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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강 – 프랑스 사회 읽기 : 인종주의 Racis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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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제9강 – 프랑스 사회 읽기 : 인종주의 Racisme
현대 프랑스의 갈등과 통합 제9강 – 프랑스 사회 읽기 : 인종주의 Racisme 서강대학교 전종호교수

2 프랑스 사회 읽기 : 인종주의 Racisme 특히 프랑스에 새롭게 등장한 극우정당인 국민전선(Front National)당의 주요 정책도 이러한 인종주의에 기초하고 있다. 우리는 프랑스 ‘문화 읽기’의 한 주제로 최근 프랑스에서 문제가 되는 이슬람의 헤드스카프 사건을 분석하기 위해 우선 인종주의와 프랑스 다문화주의의 문제점을 살펴보려 한다. 역사적으로 인종주의만큼 세계인류에 큰 해악을 끼친 이데올로기도 없을 것이다. 북아메리카와 오스트레일리아의 원주민의 전멸, 남아메리카, 아시아, 아프리카에서의 원주민의 학살, 노예화, 식민주의적 착취가 그 결과이다. 나치에 의한 유대인의 학살도 이러한 사고의 결과임 이는 인간간의 우열을 가정함으로 인간의 인간에 대한 지배를 합리화하고 열등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을 도구화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인종주의는 1980년대 이후 경제 침체의 결과 유럽의 외국인 노동자들에 대한 증오로 다시금 나타났다. 미국과 이슬람의 갈등에서도 이러한 인종주의의 영향을 볼 수 있다.

3 인종주의란? 1) 생물학적 개념 우선, 인종주의는 크게 생물학적인 인종주의와 문화적 인종주의의 두 가지로 나눌 수 있다.
신체의 특징에 따른 분류로 매우 자의적임 19세기 코카서스 Caucasoid, 몽골 Mongoloid, 흑인 Negroid등으로의 분류에서 최근은 해부학적 특성(피부색, 머리카락의 모양, 몸이나 얼굴의 모양 등), 생리학적 특성(유전성질병, 호르몬활동 등), 혈액의 성분 등 그러나 인종은 생물학적으로 볼 때 별 의미가 없다. 즉, 과학적으로 쓸모없는 개념이다. 우선, 인종주의는 크게 생물학적인 인종주의와 문화적 인종주의의 두 가지로 나눌 수 있다.

4 인종주의란? 2) 사회학적 개념 사회적, 정치적 특성과 연계. 개인의 행동 특질을 결정하는 요소가 사회적 환경이라는 것에는 일반적인 동의가 있다. 또한 지능을 결정하는 요인도 유전적인 요소보다 계급, 가족, 언어, 인식능력의 발전 같은 사회적 변수가 가장 중요하다고 한다. 그러나 지능은 이를 어떻게 규정하는지 또 측정하는지의 문제가 있다. 그러나 이를 종족집단 (ethnic group)으로 구분하여 사용하는 데는 무리가 없다. 즉, 종족집단과 인종은 구별해야 한다.

5 인종주의란? 베네딕트 (Ruth Benedict)는 한 종족집단이 선천적으로 열등하게 운명 지어져 있고 다른 종족은 우월하게 되어있다는 도그마로 인종주의를 정의한다. 베르게 (Pierre van den Berghe)는 인간의 행동이 다른 특질을 갖고 있는 개별 인종으로부터 비롯되며 또 그것이 다른 인종과 우열관계에 있는 안정적 유전적 성격에 의해 결정되어진다는 원리로 정의한다.

6 토도로프 Tzvetan Todorov의 정의
인종주의의 기본적인 가정 토도로프 Tzvetan Todorov의 정의 1. 인간은 공통의 신체적 특질을 가진 다른 인간집단인 인종으로 나누어지는데 그들 사이의 차이는 동물의 다른 종 사이의 차이와 같다. 2. 신체적 정신적 특질들은 상호 의존하며 그 특징들은 지속된다. 정신적 자질은 유전에 의해 전달되며, 교육이 이를 변화시킬 수 없다. 3. 집단은 개인의 행동에 영향을 끼친다. 개인의 행위는 대체로 그가 속한 인종문화적 집단에 의존한다. 4. 인종은 서로 다를 뿐 아니라 서로 간에 우열이 있다. 이는 신체적 아름다움이나 지적 도덕적 특질의 우열로 나타난다. 5. 이상의 지식에 근거한 도덕적 판단이나 정치적 이상이 나타나고, 이에 따라 열등한 인종에 대한 예속화와 절멸이 정당화된다.

7 인종주의의 역사 1) 고대와 중세의 인종주의 고대 이집트는 근본적으로 혼혈사회였다. 따라서 인종주의의 흔적을 볼 수 없었다. 고대 그리스는 주위의 다른 종족을 ‘바르바로이’ 즉 야만인이 라고 불렀다. 그러나 이는 그리스어를 아는지 모르는지의 문제이지 피부색과는 다른 개념이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노예제를 정당화하고 야만인을 경멸했으나 이는 용모나 피부색의 차이는 아니었다. 그는 자연스러운 노예제와 우연적인 관습의 노예제를 구분하였다.

8 인종주의의 역사 로마인들에게는 자신들과 다르게 생긴 사람들을 어떻게 질서가 잘 잡힌 자신들의 시민권 안으로 수용하는 지가 가장 큰 문제였다. 그들에게 인종차별과 노예제의 문제는 다른 개념이었다. 초기 기독교인은 일반적으로 흑인에게 부정적이지 않았다. 단지 신자와 비신자의 구별만이 중요시 되었다. 그러나 이들에게서 자연과 관습, 문명과 야만, 구제와 저주 등의 후에 인종주의를 유발시킬 개념이 나온다. 중세는 기독교와 이슬람의 갈등의 시기로 학살과 전쟁이 많았으나 기독교인들이 이슬람인을 무시하기에는 이슬람의 문화가 매우 앞서 있었다. 그러나 유대인은 이들의 박해의 대상으로 현재 인종주의와 유사한 태도를 볼 수 있다.

9 인종주의의 역사 1세기 경 로마시대의 박물학자인 플리니우스 Plinius는 그의『박물지』에서 인간과 짐승 사이의 이상한 존재를 상상했는데, 이는 중세인들이 이국인에 대해 몬스트라 monstra라는 표현을 하게 하였다. 예를 들어 피그미족과 같은 사람을 이들은 세례의 대상으로 인간으로 보아야하는지의 논란이 생겼다. 이러한 생각은 중세 말 야만인 savage man이라는 새로운 범주로 대치되었다. 야만인의 특징은 폭력, 성적인 방종, 이성의 결여. 예의와 문명의 결여, 도덕성의 결여 등으로 나타났다. 플리니우스

10 인종주의의 역사 2) 식민주의와 인종주의 16세기와 19세기 전반까지 15세기 포르투갈 선박들이 이슬람세력을 누르고 서아프리카 해안에서 흑인들을 납치하여 노예로 팔기 시작하며 근대적 인종주의가 시작되었다. 이들은 비유럽인들에 대한 착취, 억압 그리고 노예화를 신체적 차이가 아닌 문화적 원시성에 돌렸다. 또 종교적 요인도 중요시되었다. 아메리카 대륙의 식민지화 과정동안 원주민에 대한 억압과 노예제의 정당화를 위해 흑인은 인종적으로 열등하다는 인종주의적인 사고가 발달하였다. 이는 실은 모든 인간이 아담의 자손이라는 성경의 가르침과는 다른 것으로 백인의 우월함을 정당화하기 위한 시도였다.

11 인종주의의 역사 18세기 후반 독일의 블루멘바흐 (J. F. Blumenbach)는 인종주의를 이론화했는데, 환경적 요인이 하나의 인종 을여러 인종으로 분화시키고, 이 중 코카서스인이 가장 안정적인 형태로 다음은 몽골, 마지막으로 이디오피아인이 가장 퇴화되었다고 보았다. J. F. Blumenbach

12 인종주의의 역사 이러한 퇴화 공식은 19세기 중반까지 인종주의 사고의 중심이 되었다. 18세기 계몽사상가들에게도 인간의 보편성, 이성과 문명은 백인, 서유럽인과 동일어로 흑인, 홍인, 황인은 비이성과 동일어가 되었다. 이는 식민지 지배의 합리화에 이용되었다. 19세기 해부학에서 영국의 녹스 (R. Knox), 언어학에서 프랑스의 고비노 (J.-A. Gobineau)등의 이론도 이를 정당화 하였다.

13 인종주의의 역사 미국은 건국시 노예제도의 합리화가 매우 중요한 과제였다. 그런데 이는 건국이념인 자유와 평등의 원리에 위배되는 것이었다. 그러므로 열등한 종에 대한 논리가 필요하였다. 제퍼슨은 흑인이 더위에 강하기 때문에 육체노동에 적합하다고 주장했는데 인종주의는 결국 미국에서 가장 발전한다. 모튼 (Morton)은 이집트인의 두개골의 연구에서 두개골의 부피를 인간의 도덕적 자질과 연관시키고 고대 이집트의 지배계급이 코카서스인으로 이루어졌다고 주장하며 노예들은 대부분 흑인이었다고 주장하였다. 이는 백인 주인과 흑인 노예의 원형을 만들었다.

14 인종주의의 역사 노트 (J. C. Nott)와 글리돈 (G. R. Gliddon)은 1854년 『인간의 생태학』이라는 글에서 아프리카에서 발달한 이집트 문명이 흑인의 것이 아니라 코카서스인의 일종인 아리아인 것으로, 이들이 건너가서 이룩한 문명의 쇠퇴는 이들의 흑인과의 인종혼합의 결과라고 주장하였다.

15 인종주의의 역사 3) 현대의 인종주의 : 사회적 다윈주의와 인종주의, 반 유대주의 (19세기 전반에서 1945년 까지) 다윈『자연적 선택이라는 수단에 의한 종의 기원 (1859)』: 생물학 일반 이론의 선상에서, 현재 존재하는 모든 인류는 하나의 조상에서 비롯되었다고 믿었으나 자연적 선택에 의한 진화라는 개념을 사용함으로 여러 인종으로의 분리를 설명하였다. 단일인종설이 환경에 따른 변화를 주장하는데 비하여 그는 진화에 의한 변이를 주장하였다.

16 인종주의의 역사 이를 인간의 사회적 관계에 적용한 이론이 사회적 다윈주의로 스펜서 (H. Spencer)는 사회를 생물학적 유기체로 유추하였다. ‘적자생존’ ‘생존투쟁’이라는 단어는 그가 만든 것임. 그에 의하면 개인적인 생존투쟁, 계급적인 생존투쟁, 인종적, 문명적 생존투쟁이 모두 합리화 되었다. 이러한 이론은 특히 미국에서 환영받았다. 미국은 1860년 노예 해방에 의해 해방된 노예들을 예속시키는 것을 정당화 할 필요가 있었다.

17 인종주의의 역사 19세기 말 체임벌린(H. S. Chamberlin) 은 인종의 순수성이 가장 고귀한 가치라고 하며 혈통의 순수성, 아리안족의 순수성을 주장하였다. 이는 아리안 족의 가장 강력한 적인 유대인에 대한 증오의 근원이 되었다. 유대인은 고대 중동에서 우연적인 교혼에 의해 태어난 비자연적인 결과로 이 혈통의 억제가 필요하다고 하였다. 이러한 이론은 20세기 초 영국, 미국, 독일 등의 신학자와 과학자의 많은 지지를 얻었고 특히 히틀러에 영향을 끼쳤다. 1916년 미국인 그랜트는『위대한 인종의 사멸』이라는 책을 저술했다. 이는 당시 미국으로 유입되는 남동유럽인 즉 가톨릭교도와 유럽인의 이민을 막기 위한 공격이었는데, 1920년 미국의 북서유럽계를 우대하고 남동유럽, 아시아계를 홀대하는 근원이 되었다.

18 인종주의의 역사 반유대주의는 초기 이질적인 종교에 대한 것이었으나 점차로 ‘음모론’으로 변화한다. 1880년 이래 유럽과 미국의 우익세력은 마르크스주의 운동이나 1917년 러시아혁명을 유럽의 질서를 무너뜨리려는 유태인의 음모로 파악하였다. 포드, 히틀러, 윌슨, 후버 같은 사람들과 미국의『시카고트리뷴』,『더 타임즈』 같은 신문은 이러한 사상을 확대 재생산 하였다. 특히, 1930년대 대공황은 유대인의 금융 자본가들이 세계 경제를 장악하려는 ‘음모’로 해석하였다.

19 인종주의의 역사 히틀러의 반유대주의는 인종들의 적자생존의 원칙에 위한 투쟁이라는 그의 역사관과 ‘음모론’이 결함된 형태로 파악해야 한다. 즉 볼세비즘은 계급투쟁이라는 무기로 아리안족의 인종적 통일성을 약화시키려는 것으로 보고 ‘민족사회주의’를 주창하였다.

20 인종주의의 역사 4) 신우익의 등장과 신인종주의 (2차 세계대전 이후) 유대인 학살의 비극을 경험한 유럽 여러 나라들은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나라마다 약간의 차이는 있었으나 인종주의적 차별을 법으로 금지하였다. 이는 주택이나 고용에서 언어에 따른 차별까지도 포함된다. 이것은 또 한편으로 전후 유럽경제가 복구되어 급성장을 구가하면서 겪게 된 노동력 부족과도 밀접한 관계를 갖고 있다. 즉 노동력 부족을 막기 위해 터키, 유고슬라비아 및 과거의 식민지로부터 대량으로 받아들인 외국인들을 노골적으로 차별할 수가 없었던 것이다. 따라서 전후 유럽 각국에서 인종주의는 사라진 것 같이 보였다.

21 인종주의의 역사 1970년대에 이르러 ‘영광의 30년’이라는 경제호황이 두 차례에 걸친 오일 쇼크와 아시아 경제의 급성장에 따른 경쟁력 약화로 침체되자 1980년대 이후 다시 모습을 드러내며 점점 강해지는 추세에 있다. 또 동구권에서는 사회주의 체제가 붕괴하고 민족주의가 다시 발흥하며 반유대주의도 강화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특히 1990년대 들어 서유럽에서 아랍이나 터키계의 이민이나 외국인 노동자들에 대해 살인을 포함한 폭력행위가 증가하고 있다. 프랑스인권위원회(CNCDH)의 1993년 조사에 따르면 프랑스인 피조사자의 3분의 2가 자신이 “어느 정도는 인종주의적”이라고 답하고 있다.

22 인종주의의 역사 이는 유럽 각국에서 인종주의적 주장을 내세우는 극우정당들의 부상에서도 볼 수 있다. 르펜 (J-M Le Pen)이 이끄는 프랑스의 민족전선(Front National)은 1984년 이후 10퍼센트에서 14퍼센트의 지지율을 보이며 제3당의 위치를 차지하였고 특히, 2002년 대선에서 16.86%를 얻어 사회당을 누르고 제2당의 위치를 차지하였다. 2007년 대선 1차투표에서도 31.8%를 얻은 우파의 니콜라 사르코지, 25.87%를 얻은 좌파의 세골렌 루아이알 후보에 이어 10.44%를 얻어 3위를 차지하였고, 2012년 대선에서는 1차투표에서 17.90%를 얻어 다시 3위를 차지하였다.

23 인종주의의 역사 오스트리아의 경우 하이더(J. Haider)의 자유당은 1990년 의회선거에서 17퍼센트의 지지율을 보이고, 1999년에는 연립정당에 참여하는 데까지 이를 정도로 성장했다. 다른 나라에서도 극우정당의 영향력은 점점 커가는 추세이다.

24 인종주의의 역사 이러한 인종주의의 추세는 전통적인 생물학적 인종주의와는 다른데, 생물학적 인종주의는 1945년 이후 유네스코를 중심으로 한 국제적인 노력과 교육 등으로 불법화되었기 때문이다. 여기에 새롭게 등장한 것이 문화적인 인종주의이다. 이는 간단히 말해 비유럽계 소수 종족에 대한 그들의 공격은 피부 색깔 등 신체적 특징 때문이 아니라 자국의 민족정체성을 위협하는 문화 때문이라는 주장이다. 이들은 문화와 민족의 차이를 말하는 것은 차별이 아니라고 주장한다. 이를 ‘신인종주의’라고 한다.

25 인종주의의 역사 그러나 사실 이들의 인종주의적 주장은 문화와만 관련되는 것이 아니라 기본적으로 실업율의 증가에 따른 경제적인 불만, 과거 식민지 주민에 대한 백인으로서의 우월감, 이슬람 특히 이슬람의 ‘원리주의’에 대한 적대감 등이 뒤섞여 있다. 극우파들의 발언 중에는 과거의 생물학적인 인종주의를 연상시키는 주장도 심심치 않게 등장한다. 이들은 비백인 인종을 사회질서 해체의 표지로 생각하기도 하고 시 중심부의 황폐화, 성적 방종 등 인종과 관계없는 사항까지도 연루시키고 있다.

26 인종주의의 역사 문제는 새로운 인종주의를 불러오는 문제들이 단기간 안에 해결될 가능성이 없다는 점이다. 서유럽의 각 나라에서 많게는 수백만에 이르는 이민자들과 외국인 노동자들을 퇴거시키자는 극우파의 주장은 사실 실현가능성도 별로 없거니와 제3세계 경제를 파탄시키는 신자유주의의 국제정치, 경제의 흐름은 제3세계로부터 선진국으로의 이민과 유민을 계속 강요하고 있기 때문이다.

27 참고문헌 강철구,「서론: 서양문명과 인종주의-이론적 접근」 『서양문명과 인종주의』, 지식산업사, 11-45쪽
박단, 『프랑스의 문화전쟁-공화국과 이슬람』, 책세상, 2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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