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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디어아트의 이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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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남준과 미디어아트 예술의 개념은 시대에 따라서 새롭게 정의 되며, 인간은 예술을 매개로 인간 자신을 설명하고 해석한다
백남준과 미디어아트 예술의 개념은 시대에 따라서 새롭게 정의 되며, 인간은 예술을 매개로 인간 자신을 설명하고 해석한다. 새로이 정립되는 예술의 중심에는 예술표현방식의 변화가 존재하게 된다. 예술표현방식의 변화가 빠를 때에는 개념의 정립 또한 어렵게 된다. 지금이 바로 그러한 순간이다. 때문에 현대예술은 유래 없는 전환기에 서 있다. 시간의 흐름에 따라 진화, 진보를 더 해가는 정보미디어와 그것을 통하여 새로운 표현 방법을 획득해 가는 미디어 아트. 이 미디어 아트라는 새로운 장르를 개척함으로 20세기 현대 예술사에 커다란 획을 그은 백남준. 비디오와 텔레비전의 예술적 가능성을 상상하고 실현하는데 있어서 그 누구도 백남준만큼 지대한 영향을 미친 작가는 없을 것이다. 거대한 설치물, 영화, 퍼포먼스 등을 통하여 그는 현대미술에서 시간적인 이미지에 대한 우리의 지각을 새롭게 형성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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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남준의 청소년기의 예술세계는 신재덕, 이건우 등에게 사사 받으며 음악에 관심을 가지게 되고, 1947년 경기공립중학교(경기고 전신, 6년제)시절에 접하게 된 작곡가 아놀드 쇤베르그(Arnold Schonberg)의 작품에 흥미를 느끼면서 시작되었다 할 수 있는데, 당시 마르크스에 심취하기도 했던 백남준은 음악의 관념적 전통의 파괴와 함께 급진주의 음악의 선구자인 쇤베르그를 통해서 새로운 음악에 대한 열정에 눈을 뜬다. 1949년 한국전쟁이 임박하자 가족과 함께 홍콩으로 이주, 1년 뒤에는 다시 도쿄로 이주했으며, 동경대학에 입학하여 음악, 미술사, 미학을 두루 공부하고, 졸업논문으로 '아놀드 쇤베르크 연구'를 제출한다. 1956년 서구의 고전주의 및 모더니즘 음악을 이해하고자 하는 열망으로 독일로 유학을 가게 되고, 거기서 작곡가 볼프강 포트너(Wolfgang Fortner)에게 사사받는다. 1957년에 그는 쾰른에 있는 WDR라디오국에서 첫번째 오디오테잎 콜라쥬를 만드는데, 이는 이후 비디오콜라쥬 작품의 효시라 할 수 있다. 그 이듬해 백남준은 미국의 전위음악가 존 케이지(John Cage)를 만나면서 동양의 선(禪)사상에 기반을 둔 케이지의 영향으로 서구문화를 새롭게 인식하는 계기를 갖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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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V의 매스 미디어에 대한 초기 예술적 탐구는 1963년 독일 부퍼탈의 갤러리 파르나스에서 있었던 첫 개인전 '음악전람회-전자 텔레비전'에서 이루어 졌다. 이 획기적인 전시는 1960년대 초, 대중의 우상이 되어 있던 상업TV 방송의 일방적인 정보지배구조를 변화시키고자 최초로 TV를 임의적으로 조작하기 시작한 것으로 미디어와 관객과의 관계를 변형시키는 쌍방향의 조정된 TV로 구성되었다. 비디오 아트의 탄생을 알리는 놀랄만한 이 첫 번째 전시를 통해 백남준은 작곡가이자 퍼포먼스 미술가에서 새로운 미술 형식의 발명가로 변화하기 시작한다. 1964년 뉴욕으로 이주한 뒤에도 텔레비전과 비디오에 대한 그의 탐구는 계속되었다. 1965년 이후에는 새로 개발된 비디오 매체를 통해 정보 소통 구조에 대한 예술적 대안을 모색하는 등, 새로운 미디어 아트의 실현 가능성에 대한 그의 끊임없는 작가적 실천은 계속되었고, 이후 1960년대말 이후에는 텔레비전과 움직이는 영상에서 미학적 담론을 제기하는 새로운 아티스트세대의 중심인물이 된다. 한편 뉴욕에서 백남준은 가장 위대한 동료였던 샤로트 무어만을 만나게 되는데, 그는 백남준 비디오의 시금석이 되었던 작품들과 가장 극적이었던 퍼포먼스에 영감을 주고 격려했으며 공동작업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였다. 백남준은 무어만을 위해 주목할 만한 양의 비디오작품을 제작했고, 그들의 협연은 연기자와 해설자의 개념으로 극적으로 변화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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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0년대와 80년대를 걸쳐 백남준은 교수로서, 그리고 다른 예술가를 지원하는 협력자로서 활동하였으며, 1977년 비디오 작가 쿠보타 시케코와 결혼하여 일과 인생의 동반자로서 함께 하게 된다. 그의 친구들인 로리 앤더슨, 요셉 보이스, 데이비드 보위, 존 케이지, 머스 커닝햄과 협연하여 주목할만한 일련의 비디오 테잎과 TV 프로젝트들을 만들었으며, 이과 함께 그는 근본적으로 변화된 비디오 장치들을 제작하고, 예술적 행위를 재정의 하는 등 왕성한 작품 활동을 벌인다. 이러한 백남준의 시대를 앞선 예술감각은 비디오 아트의 창시자로서 현대 예술사에 신기원을 이룩한 세계적인 예술가로 자리매김 하게 된다. 백남준은 세계 각국에서 열린 전시회를 통해 실험적인 작품들을 선보이는데, 1978년 '퐁피두 문화센터'의 전시회를 필두로 1982년 뉴욕 '휘트니 미술관'의 대규모 회고전을 통해 세계적인 주목을 받았으며, 이후 파리, 취리히, 바젤 등지에서 세계적인 작품전을 열게 된다. 1993년에는 세계3대 비엔날레 중 하나로 꼽히는 베니스 비엔날레에서 대상을 수상하여 세계 최고의 예술가로 인정받으며, 계속적인 활발한 작품 활동을 통해 독일의 경제월간지 '캐피탈'지에서 해마다 서구미술계 주요 작가들의 활동상황을 집계해 선정하는 'WORLD ARTIST TOP 100'에 매년 최상위권에 선정됨으로써 세계적 예술가로서의 자리를 확고히 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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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남준의 특징을 몇 가지 살펴 보도록 하자. 백남준은 ‘경계선에 대한 거부’를 한다. 여러 나라, 예술, 학문 그리고 작가, 관객, 비평가들 사이에 존 재하는 모든 벽들을 제거하는 것이다. 친숙하지 않은 분야들의 만남을 통해 생각지 못하던 아이디어 가 떠오르고 아무런 구속 없이 사상 및 생각의 교환이 일어나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백남준은 교류를 가속화 시키며 정보교환이 더욱 빨라진다는 의미로 시간과 예술의 관계를 생 각하게 된다. 시공간적인 구속을 파기하기 위해 여러 대의 TV를 설치한다는 등의 것을 통하여 독립 적인 수많은 움직임들을 동시에 평행적으로 보는 방법이다. 하지만 이건 인간의 신체적 구조 때문에 불가능하다. 또한 백남준은 ‘가볍게 하기의 욕망’에 접근하게 된다. 작품의 이동에 따른 중력으로 인한 문제점을 해 결해 주기 위함이다. 마지막으로 그의 작업 전체에서 가장 두드러지게 보이는 가변성과 비결정성을 관찰할 수 있다. 커다 란 변화가 아닌 단 몇 개의 요소들 만으로도 변화의 크기는 상당히 크게 되며, 원형은 존재할 수 없게 된다. 각 작품 하나하나가 변화가능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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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V 부처, 1974. 청동조각, 모니터. 비디오 카메라를 사용한 폐쇠회로 비디오 설치: 흑백, 무성 설치에 따라 변화 스테델릭 미술관 암스테르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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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디어아트의 이해 20세기 중엽 이후로 새로운 테크놀로지를 기반으로 한 새로운 미술경향으로서 소위 미디어 아트(매체예술, media art)가 등장하였다. 새로운 미디어 아트의 등장은 전통적인 회화와 조각을 포함하는 기존의 시각예술에 영향을 미쳤을 뿐만 아니라 그 자체가 독립된 하나의 장르로서 성장하였으며, 나아가서 기존의 미술/예술 개념 자체의 변화를 요구하는 새로운 미학적 패러다임을 요청하고 있다. 다시 말해서 전통적으로 이해되어 온 예술과 기술, 순수 예술과 미디어예술, 고급예술과 대중예술 등의 이항대립의 역사가 미디어 아트의 등장과 더불어, 아니 정확히 말해서 미디어 아트를 통하여 근본적이고 본질적인 변화를 가져오지 않았나 하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기술과 테크놀로지의 발전은 예술에 있어서 표현기법의 발전과 표현양식의 진화를 가져왔으며 그러한 관점에서 새로운 미디어의 기반이 되는 다양한 테크놀로지의 발전이 예술의 표현기법과 양식의 진화에 기여해왔고 그 성과로서 나타난 것이 곧 미디어 아트로 볼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오늘날 예술 개념 자체의 해체와 더불어 테크놀로지의 고도화로 인하여 종래의 예술-기술의 상호발전이라는 균형이 깨어지고 오히려 ‘테크놀로지에 의한 예술의 함입’이 진행되고 있는 현대미술의 현 상황에서 미디어 아트의 미학적 의의를 상고해 보는 것은 나름대로 의미 있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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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디어 아트란 무엇인가 ? 모든 미술작품은, 그것이 물질적이든 비물질적이든, 일정한 매체(media)에 의해 구체화된다는 점에서, 미디어 아트라는 용어는 사실 모든 미술작품에 적용될 수 있다. 그러나 현대 사회에서 미디어라는 말은 대중에게 대량의 정보를 전달하는 목적을 가진 매체(mass media)를 의미하는 것이므로, 현대적 의미의 미디어 아트는 바로 이러한 대중 매체, 즉 현대 커뮤니케이션의 주요 수단인 사진, 영화, TV, 비디오, 컴퓨터 등 대중에의 파급 효과가 큰 미디어 테크놀로지를 미술에 적용시킨 예술을 의미하는 것이라고 정의할 수 있다. 그러나 우리는 이러한 미디어 아트를 다시 넓은 의미와 좁은 의미로 나누어 이해할 필요가 있는데, 넓은 의미의 미디어 아트란 대중 매체와 그것의 미디어 테크놀로지를 활용한 미술 일반을 가리키는 것으로서, 1839년 사진의 발명으로 시작된 이미지의 기계적인 재현과 복제, 그리고 이미지의 대량보급 기능이 바로 이 같은 미디어 아트의 속성을 제공했다고 볼 수 있다. 좁은 의미의 미디어 아트는 1990년대에 들어 본격적으로 그 용어가 사용되었는데, 기존의 미디어 아트와는 차별적으로 컴퓨터를 기반으로 하는 뉴미디어 아트 혹은 디지털 미디어 아트라 불리는 영역을 가리킨다. 그리고 이러한 좁은 의미의 미디어 아트는 각종 CD-Rom 작업에서 시작하여 인터넷을 통한 작업으로 확장되면서 오디오 아트(Audio Art), 컴퓨터 아트(Computer Art), 디지털 아트(Digital Art), 일렉트로닉 아트(Electronic Art), 생성예술(Generative Art), 인터랙티브 아트(Interactive Art), 인터넷 아트(Internet Art), 퍼포먼스 아트(Performance Art), 로봇 아트(Robotic Art), 소프트웨어 아트(Software Art), 비디오 아트(Video Art), 비디오 게임 아트(Video Game Art) 등의 이름으로 급속히 그 영역이 확대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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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처럼 넓은 의미에서의 미디어 아트를 기술 매체 혹은 대중 매체를 활용한 예술 일반으로 정의한다면, 우리는 이러한 미디어 아트의 양상을 기술 매체의 발달 단계에 맞춰서 검토해 볼 수 있는데, 기술 매체의 발달 단계는 크게 사진과 영화가 발명된 “기계의 시대”와 1950년대의 TV를 중심으로 한 대중 매체 시대, 그리고 1990년대 이후의 디지털 시대로 구분할 수 있을 것이다. 다음에서는 이러한 기술 매체의 발전을 미술이 수용해나간 구체적인 양상들에 대해 개략적으로 살펴보고, 이러한 양상들이 어떠한 미학적 의의를 지니는지 고찰하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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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디어 아트의 역사적 전개 미디어 아트의 등장 1837년 사진의 발명은 미술의 역사에서 중요한 의미를 차지하는 사건이었다. 고대 그리스 미술로부 터 르네상스 미술을 거쳐 17, 8세기 고전주의 미술에 이르기까지 서양 미술의 역사를 지배해온 고전 적 개념은 ‘미메시스’ 즉 자연의 모방 혹은 재현이라는 개념이었다. 그런데 이제 기계적인 장치에 의해 서 사물을 정확히 재현할 뿐만 아니라 그 이미지를 대량 복제할 수 있는 새로운 시각 매체 형식으로서 사진이 출현함으로써, 회화는 이러한 사진의 재현 능력으로 인해 자신의 정체성을 새롭게 탐구하지 않을 수 없게 된다. 즉 사진이라는 새로운 기술 매체의 출현이 기존 예술에 끼친 영향은 단순히 예술 의 형식을 변화시키는 데에 그치지 않고 예술 자체의 개념까지도 변화시키는 역할을 하게 된다는 것 이다. 말하자면, 마네와 인상주의 이후 미술은 추상에로의 움직임을 보이게 되며, 또 예술의 자기 목 적성 혹은 사회적 무(無)기능성이나 자기 준거성(self-referentiality)으로 드러나게 되는 ‘미적 자율성’ 을 근간으로 한 근대적 예술 개념이 성립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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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사진기를 이용하여 움직임을 기록하고자 하는 시도는 1870년대 크로노포토그래피(chronophotography)라는 촬영법을 탄생시켰고, 이는 19세기 시각 생리학에 의해 과학적으로 규명된 잔상 효과나 착시 현상을 이용한 조트로프와 같은 시각적 기제들과 더불어 영화의 탄생에 결정적인 토대를 제공했다. 그 결과 1895년 대중문화의 형태로서 영화가 탄생하게 되는데, 이러한 대중문화의 형성이 갖는 미학적 의미는 산업화 및 그에 따른 도시화에 근거한 대중 사회의 출현과 대중 매체의 발전이 결국 과거의 문화적 관계들과 결정적인 단절의 계기가 되었으며, 순수 예술(fine art)과 대중 문화(mass culture) 사이의 ‘대분할(great divide)’이라는 모더니즘적인 시각을 낳는 단초가 되었다. 1920년대 아방가르드 예술가들은 당시 급증하던 대중 시각 문화의 현실을 인식하고 이에 적극적으로 개입함으로써 미술의 영역을 확장하려는 시도를 하게 된다). 그 구체적인 예들로, 영화적 앵글을 도입한 미래파 회화나 새로운 이야기 구조를 만들어낸 로드첸코의 포토콜라주 혹은 노동자 잡지 표지를 위한 작업을 한 존 하트필드의 포토몽타주, 라즐로 모홀리-나기를 중심으로 한 바우하우스의 실험적 작업들, 그리고 원시적인 영화적 장치들의 이미지들을 차용한 초현실주의자 막스 에른스트의 작품 등을 들 수 있다. 이 중 특히 하트필드의 포토몽타주를 보자면, 포토몽타주는 이미 1900년경부터 광고와 상품선전의 효과를 위해 화보잡지들이 사용하던 기법이었다. 베를린 다다에 헌신했던 하트필드는 이러한 포토몽타주의 인용 기법을 활용하여, 자신이 직접 찍은 사진들이 아니라 매스 미디어나 미술사로부터 기존의 이미지들을 차용하거나 이미 찍혀진 사진들을 배열함으로써, 당시 유럽사회의 지배 이데올로기, 즉 부르주아지와 파시스트 이데올로기, 그리고 공식문화 등을 공략하는 작업을 수행하였다. 또한 그는 이러한 작품을 공산당 기관지나 노동자 잡지 등에 실어 출판문화라는 대중 매체적 유통경로를 취함으로써, 기존의 화랑이나 미술관의 제한된 유통망을 극복했다. 조트로프: 1833년에 만들어진 조트로프(zoëtrope)는, 윌리엄 호너에 의해 개발되어 잔상의 원리를 입증한 19세기의 애니메이션 장치로서 원통형 드럼의 안쪽에 하나의 시퀀스를 이루는 단순한 동작의 그림을 둘러 붙여서 연속 동작의 효과를 거두는 장치다. 긴 종이에 그려진 각 이미지들의 띠를 '프로그램'이라고 불렀다. 드럼 바깥쪽의 틈새는 낱개의 이미지들이 연속적으로 흐르는 중간에 (카메라의 셔터와 같이) 순간적 휴지기를 만들어서 조트로프를 들여다 볼 때 마치 그림이 움직이는 것처럼 보이도록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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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0년대 기계의 시대에는 사진과 영화가 중심 매체였다고 한다면, 대중 매체 시대에는 TV가 중심이 되는데, TV라는 전자 매체가 지닌 이미지의 송수신 기능으로 인해서 이제 대중 매체는 동시적으로 광범위한 영역을 하나로 묶을 수 있는 커뮤니케이션 환경을 구성하게 된다. 그 결과, 소비사회로서의 후기산업사회에서 이처럼 무차별적이고 일방적으로 전달되는 대중 매체의 영향력은 본격적인 대중문화의 맥락을 충족시킬 수 있게 된다. 말하자면, 바야흐로 대중 매체의 문화 지배 시대가 도래했다고 할 수 있는 바, 이제 대중 매체는 순수 예술의 지위와 의미를 약화시키는 동시에 문화의 역할과 영향력에서 직접적이고 광범위한 힘을 발휘함으로써, 실질적인 문화 지형의 변화를 주도하게 된다. 따라서 60년대 미국 팝 아트의 등장은 미술 내적인 배경 설명, 즉 형식주의적 모더니즘 미술 논리의 실현으로서의 추상 표현주의가 드러낸 난해한 주관성에 대한 반동적 움직임으로 보는 시각과는 별도로, 미술을 둘러싼 문화 지형 상의 이러한 변화와 연관해서도 설명이 가능할 것이다. 팝 아트라는 명칭이 비롯된 50년대 영국에서의 ‘독립 단체(The Independent Group)’ 회원들의 작업이나 혹은 60년대 미국에서의 팝 아트는 모두 공통적으로 만화, 사진, 광고 등 대중 매체 및 대중문화의 이미지들을 차용하고 있으며, 또한 앤디 워홀 등의 예에서 볼 수 있듯이 대중 매체의 기술적 복제라는 생산방식을 도입하기도 함으로써, 순수 예술과 대중문화 사이의 경계가 모호해지게끔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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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0년대에는 TV 소유 가구 비율이 90%에 이르게 되며, TV 방송사들의 상업화가 완성되게 된다
1960년대에는 TV 소유 가구 비율이 90%에 이르게 되며, TV 방송사들의 상업화가 완성되게 된다. 한편, 1960년대 중반에 휴대용 비디오 카메라가 시장에 소개되었다. 그리하여 이 같은 시대적 배경 속에서 탄생한 비디오 아티스트의 첫 세대가 가지고 있었던 기본적인 개념은 이처럼 어디에나 텔레비전이 존재하는 사회에 대해 비판적인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텔레비전에 적절한 방식으로 뛰어들어야 한다는 것, 그리고 이에 적합한 매체가 바로 비디오 카메라라는 인식이었다. 즉 비디오 카메라는 매체의 기술적 특성에 있어서 TV와 많은 부분 공통적이면서도, 또한 비민주적이고 비대칭적인 소통방식의 TV와는 달리 대중이 생산에 직접 참여할 수 있는 민주적인 미디어이고, 휴대가 용이한 기동성과 아울러 즉각적 피드백 등의 매체적 특성을 지니고 있다는 점이다. 비디오 아트 초기에 두 가지 유형의 비디오 작업이 있었는데, 즉 대안적 뉴스보도와 연결된 행동주의적 성격의 다큐멘터리와 이보다 본격적인 소위 예술 비디오가 그것이다. 예술 지향적인 비디오의 역사는 일반적으로 1965년 백남준의 작업으로부터 시작된다고 하겠는데, 그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콜라주 기법이 유화를 대체했듯이, 음극선관이 캔버스를 대체할 것이다.” 또한 그와 볼프 보스텔은 모니터의 맥락을 재해석했고, 그럼으로써 가정이라는 친숙한 장소로부터 텔레비전을 분리해 이 작은 스크린을 새로운 방식으로 바라보는 시대를 열었다. 한편 비디오 아트의 초기 탐색 중 일부는 이미 개념 미술이나 미니멀 아트를 실행하고 있던 예술가들에 의해서 이루어졌는데, 이들은 퍼포먼스 아트의 강력한 영향력 속에 있었다. 그리하여 이들은 대안적 이미지 창조 매체로서의 비디오를 퍼포먼스의 개념적 틀로 사용하는 비디오 퍼포먼스를 출범시킴으로써, 관객과의 상호소통을 시도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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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지털 매체시대의 미디어 아트 미디어 아트의 역사에 있어서 디지털 미디어의 등장은 새로운 장을 열었다
디지털 매체시대의 미디어 아트 미디어 아트의 역사에 있어서 디지털 미디어의 등장은 새로운 장을 열었다. 퍼스널 컴퓨터(PC)가 보급되고 다양한 그래픽 프로그램이 개발됨으로써 이러한 디지털 매체와 그 기술을 적용한 미술은 새로운 단계로 진화하게 되었다. 디지털 미디어 아트의 시작은 백남준과 같은 비디오 아트 작가들이 후반작업을 컴퓨터를 이용했던 것에서 찾을 수 있다. 백남준의 《메가트론 매트릭스》(1995)는 컴퓨터 애니메이션 등의 이미지를 비디오 영상과 함께 디스플레이 한 것이었다. 특히 설치미술가들은 다양한 매체를 동원했는데 그 중에서 디지털 미디어를 적극 수용하여 작품을 완성하였다. 하지만 디지털 아트의 최대 공헌자는 인터넷의 보급이다. 인터넷을 통해 작가는 프로그램을 다운받거나 다양한 디지털 도구를 이용하여 새로운 작품을 제작할 수도 있게 되었고 대중은 작가의 홈페이지나 사이버 갤러리를 통해 작품을 감상할 수 있게 되었다. 디지털 아트의 특징은, 첫째 오브제를 이용한 제작이 아닌 디지털 미디어를 이용하여 디자인·동영상·음악을 모두 포함하여 제작한다는 점이다. 둘째는 작가만의 독특한 비법을 통해서 제작되었던 것이 프로그램을 응용하여 다양한 변형과 조합을 통해 제작된다는 점이다. 셋째 한 달에서 수년간 걸리던 작업을 단기간에 제작할 수 있으며, 넷째 원작이라는 개념이 모호해지고 CD롬이나 프로그램 전송을 통하여 원작을 누구나 소유할 수 있게 되었다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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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가트론/매트릭스, 대의 모니터를 사용한 8 채널 컴퓨터로 움직이는 비디오 설치: 컬러, 유성 메가트론: 320x685x60cm , 매트릭스: 325x325x60cm, 스미소니언 미국미술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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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가장 혁신적인 특징은 우리에게 인터랙티비티(interactivity)와 가상현실(VR)이라는 새로운 현상을 제시하였다는 점이다. 이는 관객이 찾아와서 보는 작품이 아닌 관객과 함께 참여하여 제작하고 경험한다는, 즉 상호작용성, 다시 말해서 디지털 매체의 참여적 특성을 뜻한다. 이러한 점에서 디지털 아트는 몇몇 감상자를 위한 작품이 아닌 보다 대중적이며 전 지구적 감상자를 위한 예술이라 할 수 있다. 즉 작가는 작품의 창조자 내지 제작자로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큐레이터로서의 역할도 함께 한다. 감상자의 경우도 마찬가지이다. 감상자는 단지 수용적이고 관조적인 입장이 아니라 그 작업에 참여하고 미적으로 향수하는 적극적인 참여자의 역할을 한다. 하지만 디지털 아트는 매체에 대한 기능 위주의 접근과 기술적인 효과를 무분별하게 따를 수 있다는 위험성을 안고 있다. 또한 인터넷을 통해 상호작용으로 개방되어 있다 해도 반대로 지나친 사이버 세계 속에서만 머물러 오히려 폐쇄적 경향을 보이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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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중 매체시대에 있어서 예술작품의 이미지 이미지의 인식론적 문제
전통적으로 우리는 이미지와 세계인식의 방식을 다음과 같이 이해해왔다. 1) 실재와 이미지는 구별되며, 실재가 선행적으로 존재하고 이미지는 실재를 재현한다. 2) 우리는 이미지 앞에서, 즉 이미지 밖에서, 이미지를 바라본다. 이미지와 이미지를 바라보는 사람 간에는 주객의 분리가 있다. 말하자면, 우리는 이미지 밖에서 이미지가 재현하는 실재를 바라보고 있고, 그 이미지를 통해 세계를 인식한다고 이해해왔다. 하지만 미디어 시대의 이미지는 그 이전 시대의 이미지와 다른 두 가지 중요한 변화가 있다. 첫째, 미디어시대의 이미지는 실재와 이미지의 경계를 지우는 경향이 있다. 외부세계와 이미지, 사실과 흔적의 구분을 전제로 하는 전통적인 시선의 방식이 폐기되고, 보이는 것이 실재이고 진실이라고 간주한다. 미디어시대의 가장 중요한 이미지 생산원이라 할 수 있는 TV는 절취 및 분절화의 양식을 통해 초실재(파생실재, hyperreality)를 생산하며, 이 초실재가 실재로서 통용된다. 이는 즉각적 가시성(immediate visibility)과 편재성(ubiquitousness)을 특성으로 하는 텔레-비디오 매체의 보급에서 비롯되었다. 위성중계 등을 통해 멀리 떨어진 곳에서도 순간적으로 이미지를 보낼 수 있고 이런 순간적이고 동시적인 전달 때문에 즉각성과 편재성이 결합된다. 이미지의 즉각성과 편재성이 사람들로 하여금 이미지가 사건을 재현하고 있다고 믿게 만든다. 즉, “지금, 뉴스는 사건이며, 이미지는 사물이고, 지도는 영토이다.” 둘째, 미디어시대의 이미지는 그 강렬한 사실감을 통해 이미지와 이미지를 바라보는 주체간의 주객 분리를 지우는 경향을 띤다. 즉 우리는 이미지 앞이나 이미지 밖에 있지 않고 이미지 속에 있는 것이다. TV에서 전송되는 세계의 모습은 화면을 투과하여 저 너머에 존재할 실재의 어떤 이미지가 아니다. 실제로 뉴스시간에 방영되는 사건의 현장을 지켜보면서 우리는 그것의 강렬한 사실감에 익숙 또는 압도되어 그 이미지들 자체를 실재로 여기게 되며 이미지로서 사건 속에 이미 개입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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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작품의 존재론적 변화 많은 도전에도 불구하고 칸트이래로 예술작품은 원본성(originality)이라는 확고한 지위를 지탱해왔다. 하지만 테크놀로지의 발달에 따른 예술작품의 이러한 지위에 대하여 W. 벤야민은「기술복제시대의 예술작품」(1936)이라는 글을 통해서 근본적인 문제를 제기하였다. 그는 예술과 관련하여 사진과 영화라는 새로운 기술 매체가 야기한 미학적인 변화의 문제를 제기하였다. 사진과 영화의 매체적 속성은 이미지의 기계적 재현 및 복제가능성임을 주목한 그는 이러한 기술 매체의 기계적 복제와 예술의 상관성을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우선 예술작품의 기계적 복제가 작품의 아우라(Aura)를 탈각시킨다는 점이다. 아우라는 “아무리 가까이 있더라도 어떤 먼 것의 일회적 나타남”으로서 예술작품의 일회적 현존성으로 인해 작품이 지니게 되는 성스러운 분위기인데, 이제 예술작품의 기술적 복제가능성은 그 같은 아우라를 제거함으로써 예술작품으로 하여금 지금까지 종교적 의식 속에서 살아온 기생적인 삶의 방식으로부터 벗어나도록 하였다는 것이다. 나아가 이러한 테크놀로지의 발전은 예술의 진보적 잠재력, 즉 예술이 작품의 의식적 가치(Kultwert)로부터 벗어나 전시적 가치(Ausstellungswert)로 나아감에 따라서 정치에 근거를 두는 사회적 기능을 담당할 수 있는 가능성을 일깨운다는 점이다. 벤야민은 이러한 예술의 기능변환의 싹을 영화예술에서 찾는데, 구체적으로 명시돼 있지는 않지만 내용 상 몽타주 기법에 근거한 러시아 아방가르드 영화가 그 예라 할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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년대 아방가르드 운동에서 나타난 기술 매체의 수용이 지니는 미학적 의미를 검토하려면, 우리는 벤야민의 논의와 더불어 P. 뷔르거의 논의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뷔르거는 부르주아 사회에서의 예술의 자율성과 관련하여 예술이 생산․분배․수용되는 상황으로서의 ‘제도 예술(Institution Kunst)’이라는 개념을 제시한 뒤, 역사적 아방가르드 운동들을 통해 사회적 부분체계로서의 예술은 자기비판의 단계에 접어들게 된다고 주장한다. 즉 아방가르드는 예술작품을 지배하는 분배 장치에 대해, 또 자율성 개념으로 기술되는 부르주아 사회에서의 예술의 상태에 대해 등을 돌린다는 것이다. 그리하여 혁신과 실험을 통해서 예술과 삶 사이의 간극을 없애고자 하는 아방가르드 운동들의 강령과 그 정치적 입장은 서로 다르지만, 이들의 공통점은 바로 예술의 자율성에 대한 공격, 즉 삶의 실천으로부터 유리된 모더니즘 예술에 대한 저항이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아방가르드 운동에서 나타난 기술 매체의 수용을 아방가르드의 이러한 측면과 관련지음으로써, 그것이 기존의 작품 개념 – 천재적 예술가에 의한 독창적 산물로서의 유기적 예술작품이라는 – 을 위협하고 미술관 중심의 제도적 맥락을 벗어나 새로운 매체적 채널 – 잡지 같은 출판 매체나 사진의 복제 기술 활용이라는 – 을 통해 예술의 새로운 제도적 질서를 전망한 데에서 그 의미를 찾을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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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년대 팝 아트에서 이루어진, 대중적 이미지 차용이나 혹은 대중 매체의 생산방식으로서의 기술적 복제 방식의 도입 등은 순수 예술과 대중문화 사이의 경계를 모호하게 만든다는 점에서 우선 그것의 미학적 의미를 찾을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대중문화의 이미지들은 이미 그 자체로 의미를 생성하는 기호라는 점에서, 이러한 대중적 이미지의 차용은 결국 이미지들의 언어적인 측면과 그 소통 가능성에 대한 인식을 의미한다. 그러나 팝 아트가 보여주는 매스 미디어나 대중문화에 대한 태도는 복합적인 것이었고, 또 대중 매체 시대의 장르 구분의 해체와 통합은 이미 미술관 컨텍스트를 벗어나기 어려운 것이었다. 예를 들어, 앤디 워홀은 대중 문화적 참조와 인용 등에서 일면의 아방가르드적 측면을 갖지만, 궁극에는 제도화에 별다른 저항의 의지를 보이지 않음으로써 아방가르드와 상업주의 사이에서 줄타기를 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그리하여 뷔르거는 이러한 네오 아방가르드는, 역사적 아방가르드와는 달리, 미술 제도를 변형시킨 것이라기보다는 오히려 아방가르드를 제도로 변형시킨 것이라고 비판했다. 비디오 아트의 미학적인 의미는 일차적으로, 그것이 시각 예술에서 물질 개념을 떠난 빛과 음극선에 의한 전자 이미지를 구현한 것과 또 시간에 의한 이야기 서술이라고 하는 이질적인 – 공간예술로서의 미술 개념과 대비되는 시간적, 그리고 서사적 특성을 가리킨다 – 개념을 정착시키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는 데서 찾을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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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로써 기존 미술 개념의 해체를 유발했다는 것이다
이로써 기존 미술 개념의 해체를 유발했다는 것이다. 나아가, 감시 카메라 형식을 사용하여 관람자의 참여를 유도하는 방식의 비디오 아트는 사물로서보다는 프로세스로, 정보와 전시보다는 상호작용과 소통으로 대체된다는 점에서, 작품의 개념과 수용의 문제 등에도 직접적으로 변화를 요구하는 동력이 됐다는 점을 지적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또한 이러한 비디오 아트에 대해서 미학적인 논란이 이루어짐 역시 볼 수가 있는데, 이는 결국 비디오 아트에 있어서의 미디어의 역할 및 미술관 컨텍스트와의 연관을 어떻게 평가하느냐에 따른 것으로 여겨진다. 말하자면 이 논란은 미디어 아트에 대한 정의를 둘러싼 것으로, 즉 미디어를 단지 예술가의 내적 표현을 위한 적합한 표현 매체와 형식으로 보느냐 아니면 미디어의 사회적 기능을 인식하는 가운데 그것을 미술과 결합함으로써 작품의 존재 방식과 그것을 둘러싼 제도상의 변화를 꾀하는 것으로 보느냐에 따라서 그에 대한 평가가 다르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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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지털 매체시대에 있어서 미디어 아트의 미학적 문제
디지털 미디어 아트는 컴퓨터와 그에 기반한 인터넷을 매체로 한다는 점에서 이미지를 정보의 차원으로 전환하며 이미지의 합성과 편집 등의 기능을 강화하는 가운데 작품 자체의 탈물질화(dematerialization)를 초래한다. 또 작품은 예술가에 의해 완결되는 것이 아니라, 유저(user)들의 인터랙티브한 개입을 통해 끊임없이 유저와 반응하면서 생성되는 프로세스적 측면을 지닌다. 그리고 이러한 작품이 이루어지는 사이버스페이스와 그 안에서의 가상현실은 기존의 미술관이 아니라 편재하는(ubiquity) 가상의 미술관이라는 개념을 제시한다. 1. 이미지의 복제로부터 변형으로 디지털 매체시대에 원본성이 더 이상 문제되지 않는 이미지가 출현함으로써, 다시 말해서 복제가 전제하는 원본성의 이데올로기가 더 이상 유효하지 않은 상황에서 이미지의 ‘복제’는 더 이상 문제 되지 않으며 그 대신 원본의 무한 증식이 가능해진다. 이제 제작자/수용자는 이미지를 그대로 복제하여 자신의 소유로 삼는데 관심을 두기보다 오히려 자유로운 이미지의 변형(transformation)에 더 관심을 둔다. 예컨대, 인터넷에서의 패러디 문화에서는 기존의 이미지를 차용해서 패러디라는 이름으로 원본과는 전혀 맥락을 달리하는 이미지의 변형이 도처에서 일어나고 있다. 더구나 디지털 이미지는 기존의 사진이나 영화 등 소위 아날로그 이미지에 비해 훨씬 더 변형과 조작, 편집, 배포가 용이하다. 뿐만 아니라 가상공간, 즉 ‘탈물질화된 비트들의 공간’에서 이제 이미지는 창조의 대상이 아니라 그 비트들을 배치하고 조합하는 일종의 규칙체계로서 ‘프로그래밍’의 대상이 된다. 이러한 변화는 예술의 생산과 수용에 있어서 작가와 수용자의 역할에 근본적인 변화를 요구할 뿐 아니라 전통적인 미학의 예술 개념 그 자체의 변화를 요청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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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정적 이미지로부터 동적 이미지로 디지털 매체시대에 있어서 미디어 아트의 이미지에 또 하나의 큰 변화는 작품의 이미지가 정적인 이미지로부터 동적인 이미지로 변화하고 있다는 점이다. 전통적 미학개념으로는 디지털시대의 미디어 아트에 대하여 더 이상 설명할 수 없음을 적절히 지적하고 있다. 그는 “정지의 미학이 어떻게 움직임의 예술에 적용될 수 있는가?” 자문하면서 정지의 미학이 움직임을 기본으로 하는 디지털 미디어 아트에 적용될 수 없음을 강조한다. 전통적인 조형예술은 공간개념을 중심으로 논의가 진행되어왔는데, 조형예술이 일정한 공간을 점유하고 있는 조각과 벽에 걸린 상태로 수용자에게 제시되는 한 공간예술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동적인 이미지의 등장은 조형예술을 더 이상 공간예술의 틀 속에 가둬 둘 수 없게 되었다. 동적인 이미지는 이미지의 자유로운 변형이라는 디지털 특성과 맞물려 시간성의 개념을 부수적인 것으로부터 중심적인 지위로 끌어내었다. 정지 이미지로부터 동적 이미지로의 전환은 단순히 이미지의 존재론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예술작품의 생산, 보급, 수용의 전 과정에 근본적인 변화를 야기한다. 종래의 정적 이미지에 기반을 둔 예술작품들을 중심으로 하는 예술제도들이 해체되고 새로운 미학과 새로운 미술제도들의 출현을 예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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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관조적 수용으로부터 참여적 수용/사용으로 미디어 아트가 전통적인 미학이 기반으로 하는 주관주의 미학, 즉 무관심성에 바탕을 둔 관조적인 미적 경험으로서 미술 감상이라는 개념과 방식을 뒤집어 놓았다. 이제 새로운 미디어 아트에서는 종래의 예술작품 대 관객, 미적 대상 대 미적 주관의 이항대립적 관계를 넘어서 미적 참여(aesthetic engagement)에 의한 미적 지각이라는 새로운 패러다임이 요청된다. 새로운 예술작품에 적용될 수 있는 인식론적인 패러다임을 가장 특징적으로 반영하는 것이 형식의 변화이다. 그리고 전통매체 작품들과 비교해 관객들에게 훨씬 더 개방되어 있는 미디어 아트 분야의 예술작품들에서 이 형식적 변화의 근거는 지각적이고 신체적 ‘참여’ 행위가 된다. 물론 참여행위는 이미 퍼포먼스나 설치작업 등을 통해 계속 주장되어 온 것이기는 하지만, 여기서 말하는 지각적 참여는 수용자가 작품의 결과적인 창조에 기여한다는 물리적 특성만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수용자가 예술의 변화된 상황에 적극적으로 반응한다는 좀 더 강력한 미학적 특성을 지닌다는 것이다. 미디어 아트의 작품들을 통해 그리고 인터넷을 이용한 멀티미디어 생산물들의 자유로운 교류와 디지털 기술을 통한 이미지 생산의 용이성을 통해 현실로 드러나고 있다. 물론 여기서 지각적 참여의 특성을 예술작품이라는 특수성을 가지고 이야기 한다면 인터넷에 떠도는 대부분의 이미지들이 예술로서의 범주적 구속력을 가지기 위해서는 예술작품인가 아닌가의 차원에 경험적이고 미학적인 검증을 받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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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매체들의 융합(convergence)을 통한 탈매체성
디지털 매체의 특성은 다양한 소스의 데이터들을 결합하고 전달하는 ‘융합’1)을 특징으로 한다. 디지털 테크놀로지는 이미지와 오디오, 텍스트의 ‘디지털화’(digitalization)를 통해서 ‘결합’과 ‘배달’의 임무를 촉진한다. 이러한 융합의 결과는, 데이타들의 결합에 그치지 않고, 영화, 텔레비젼, 컴퓨터, 라디오, 무선 통신망 등의 다양한 매체 자체의 상호 작용, 결합까지 이어진다. 디지털 테크놀로지의 발달로 인한 ‘융합’이 영상 문화 전반에 끼친 가장 큰 영향은 영상이 경험될 수 있는 다양한 스크린의 등장과 이로 인한 이미지의 ‘탈매체성’이라고 할 수 있다. 이미지가 더 이상 기존의 특정 매체에 고유한 방식으로 생산, 배급, 수용되지 않게 됨에 따라, 매체의 물리적인 조건에 기반한 특수성이 상실된다는 점이다. 필름과 비디오 영상물과 디지털 영화는 다양한 융합의 과정을 통해, 그 이미지 생산 과정에서의 존재론적 차이뿐 아니라, 이미지가 상영되고 수용되는 매체 고유의 제도적 공간의 차이를 유지할 수 없게 되었다. 영상 이미지와 관련해서는 이미지가 매체의 특수성을 상실하고 있다고 할 때, 구체적인 융합의 과정에서 ‘어떻게’ 한 매체의 관습을 유지하고, ‘어떠한 정도로’ 다른 매체의 관습을 수용하는지, 변화된 이미지가 사용자의 경험을 구체적으로 어떻게 변화시키는지, 그러한 현상을 가능케 하는 문맥은 무엇인지 등등의 구체적인 질문들이 제기되어야 한다. 즉, 매체의 경계를 초월한 상호텍스트성(trans-media intertextuality)과 다른 매체의 미학 빌려오기 등이 구체적인 문맥에서 각기 다른 경우의 사례들에 나타나는 개별적인 양상을 주목하는 것이다. 융합의 결과로 등장한 다양한 스크린 중, 각종 매체의 기능을 한곳에 집합시킨 휴대용 미디어 플레이어, 휴대용 게임기, 멀티미디어 휴대폰 등의 신종 멀티미디어의 등장은 이러한 논의에 보다 복잡한 이슈들을 제공한다. 이들 매체를 위해 변형, 이동 또는 생산되는 이미지들이 기존의 매체에 토대한 이미지들과 어떤 다른 형식의 영상 미학과 문화를 만들어내는지 하는 문제가 미학의 새로운 과제로 등장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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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사이버 미술관의 등장 미디어 아트의 진화는 종래의 미술관 개념의 변화를 요구한다
5. 사이버 미술관의 등장 미디어 아트의 진화는 종래의 미술관 개념의 변화를 요구한다. 과거의 미술관을 대체하는 가장 새로운 미래의 미술관은 사이버 공간의 미술관 유형이라고 할 수 있다. 미술관의 온라인화는 미술관의 종래의 기능에 상당한 변화를 가져올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그것은 디지털 매체의 본성에 의존하는 효과들이다. 사이버 미술관은 대상 중심의 미술관이라기보다는 정보 중심의 미술관으로서 그 잠재력이 크다고 볼 수 있다. 관람자가 작품의 이미지를 감상하게 되는 사이버 미술관은 대상에서 내재적인 미적 가치보다는 대상을 둘러싼 정보적 가치를 중시하게 된다. 사이버 미술관을 통해서 미술관은 콜렉션을 보관하는 수동적인 장소가 아니라 정보를 수용 전달하는 능동적인 장소라고 할 수 있다. 여기서의 정보는 단순한 사실의 제공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맥락적 지식까지 제공하게 된다. 사이버 미술관의 또 다른 특징은 미술관간의 네트워크 형성이 용이하다는 점에 있다. 컴퓨터 기술이 미술관에 처음 도입되었을 당시 미술관의 주된 관심은 콜렉션의 관리 체제를 구축하는 것이었으나, 인터넷 매체의 발달로 인해 오늘날 미술관은 미술관의 자원들을 통합하는 작업으로 나아가고 있다. 표준 작업이 잘 이루어진다면, 사이버 공간은 지리적으로 파편화되어 있는 문화의 증거물들을 한 자리에 모아 놓고 개별 미술관들을 통합 관리하는 메타 미술관을 가능하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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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론 미디어 아트가 예술의 범위에 대한 이론적 재구축의 문제, 즉 “지금 우리에게 미술/예술이란 무엇이며 또 어떠해야 하는가”라는 문제를 제기함을 확인하게 된다. 이미 살펴봤듯이, 현대적 예술 개념의 형성 자체가 새로운 미디어의 출현 및 그에 따른 문화 지형상의 변화와 연관해서 이해될 수밖에 없고, 또 한편으로 미디어 테크놀로지와 예술의 결합은 재차 이러한 현대적인 예술 개념에 영향을 끼치게 된다. 따라서 우리는 이제 더 이상 기존의 예술 개념 및 그와 연관된 미학적 담론을 고수할 수가 없는 상황에 처해 있다. 또, 한편으로 미디어 테크놀로지와 예술의 결합이 단지 ‘기술에 대한 예술의 함입’이 아니라 진정한 결합이 되기 위해서는 새로운 매체의 출현이 모든 변화를 가능케 하리라는 매체 결정주의적 사고를 경계하면서, 미디어 아트의 예술적인 근거에 대한 물음이 수반되어야 한다. 물론 이러한 물음에 앞서서 예술에 대한 개념적 패러다임의 전환이 이루어져야 할 것이며, 새로운 예술 개념은 시각 문화와 시각 커뮤니케이션의 맥락을 수용함으로써, 예술의 자율성을 기반으로 하는 근대적 예술 개념에 대한 재해석을 통하여 삶과 문화의 차원을 관통하는 어떤 것이 되어야 하지 않을까 한다. 다시 말해서 예술과 삶의 긴장관계의 재정비를 필요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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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문화지형의 변화와 예술에 대한 개념적 패러다임의 전환국면에서 미디어 아트의 미학적 의의는 단지 종래의 예술개념의 재해석에 어떤 해결의 실마리를 제공할 뿐만 아니라 우리의 미적 경험 그 자체의 근본적 변화를 요구하며 나아가서 이를 바탕으로 한 문화․예술부문의 제도 및 교육에도 근본적인 변화를 요청하고 있다는 것으로 요약될 수 있다. 이미지는 재현이 아닌 무한 복제와 변형으로, 정적인 것으로부터 동적인 것으로 변화하면서 종래의 정적 이미지를 기반으로 한 예술제도들이 해체되고, 관조적 수용을 기반으로 하는 전통적인 미학의 미적 대상과 미적 주관의 이항대립적 접근방법이 폐기되었으며, 미디어들의 상호융합을 통한 탈매체성은 매체적 특성을 기반으로 하는 전통적인 미학에 새로운 과제를 제기하고 있다. 미디어 아트의 출현과 더불어 이미 기존의 예술개념에 대한 사망선고와 새로운 예술에 대한 개념적 재규정의 다양한 시도들이 더욱 긴급하게 진행되고 있음을 염두에 두면서 이 문제는 다음의 연구과제로 남겨두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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