는 ‘생의 철학’의 기수(旗手)이며, S.A.키르케고르와 함께 실존주의의 선구자로 지칭된다. 목사인 아버지를 5세 때 사별하고 어머니·누이동생과 함께 할머니 집에서 자라났다. 14세 때 프포르타 공립학교에서 엄격한 고전교육을 받고 1864년 20세 때 본대학에 입학하여 F.리츨 밑에서 고전문헌학에 몰두하였다. 다음 해, 전임하는 스승 리츨을 따라 라이프치히대학으로 옮겼다. 이 대학에 있을 때, 쇼펜하우어의 《의지와 표상으로서의 세계》라는 책에서 깊은 감명과 영향을 받았고, 또 바그너를 알게 되어 그의 음악에 심취하였다. 1869년 리츨의 추천으로 스위스의 바젤대학 고전문헌학의 교수가 되었다. 1870년 프로이센프랑스 전쟁에 지원, 위생병으로 종군했다가 건강을 해치고 바젤로 돌아왔다. 그 이후 그는 평생 편두통과 눈병으로 고생하였다. 28세 때 처녀작 《비극의 탄생 Die Geburt der Tragödie》(1872)을 간행하였다. 쇼펜하우어의 형이상학을 빌려 그리스 비극(悲劇)의 탄생과 완성을 아폴론적, 디오니소스적 이라는 두 가지 원리로 해명하고, 이어 소크라테스적 주지주의(主知主義)에 의거하는 에우리피데스에서 이미 그 몰락을 보았으며, 다시 그 재흥(再興)을 바그너의 음악에서 기대 ·확인하는 이 저서는 생의 환희와 염세, 긍정과 부정을 예술적 형이상학에 쌓아 올린 것이다. 1873~1876년에 간행된 4개의 《반시대적 고찰 Unzeitgemässe Betrachtungen》에서는 프로이센프랑스전쟁의 승리에 도취한 독일국민과 그 문화에 통렬한 비판을 가하면서 유럽 문화에 대한 회의를 표명, 위대한 창조자인 천재(天才)를 문화의 이상으로 삼았다. 이 이상은 1876년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 Menschliches, Allzumenschliches》(1878∼1880)에서 더욱 명확해져 과거의 이상을 모두 우상(偶像)이라 하고 새로운 이상으로의 가치전환을 의도하였다. 이미 고독에 빠지기 시작한 니체는 이 저술로 하여 바그너와도 결별하였고, 1879년 이래 건강의 악화, 특히 시력의 감퇴로 35세에 바젤대학을 퇴직하고, 요양을 위해 주로 이탈리아 북부 ·프랑스 남부에 체재하면서 저작에 전념하였다. 《여명(黎明) Morgenröte》(1881) 《환희의 지혜 Die fröhiliche Wissenschaft》(1882)의 뒤를 이은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하였다 Also sprach Zarathustra》(1883∼1885)로 그의 성숙기(成熟期)가 시작된다. 신의 죽음으로 지상(地上)의 의의를 설파하였고, 영겁회귀(永劫回歸)에 의해 삶의 긍정(肯定)의 최고 형식을 밝혔으며 초인(超人)의 이상을 가르쳤다. 《선악의 피안(彼岸) Jenseits von Gut und Böse》(1886)에서는 위의 사상에 부연하여 근대를 형성해 온 그리스도교가 삶을 파괴하는 타락의 원인이라 하여 생긍정(生肯定)의 새로운 가치를 창설해야 한다고 역설하였다. 또 《도덕의 계보학(系譜學) Zur Genealogie der Moral》(1887)에서는 약자(弱者)의 도덕에 대하여 삶의 통일을 부여하는 강자(强者)의 도덕 수립을 시도하였으며, 미완의 역작 《권력에의 의지(意志) Wille zur Macht》(1884∼1888)에서는 삶의 원리, 즉 존재의 근본적 본질을 해명하려 하였다. 그러나 1888년 말경부터 정신이상 증세를 나타내기 시작한 그는 다음해 1월 토리노의 광장에서 졸도하였다. 그 이후 정신착란인 채 바이마르에서 사망하였다. 니체 사상의 기조를 이루는 것은 근대 문명에 대한 비판이며 그것의 극복이다. 그는 2000년 동안 그리스도교에 의해 자라온 유럽 문명의 몰락과 니힐리즘의 도래를 예민하게 감득하였다. 사람들은 지고(至高)의 가치나 목표를 잃어 이미 세계의 통일을 기할 수 없게 되었다. 그래서 사람들은 왜소화(矮小化)되고 노예화하여 대중을 이루고 있다. 이러한 근대의 극복을 위해 그는 ‘신은 죽었다’고 선언하고 피안적(彼岸的)인 것에 대신하여 차안적(此岸的)·지상적인 것을, 즉 권력에의 의지를 본질로 하는 생을 주장하는 니힐리즘의 철저화에 의해 모든 것의 가치전환을 시도하려 하였다. ‘초인·영겁회귀·군주도덕’ 등의 여러 사상은 그것을 위한 것이었으며, 인간은 권력에의 의지를 체현(體現)하는 초인이라는 이상을 향하여 끊임없는 자기 극복을 하여야 한다고 주장한 것이다. [네이버 지식백과] 프리드리히 니체 [Friedrich Wilhelm Nietzsche] (두산백과) 1856년 5월 6일 모라비아(현 체코) 지방 프라이베르크 마을에서 유대인으로 출생하였다. 그가 태어난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에서 유대인에 대한 편견이 심했다. 그의 아버지는 세번째 결혼한 아말리에(Amalie)와의 사이에서 지그문트를 낳았다. 그의 이복 형은 어머니와 나이가 비슷했다. 이복 형제들에 비해 어머니의 보살핌을 많이 받았고 김나지움 7학년 내내 최우수 학생으로 총명했다. 빈 대학 의학부에 입학하여 에른스트 브뤼케 실험실에서 신경해부학(Neuroanatomy)을 공부하였다. 졸업 후 얼마 동안 뇌의 해부학적 연구하였고, 코카인의 마취작용을 연구하여 우울증 치료제로 시도했지만 결과는 좋지 못했다. 1885년 파리의 살페트리에르(Salpetriere) 정신병원에서 마르탱 샤르코의 지도 아래 히스테리 환자를 관찰하였고, 1889년 여름에는 낭시(프랑스)의 베르넴과 레보 밑에서 최면술을 보게 되어, 인간의 마음에는 본인이 의식하지 못하는 과정, 즉 무의식이 존재한다는 것을 믿게 되었다. 이보다 앞서 J.브로이어는 히스테리 환자에게 최면술을 걸어 잊혀져 가는 마음의 상처(심적 외상)를 상기시키면 히스테리가 치유된다는 사실을 발견하였다. 프로이트는 브로이어와 공동으로 그 치유의 방법을 연구하였고, 1893년 카타르시스(Katharsis:淨化)법을 확립하였다. 그러나 얼마 후 이 치유법에 결함이 있음을 깨닫고 최면술 대신 자유연상법을 사용하여 히스테리를 치료하는 방법을 발견하였고 1896년 이 치료법에 ‘정신분석’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이 말은 후에 그가 수립한 심리학의 체계까지도 지칭하는 말이 되었다. 1900년 이후 그는 꿈·착각·말실수와 같은 정상 심리에도 연구를 확대하여 심층심리학을 확립하였고, 또 1905년에는 유아성욕론(幼兒性慾論)을 수립하였다. 하지만 초기 그의 학설은 무시되었으나, 1902년경부터 점차 공명하는 사람들(슈테켈, 아들러, 융, 브로일러)이 나타났으며, 1908년에는 제1회 국제정신분석학회가 개최되어 잡지 《정신병리학 ·정신분석학연구연보》(1908∼1914), 《국제정신분석학잡지》 등이 간행되었다. 또 1909년 클라크대학 20주년 기념식에 초청되어 강연한 일은 정신분석을 미국에 보급시키는 계기가 되었다. 제1차 세계대전 후 사변적 경향을 강화하여 이드(id)·자아·초자아(超自我)와 같은 생각과, 생의 본능 에로스·죽음의 본능 타나토스 등의 설을 내세웠다. 1938년 오스트리아가 독일에 합병되자 나치스에 쫓겨 런던으로 망명하였고, 이듬해 암으로 죽었다. 20세기의 사상가로 프로이트 만큼 큰 영향을 끼친 인물은 없다고 평가되며, 심리학 ·정신의학에서뿐만 아니라 사회학·사회심리학·문화인류학·교육학·범죄학·문예비평에도 큰 영향을 끼쳤다. 주요 저서에는 《히스테리 연구》(1895), 《꿈의 해석》(1900), 《일상생활의 정신병리학》(1901), 《성욕에 관한 세 편의 에세이》(1905), 《토템과 터부》(1913), 《정신분석 강의》(1917), 《쾌락 원칙을 넘어서》(1920), 《자아와 이드》(1923) 등이 있다. [네이버 지식백과] 지그문트 프로이트 [Sigmund Freud] (두산백과) “신은 죽었다” 무의식과 욕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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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스트 모더니즘의 특징 포스트모더니즘의 특징
계몽주의적 거대 담론 및 엄숙주의에 대한 회의, 잡종성, 실제와 모사의 구별 없음, 고급문화와 저급문화의 경계 와해, 탈중심화, 열림과 자기성찰 현대 사회현상 속에는 절대이념의 와해, 개성 중시, 논리 다원화, 다국적 기업, 여성운동, 소유로부터의 탈출 등 포스트모더니즘적인 것들이 많이 있으며, 그것은 포스트모더니즘이 인간 삶 속에 깊이 침투하였음을 보여주는 현상이다. 현대의 이성중심주의, 보편주의, 형이상학 전통에 대한 반성과 반발에서 시작된다. 객관적 세계관의 종말을 고하고 관계적이고 비결정성이 실재로 등장한다. 추상시키는 보편주의에 반대하여 전체적 통합주의적이며 염세적이기도 하고 상대적이다. 물론 주관주의적인 가치에 대한 태도를 지닌다. 여기서 주관이란 자율적 이성으로서의 주체를 말하는 것이 아니다. 특별히 느끼고 생각하고 욕망하는 자아라고 하면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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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스트 모더니즘의 등장 이 운동은 미국과 프랑스를 중심으로 학생운동 ·여성운동 ·흑인민권운동 ·제3세계운동 등의 사회운동과 전위예술, 그리고 해체(Deconstruction) 혹은 후기구조주의 사상으로 시작되었으며, 1970년대 중반 점검과 반성을 거쳐 오늘날에 이른다. 서구에서 근대 혹은 모던(modern) 시대라고 하면 18세기 계몽주의로부터 시작된 이성중심주의 시대를 일컫는다. 종교나 외적인 힘보다 인간의 이성에 대한 믿음을 강조했던 계몽사상은 합리적 사고를 중시했으나 지나친 객관성의 주장으로 20세기에 들어서면서 도전받기 시작하였다. 니체, 하이데거의 실존주의를 거친 후 포스트모던 시대는 J.데리다, M.푸코, J.라캉, J.리오타르에 이르러 시작된다. 니체와 프로이트의 영향을 받은 이들은 계몽주의 이후 서구의 합리주의를 되돌아보며 하나의 논리가 서기 위해 어떻게 반대논리를 억압해왔는지 드러낸다. 데리다는 어떻게 말하기가 글쓰기를 억압했고, 이성이 감성을, 백인이 흑인을, 남성이 여성을 억압했는지 이분법을 해체시켜 보여주었다. 푸코는 지식이 권력에 저항해왔다는 계몽주의 이후 발전논리의 허상을 보여주고 지식과 권력은 적이 아니라 동반자라고 말하였다. 둘다 인간에 내재된 본능으로 권력은 위에서의 억압이 아니라 밑으로부터 생겨나는 생산이어서 이성으로 제거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라캉은 데카르트의 합리적 절대자아에 반기를 들고 프로이트를 귀환시켜 주체를 해체한다. 주체는 상상계와 상징계로 되어 있고 그 차이 때문에 이성에는 환상이 개입된다는 것이다. 리오타르 역시 숭엄(the Sublime)이라는 설명할 수 없는 힘으로 합리주의의 도그마를 해체한다. 따라서 철학에서의 포스트모더니즘은 근대의 도그마에 대한 반기였다. 문학에서는 저자가 객관적인 실재를 그릴 수 있다는 믿음으로 줄거리가 인물을 조정하여 원근법과 같은 효과를 나타내었다. 이런 사실주의는 20세기에 들어서 베르그송의 시간의 철학 ·실존주의, 아인슈타인의 상대성이론 등 객관진리, 단 하나의 재현에 대한 회의가 일어나면서 도전받는다. 대상은 보는 자의 주관에 따라 다르다는 전제도 미술에서는 인상주의로부터 시작되어 입체파 등 구상보다 추상으로 옮아가고 문학에서는 저자의 서술 대신 인물의 서술인 독백(‘의식의 흐름’이라고도 함)형식이 나온다. 재현에 대한 회의로 개성 대신에 신화와 전통 등 보편성을 중시했고 피카소, 프루스트, 포크너, 조이스 등 거장을 낳았으나 난해하고 추상적인 기법으로 대중과 유리되었다. 개인의 음성을 되찾고 대중과 친근하면서 모더니즘의 거장을 거부하는 다양성의 실험이 포스트모더니즘이었다. 따라서 철학에서는 모던과 포스트모던 상황이 반발의 측면이 강하지만 예술에서는 연속의 측면도 함께 지닌다. 비록 이성과 보편성에 의지했지만 이미 재현에 대한 회의가 모더니즘(현대성)에서 일어났기 때문이다. 각 영역에서의 특징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미술에서는 추상 대신에 대중성을 띄고 다시 구상이 등장하였다. 그런데 팝아트처럼 같은 대상을 여러 번 찍어 ‘다르게 반복하기’를 선보이는 경우, 모나리자 등 친숙하고 고유한 원본을 패러디하여 ‘다양한 재현들’을 선보이는 경우, 예술가의 권한을 축소한 미니멀 아트(미니아튀르) 등, 단 하나의 절대재현을 거부한다. 문학에서는 인물의 독백이 사라지고 다시 저자가 등장하는데 더이상 19세기 사실주의와 같은 절대재현을 못 한다. 작가가 자신의 서술을 되돌아보고 의심하는 자의식적 서술(메타 픽션), 현실과 허구의 경계와해, 인물과 독자에게 선택권을 주는 열린 소설, 보도가 그대로 허구가 되는 뉴저널리즘, 작가의 권한을 최소화한 미니멀리즘 기법 등이 쓰인다. 개성 ·자율성 ·다양성 ·대중성을 중시한 포스트모더니즘은 절대이념을 거부했기에 탈이념이라는 이 시대 정치이론을 낳는다. 또한 후기산업사회 문화논리로 비판받기도 한다. 산업사회는 분업과 대량생산으로 수요에 의해 공급이 이루어지던 시대이다. 이제 컴퓨터 ·서비스산업 등 정보화시대에 이르면 공급이 넘치고 수요는 광고와 패션에 의해 인위적으로 부추겨진다. 빗나간 소비사회는 때로 포스트모더니즘의 실험적이고 긍정적인 측면을 무력하게 만들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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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르린 먼로>- 초상화에 회화적 분위기를 연출하기 위해 색이 밖으로 빠져 나오도록 그는 그녀의 얼굴을 연속적으로 병렬하거나 하나씩 독립적으로 실크스크린으로 제작했다. 유명인을 그리면 자신도 유명해질 수 있다고 생각했다. 가장 두드러진 팝아트 예술가가 되기를 바랬던 앤디의 시도는 적중했다. 세계적으로 인기 있는 스타들의 초상화는 자연히 인기가 있었고 중개상들이 그의 그림에 관심을 보이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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찢어진 큰 캠벨 수프 통조림 Roy Lichtenstein의 작품 Tea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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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뮈토스와 로고스로 그리고 다시 Mythos Logos 상상(감성) 이성 이야기하는 말 논증하는 말 그 자체가 목적
설득을 목표 듣는 자의 모델화 듣는 자의 판단 참된 말과 속된 말 진리와 허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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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인간 존재의 불안 신화는 주술양식에 의해 고뇌를 일소함으로써 정신을 평정한다.
신화는 그의 조망 속에서 고뇌 자체가 일종의 토대를 나타낸다. 고뇌는 실존적인 타당성을 띠며 그렇게 됨으로써 그것은 어느 정도 세계 내적 존재에 의해 다시 다루어지고 수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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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 존재의 불안 신화의 인간은 신화의 지평 속에서 연장부분을 갖는다. 신화는 자신의 외부에, 세계와 타인과의 참여 속에서 존재(제의). 신화는 실존의 범위 내에서 완성된 세계의 윤곽을 그린다. 신화의 주된 관심은 인간 현실의 매듭이다. 삶은 죽음과 탄생이라는 사건들에 의해 제한되는 생물학적 충만함 속에서 드러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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