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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미술사 정헌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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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0 -베를린에서 다다 페어가 열린다 -아방가르드 문화와 문화적 전통의 양극화로 예술작업은 정치화되고 포토몽타주가 새로운 매체로 등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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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스크바 미술문화연구소의 회원들이 구축주의를 새로운 공동사회의 요구에 부응하는 논리적 실천으로 규정한다.
1921 -모스크바 미술문화연구소의 회원들이 구축주의를 새로운 공동사회의 요구에 부응하는 논리적 실천으로 규정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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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스 프린츠호른이 <정신병자의 조형 표현>을 출판하고 파울 클레와 막스 에른스트는‘광인의 미술’을 탐구한다.
1922 -한스 프린츠호른이 <정신병자의 조형 표현>을 출판하고 파울 클레와 막스 에른스트는‘광인의 미술’을 탐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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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세기 모더니즘 미술과 디자인에 가장 많은 영향을 준 바우하우스가 독일 바이마르에서 첫 공식 전시회를 개최한다.
1923 -20세기 모더니즘 미술과 디자인에 가장 많은 영향을 준 바우하우스가 독일 바이마르에서 첫 공식 전시회를 개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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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앙드레 브르통이 창간한 잡지, <초현실주의 혁명>을 계기로 초현실주의 미학의 기초가 마련된다.
1924 -앙드레 브르통이 창간한 잡지, <초현실주의 혁명>을 계기로 초현실주의 미학의 기초가 마련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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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5 -파리에서 열린 아르 데코 전시가 근대적 키치의 탄생을 공식화한 반면, 르 코르뷔지에의 기계미학은 모더니즘의 악몽이 되고 알렉산드르 로드첸코의 노동자 클럽은 인간과 사물의 새로운 관계를 주창한다. -엘리시츠키의 <제품 시연실>과 쿠르트 슈비터스의 <메르츠바우>가 독일 하노버에 설치된다. 이들은 아카이브로서의 미술관 건축을 통해서 멜랑콜리아로서의 모더니즘 공간의 알레고리를 변증법적으로 구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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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양한 프로젝트와 기원을 가진 베를린 다다 운동이 대중 앞에 공식적으로 모습을 드러낸 행사.
1920 : 베를린에서 다다 페어가 열린다 아방가르드 문화와 문화적 전통의 양극화로 예술 작업은 정치화되고 포토몽타주가 새로운 매체로 등장한다. 다양한 프로젝트와 기원을 가진 베를린 다다 운동이 대중 앞에 공식적으로 모습을 드러낸 행사. 전시가 아니라 아트 페어로 소개된 전시. 진열장 디자인이나 제품 발표회 차원에서 상품 디스플레이를 패러디. 전시의 구조와 출품된 미술 작품을 급진적으로 변형시키려 했던 다다 미술가들의 의도를 명확히 드러냄. 베를린의 오토 뷔르하르트 박사의 쿤스트살롱에서 열린 제 1회 국제 다다 페어, 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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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다: 소란과 파괴 다다는 미학적인 것과 정신적인 것을 융합하려는 표현주의에 저항해서 반-미학의 모델을 구축했다.
다다는 미학적인 것과 정신적인 것을 융합하려는 표현주의에 저항해서 반-미학의 모델을 구축했다. 다다는 표현주의가 미학적인 것을 신비적인 것과 동화시켜서 인간 경험의 보편성을 주장하려고 하는 점에 반대하고, 예술 작업의 정치적 세속화를 추구했다. 베를린 다다의 하트필드와 그로츠 등은 좌파로서 공산당과 목표를 같이 하면서 명백히 정치화된 아방가르드를 기획했다. 이 기획은 고급미술의 부르주아적 개념에 대한 비판부터, 프랑스 다다의 수용, 바이마르 출판 산업이라는 신흥 대중문화 권력을 뒤흔들고자 했던 몽타주 기법의 체계적인 전개에 이르기까지 그 범위가 매우 광범위했다. 특히 포토 몽타주 작업은 대중문화 이미지의 힘을 미학화시키고 탈정치적으로 접근하고 있는 입체주의에 대한 조롱으로 해석될 수 있다. 라울 하우스만과 한나 회흐는 자신들이 대중적인 모델에서 이미지 병합과 변형에 대한 영감을 얻었다고 하였다. (예: 군인들이 전선에서 집으로 보낸 그림엽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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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매체, 부르주아 미학을 대체할 수 있는 가능성에 대한 탐구
입체파의 콜라지에 영향을 받았지만 그것을 정치적 발언의 도구로 삼을 수 있다는 점에 주목. Club Dada artists such as Johannes Baader, Otto Dix, George Grosz, Raoul Hausmann, John Heartfield and Hannah Höch took this tone to reflect their collective disgust with German nationalism in the struggling post-World WarI Deutsches Reich (German Empire). Raoul Hausmann, Tatlin at Home, 1920 라울 하우스만, Mechanical Head (Spirit of The Age), 나무, 가죽, 알루미늄, 황동, 합판, 32.5x21x20c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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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장인물: 바이마르 공화국의 유명 인사들 *스파르타쿠스단 단원들의 암살을 주도한 독일 사회민주당 출신의 바이마르 공화국 대통령 프리드리히 에버트 그가 처형한 로자 룩셈부르크와 카를 리프크네히트 그 둘을 손에 쥐고 있던 내무장관 구스타프 노스케 *알베르트 아인슈타인, 케테 골비츠, 무용가 나디 임페코벤 등의 문화계 인물들 이 인물들은 모두 위계질서나 구성, 배치 방식과 상관없이 작품 전체에 흩어져서 ‘다다’라는 무의미한 단어들을 연상시키는 다양한 텍스트 파편들과 섞여있다. 반어법적으로 표현된 내러티브에서부터 순수하게 구조적으로 배치된 텍스트 요소에 이르기까지 회의의 작업이 보여주는 가능성들은 포토몽타주 자체의 변증법적 작용의 축을 이룬다. 한나 회흐, Cut with the Kitchen Knife through the Beer Belly of the Weimar Republic <바이마르 공화국의 맥주 복부를 부엌칼로 자르다>, 1919, 콜라주, 114x89.8c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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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토몽타지 (독일 바이마르 미술, 소비에트 아방가르드)
작가들은 대중문화에서 사진 이미지가 부각되면서 시각 세계에 사진이 광범위하게 보급됐음을 발견했다. 바이마르 진영과 소비에트 아방가르드 진영은 모두 기존의 의미론적 체계를 벗어난 의미를 만드는 작업을 했다. 시각적, 텍스트적 단일성을 파괴하고, 텍스트나 도상의 기의가 갖고 있는 보편적인 가독성보다 기표의 물질성을 강조 시공간적인 측면에서 경험의 균열과 불연속을 역설 가독성의 구조에 대한 공격의 배후에는 대중문화가 생산하는 상품 이미지와 광고가 조장하는 신화적 재현을 해체하려는 비판적 충동이 존재 포토몽타주는 새로운 유형의 미술을 만들려는 그들 공통의 욕망을 드러낸다. 새로운 유형의 미술이란 일시적인 것, 즉 본질적인 가치나 초역사적 가치를 주장하기보다 개입과 균열이라는 과점을 취하는 미술 이는 대중문화적 재현의 매체 안에서 작업하려는 포토몽타주 미술가들의 정치적 지향을 분명히 밝혀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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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토몽타주에서 새로운 내러티브로 Raoul Housmann, Off and fmsbw, 1918 글자와 음성의 파편들로 언어 기호를 해체하거나 사진 이미지에 중점을 두면서 텍스트적 요소들을 파편화 하는 등, 파편만으로 기묘한 수수께끼 같은 형상을 제작했던 초기 포토몽타주. Gorge Grosz & John Heartfield, Life and Activity in Universal City at 12:05 middy, 19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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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트필드가 시도한 새로운 형식의 포토몽타주는 정치적 좌파 진영이 신흥 노동계급이라는 관람자에게 다가가기 위한 것
균열은 내러티브로 대체되고 질감, 표면, 재료의 불연속성은 하트필드의 세심한 에어브러시 기법에 의해 인위적으로 균질화된다. 언어를 자소나 음소로 분리시키는 극단적인 형식들은 폐기되고 변증법을 통해 뜻밖의 이야기를 만드는 캡션 삽입이 선호되었다. 이러한 주석은 상이한 유형의 역사적 정치적 정보를 무작위로 병치시킬 때 더욱 효력을 발휘. 하트필드의 시도는 포토몽타주를 인쇄 매체이자 더 나아가 대중문화적 커뮤니케이션 도구로 생각하고 포토몽타주의 배포 형식을 변형하기 위한 것이었다. 존 하트필드, 히틀러 경례의 의미(작은 남자가 큰 선물을 요구한다. 모토(백만장자가 내 뒤에 있다, 포토몽타주, 38x27c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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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치, 균열, 파열, 파편화 기법은 여전히 사용되고 있으나, 전혀 다른 목적에 사용될 수 있는 새로운 통일성을 산출.
무솔리니의 머리는 안쪽에서 베어 나오는 듯한 해골 이미지와 합쳐져 있고, 작은 사진들이 그 주변을 둘러싸고 있다. 우측에는 폭력의 희생자들과 로마 교황과 카톨릭 교회의 존엄을 상징하는 이미지가 합쳐지고 좌측에는 중산모를 쓴 부르주아 자본가와 무장한 파시스트 폭력배들이 합쳐진다. 대항과 저항의 전략 안에 문화 프로젝트를 위치시켜야 할 필요성에 대한 인식 John Heartfield, The Face of Fascism, 19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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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호 작용에서 커뮤니케이션 행위로 구스타프 클루치스, 위대한 프로젝트의 계획을 완수하자, 1930. 석판화 포스터
John Heartfield, Adolf—the Superman, Swallows Gold and Spouts Junk, 19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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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트필드와 클루치스는 포토몽타주를 이용해서 미술 모델의 하나로서 선동을 유발한 최초의 아방가르드였다.
20세기 미술은 선동을 모더니즘 정의에 대한 직접적인 대항으로 여겼으므로 선동을 멀리해왔다. 그러나 선동이라는 용어에는 조종과 정치화, 그리고 주관성의 해체를 알리는 순수 도구화의 의미가 함축되어 있다. 허트필드와 클루치스의 작업은 여태까지 미술을 규정해왔던 배포의 제도와 형식에 개입했다. 그들은 단 하나밖에 없는 오브제의 미학을 인쇄된 잡지의 대중문화적 배포에 내재된 미학으로 변형하는 문제를 연구했다. 특권화된 관람자에서 소비에트의 산업혁명 혹은 바이마르 독일의 변화된 산업 조건을 통해 새로이 등장하고 있던 참여 대중으로 이동한 관람자의 문제를 탐구했다. 언제나 세력이 커져만 가는 대중문화적 선동, 즉 광고의 현재 형식에 대한 대응 형식으로서의 선동은, 다다와 소비에트 아방가르드가 현행의 대중문화 형식에 대해 순수와 추상으로 대립하는 부르주아의 선구적 모델이 여전히 갖고 있는 모순을 없애기 위해 착수한 계획적인 프로젝트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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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1: 모스크바 미술문화연구소의 회원들이 구축주의를 새로운 공동사회의 요구에 부응하는 논리적 실천으로 규정한다.
1921: 모스크바 미술문화연구소의 회원들이 구축주의를 새로운 공동사회의 요구에 부응하는 논리적 실천으로 규정한다. 인훅 (Inkhuk) : 모스크바 미술문화 연구소 초대 소장은 바실리 칸딘스키 알렉산드르 로드첸코를 추종하는 일련의 신진 그룹은 심리학에 근거한 칸딘스키의 프로그램이 반혁명적인 정도는 아닐지라도 진부하다는 이유로 거부했다. 1921년 12월 22일, 바바라 스테파노바가 <구축주의에 대하여>라는 글을 인훅의 동료들 앞에서 발표: 스스로 미술행위를 포기했지만 아직은 산업 생산에서 필요한 기술 지식을 갖추지 못한 소비에트 미술가들의 존재를 어떻게 정당화할 것인가에 대해 토론. 이미 한 달 전, 인훅의 구축주의 작가들은 ‘이젤주의’를 폐기하고 ‘생산’으로 이동할 것을 결의. 예술의 완전한 종말을 예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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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나라로 ‘혁명을 퍼뜨릴’ 임무를 띤 소비에트 조직인 코민테른의 지부 사무실
사선과 수직의 얇은 나무 뼈대가 복잡하게 얽혀서 그물망을 이루는 기울어진 두 개의 맞물린 나선형의 원뿔형 틀 안에 유리로 만든 네 개의 기하학적 입체가 일렬로 떠 있다. 다른 나라로 ‘혁명을 퍼뜨릴’ 임무를 띤 소비에트 조직인 코민테른의 지부 사무실 하단의 원기둥: 회전 속도 1년; 인터내셔널의 ‘의회’를 위한 건물 중앙의 기울어진 피라미드: 회전 속도 1달; 임원진 사무실 상단의 원기둥; 회전 속도 1일; 선동부 사무실 최상층의 작은 반구형; 회전 속도 1시간; 전망대 Vladimir Tatlin, Monument for the Third International의 최초 모형, x640cm (실물—396미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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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 인터내셔널을 위한 기념비 건립을 위한 세가지 방향
첫째, 이 기념비는 혁명을 기념하기 위해 여기저기 세워진 볼썽사나운 기념비들과 달리 확연하게 ‘근대적’인 것이어야 한다. 이는 타틀린이 년에 조각적 부조에서 발전시킨 ‘물질문화’, 즉 ‘물질에 대한 충실함(팍투라)’ 의 원칙을 따르고 있다는 점에서 의미가 깊었다. 둘째, 이 기념물은 완전히 기능적이고 생산주의적 사물로서 주 용도가 라디오 송신탑이었던 에펠탑을 능가할 것이다. 셋째, 모든 공공기념비와 마찬가지로 이 기념물은 ‘역동성’을 혁 명의 정신으로 명쾌하게 설명해주는 상징적 지침이 될 것이다. (텍토닉스) * 노동 그룹의 구성원들은 기념비가 지닌 두 개의 측면, 즉 팍투라와 텍토닉스의 모순을 지적: 외로운 미술가가 작업실에 은둔하면서 전통적인 수공예의 도로로 정교하게 만든 낭만적 물건으로 보았다. 또한 형식적 구조 역시 ‘부르주아 개인주의’의 악취를 풍기는 해독 불가능한 비밀로 남아있다고 비난. ** 이것이 구축 (construction)dl 아니라 작가의 독자적 구성(composition)이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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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축/구성 논쟁 구축 construction 구성 composition
“물질이나 요소의 과잉’도 수반하지 않는 “과학적” 방식이나 조직화에 근거를 둔다. “동기를 부여 받은” 기호. 구축의 형식과 의미는 여러 종류의 물질들 간의 관계에 의해 규정되므로 (동기를 부여 받으므로) 구축의 자의성은 제한되어 있다. (도상학적 구성 요소들을 빌려올 수 없다.) 구성 composition 구성은 “자의적”이다. 과잉=낭비=부르주아 향락주의=도덕적으로 비난 받을 만한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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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이여 안녕 오브모후 그룹전, 모스크바, 1921년 5월 칼 이오간손, 균형 연구 Study in Balance, 19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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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에는 (빌려온 이미지가 없으므로) 어떤 선험적 개념도 없고 작업의 모든 양상이 그것의 물질적 조건에 의해 결정됐다.
알렉산드르 로드첸코, 타원형의 매달린 구축물 12번 (Oval Hanging Construction No.12, 1920. ‘과학적’ 방식의 증거로 간주됨 여기에는 (빌려온 이미지가 없으므로) 어떤 선험적 개념도 없고 작업의 모든 양상이 그것의 물질적 조건에 의해 결정됐다. 중심점을 기준으로 회전하면서 삼차원의 다양한 기하학적 입체를 만들어낸다. 쉽게 접어서 원래의 평면 상태로 되돌릴 수 있었고, 그런 방식으로 작품의 생산 과정을 드러낼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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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렉산드르 로드첸코, Pure Red Color, Pure Yellow Color, Pure Blue Color, 1921
알렉산드르 로드첸코, Pure Red Color, Pure Yellow Color, Pure Blue Color, oil on canvas, 62.5x52.5cm <5x5=25>전시, 1921년 9월 인훅의 환원을 회화에서 극단으로 끌고 가면 결과적으로 순수한 그리드나 순수한 모노크롬이 될 수밖에 없었다. 즉 추상을 결정짓는 요소 중 회화의 가능성을 찾는다면 형상과 배경 간의 대립이 있고 이것은 상상의 공간, 구성, ‘과잉’으로 발현될 것이다. “나는 회화를 그것의 논리적 귀결로 환원시켜 세 개의 캔버스를 전시했다. 즉 빨강, 노랑, 파랑이다… 단언하건대 모든 것이 끝났다. 원색이다. 모든 평면은 하나의 평면이다. 그리고 더 이상 재현도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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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2: 한스 프리츠호른이 <정신병자의 조형 표현>을 출판하였다
1922: 한스 프리츠호른이 <정신병자의 조형 표현>을 출판하였다 폴 클레와 막스 에른스트는 ‘광인의 미술’을 탐구한다. 표현, 유희, 장식적 정교함, 패턴식 배열, 강박적 묘사, 상징체계의 충돌과 상호작용 원시인, 어린 아이, 광인: 심신 발달의 초기 단계로의 퇴행, 혐오스러움의 모델인가, 때묻지 않은 창조성의 모델인가? 정신분열증 환자 435명의 작품 4500점을 수집, 이중 187개의 이미지를 수록, 특히 이 중 10명의 ‘대가들’을 선별, 그들의 조형 표현의 특성을 설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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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ul Klee, The Saint of Inner Light, 1921. lithography, 17.5 x 31 cm
1937년 나치가 개최한 <퇴폐미술전> 팸플릿, 하단: 무명 정신분열증자의 작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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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generate art is the English translation of the German entartete Kunst, a term adopted by the Nazi regime in Germany to describe virtually all modern art. Such art was banned on the grounds that it was un-German or Jewish Bolshevist in nature, and those identified as degenerate artists were subjected to sanctions. These included being dismissed from teaching positions, being forbidden to exhibit or to sell their art, and in some cases being forbidden to produce art entirely. Degenerate Art was also the title of an exhibition, mounted by the Nazis in Munich in 1937, consisting of modernist artworks chaotically hung and accompanied by text labels deriding the art. Designed to inflame public opinion against modernism, the exhibition subsequently traveled to several other cities in Germany and Austria. While modern styles of art were prohibited, the Nazis promoted paintings and sculptures that were traditional in manner and that exalted the "blood and soil" values of racial purity, militarism, and obedience. Similarly, music was expected to be tonal and free of any jazz influences; films and plays were censor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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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열증의 대가들 프린츠호른에 의하면 표현과 유희로의 충동은 세계를 향해 열려 있는 주체를 시사하지만, 강박적 장식화, 배열하기, 모사하기, 체계 세우기 등과 같은 다른 충동들은 세계 (그것이 내면의 세계이든 외부의 세계이든)로부터 스스로를 완고하게 방어하는, 즉 세계에 참여하지 않는 주체를 시사한다. “아무리 고독한 미술가라도 현실과의 접촉을 유지하고 있다. …. 반면 정신분열증 환자들은 인간으로부터 거리를 둔다. 그리고 그들은 인간과의 관계를 다시 설정할 의지가 없을 뿐 아니라 그렇게 할 수도 없다…. 이 그림들에서 우리가 느끼는 것은 자폐적인 철저한 고립, 그리고 정신병적 소외의 한계를 휠씬 넘어서는 섬뜩한 유아론이다. 우리는 이 그림들로부터 정신분열증적 형태의 본질을 발견했다고 믿고 있다.” --프린츠호른 폴 클레, 막스 에른스트, 장 뒤뷔페 등은 모두 프린츠호른의 저서에 대해 잘 알고 있었다 이들은 글쓰기와 드로잉을 뒤섞어 놓은 환상적인 방식을 사용했고, 형식적인 실험보다 심리적인 혼돈을 연상시키는 신체의 왜곡을 통해 주로 진행됐다. 인물의 눈이나 머리를 크게 확대하거나 (어린 아이 그림의 특징), 신체의 다른 부위들을 확대하여 장식적으로 반복되는 문양을 만들거나 (정신분열자의 재현에 나타나는 경향), 신체의 특정 부분을 다른 부분에서 반복하기 (self-disloca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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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상과 배경이 붕괴되고 주체와 공간이 합쳐진다.
공간 속에서 길을 잃은 주체의 공포 형상과 배경이 붕괴되고 주체와 공간이 합쳐진다. 경계선에 대한 불안감은 이런 붕괴, 즉 세계를 소외되고 적대적으로 보는 편집증적인 환상에 대한 대응으로 발생한다. 경계선은 때때로 지워지거나 과장된다. 때로는 너무나 과장되어 다시 지워져 버리는 수준에 이르게 된다. 이는 자아와 세계 사이의 경계를 강조하고 이를 통해 자율성에 대한 인식을 꾀하려 하지만, 그 시도 속에서 오히려 그 구분이 제거됨을 묘사한 듯하다. Paul Klee, 거주자가 있는 방 투시도, 수채와 유화 드로잉, 48.5x31.5c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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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이는 대상이 보는 주체가 되어 버린 것에서 느끼는 공포
Max Ernst, The Master’s Bedroom, c 교과서 한 페이지에 콜라주, 과슈, 연필, 16.3x22cm. 보이는 대상이 보는 주체가 되어 버린 것에서 느끼는 공포 기이한 거주자들과 왜곡된 공간 모두는 마치 오랫동안 억압됐던 외상적 환상이 갑작스레 돌아와 그 ‘주인’을 사로잡아 버리는 것처럼 미술가-관람자를 응시하면서 위협을 가하는 듯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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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이의 세계들 클레의 1920년 저서, <창조적 신조 Creative Credo>: “미술이란 보이는 것을 그리는 것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것을) 보이게 만드는 것이다” 어린이, 원주미, 광인은 “우리가 감각을 통해 지각하는 세계 사이에 존재하는 ‘사이의 세계(in between world)’에 살고 있기에 여전히 볼 수 있는 힘을 갖고 있거나, 그 힘을 재발견한다.” 정신분열증자의 미술을 표현적인 것으로 보길 원했던 프린츠호른은 결국 그 미술이 대부분은 본질적으로는 비- 표현적임을, 다시 말해 단지 사회로부터의 벗어남을 표현한 것일 뿐임을 발견. 클레는 때 묻지 않은 순수한 환영을 보길 원했지만, 오히려 공포에 가까운 강렬함을 발견. <정신병자의 조형 표현>에 실린 도판에 깊이 공감.—그러나 이 지점, “직접적이고 영적인 환영”의 힘에 이끌릴 때, 즉, “보이게 하는” 표현에 접근할 때, 클레는 미술가를 정복해버리는 이미지의 위험에 직면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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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이의 세계들 정신분열증 환자 중의 한명 그의 종교적 환상 속에서 너무도 명백하게 보이는, 억누를 수 없는 강조로 빛나는 이미지 Johann Knupfer, "Monstrance Figu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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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스로 조립된 작은 기계>에서 신체는 고장 난 기괴한 장치이다.
왼쪽에는 숫자가 매겨진 홈이 있는 원통형 인물이, 오른 쪽에는 카메라와 총을 연상시키는 삼각대 인물이 있다. 이 군사-산업 근대성의 주체는 그 역할이 기록 기계와 살인 기계라는 두 가지 기능만으로 축소된 듯 보인다. 아래에는 갑옷을 입은 이 해부도에 대한 혼란스러운 설명이 독일어와 불어로 적혀 있는데, 그 내용에는 마치 아이나 정신분열증자가 한 것인 양 섹스와 분변학이 뒤섞여 있다. 상처 입은 자아의 기계적 대체물; 소외된 자아를 그린 이 초상을 통해 에른스트는 군사-산업 주체로의 발달을 일종의 고장 난 기능과 병든 충동으로의 퇴행으로 그려 낸다. Max Ernst’s Self-Constructed Little Machine is a pencil sketch that unites the Dadaist concern with the possibility of personal and cultural destruction by the machine (a response to World War I), and the surrealist fascination with Freud. This image depicts two machines placed on either side of the paper with an explanation of the scene in Ernst’s own handwriting that seems to be “a confused account…that conflates sex and scatology.”[1] From simply viewing the image, the depicted machines might be hard to categorize. The machine on the right somewhat resembles a wind turbine with capital letter A’s placed in a round near the top, with what a viewer of today might recognize as a solar panel above it- though this object would not have been known to Ernst at the time of the image’s creation. The machine on the left resembles a giant saw, waiting at ready for someone to pull it down and cut something. Art historians have discovered that the image is actually based on a “found printer’s proof” depicting a “drum figure with numbered slots” on the left and a “tripod personage” on the right[2]. Ernst also plays with the spatial relation of the two objects by adding a mismatching tilt to the flat surface lines on which they appear to stand. The numerous effects and visual oddities within this work can be explained to have origins and relations to both the Dada and Surrealist movements. Its inspiration from a found object is representative of the Dadaists play with such objects in novel combinations as a way to create a feeling of shock and to cause reason for societal evaluation and revolution; while the fact that the original object was a printer’s proof is indicative of Dada’s embrace of the “new synthesis of avant-garde art with technology.” This represents both Dada’s critique of and reliance on the materials and machines of modern society. While a large part of the Dadaist artistic and political motivations were a reaction to the destructive and negative world changes brought about by the machine as a response to WWI, they also embraced the new mechanical advances in printing technology as a way to spread their ideas to a greater population[3],[4] . The Self-Constructed Little Machine can also be linked to ideas within the production of “the art of the insane”- with which Ernst dedicated himself to while still in his Dadaist phase. The modernist interpretation of the art of the insane as “directly revelatory of the unconscious” came from the publications of the psychologist Lombroso, whose ideas surfaced in the early 1920s.[5] Ernst used the “disturbances of schizophrenic representation” to “disrupt the principle of identity” in terms of both art and the self. It is this freedom from reality that lead Ernst to develop the idea of the body as a “dysfunctional machine” which can be seen within this image, and within some of his early Dadaist collages.[6] Upon closer examination of the work itself, one discovers the hidden bodies within the machines; the object on the right a knock-kneed quasi-man with the protruding A's as arms, and the solar panel type object as a head. There is also a long cylindrical object placed between the “legs” which can be thought of as a phallic symbol. Its detachment from the body is crucial in light of the burgeoning interest in Freud at this time, as a possible representation of the male castration anxiety. The object on the left can be seen not only as the source of this castration anxiety in the female form (suggested by the numbered slots in the drum, or the slot in the middle of the base of the machine), but also as the saw itself which physically removed the phallic shape from the body of the machine-man on the right. On the base of the “female” machine there appears to be a pair of glasses, which could represent the new vision of reality, of the self, and of the female counterpart that was revealed through the experience of a young boy’s realization that his mother does not have the same parts that he does. This integration of symbols that represent castration anxiety into the image can be seen as a connection and possibly an influence to the Surrealists, whose main preoccupation was the depiction of the ideas of psychoanalysis and dream images. To read more about Max Ernst’s pivotal role in the transition from Dadaism to Surrealism and for an in-depth look at his work, Massacre of the Innocents…check back here tomorrow! Unless otherwise noted, the thoughts an opinions in this article are solely those of the author: Sadie Faye Max Ernst, Self-Constructed Small Machine, c 스탬프와 연필, 종이에 잉크, 46x30.5c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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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3: 20 세기 모더니즘 미술과 디자인에 가장 많은 영향을 준 바우하우스 (1919-1933)가 독일 바이마르에서 첫 공식 전시회를 개최한다.
라이오넬 파이닝어, 미래의 교회, 1919 바우하우스 1919 프로그램을 위한 목판화 바이마르 바우하우스의 커리큘럼, 19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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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우하우스 교육 초대 교장인 발터 그로피우스는 개교 당시 바우하우스를 “미술 아카데미의 이론과 미술 공예학교의 실습을 겸비한 종합적인 시스템”으로 규정 바우하우스의 사상은 건축학 아래에 순수미술과 응용미술을 통합해서 새로운 ‘총체예술(Gesamtkunstwerk)을 만드는 것 최초의 커리큘럼은 두 개의 기초과정으로 구성 조각, 목공, 금속, 도자, 스테인드글라스, 벽화, 텍스타일 등의 공예 공방; 공방 마이스터 (장인) 미술의 형태에 대한 교육, 자연과 재료에 대한 연구; 재료, 도구, 만들기, 재현에 대한 교육, 공간 색채, 구성에 대한 이론 스튜디오; 형태 마이스터 (미술가) 최초의 세 명의 교수는 스위스 화가 오하네스 이텐, (기초과정 개발), 독일계 미국인 화가 라이오넬 파이닝어, 도자를 가르친 독일 조각가 게르하르트 막스 이후 오스카 슐레머,클레, 칸딘스키, 모호이 너지, 요제프 알베르스 등의 마에스터가 합류. 산업 참여라는 바우하우스의 새로운 목표는 공예 부흥이라는 오래된 목표와 마찬가지로 잘 실현되지 않았다. 노동을 어떻게 예술적인 학문과 기능공적 실습으로 나눌 수 있으며, 당시 빠르게 진행되고 있었던 독일의 자본주의적 근대화에 이 두 목표를 어떻게 적용할 것인가가 문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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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콜라주, 포토몽타주, 포토그램, 금속 구축물 등에 관심
공예에서 산업으로 포르쿠르스(Vorkurs): 신입생을 위한 6개월 예비 과정 1923년 책임교수가 사물들의 정신을 포착할 것을 요구했던, 수도사 차림의 이텐에서 합리주의자이자 엔지니어 같은 모호이-너지로 바뀌었다. 모호이 너지는 기계가 당대의 시대정신이라 보았고, 바우하우스는 자연 재료나 옛 대가들과 함께 하는 명상적 훈련의 시대가 가고 새로운 매체와 산업 기술을 구축주의적으로 분석하는 시대로 접어들었다. 사진, 콜라주, 포토몽타주, 포토그램, 금속 구축물 등에 관심 라슬로 모호이-너지, 빛-공간 변조기 Light-Space Modulator, 1930. 전기모터, 강철, 플라스틱, 기타 재료로 만든 키네틱 조각, 151x70x70c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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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오넬 파이닝어, 미래의 교회, 1919 바우하우스 1919 프로그램을 위한 목판화 요스트 슈미트, 1923년 7~9월 바이마르에서 개최된 바우하우스 전시 포스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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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alter Gropius, Bauhaus, Dessau, c.1925.
1925년 바우하우스가 데사우로 이전하면서 그로피우스가 디자인한 모더니즘 양식의 공장에 둥지를 튼 바우하우스는 새 프로그램을 갖춘 디자인 연구소로 개명하고 매매, 특허 주식회사를 설립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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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우하우스 논쟁 원칙적으로 바우하우스는 항상 사회주의적이었지만 이것은 사회경제적 모순에 부딪히자 변화했다.
원칙적으로 바우하우스는 항상 사회주의적이었지만 이것은 사회경제적 모순에 부딪히자 변화했다. 첫 번째 시기: 중세의 길드와 같은 과거의 모델을 목표로 삼았을 때 바우하우스는 건축 아래에 통합된 미래의 미술가-장인 유토피아를 주장했다. 두 번째 시기에 이 미래주의적 동맹의 미술가-장인은 산업디자인 분야의 새로운 동업자 중 하나가 됐다. 어떤 점에서 바우하우스의 역사적 모순은 바로 ‘바우하우스’라는 단어 자체에 있다. 사실 이 이름은 중세의 ‘바우휘테 (Bauhutte)’ 즉 석수 공방이라는 단어에서 파생된 단어였다. 1919년 무정부적 국가는 패전, 황제의 퇴위, 실패한 혁명에 피폐해져서 문화 공동체를 재건할 수 없었던 상황 1923년의 부실한 바이마르 공화국은 인플레이션에 발목이 잡혀 산업적 근대화를 이룰 수 없었다. 1923년 후반 통화의 개혁 이후 1929년 뉴욕 월스트리트 증시의 대 폭락 사이의 짧은 시기, 바우하우스는 산업디자인으로 옮겨 감 1933년 히틀러가 집권하면서 폐교 조치; 나치 탄압의 척 목록에 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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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rianne Brand, 침실 램프, 1928 Marcel Breuer, Slatted Chair, 19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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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4: 앙드레 브르통이 창간한 잡지 <초현실주의 혁명>을 계기로 초현실주의 미학의 기초가 마련되다.
1924: 앙드레 브르통이 창간한 잡지 <초현실주의 혁명>을 계기로 초현실주의 미학의 기초가 마련되다. La Révolution surréaliste 12, ed. André Breton (Paris, December 15, 1929), cover. La Révolution surréaliste 12, ed. André Breton (Paris, December 15, 1929), p.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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앙드레 브르통의 아방가르드 선언문 초현실주의: 명사… 순전히 심리적인 자동기술법…여타의 미학적, 도덕적 관심과 무관하며 이성의 통제 없이 사유에 의해 구술된 것 두 가지 방법론: 1. 자동기술법적 글쓰기 automatic dictation 2. 꿈이 제공하는 비이성적인 내러티브의 구사 잡지 <초현실주의 혁명> 창간 브레통에게 영향을 준 두 개의 사건 파리의 발 드 그라스 병원에서 전쟁의 충격으로 신경증을 앓던 환자들을 간호하는 간호병으로 복무: 무의식, 쾌락 원칙, 증상과 꿈의 표현 가능성, 거세 공포, 죽음 충동 등과 같은 정신분석학의 개념들을 열렬히 수용하게 됨 자크 바세를 통해 다다의 감수성을 처음 접하게 된 일 삶은 예측할 수도, 통제할 수도 없는 충격의 연속이라는 생각은 브르통과 바세에게 있어 일종의 영화 구경 같은 것 영화의 관람자는 자신도 모르게 쉴 새 없이 이어지는 장면 속에 들어갔다 나오게 되며, 그 결과 전적으로 그들의 통제를 벗어난 임의적인 시각적, 서사적 콜라주가 생성되기 때문. 1920년 시집 <자기장>에서 의식의 흐름 기법과 자동기술법 도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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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현실주의의 정신분열증적 양식 앙드레 마송의 자동기술법적 드로잉, 모래 낙서 그림, 물감을 떨어뜨리거나 흩뿌린 미로의 ‘꿈 그림’, 에른스트의 프로타주처럼 통제를 벗어난 작품들- 증상, 흔적, 지표 개념의 중요성 역시 강조, 이러한 것들은 현실의 표면에 불안을 새겨 넣음으로써 그 너머에 존재하는 다른 무엇의 명백한 증거가 되기 때문. 자동기술법적 텍스트에서 사진으로의 이행 꿈이 제공하는 비이성적 내러티브의 구사 형식적으로 다양하고 이질적인 초현실주의 작품들은 형식적 특성이 아니라 내용에 초점을 맞추어 특성을 규정할 수밖에 없었다.: 거세 공포, 물신 숭배, 심리적 공황 상태, 고통, 원초적 상황으로의 퇴행 등 마그리트, 달리 등의 작품은 사실주의 양식을 취함으로써 반동적이고 반-모더니즘적인 성향을 드러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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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iorgio de Chirico, The Child’s Brain, 1914.
Oil on canvas, 80x65c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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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n Ray, Untitled (Hat), 1933 Max Ernst, Two Children Menaced by Nightingale, 프레임 달린 나무 판에 유채, 69.9x57.2x11.4c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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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alvador Dali, The Persistence of Memory, 1931. 24.1x33c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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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oan Miro, The Kiss, x92cm 마티스의 작품들을 좀 더 에로틱한 분위기로 재연, 화면 전반으로 거침없이 퍼져 나가는 강렬한 색 면으로 인해 그 내부 드로잉은 구체적인 형태를 잃는다. 미로의 드로잉은 일종의 서체처럼 모든 형체를 투명하고 무게가 없는 글자 기호로 변형시킨다. 이 푸른 파도 속에서 공간은 무한히 확장되고 대상은 담배연기 처럼 떠돌며 신체는 의문부호나 무한의 기호로 탈바꿈한다. (두 세포들 간의 성적 결합을 암시-숫자 8을 연결하는 빨간 막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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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oubling 하나의 기호로 함몰한 세계관:
Man Ray, Andre Breton’s Slipper-spoon, 1934. <Mad Love> 도판 doubling 하나의 기호로 함몰한 세계관: 이 기호는 자신에게 부여된 것일 뿐 아니라 자신의 무의식적 욕망의 명령에 의해 결정된 것 브르통의 묘사에 따르면, 객관적 우연은 연쇄적으로 일어나는 두 가지 원인이 만나는 지점이다. 첫 번째 원인이 주관적이며 인간 심리 내부에서 일어나는 것 두 번째 원인은 객관적이며 현실 세계의 사건 외견상 예기치 못한 이런 만남의 양편에는 일종의 결정론이 작동한다. 현실의 측면에서 볼 때 주체가 예측 가능한 것으로 보이는 이유는 바로 그 순간에 세계가 특정한 그 혹은 그녀를 지칭하는 ‘기호’를 제공하기 때문이다. 한편 주체의 입장에서 볼 때 무의식적인 욕망은 그 혹은 그녀로 하여금 부지불식 간에 이런 기호를 따르도록 충동질한다. 무의식적인 욕망으로 인해 기호는 그렇게 구성되며 사후적으로 묘사된다. 예) <Mad Love>, “cendrier-Cendrillon” ; 재떨이 신데렐라 –각 구두는 앞서 존재하는 구두를 재현한 중복 판; 이런 구조에 의거해 하나의 대상은 거울처럼 다른 대상에 반영되고 다른 대상은 그 대상을 재현하는 중복 기능을 담당한다. 브레통은 이런 작용이 기호를 구성한다고 보았다. –기호 사물; 무의식과 연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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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복 강박-Re doubling 무의식이 작동하는 방식은 세계의 ‘기호’가 중복의 조건을 통해 구조화되는 방식과 동일하다. 프로이드는 이를 반복 강박이라 함. 자크 라캉은 무의식은 언어처럼 구조화된다고 공식화함. 그러므로 다시 중복하기 (Redoubling)은 무의식적 충동의 형식적 요건이 된다. 사진이 초현실주의자들에게 완벽한 수단이었던 이유는 그것이 대상을 ‘거울처럼 비출’ 뿐 아니라 기법적인 측면에서도 복수로 존재한다는 점에서 중복적이었기 때문이다. 초현실주의는 이런 사진의 가능성을 탐색하고자 이중노출, 샌드위치 인화, 동일한 이미지의 음화와 양화 병치하기 등과 같은 기법들을 활용했고, 이미지를 중복하여 몽타주 함으로써 세계가 기호로 다시 중복된다는 관명을 구현했다. 그러나 중복은 프로이트가 <두려운 낯섦에 대하여 (1919)<에서 논했던 정신분석학적 내용을 포함한다. 유령들, 바로 그 두려운 낯설음의 것들은 살아 있는 것의 중복 판이다. 살아 있는 신체가 생명 없는 것 (자동 인형이나 로봇, 인형 등)에 의해 다시 중복될 때 비로소 그 신체는 유령처럼 두려운 낯설음의 것이 된다. 중복을 통해 처음 공포를 느낀 상태로 복귀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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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n Ray, Untitled, 1924 프로이트, “대수롭지 않은 일들은 비의도적으로 반복됨으로써 두려운 낯설음의 감정을 자아낸다. 그리고 그런 반복으로 인해 우리는 그렇지 않았다면 그저 ‘우연’에 지나지 않을 그 무엇을 숙명적이고도 피할 수 없는 것이라고 생각하게 된다.” 일어날 일에 대한 불길한 예감 Hans Bellmer, La Poupee, 1938. 다양한 배경으로 인형의 사진을 찍어 두려운 낯설음의 느낌을 불러일으켰다. 인형이 등장하는 방식이 꿈이나 객관적 우연 작용에 의존한다는 것을 활용; 또한 광화학적으로 중복하기를 통해서 인형을 거세 공포의 표상으로 제시했다. 여성의 형상은 다시 남근의 모습으로 중복 재연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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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이 그림의 표면 그 어디에선가 현실과 무의식의 사슬은 만나게 될 것이다.
Joan Miro This is the Color of My Dream, 1925 Oil on canvas, 96 x 130 cm 사진 작업과의 유사성: 사진과 마찬가지로 미로의 그림에서도 꿈꾸는 사람의 욕망 기호를 산출하는 색채의 흐름이 핵심적이다. “이것은 내 꿈의 색깔이다” 상단에 “사진” 결국 이 그림의 표면 그 어디에선가 현실과 무의식의 사슬은 만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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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5: 파리에서 열린 아르 데코 전시가 근대적 키치의 탄생을 공식화한 반면, 르 코르뷔지에의 기계 미학은 모더니즘의 악몽이 된다 알렉산드르 로드첸코의 노동자 클럽은 인간과 사물의 새로운 관계를 주창한다 큐레이터 구스타프 F. 하르트라우브가 만하임 미술관에서 최초의 신즉물주의 회화전을 기획한다. 이 새로운 ‘마술적 리얼리즘’은 ‘질서로의 복귀’라는 당시의 세계적 흐름을 반영하는 것으로 독일 표현주의와 다다에 종말을 예고한다. 르 코르뷔지에는 디자인의 형식적 측면은 항상 건축적 구조를 가리는 피상적인 가면일 뿐이었고, 아르데코는 그런 기만의 승리를 재현하고 있다고 생각. 그가 증명하고자 했던 것은 그가 “기계적 진화”라고 부르는 것의 활동만으로도 사업은 그 스스로 새로운 종류의 미를 만들어낼 수 있다는 것 Le Corbusier, 국제장식미술 박람회, 에스프리 누보관 실내, 19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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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 코르뷔지에의 기계 시대 저서 <입체주의 이후>, 1918. 순수주의 회화운동 입체주의 길들이기
입체주의의 아카데미화 현실에 대한 무기력한 기하학적 고찰 ‘오브제 유형’의 배치를 결정하는 ‘규제적 선’들의 그리드 평면도와 입면도로 묘사된 ‘오브제 유형’은 건축적 형태를 연상시킨다. 도리아식 기둥의 유리 물병, 굴뚝 같은 병목. 입체감은 단순한 기둥으로 환원, 평면적 색면으로 묘사. Le Corbusier, Purist Still Life, Oil on Canvas, 65x81cm 산업적 규격화에 대한 그 코르뷔지에의 매혹, W 테일러의 <과학적 경영의 원리>; 노동 조직에 있어 이윤을 극대화하고 성장을 도모하는 최고의 방법으로 효율성을 꼽음—노동자를 기계처럼—조립 라인의 발명 (포드) 20년대 후반까지 정치적으로 놀랄 만큼 순진했던 그는 산업적 생산이 테일러나 포드의 원리에 따라 개혁될 수 있다면 전후 유럽의 모든 병폐가 저절로 사라지게 될 것이라고 믿었다. 그는 기능이 없는 장식적 건축을 혐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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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ernand Leger, Three Woman (Le Grand Dejeuner), 1921, oil on canvas, 183.5x251.5c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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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서로의 복귀 이데롤로기에 의해 변형 기계를 선호했던 작가 전쟁 전의 원통형 요소들은 점차 알아볼 수 있는 인체나 대상으로 대체 양식적으로 순수주의 원칙을 따름 Fernand Leger, The Baluster, 1925. Oil on canvas, 129.5x97.2c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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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르낭 레제와 더들리 머피, <기계적 발레>의 한 장면, 1924
내러티브 영화에 반대한 가장 자의식 강한 영화 중 하나. 발견된 필름의 부조리한 반복 (한 여성이 계단을 스물세 번 오르고 있다.). 한 화면 안에 나타나는 누, 공, 모자 그리고 다른 둥근 형태들의 만화경적 증시, 선형 움직임의 진도하는 향연, 몸과 얼굴의 분해와 재구성, 삼각형, 원, 기계 부품들의 춤을 통해 레제는 추상으로 나아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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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람회에서 가장 모험적인 건물; 평면도상 직사각형 형태이나 두 단의 외부 계단에 의해 사선으로 양분됐다
박람회에서 가장 모험적인 건물; 평면도상 직사각형 형태이나 두 단의 외부 계단에 의해 사선으로 양분됐다. 계단은 마치 거리와 같은 기능; 양분된 각각의 측면에 있는 두 개의 막힌 삼각형 형태의 건물로 들어가기 전에 계단을 따라 걷도록 설계 삼각형과 상승하는 사선 멜니코프는 건축적 형태 안에 혁명의 “붉은 쐐기”에 대한 오마주를 담았다. 외벽의 붉은 색, 흰색, 회색과 계단 위의 유리 차양이 뚜렷한 대조를 이룬다. 의도적으로 고급스럽지 않은 재료를 선택하고 모스크바에서 실어 온 모든 부품들을 단시간에 설치할 수 있도록 단순한, 거의 놀이에 가까운 조립 방식을 채택. 콘스탄틴 멜니코프의 소비에트 관, 파리 국제장식미술 박람회, 19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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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더 이상 소비자가 아니라 인생이라는 체스 게임을 함께 즐기게 될 것이었다.
알렉산드르 로드첸코의 노동자 클럽 실내, 국제 장식미술박람회를 위해 지어졌으며 파리 그랑 팔레에 설치됨, 1925. <혁명으로서의 건축> 자본주의의 사치, 자본주의의 사적 영역에 대한 숭배에 비판적인 입장에서 명백히 집단을 위한 공간을 제시. 새로운 사회주의 공화국은 소비에트 혁명이 야만과 거리가 멀며 새로운 문화를 낳았음을, 그리고 그 혁명의 비호 속에서 노동자들이 자본주의 국가에서와 달리 여가를 누릴 수 있음을 논증하고자 했다. 클럽을 미디어 공간으로, 즉 그 안에서 노동자들이 정보를 검색하고 그것을 결정하는 공간으로 만들고자 했다. 단 그는 기계에 대한 맹목적 신뢰를 공유하지는 않았다. 노동자 클럽은 (레제와는 달리) 추상의 미래가 장식에 있어 필수적이지 않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동시에 인간과 사물 간의 새로운 관계를 제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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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5: 큐레이터 구스타프 F. 하르트라우브가 만하임 미술관에서 최초의 신즉물주의 회화전을 기획한다
New Obejectivity (신 객관성) New Sobriety (신 합리성) Neue Sachlichkeit (신 즉물주의) 1923년 기획 1925년 만하임미술관 개최 참여작가: Max Beckmann, Otto Dix, George Grosz, Alexander Kanoldt, Carlo Mense, Kay H. Nebel, Georg Scholz, Georg Schrimpf Gustav F. Hartlau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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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것은 재단사용 마네킹, 그리고 새롭게 등장한 사무직인 ‘공무원’의 권위주의를 가장 잘 보여주는 사무실 로봇의 중간형태였다.
마니키노에서 마키노로 형이상학 회화의 영향 형이상학적 마니키노 (manichino, 마네킹)의 도상은 독일 신즉물주의자들의 손을 거치면서 마키노 (machino, 기계 로봇)로 변형 데 키리코의 회화에서 더 이상 구상(figuration)이 불가능한 회화에 대한 알레고리를 의미했던 마네킹은 그로스의 작품에 이르면 ‘공화국 로봇’으로 새롭게 등장한다. 그것은 재단사용 마네킹, 그리고 새롭게 등장한 사무직인 ‘공무원’의 권위주의를 가장 잘 보여주는 사무실 로봇의 중간형태였다. 이 마키노는 이미지에 따라 권위주의적인 로봇, 혹은 산업적으로 기계화되거나 무장한 신체, 혹은 상이군인의 보철 신체로 등장했다. George Grosz, Pillars of Society, 19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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객관적 진실 추구 그러나 장인적 기술과 고대성의 진실, 그리고 기계의 진실 간의 대립은 훨씬 더 근원적인 일련의 갈등에서 비롯된 것이다. 그 갈등이란 승리감에 도취된 ‘아메리카주의’와 ‘포드주의’와 산업 근대화의 적극적인 수용, 다른 한편으로는 그런 산업의 기계화와 합리화에 대항한 폭력적이고도 비관론적인 반응 사이에 놓인 사회적 대립을 말한다. 점차 일자리를 잃고 프롤레타리아트화 돼 가던 중산층에서 처음 등장했던 비관론적인 반응은 반 모더니즘의 부상, 그리고 순수혈통과 오염되지 않은 본질에 대한 환상에 근거한 윤리적, 인종주의적 이데올로기로서 ‘재등장’했다. 1933년 파시즘의 도래 왜곡된 인간주의로 인해 절대적 위기에 봉착한 인간 조건을 환기시킬 뿐 아니라 그 핵심을 간파한다. 실패한 독일 혁명의 비극적 경험을 전달. 한편 가학-피학증의 무차별적 폭력을 그린 이 암호 같은 이미지에서 혁명 노동자는 파시즘의 파티부르주아와 다를 바 없이 폭력적인 방식으로 다루어졌다. 보편화된 잔인 행위에 대한 베크만의 인간주의적 애도는 가학적인 장면을 통해 노출된 방종으로 인해 가려지고 말았다. Max Beckmann, The Night, , 133x154c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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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tto Dix, Invalids of War Playing Cards, 1920
Portrait of the Journalist Sylvia von Harden, 1926, mixed media on wood, 120 x 88 cm 강자든 희생양이든 모두 왜곡, 파편화, 신체 절단과 같은 도상학적, 형태학적, 형식적 수단을 매개로 변형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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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즉물주의자들은 자신의 계급적 정체성과 대표자 역할을 규정하는데 실패했는가?
신즉물주의자들은 자신의 계급적 정체성과 대표자 역할을 규정하는데 실패했는가? 고급미술과 대중문화, 그리고 계급 정체성과 사회적 제반 관계 간의 모순은, 말 그대로 예술 제작의 근원으로 장인 정신을 부활시키는 일, 그리고 새롭게 등장한 기계 복제 수단 (사진)과 대중문화의 배포 형식을 강조하는 일 사이의 대립으로 표면화됐다. 초상화 영역에서 이 대립이 가장 극명하게 표출됐다. 일련의 작가들은 미술가는 인간주의에 의해 정의되고 스스로 동기를 부여하는 주체 개념은 물론, 특권화된 지식이나 통찰력을 제시하는 것이 미술가의 역할이라는 믿음을 포기하지 않았다. 그러나 사진과 회화의 대립에서나, 기계와 고전성의 대립에서나, 회화와 고전성이 패배했음이 명백해졌다. 파시즘의 등장과 함께 소멸될 사회적 주체들의 다양한 지위를 체계적으로 기록 보존한 신즉물주의의 진정한 대가 아우구스트 잔더의 초상 사진 여기서 사진 아카이브는 20년대 주체의 위기를 다룬 회화적 시도들보다 초상화의 역사와 훨씬 더 깊은 연관을 갖고 있다. 헬무트 레텐은 당시의 사진을 ‘정의의 도구’라고 명명하면서 그 도구를 통해 “개인의 개성이 기계 복제라는 새로운 환경으로 동화되는 현대성의 사진 인상학”이 배태됐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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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artolomeo Veneto, Portrait of a Woman, 1509 Christian Schad, Self Portrait with Model, x61.5c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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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또 다시 완전히 리얼리즘적인 방식으로 세계를 그리려 애쓰고 있다…
내 그림에서 인간은 더 이상 그 혼탁한 정신세계에 대한 심원한 탐구로 재현되지 않는다. 오히려 인간은 집단주의적인, 심지어는 거의 기계적인 개념으로 재현된다. 어떤 식으로든 개인의 운명은 더 이상 중요하지 않다.” 그로츠, <나의 최근 회화에 대하여>, 1921. George Grosz, The Poet, Max Hermann Neisse, x74c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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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eorge Grosz, Ecce Homo (19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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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ugust Sander, Circus People, 1930
Encyclopedic Portraits: Farmers Industrial Jobs The Professions The Arts The Unemployed The Disabled “See, observe, and think correctly!” August Sander, Circus People, 19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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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ugust Sander, The Earthbound Farmer, 1910
August Sander, The Earthbound Farmer, Young Girl in Circus Caravan, 19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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