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상으로 읽는 한국사 02 삼국은 서로를 한 ‘민족’으로 생각했나? - 삼국통일의 의미-
오늘의 영상 : 황산벌 660년 신라와 당의 연합군, 백제 공격. 당군은 덕물도 앞바다에 이르고, 신라군은 당군에게 군수품을 전달하기 위해 백제군을 뚫어야 하는데, 탄현을 지나 황산벌에 이르니 계백의 백제군이 버티고 있다. 5천의 백제군과 5만의 신라군 ... 전투의 승리자가 역사의 승리자일까?
# 4자회담
7세기 국제상황 당 : 618년 건국 : 태종 / 고종 (649-683 재위) 고구려 : 642년 연개소문 권력 장악 백제 : 의자왕, 642년 대야성을 비롯한 신라 남부의 40여 성 함락. *대야성주는 김춘추의 사위. 사위와 딸 사망. 신라: 김춘추가 고구려로 가서 보장왕·연개소문을 만나 병사를 요청하나 실패. 648년 김춘추는 당으로 가서 군사 동맹. 654년 김춘추, 신라 왕으로 등극=무열왕
전쟁 양상의 변화 * 김춘추의 외교론 vs 연개소문의 강경론 6세기 신라의 한강점령을 계기로 삼국간의 전쟁은 ‘전면전’으로 발전 수와 당이라는 통일제국의 등장으로 동아시아 국제전으로 전개. 이에 삼국의 각 국내정세와 수·당의 외교전략이 맞물리며 복잡하게 전개 * 김춘추의 외교론 vs 연개소문의 강경론
4자 입장 당 : 중국 중심의 천하질서 신라 : 백제에 대한 복수를 위한 군사력 백제 : 신라에 대한 공격 (복수) 통일을 목적으로 한 전쟁 아니었다. 고구려 : 당의 팽창에 대한 반발, 정통성
삼국간 전쟁의 목적은? ‘통일’을 목적으로 한 전쟁이었나? YES 왜 ‘통일’하려고 하나? 민족통일? NO 전쟁의 목적은? 영토확장? 방어?
삼국은 민족 의식 있었나?
삼국은 말이 통했나? 신라는 백제를 통해 중국과 교류. 고구려어와 신라어의 어순, 이두 표기의 유사성 중국 역사서에서 ‘백제의 언어와 복장은 고구려와 같다’고 함. 승려들의 자유로운 이동과 교류
수 백년간 지속된 삼국간의 전쟁. 전쟁을 통해 문물과 문화 교류, 영역변동에 따른 삼국민의 융합(통합) 가능 -> 삼국은 점차 동일적인 사회상태에 놓임 중국 등 외부인이 보았을 때 다른 존재로 인식 : 「外夷열전」에 기록 고구려, 신라 등 삼국의 독자적 천하관 존재. 그 범위가 한반도와 그 북부를 벗어나지 않음. 고구려유민, 백제유민 동원해 당군을 몰아냄.
삼국통일의 의미 삼국간 전쟁/통일전쟁은 ‘민족형성’의 계기 → 통일 후 신라는 ‘一統三韓(일통삼한)’ 표방 통일 신라이후(고려와 조선에서의) 전쟁은 북방민족이나 일본 등 타민족과 벌이는 ‘대외항쟁(전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