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 근대이전 Lecture 9
신비학(Hermetic), 연금술, 점성술, 마술 등 신비주의와 학문의 접점 부분적으로 실험적 성격의 실습과 실험기구 발명 마술적 상상이 현상 뒤에 숨은 유용하게 사용될 수 있는 것을 찾는 것 촉진-눌려있던 호기심 장려 숨겨진 힘을 감지한 인간이 현실의 창조자가 되어 세계의 형성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줄 수 있다는 믿음. 대안적 사고 진작. 이러한 신비주의는 이집트에서 기원. 사고의 다양성 증대 마술사: 자연의 충직한 충복이자 자연을 위하여 일하면서 힘을 얻는 사람. 제대로 된 마술은 신의 조화로운 창조를 더 잘 이해할 수 있도록 돕는다고 생각 (예: 로저 베이컨도 마술사)
군사혁명 14세기 유럽은 앞선 문명의 특징 일부를 갖게 됨 농업 강화 인구 증가 도시화 기념비적 건축물 고급지식 제도화 (중앙집권적 권력) (강제노역) 다른점 : 관개농업 기반 중앙집권적인 권력이나 강제노역 등장 않았음. 16세기에 등장 중앙집권적 권력과 강제노역을 일으킨 역사적 동력이 관개농업이 아니라 군사혁명
군사혁명이 산출한 것 : 정치적 중앙집권화. 유럽 식민지 정복 화약기술은 아시아에서 기원 대포는 1310-20년 유럽에서 탄생, 1330년 이슬람 1356 중국에도 등장 초기 대포와 사석포(bombard)는 거대. '화약혁명'은 봉건적인 기사와 영주의 군사적 역할을 침식했고 그들을 중앙 정부의 엄청난 비용으로 운영되는 화약 육군과 해군으로 대체 오직 왕만이 그 비용을 댈 수 있었기 때문 대포라는 신기술이 워낙 새로워서 과거의 군사적 경험이 큰 도움이 되지 않음. 축적된 지식에서 나온 것이 아닌 신기술과 관련해서 늘 그런 일이 발생 (신기술이 등장하면 젊은이가 늙은이를 제치고 중요한 업적을 남기는 일이 종종 발생하는데 이를 '잔 다르크 신드럼'이라고 부름.)
- 소총 : 1550년대 도입. 일렬로 늘어서 소총수 일제히 장전, 사격 초기 - 소총부대와 창.칼 부대 발전 – 총검부대 일본 전국시대 오다 노부나가의 소총부대 활약 - 대포의 중세 성과 구식 성벽의 무력화 - 군대의 상비군화(국민 개병제), 소총보병과 포병 군사혁명은 권력을 지역의 봉건적 권력자들에게서 중앙집권적인 왕국과 민족국가들로 이동 그러나 완전 제패할 만한 강력한 국가는 등장하지 못함 – 상호견제와 끊임없는 전쟁은 세계사를 이끄는 역량을 갖추게 함.
전함과 전투 기술의 개발 바람을 이용하며 적은 인원 탑승하는 포르투갈 개러벨caravel(소형범선)과 나중에 개발된 galleon(대형범선) - 노를 젓는 갤리galley대체 충돌과 적선에 옮겨타기를 포함한 전술도 대포로 중무장한 선박의 측면에 장착된 포로 먼 거리의 적을 공격하며 적의 승선을 예방하는 전술로 바뀜 (1588 영국의 무적함대 격파) 대양 항해를 위한 무장선박 ; 돛과 선상 장비 개량, 포구를 뚫고 토대를 개발 설치, 선장은 나침반을 익혀 바다에서 위도 확인 1480년대에 완전히 터득 아프리카, 인도양, 아메리카에 갖다가 돌아오는 것 볼타 기술 : 대서양에서 동쪽 이베리아로 부는 바람을 타는 것
중세사와 근대사 사이의 불연속성 ? 14세기에 일련의 혼란이 유럽을 휩씀 환경적 인구적 단절 : 춥고 습해져 생산성과 수확량 타격. 1315-17 대기근 1345 국제적인 금융위기 페스트가 1347-8 유럽 인구의 1/4-1/3 감소. 마을 수만 개 사라짐. 18세기까지 14세기 내내 교황의 아비뇽 유배 - 카톨릭 여러 유파 분열 1338 영국-프랑스 백년전쟁. 1450년까지 프랑스 중심부 초토화 1400년 전후 수십년 동안 농노반란과 사회적 불안 위협 중세 후기가 와해된 후에도 견고한 생산체계 기반 유럽 농업과 봉건 사회 본질적 특징은 살아남았음.
1242년 베이컨 (Roger Bacon, 1214~1294.6.11) 서양 최초로 정확한 화약제조방법 고안(당시28세). 1253년 그로스테스트(Robert Grosseteste, 1175~1253.10.9) 아리스토텔레스의 "자연학(Physics)"를 라틴어로 번역, 주해. 1267년 베이컨 (Roger Bacon, 1214~1294.6.11) "대저(Major Work, Opus Maius)" 출간. 돋보기 원리 해설. 1268년 베이컨 (Roger Bacon, 1214~1294.6.11) "자연철학의 일반원리(Communia naturalium)", "수학의 일반원리(Communia mathematica)" 출간. "모든 철학의 꽃은 광학". "수학은 과학의 문이자 열쇠". 1271년쿠빌라이(世祖, 1215~1294): 원(元) 개국(~1368). 1272년 베이컨 (Roger Bacon, 1214~1294.6.11) "철학 개론(Compendium philosophiae)" 출간. 1273년 아퀴나스(Thomas Aquinas, 1225~1274.3.7) "신학대전(神學大全, Summa Theologiae)" 완성. 이중진리설 주장. 1277년 3월 7일: 탕피에르 (Stephen Tempier, ~) 219개의 잘못된 명제에 대해 파리대학교에서 교육 금지. 1299년 마르코폴로(Marco Polo, 1254~1324.1.8) "동방견문록(東方見聞錄, The Description of the World)"
1323년 로마 가톨릭: 아퀴나스(Thomas Aquinas, 1225~1274.3.7)에게 시성(諡聖). 1327년 뷔리당 (Jean Buridan, 1295~1358) "물체의 운동은 진공에 의한 것이 아니라 기동력(impetus)에 의한 것". 아리스토텔레스의 운동론 부정(당시32세). 'impetus'는 아리스토텔레스의 동력인(causa efficiens). 1328년 브레드워딘(Thomas Bradwardine, 1290~1349.8.26) "비례론(比例論, Treatise on the Proportions of Velocity in Motion)" 출간. 운동법칙을 수학적으로 연구. 1330년 거셤(Levi ben Gershom, 1288~1344) 십자 측고의(十字 測高儀, Cross Staff, Jacob's Staff) 발명. 1337년 영국과 프랑스간에 백년전쟁(Hundred Years' War) 발발(~1453). 1348년 이탈리아에 흑사병(黑死病, Black Death, pest) 유행. 1377년 오렘 (Nicole d' Oresme, 1325~1382.7.11) "천체와 지구에 관한 책" 출간. 운동의 상대성 주장. "'정지한 지구와 회전하는 천체'라는 설명보다는 '정지한 천체와 자전하는 지구'라는 설명이 더 경제적이다." 1378년 가톨릭 교회 분열(~1417): 두 명의 교황 존재. 1392년 조선 건국. 1410년 데이이(Pierre d'Ailly, 1350~1420.8.9) "세계의 형상(Imago Mundi)" 출간. 콜럼버스에게 영향을 줌. 1410년 루크레티우스 (Titus Lucretius Carus, BC 99∼55)의 책 "사물의 본성에 대하여(On the Nature of things)"가 다시 발견됨.
1436년 알베르티(Leon Battista Alberti, 1404. 2. 14~1472. 4. 25) "회화론" 출간 1440년 쿠사누스(Nicolaus Cusanus, Nicholas Krebs, Nicolaus Chrypffs, 1401~1464.8.11) "무지에 대하여(On Learned Ignorance, 데 독타 이그노란티아 De docta ignorantia)" 저술(당시39세). "모든 것은 모든 것 안에 있다". "지상계와 천상계는 같은 현상이다". 지구설(地球說, Globular Earth). 지동설. 1442년 플라톤 아카데미(Academieia Platonica)설립(~1494): 코시모 데 메디치(Cosimo de Medici, 1389.9.27∼1464.8.1) 재정 지원. 베사리온(Johannes Bessarion, 1403~1472.11.18)과 플레톤(Geogius Gemistus Plethon, 1355~1450) 주도. 그리스 저작들을 라틴어로 번역. 스트라본의 저술을 소개하여 지리상 발견에 간접 영향을 줌. 1445년 구텐베르크 (Johannes Gutenberg, 1397~1468.2.3) 금속활자 발명. 1446년 세종대왕(1397~1450, 재위 1418∼1450) 한글반포. 1448년 쿠사누스(Nicolaus Cusanus, Nicholas Krebs, Nicolaus Chrypffs, 1401~1464.8.11) 식물은 물을 소화해서 자란다고 주장. 1450년 쿠사누스(Nicolaus Cusanus, Nicholas Krebs, Nicolaus Chrypffs, 1401~1464.8.11) "저울로 하는 실험에 대하여(On Experiments Done with Weight-scales, Idiota De Statics Experimentis)" 출간. 1453년 5월 29일: 오스만투르크제국이 콘스탄티노플 점령. 비잔친 제국(Byzantine Empire) 멸망.
중국 문명의 배경 지리적으로 고립 : 남서, 서, 북 산맥과 사막, 척박한 초원, 동과 남동은 바다로 막힘. 황허, 양쯔강 유역 – 전형적인 관개문명, 중앙집권적 형태 문자 – 표의문자, 배우기 어려움. 문화적 전통에 방해가 되지 않음. 과학적 용어 표현에 문제 수천년에 걸친 사회적.정치적.문화적 연속성
중국 과학기술 발전 : 초기 중국 약 5000년전 농경생활 시작 – 원시적 기술시대 삼황 기원전 2500년 채도 : 붉고 검은 무늬의 도자기 삼황 복희 : 8괘를 만들고, 가축기르고, 고기잡기 신농 : 농산짓는 법, 의약을 가르침 수인 : 불의 발명 황제 : 문자 발명, 배와 수레 창안, 도량형과 역법 제정 은나라 : 역법 기원전 14세기 갑골문자 : 거북등, 소 나 양의 뼈에 불로 지져서 남긴 글씨 10간 : 갑(甲) 을(乙) 병(丙) 정(丁) 무(戊) 기(己) 경(庚) 신(辛) 임(壬) 계(癸) 12지 : 子 丑 寅 卯 辰 蛇 吾 未 申 酉 戌 亥 10진법과 12진법 60진법 시초 달력도 7일이 아닌 10진법에 기초해 만들어짐. 태음태양력(달과 해 운동)
춘추 전국시대 봉건 구조 제자백가 주목할 만한 9개 학파 청동기시대에서 철기시대로 이전 중국 고대 문화의 모든 기틀 마련 정치적 혼란기, 그러나 화려한 문화 개화기 제자백가 백화제방시대 과학기술에서도 기초적 토대 점성술과 천문학 : 하늘에서 일어나는 이상한 현상은 지상세계에 어떤 의미를 갖는다고 해석 하늘 : 자미원 – 북극성 중심지역, 은하수내부 - 천시원, 태미원 주목할 만한 9개 학파 9가: 儒家, 陰陽家, 道家, 法家, 名家, 墨家, 縱橫家, 雜家, 農家 陰陽五行說 : 易에 의한 陽爻와 陰爻, 2진법, 2의 6승 - 64卦, 변화
송(960-1279)의 ‘르네상스’ 농업 기술 발전 : 벼품종 개선, 2,3모작, 경작지 확장 인구증가 : 800년 5천만 1200년 15천만. 인구 100만 도시 5개군데 거대한 중앙집권 관료체제(능력위주) – 과학과 기술 지원 역시 관료체제 -등용시험 : 경전, 인문, 도덕 중심. 과학기술은 일부 시험에만 적용 유학 이데올로기 – 실천적 철학 군사권력의 분산, 상인과 성직자의 천시
중국 과학기술의 특징 중국기술특징 : 기술과 산업에 대한 정부 통제. 예:광업, 철생산, 소금공금, 비단, 도자기, 종이, 술 등 독점 – 이익으로 군사비용 충당 명목상 모든 자원 정부 소유. 작업장과 공장을 정부에서 관리 독점. 전문 기술자는 국가에 고용 독점사업의 이익은 국고. 농업의 세금보다도 더 많은 국고수입 – 화폐 경제 확산
중국의 근대이전 기술 발전 4대 발명품 나침반 : 기원전 100년경 인지. 풍수에 사용. 12세기초 항해에 이용 인쇄술 : 7세기 목판인쇄술 화약 : 9세기 중반 제지술 : 2세기 도자기, 비단등 직물, 활자, 현수교, 지진계, 제철 등 발전은 서양을 압도 명 시대 정화의 대원정 : 1405-1433 남아시아, 인도양 7차례 해상원정. 수십척 배와 2만명이상 선원으로 구성된 선단. 아프리카 모잠비크까지 항해. 목적은 교역이 아닌 정치적(명 왕조의 권위와 힘 확고히) 당시 배의 크기는 1500톤 급. 4-6개 돛, 유럽 배의 5배 이상 큼. 대포, 나침반 송과 명 초기(즉 15세기)까지 확실히 모든 면에서 가장 앞선 기술력 보유
중국의 과학 활동 중국은 “과학들이 있었지만, 과학은 없었다”: 지식인들의 다양한 과학활동- 천문학, 점성술, 수학, 기상학, 지도 제작술, 지진학, 연금술, 의학등. 그러나 통일된 자연에 관한 비판적 연구는 없었음. 즉 자연철학은 없었음. 과학은 특권층의 개인적 취향. 유용한 지식의 국가적 지원 그리고 독점 – 천문학 점성술 전통적 중국세계와 우주관 : 전체적이고 유기론적 방식 우주는 시간과 공간을 함께 뜻함. 거대한 단일 유기체로 생각. 자연주의적 입장 개천설, 혼천설 - 우주는 유한하다고 생각 안함. 과학과 수학적 업적 : 화석의 정체파악, 파스칼 삼각형과 이항식의 수학, π값계산 등. 수학에서 산술과 대수학 기법 사용.그러나 유클리드 기하학과 같은 연역적인 수학체계는 없음. 음양 오행설 – 음과 양, 오행의 역동적 변화
중국(동양)인의 특징 동양인들은 사물들을 전체 맥락 속에서 파악함. 세상은 매우 복잡한 곳으로 간주되기 때문에 어떤 사건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수없이 많은 관련 요인들을 함께 고려. 문제 해결에서 형식논리는 거의 사용하지 않음. 실제로 지나치게 논리적으로 문제를 해결하려는 사람은 미숙한 인간으로까지 간주 동양 사회의 집합주의적이고 상호 의존적인 특성은 세상을 보다 넓게 종합적으로 보는 시각. 중국인의 일상에서 개인의 권리란 ‘자신이 원하는대로 행할 수 있는 권리’가 아니라, ‘공동체 전체의 권리 중 자신의 몫을 담당하는 것’. 즉, 중국인들에게 있어서 개인은 ‘특정 집단에 소속된 구성원’ 유교, 도교, 불교 모두 ‘조화’, ‘부분보다는 전체’, ‘사물들의 상호 관련성’이라는 공통 관심사. 세 철학에 공통적으로 존재하는 ‘종합주의(holism)' 는 우주의 모든 요소들이 서로 관련되어 있다는 믿음에 기초. 종합주의라는 개념은 공명(resonance) 현상과 유사.
중국종교 (유교,도교)의 영향 유교, 도교(불교도)는 모두 조화와 화목 중시. 추상적 사유는 대체로 신뢰하지 않음. 유교는 ‘중용’의 도를 규범으로하는 ‘상식’의 종교. 도교도 진리 자체 추구보다 세상살이의 도를 찾는 것. (중국 격언: 모든 중국인은 성공하고 있을 때에는 유교도이고, 실패하면 도교도가 된다) 중국인이 기술 분야의 훌륭한 업적 이유 철학자이자 중국 연구가인 도널드 먼로(Donald Munro) “유교적 사고에 있어서 구체적인 행위와 관련되지 않은, 즉 실용적이지 않은 순수한 의미에서의 ‘앎’이라는 것은 없었다.” 그리스 문화에서는 우주의 구성 단위가 원자(atom)인지 아니면 파장(wave)인지가 중요한 논쟁거리였지만, 중국인들이 보기에 우주란 두말할 나위 없이 연속적인 파장으로 구성된 것. 과학철학자인 조지프 니덤(Joseph Needham) : “중국인에게 있어서 우주는 연속적인 장 (場)이었고, 그 안에서 일어나는 사물들 간의 상호 작용은 원자의 충돌이 아니라 파장들의 중첩”
중국의 자연관 자연은 있는 상태로 놔두고 인간이 적응하는 것이라는 생각이 강함. 서양은 자연을 탐구(자연계)하고 인간의 편의를 위하여 인위적인 변화를 추구 신의 비인격화 : 비인간 자연세계에 법령을 부과하는 신적인 천상의 입법자로서 신이라는 개념이 없음. 즉 자연에 질서가 없다는 것이 아니라 그것이 이성적인 인격적 존재에 의해서 정해진 질서가 아니라는 것 도가 같은 경우 질서의 관념이 우주의 미묘함과 복잡함을 나타내주기에 너무 유치하다고 생각 현대 물리학이 양자역학과 상대성이론이 도가의 생각과 유사함. – 보어, 하이젠베르크 지적 (프리초프 카프라 “Tao of Physics”
중국과학의 외래 영향 당 시대(7세기) : 불교를 비롯한 인도사상과 함께 도입. 수학, 점성술, 천문학, 의학 등 원 시대(13세기) : 몽골의 중국정복시기 거대한 몽골 제국. 이슬람 천문학등 도입 청 시대(17세기) : 유럽인(마테오리치등)에 의한 서양과학. - 발전적이고 개방적이었던 송, 원과 달리, 14-15세기이후 명은 폐쇄적으로 유연성을 잃고 쇠퇴. 16-7 세기 이후 확실히 서구에 뒤떨어지고, 19세기 아편전쟁으로 확실하게 힘이 없음을 보여줌.
근대 과학혁명이 중국에서 일어나지 못한 이유 말과 글이 복잡: 단음절로 과학을 위한 소통에 부적합. 표의문자 사고방식이 분석적인 것을 배제한 연상적 사고의 유비추리 과학적 방법이 없었음. 일찍이 묵가와 법가, 명가에 대한 탄압 인간과 자연에 절대적 명령을 내리는 전능한 입법자, 즉 자연법칙이 없음. 문화적 균질성과 자만심. 중국밖의 야만인들의 과학적 지식을 무시 유학과 도교 전통에 의한 사회와 인간관계 중심, 실용적 기술에 대한 멸시, 실험(자연에 반하는)에 대한 거부감. 상인계급의 천시, 관료 체제의 통제에 의한 자유로운 사상 형성이 힘듬. 유럽의 과학 혁명 : 정부의 지원이나 통제가 덜 강한 환경에서 개인적인 사상가들이 자유롭게 추상적인 의문과 비판적 능력에 의한 과학의 발전
르네상스 십자군 원정(1096-1291)에 따른 유라시아와의 교역의 중심이 비잔틴에서 이탈리아의 도시로 이동함 십자군원정 실패에 따른 교황의 권위의 약화와 봉건시대의 왕, 제후 등의 신흥 재력가인 상인들에게 도시자치권을 제공함. 신흥도시 세력가의 후원에 의한 14-16세기 신문화 운동, 이탈리아 도시에서 시작 유럽 전역확산 도시의 신흥세력(브루조아)가 그리스도교의 종교적 속박에서 벗어나기 위하여 그리스.로마 고전에서 인간 본연의 모습을 재발굴하여 현실생활을 긍정하고 합리주의 중시
근대의 시작 도시의 발전, 신흥유력가로서 상인(11-13세기) 그리스.로마 사상의 재발견-인본주의, 르네상스(14-16세기) 인쇄술(금속활자:쿠텐베르크, 1445)발전에 따른 성경 및 주요 서적의 대중화 – 종교권위에 대한 이성적 도전 종교 개혁 운동(마티루터 1517) 나침반, 항해술, 화약/화포 등 기술 발전에 따른 식민지 대항해와 식민지 확보((콜럼버스 1492) 과학혁명 (코페르니쿠스 154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