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치통감강목◆ 학과:문헌정보학과 학번:2004015020 이름:이민지
1.자치통감강목소개 2. 강목체 [綱目體] 3. 갑인자로 찍은 책 1.자치통감강목소개 2. 강목체 [綱目體] 3. 갑인자로 찍은 책
1.자치통감강목소개 ≪자치통감강목≫은 조선 세종 20년(1438)에 간행된 중국의 역사서이다. 이 책은 송의 사마광(司馬光)이 지은 ≪자치통감(資治通鑑)≫에 대해 ≪춘추≫의 체재에 따라 사실에 대하여 큰 제목은 강(綱)을 따로 세우고, 사실의 목(目)으로 구별하여 강목의 형식으로 편찬한 것이다. 세종은 이 책을 애독하여 신하들에게도 읽기를 권장하였으며, 또 집현전 문신들에게 명하여 ≪훈의≫까지 만들게 하였다. 그 훈의가 완성되자 세종은 그 간행에 필요한 종이 350,000권(700만장)을 중앙과 지방에 만들게 하여 총 권수 139권에 달하는 방대한 책을 간행해 냈다. 이 때에 중간 글자와 작은 글자는 갑인자를 사용하고 강의 대자는 진양대군(晉陽大君) 유(뒤의 세조)가 글씨를 써서 연(鉛)으로 주자한 병진자를 사용하여 ≪사정전훈의자치통감강목(思政殿訓義資治通鑑綱目)≫을 찍어냈다.
이 판본은 총 139권 중 권19 하에 해당하는 것으로서 책 첫장에‘校正(교정)’인이 있으며, 책 맨 끝장에‘玉淵墨藏(옥연묵장)’이라는 인기가 있다. 옥연재(玉淵齋)는 경북 안동시 풍산면(豐山面) 하회동(河回洞)에 있는 유성룡(柳成龍)의 서재이므로 그곳에 간직되었던 것임을 알 수 있다. 표지는 뒷장이 없어졌던 것을 개장하였고, 앞장은 원형대로 보존하였으며 표제는 따로 목판인쇄하였고, 권차는 그 아래 묵서하였다. 병진자에 대해서는 ≪세종실록≫ 18년 7월 임술조와 유의손(柳義孫)의 서문에도 나타나고 있다. 이 책은 유성룡의 후손인 유시부(柳時溥)가 소장하고 있던 것인데 현재는 아단문고로 이관되었다.
자치통감강목은 보물 제552호로 1971년 8월 30일에 지정되었으며, 1권이 서울 중구에 소장되어 있다. 조선의 인쇄문화와 유교문화를 살필 수 있는 가치가 있는 자료이다. 자치통감강목은 보물 제552호로 1971년 8월 30일에 지정되었으며, 1권이 서울 중구에 소장되어 있다. 조선의 인쇄문화와 유교문화를 살필 수 있는 가치가 있는 자료이다.
2. 강목체 [綱目體] 큰 글씨로 쓴 줄거리 기사의 강(綱), 보다 작은 글씨로 쓴 구체적 서술의 목(目)으로 기본 틀을 이루는 편년체(編年體) 역사서술의 형식이다. 그 시원(始源)은 공자가 쓴 노나라의 역사인 《춘추》에서 비롯되었다고 할 수 있으나 주희(朱熹)가 사마광(司馬光)의 《자치통감(資治通鑑)》을 자료로 이용하여《자치통감강목》을 편찬함으로써 강목체의 체계가 정비되었다. 강목형식에서는 춘추대의(春秋大義)의 명분과 전통을 중시하여 문자표기로 포폄(褒貶)을 가리는 강과 목의 구별은 성리학적인 도덕적 평가가 기준이 된다.
한국에서 강목형식 역사서로는 고려시대에 김관의(金寬毅)가 편찬한《본조편년강목(本朝編年綱目)》이 그 시원이라 할 수 있으나 이 책은 현전하지 않아 그 내용과 형식을 알 수 없다. 조선시대에는 성리학이 크게 일어난 17세기에 이루어지기 시작하여 홍여하(洪汝河)의 《동국통감제강(東國通鑑提綱)》, 유계(兪棨)의 《여사제강(麗史提綱)》,임상덕(林象德)의 《東史會綱)》, 안정복(安鼎福)의 《동사강목》, 민경호(閔京鎬)의 《대동사강(大東史綱)》 등이 강목체로 쓰여졌다.
3. 갑인자로 찍은 책 갑인자는 1434년(세종 16)에 만든 동활자(銅活字)로 위부인자(衛夫人字)라고도 한다. 왕명을 받아 중추원지사 이천(李狀)ㆍ직제학 김돈(金墩)ㆍ직전(直殿) 김호(金鎬)ㆍ호군(護軍) 장영실(蔣英實)ㆍ사역원첨지사(司譯院僉知事) 이세형(李世衡)ㆍ사인(舍人) 정척(鄭陟)ㆍ주부(主簿) 이순지(李純之) 등이 경연(經筵)에 소장하고 있는 <효순사실(孝順事實)>, <논어> 등 명나라 초기 판본(版本)을 자본(字本)으로 삼고, 모자라는 글자는 진양대군(晉陽大君)의 글씨를 본떠서 만든 것으로, 20여 만 자를 주조하였다.
이 활자는 조선 말기에 이르기까지 여섯 번이나 개주(改鑄)되었다 이 활자는 조선 말기에 이르기까지 여섯 번이나 개주(改鑄)되었다. 뒤의 개주와 구별하기 위해 특히 세종대 만들어진 활자를 초주갑인자(初鑄甲寅字)라 한다. 이 초주갑인자는 1580년(선조 13)에 재주(再鑄)될 때까지 140여 년간에 걸쳐 오래 사용되었기 때문에 전해지고 있는 인본의 종류가 많은데, 그 중 대표적인 것으로 성암고서박물관(誠庵古書博物館) 소장의 <대학연의(大學衍義)>, 국립중앙도서관 소장의 <분류보주이태백시(分類補註李太白詩)> 등을 초인본으로 들 수 있다. 그리고 갑인자에 붙여 특기할 것은 이 활자에 이르러 처음으로 한글활자가 만들어져 함께 사용된 점이다. 갑인자 한글활자는 획이 굵고 강직한 인서체(印書體)인 것이 특징이며, 세종이 우리의 글자를 제정하고 처음으로 만들어진 것인 점에서 그 의의가 크다.
이 갑인자는 글자가 바르고 해정하여 자주 가주(加鑄)와 보주(補鑄), 그리고 개주(改鑄)가 이루어지면서 조선 말기까지 사용되었다. 1499년(연산군 5)에는 ‘성종실록’을 찍기 위하여 보다 큰 가주 또는 보주를 하였고, 1515년(중종 10)에는 닳고 이지러진 것을 갈기 위한 보주가 이루어졌으며, 완전한 개주는 여섯 차례에 걸쳐 이루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