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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의 전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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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로마의 전쟁

2 참고(그리스◦로마 주요전투) 그리스 전쟁 로마전쟁 마라톤 전투 : 양익포위 루크트라 전투 : 사선전투
히다스페스 전투 : 하천선 공격, 사선전투 로마전쟁 칸나에 전투 파루 살루스 전투

3 로마의 전쟁

4 개 요 “명장은 대사건과 함께 나타나며, 대사건은 명장의 재능을 발휘하게 해준다.
개 요 “명장은 대사건과 함께 나타나며, 대사건은 명장의 (그의 존재를 뚜렷이 나타내 주는) 재능을 발휘하게 해준다. ★ 임진왜란 … 이순신 장군 알렉산드로스 : 동 지중해 패권,그리스-페르시아 한니발 : 서 지중해 패권, 로마-카르타고 전쟁

5 로마전쟁의 개관 로마의 탄생과 1차 포에니 전쟁 한니발의 알프스 횡단과 칸나의 전투 카르타고의 멸망과 자마전투
율리우스 카이사르와 파르살루스 전투

6 로마의 탄생(1) 유민의 전설 ※로물레스 ,B.C. 753년 로마 건국, 400여 년 공백,전설
유민의 전설 호메로스의 서사시 “일리아드” : B.C.13C 그리스, 10년 전쟁, “트로이 목마” 이용 트로이 성 함락 트로이 왕의 사위 “아이네이아스(미와 사랑의 여신 아들)” 일족과 탈출, 로마 근처에 정착, “알바롱가”도시건설(로마의 모체) 알바롱가의 왕이 죽자 동생이 왕위 차지, 왕녀를 무녀로 만듬, 군신이 반하여 왕녀 잠든 사이 사랑 나눔 / 쌍둥(로물레스,레무스)탄생, 숙부 격분→왕녀 감옥/ 쌍둥이 바구니 담겨 테베강 띄움, 늑대가 발견 / 젖을 물림, 양치기가 기름 / 우두머리, 알바롱가 점령/ 테베강 하루에 도시건설, 로물레스(실존?) 이름 따서 로마, ※로물레스 ,B.C. 753년 로마 건국, 400여 년 공백,전설 <4.21건국기념일, “트로이 영웅의 후예”라 믿음 >

7 로마의 탄생(2) 기원전 8C의 이탈리아 북부 – 에트루리아인 (방어에 유리한 언덕에 도시 건설), 남부 -그리스인(통상에 편리한 바닷가에 도시건설) 양분, 양대 세력 사이에 로마 탄생 (방어에 불완전한 곳에 도시건설→밖을 향해 발전), ※ B.C.270년 이탈리아 반도 통일(500년) : “로마는 하루아침에 이루어 지지 않는다.” ※ 동맹국→로마연합, 원로원,민회참가 등 시민으로 포용 : “패자조차도 자기들에게 동화시키는 이 방식만큼 로마의 강대화에 이바지한 것은 없다”…풀루타르코스의 영웅전 ※세력권 확장 시 도로 연장 (B.C.312~107, 19개 건설), 외향적,한니발 가도이용 로마 침공, “모든 길은 로마로 통한다”. ⇒도로가 국토의 “동맥”, 2천3백 년 전에 안 것은 로마뿐

8 카르타고의 성장 B.C.814년 페니키아인이 북아프리카 지중해 연안에 세운 식민도시*로마인은 페니키아 인을 “포에니” 인 부름
- 상업국가로 발전, 부 획득이 시민들의 주 관심사 - 해상무역 보호→ 해군 발전, - 군 : 외국 용병과 노예로 구성 ⇒ 용감 / 애국심결여. 집단 반란 / 탈주, 다른 민족/ 잡다한 무기 보유, 필요시 징집 / 불 필요시 제대 ※ 지중해 “해상권”을 싸고 로마와 주도권 싸움 3차에 걸친 포에니 전쟁(150여 년간) -1차 : B.C.264~241( 23년),로마승리→ 배상금,시칠리아 섬 획득 -2차 : B.C.218, 한니발 “복수의 칼” 피레네 산맥과 알프스을 넘는 대장정, 병력-출발시의 절반, 한니발 눈병으로 한쪽 눈 실명

9 1차 포에니 전쟁(1) “사라쿠사” 공격을 받은 “메시나” 구원 요청
시칠리아 서쪽 절반 : 카르타고 세력하, 동쪽 절반(사라쿠사, 메시나) 완충역할 메시나 : 그리스인 거주 도시 “레조” 등을 보고 카르타고 보다 로마를 택함 로마 : 거절 시 메시나를 카르타고가 기지로 이용, 이탈리아 남부해역 지배→로마를 맹주로 하는 ‘로마연합’도시 안전 문제 / 지중해로 진출 곤란 * 민회에서 메시나 요청 수용 결정 ※ 2개 군단 파견, 메시나와 동맹 협정, 사라쿠사 공격 후 카르타고 식민지역 공격, 사라쿠사 ‘로마’를 선택/ 강화 *23년간 수 많은 전투, 해상전투위주

10 1차 포에니 전쟁(2) 사라쿠사와 강화: 동맹관계 15년, 이의 없으면 무한 경신,
사라쿠사 자치권과 독립 존중, 로마 연합군에 병력지원 의무 無, 배상금 100탈렌트 15년 분할 지불 로마‘카툴루스’와 카르타고‘하밀카르’(한니발 아버지) 강화 카르타고 시칠리아 섬 철수, 영유권 영원히 포기 배상금 3천 200탈렌트, 시칠리아 주변 섬 로마귀속 등 ※ 23년간 로마 피해 더 큼(태풍 해난사고 배150척,6만명 손실)에도 불구 상대가 받아 들이기 쉬운 조건으로 강화(1차대전과 비교) ※ ‘카르타고’ 패전 책임 물어 3명의 사령관 극형 ↔ ‘로마’ 사령관에게 모든 것 일임, 패전 책임 묻지 않음, 강화교섭도 일임 ※ 3단층, 5단층 갤리선(노잡이와 전투원 100/300명), ‘까마귀’ 잔교 이용 해상을 육상 전투화(끝에 갈고리 낙하 시 적선에 고정) < 로마 : 개전초기 군선 건조술/군선 지휘 경험 전무>

11 영웅 한니발 등장(1) B.C.247 유능하고 젊은 장수 시칠리아 전선 파견 “바르카스(번개불) 하밀카르” <휴전제의 강화교섭 역> (한니발 태어남) 2개 군단 규모로 역부족, 교착상태 유지/로마 강화제의 기다림 산 정산에 진영설치 게릴라 전법으로 4년간 효과적 작전, B.C.240년 카르타고의 반란군 진압 총지휘 해외파의 리더로 국내파가 우세한 카르타고를 떠나 ‘에스파냐’로 이주 ★ 9살 아들 신전에서 ‘평생 로마를 적으로 삼을 것을 서약’시킨 후 ‘에’ 로 함께 가는 것을 허락 이주 10년째 B.C.228 전사 ⇒ 사위 ‘하스드루발’ 계승 (한니발 18세) ※ 서 지중해 그리스계 주민은 지배보다 동맹관계 선호 →로마 세력하 들어가는 것을 선택. 마르세유, 사군토 등

12 영웅 한니발 등장(2) ※ B.C.218년 2차 포에니 전쟁 개시
전권 장악 후 에브르강 이남(에스파야 전지역) 제패 노력 B.C.219년 28세 때 오랫동안 품고 있던 생각 실천, “사군토” 공격 ★ 사군토, 마르세유 등 : 그리스인 정착, 로마와 동맹관계 “이탈리아 남부나 시칠리아의 그리스인과 좋은 관계를 맺고 있는 로마” <서 지중해 그리스인은 카르타고에 대항하는 수단으로 로마인과 손을 잡음> 사군토 주민, 로마에 사절을 보내 구원 요청 ※ B.C.218년 2차 포에니 전쟁 개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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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 로마의 군대 정규군이 아닌 민병대(Militia) 17~45세까지 군 복무
로마의 군대 정규군이 아닌 민병대(Militia) 17~45세까지 군 복무 로마군의 일원은 특권 (노예, 자유민은 병사가 될 수 없음) ※로마인의 최악의 형벌 : 무기휴대 권한 박탈 재산을 기준으로 5개 종으로 편성 (시민이 개인의 무기와 장비 마련) - 1종 : 정교하게 만든 갑옷 착용 - 5종 : 갑옷 미 착용 * 기병: 가장 부유층 ※로마인은 ‘조국애와 전통에 대한 자랑’으로 전투 참가

15 로마의 전투대형(1) 로마군단(Legion) 최초 그리스 방진에서 모방한 Phalanx Legion 형태로 시작
그리스 방진과 함께 고대의 2대 전술 로마의 역사와 함께 형태, 대형, 무기체계 변화 ① Phalanx Legion → ②Manipular Legion → ③Cohortal Legion 로마검 (Gladius)과 중창 (Pilum)의 등장

16 로마의 전투대형(2) 군단(Legion) Phalanx Legion (B.C. 500-300) 그리스 Phalanx의 영향
전열 500명, 종심 6열(본대보병 3,000명), 기병 300명 최 전열, Hastati 2열, Principes 2열, Triarii 2열 벨리테스 (Velites) : 17~25세 / 최전열(경보병,정찰) 하스타디 (Hastati ) : 25~30세 / 제1전열 프린시페 (Principes) : 30~40세 / 제2전열 트리아리 (Triarii) : 40~45세 / 제3전열

17 로마의 전투대형(3) Manipular Legion (B.C. 300-100, 포에니 전쟁 시)
Phalanx Legion의 문제점 노출 : 신축성 및 융통성 부족, <구릉 및 산악지형에서 대형 붕괴, 대형에 간격이 발생할 경우 불안감 확산> 전열 Velites는 120cm의 창 소지 본대는 Hastati, Principe, Triarii 로 구성 제1열부터는 Gladius(검), Pilum(창, 2.1m), 방패(60 x 120cm) 소지

18 로마의 전투대형(4) Cohortal Legion (B.C. 103-A.D. 96) 전술단위
1 Legion = 10 Cohort ( Cohort 450명 구성: 대대) 1 Cohort = 3 Maniple ( Maniple 명: 중대) 1 Maniple = 2 Century ( Century 60-75명 구성) 대형구성 : 중 보병만으로 구성(기병, 경 보병 제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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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 각국의 전투대형 각국의 전투대형(2) 구 분 그리스(Phalanx) 마케도니아(Phalanx) 로마(Legion) 시 대
구    분 그리스(Phalanx) 마케도니아(Phalanx) 로마(Legion) 시    대 B.C. 500년 경 B.C. 330년 경 B.C. 500~A.D. 100년 경 충 원 방 법 시민 귀족, 시민, 이민족 귀족, 시민, 이민족, 용병 규    모 종심 12열 8,192명 (종심 16열) 4,500여명 편    성 중갑병(Hoplite) 집단 중보병: 4,096명 경보병: 3,072명 기병: 1,024명 중보병 집단 보 병 무 기 창(3.6m) 창(Sarissa, 4.2m) 칼(Gladius) 창(Pilum, 2.1m) 주 요 특 징 충격력 활용 신축성과 기동성(기병) 보강 개인간격 확대(2배) 전술단위(Maniple 중대)로 세분화

21 2차 포에니 전쟁(B.C. 218~202) 카르카고 로 마

22 한니발의 알프스 횡단 알프스를 횡단 해야만 하는 이유 하밀카르의 유지, 최종 목적 로마 격파
※ 이탈리아 밖에서 싸우면 이길 수 없음(1차 포에니 입증) 남쪽 : 로마 속주 시칠리아, 1차 포에니 후 로마 제해권보유 동쪽 : 아드리아 해로 침공, 거리 멀고, 항해 중 위험은 거리에 비례, 시칠리아 통과 / 해군 위협. 서쪽 : 서 지중해 횡단, 로마 속주 코르시카 / 사르테냐 (육,해군 상주) 북쪽 : 넓은 프랑스 횡단, 알프스 넘어야 함, 원주민 로마 / 카르타고의 친구가 아님, ※ 이 점 : ① 로마 포강까지 확장 / 방어선 미약 (식민지 건설 중, 가도 미 건설, 일대 갈리아인 미 로마화) → 로마 방어선 돌파 가능 ②“알” 횡단 어렵고, 희생도 크지만, 불가능 아님을 간파, (갈리아인은 가축과 넘나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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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 한니발의 알프스 횡단 병력 에스파나 떠날 때: 보 9만, 기1만2천, 코끼리 37마리
※ 카르타고 본국 수비-2만 파견, 에스파냐 수비-보1만2천,기3천,코끼리 21마리, 피레네 산맥에서 에브로강까지 방어 보1만,기1천 잔류, 피레네 산맥 넘어 프랑스로 갔을 때 : 보5만, 기9천, 코끼리 37 (군량확보 고려 동요 / 귀가 허가) 론강 도하 후 남은 병력 : 4만 6천 (1만3천 잃음) 알프스 넘어 이탈리아 도착 : 2만 6천 (보2만,기6천) ※ 알프스 넘는데 보름, 에스파냐 떠난 뒤 4개월 걸림, ※ 지역 갈리아인 회유 병력 보충

25 한니발의 알프스 정상 연설 산에 오르기 시작한지 아흐레째 고개 마루 도착, 동쪽 희미하게 보이는 이탈리아를 향해 29세 총사령관이 훈시 “저곳이 이탈리아다. 이탈리아에 들어 가기만 하면, 로마 성문 앞에 선거나 마찬가지다. 여기서부터는 내리막길뿐이다. 알프스를 다 넘은 뒤에 한 두 번만 전투를 치르면 우리는 이탈리아 주인이 될 수 있다.” ※ 160년 뒤 카이사르도 대군을 이끌고 이탈리아에서 프랑스로 넘었다. ※ 2천년 뒤 이탈리아로 공격해 들어간 나폴레옹은 알프스 고개에서 똑 같은 취지의 연설을 했다.

26 칸나에전투(1) 배경 B.C. 218년 ‘한니발’ 로마 침공 파울루스와 바로 집정관 임명, 하루씩 교대 지휘권 장악
- 바로 : 교만하고 자만심이 강하여 전투를 즐겨 함 - 파울루스 : 신중하여 바로를 억제 ※한니발은 로마시민이 파피우스 전술에 불만, 2/3가 신병 간파

27 칸나에 전투( 2 ) 배경(계속) 기병 기동에 유리한 칸나에 평원으로 로마군을 유인하기 위하여, 야간에 이동하여,
기병 기동에 유리한 칸나에 평원으로 로마군을 유인하기 위하여, 야간에 이동하여, 로마 군의 보급창과 곡창지대 점령 * 로마군을 뒤따르지 않을 수 없게 만듬 한니발의 유인에 바로는 파울루스 충고도 듣지 않고 한니발이 선정한 전장으로 들어감 양군은 아우피두스(Aufidus)강의 9.6km 간격을 두고 서로 대치

28 칸나에 평원

29 칸나에 전투( 3 ) 한니발의 배치 바로의 배치 바로가 지휘권을 장악한 날 아침, 로마군 제2진지 공격하는 것처럼 강 건넘
수적으로 우세한 로마 군에 포위되지 않도록 제방 배치 경보병 : 정면 엄호 / 로마군 공격을 혼란 시킴 바로의 배치 전투 갈망하던 바로, 11,000명 제방 위치/ 개전이 되면 공격 지시 후 한니발 뒤 따름 한니발군을 포위할 수 없음을 알고 정면 대치토록 대열 형성, 통상적인 방법대로 15개 군단 3개 전열 형성, 정예 기병 우익 배치 수적으로 적을 압도할 계획으로 전 전열 두텁게 배치 종심10,정면12→12, 10으로 변화 <적응 못함> (과오#1),

30 칸나에 전투( 4 ) 로마군(Varro) 카르타고군(Hannibal) Aufidus R.
칸나에 전투( 4 ) 로마군(Varro) (보병 65,000명, 기병 7,200명) 보병(65,000명) 파우루스 로마인기병(2,400명) 연합기병(4,800명) Aufidus R. 누미디아 기병(2,000명) 아프리칸 보병(정예) 스페인/고올인 보병 아프리칸 보병(정예) 스페인/고올인 기병(8,000명) 하스두루발 카르타고군(Hannibal) (보병 32,000명, 기병 10,000명)

31 칸나에 전투( 5 ) 한니발 배치(계속) : 적 배치 탐지 후 바로군 대형의 취약점을 이용할 수 있도록 병력 배치
로마군 정예기병(2,400)과 맞서는 좌익 : 고올인 중기병 8,000여명 집중, “하스드루발” 지휘하 로마군 우익 기병 분쇄 후 퇴로 차단, 1/3예비 로마군 연합기병(4,800)과 맞서는 우익 : 누미디아 기병2,000으로 저지 임무 부여 (도박, 불가피) 로마군의 전열의 압도적인 병력을 유리하도록 이용할 결심, 마라톤 전투에 정통, 중앙군 약화, 양 측익 강화 ⇒ 중앙 정면 : 약한 스페인/고올인, 양 측익 : 최강 아프리카인 대열 중앙에 지휘소 설치/직접지휘

32 칸나에 전투( 6 ) 작전경과 경보병 끼리 전초전이 개시 되자, 이것을 엄호로 ‘카르타고’군의 약화된 중앙군이 돌출부 형성 시 까지 전진, 양익군은 현 위치에서 움직이지 않음 하스두루발의 중기병 로마 기병 맹렬한 돌격, 고전 끝에 완전 분쇄, 적의 측면과 배후를 우회 ⇒ 누미디아 기병과 격전 중인 로마군 좌익 기병의 배후를 불의의 습격 ※ 보병 교전이 오래 계속되기도 전 “하스드루발”은 로마기병과 연합기병 완전 격파

33 칸나에 전투( 7 ) 로마군(Varro) 카르타고군(Hannibal) Aufidus R.
칸나에 전투( 7 ) 로마군(Varro) (보병 65,000명, 기병 7,200명) 연합군기병 누미디아 기 병 아프리칸 보 병 스페인/고올인 보병 아프리칸 보 병 Aufidus R. 카르타고군(Hannibal) (보병 32,000명, 기병 10,000명)

34 칸나에 전투(8) 로마군(Varro) 카르타고군(Hannibal) Aufidus R.
칸나에 전투(8) 로마군(Varro) (보병 65,000명, 기병 7,200명) 연합군기병 누미디아 기병 아프리칸 보병 스페인/고올인 보병 아프리칸 보병 Aufidus R. 카르타고군(Hannibal) (보병 32,000명, 기병 10,000명)

35 칸나에 전투( 9 ) 작전경과(계속) 바로, 불가침 전열로 만들기 위해 제2전열의 소대로 제1전열의 간격 메우 도록 지시 (과오#2) → 대형 변화로 기동성 박탈 , 익숙지 않는 신기한 대형으로 확고한 행동을 불가능하게 만듬 한니발, 돌출부를 전투계획에 의거 서서히 후퇴 바로, 카르타고군이 후퇴하는 것을 보고 승리가 눈앞에 왔다고 생각, 제3열 뿐 아니라 경보병까지 제1선에 투입(과오#3) 한니발, 로마군의 의욕 자극 하기에 적당할 만큼 저항하면서 계속 후퇴 바로, 과도한 집결로 대형의 형태조차 유지할 수 없이 중압으로 밀고 들어가는 중앙에, 더 많은 병력을 증강하기 위하여 양익의 병력을 중앙으로 집결 (과오#4) ⇒ 한 병사의 공간에 3명, 혼잡/혼란. 기동성 완전 상실

36 칸나에 전투( 10 ) 로마군(Varro) 카르타고군(Hannibal) Aufidus R.
(보병 65,000명, 기병 7,200명) Aufidus R. 카르타고군(Hannibal) (보병 32,000명, 기병 10,000명)

37 칸나에 전투(11) 작전경과(계속) 로마군, 승리를 향해 전진하는 모양으로, “카”군의 돌출부가 후퇴하는 대로 전진, 돌출부가 직선이 되고 요각으로 변할 때까지 전진 ※ 한니발은 직접 위대한 통솔력을 발휘 함으로서 4:1로 열세함에도 중앙군 대형 유지 한니발, 선제권 장악 준비완료, 강화된 양익 전진 → 로마군을 한니발의 준비된 자루 속으로 몰아 넣음, ※ 로마군은 너무 밀집, 무기사용 불가, 승리함성→ 절망상태 한니발, 중앙군 후퇴 정지, 양익군 최후의 공격, 중기병 배후공격 ⇒로마군 공포의 아우성, 짐짝처럼 밀집된 군중, 아비규환

38 칸나에 전투(12) 로마군(Varro) 전투결과 카르타고군(Hannibal) Aufidus R. 로 마 : 전사 70,000명
칸나에 전투(12) 로마군(Varro) (보병 65,000명, 기병 7,200명) 전투결과 로 마 : 전사 70,000명 카르타고 : 전사 5,500명 Aufidus R. 카르타고군(Hannibal) (보병 32,000명, 기병 10,000명)

39 칸나에 전투(13) 분석 / 교훈 적 지휘관의 성격 파악 유인격멸에 의한 섬멸전 지휘관(한니발)의 중요지점 위치, 지휘통제
칸나에 전투(13) 분석 / 교훈 적 지휘관의 성격 파악 자만하고 전투를 즐기는 바로의 성격 유인격멸에 의한 섬멸전 중앙군의 의도적인 후퇴로 적 유인 강력한 양익에 의한 적 포위 섬멸 지휘관(한니발)의 중요지점 위치, 지휘통제 기병의 집중적인 운용으로 상대적 우세 달성 창조적 사고 능력은 수적우세 압도/ 승리 가능케 함 완전한 계획과 실천으로 2배의 적 완전 섬멸

40 칸나에 전투(14) 분석/ 교훈(계속) ※ 완벽한 양익포위작전, 완전 격멸작전, 완벽한 계획과 실천
적의 기동을 이용, 자기의 기동을 착상 ※ “적정 파악/ 적에 관한 정보” 작전계획 반영 → 정보,작전 TOC 에 위치 실시간 긴밀히 협조 일부 지역 병력절약, 특정 지역 집중 <상대적 전투력 우세 달성> ※ 완벽한 양익포위작전, 완전 격멸작전, 완벽한 계획과 실천 ★ 전투 : 완벽한 승리, 전쟁 : 패배 (적 의지 말살 실패) →로마 시민의 애국심과 로마 정부의 결단은, 전쟁수행으로 결속

41 카르타고의 멸망(1) 로마, 무적의 한니발을 무시하고 아프리카 침략 준비
“카” 원로원, 본국 방어 위해 한니발 소환, 1년(B.C.202)후 자마전투에서 스키피오에게 패함 ⇒ 에스파냐 등 해외 식민지 제공, 군함 20척 외 빼앗김, 50년간 배상금, ※ 한니발 로마군에 쫓기다 B.C.183 (64세,흑해연안 “비티니아”국가) 독약 / 죽음. <같은 해 스키피오 52세 리테르노 별장 사망> B.C.149 로마, 카르타고 재 침공(3차 포에니 전투), 4년간 결사적 항쟁, “카” 17일간 불탐,전 인구의 1/10(5만)만 살아 항복/노예,속주 편입

42 카르타고의 멸망(2) 700년 번영을 누린 도시, 넓은 땅과 수많은 섬과 바다 지배한 강대국, 지구에서 사라짐,
인간만이 아니라, 제국도 언젠가는 멸망. B.C.753년 로마 건국이래 600년이 넘도록, 패자라도 지상에서 말살하지는 않았으나 카르타고와 A.D.146년 그리스의 코린토와, 13년 뒤 에스파냐의 누만티아 같은 운명

43 위대한 장군 한니발(1) ※카르타고의 정치적 / 전략적 실패를 묵과 하고 전투에서 얻은 성과에 치중하여 평가한다면
한니발은 “전쟁은 일종의 예술”이라는 것과 전쟁의 제 원칙에 통달한 장군은 “수적으로 우세한 군대라도 압도할 수 있다.”는 사실 입증. 지휘통솔 시범을 통하여 지휘통솔의 가치/ 지휘관의 위치, 적시 적절한 지휘결심의 중요성 강조→잠재력 최대 발휘/사기 충천 역사상 최고의 강대한 적과 대결 승리,13년간 로마 유린 ※카르타고의 정치적 / 전략적 실패를 묵과 하고 전투에서 얻은 성과에 치중하여 평가한다면 “한니발은 위대한 장군” 칭호 자격 충분

44 한니발과 스키피오의 대화(1) “2차 포에니 전쟁을 매듭지은 자마전투에서 패하여, 오리엔트로 달아난 명장 한니발과,
그에게 승리한 로마의 스키피오 장군이, 도로스 섬에서 만나, 뛰어난 장수에 대해 대화.” ◎ 우리시대 가장 뛰어난 장수? “ 마케도니아왕 알렉산드로스, 페르시아의 대군을 소규모 군대로 무찔렀을 뿐만 아니라, 인간이 생각할 수 있는 경계를 훨씬 넘어, 먼 지방까지 점령한 업적은 , 실로 위대하다고 할 수 밖에 없소.”

45 한니발과 스키피오의 대화(2) ◎두 번째 뛰어난 장수는?
“ 에페이로스의 왕 피로스요. 그는 병법의 대가요,숙영지 건설의 중요성을 처음 인식한 사람” ※ 피로스; 그리스 북부 왕, 한니발 보다 60년 전 이탈리아 침공 로마군과 대결(타란토 용병) ◎ 세 번째 뛰어난 장수는 ? “그건 물론 나 자신이요.” ◎ 만약, 그대가 자마에서 나한테 이겼다면? “그렇다면 내 순위는 피로스를 앞지르고 알렉산드로스도 앞질러 첫 번째가 되었을 거요.”

46 역사의 유쾌한 가정(1) “로마사”를 쓴 리비우스의 에피소드로 한니발이 제시한 3명중 로마와 대결하지 않는 알렉산드로스가 동으로 가지 않고 서쪽으로 침공 로마와 대결 했다면? → 결론은 로마의 승리 알렉산드로스 높게 평가 받는 이유 : 운명이 바뀌기 전 젊은 나이에 요절 (“알”군 지휘관 대왕 한 명, 로마는 11명의 뛰어난 지휘관) 엄정한 규율 동일, 병사의사기와 전통(400년/10년) “알렉”의 전략과 전술적 재능은 인정하지만 로마 남자들은 강건함, “알렉”은 유약한 민족과 싸웠음 로마와 “알렉”의 전쟁은 조직과 개인의 대결,10년 조직 최종적인 승리?

47 역사의 유쾌한 가정(2) ~~~로마인이 든 로마의 이점~~~
마케도니아와 로마군의 보병 군단이 서로 다른 성질을 가짐(“마”는 한 덩어리가 된 공격에 강하고 방어에 유리, “로”는 중대의 연합체로 기동성과 전술전환에 유연성) 자국안에서 싸우는 로마 유리, 로마연합 그물 돌파 곤란 “알렉”에게는 전투에 패하는 것이 곧 전쟁에 패하는 것, “로”군의 전통은 전투의 패배가 전쟁의 패배로 이어지지 않는 것이 특징. ~~~로마인이 든 로마의 이점~~~

48 율리우스 카이사르

49 율리우스 카이사르( 1 ) 개요 “ 카이사르를 영웅 중에 영웅으로 꼽는 이유는 그의 정복사업과 명성에 곁들여 극적인 그의 죽음 때문이 아닐까?” B.C.2세기 로마의 영토는 지중해 전역으로 팽창 ⇒ 하나의 도시국가에서 대 제국으로 발전 장기간 내란 : 속국의 반란, 당파간 대립 포에니 전쟁 후 족벌당과 빈민당으로 나누어 대립 족벌당 : 귀족중심지배, 영수 – 폼페이우스 빈민당 : 군사 독재, 영수 - 카이사르 폼페이우스는 지중해 해적 소탕, 소아시아 반란 진압 등 명성을 얻자 원로원의 견제 → 삼두정치로 맞섬 (폼페이우스, 카이사르, 부호 크라수스)

50 율리우스 카이사르( 2 ) 율리우스 카이사르(Gaius Julius Caesar)
유서 깊은 가문출신, 훌륭한 웅변술과 정치력으로 인기 B.C.59년 집정관 당선 시 까지 정부요직, 순조로운 승진 갈리아 (프랑스, 벨기에 일대)총독 자청, 4개 군단을 이끌고 정복의 길.<로마 북방, 고올족의 빈번한 침입> 고올 전역으로 군사적 식견과 단련, 자신의 과오와 적의 패인 분석/ 연구로 전법에 능통한 장군으로 자질구비. 위인으로서 용기/ 사기를 고무시키는 비범함,기동의 중요성에 대한 평가능력 구비 기동의 속도, 건전한 전술, 정보의 적절한 이용 ※신중하면서 대담성 등 명장으로서의 역량 과시 ※군단은 신병에서 전투경험을 구비한 고참병으로 카이사르와 불가분의 관계

51 율리우스 카이사르( 3 ) 8년간 고올 전역 성과 지중해 연안에서 고올 전역 포함 대국으로 확대 : 지금의 프랑스, 벨기에, 룩셈부르크, 네델란드 일부 / 라인강 서부 독일 지역 영국 정벌, 라인강 넘어 독일 침공 성공 명성이 높아져 가는 카이사르에 로마의 정치적 반발로 평민 자격으로 소환 명함, 폼페이우스와 맞설 것을 결심하고 군대를 이끌고 로마로 향함 ※군대를 이끌고 루비콘강 을 건너는 것은 반역을 의미, “주사위는 던져졌다” B.C.50년 루비콘강을 건너 2개월 만에 전 이탈리아 장악, 폼페이우스 축출

52 ‘폼’과 ‘카’세력기반

53 로마군대의 변모 민병대에서 전문적인 정규군으로 변화 로마군은 지휘관 의사에 따라 조직적 행동
철저한 훈련과 연령, 무기/장비 등 동일 하여 경˙중 보병 구별이 없게 되어, 중대 상호 교체가 가능하므로 전술대형에 신축성 구비 군단은 10개 대형(1개:300명), 각 대형은 3개 중대 ※고올전역에서 열세한 병력으로 심대한 적군을 격파 할 수 있었던 것은 군사편제와 훈련도에 기인 로마군은 지휘관 의사에 따라 조직적 행동 ※요새 진지 구축(예) : 하루 밤 숙영 /주둔지가 어떤 곳이든/적 피습 가능성 희박 하더라도 진지 구축 <근거지, 작전기지, 피난처 등 활용>

54 파르살루스 전투(1) 개요 B.C. 50년 카이사르 2개월 만에 이탈리아 장악, 폼페이우스 그리스로 피신
※적이 예상치 못한 겨울 바다 건너 기습적 상륙 수적으로 우세한 “폼”군과 다르하치움에서 접전(“카”는 해안에 포진한 “폼”군을 포위하기 위하여 선대형 엷게 배치-과실 범함)

55 파르살루스 전투( 2 ) 개요(계속) “폼”군 내선위치 / 제해권 이용 “카”군 좌익 공격 및 우익 배후 상륙, “카”군 대패, 60km 후방진지 철수 ※카이사르 대형유지, 조직적인 철수로 병력 보존 “폼”군 : 승리도취, 전쟁은 끝난 것으로 생각, “카이사르” : 승리에 대한 신념 견지, 장병 패퇴 심리극복 /새로운 공세를 위한 사기 회복 “카”는 “폼”군을 계략으로 격파할 생각, 그리스 내륙으로 진입 “폼”은 “카”군 추적, “파르살루스” 부근 양군 대치 ※ “카”군: 보 3만, 기1천, “폼”군:보 6만, 기7천명

56 파르살루스 전투( 3 ) 작전 경과 ‘폼’군: 절대적 우세에도 불구 “카”군 공격 기다림
“카이사르”군 : 견고한 진지 ‘폼’군 → 평원에서 결전토록 유인 “카”군 통상적 방법으로 군단을 3개 전열, 간격을 넓혀, 밀집된 ‘폼’군 정면을 덮을 수 있도록 함. “카”군 좌익은 험한 제방에 의지 안전하게 배치, 위험은 ‘폼’군 기병과 대치한 우익으로 예상, 6개 대대로 경기병 지원, 제3열 예비, “카”군 먼저 공격 ‘폼’군 궁사수와 투석수로 기병지원, “카”군 기병 공격, ‘폼’군 절대적 우세로 “카”군 후퇴

57 파르살루스 전투(2) Epineus R. 예비대 Caesar Pompey 30,000명 60,000명 1,000명 7,000명

58 파르살루스 전투(2) 작전경과(계속) “카”군 6개 대대로 지원, ‘폼’군 기병 격파
“카”군 6개 대대로 지원, ‘폼’군 기병 격파 궁사수 / 투석수 괴멸 후 ‘폼’군 측면으로 공격 전환 “카”군 제3열 투입 포위된 적 공격 ‘폼’군 저항력 완전 소멸 ‘폼’군 패주 그들 진지 내로 도망, “카”군 뒤따라 ‘폼’군 진영 급습 / 도주하는 적 추격 * 폼페이우스 변장 기병 30명과 도주, 이집트에서 암살 ※ 로마내전 종식 “카이사르” 독재권 확립

59 파르살루스 전투(3) Epineus R. 예비대 Pompey Caesar 60,000명 30,000명

60 파르살루스 전투(4) Epineus R. 예비대 Pompey Caesar 60,000명 30,000명

61 파르살루스 전투(5) 전투결과 Epineus R. 예비대 Pompey Caesar 60,000명 30,000명
카이사르군 : 전사 230명 폼페이우스군: 사상 15,000명 포로 24,000명

62 파르살루스 전투(6) 분석 / 교훈 우수한 지휘와 능숙한 전술로 막대한 병력 차 극복 적시 적절한 예비대 운용
우수한 지휘와 능숙한 전술로 막대한 병력 차 극복 적시 적절한 예비대 운용 6개 대대에 의한 폼페이우스군 기병 공격 저지, 기병과 함께 적 측·후방 공격 이와 동시에 제3전열 예비대 투입 지형을 이용한 적절한 부대 배치 좌익은 에피너스강의 험한 제방에 의지

63 참고(전례 비교) 기원전 고대의 3대 회전과 맞먹는 결전
이수스 전투 – 알렉산드로스 승리 서측 바다, 기병과 보병 모두 열세 칸나에 전투 – 한니발 승리, 기병 우세 자마 전투 – 스키피오 승리, 기병우세 파르살루스 전투, 기병(7배)과 보병(2배) 모두 열세 : 알렉, 한니발, 스키피오가 쓰지 않는 전술사용 기병1천과 경보병 400, 혼성부대를 상대하는 척 피하고, 별동대 2천으로 막은 후 적 기병 후방으로 기동하여 적을 울타리로 몰아 넣음 1열과 2열 투입 적 지칠 때 3열 투입, 기병과 별동대 측 후방 공격

64 “파르살루스”회전 이후 카이사르 이동로

65 영웅 카이사르의 죽음(1) 카이사르는 클레오파트라를 이집트 여왕에 봉함 원로원 종신 총통 임명(이름만 공화정)
♥ 지혜롭고 아름다운 젊은 여왕과 영웅의 사랑 원로원 종신 총통 임명(이름만 공화정) B.C.44년 공화파의 단검에 찔려 비틀 거릴 때, 친아들처럼 아끼던 브루투스 뒤에서 일격, “부루투스, 너마저도!” 권력투쟁의 비극 ♨ 사랑하는 연인 “세르비아”의 아들 ※ ‘카’ 조카 / 양자인 ‘옥타비아누스’가 ‘안토니우스’와의 해전에서 승리, 안토니우스와 연인 ‘클레오파트라’ 자결 ★로마 공화정 막 내림★

66 영웅 카이사르의 죽음(2) 라틴어 “Idus Martiae”, 영어 “The ides of March” 이탈리아어 “Idi dimarzo” 3.15은 조심하라, 카이사르 암살당한 날로 기억 명언 남김 :“왔노라, 보았노라, 이겼노라” 소아시아(폰토스 왕 파르나케스 반란) 평정 후 로마 원로원에 보낸 전과보고 서두 글 말보로 담배 갑 라틴어 “VENI, VIDI, VICI” 전형적인 미국 남성의 생활 방식, (주사위…, … 너마저도) ※유해를 태우는 불길이 꺼질 무렵, 세찬 비로 재를 모우기 전 씻겨 가버림, 후계자 옥타비아누스가 황제묘를 만들었으나 매장할 수 없었슴

67 카이사르가 명장인 이유 1. 시간의 중요성 인식 2. 결정적인 시간과 장소에 우세한 병력 투입
- 건전한 계획을 즉석에서 수립, 신속히 시행. 2. 결정적인 시간과 장소에 우세한 병력 투입 3. 단호한 결심과 기동의 우수성 -적이 그의 공격을 인식 전에 이미 적군 정면에 도달 4. 새로운 방법/발전추구, 기선 제압 노력, 수적열세 공세 5. 지휘통솔력, 부하요구 제공, 불필요한 위험에 처하지 않도록 배려, 선행과 공훈에 대한 보상 → 최고의 충성과 헌신 요구 6. 평시 병사 진영 내 수용, 훈련으로 전투력 연마 7. 자신의 불굴의 의지와 용기, 솔선 수범

68 배반한자 또 배반(참고) 3.15 실질적 주모자 “카시우스 롱기누스”(부르투스 매제) 마르쿠스 부르투스
3.15 실질적 주모자 “카시우스 롱기누스”(부르투스 매제) 1차 : 31세 ‘카라이 패전’ “크라수스”군 우익 지휘, 크라수스 군 궤멸, 500기병과 도망 2차: 내전 시 “폼” 진영 가담 (에게해 제해권 확보 임무), ‘파르살루스’회전 후 “카”가 “폼”추격, 군선과 함께 투항 3차: ‘부르투스’ 보다 공이 많음 불구, 변방 법무관 불만 음모 가담 마르쿠스 부르투스 부친 민중파 정권수립 반란, “폼” 잡혀 처형 삼촌 카토(반 카이사르 선봉) 영향, 36세 “폼”진영 가담 ‘파르살루스’회전 포로, 어머니(세르빌리아 -“카”애인) 부탁 석방, 외 아들 장래 부탁 / 북 이탈리아 속주 총독 아내와 이혼, 아프리카에서 자결한 카토의 딸과 재혼 B,C,44 법무관으로 출세, 카이사르 암살

69 ♧ 수고 했습니다 ♧ (See you next-week)
☺ 즐거운 하루 ☻

70 갈리아 전쟁 1년

71 갈리아 전쟁 2년

72 갈리아 전쟁 3년

73 갈리아 전쟁 4년

74 갈리아 5년

75 갈리아 6년

76 갈리아 7년

77 갈리아 전쟁 8년

78 단군신화(檀君神話) 건국신화로 삼국유사에 기록, 위서(魏書)-단군임금이 아사달 (阿斯達)에 도읍, 국호 ‘조선’(중국, 요(嶤)와 같은 시대 B.C.2333) 환인(桓因)의 서자(庶子) 환웅(桓雄)이 태백산 마루 신단수(神檀樹) 아래에 신시(神市)를 열고 세상을 다스림. 곰과 호랑이가 사람이 되고자 하여, 환웅은 ‘쑥과 마늘만으로 100일간 햇빛을 보지 않으면 사람이 될 수 있다’고 하여, 곰이 100일을 견뎌, 사람˙웅여(熊女) 되었고, 환웅과 결혼하여 아들을 낳으니 그가 곧 단군이다 단군은 평양에 도읍, 국호 “조선”, ‘아사달’ 로 천도 1,500년간 다스림, ※아사달- 평양?요동?, 태백산- 큰산?, 중국지역? 태백산? ⇒ 환인, 환웅, 환검(檀君)---삼신(三神)

79 참고(이수스 회전) A.D.333 지중해 북동쪽(서쪽 바다) 이수스 평원, 그리스(알)와 페르시아(다리우스)
보3만1천,기5천 /보14만,기 1만(모두 열세) 우익 기병5천 적 좌익 기병격파,적 배후 공격, 알2백/다5만 손실 ※ ‘우’ 바다, 기병 좌∙우익 아닌 우익 집중, 포위작전

80 참고(칸나에 전투) 로마군(Varro) 전투결과 카르타고군(Hannibal) Aufidus R.
참고(칸나에 전투) 로마군(Varro) (보병 65,000명, 기병 7,200명) 전투결과 로 마 군: 전사 70,000명 카르타고군: 전사 5,500명 Aufidus R. 카르타고군(Hannibal) (보병 32,000명, 기병 10,000명)

81 참고(자마 전투) A.D.202 자마 한니발 보4만6천/기4천, 스키피오 보3만4천/기6천(기병 우세)
“한” 전사2만,포로2만- “스”1만5천 피해

82 참고(다라키움 공방전) B.C.48 ‘폼’군 포위망 형성-군량조달 차단 시도
“폼”우세한 병력 여러 지점 동시다발 공격, “카” 공항상태 (1,200명 전사) ※ 수적으로 우세한 적 포위 → 실책

83 자마 전투(1)

84 자마 전투(2) “스키피오” 강화 교섭 중 “한” 카르타고 도착, 결렬
“스” 보3만4천,기6천, “한” 보4만6천,기4천, 코80마리 ‘한’ 선두 코끼리, 두 번째 혼성 용병1만9천,양쪽 기병2천,후방 200m 정예1만5천 ‘스’ 경무장 소대를 중무장 소대 사이 메움, 기병 좌우 ※전쟁의 행방결정, 지중해 장래 결정하는 싸움 B.C.202년 개시

85 자마 전투(3) 로마군 좌∙우 기병 돌격으로 시작
‘한’ 코끼리 돌격, ‘로’ 경보병이 중보병 소대 사이로 파고 듬, 이 간격으로 코끼리 통과 보병전투 병력 (로 2만8천,카 3만천) ‘카’ 우세, 전투력 ‘로’우세 ‘로’기병 ’카’기병 압도, ‘카’군 양 옆 빔, ‘로’ 중무장 보병 3면 공격, 퇴로 차단 ‘카’군 괴멸, 적 주력 공격 대비 ‘한’ ‘로’군 지친 지금 주력투입 기회 생각 정예 1만5천 투입

86 자마 전투(4) ※14년 전 칸나 전투, 자마에서재현 ※ 카르타고 2만 전사, 2만 포로, ‘로’1천5백 전사
‘로’ 군은 ‘카’군 진격을 보고 진형 다시 짬, 종대→ 활 모양 횡대로 전개 지친 병력 / 숫 적 우세 이용, 추격 기병 복귀시간 벌기 부상자 운반하던 경보병과 누미디아 보병/ 기병 합류 완전포위 , 대승 ※14년 전 칸나 전투, 자마에서재현 ※ 카르타고 2만 전사, 2만 포로, ‘로’1천5백 전사 ※ 전략 전술의 스승과 제자가 벌인 대결, 제자 승리

87

88

89 지 중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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