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계와 율곡의 사회사상 비교 남 일 재 동서대학교 교수/ 정치학 박사 1. 퇴계 이황과 율곡 이이의 약전(略傳) 2. 사단칠정론(四端七情論)과 이기론(理氣論) 3. 퇴계와 율곡, 올바른 정치와 현실 정치의 개혁을 논함. 남 일 재 동서대학교 교수/ 정치학 박사
1, 퇴계 이황과 율곡 이이의 약전(略傳) 이황(李滉, 1502~1571년) 조선 중기의 문신, 학자, 교육자, 시인이다. 이황(李滉, 1502~1571년) 조선 중기의 문신, 학자, 교육자, 시인이다. 호는 퇴계(退溪) 그는 특별한 스승 없이 주희의 문집 등을 스스로 공부를 하여, 한국을 대표하는 성리학자가 되었다. 당시에 가장 성리학에 정통한 대학자로 인정받음 이이(李珥, 1537 ~ 1584년) 기호 지역이 기반인 서인(西人)의 종주. 아홉 차례 과거 급제, 구도장원공(九度壯元公)별칭 얻음 16세 어머니 신사임당이 죽자 금강산 승려가 되었는데, 훗날 중이 되려다가 환속한 자 라고 공격받는 빌미가 됨. 후일 당쟁이 현실화하자 스스로 크게 뉘우치고 동인, 서인 사이의 당쟁 조정을 평생 정치 이념으로 삼음.
1, 퇴계 이황과 율곡 이이의 약전(略傳) 서른다섯 살 차이가 나는 퇴계 이황과 율곡 이이는 명종 13년(1558) 처음 만난 다음, 퇴계가 세상을 떠난 선조 3 년(1570)까지 십여 년 동안 교우관계를 유지했다. 이 기간 동안 두 사람 사이에 오간 편지나 일화를 살펴 보면 그들은 결코 적대적이거나 경쟁적인 관계가 아니 었다. 오히려 그들은 같은 목표를 가진 동지였다. 그들은 같은 학문을 하며 여러 주제를 놓고 서로 의견을 물었으며, 정치적으로도 사림세력의 굳건한 지주로서 마 주치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힘을 보태었다.
2. 사단칠정론과 이기론 논쟁 사단 (四端) 이란 맹자가 말한 도덕적 가치의 실마리 측은지심(惻隱之心)은 인지단(仁之端), 수오지심(羞惡之心)은 의지단(義之端), 사양지심(辭讓之心)은 예지단(禮之端), 시비지심(是非之心)은 지지단(智之端) 인의예지(仁義禮智)의 단(端)을 모아서 사단(四端) 칠정(七情)이란 <예기(禮記) >와 <중용(中庸) > 희(喜)·노(怒)·애(哀)·구(懼)·애(愛)·오(惡)·욕(慾)을 말 함
2. 사단칠정론과 이기론 논쟁 퇴계 이황은 사단을 이(理)에서, 칠정은 기(氣)에서 나오는 마음으로 파악 퇴계 이황은 사단을 이(理)에서, 칠정은 기(氣)에서 나오는 마음으로 파악 이는 하늘의 이치, 기는 그것의 구현 재료로서, 이 둘은 서 로 섞일 수 없다고 보는 관점/ 이기불상잡(理氣不相雜) 사단은 측은지심, 수오지심, 사양지심, 시비지심으로서 그 발현의 결과가 항상 좋으므로 이 (理) 에서 나오고, 칠정은 그 발현의 결과가 좋을 수도 있고, 나쁠 수도 있으 므로 기 (氣) 에서 나온다고 생각했다. 따라서 단순히 사단은 이가 발해서 생기는 것이고, 칠정은 기가 발해서 생기는 것이라고 결론
2. 사단칠정론과 이기론 논쟁 율곡은 이황이 기(氣)와 이(理)는 서로 독립되어 있다는 데 이설(異說)을 제기함 율곡은 이황이 기(氣)와 이(理)는 서로 독립되어 있다는 데 이설(異說)을 제기함 우주의 본체는 이기이원(理氣二元)으로 구성되었다는 것은 인정하나 이와 기는 공간적으로나 시간적으로나 분리되거나 선후(先後)가 있는 것이 아니라고 보았음. 따라서 이와 기는 최초부터 동시에 존재하며 영원무궁 하게 떨어질 수 없는 것으로 인식함 ‘이기이원론(理氣二元論)’을 두고 200여 년에 걸쳐 여러 학자들이 각자 다른 주장을 펼치는 사칠변증(四七辨證) 이 일어나게 된다.
3. 올바른 정치와 현실 정치의 개혁 퇴계와 율곡은 성리학을 공통의 이념으로 공유하면서도 그것을 현실에 구현하는 방법과 지향은 달랐다. 퇴계는 자신의 소명을 은거와 강학에서 찾은 반면 율곡은 관료로서 나라에 헌신하는 데서 찾았다. 그럼에도 퇴계와 율곡이 시대를 구하기 위해 내린 처방 인 상소에는 왕도정치를 실현하고 백성을 도탄에서 구 하려는 의지가 담겨 있다. 퇴계와 율곡의 정치적 경륜이 담긴 건의서인 [무진육조소戊辰六條梳]와 [만언봉사萬言封事]를 통해 두사람의 올바른 정치란 무엇인지 가늠해볼 수 있다.
3. 올바른 정치와 현실 정치의 개혁 무진육조소(戊辰六條梳) 주요내용 퇴계는 68세에 당시 17세의 어린 임금 선조에게 간절한 마음으로 여섯가지 조항을 올렸다 첫째. 繼統(계통)을 중하게 여겨 仁孝를 온전하게 할 것 둘째: 참소(讒訴)를 막아 양궁(兩宮)을 친하게 할 것 셋째 성학(聖學)을 돈독히 하여 정치(政治)의 근본을 삼음 넷째 道術(도술)을 밝혀 人心(인심)을 바로 잡을 것 다섯째. 腹心(복심)을 미루어 耳目(이목)을 통할 것 여섯째. 修省(수성)을 정성스럽게 해야 하늘의 사랑(天愛) 을 이어 받음
3. 올바른 정치와 현실 정치의 개혁 배움을 가까이하여 통치의 원칙을 바로잡고 눈과 귀를 밝 혀줄 어진 신하를 곁에 두시옵소서 이를 통해 선조가 성군의 자격을 갖추어 나간다면 태평 성대를 이룩할 수 있으리라고 퇴계는 전망함 퇴계는 자신이 제시한 여섯 가지 조항에 새롭거나 놀라 운 내용은 하나도 없다고 인정함. 그렇지만 올바른 정치 를 이루는 가장 떳떳하고 올바른 길임을 새삼 강조. 아마도 퇴계는 자신의 주장이 이론적으로는 나무랄 데 없이 훌륭하고 모든 것이 지당한 말이지만, 현실적으로 는 실행하기 어렵다고 선조가 생각할 것을 염려. 예로부터 역대 제왕들은 늘 왕도정치의 이상을 높이 받 들었으면서도, 현실정치에서는 법치에 바탕을 둔 부국강 병책을 추구해왔기 때문임
3. 올바른 정치와 현실 정치의 개혁 이이의 만언봉사(萬言封事/ 만언소萬言疏) 1574년(선조 7) 선조가 신하들에게 내린 구언(求言)교서에 대한 답으 로 율곡이 올린 상소임 왕의 자세와 마음가짐을 다룬 것과 시폐(時幣)를 지적하며 개혁안을 제시한 부분으로 나뉨 이이는 [만언봉사]에서 당시 현실을 진단, 대책을 제시. 그는 위아래가 서로 믿는 실상이 없고, 신하들이 일을 책임지려는 실상이 없고, 경연이 아무것도 이루는 실상 이 없고, 어진 이를 거두어 쓰는 실상이 없고, 재이를 만 나도 하늘에 응답하는 실상이 없고, 여러 정책에 백성을 구제하는 실상이 없고, 사람들의 마음이 선을 지향하는 실상이 없다고 현실을 분석함. 그리고 이를 바탕으로 크게 두 방향으로 대책을 제시함
3. 올바른 정치와 현실 정치의 개혁 먼저 율곡은 안으로 임금이 스스로를 수양하기 위해 네 가지 조항의 개혁방안을 내놓음. 성상의 뜻을 분발하여 삼대의 융성함을 되돌리기를 바 라고, 성학에 힘써 뜻을 정성스럽게 하고 마음을 바로잡 은 보람이 오롯이 이룩되도록 하고, 한쪽으로 치우친 사사로움을 버려 지극히 공정한 도량 을 넓히고, 어진 선비들을 가까이하여 온 정성으로 깨우 쳐 주는 보탬을 마련하는 것이다. 제도를 정비하여 백성의 어려움을 살펴주시고 한쪽으 로 치우친 사사로움을 버려 공정한 정책을 펴시며 덕으 로 살펴 신하들의 신망을 얻으시옵소서
3. 올바른 정치와 현실 정치의 개혁 이어 율곡은 밖으로 백성을 편안케 하기 위해 다섯 가지 조항의 개혁방안을 제시함. 이어 율곡은 밖으로 백성을 편안케 하기 위해 다섯 가지 조항의 개혁방안을 제시함. 정성된 마음을 열어 신하들의 충정을 얻고, 공안(貢案)을 고쳐 세금을 모질게 거두는 해악을 없애고, 절약과 검소함을 기려 사치하는 풍조를 개혁하고, 선상(選上) 제도를 바꾸어 공노비들의 괴로움을 덜어주고, 군정을 개혁하여 안팎의 방비를 굳건히 하는 것이다. * 선상(選上): 고려·조선 시대 여러 관아에서 사역을 시키 기 위해 지방의 관노비를 중앙으로 뽑아올리던 제도
3. 올바른 정치와 현실 정치의 개혁 율곡은 퇴계와 달리 당면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구체 적인 방책을 제시하는 데 주저함이 없었다. 이는 국정운 영의 핵심이 되는 중요한 관직을 두루 역임한 결과. 율곡은 당시가 국정의 모든 면에서 대대적인 ‘개혁’을 추 진해야 할 중요한 때라고 생각했다. 당시 조선 사회의 전반적 난맥상에 대한 통렬한 비판을 통해 율곡은 근본 적이면서도 전면적인 개혁을 강하게 주장했다. 율곡의 제도적, 정책적 개혁방안은 관심의 폭이나 내용 의 깊이에서 당시 그 어느 누구도 따라갈 수 없을 정도 로 탁월하다. 율곡이 오랫동안 관료생활을 하면서 쌓은 경험, 그리고 그 어느 때보다 경장(更張)이 필요하다는 시대인식과 만나 당시에 유례를 찾아볼 수 없는 경세론 을 낳은 것이다.
3. 올바른 정치와 현실 정치의 개혁 율곡이 당시 시대의 구체적인 문제점과 대책을 논한 내용 1. 문벌이나 출신보다는 능력 있는 사람을 기용하자. 2. 신분을 가리지 말고 평민을 포함하여 폭넓게 인재 양성하자. 3. 중앙에서는 외척의 권력 집중화를 막고, 지방에서는 수령의 자질을 높이며 이서(吏胥)들에게도 녹봉을 주어 민폐를 막자. 4. 붕당을 막기 위해 사림의 공론 존중으로 사기를 높여야 한다. 5. 민생을 괴롭히는 방납을 시정해야 한다. 6. 왕실 사유재산을 억제하고 왕실의 경비를 줄여야 한다. 7. 군포에 대한 족징과 인징을 금지해야 한다. 8. 공노비의 선상(選上)을 개선하여 부담을 줄이자
3. 올바른 정치와 현실 정치의 개혁 국방력 강화 <시무육조 時務六條> 개진 첫째, 어진이를 등용하라, 둘째, 군대와 백성을 제대로 키우라. 셋째, 재용(財用)을 넉넉하게 마련하라, 넷째, 국경을 견고하게 지키라, 다섯째, 평소 전쟁에 나갈 군마(軍馬)를 충분하게 확보하고 길러야 한다 여섯째, 교화(敎化)를 밝히라
Thank You!