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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학 개론 로마제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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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역사학 개론 로마제국

2 에트루리아

3 에트루리아인 기원전 475년 경 에트루리안인의 무덤 벽화.(왼쪽그림)
춤은 사회적, 종교적, 주술의 의식으로 사용되었다.(가무를 즐김)

4 에트루리아 여성의 지위 위: 기원전 3세기경 Tarquinii무덤 프레스코화 아래: 기원전 520년경 에트루리아인의 석관
-> 여성의 지위가 높았음: 여성에 대한 깊은 존경심 표현, 동시대의 다른 사회와 달리 아내가 남편과 함께 식사를 했음, 일부 가문은 혈통을 모계로 기록.

5 로마건국의 전설 (1) “Rhea Sivila의 삼촌 Amulio는 그녀의 아버지를(지금의 로마의 일부분이었던 Alba Longa의 왕)를 투옥하고 그녀가 아이를 갖지 못하게 하기 위해 사제로 만들었다. 전쟁의 신 Mars는 그녀를 어여삐 여겨 그녀와 함께 아이를 만들었고 쌍둥이인 Romulus와 Remus가 태어났다. 이 사실은 안 아물리오는 자신의 수하에게 아이들을 죽이라는 명령을 내렸고, 그는 차마 죽이지는 못하고 아이들을 숲에 버려두었다. 이때 새끼를 잃은 어미 늑대가 이 아이들을 발견하고 이 아이들은 늑대의 젖을 먹고 자라났다.”

6 로마건국의 전설 (2) “그 후 아이들은 목동에게 발견되어 키워졌고, 아이들은 장성하여 자신들의 이야기를 듣고 아물리오를 죽였다. 그리고 그들은 자신들의 도시를 건설하려고 마음 먹었다. 서로 의견이 엇갈리자 로물루스는 쟁기로 땅의 경계를 표시하고 자신의 이름을 따 로마로 명하였다. 그는 누구도 이 경계를 나의 허락 없이 들어오지 못할 것이라고 했고, 레무스는 그 말을 업신여기고 말을 타고 경계를 넘으면서 ‘봐라, 내가 넘었어, 넌 내게 명령할 권력이 없어’라고 말했다. 둘 사이에는 싸움이 벌어졌고 로물루스가 레무스를 죽였다. 그리고 로물루스는 대도시를 건설할 결심을 했다. 그때가 기원전 753년 4월 21일 이었다.”

7 로마의 팽창 (이탈리아 반도 통일, 기원전 272년)

8 로마공화정의 권력구조 (1) 정무관(magistrates): 2인의 집정관(consul) 휘하에 사법을 관장하는 법무관praetor, 공공건물과 축제를 관장하는 애딜레aedile, 국고수입을 관장하는 재무관quaestor, 징병을 위한 인구조사를 관장하고 도덕과 풍기를 감시하는 감독관censor 등의 직이 있음. 1년 임기. 집정관: 정무관 중 최고 지위. 행정 및 군사의 대권을 장악하고 원로원과 합하여 민회를 소집하는 권한을 가진다. 임기는 1년이며 한 달씩 교대로 집무하며, 상호간의 합의 하에 업무를 본다.(상호견제와 균형을 유지, 권력의 집중방지). 비상시 한 사람의 독재관(dictator)에게 전권을 위임(6개월을 넘지 못함) 원로원(senate): 처음에는 씨족장으로 구성되었으나 나중에는 정무관을 지낸 사람으로 구성, 임기는 종신, 형식적으로는 집정관에 의해 소집되고 집정관의 협의에 응하는 기관이었지만, 실질적으로는 공화정의 최고 권력기관. 국정전반에 걸친 원로원의 충고senatus consulta는 집정관도 거부할 수가 없었음.

9 로마공화정의 권력구조 (2) 민회(comitia):가장 오래된 민회는 쿠리아회comitia curiata로서 초기 씨족적인 조직에 따라 구성 (귀족이 지배). 평민의 권리 투쟁 과정에 성립된 민회 중 하나가 병사회(comitia centuriata)로서 시민들을 193개의 백인대(centuria)로 조직한 군사조직을 바탕으로 한 일종의 시민총회. 집정관을 포함한 고위정무관의 선출, 전쟁과 강화의 결정, 입법권 등 그 기능과 권한이 컸음. 호민관(tribunes)과 평민회: 로마의 국제에 있어서 매우 특이한 형태; 기원전 494년 평민의 귀족에 대한 투쟁의 성과; 호민관은 평민회(concilium plebis; comitia tribus)에서 선출, 평민회의 의장으로서 평민의 이익을 옹호하며, 정무관이나 원로원의 결정을 거부할 권한; 1년 임기; 그 신체와 생명은 불가침이며 권한과 기능은 평민세력의 신장과 더불어 확대됨; 평민회는 기원전 287년부터 정식으로 입법권을 가짐.

10 신분투쟁 (1) 로마가 이탈리아 반도를 통일해가는 과정과 병행하여 신분 투쟁이 일어남: 귀족은 전쟁수행을 위해 평민에게 의존할 수밖에 없었고, 평민세력의 신장 앞에 귀족은 양보를 할 수 밖에 없었음. 기원전 494년 평민의 스트라이크: 호민관 선출과 평민회 조직을 인정 Comitia Centuriata (병사회, 민회): 기원전 5세기 경 확립; 토지를 가진 전 로마시민의 병력의무를 전제로 193개의 백인대로 조직, 재산 정도에 따라 최상위인 기병 이하 무장의 정도에 따라 5등급으로 구분 (토지를 가지지 않은 프롤레타리아는 5등급에서 제외되고 장비도 면제되었지만 군역의 의무는 있었음); 병사회의 투표는 개인별이 아니라 백인대 단위로 행해짐. 상위급에서 투표하여 과반수에 달하면 투표가 종료 되었음. 따라서 총 193표 중 기병급 18표와 제1등급 중장보병의 80표를 합치면 과반수가 넘었고, 산표가 없는 한 2등급 이하는 투표를 할 수도 없었음 -> 1등급의 중장보병의 주축이 부유한 시민이었다는 점을 감안할 때 군제개편과 병사회의 구성은 일단 평민에게 형식적으로 국정에 참여할 기회를 주었다고 볼 수 있음. 그러나 아테네와 같은 민주주의로 발전하지 못함.

11 신분투쟁 (2) Law of Twelve Tables (12표법, 기원전 451):  귀족과 평민의 통혼 금지 등 신분적 불평등을 포함; 그러나 성문법 제정을 통해 귀족의 자의적 법운영이 제한함으로 형식적 평등을 향한 중요한 진보를 이룸. 기원전 445년에는 귀족과 평민의 통혼이 법적으로 인정됨. 리키니우스(Licinius)법(기원전 376): 집정관 중 한 명은 평민으로부터 선출, 고위정무관 직들이 평민에게 개방됨. (실질적으로는 평민 중 부유한 상층만 고위관직에 흡수됨); 토지소유의 상한선을 정하여 대토지 겸병의 폐단을 방지하려 함 -> 형식적으로 평민에게 동등한 권리를 부여하였지만, 실질적으로는 평민 중 부유한 상층만을 새로운 통치계급으로 흡수한 것으로 볼 수가 있음. (전통적 귀족과 고위정무관을 거쳐 원로원까지 진출한 부유한 상층시민의 일부로 구성된 새로운 지배적인 통치계급을 nobiles(벌족)이라고 하였음) Hortensius법(기원전 287): 평민회의 결정이 원로원의 승인을 거치지 않고 그대로 법으로 인정 됨. 평민회가 정식으로 입법권을 행사할 수 있게 됨. =>2세기 동안의 신분투쟁을 통해 평민과 귀족이 적어도 형식적으로 평등해짐. 공동체적인 일체감으로 단합된 시민공동체와 그것을 바탕으로 조직된 시민군은 로마팽창의 거대한 힘이 됨.

12 로마와 카르타고 2차 포에니 전쟁 전 일차 포에니전쟁 (기원전 264-241) 이차 포에니전쟁 (기원전 218-202)
삼차 포에니전쟁 (기원전 )

13 로마의 팽창

14 한니발의 코끼리부대 “로마 제국에게 […] 모든 시대를 통틀어 가장 위대한 두 장군(한니발과 스키피오)이 각자의 군대를 마주친 그날(기원전202년)은 영광스런 날이 되었다. […] 양 진영은 마치 서로에 대한 경탄으로 오랜 시간 동안 마력에 걸린 듯 꼼짝 않고 대치하고 있었다. […] 전투의 나팔이 울렸고, 스키피오는 한니발의 군대를 보며, 한니발은 스키피오의 군대를 보며 어느 군대도 저들만큼 잘 조직되어 있고, 열심히 싸우지 않는다는 칭찬을 하였다. 그러나 한니발은 패했고 아프리카는 승전의 보상물이 되었다. 곧이어 전세계가 그렇게 되었다.” Florus, 로마사 연표, I, 22.

15 팽창으로 인한 로마사회의 변화 로마의 팽창은 사회 경제적으로 중요한 변화를 수반: nobiles계층과 equites계층(이차 포에니전쟁을 전후해서 등장하게 된 상인과 금융가 등으로 구성된 새로운 부유층으로 기사 계층)이 정복사업의 열매를 독점 ->라티푼디움(latifundium)이란 노예노동에 기반하고 있는 대농장 경영. 자영농민의 몰락: 전쟁으로 자영농민의 인명피해, 농지 황폐화, 경작 부실 그리고 속주로부터 공납형식으로 들어오는 값싼 곡물로 인해서 소규모의 농업경영이 불가능해짐. 자유농민들은 프롤레타리아화 되어감 -> 사회의 양극화와 시민군의 약화를 초래.

16 Gracchus 형제의 개혁 토지소유 농민의 부활을 목표로 하는 개혁 추진.
티베리우스Tiberius Gracchus(기원전 133): 리키니우스 법의 제한을 넘어서는 귀족들의 토지를 몰수하여 토지를 잃은 농민들에게 분배하려 했지만 반대파에 의해 살해됨. 기원전 123년에는 가이우스Gaius Gracchus(기원전 123): 가난한 시민에게 곡물을 싸게 판매하고, 식민시를 건설하여 무산시민들을 이주시킴으로 민중의 지지를 획득, 에퀴테스를 노빌레스로부터 분리시키기 위해 소아시아에서의 징수권과 속주에서의 법정의 배심원 자격을 부여함. (이 법정은 이전에 원로원으로 구성되었고, 고위 정무관을 지낸 속주의 총독이 자동적으로 임명되는 자리였기 때문에 원로원를 중심으로한 벌족세력에 대한 공공연한 도전으로 간주됨). 가이우스는 자신의 지지세력이 분열을 일으키고 반대파의 공격에 몰리자 자살을 함.

17 비운의 형제 (Tiberius and Gaius)

18 Julius Caesar와 Rubicon 강

19 Cleopatra before Caesar
권자에서 밀려나 있던 클레오파트라는 케사르가 이집트에 왔다는 소식을 듣고 시종에게 자신을 양탄자에 둘둘 말게 한 후 케사르에게 주는 선물이라고 하며 케사르의 앞에 올 수가 있었다. 양탄자를 풀어보니 클레오파트라가 나왔다. 결국 둘 사이에 케사리온이라는 아들까지 두게 된다. Jean Leon Gerome, 1866, lost

20 Marcus Antonius와 Actium으로 향하는 클에오파트라

21 악티움 해전(영국 해양박물관 소장)

22 클레오파트라의 죽음

23 Augustus

24 Pax Roman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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