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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도 바로알기 2. 사료와 지도로 보는 독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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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독도 바로알기 2. 사료와 지도로 보는 독도

2 다음 지명은 모두 하나의 섬을 가리키는 것이다. 그 섬은 무엇일까?
아르고노트 메넬라이 올리부차 다즐레 리앙쿠르 호넷 량고도 가지도 간산도 자산도 주요 활동과 수업할 때 주의사항 #1. 명칭을 하나씩 올리면서 학생들에게 질문한다. 지명의 순서를 다르게 구성해서 올리는 것도 좋다. 송도 석도 죽도 우산도

3 답 : 독도 ▪ 조선에서 가리키는 명칭 우산도(于山島) : 삼국시대 우산국에서 유래
자산도(子山島), 간산도(干山島),천산도(千山島) ⇒ 우산도의 표기오류 가지도(可支島) : 가지어(可支魚, 강치)가 많이 사는 섬 석도(石島) : 돌로 이루어진 돌섬을 한자로 표기 독도(獨島) : 돌섬, 독섬을 한자로 표기 # 사진출처 『우리땅 독도를 만나다』48p(동북아재단) 주요 활동과 수업할 때 주의사항 #1. 독도를 가리키는 지명이 많다는 것은 그만큼 독도에 대해 확실히 알지 못했다는 것을 반증하는 것이다. 지금부터 사료와 지도를 보면서 독도를 둘러싼 역사를 살펴보고 왜 이렇게 많은 이름이 생겨났던 것인지 알아보자고 이야기 한다.

4 ▪ 일본에서 가리키는 명칭 송도(松島) : 울릉도가 대나무가 많아 다케시마(竹島), 이소다케시마(磯竹島)라고 했다. 일본은 ‘송죽(松竹)’을 경축의 의미로 사용했고, 죽도 옆의 섬이라고 하여 독도를‘송도’라고 했다. 죽도(竹島) : 송도라고 부르던 것이 19세기 메이지 정부에서 ‘송도’와 혼동하여 사용하다가 1905년 시마네현 편입당시 공식지명으로 사용 량고도 : 리앙쿠르의 일본식 발음 # 사진출처 『우리땅 독도를 만나다』69p(동북아재단)

5 리앙쿠르 : 1849년 프랑스 포경선 리앙쿠르호가 독도를 발견하고 명명, 프랑스 해군성이 수로지와 해도에서 사용하면서 유래.
▪ 서양에서 가리키는 명칭 리앙쿠르 : 1849년 프랑스 포경선 리앙쿠르호가 독도를 발견하고 명명, 프랑스 해군성이 수로지와 해도에서 사용하면서 유래. 올리부차(동도), 메넬라이(서도) : 1854년 러시아 수송선이 발견하고 명명 호넷 : 1855년 영국 군함 호넷이 발견하고 명명 다즐레∙아르고노트 : 1787년 프랑스가 울릉도를 발견하고 ‘다즐레’ 명명, 1789년 영국이 울릉도를 ‘아르고노트’로 명명 ⇒ 울릉도∙독도로 혼동하여 사용. # 사진출처 『우리땅 독도를 만나다』79p(동북아재단)

6 ◎ 오늘 같이 공부할 내용은? 1. 한국 사료에 나타난 독도 2. 일본 사료에 나타난 독도 3. 한국 지도에 보이는 독도
4. 일본 지도에 보이는 독도 5. 서양 지도에 보이는 독도 6. 안용복과 독도 7. 마무리 – 일본내각 독도편입 결정문 반박하기 주요 활동과 수업할 때 주의사항 #1. 오늘 공부할 내용은 사료와 지도로 보는 독도의 역사라고 소개한다. 이후 3차시는 한일 간의 갈등사항과 평화적 해결방법에 관한 것이라고 소개한다.

7 ◎ 한국사료에 나타난 독도 1. 세종실록지리지(1454) 우산(于山)과 무릉(武陵) 두 섬이 (울진)현의 정동쪽 바다에 있다.
두 섬이 서로 거리가 멀지 않아 날씨가 맑으면 바라볼 수 있다. # 사진출처 『우리땅 독도를 만나다』45p(동북아재단) 주요 활동과 수업할 때 주의사항 #1. 세종실록의 부록으로 전국 328개 군현에 관한 인문지리적 내용을 담은 책. <세종실록>권 153의 강원도 울진현조에 우산도(독도)에 대한 내용이 나온다

8 무릉(武陵)이라고도 하고, 우릉(羽陵)이라고도 한다. 두 섬이 고을 바로 동쪽바다 가운데 있다.
2. 신증동국여지승람(1531) - 우산도, 울릉도 무릉(武陵)이라고도 하고, 우릉(羽陵)이라고도 한다. 두 섬이 고을 바로 동쪽바다 가운데 있다. # 사진출처 『우리땅 독도를 만나다』31p(동북아재단) 주요 활동과 수업할 때 주의사항 # 년(중종26년) 왕명으로 <동국여지승람>을 증보하여 편찬한 관찬지리지. 강원도 울진현조에 우산도(독도)에 대한 내용이 기술되어 있다.

9 - <여지지>에 이르기를 ‘울릉과 우산은 모두 우산국의 땅인데, 우산은 왜인들이 말하는 송도다’라고 하였다.
3. 만기요람(1808) - <여지지>에 이르기를 ‘울릉과 우산은 모두 우산국의 땅인데, 우산은 왜인들이 말하는 송도다’라고 하였다. # 사진출처 『우리땅 독도를 만나다』51p(동북아재단) 주요 활동과 수업할 때 주의사항 # 년 왕명으로 제작된 책으로 18세기 후반부터 19세기 초에 이르는 조선왕조의 재정과 군정에 관한 내용이다.

10 제1조 : 울릉도를 울도로 개칭하야 강원도에 부속시키고 도감을 군수로 하여 …
4. 대한제국 「칙령 제41호」(1900) 제1조 : 울릉도를 울도로 개칭하야 강원도에 부속시키고 도감을 군수로 하여 … 제2조 : 군청 위치는 태하동으로 정하고 구역은 울릉전도와 죽도, 석도를 관할 할 것. # 사진출처 『독도교원연수』73p(동북아재단) 주요 활동과 수업할 때 주의사항 #1. 대한제국 정부가 1900년(고종 37년) 10월 25일자로 전문 6개조의 「울릉도를 울도로 개칭하고 도감을 군수로 개정한 건」을 결정하였다. 이 내용은 10월 27일자 관보를 통해 공포되었다. 대한제국정부는 칙령 41호의 관보 게재를 통해 독도가 울릉군수의 관할구역에 포함되어 있는 우리의 영토임을 국내외적으로 알렸다.

11 5. 강원도 관찰사 이명래 보고서(1906) - 울릉군수 심흥택 보고서에 따르면 독도가 바다 바깥 백여리 밖에 있는데, 일본관원 일행이 와서 말하기를 독도가 이번에 일본의 영지가 되어서 시찰차 나온 것... - <지령 3호>(의정부) 독도 영지 운운하는 것은 전혀 그 근거가 없으니 섬의 형편과 일본인의 동향을 다시 조사해서 보고하라. # 사진출처 『우리땅 독도를 만나다』51p(동북아재단) 주요 활동과 수업할 때 주의사항 # 년 4월 4일 시마네현 관리들이 울릉도에 들러 군수 심흥택에게 독도가 일본에 편입되었다고 말하자 심흥택은 4월 29일 강원도 관찰사에게 보고하였고, 정부에 알려지게 되었다. 이때 의정부 참정대신 박제순이 1906년 5월 20일 <지령 3호>를 통해 위와 같이 지시하였다. 그러나 당시 대한제국은 외교권이 없었으므로 이와 관련한 외교문서를 일본정부에 전달할 수 없었다.

12 ◎ 일본사료에 나타난 독도 1. 은주시청합기(1667) - ‘오키섬 서북쪽에 마쓰시마(松島, 지금의 독도)와 다케시마(竹島,지금의 울릉도)가 있는데 이 두 개의 섬에서 고려(조선)를 보는 것은 마치 운슈(雲州)에서 오키섬(隱州)을 보는 것과 같다. 그러므로본주의 서쪽 끝은 오키섬을 경계로 한다.‘ 라고 하여 독도와 울릉도가 조선 땅임을 분명히 하였다. # 사진출처 『우리땅 독도를 만나다』61p(동북아재단) 주요 활동과 수업할 때 주의사항 #1. 울릉도와 독도에 대한 일본의 본격적인 기록(1997)으로 일본관리가 상부의 명을 받고 오키섬(은주)을 둘러 본 뒤 보고 들은 바를 기록하여 작성한 보고서이다.

13 2. 조선국 교제시말 내탐서(1870) - 죽도(울릉도)와 송도(독도)가 조선에 속하게 된 사정.
송도는 죽도 옆에 있는 섬입니다. 송도에 관해서는 지금까지 기재된 기록이 없지만 죽도에 대해서는 원록연간에 주고받은 서한에 기록이 있습니다. # 사진출처 『우리땅 독도를 만나다』66p(동북아재단) 주요 활동과 수업할 때 주의사항 #1. 일본의 메이지 정부는 1869년 외무성 관료 3명을 조선에 보내 조선의 사정을 염탐하도록 지시했다. 이 외무성 관료들의 조사를 바탕으로 1870년 작성된 보고서이다. 이 문서에서 울릉도와 독도가 조선의 영토가 된 사정을 밝히고 있다.

14 -‘품의한 취지의 죽도(울릉도) 외 1도(일도:독도)의 건에 대해서 본방(일본)은 관계가 없다는 것을 명심할 것‘
3. 태정관 지령(1877) -‘품의한 취지의 죽도(울릉도) 외 1도(일도:독도)의 건에 대해서 본방(일본)은 관계가 없다는 것을 명심할 것‘ # 사진 출처 『우리땅 독도를 만나다』69p(동북아재단) 주요 활동과 수업할 때 주의사항 #1. 일본 메이지정부 최고 행정기관인 태정관이 1877년 내무성에 하달한 지령이다. 1876년 시마네현이 관내의 지적조사와 지도편찬을 위해 죽도와 송도를 시마네현에 포함시켜야 하는지 내무성에 의견을 물었다. 내무성은 ‘이 문제는 17세기에 끝난 문제이고 울릉도와 독도는 일본과 관계가 없다’고 하였다. 이후 내무성은 이 문제가 일본의 영역과 관련된 중요한 사안이라고 판단하여 태정관에 최종결정을 넘겼고 태정관은 위와 같은 지령을 하달하였다.

15 - 태정관 지령에 첨부된 기죽도약도를 보면 죽도 외 ‘1도’는 송도(독도)로 확인된다.
3. 태정관 지령(1877) ※ 1도(一島)가 독도인 이유 - 태정관 지령에 첨부된 기죽도약도를 보면 죽도 외 ‘1도’는 송도(독도)로 확인된다. # 사진 출처 『우리땅 독도를 만나다』69p(동북아재단)

16 4. 시마네현 고시 40호(1905) - ‘북위 37도 9분 30초, 동경 131도 55분, 오키섬에서 서북으로 85해리 거리에 있는 섬을 죽도(다케시마)라고 칭하고 지금 이후부터는 본현 소속의 오키도사의 소관으로 정한다.’ # 사진출처 Web竹島問題研究所 주요 활동과 수업할 때 주의사항 # 년 9월 29일 어업인 나카이 요자부로(中井養三郞)가 일본 해군성, 외무성, 농상무성 관리들과 접촉한 후 일본정부에 ‘독도영토편입청원서’를 제출하였다. 1905년 1월 28일 일본 내각은 독도를 편입하는 각의 결정을 내렸다. 2월 22일 시마네현은 ‘고시 40호를 통해 독도를 ’다케시마‘로 개칭하고 시마네현에 편입시켰다.

17 ◎ 한국 지도에 보이는 독도 1. 팔도총도(1481) - <신증동국여지승람>에 첨부된 지도. 동해상에 울릉도와 우산도(독도) 두 개의 섬만 그려져 있다. 우산도가 울릉도보다 작게 서쪽에 그려져 있다. # 사진출처 『우리땅 독도를 만나다』48p(동북아재단) 주요 활동과 수업할 때 주의사항 #1. 위치가 정확하지 않지만 두 개의 섬이 그려져 있다는 것은 당시 두 섬의 존재를 분명히 인지하고 있었음을 말해준다. 조선 초기 부정확하던 우산도(독도)의 위치는 조선후기에 정확하게 그려지기 시작하였다.

18 2. 동국지도(18세기 중반) - 정상기(1678~1752)가 제작한 지도.
동해에 울릉도를 나타내고 오른쪽에 독도(우산도)를 정확하게 표기하였다. # 사진출처 『우리 땅 독도를 만나다』49p(동북아재단) 주요 활동과 수업할 때 주의사항 #1. 현존하는 조선후기 고지도들은 대부분 정상기의 <동국지도> 계통이다.

19 ◎ 일본 지도에 보이는 독도 1. 개정 일본여지로정전도(1779)
1. 개정 일본여지로정전도(1779) - 일본의 나가쿠보 세키스이가 제작한 지도로 ‘죽도(울릉도)’와‘송도(독도)’가 채색되어 있지 않은 상태로 그려져 있어 일본 영역 밖의 섬으로 나타나 있다.‘(죽도에서) 고려(조선)를 바라보는 것은 운슈(현재 시마네현)에서 인슈(현재 오키섬)를 바라보는 것과 같다.‘ # 사진출처 『독도교원연수』60p(동북아재단) 주요 활동과 수업할 때 주의사항 #1. 일본이 울릉도와 독도를 본국의 영토로 보고 있지 않다는 증거로 한국이 자주 내세우는 지도

20 2. 삼국접양지도(1785) -일본 실학자 하야시 시헤이가 그린 지도로 각 나라별로 색을 달리하여 표시한 것이 특징이다. 울릉도와 독도를 조선과 동일한 황색으로 표시하고 ‘조선의 것’이라고 써넣었다. # 사진출처 『우리 땅 독도를 만나다』65p(동북아재단) 주요 활동과 수업할 때 주의사항 #1. 일본이 울릉도와 독도를 본국의 영토로 보고 있지 않다는 증거로 한국이 자주 내세우는 지도

21 3. 아세아소동양도(1835) -일본의 나가쿠보 세키스이가 1835년에 제작한 지도. 오키섬과 송도(독도), 죽도(울릉도)를 모두 일본영토인 빨간색으로 표기하고 있다. . # 사진출처 Web竹島問題研究所 주요 활동과 수업할 때 주의사항 #1. 일본이 독도를 에도시대부터 자국의 영토라고 인식하고 있었다는 사례로 제시하는 지도. 그러나 울릉도까지 자국의 영토로 표기한 것으로 보아 울릉도와 독도에 대한 영토인식이 정확하지 못했음을 보여준다.

22 3. 아세아소동양도(1835) -일본의 나가쿠보 세키스이가 1835년에 제작한 지도. 오키섬과 송도(독도), 죽도(울릉도)를 모두 일본영토인 빨간색으로 표기하고 있다. . # 사진출처 Web竹島問題研究所 주요 활동과 수업할 때 주의사항 #1. 일본이 독도를 에도시대부터 자국의 영토라고 인식하고 있었다는 사례로 제시하는 지도. 그러나 울릉도까지 자국의 영토로 표기한 것으로 보아 울릉도와 독도에 대한 영토인식이 정확하지 못했음을 보여준다.

23 ◎ 서양 지도에 보이는 독도 1. 삼국통람도(1832) 독일인 클라프로트가 그린 지도. 울릉도와 독도가 한반도와 같은 색인 노란색으로 표시되어 있다. # 사진출처 (1)국립해양박물관 블로그 (2)『독도교원연수』68p(동북아재단) 주요 활동과 수업할 때 주의사항 #1. 서양세력이 동아시아에 빈번하게 왕래하던 18~19세기에 독도와 울릉도를 어떻게 생각하고 있었는지를 보여주는 귀중한 지도 독일 베를린 출신 동양학자 클라프로트가 1832년 영국 왕실의 지원을 받아 출간한 일본의 지리서 <삼국통람도설>에 포함된 지도로 <삼국총도>라고도 한다

24 2. 한반도 동해안 지도(1857) - 러시아 함대 빨라다호에 소속된 수송선 올리부차가 1854년 독도를 발견하고 그린 지도. 러시아 해군 수로국이 1857년 <한반도 동해안 지도>를 발간하여 독도를 한국의 영토로 인정하였다. # 사진출처 『독도교원연수』69p(동북아재단) 주요 활동과 수업할 때 주의사항 #1. 수송선 올리부차 호가 독도를 발견하고 동도는 ‘메넬라이’, 서도는 ‘올리부차’로 명명하였다. 이 지도를 바탕으로 1876년 일본의 해군 수로부가 <조선동해안도>를 번역해 제작하였다. 이것으로 당시 일본 해군이 독도를 한국의 영토로 인식했음도 알 수 있다.

25 ◎ 안용복과 독도 1. 안용복(?~?) 출생과 사망연대에 대한 기록이 없다.
이익의 <성호사설>에 따르면 동래(부산)출신의 뱃사공으로, 일본기록인 <죽도고(竹島考>에는 노비라는 기록이 있다.

26 2. 1차 안용복 사건(1693) 1693년(숙종 19년) 3월 남해안 출신 어부 40여명이 울릉도에서 어로작업을 하다 일본어부들에게 납치되어 오키섬으로 끌려갔다. 이 때 안용복은 울릉도와 독도가 조선 땅이라고 주장하고 자신들이 납치된 것이 부당하다고 항의하였다. 막부는 11월 나가사키와 쓰시마를 거쳐 안용복과 일행을 조선으로 돌려보냈다. # 사진출처 『독도교원연수』55p(동북아재단) 주요 활동과 수업할 때 주의사항 #1. 간단하게 안용복의 도일상황을 설명해준다. 1차 안용복 사건으로 인해 일본은 1696년 1월 ‘도쿠가와 막부에 대한 돗토리번의 답변서(1695)’를 통해 ‘죽도(울릉도)도해 금지령’을 내려 울릉도와 독도가 조선 땅임을 인정하였다.

27 3. 2차 안용복 사건(1696) 1696년 울산출신 어부와 양반, 승려 등과 울릉도에 가서 어로작업을 하던 일본인들을 발견하였다. 안용복은 ‘울릉자산양도감세장’이라는 깃발을 달고 호키(현재의 돗토리현)로 가서 독도가 조선 땅임을 주장하였다. 돗토리번은 막부에 이 사실을 보고했고 안용복 일행은 추방되었다. 안용복은 허가없이 국경을 넘은 죄로 사형선고를 받았다가 유배형으로 감형되었다. # 사진출처 『독도교원연수』55p(동북아재단) 주요 활동과 수업할 때 주의사항 #1. 2차 안용복 사건과 관련하여 이 때 일본관리가 안용복을 취조하고 ‘원록9병자년 조선주착안 일권지각서’(1696)라는 보고서를 작성하였는데 이 보고서 첨부문서인 <조선팔도전도> 부분에 울릉도와 독도가 조선의 강원도 소속으로 기록되어 있다.

28 4. 조선의 대응 조선은 안용복 사건의 영향으로 1697년 울릉도 수토관 제도를 신설하여 1894년까지 3년에 한번씩 울릉도와 주변 섬에 수토관을 파견하였다. 5. 일본의대응 1차 안용복 사건 이후 일본은 1696년 1월 ‘도쿠가와 막부 에 대한 돗토리번의 답변서(1695)’를 통해 ‘죽도(울릉도)도해 금지령’을 내려 울릉도와 독도가 조선 땅임을 인정하였다. 2차 안용복 사건 당시 일본관리가 안용복을 취조하고‘원록9병자년 조선주착안 일권지각서’(1696)라는 보고서를 작성하였다. 이 보고서 첨부문서인 <조선팔도전도> 부분에는 울릉도와 독도가 조선의 강원도 소속으로 기록되어 있다.

29 도쿠가와 막부에 대한 돗토리번 답변서(1695) 원록9병자년 조선주착안 일권지각서(1696) # 사진출처
(상)『우리 땅 독도를 만나다』62p(동북아재단) (하)『우리 땅 독도를 만나다』64p(동북아재단) 주요 활동과 수업할 때 주의사항 #1. 돗토리번 답변서에는 ‘죽도는 이나바, 호키(현재 돗토리현) 소속이 아닙니다.’라는 기록이 있다. 일권지각서에는 ‘강원도에 죽도∙송도가 속해있다.’는 기록이 있다.

30 ◎ 지금까지 공부한 내용으로‘일본내각의 독도편입 결정문’(1905) 을 반박해보자.
# 사진출처 『독도교원연수』75p(동북아재단) 주요 활동과 수업할 때 주의사항 #1. 지금까지 공부한 자료를 근거로 하여 모둠별로 반박문을 작성하게 하여 발표시킨다.

31 2 차시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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