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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chbishop Desmond Tutu Looks Back, Definitely Not in Ang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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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resentation on theme: "Archbishop Desmond Tutu Looks Back, Definitely Not in Anger"— Presentation transcript:

1 Archbishop Desmond Tutu Looks Back, Definitely Not in Anger
Rev'd Up Archbishop Desmond Tutu Looks Back, Definitely Not in Anger

2 남아프리카 공화국

3 남아프리카공화국-반인종주의 투쟁 저항과 투쟁의 시작 시민항쟁 흐름의 형성 항쟁의 변화와 발전 1497~98년 바스코다가마
1652년 백인 정착 시작 시민항쟁 흐름의 형성 1912년 선교단체의 원주민학교 흑인 엘리트계층의 자유주의 인식 ANC 아프리카전국모임 구성 항쟁의 변화와 발전 1913년 원주민토지법 1936년 흑인대표제법 1948년 총선 아프리카너(백인정착인) 민족당의 승리 아르파테이트 정책 체계화 1959년 PAN 분리 패스법 철폐 항쟁 넬슨 만델라 등 구속, 흑인학생운동 단체 결성 1979년 소웨토 봉기  국제연대운동 본격화

4 남아프리카공화국-반인종주의 투쟁 민주운동연합전선의 결성 항쟁의 발전과 무자비한 탄압 백인사회의 분열과 항쟁의 절정
1960~61년 법과 사회질서 보존 정책 1976~77년 모든이의 반아르파테이트 참여 1983년 민주연합전선(UDF) 결성 남아프리카민주정부의 이념적 기반과 토대 1984년 폭력 저항 가속화 1985년 정치 행정 치안제도 붕괴 항쟁의 발전과 무자비한 탄압 새로운 흑인저항정칭 문화운동체 잉카타 잉카타: 망고수투 브텔레지추장에의해 1928년 출발 1986년 남아공정부 비상계엄령 선포 백인사회의 분열과 항쟁의 절정 점진적 개혁, 흑인해방운동단체들과의 협상 제시가능 표명 미약한 개혁 1986~89년 ANC 사보타지, 공격 100여건 1989년 드 클렉 ANC와 협상 선포, 정치범 석방 1990년 넬슨 만델라 귀환 1994년 다인종 직접선거 ANC정권과 만델라의 화해정책

5 1652년 4월, 네덜란드 동인도회사가 건설하였으나, 그 후 영국계 식민활동의 기점이 되었다
케이프 타운 전경 남아프리카공화국 케이프타운. 1652년 4월, 네덜란드 동인도회사가 건설하였으나, 그 후 영국계 식민활동의 기점이 되었다

6 넬슨 만델라 1918년 남아공 트란스케이에서 출생. 태어나면서부터 부당하게 차별대우를 받게 된 만델라는 흑인의 인권을 위해 한평생 살아갈 것을 결심하게 되고 청년동맹과 민족회의를 결성해 저항운동을 전개. 44세 때 종신형을 선고받아 수감된 뒤 72세의 나이에 석방. 그는 350년에 걸친 인종차별 제도와 아파르트하이트(흑백분리정책)란 이름 하에 전세계적으로 악명높았던 남아공 백인정권의 흑백차별정책을 종식시켰고 흑인 다수사회인 남아공에서 백인통치를 끝내는데 결정적 업적을 남김. 그러한 노력의 결과로 그는 1993년 노벨 평화상을 받고 이듬해 대통령이 됨.

7 데스먼드 투투 요하네스버그 출생. 광산촌에서 가난한 흑인교육자의 아들로 태어나 밴투노르말대학 졸업 후 교사생활.
1958년 런던 킹스 칼리지에서 신학석사학위. 1961년 남아프리카공화국의 흑인으로는 처음으로 성공회신부로 서품. 1967년 귀국, 흑인학교인 포트해어대학의 교목이 되고 요하네스버그 성공회의 사제장(司祭長:수석신부)이 됨. 이 무렵 요하네스버그의 흑인도시 소웨토에서 남아프리카공화국의 인종분리주의정책에 반대하는 투쟁을 벌임. 1976년 레소토의 주교가 되어 그 곳에서 2년간 근무, 1978년 남아프리카공화국의 1200만 그리스도교도를 대표하는 남아프리카공화국교회협의회(SACC)의 사무총장이 되어 남아프리카공화국 인종정책에 비폭력투쟁으로 대항, 흑인의식화운동의 기수가 됨. 1984년 인종차별문제를 해결하려는 지도자로서의 공로가 인정되어 노벨평화상 수상.

8 “Rabble-Rouser for Peace”
Synopsis "Rabble-Rouser for Peace" is the first book to tell the full story of how a boy from South Africa's poverty-stricken black townships became one of the world's best-known religious figures, a moral icon to those who work for peace and justice everywhere. Published to coincide with his 75th birthday, "Rabble-Rouser for Peace" contains never before seen material, including details of secret files of the apartheid government, how the Nobel Peace Prize was actually won by Tutu, the truth about his relationship with F W de Klerk, as well as his criticisim of the Archbishop of Canterbury. Drawn from 30 years of the author's first-hand contact with Tutu, this is not only a vivid character study of a public figure with a unique capacity to communicate warmth, humour and compassion but also a rich account of his dynamic place in history. The story of Desmond Tutu's life tells a crucial part of South Africa's history and its movement towards peace, but it also follows the growth of one of the best loved and globally most recognised men of our time.

9 남아공 투투 대주교 부시비판 연극 출연 남아프리카공화국의 아파르트헤이트(인종차별정책) 철폐에 앞장서 1984년 노벨 평화상을 받은 데스몬드 투투(73ㆍ사진) 성공회 명예 대주교가 미국 한복판에서 테러와의 전쟁의 반 인권적 측면을 정면 비판하는 연극 무대에 섰다. 투투 대주교는 2일 밤 뉴욕 맨해튼에서 ‘관타나모-자유 수호를 위한 영예’란 오프브로드웨이(소극장) 연극에 출연해 조지 W 부시 미 행정부의 인권 무시 행태를 고발했다. 알 카에다 연계 혐의만으로 재판도 없이 2년간 관타나모에 수감돼 고문까지 당한 영국인의 실화를 바탕으로 한 이 연극에서 투투 대주교는 미국 정책의 법적 정당성에 의문을 제기하는 판사 역을 맡았다. 투투 대주교는 “미국인들이 ‘이게 우리가 바란 것인가’라고 자문하게 되길 바란다”며 “부시 행정부는 넬슨 만델라 전 남아공 대통령마저 테러리스트로 몬 아파르트헤이트와 같은 종류의 수단을 쓰고 있다”고 비난했다. BBC방송은 투투 대주교의 연극 출연이 미 대선을 한달 앞둔 정치적으로 민감한 시기에 이뤄졌다며 “부시 행정부에 대한 통렬한 고발”이라고 보도했다. -2004년 10월 3일 한국일보

10 아파르트헤이트 원래는 분리·격리를 뜻하는 아프리칸스어(語)
남아프리카에서는 약 16%의 백인이 84%의 비백인(非白人)을 정치적·경제적·사회적으로 차별해옴 백인우월주의에 근거한 이 인종차별은 17세기 중엽에 백인의 이주와 더불어 점차 제도로써 확립되어 왔는데, 1948년 네덜란드계 백인인 아프리카나를 기반으로 하는 국민당의 단독정부 수립 후 더욱 확충·강화되어 아파르트헤이트로 불리게 되었다. 아파르트헤이트는 반투 홈랜드(Bantu Homeland) 정책으로 대표되듯 인종격리정책에 의한 인종별 분리의 발전을 추진하는 한편, 다인종사회적 현장 속에서 반투 정청법(政廳法, 1951)·유권자분리대표법(1956) 등에 의하여 유색 인종의 참정권을 부정하고, 산업조정법(1956)·패스포드법(1952)·원주민법 수정법(1952)·이인종 혼인금지법(1949)·집단지역법(1950) 등에 의하여 경제적·사회적으로 백인의 특권 유지·강화를 기도한 것이다. 국민당 정권은 국제적 비난 속에서도 아파르트헤이트 정책을 강화해 왔는데, 1975년 이후 포르투갈 식민지 해체로 고립상황이 심화되었기 때문에 차별을 완화하면서 인종격리제도의 완성을 서두르는 방향으로 전환하였다. 홈랜드에 독립을 부여하는 정책이 그 대표적인 것인데, 그 목적하는 바는 절대다수인 아프리카인을 분리함으로써 형식상 소수백인적 상황에서 탈각(脫却)하려는 데에 있었다. 그러나 국제연합은 당연하게 이를 비난하고 나섰고, 국내에서도 1976년 6월의 소웨토(요하네스버그 주변의 흑인집단거주지역) 폭동 이후 아프리카인을 중심으로 하는 유색인종의 투쟁이 강화·확대되었다

11 피스잼 월드 컨벤션 (2006. 9. 17) 피스잼이 주최하는 청소년 컨퍼런스 행사.
달라이 라마, 데스몬드 투투대주교를 비롯해 전세계적인 인사 10명이 참석해 DU의 매그네스 체육관을 가득메운 7000명의 관중들에게 세계평화에 관한 의견을 이야기하고 청소년들의 질문에 답한다. 올해에는 대부분의 연사들이 미국과 부시 행정부의 이라킄와 아프가니스탄 침공을 비난해 정치적 성향이 짙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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