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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강. 신생국에서의 러시아인과 영토 문제 -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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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22강. 신생국에서의 러시아인과 영토 문제 - 1

2 1 아제르바이잔 최근까지 여러 다른 민족 출신 20만 명 이상이 러시아 연방으로 귀국. 이들(80%이상)은 불명확하고 장래가 암울한 사회적 지위, 나고르노-카라바흐 분규로 인한 힘든 경제 상황을 귀국 동기로 주장. 약 19만 명의 슬라브인들이 거주, 러시아 문화 공간의 보전과 발전을 위한 큰 잠재력 보유. 그러나 이들 다수가 은퇴자로서 사회적, 도덕적 지원 필요, 타민족과의 혼인으로 인해 아제르 언어, 문화에 동화되어 감. 러시아인 단체 ‘러시아 공동체’, ‘협력’이라는 단체가 활동하지만 정치적 단체가 아닌 러시아어, 문화, 정보 공간의 유지, 법적 보호에 주력 전체적으로 공화국에서 형성되고 있는 무슬림 중심 문화 계획은 당연히 러시아인과 아제르 공동체 간의 문화적 차이를 증대시키고 있지만 그리 엄격하지는 않다. 아제르는 유럽 지향의 국가로 문화적-민족적 관용이 주류.

3 벨라루스 2 러시아인은 100만 명 이하 (러시아어 사용자는 320만 명). 양국은 자국의 상대 주민들의 권리 준수 상태에 상호 만족. 1999년 12월 8일 양국 간의 연방국가 창설 조약으로 러시아 문화, 경제 존재감의 발전과 보전에 최상의 기반 보장. 러시아인들의 이주가 작다. 러시아어 교육 수업 학교 증가. 그 외 일상생활 수준에서의 벨라루스 민족주의는 거의 나타나지 않음. 11개에 달하는 러시아 교포단체가 활동. 특히 ‘러시아 공동체’는 여러 도시와 지역에서 러시아 정보에 다양한 콩쿠르, 퀴즈대회, 세미나, 문학 강독 개최. 현재 벨라루스는 문화-민족적 권리의 실현 측면에서 러시아인들에게 가장 호의적인 국가.

4 3 카자흐스탄 카자흐스탄의 러시아인 수는 우크라이나 다음(460만 명). 러시아어에 국어의 지위 부여와 이중 또는 제2 국적 도입 요구. 또한 러시아인이 다수인 지역에서 문화-민족 자치 문제를 제기. 러시아어 교육 학교 프로그램의 축소, 낮은 교육의 질, 러시아연방 발행 교과서 사용 금지, 문화, 정보 영역의 제한 등으로 이주 동기 유발. 러시아와 긴밀한 협력관계라는 것이 긍정적인 측면. 그러나 카자흐스탄의 불안이 일어난다면 크르임과 같은 사태 발생 가능 공식적으로 14개의 러시아인 단체가 등록, 이들의 목표는 러시아어와 문화 보전, 러시아인과 러시아어 사용주민의 권리를 보호: 전국차원의 슬라브인 단체는 "Лад”, Русская община Казахстана, ‘러시아 교사 연맹’(КАУРШ)등.

5 3 카자흐스탄

6 몰도바 4 몰도바에서 러시아어, 문화의 지위는 급격히 약화. 러시아 역사, 문화가 배제, 몰도바와의 긴밀한 상호유대 역사 사실 묵살, 전반적인 내용도 루마니아 문화와 역사에 중점. 2001년 공산당 정권이 수립 후 상황은 어느 정도 개선. 2003년 12월 의회가 국가 민족정책 개념을 확립하여 러시아어에 국가와 사회의 모든 활동 영역에서의 민족 간 의사 소통 언어 지위를 부여. 10개의 러시아인 공동체, 이들의 주로 러시아어, 문화, 특히 교육 부문에서의 지위 보호 활동에 주력.

7 4 몰도바- 쁘리드네스트르 1989년 당시 러시아인 56만 2천명(13%), 러시아인들의 영향력이 크고 이들의 지위도 국내 안정의 지표이자 요인 중의 하나. ‘인민전선’과 같은 급진-민족주의 세력의 활동과 일부 매스컴들이 분규상황 발생을 첨예화->분규 증가, 쁘리드네스트르 몰도바 공화국(ПМР, 트라니스트리아)의 창건 야기. 2006년 9월 17일 ПМР에서는 독립유지와 러시아와의 자유로운 연합 또는 독립거부와 몰도바 내존속을 선택하는 투표가 시행, 90%이상 러시아와의 합병 찬성. ПМР는 러시아를 지향, 몰도바로부터 탈퇴 및 러시아 연방의 편입을 공표. 러시아와 ПМР, 몰도바, 국제사회 간의 장기간의 협상, 1994년 10월 몰도바는 ПМР에 자치국 지위를 부여 동의, 완전히 미해결 상태. ПМР에서는 러시아어가 국어, 모든 국가 문서는 러시아어어로 작성, 교육 언어도 러시아.

8 쁘리드네스트르

9 5 투르크메니스탄 러시아와 투르크메니스탄 간의 ‘이주과정의 조정 및 이주민의 권리보호에 관한 조약’은 러시아인들의 민족 정체성, 권리, 자유의 지원과 보전에 주목, 어떤 차별도 금지하는 제도의 준수 필요성을 선언. 그러나 실상은 모든 통치 영역에서 러시아어 사용 인적자원의 배제, 러시아 기업구조의 신용추락 지속. 러시아인의 사회-경제적 상황도 민족 정체성의 유지가 아니라 기본적인 물질적 생활을 걱정할 만큼 악화. 국가 및 문화 활동의 심각한 투르크메니스탄화가 국내의 상황을 본질적으로 변화 야기. 러시아어사용 주민들의 지위는 더욱 악화, 러시아인들은 너무 비싼 이주 교통비용과 러시아 영사관이 교부하는 강제이주자 지위에 관한 공식문서 없는 아파트 교환 및 판매 금지로 투르크메니스탄을 떠날 수 없는 상황. 정부가 러시아어, 문화, 정보 공간의 보전을 위한 조건을 조성하지 않고 있다. 러시아아인 공동체는 이미 수 년전에 법무부에 등록되었지만 특정 민족으로 구성된 조직의 활동은 금지, 러시아인 공동체의 대 정부 민족정책과 러시아인들의 상황 개선에 영향을 줄 가능성은 아주 낮다.

10 6 우크라이나 4,760만 명의 인구 중 러시아인은 22%, СНГ에서 인구가 가장 많다.
많은 수의 러시아인 공동체(36개)가 활동. 하리코프 지역의 공동체 루스(Русь)는 주로 러시아 문화 지위 보호에 목표. 매년 ‘슬라브 문자와 문화의 날’ 개최. 그 외에 교육영역에서 러시아 문화의 배제에 반대하는 사회 운동을 전개. 2003년 러시아의 해를 개최했는데, 우호의 징표가 되고 예전의 상호교류의 일부 증가 촉진.

11 6 우크라이나-역사 문제 13c초 몽골의 침입으로 키에프 루스 멸망. 14c부터 리투아니아 대공국이 지배, 16c 리투아니아가 폴란드와 합병하여 폴란드의 지배를 받기 시작. 1648년 우크라이나로 도망 온 러시아 도망 농민 집단인 카자크들이 흐멜니쓰키 족장을 중심으로 폴란드에 저항, 우크라이나인들의 지지를 받아 독립 전쟁 전개, 1651년 폴란드에 패배 흐멜니쓰키는 모스크바에 원조 요청하여 알렉세이 황제가 우크라이나 카자크와 군신 협정 체결. 이에 따라 우크라이나 문제는 러시아와 폴란드 간의 전쟁으로 발전. 1667년 양국이 휴전협정을 체결하여 키에프와 드네프르 강 동쪽의 우크라이나 땅을 러시아로 합병.

12 6 우크라이나-크르임 공화국 크림 반도는 비잔티움 제국이 일부 개척되어 비잔티움 제국의 권역으로 편입, 비잔티움 제국의 붕괴 후 킾차크 칸 국과 오스만 제국의 권역에 속하게 된다. 18세기, 킾차크 칸 국의 후예였던 크림 칸 국(1441년)이 예카테리나 2세에 의해 멸망(1783년)한 이후 러시아 제국에 흡수. 오스만 제국과 러시아 제국이 흑해를 통해 접경하게 되고 이 때문에 두번에 걸쳐 러시아-오스만 전쟁이 발발, 분쟁 지역. 러시아는 부동항을 얻기 위해 남진 정책을 강력하게 추진, 크림 반도가 부동항 확보의 1차 목표. 이에 반해 영국과 프랑스 등 서유럽 열강들은 이런 러시아의 남진을 잠재적인 위협으로 간주하고 이를 막기 위해 오스만 제국을 지원. 1854년부터 1856년까지 3년 간 크르임 전쟁, 러시아는 열강의 지원을 받은 오스만 제국에 패배, 1856년 파리 조약을 통해 흑해 일대의 통제권을 잃고 남진이 저지.

13 6 우크라이나-크르임 공화국 1921년 10월 18일 타브르 현의 일부 지역인 크르임자치소비에트사회주의공화국이 러시아(РСФСР)소속으로 창건. 1946년 6월 25일 자치권 폐기, 크르임 주로 격하. 1948년 크르임의 세바스토폴 항구가 러시아(РСФСР)의 직접 통치를 받는 도시 지위 획득. 1954년 4월 26일 크르임 주가 우크라이나(Украинской ССР)로 양도: 법률적 근거 없이 소비에트 지도부의 자의로써 사실상 우크라이나가 직접 지배. 1991년 2월 12일 국민투표 결과 크르임자치소비에트사회주의공화국(Крымская АССР)으로 부활, 4개월 뒤 우크라이나 헌법이 승인. 1992년 2월 26일 우크라이나 최고소비에트 결정으로 크르임공화국으로 개칭, 5월 6일 이 명칭을 승인하는 크르임공화국 헌법 채택.

14 6 우크라이나-크르임 공화국 1994년 9월 21일 우크라이나 최고소비에트가 크르임공화국을 크르임 자치공화국으로 격하, 개칭.
1995년 3월 17일 1992년의 크르임 공화국(Республика Крым) 헌법 폐기. 2014년 2-3월 크르임에서 우크라이나의 전국적 정치 위기와 관련된 대규모 사회-정치적 변혁이 발생. 키에프에서 정권을 잡은 예전 야당의 행위에 대해 지역 주민의 저항 발생. 사회적 격동 파고에서 세바스토폴과 크르임자치공화국 정부 행정기관의 교체, 이들은 새로운 우크라이나 정부의 합법성을 부정, 러시아연방 지도부에 협력과 도움을 요청. 2014년 3월 11일 크르임공화국 최고소비에트와 세바스토폴 시 소비에트가 독립 선언. * 이 선언에 따라, 그리고 러시아 연방 편입에 관한 차후의 주민투표 결과로 크르임은 주권 공화국이 되고 법적 주체로서 러시아 연방에 합병되는 지위 가능.

15 6 크르임 공화국의 러시아 합병 3월 16일 국민투표 시행 러시아 합병에 대부분 찬성.
3월 17일 크르임최고소비에트가 독립주권국가인 크르임공화국을 선포, 세바스토폴은 특별 지위: 크르임의 최고 권력기관인 국가소비에트가 공화국이 러시아 연방의 새로운 주체로서 러시아 연방에 편입시켜줄 것을 러시아 연방에 제기. 3월 18일 크르임공화국(세바스토폴 포함)을 러시아 연방에 편입시키고 러시아 연방의 새로운 주체의 형성, 즉 크르임공화국과 연방적 직할시 세바스토폴에 관한 조약 서명. 3월 21일 러시아 뿌찐 대통령이 크르임을 러시아 연방에 편입시키고 크르임공화국과 연방직할시 세바스토폴이라는 새로운 주체를 러시아국내에 형성시키는 연방 기본법에 서명. 크르임의 러시아 합병은 우크라이나, 미국, EU국가, 대부분의 유엔 회원국들이 인정하지 않고 있다

16 6 크르임 공화국 .

17 6 우크라이나-크르임 공화국 크르임 인구 1,967,119명 러시아에 합병되기 전 국어나 공식어의 개념이 없었지만 우크라이나어와 러시아어가 사실상의 공식어. 지역의 우크라이나 관청(내무부, 법원, 검찰청)에서는 대부분 우크라이나어 사용. 크르임 공화국 휘하 지역 기관(공화국 차원의 부서와 위원회, 라이온 행정기관, 도시 소비에트, 보건 및 중등교육 시스템)에서는 러시아어 사용. 과거 크르임 헌법 10조(국어, 러시아어, 크르임 타타르어, 여타 민족적 소수 언어들의 조항)에 따르면 «크르임에서는 국어와 함께 러시아어, 크르임 타타르어, 여타 민족적 소수 언어의 기능, 발전, 사용, 보전이 지원된다. 크르임 주민 다수의 언어로서, 그리고 민족 간 의사소통 언어로서의 러시아어는 사회 활동 전 부문에서 사용된다». 우크라이나어는 크르임 주민 10.1%의 모어, 러시아어는 77.0%, 크르임타타르어는 11.4%의 모어(2001년 인구센서스) 러시아어가 주민 절대다수 97%의 의사소통 언어(2004년 설문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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