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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ublished byDušan Fišer Modified 5년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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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아스는 룻에게서 수요집회 19순이상문 2015년 11월 11일(수) 마태복음 9강 마태복음 9강 “보아스는 룻에게서”를
말씀드릴 수요집회 19순 이상문입니다. 2015년 11월 11일(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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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 차 본 문 가. 룻기 1장 나. 룻기 2장 다. 룻기 3장 라. 룻기 4장 마. 맺는 말 도입부 성경말씀 등장인물
이스라엘의 기업에 대한 법칙 목차는 다음과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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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살몬은 라합에게서 보아스를 낳고 보아스는 룻에게서 오벳을 낳고 오벳은 이새를 낳고 6 이새는 다윗왕을 낳으니라
마1:5~6 5 살몬은 라합에게서 보아스를 낳고 보아스는 룻에게서 오벳을 낳고 오벳은 이새를 낳고 6 이새는 다윗왕을 낳으니라 오늘의 성경구절을 다 같이 읽겠습니다. 마태복음 1장의 족보는 예수 그리스도를 낳는 하나님 나라의 장자들의 족보입니다. 오늘 우리가 공부할 룻기는 이방여자인 룻이 어떻게 해서 하나님 나라에 편입되는가 또 룻이 어떻게 해서 다윗과 예수 그리스도의 조상이 되는가 하는 것입니다. 이런 사건이 생기된 역사적 배경이 있습니다. 그것은 이스라엘이 가나안 땅에 들어가기 전에 하나님이 모세를 통하여 이스라엘 12지파와 그 가계에 기업지를 분배했습니다. 각 지파에 분배된 땅은 영원히 변경되지 않으며, 어떠한 일이 있어도 그 땅은 계승되어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분배된 기업은 남편과 아들에 의해서만 계승된다는 것이었습니다. 여자들은 남편과 아들이 없으면 기업이 없어지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여자들에게는 기업과 기업을 이을 아들이 자기들의 생명과 마찬가지인 것입니다. 반드시 있어야 되고, 없으면 안 되는 것입니다. 없으면 죽은 것과 같은 그런 의미인 것이지요. 성경에 기업이 계승되지 못한 특이한 경우가 두 가지 있었습니다. 결과적으로는 다 해결되었습니다. 첫번째는 아들을 낳지 못하고 딸만 낳고 죽은 가계의 경우(민27장) – 슬로브핫의 딸들이었습니다. 두번째는 룻기에서 남편과 아들이 다 죽고 딸도 없고 시어머니와 며느리만 남은 상황입니다. 그래도 그 가계의 기업은 보존되어야 하고 그 가계의 기업은 그 가계로 계승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인생의 필요보다 하나님의 갈망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하나의 가계가 없어진다면 하나님 나라를 구성하는 한 부분이 없어지는 것이니까 하나님 나라는 그만큼 불완전해지는 것이고요. 하나님은 온전하게 나타나야 하는데 하나님을 표현하는 한 부분이 없어지는 것이니까 하나님은 그만큼 불완전해지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정해놓은 인생의 기업은 반드시 보전되어야 하고 계승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인생의 갈망이라기 보다 하나님의 갈망입니다. 하나님 나라인 이스라엘에서 기업이 없으면 생명이 없는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오늘 우리에게도 그리스도와 교회가 없으면 생명이 없는 것과 같습니다. 그리스도와 교회는 우리의 생명이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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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방여자, 모압여자인 룻이 어떻게 하나님 나라에 편입되었는가?
학습목표 이방여자, 모압여자인 룻이 어떻게 하나님 나라에 편입되었는가? 오늘의 성경구절을 다 같이 읽겠습니다. 마태복음 1장의 족보는 예수 그리스도를 낳는 하나님 나라의 장자들의 족보입니다. 오늘 우리가 공부할 룻기는 이방여자인 룻이 어떻게 해서 하나님 나라에 편입되는가 또 룻이 어떻게 해서 다윗과 예수 그리스도의 조상이 되는가 하는 것입니다. 이런 사건이 생기된 역사적 배경이 있습니다. 그것은 이스라엘이 가나안 땅에 들어가기 전에 하나님이 모세를 통하여 이스라엘 12지파와 그 가계에 기업지를 분배했습니다. 각 지파에 분배된 땅은 영원히 변경되지 않으며, 어떠한 일이 있어도 그 땅은 계승되어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분배된 기업은 남편과 아들에 의해서만 계승된다는 것이었습니다. 여자들은 남편과 아들이 없으면 기업이 없어지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여자들에게는 기업과 기업을 이을 아들이 자기들의 생명과 마찬가지인 것입니다. 반드시 있어야 되고, 없으면 안 되는 것입니다. 없으면 죽은 것과 같은 그런 의미인 것이지요. 성경에 기업이 계승되지 못한 특이한 경우가 두 가지 있었습니다. 결과적으로는 다 해결되었습니다. 첫번째는 아들을 낳지 못하고 딸만 낳고 죽은 가계의 경우(민27장) – 슬로브핫의 딸들이었습니다. 두번째는 룻기에서 남편과 아들이 다 죽고 딸도 없고 시어머니와 며느리만 남은 상황입니다. 그래도 그 가계의 기업은 보존되어야 하고 그 가계의 기업은 그 가계로 계승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인생의 필요보다 하나님의 갈망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하나의 가계가 없어진다면 하나님 나라를 구성하는 한 부분이 없어지는 것이니까 하나님 나라는 그만큼 불완전해지는 것이고요. 하나님은 온전하게 나타나야 하는데 하나님을 표현하는 한 부분이 없어지는 것이니까 하나님은 그만큼 불완전해지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정해놓은 인생의 기업은 반드시 보전되어야 하고 계승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인생의 갈망이라기 보다 하나님의 갈망입니다. 하나님 나라인 이스라엘에서 기업이 없으면 생명이 없는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오늘 우리에게도 그리스도와 교회가 없으면 생명이 없는 것과 같습니다. 그리스도와 교회는 우리의 생명이기 때문입니다. 룻이 어떻게 다윗과 예수 그리스도의 조상이 되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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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장인물 룻 보아스 나오미 (보아스의 부인) (룻의 남편) (룻의 시모) 룻기의 주요 등장인물은 세 명입니다.
보아스, 룻, 나오미 보아스 – 룻의 기업을 구속해준 사람으로서의 구원자입니다. 이런 면에서 보아스는 예수의 모형으로 등장하는 사람입니다. 룻 – 이방여인, 모압의 후손, 이것은 유대인의 입장에서 보면 절대로 하나님의 백성이 될 수 없는 사람인데, 이런 사람이 인류의 구원자 예수 그리스도를 낳는 조상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 여자는 절대적으로 구원이 필요한 사람으로 등장하고, 오늘 하나님 나라 안으로 구원을 받아야 하는 우리 모두를 예표하고 있습니다. 나오미 – 베들레헴에 흉년이 들어서 양식을 구하려고 남편을 따라 이방땅으로 간 사람입니다. 지금으로 말하면 형제를 따라서 교회를 떠나 이방땅에 살면서 완전 망한 사람이지만, 며느리 룻을 보아스에게 인도하여 기업을 얻게 됩니다. 룻 (보아스의 부인) 보아스 (룻의 남편) 나오미 (룻의 시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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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라엘의 기업에 대한 법칙 하나님이 정하신 기업은 이동할 수 없다. 사람은 옮겨도 기업은 옮기지 못한다.
민수기 49강 참조 이스라엘의 기업에 대한 법칙 하나님이 정하신 기업은 이동할 수 없다. 사람은 옮겨도 기업은 옮기지 못한다. 오늘의 성경구절을 다 같이 읽겠습니다. 마태복음 1장의 족보는 예수 그리스도를 낳는 하나님 나라의 장자들의 족보입니다. 오늘 우리가 공부할 룻기는 이방여자인 룻이 어떻게 해서 하나님 나라에 편입되는가 또 룻이 어떻게 해서 다윗과 예수 그리스도의 조상이 되는가 하는 것입니다. 이런 사건이 생기된 역사적 배경이 있습니다. 그것은 이스라엘이 가나안 땅에 들어가기 전에 하나님이 모세를 통하여 이스라엘 12지파와 그 가계에 기업지를 분배했습니다. 각 지파에 분배된 땅은 영원히 변경되지 않으며, 어떠한 일이 있어도 그 땅은 계승되어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분배된 기업은 남편과 아들에 의해서만 계승된다는 것이었습니다. 여자들은 남편과 아들이 없으면 기업이 없어지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여자들에게는 기업과 기업을 이을 아들이 자기들의 생명과 마찬가지인 것입니다. 반드시 있어야 되고, 없으면 안 되는 것입니다. 없으면 죽은 것과 같은 그런 의미인 것이지요. 성경에 기업이 계승되지 못한 특이한 경우가 두 가지 있었습니다. 결과적으로는 다 해결되었습니다. 첫번째는 아들을 낳지 못하고 딸만 낳고 죽은 가계의 경우(민27장) – 슬로브핫의 딸들이었습니다. 두번째는 룻기에서 남편과 아들이 다 죽고 딸도 없고 시어머니와 며느리만 남은 상황입니다. 그래도 그 가계의 기업은 보존되어야 하고 그 가계의 기업은 그 가계로 계승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인생의 필요보다 하나님의 갈망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하나의 가계가 없어진다면 하나님 나라를 구성하는 한 부분이 없어지는 것이니까 하나님 나라는 그만큼 불완전해지는 것이고요. 하나님은 온전하게 나타나야 하는데 하나님을 표현하는 한 부분이 없어지는 것이니까 하나님은 그만큼 불완전해지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정해놓은 인생의 기업은 반드시 보전되어야 하고 계승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인생의 갈망이라기 보다 하나님의 갈망입니다. 하나님 나라인 이스라엘에서 기업이 없으면 생명이 없는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오늘 우리에게도 그리스도와 교회가 없으면 생명이 없는 것과 같습니다. 그리스도와 교회는 우리의 생명이기 때문입니다. 분배된 기업은 남편과 아들에 의해서만 보전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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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 나라의 완전함 & 하나님의 완전한 표현 민수기 27장 – 슬로브핫의 딸들 룻기 민수기 49강 참조
오늘의 성경구절을 다 같이 읽겠습니다. 마태복음 1장의 족보는 예수 그리스도를 낳는 하나님 나라의 장자들의 족보입니다. 오늘 우리가 공부할 룻기는 이방여자인 룻이 어떻게 해서 하나님 나라에 편입되는가 또 룻이 어떻게 해서 다윗과 예수 그리스도의 조상이 되는가 하는 것입니다. 이런 사건이 생기된 역사적 배경이 있습니다. 그것은 이스라엘이 가나안 땅에 들어가기 전에 하나님이 모세를 통하여 이스라엘 12지파와 그 가계에 기업지를 분배했습니다. 각 지파에 분배된 땅은 영원히 변경되지 않으며, 어떠한 일이 있어도 그 땅은 계승되어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분배된 기업은 남편과 아들에 의해서만 계승된다는 것이었습니다. 여자들은 남편과 아들이 없으면 기업이 없어지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여자들에게는 기업과 기업을 이을 아들이 자기들의 생명과 마찬가지인 것입니다. 반드시 있어야 되고, 없으면 안 되는 것입니다. 없으면 죽은 것과 같은 그런 의미인 것이지요. 성경에 기업이 계승되지 못한 특이한 경우가 두 가지 있었습니다. 결과적으로는 다 해결되었습니다. 첫번째는 아들을 낳지 못하고 딸만 낳고 죽은 가계의 경우(민27장) – 슬로브핫의 딸들이었습니다. 두번째는 룻기에서 남편과 아들이 다 죽고 딸도 없고 시어머니와 며느리만 남은 상황입니다. 그래도 그 가계의 기업은 보존되어야 하고 그 가계의 기업은 그 가계로 계승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인생의 필요보다 하나님의 갈망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하나의 가계가 없어진다면 하나님 나라를 구성하는 한 부분이 없어지는 것이니까 하나님 나라는 그만큼 불완전해지는 것이고요. 하나님은 온전하게 나타나야 하는데 하나님을 표현하는 한 부분이 없어지는 것이니까 하나님은 그만큼 불완전해지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정해놓은 인생의 기업은 반드시 보전되어야 하고 계승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인생의 갈망이라기 보다 하나님의 갈망입니다. 하나님 나라인 이스라엘에서 기업이 없으면 생명이 없는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오늘 우리에게도 그리스도와 교회가 없으면 생명이 없는 것과 같습니다. 그리스도와 교회는 우리의 생명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 나라의 완전함 & 하나님의 완전한 표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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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 룻기 1장 룻이 나오미를 따라서 베들레헴으로 감! ① 룻은 모압의 후손 룻기 1장은
여러 가지 story가 있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룻이 시어머니 나오미를 따라서 베들레헴, 하나님 나라로 갔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룻은 모압의 후손이라는 것입니다.(찰칵~~~) 모압의 후손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있다면, 그렇다면 오늘날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는 것입니다. 모압의 후손이라는 말은 부끄럽고 수치스러울 수 있는 극단을 말합니다. 창세기 19장에 소돔과 고모라 – 그들의 죄악으로 인해 하늘에서 내리는 유황불에 멸망당하는 사건입니다. 이때 그 재난을 피하다가 롯의 아내는 돌아본고로 소금기둥이 되고 롯이 두딸과 함께 굴 속으로 피난을 했는데 이 때 딸들이 아주 이성적인 판단을 합니다. 이 땅에는 우리의 배필될 사람이 없으니 우리 아버지로 말미암아 인종을 전하자고 해서 낳은 아들이 모압과 암몬입니다. 그래서 모압과 암몬은 이스라엘의 총회에 영원히 참여하지 못하는 저주를 받았습니다. 이것은 부끄러움과 수치의 극단을 달리는 사건이며, 부정한 연합의 끝을 보여주는 예표인 것입니다. 부끄러움과 수치의 극단, 부정한 연합의 극단은 무엇인가? 바로 “아담이 선악을 아는 나무의 열매를 먹었다.”는 것입니다. 선악을 아는 지식과의 연합은 결국 하나님을 거역했고, 하나님 아들을 죽였고, 그것은 바로 나 자신을 버렸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진짜 부끄러운 것이 무엇인지? 진짜 수치스러운 것이 무엇인지? 신성한 연합이 무엇인지를 모르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모압의 후손인 발락은 가나안 입구인 요단강 건너편에서 하나님의 백성이 가나안에 들어가지 못하게 끈질기게 막았던 족속입니다. 미디안의 선지자 발람을 고용해서 여호와의 이름을 빌려서 이스라엘을 저주하게 했습니다. 이런 모압의 후손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있다면 오늘 날 누구도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지 못할 사람이 없다는 것입니다. ① 룻은 모압의 후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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②시어머니 나오미를 따라감 이런 룻이 나오미를 따라서 베들레헴으로 따라 가게 됩니다.
그런데 나오미는 나를 따라오지 말라고 몇 번을 말렸습니다. “나는 정말 희망이 없고 너에게 줄 것이 하나도 없으니 나를 따라오지 말아라. 그러니 너는 너의 백성과 신에게로 돌아가라.”고 했습니다. 한마디로 말하면 팔자를 고치라는 것입니다. 이런 시어머니에게 룻이 다음과 같은 유명한 간증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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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 나로 어머니를 떠나며 어머니를 따르지 말고 돌아가라 강권하지 마옵소서 어머니께서 가시는 곳에 나도 가고 어머니께서 유숙하시는 곳에서 나도 유숙하겠나이다 어머니의 백성이 나의 백성이 되고 어머니의 하나님이 나의 하나님이 되시리니 17 어머니께서 죽으시는 곳에서 나도 죽어 거기 장사될 것이라 만일 내가 죽는 일 외에 어머니와 떠나면 여호와께서 내게 벌을 내리시고 더 내리시기를 원하나이다 이런 룻이 나오미를 따라서 베들레헴으로 따라 가게 됩니다. 그런데 나오미는 나를 따라오지 말라고 몇 번을 말렸습니다. “나는 정말 희망이 없고 너에게 줄 것이 하나도 없으니 나를 따라오지 말아라. 그러니 너는 너의 백성과 신에게로 돌아가라.”고 했습니다. 한마디로 말하면 팔자를 고치라는 것입니다. 이런 시어머니에게 룻이 다음과 같은 유명한 간증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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룻은 왜 나오미를 따라갔을까? 룻이 굳게 결심함 vs. 나오미를 떠날 수 없어서 왜 룻은 나오미를 따라갔을까요?
이것을 나오미는 “룻이 굳게 결심한 것을 보고 더 이상 말릴 수 없었다.”고 했습니다. 이것은 나오미의 관점에서 본 것이지요. 룻은 왜 이런 간증을 했을까요? 성경에는 없는데, 이것을 목사님은 “그 시어머니를 떠날 수가 없어서~~~”라고 했습니다. 룻이 떠나지 못한 것은 룻에게 나는 모압 종교가 싫어서 이스라엘의 종교를 찾아야겠다거나 나는 세상이 싫어서 유대인에게로 가야겠다거나 세상에는 희망이 없어서 라거나 하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룻은 “어머니 가시는 곳에 나도 가고, 어머니가 죽는 곳에 나도 죽겠습니다.”라는 것이었습니다. 룻은 자기 시어어머니를 따라간 것이지 하나님을 따라 간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런데 룻이 하나님을 만나게 됐다는 것입니다. 이상합니다. 어찌 룻과 내가 똑 같은 사람인지. 89년 25살때 현욱이형을 따라서 처음 교회에 왔을 때 창세기가 뭔지 계시록이 뭔지 전혀 몰랐습니다. 그런데 사람들이 너무 정상적인 삶을 살고 있었습니다. 아무리 생각해도 저에게는 정상적인 사람들로 보였습니다. 또 목사님은 너무나 상식적인 말씀을 하셨습니다. 지금도 그렇지만 예수가 사람이 아니고 신이면 예수가 한 일이 나와 아무 상관이 없다. 예수가 사람이고 또 사람이어야만 그가 한 일이 나와 상관이 있다. 이것은 너무나 상식적인 말 아닙니까? 왜 이런 말이 문제가 되는지 도무지 알 수 없어요. 저는 정상적인 삶을 살고 있는 분들을 따라왔고 너무나 상식적인 말씀을 듣고 따라왔습니다. 그런데 제게는 나는 누구인가에 대한 의문이 사라졌고, 뭘 하면서 살아야 할지 어떻게 살아야 할지에 대한 의문이 없어졌습니다. 그래서 저는 성경에 있는 말씀이 하나님 말씀이 아니라고 부인할 수 없는 사람이 되었고요. 하나님이 아니면 이 말씀을 할 수 없다는 믿음이 생기게 되었습니다. 세상이 볼 때는 깨진 접시나 마찬가지이고 터진 항아리 같은 시어머니이고 아무 것도 줄 수 없는 늙은 할머니이고 누가 보더라고 무시할 수밖에 없는 여자인 나오미! 이 여자가 바로 룻을 하나님 나라로 안내한 것입니다. 누가 나를 하나님 나라로 안내했습니까? 이런 사람이 나를 하나님 나라로 안내했습니다. 그때는 잘 몰랐지만 바로 이 사람이 십자가에 못박힌 우리 주님의 모습이 아닙니까. 인생의 진실한 모습 때문에 떠날 수 없고 따라갈 수밖에 없는 것이지요. 룻이 굳게 결심함 vs. 나오미를 떠날 수 없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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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룻기 2장 보아스와 룻이 만남! 룻기 2장은 보아스와 룻이 만나는 장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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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룻이 땅에 엎드려 절하며 그에게 이르되 나는 이방 여인이어늘 당신이 어찌하여 내게 은혜를 베푸시며 나를 돌아보시나이까 12 보아스가 그에게 대답하여 가로되 네 남편이 죽은 후로 네가 시모에게 행한 모든 것과 네 부모와 고국을 떠나 전에 알지 못하던 백성에게로 온 일이 내게 분명히 들렸느니라 13 여호와께서 네 행한 일을 보응하시기를 원하며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그 날개 아래 보호를 받으러 온 네게 온전한 상 주시기를 원하노라 14 룻이 가로되 내 주여 내가 당신께 은혜 입기를 원하나이다 나는 당신의 시녀의 하나와 같지 못하오나 당신이 이 시녀를 위로하시고 마음을 기쁘게 하는 말씀을 하셨나이다 주요 내용은 이렇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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① 보아스는 룻에게 11 그대가 남편을 잃은 이후로 시어머니에게 한 일을 모두 들었네. 그리고 그대가 어떻게 부모가 있는 고향을 마다하고 이 곳 낯선 땅에까지 와서 살고 있는지도 다 알고 있네 13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그 날개 아래 보호를 받으러 온 네게 온전한 상 주시기를 원하노라 2장에서는 보아스와 룻이 만나는 장면입니다. 기업이 없는 인생과 기업을 줄 수 있는 자가 만났고요 구원자와 구원이 필요한 자가 만났습니다. 1) 룻2:11 2장을 읽어보면 보아스가 룻에게 과잉친절을 베푸는 것같아 보입니다. 목이 마르면 언제든지 물통에 가서 물을 먹으라고 하고 다른 데 가지 말고 언제든지 여기서 이삭을 주으라 하고 젊은 남자들에게 건드리지 말라고 합니다. 왜 이런 친절을 베풀었을까요? 룻이 “저에게 왜 이런 친절을 베푸십니까?” 하고 묻게 됩니다. 그래서 보아스가 “네가 남편을 잃은 이후로 시어머니에게 한 일을 모두 들었다. 그리고 그대가 어떻게 부모가 있는 고향을 마다하고 이 곳 낯선 땅에까지 와서 살고 있는지도 다 알고 있네.” 했어요. 한 마디로 말하면 ‘고생이 많았을 텐데, 참 착하구나’하는 말입니다. 이런 story를 들어서 알고 있다면 어느 정도는 이해가 되지만 그렇다고 다 이런 친절을 베푸는 것은 아닙니다. 아~~ 이건 본문에 없는 건데… 아마~~~ 제 생각에는 이런 것같습니다. 보아스가 룻의 이야기를 전해듣고 보아스는 자기 어머니, 라합이 생각나지 않았나 싶습니다. 여리고에서는 사는 것보다 죽는 것이 더 나았던 어머니 여리고에서는 더 이상 희망이 없고 절망만 있었던 어머니 살기 위해서 여리고를 배신하고 자기 아버지 살몬을 따라왔던 어머니 이 어머니가 생각나지 않았겠나 싶습니다. 마찬가지로 우리 역시 그렇다는 것입니다. 우리의 출신성분이 다 라합이고 룻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 나라 밖에 있던 나! 나는 그냥 살다가 마칠 인생이었습니다. 본질상 진노의 자식이었죠. 이런 사람이 하나님 나라에 왔을 때 보아스와 같은 사람을 만났다는 것입니다. 오늘 내가 왜 여기에서 살고 있을 수 있는가? 내가 잘나서 그런가? 똑똑해서 그런 것은 더욱 아닙니다. 전적인 은혜입니다. (또 교회 안에 유명한 이야기가 있습니다.) (중심부 영재자매가 순천에서 대구로 올 때) “나도 교회가 없으면 살 수 없는 사람이고 너도 교회가 없으면 살 수 없는 사람이다.”는 말을 들었다는 것입니다. 교회 안에서 누가 크고 누가 작냐는 것입니다. 모두가 다 주님 앞에서 피조물이 아니냐는 것입니다. 하나님 나라 안으로 온 사람은 누구나 존귀하다는 것입니다. 2) 룻2:13 그리고13절에서 보아스는 룻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시어머니를 따라왔는데 보아스는 “네가 여호와의 날개 아래 보호를 받으러 왔구나”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나오미는 이스라엘 사람이고 하나님의 백성이니까 이스라엘 사람을 따라 온 것은 이스라엘의 하나님을 따라온 것이 된 것이고 하나님 백성을 따라온 것이 결국 하나님을 따라간 것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우리 중에 누구를 보고 좋아한다면 그것은 우리 모두를 보고 좋아한 것이고 우리 중 어떤 사람이든지 한 사람을 따라오면 그것은 우리 모두를 따라오는 것과 같습니다. 그리고 우리 형제들이 좋아서 온 사람은 결국 그 형제의 하나님을 좋아할 수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보아스가 이렇게 말한 것은 여호와의 날개 아래 보호받으러 온 사람은 하나님이 버리지 않는다. 오히려 그 사람에게 상을 주는 것이 마땅하다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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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룻기 3장 룻이 보아스에게 기업을 요청함! 3장은 룻이 보아스를 만나서 기업을 요청하는 장면입니다.
바로 룻이 영원한 남편을 만나는 장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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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 나는 당신의 시녀 룻이오니 당신의 옷자락으로 시녀를 덮으소서 당신은 우리 기업을 무를 자가 됨이니이다
여자에게서 남편은 기업과 마찬가지입니다. 룻기 3장에서 룻은 기업을 얻기 위해 나오미가 시키는대로 하게 됩니다. 그래서 룻이 보아스가 침실에 가서 눕는 것을 보고 가만히 가서 그 발치 이불을 들고 눕게 됩니다. 이때 보아스가 깜짝 놀라서 “네가 누구냐?”하니까 룻이 이런 말을 합니다. “09 나는 당신의 ~~~~~ 됨이니이다.” 이것은 인간의 어떤 사랑이라기 보다는 보아스에게 구원을 요청하는 지극히 가냘픈 한 사람의 고백입니다. 그래서 보아스가 룻에게 은혜를 입히지 않으면 안 되는 상황이 된 것입니다. 발치에 누워서 “당신의 옷자락으로 나를 덮으소서”하는 이런 사람을 어떻게 거절하겠냐는 것입니다. 일요일 이복순 누님의 간증이 바로 이 말씀과 똑 같습니다. “나는 당신의 시녀 룻이오니 당신의 옷자락으로 귓구녕을 뚫어주세요 당신은 우리 기업을 무를 자가 됩니다.” 결국 하나님의 말씀과 교회가 누님의 귓구멍을 뚫은 것이었습니다. 이제는 누구의 아내가 아니라 영광스런 그리스도의 신부인 것입니다. 여자는 배경이 어떠하든지 남편을 만나기에 따라서 모든 것이 달라지는 것입니다. 모압사람이었든지 암몬사람이었든지 뭐가 됐든지 상관없습니다. 그리고 하나님 나라에서 자기의 출신을 자랑하는 사람이 어디 있냐는 것입니다. 하나님 나라 밖에 있는 사람은 누가 됐든지 간에 기업이 없는 인생이고 동산 밖에 있는 인생인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룻처럼 나오미를 따라서 보아스를 만난 사람입니다. 우리는 처음에 나오미를 만나서 따라오게 되지만, 하나님 나라 안에서 다시 보아스를 만나게 됩니다. 보아스로 인해서 끊임없는 감사가 나오게 됩니다. 그래서 교회는 나오미를 만난 룻으로 가득차 있는 곳이고요 교회는 보아스를 만난 룻으로 가득 차 있는 곳입니다. 룻으로 가득 차 있는 교회, 이것이 바로 하나님 나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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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아스가 기업 무르기로 확정하고 룻이 아들을 낳음!
라. 룻기 4장 보아스가 기업 무르기로 확정하고 룻이 아들을 낳음! 4장은 보아스가 룻에게 기업을 무르기로 확정하고 룻이 아들을 낳는 장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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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 보아스가 장로들과 모든 백성에게 이르되 내가 엘리멜렉과 기룐과 말론에게 있던 모든 것을 나오미의 손에서 산 일에 너희가 오늘날 증인이 되었고 10 또 말론의 아내 모압 여인 룻을 사서 나의 아내로 취하고 그 죽은 자의 기업을 그 이름으로 잇게 하여 그 이름이 그 형제 중과 그곳 성문에서 끊어 지지 않게 함에 너희가 오늘날 증인이 되었느니라 13 이에 보아스가 룻을 취하여 아내를 삼고 그와 동침하였더니 여호와께서 그로 잉태케 하시 므로 그가 아들을 낳은지라 주요 구절은 다음과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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① 보아스가 룻에게 기업을 무름 그리스도의 조상이 됨 기업을 구속해 줌 ① 보아스가 룻에게 기업을 무름
룻에게 가장 합당하게 기업을 무를 사람은 보아스였습니다. 그래서 보아스는 룻에게 구원자가 되는 것이고 영광스러운 다윗왕의 조상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인류의 구원자이신 그리스도의 조상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룻에게 기업을 물어준다. 구속해준다.”는 말은 “나오미와 룻에게 있는 모든 것을 보아스가 책임을 지고 건져온다.”는 말입니다. 성경에 나와 있는대로 보면 이렇습니다. 엘리멜렉과 기룐과 말론에게 있던 모든 것을 나오미의 손에서 사야되고요. 모압여인 룻을 자기 아내로 맞이해야 되고요 (우리의 주님은 모압여인 같은 우리를 자기의 신부 되는 것을 부끄러워하지 않았습니다.) 둘 사이에 낳은 아들은 자기 아들이 되는 것이 아니고, 엘리멜렉의 기업을 잇는 아들이 되는 것입니다. 이렇기 때문에 룻에게 기업을 무를 수 있는 보아스 보다 더 가까운 친척이 거절한 것입니다. 이 사람은 성경에 이름도 나오지 않고 단지 손해(損害)를 보지 않으려고 거절했다는 것입니다. 남을 구원한다는 것, 다른 사람의 기업을 구속한다는 것은 자기가 손해를 감당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내가 손해를 감당하지 않으려고 한다면 우리는 아무도 구속할 수 없습니다. 내가 손해를 감당하지 않으려고 한다면 우리는 누구도 하나님 나라에 살 수 있게 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많은 얼굴들이 지나가네요. 자기 인생을 보아스와 같이 영광스럽게 소비하고 있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목사님, 형님들, 누님들, 그리고 영광스러운 동생들이 있습니다. 저는 교회 학교에 관련되어 있으니까요. 대표적으로 … 초등부를 섬기고 있는 최정아 누님 중등부 노영경 형님 고등부 권미애 누님 그리고 김요한형제, 김재형형제 등등 자기 인생을 보아스와 같이 영광스럽게 소비하고 있는 사람들이 너무 많습니다. ②여기에서 오벳이 출생했습니다. 오벳은 예배하는 자라는 의미입니다. 보아스와 룻이 만나서 나온 아들 그리스도와 교회가 만나서 나온 아들이 바로 예배하는 자라는 것입니다. 교회는 오벳, 하나님 아들을 출산하는 영광스러운 곳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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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 말씀 Wording Tea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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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고등부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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② 오벳을 낳음 오벳 – 예배하는 자 ① 보아스가 룻에게 기업을 무름 룻에게 가장 합당하게 기업을 무를 사람은 보아스였습니다.
그래서 보아스는 룻에게 구원자가 되는 것이고 영광스러운 다윗왕의 조상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인류의 구원자이신 그리스도의 조상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룻에게 기업을 물어준다. 구속해준다.”는 말은 “나오미와 룻에게 있는 모든 것을 보아스가 책임을 지고 건져온다.”는 말입니다. 성경에 나와 있는대로 보면 이렇습니다. 엘리멜렉과 기룐과 말론에게 있던 모든 것을 나오미의 손에서 사야되고요. 모압여인 룻을 자기 아내로 맞이해야 되고요 (우리의 주님은 모압여인 같은 우리를 자기의 신부 되는 것을 부끄러워하지 않았습니다.) 둘 사이에 낳은 아들은 자기 아들이 되는 것이 아니고, 엘리멜렉의 기업을 잇는 아들이 되는 것입니다. 이렇기 때문에 룻에게 기업을 무를 수 있는 보아스 보다 더 가까운 친척이 거절한 것입니다. 이 사람은 성경에 이름도 나오지 않고 단지 손해(損害)를 보지 않으려고 거절했다는 것입니다. 남을 구원한다는 것, 다른 사람의 기업을 구속한다는 것은 자기가 손해를 감당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내가 손해를 감당하지 않으려고 한다면 우리는 아무도 구속할 수 없습니다. 내가 손해를 감당하지 않으려고 한다면 우리는 누구도 하나님 나라에 살 수 있게 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많은 얼굴들이 지나가네요. 자기 인생을 보아스와 같이 영광스럽게 소비하고 있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목사님, 형님들, 누님들, 그리고 영광스러운 동생들이 있습니다. 저는 교회 학교에 관련되어 있으니까요. 대표적으로 … 초등부를 섬기고 있는 최정아 누님 중등부 노영경 형님 고등부 권미애 누님 그리고 김요한형제, 김재형형제 등등 자기 인생을 보아스와 같이 영광스럽게 소비하고 있는 사람들이 너무 많습니다. ②여기에서 오벳이 출생했습니다. 오벳은 예배하는 자라는 의미입니다. 보아스와 룻이 만나서 나온 아들 그리스도와 교회가 만나서 나온 아들이 바로 예배하는 자라는 것입니다. 교회는 오벳, 하나님 아들을 출산하는 영광스러운 곳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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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 맺는 말 기업 무를 자는 가까운 곳에 있음! 하나님은 점진적으로 인도하심 기업 무를 자는 가까운 곳에 있습니다.
우리의 구원자, 나의 구원, 우리의 구원은 가까운 곳에 있습니다. 저기 어디에 가면 구원을 받을 수 있을 것같다고 해서 작정하고 우리 교회에 오신 분이 있나요. 그런 분은 아무도 없습니다. 그렇다면 여러분은 누구를 따라왔습니까? 룻이 나오미를 따라간 것처럼 우리는 처음에 아는 사람을 따라온 것입니다. 저는 현욱이 형을 따라왔습니다. 그 뒤로부터는 교회 안에 있는 형동생들과 함께 축구를 했고 함께 놀았습니다. 그리고 형님들 말을 들었고 목사님 말씀을 들었습니다. 저는 제가 보고 듣고 아는 분들을 따라왔습니다. 여러분들도 그렇지 않습니까. 그런데 이것이 저를 세상에서 건져내는 길이었고 하나님 나라의 백성이 되게 하는 구속의 길이었고 하나님 나라의 제사장이 되게 하는 영광의 길이었습니다. 말씀과 교회가 없었다면 저는 지금도 세상에 있었을 것입니다. 그래서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가 저의 구원자인 것입니다. 교회만큼 가까운 곳이 어디에 있냐는 것입니다. 저와 우리 모두의 구원은 교회 안에 있는 새언약의 사역자를 통해서 드러나는 십자가에 못박힌 우리 주님의 영광스러운 운명을 함께 찬양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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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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