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ownload presentation
Presentation is loading. Please wait.
1
1.게르만족의 이동 (1) 게르만족 ① 원 거주지:유럽 북부 지방에 거주, 주로 수렵과 목축 생활
② 게르만 족의 팽창:인구 증가, 농경지 부족, 로마 문화 동경 → 1)1세기 무렵에는 로마 부근(라인 강과 다뉴브 강 유역)까지 진출 (2) 게르만족의 대이동(4세기 후반) ① 훈족의 압박 → 대다수의 게르만 족들이 로마 영내로 진입 ② 유럽, 지중해 연안, 아프리카 등지에 왕국 수립 → 2)서로마 제국 멸망(476)
2
2. 서유럽 세계의 형성 (1) 프랑크 왕국(481~843) ① 성장 배경
▶ 유리한 지리적 조건:농업이 발달한 라인 강 유역에 국가 형성 ▶ 3)로마 가톨릭 수용:로마 교회의 지지 획득 ② 발전 과정 ▶ 이슬람 세력 격퇴:8세기 전반 크리스트 교와 서유럽 세계 수호 ▶ 영토 확장:8세기 후반 카롤루스 대제 때 서유럽의 대부분 차지 ③ 4)카롤루스 대제의 서로마 황제 즉위 ▶ 배경:서유럽의 정치적 혼란 수습, 크리스트 교 보급과 문화 부흥 노력 → 로마 교황으로부터 서로마 제국 황제로 대관(800)
3
▶ 의의:게르만족이 서유럽의 새로운 주인공으로, 프랑크 왕국이 로마 교회의 수호자이자, 서로마 제국의 계승자로 인정받음
▶ 서유럽의 새로운 질서:로마 문화와 크리스트 교, 게르만 족의 문화 전통이 서로 융합 (2) 프랑크 왕국의 분열 : 카롤루스 대제 이후 내분 → 9세기 중반에 서프랑크.중프랑크.동프랑크로 분리(오늘날의 프랑스.이탈리아.독일의 기원) (3) 노르만족의 이동 ① 원 거주지:스칸디나비아 반도, 덴마크 등 북유럽의 해안 지역에 거주 ② 배경:인구 증가, 식량 부족 → 5)9~10세기 무렵, 유럽 각지에 출현 ③ 결과:해안 지역과 농촌 약탈, 곳곳에 새로운 왕국 수립
4
3. 비잔티움 제국 (1) 비잔티움 제국(330~1453)-콘스탄티노플(비잔티움)
① 발전:6세기 중엽 유스티니아누스 황제 - 서로마 제국의 영토 회복, 국내의 상공업 진흥, 『로마법 대전』편찬, 성 소피아 성당 [1] [2]건립 등 ② 쇠퇴:이슬람 세력의 침입, 대토지 소유자 증가로 자영 농민 몰락 → 오스만 제국에 멸망 ③ 의의:로마 제국의 전통 계승, 이슬람 세력으로부터 크리스트 교 세계 보호, 그리스 고전 문화 보존 → 6)서양 역사 발전에 공헌 (2) 비잔틴 문화 ① 특징:7)로마의 전통 위에 그리스 정교와 그리스 문화, 헬레니즘 문화 결합, 서유럽과 구별되는 독특한 성격 ② 전파:주변의 슬라브 족에게 전파 → 러시아를 비롯한 동유럽 세계의 문화 형성에 큰 영향
5
4. 동유럽 세계의 형성 (1) 슬라브족의 이동 : 주로 드네프르 강 상류 지역에 거주하였으나 게르만 족의 이동에 자극받음 → 6세기경 유럽 각지로 이동 (2) 슬라브족의 문화 ① 대부분의 슬라브족:비잔틴 제국의 영향 → 그리스 정교 와 비잔틴 문화 수용 ② 서쪽으로 이동한 슬라브족:게르만 족의 영향 → 로마 가톨릭 수용 ③ 남쪽으로 이동한 슬라브족:15세기 이후 오스만 제국의 지배를 받음 → 여러 민족과의 혼합 ④ 동쪽으로 이동한 슬라브족:7세기 무렵에 러시아 평원 정착, 9세기 후반에 노르만 족과 함께 키예프 공국 수립 → 러시아 역사의 출발점
6
용 어 정 리 ● 게르만족 : 인도, 유럽어족에 속하는 인종. 장신에 장두, 금발, 푸른 눈, 가늘고 긴 코 등이 인종적 특징이다. 이들은 당시 중부와 서부 유럽에 살고 있던 켈트인을 정복, 흡수하면서 남쪽과 서쪽으로 그 세력을 뻗쳐 B.C. 500년경에는 라인강 하류지방에 이르고, 카이사르 때에 와서는 라인강 좌안까지 진출, 남쪽으로는 도나우강까지를 점거하였다. 이즈음 4-6세기의 민족대이동에 따라 로마 제국령에 반달, 서고트, 동고트, 프랑크 왕국, 앵글로색슨 제국 등 여러 부족 국가를 건설하였다. 로마인들은 이들이 라틴어가 아닌 다른 언어를 쓴다 하여 “바르바로(batbaro:알아들을 수 없는 말을 하는 사람들)” 즉 야만인이라고 불렀다.
7
● 훈족 : 유라시아 대륙의 대표적인 유목 기마 민족인 흉
노족의 한 분파로, 4세기 후반 볼가강을 건너와 게르만족 의 한 갈래인 동고트를 공격함으로써 게르만족의 대규모 이동을 촉발, 서로마 제국의 멸망을 가져왔다. ● 프랑크 왕국의 성립 : 옛 서로마 제국 땅에 들어선 게 르만 왕국들은 대부분 오래지 않아 멸망하였지만, 갈리아 에 자리 잡은 프랑크 왕국은 지속적으로 발전하였다. 갈리 아는 이슬람 세력과 비잔티움의 공격 목표인 지중해 연안 에서 한 발짝 떨어져 있는데다가 프랑크 족의 원거주지와 도 가까워 프랑크 왕국이 성장할 수 있는 좋은 터전이 되 었다. 프랑크 왕국은 점차 자신들의 전통과 로마의 문화를 버무린 새로운 문화를 일구어 나갔다. ● 노르만족 : 게르만족의 일파로서, ‘북쪽에 사는 사람 (Northen)’이라는 뜻. 이들은 또 북유럽의 ‘협곡(Vik)에 사 는 사람’이라는 의미로 바이킹(Viking)이라고도 함
8
● 콘스탄티노플 : 콘스탄티노플은 유럽과 아시아의 교차로에 위치하여, 여러 지역에서 온 서로 다른 문화적 배경을 지닌 사람들이 뒤섞인 국제 도시였다. 1,000년 가까이 비잔티움 제국의 수도로 기능하다가, 15세기 중엽 오스만 제국에 의해 비잔티움 제국이 멸망하면서 이스탄불로 이름이 고쳐졌다. 이스탄불은 오늘날에도 여전히 국제적인 모습을 띠고 있는 터키 제1의 도시이다. ● 성 소피아 성당 : 비잔티움 제국 때는 교회로 이용되다가 오스만 제국 때 이슬람 사원으로 개축되면서 4개 뾰족탑이 들어섰다. 터키 이스탄불에 있으며, 현재는 박물관으로 이용되고 있다. ● 오스만 제국 : 오스만 투르크가 세운 이슬람 국가로, 비잔티움 제국에 이어 오랫동안 지중해 동부 지역을 지배하였다.
9
● 비잔티움 제국 : ‘중세의 로마 제국’으로 불리는 비잔티움 제국은 정치적으로는 로마 제국의 황제 정치를 계승하였다
● 비잔티움 제국 : ‘중세의 로마 제국’으로 불리는 비잔티움 제국은 정치적으로는 로마 제국의 황제 정치를 계승하였다. 그러나 종교적으로는 그리스 정교를 국교로 삼았으며, 라틴 어가 아닌 그리스 어를 공용어로 하는 등 고대 그리스의 문화적 전통을 유지하였다. ● 그리스 정교 : 그리스, 동유럽, 러시아 등에서 발전한 크리스트교의 교파로서, 서방 교회(로마 가톨릭)의 상대적인 의미로 동방 정교회라고도 부름 ● 슬라브족 : 러시아와 발칸 반도를 포함한 동유럽에서 동북 아시아에 이르기까지 매우 광범위하게 분포되어 있다. 그들의 외모는 게르만족과 거의 비슷하지만, 머리 모양은 동양인처럼 넓적하고 큰 것이 특징이다. 슬라브족이 본격적으로 역사 무대에 등장한 것은 크리스트교를 받아들인 10세기 전후의 일로 짐작된다. 그 이전까지 슬라브족은 이렇다 할 문화를 이루지 못하여, 슬라브족이
10
주로 사는 동유럽과 러시아는 매우 뒤떨어진 지역으로 간주되었다. 이러한 당시 상황은 영어의 ‘slave’(노예)란
수 있다. ● 키예프 공국 : 키예프 공국은 루스(Rus)라고 불리웠는데, 여기에서 러시아란 말이 생겨났다.
11
집 중 탐 구 이 무렵에 일부는 이미 로마의 용병이나 소작농이 되기도 하였다.
2) 게르만 족 용병 대장인 오도아케르에게 멸망하였다. 3) 프랑크 왕국의 클로비스 왕은 로마 카톨릭으로 개종하여 로마 교회와 손을 잡았다. 프랑크 왕국은 이 개종으로 교회와 갈리아에 살던 로마 주민들의 협조를 얻어 강대국으로 발전하였고, 로마 교황은 프랑크 왕국의 군사력을 배경으로 동로마 제국 황제의 간섭에서 벗어날 수 있게 되었다. 로마 교황이 카롤루스 대제에게 서로마 황제의 관을 씌워 준 것은 동로마 황제에 버금가는 황제와의 제휴가 필요했기 때문이었다.
12
4) 카룰루스 대제 치하의 프랑크 왕국에서는 로마 카톨
릭과 로마 문화의 영향을 받아 문예가 활짝 꽃피었다.카 롤링거 르네상스는 근대의 르네상스와 견줄 정도는 아니 지만 문화적 황무지였던 서유럽에 문예 부흥을 일으켰다. 5) 9~10세기에 유럽을 침략한 이민족 가운데 가장 큰 영 향을 끼친 것은 바이킹이었다. 노르웨이와 덴마크의 바 이킹들은 주로 서유럽 지역을 휩쓸었고, 서프랑크 왕국 의 노르망디 지방에 눌러 앉았다. 동쪽의 슬라브족을 공 격한 스웨덴의 바이킹들은 키예프공국을 세웠으며, 이는 훗날 러시아로 발전하였다. 6) 이후 르네상스 문화가 성립하는 데 큰 영향을 주었다. 7) 서유럽 사회가 로마 가톨릭 교회의 교황을 중심으로 운영된 반면, 비잔티움 제국은 황제가 교회의 지도자를 겸하고 있었다. 비잔티움 제국은 예수나 성모 마리아의 그림이나 조각을 우상으로 보고 이를 부정한 반면,
13
7) 서유럽 가톨릭 교회는 선교의 효율성을 들어 이를 긍
정하였다. 특히 가톨릭 교황이 프랑크 왕국의 카롤루스 대제를 서로마 제국의 황제로 인정하면서 비잔티움 제국 과 서유럽 세계 사이의 틈은 더욱 벌어졌다. 결국 11세 중엽, 크리스트교는 서유럽의 로마 가톨릭과 동유럽의 그리스 정교로 분열되었다.
17
카롤루스 대제 이는 라틴식 이름인데, 프랑스어로는 사를마뉴, 독일어로는 카를이라고 발음한다.
18
바이킹의 배 상상도
20
외부
21
내부
Similar presentation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