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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강. 아르메니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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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지리 카프카스의 남부, 29,800㎢(경남 북 면적)의 면적
인구 350만 명(아르메니아인 97.9%, 쿠르드인 1.3%, 러시아인 0.5%, 그 외 0.3%) 내륙국으로 북으로 그루지야, 서로 터키, 남으로 이란과 접경 국토의 대부분이 돌이 많은 평원과 좁은 협곡, 사화산, 작은 강들로 이루어짐 가장 큰 호수인 세반호는 사화산 호수로 아르메니아의 진주로 유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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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지리 아라라트 평원: 가장 인구 밀집지역, 관개 및 다양한 과수원 및 포도원 (세계적인 코냑생산국)이 위치
소련시기 동안 공업화로 대부분의 삼림이 벌목, 현재 식목이 진행 중이지만 나고르노-카라바흐(아제르바이잔 내에 있지만 아르메니아인들이 다수 거주하는 지역)를 둘러싼 아제르바이잔과의 전쟁으로 인한 봉쇄로 인해 지지부진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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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지리 1994년 이래 경제적 어려움이 있었지만 서서히 경제가 회복 중 수도 에레반은 총인구의 1/3이 거주
200여 개의 온천이 있는데, 특히 아르즈니, 브즈니, 제르무크가 유명 노아의 방주가 정박했다는 아라라트 산은 현재 터키에 있지만 아르메니아인들이 가장 신성시하는 곳 아제르바이잔과 나고르노-카라바흐, 나히체반(아르메니아의 영토 좌측의 아제르 바이잔 영토) 문제로 분쟁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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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지리 <에레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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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역사 BC 4세기 히타이트 연대기에서 최초로 언급 BC 9세기 아라메 왕이 여러 소 왕국을 최초로 통일
- 당시 수도 에레부니(지금의 에레반 기원) - BC 610년 메디아인들의 침입으로 멸망 - 6년 뒤 페르시아에 합병 이후 알렉산더 대왕의 침입과 로마제국에 의해 서방세계에 알려지게 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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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역사 로마제국과 파르티아(후에 페르시아 제국)사이의 위치, BC 190년-AD 387년에
이 두 제국이 번갈아 지배, 중세에 들어 완전 분할 7세기 아랍 군대가 페르시아를 멸망시키고 비잔티움을 위협하면서 아르메니아도 642년 아랍 칼리프에 흡수, 비잔틴보다는 아랍인의 지배가 보다 더 유연 아랍의 지배 하에서 독립국 수준의 지위를 인정 받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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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역사 칼리프 알-무타미드에 충성하는 대신 아쇼트 바그라투니가 아르메니아의 왕으로 인정, 그의 후계자인 아쇼트 2세가 카프카스 지역 ‘왕 중 왕’으로 명명 861년 바그라티드 왕조부터 중세기간 번성하기도 함 이 후 1045년 비잔틴, 1071년에는 셀주크, 1236년 몽골의 침입이 이어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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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역사 몽골 지배 하에서 상층부는 중앙아시아-인도, 중국 간의 실크로드 무역에 종사하 여 영화를 누림
몽골의 지배 이후에도 다른 유목민들의 침입에 시달렸는데, 1400년 티무르의 침입 과 지배로 아르메니아는 암흑기(이때 서방은 르네상스 시기) 1502년 페르시아가 침입하고 오토만 투르크와 전쟁에 휘말려 자결권이 없는 소수 민족으로 전락 이를 극복하려 여러 기독교 왕국에 사신을 파견했고 1701년 러시아의 표트르 대제 를 만났고 표트르 대제도 카프카스에 관심을 보여 1722년에 원정대를 파견하려 했 지만 그의 죽음으로 무위에 그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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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역사 1762년 러시아가 카프카스에 진출 - 오스만 투르크가 러시아와 페르시아간의 무역을 방해하고 에카테리나 여제가
아르메니아에 관심 이후 1차 대전이 시작되는 150년 간, 러시아는 오스만 투르크인들과의 대결에만 관심을 가질 뿐으로 아르메니아에 대해서는 소극적 - 영국도 러시아의 남하정책에 대항하고 인도를 지키고자 투르크와 페르시아를 지원했고, 아르메니아는 독립을 얻기 위해 러시아 측에 가담 1828년 러시아가 아르메니아의 동부전역에 진출 - 아르메니아도 러시아 측에 가담하고 러시아와의 통합을 희망 (러시아어 학교 창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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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역사 1914년 1차 대전의 발발과 함께 오스만 투르크 계승국인 터키가 러시아에 대항
하기위해 중앙아시아 이슬람 세력들과 연합하여 1915년 아르메니아인 대 살육을 감행 - 150만 명 이상 살해 당함 - 생존자들은 터키의 위협을 피해 중동의 여러 지역으로 분산 아르메니아의 문화는 오히려 이 분산 주민들에 의해 세계인들이 인정해 줄 정도로 번성 러시아 혁명 후 1918년 단기간 동안의 독립을 쟁취했지만 다시 러시아 볼셰비키에 의해 1920년 합병되어 연방공화국이 되었다가, 1991년 소련의 해체와 더불어 독 립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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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정치 고르바초프 시기인 1988년 2월 최초로 100만 명 이상의 주민이 참가한 대규모 시 위 발생
- 나고르노-카라바흐 자치 관구의 아르메니아인들이 아제르바이잔에 대항한 독립 선언과 독립 운동을 지원 이는 아르메니아민족운동(Armenian National Movement)의 창당으로 이어져 1990년 의회의 다수를 차지, 정권을 장악 1991년 9월 23일 국민투표를 통해 독립선언, 10월 레본테르-페트로샨 대통령 선 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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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고르노-카라바흐와 나히체반>
3 정치 <나고르노-카라바흐와 나히체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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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본테르-페트로샨 대통령>
3 정치 <레본테르-페트로샨 대통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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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정치 1995년 7월 의회선거에서 여당이 승리 - 1996년 대선에서 야당은 정부의 주요 공직자였던 바즈겐 마누키안을 단일 후보 로 추대했지만 레본테르-페트로샨이 51.8%를 얻어 연임 성공 - 그러나 야당은 투표부정을 내세워 의회를 포위하는 등 분규로 악화 - 의장과 부의장 살해하여 정부의 통제력을 약화시킴 선거와 시위로 인한 대외 비판을 극복하고자 대통령은 당시 대중적 인기가 많았던 카라바흐 산악공화국(Republic of Mountainous Karabagh)의 대통령을 수상으로 임명 - 내부의 불만을 나고르노-카라바흐 문제와 결부시켜 애국심에 호소함으로써 국 론을 통일시키고 안정시켜 경제발전을 이룩하려 국가안보라는 미명 하에 권위주의 적 통제를 정당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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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정치 1998년 3월 신임대통령으로 로베르트 코차랸 선출 - 2003년 3월 대선 승리로 연임
1999년 10월 나고르노-카라바흐 문제 처리에 불만을 품은 국수주의자들의 의회 내 총기 난사로 국회의장, 총리 등 8명의 요인이 사망했지만 이후 정치상황이 안정되어 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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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정치 <로베르트 코차랸 대통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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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의 세르주 아자토비치 사르키샨 대통령>
3 정치 <현재의 세르주 아자토비치 사르키샨 대통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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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현재 정세 나고르노-카라바흐의 독립이 주요 이슈 - 주변국과 UN이 관심
- 10년 이상의 분쟁으로 많은 수의 아르메니아 난민들이 아제르바이잔을 탈출했 지만 남은 자들은 숨가이트, 키로바바드, 바쿠에서 대량 학살 당함 - 현재도 아제르바이잔에는 많은 수의 아르메니아인 전쟁포로와 난민이 감금당해 있음 - 이에 따라 유럽 안보협력기구(OSCE)도 평화정착을 위한 노력, 평화유지군 파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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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현재 정세 이후 나고르노-카라바흐는 독립국에 상당하는 지위인 카라바흐 산악공화국 (Republic of Mountainous Karabagh)이라는 국명, 대통령, 수상 선출, 아르메니아어를 공식어로 선언 아제르바이잔과의 전쟁으로 경제 약화, 특히 아제르바이잔을 통한 에너지 공급이 단절, 거의 모든 산업이 황폐화, 전기공급 중단, 1995년 이후 불안전한 메트자모르 원자력 발전소 재 가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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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경제 소련의 계획, 중앙통제 경제를 자유시장경제로 전환 - 드람 화라는 자체 통화 도입
년 연평균 5% 이상의 성장률, 2006년 13.4%, 인플레 2.9% 그러나 실업률 7.4%나 되고, 절대빈곤층도 34.6%로 이의 해결이 가장 급선무 그러나 포스트 소비에트 국가들 중에서 민영화가 가장 잘 진행된 국가로 평가 받고 있지만 아제르바이잔과의 갈등, 분규 해소가 지속적인 경제 발전의 관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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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대외 관계 독립국가연합(CIS)의 공동 창설국가, 내륙국으로서의 생존을 위해 러시아와 독립 국가연합과의 동맹 필요성 절감
- 특히 러시아에 많이 의존하여 영공과 영토 방어 협정 체결, 러시아 공군 주둔 터키와의 관계는 긴장관계(1915년의 아르메니아인 대학살, 나고르노-카라바흐 문제에 기인) - 이란과의 관계는 안정적, 남쪽 국경만 안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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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종교 1세기 예수의 12사도 중 바르톨로뮤와 타데우스가 아르메니아 지역에 복음 전파
- 기독교가 광범위하게 보급되어 301년(티리다테스 3세)에 세계 최초의 기독교 국가가 됨. 교회는 외세 지배 동안 아르메니아인들의 구심점 - 독립 교구의 본산은 에흐미아진에 위치 소련시기에 다른 소비에트 공화국에서는 반 종교 무신 정책 - 아르메니아에서는 민족어와 문화를 보전하려 민족주의와 종교를 통합하는 조치 시행 그러나 많은 국민은 소련이 자신들의 종교, 언어, 생활양식을 터키로부터 보호해주었다고 믿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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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종교 <에흐미아진 최초 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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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언어와 문자 아르메니아어 97.7%, 쿠르드어 1%, 러시아어 0.9%, 그 외 0.4% 인도유럽어족 언어
인도유럽어족 언어 문자는 410년 수도승이자 학자인 성 메스로프 마쉬토쯔가 창제(현재 39자) 기독교의 도입으로 신약성서, 복음서 번역 필요성(전에는 외국 설교자들이 그리스어나 시리아어로 진행 의례 진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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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언어와 문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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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문화 4개의 민족 축제일 - 4월 24일 아르메니아인 대학살 추모일, 9월 21일 독립기념일,
7월 5일 제헌절, 4월 7일 어머니-어린이 날 연극, 발레, 오페라, 전통 무용이 인기, 독서와 체스, 자유 시간을 가족과 친구와 함께 보내고 가정과 카페에서 지내기를 좋아하며 주말 별장도 인기 요리는 바스투르마(말린 쇠고기 요리), 톨마(돌마), 플라키, 보우렉, 수쥬크, 자직(발효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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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문화 <바스투르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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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마 콩류를 양배추 잎으로 싸 찐 요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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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직(마쑨, 마쏘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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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유명인 아나스타스 미코얀(스탈린의 동지로서 1960년 아르메니아의 당서기)과 동생 아르툠 미코얀(미그기 설계자)
이반 바그라미안(소련군 장군-1945년 베를린을 점령) 고유르겐 멜리키안, 일라시아 기라고씨안(노벨문학상 후보) 아르쉴레 고르키(추상화가), 체르(미국의 가수 겸 오스카상 수상 배우), 테니스 선수 안드레 아가시, 윌리엄 사로얀(퓰리처상 수상자)이 아르메니아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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