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음서에 나타난 세속사적인 증거 마태복음에 대한 기본적인 이해 산상수훈
복음서와 연대기 예수님의 탄생 공생애 시작 사역 기간 예수님의 죽음 헤롯 왕: 마 2:1-헤롯이 죽은 연대가 BC 4 , 3-4월 가이사 아구스도( 31 BC~AD 14: 눅 2:1), 구레뇨가 시리아 총독 (AD 6~8) 신성이 나타난 것이-5BC, Jupiter, Saturn, and Mars are appeared in 7-6 BC. 이런 것 들에 근거 하여서 예수님의 탄생은 6-4 BC. 공생애 시작 디베료 가이사(AD 11/12-): 눅 3:1, 3:23-삼십세쯤 A.D. 25/26 혹은 26/27 사역 기간 요한복음-세 번의 유월절, 2년 반 마가복음-한번의 유월절, 1년 예수님의 죽음 막15:42-금요일, Nisan 15-A.D. 30 요 18:28 Nisan 14-A.D. 33.
마태복음 구조 지리적 구조 머리말, 1:1-2:23 사역준비, 3:1-4:11 갈릴리 사역, 4:12-15:58 북쪽의 다른 지역 사역, 14:1-16:12 예루살렘으로의 이동, 16:13-20:34 예루살렘에서의 대결, 21:1-25:46 예수님의 고난과 부활, 26:1-28:20
기독론적 전개에 따른 구조 오경적 구조- 메시아이신 예수의 인격, 1:1-4:16 메시아이신 예수의 선포, 4:17-16:20 메시아이신 예수의 고난과 죽음, 16:21-28:20 킹스베리는 마태복음 신학에서 귀신론을 제기 한다. 오경적 구조- 다섯 편의 긴 설교 5-7장, 10장, 13장, 18장, 23-25 장 마지막에 “예수께서 이 말씀을 마치시매.” 베이컨(Bacon)은 다섯권의 책으로 불렀다. 1권, 제자도(3-4장) 2권, 사도직( 이야기 8-9장, 설교 10장) 3권, 계시의 감추임(11-12장의 이야기, 13장의 설교) 4권, 교회의 행정(이야기 14-17장, 설교 18장) 5권, 심판(이야기 19-22장, 설교 23-25장) 5경의 완성으로 봄
<내용> 예수의 사역에 대한 서론(1:1-4:16) 예수의 기원(1:1-2:23) 사역을 위한 예수의 준비(3:1-4:16) 예수의 사역의 발전(4:17-16:20) 가르치며 치유하시는 예수의 권세(4:17-9:35) 예수의 사역에 대한 늘어나는 반대(9:36-12:50) 예수께 대해 점점 양극화 되는 응답(13:1-16:20) 예수의 사역의 절정(16:21-28:20) 다가오는 죽의 심과 부활에 대한 강조(16:21-18:35) 예루살렘으로 가는 길: 이스라엘에 임박한 심판(19:1-25:46) 예수의 궁극적인 운명(26:1-28:20)
저자 학자들은 마태복음이 처음에 작자 미상으로 전해 오다가 125년경, 혹은 140년 처음으로 지금의 명칭으로 불리게 되었다고 주장. 그 근거는 현존하는 사본들에 이런 명칭이 없다는 것과, 4-5세기 중요 사본들에도 제목이 없고, 후대 사본에 가서야 “마태에 따르면”, 5세기에 기록된 베자(D05) 사본에는 “마태에 따른 복음”이라는 표제를 가지고 있다. 행겔의 주장, 터툴리안에 따르면 초대교회에서부터 “표제가 바로서지 않고 완전한 명칭과 저자의 정당한 고백에 기인하는 신빙성을 약속하지 않는 책은 인정해서는 안 된다.” 그는 복음서들이 60년 동안 익명으로 유포되다가 2세기에 갑자기 만장일치로 특정한 저자의 것으로 인정되었다고 생각할 수 없다고 주장한다. 행겔의 주장에 대한 반대의견과 교재의 반론은 p155-156에 잘 나타나 있다. 결론은 표제어가 저자를 가리킬 개연성이 매우 높다는 것이다.
파피아스는 마태가 아람어로 썼고, 이것을 각자가 최선을 대해 해석했다 파피아스는 마태가 아람어로 썼고, 이것을 각자가 최선을 대해 해석했다. 이런 주장은 2세기 후반 이레니우스의 주장에 따른 것인데, 4세기의 교회사가인 유세비우스는 파피아스의 신학과 전해준 내용에 회의적이다. 마태의 직업은 세리였고, 그의 직업이 복음서 기록에 유용하였을 것이다. 마태는 개인이름이고 레위는 지파를 뜻한다. 현대 신학자들의 논란과 복음주의 자들의 반론 1. 마태복음만 유일하게 “세리 마태(10:3)”에서 언급 된다. 또한 마 9:9-13은 완만한 자기 비하로 이해 된다. 이런 내용은 근거로 어떤 이들은 미지의 저자가 이 책을 다른 사도와는 대조되는 마태와 관련 지으려 했다고 주장.
2. 막 2:14와 눅 5:27절에는 세리 레위라고 기록하고 있다 2. 막 2:14와 눅 5:27절에는 세리 레위라고 기록하고 있다. 하지만 동일한 이야기에서 마 9:9-13에서는 그 사람을 마태라 부른다. 공간복음서에서 열두 제자를 부를 때에 마태라는 이름이 존재하고, 마 10:3은 마태가 세리라고 밝히고 있다. 이런 사실은 마태와 레위가 동일 인물이라고 추론하게 한다. 알브라이트는 ‘마태’는 개인의 이름이고 ‘레위’는 그가 속한 지파의 이름이라고 주장한다. 3. 마태가 세리요, 마태복음이 특별히 관세제도에 관한 전문적인 내용이 등장 하지는 않는다. 반론, 마태복음에 나타난 셈어와 헬라어를 유창하게 구사한 것과 인종의 장벽을 넘어 선 것은 그가 세관 관리라는 사실임을 인정하는 중요한 정황이 된다.
4. 마가우위설을 인정 한다면, 사도인 마태가 마가의 저작을 이용하여 자신의 저서를 완성 했다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주장하는 학자들이 존재한다. 하지만 고대 사회는 오늘날과 같은 표절에 대한 인식이 없어서, 다른 사람의 작품을 허락없이 표절하는 것이 관행 이었고 불명예스러운 일이 아니었다. 5. 큄멜은 마태복음서가 주제의 체계적인 면이 복음서가 가진 전기적 요소에 맞지 않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주제별이라서 연대기적 요소를 가진 전기에 해당할 수 없다는 것은 조금 억지스럽다.
6. 마태복음에 기술된 마태의 기록이 올다면, 예수에 관한 최초의 기술이라고 여기기에는 너무 늦고, 신학적으로 너무 발달되어 있다. 하지만 마태복음에 나타난 발달된 기독론은 바울의 빌 2:5-11과 골 1:15-20절도 등장한다. 마태는 주님의 사역기간에 제자들이 이해했던 예수와 수십년 후 자신의 복음서 기록과는 구분하여 기록 한 것으로 보인다.
7. 일부 학자들은 마태복음이 1) 유대인의 풍습과 문화에 무척 무지 하며, 2) 유대인이 기록했다고 하기엔 너무 반 유대적이라는 주장이 있다. 첫 번째 주장의 예로 마태복음은 바리세인의 주장과 사두개인의 주장을 구별하지 않고 있다(16:12) 하지만 22:23-33에서는 차이점을 강조한다. 또한 16:12에서의 모습은 바리새인과 사도개인 모두 메시아가 왔음을 깨닫지 못한다는 주장으로 이해 해야 한다. 두 번째 주장에 대하여도 15:24에서는 이스라엘로 보냄을 받았다는 주장, 10:6-6은 이스라엘 이외에서의 사역을 금한 것, 그러면서도 28:18-20은 모든 족속에게 복음을 전하하고 한 것, 그리고 8:11-12은 동서로부터 많은 사람들이 메시아 잔치에 참여 할 것을 이야기 한다. 3) 이처럼 마태복음의 이런 이중성은 마태복음이 기록될 당시의 기독교와 유대교의 갈등을 반영한 것이다.
3. 기록장소 킬패트릭(Kilpatrick)은 기독교 공동체의 산물로 여긴다. 한 미지의 저자가 다양한 방법으로 자료를 정리하였다. 스텐달(stendalh)은 양식비평에 근거하여 공동체 안에서 연구와 교육에 주력했던 사람들, 특히 고대 히브리 성서들이 기독교인의 삶과 사상에 미치는 영향을 연구했던 사람들의 작품으로 본다. 교부들은 팔레스틴에서 기록 되었다고 본다. 근거는 1) 번역하지 않는 아람어(5:22; 6:24; 27:6), 2) 유대관습을 인용, 구약 인용시 이중언어의 특성, 헬라어보다 셈어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연설 형태를 문학적인 의도에서 채택한 것 등이다.
시리아설, 1) 주후 70년 이후 예루살렘과 팔레스틴이 파괴된 이후에 기록 되었다는 것과 2) 안디옥이 복음서의 기록장소라고 본 스트리터의 영향 우리교과서의 주장은, 안디옥설을 주장한다. 근거는 1) 안디옥은 갈릴리 지방으로 뻗어나가기 위한 첫 번째 중심지 였고, 2) 유대인들이 많이 사는 지역이며, 유대적이면서도 이방인 선교에 개방적인 마태의 분위기와 일치하며, 3) 마태복음에 대한 최초의 설득력 있는 외적 증언이 2세기 초에 안디옥의 감독이었던 이그나티우스의 저술에 수록 된점 등이다.
4. 기록연대 80-100년 사이설 1. 마가 우위설에 근거하여, 마가가 60년대에 기록 되었다면, 그 이전에 기록 될 수 없다. 2. 마 22:7에 나타난 혼인 잔치 비유에서 임금이 군대를 보내 그 살인자들을 진멸하고 그 동네를 불살랐다는 표현이 66-70년의 유대전쟁을 묘사하고 있다. 3. 교회(마 16:18; 18:17-18)에서의 교회에 대한 언급은 후에 발달된 교회 질서에 대한 관심으로 이해 된다.
4. 마태복음에 “오늘날까지” 계속되었다는 언급들(27:8; 28:15) 예수시대 사건들과 마태복음 기록된 시기 사이에 상당한 시간이 흘렀음을 보여 준다. 5. 기록될 당시에 유대인과 기독교인 사이에 긴장이 고조되 있었다. 소위 비르크트 하-미님(이단자즐에 반대하는 축도)는 얌니아 공회 (85년) 이후였다는 주장. 70년 이전설 1. 사도마태가 저자라면 70년 이전 설이 바람직 하다.
2. 초대교부들은 마태복음의 초기 저작설을 주장한다. 이레니우스는 60년대 중반 베드로가 죽은 직후 기록 되었다고 주장한다 2. 초대교부들은 마태복음의 초기 저작설을 주장한다. 이레니우스는 60년대 중반 베드로가 죽은 직후 기록 되었다고 주장한다. 알렉사드리아의 클레멘트는 베드로가 살아있을 때에 마태복음이 기록되었다고 주장한다. 3. 마태의 예수님의 말씀 일부는 기록될 당시에 성전이 건재 했음을 전재로 한다. (마5:23-24; 12:5-7; 23:16-22; 참고 26:60-61). 4. 마태복음에 바울신학이 나타나지 않은 점을 들어 킬패트릭은 90년 이전설을 주장한다.
4. 목적 5. 마태복음의 기여 유대인들에게 기독교 옹호 1) 예수가 메시아이다(약속된 메시아, 다윗의 아들, 인자, 하나님의 아들, 임마누엘, 구약성서에 예언) 2) 예수가 사역하는 동안 유대 지도자들이 알아 보지 못했다. 3) 예수의 삶: 탄생, 사역, 십자가, 부활과 함께 종말이 시작 되었다. 4) 유대인 뿐 아니라 모든 족속은 예수가 메시아임을 진실로 믿을 때 메아시아의 통치는 계속된다. 5) 메시아의 통치는 다가올 재림으로 완성되는 천국을 미리 맞보는 것이다. 5. 마태복음의 기여 1) 산상수훈, 마태만의 비유, 종말론적인 설교 2) 요셉의 관점에서 본 예수의 동정녀 탄생 3) 구약성서의 인용, 예수가 율법의 완성 자이다. 4) 교회의 미례를 내다 보았다. 5) 예수를 다윗의 아들, 임마누엘.
신학 선생, 다윗의 후손, 왕, 왕 같은 메시아, 높임 받으신 하나님의 아들, 성육하신 지혜, 주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