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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원들: 안영재(조사,작성), 최성혁(조사, 작성, 발표) 김남형, 김찬웅(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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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조원들: 안영재(조사,작성), 최성혁(조사, 작성, 발표) 김남형, 김찬웅(조사)
수원화성 조사 조원들: 안영재(조사,작성), 최성혁(조사, 작성, 발표) 김남형, 김찬웅(조사)

2 수원화성에 대해 수원화성은 조선왕조 제22대 정조대왕이 선왕인 영조의 둘째왕자로 세자에 책봉되었으나 당쟁에 휘말려 왕위에 오르지 못하고 뒤주속에서 생을 마감한 아버지 사도세자의 능침을 양주 배봉산에서 조선 최대의 명당인 수원의 화산으로 천봉하고 화산부근에 있던 읍치를 수원의 팔달산아래 지금의 위치로 옮기면서 축성되었다. 성의 둘레는 5,744m, 면적은 130헥타르 로 동쪽지형은 평지를 이루고 서쪽은 팔달산에 걸쳐 있는 평산성의 형태로 성의 시설물은 문루 4개, 수문 2개, 공심돈 3개, 장대 2개, 노대 2개, 포(鋪)루 5개, 각루 4개, 암문 5개, 봉돈 1개, 적대 4개, 치성 9개, 은구 2개 등 총 48개의 시설물로 일곽을 이루고 있으나 이 중 수해와 전란으로 7개 시설물 수문 1개, 공심돈 1개, 암문 1개, 적대 2개, 은구 2개가 소멸되었다 4개 시설물이 현존하고 있다.

3 수원화성의 역사 화성은 비운의 사도세자와 정조의 효심이 서려있는 곳입니다
1762년 쌀뒤주속에서 죽어간  사도세자는 당쟁의 희생물로 아버지 영조에의해 죽임을 당하였고   그후 조선조에 22대 임금이 바로 정조입니다 정조는 등극후 아버지를 장조라 추존하여 수원에  융릉을 만들었고 그 이후 수원은 효의 도시로 남아 정조가 남긴 많은 이야기와 유적들이 애끓는 사부곡으로 남아 있는 화성이다

4 화성행궁 시 대 : 조선시대 소 재 지 : 경기 수원시
종 목 : 사적  제3호로 다루어 지고 있으며, 팔달문(보물 제402호), 화서문(보물 제403호) 이 있다. 유네스코 세계문화 유산으로는 1997년 12월에 지정되었다. 면 적 : 188,048㎡ 

5 장안문(長安門) 장안문은 화성의 북문이자 정문이다. 보통 성(城)의 남문을 정문으로 삼으나, 화성은 임금을 가장 먼저 맞이하는 북문인 장안문이 정문이다. 잘 다듬은 화강암으로 쌓은 석축에 홍예문을 냈고 그 위에 정면 5칸 측면2칸의 다포양식으로 이루어진 중층의 문루가 세워져있다. 또한 가운데에 홍예문이 나있는 벽돌로 쌓은 옹성이 있으며, 양옆에 다른 성벽보다 높이가 약간 높은 두개의 적대를 설치하였다. 장안문의 이름은 중국의 옛 왕조인 전한(前漢), 수(隋), 당(唐)나라의 수도였던 장안(시안)에서 따온 것으로 이는 당나라 때의 장안성 처럼 화성 또한 융성한 도시가 되라는 정조의 뜻이 담겨 있다.

6 팔달문(八達門) 팔달문은 화성의 남문으로 전국 각지로부터 사람과 물산이 모이고 흩어진다는 뜻이다. 현재는 좌우의 성벽이 헐려 길이 생기고 건물들이 들어서면서 번화가가 형성되었다. 축대위로 누각이 서 있는데 2층으로 지어져 매우 높게 보인다.

7 수원화성 깃발의 의미 수원화성에는 각 문마다 각기 다른 깃발들이 세워져있다. 이유는 찾지 못 했으나, 방위를 나타내기 위함 인 것 같다.

8 인증샷ㅋㅋㅋ

9 느낀점 조사도중 실랑이도 있었고, 화성을 찾아가는 것도 힘들었지만, 친구와 함께있어
창피하지도 않았고, 재미있었다. 이번을 계기로 친구들과 조금 더 가까워진것 같 고, 어렵고 멀게만 느껴지던 화성이 더 가까워 진 것 같아 좋았다. 화성을 건설한 사람들의 지혜가 본받을만 하다고 생각 되었다. 그리고 우리는 평촌부터 집까지 걸어왔다..... 내용은 인터넷에서 퍼왔으며, 최성혁이 이해 하기 쉽게 만들고 사진 첨부를 했고, 안영재는 파워포인트를 작성하고, 김남형,최성혁은 최종 검토를 했다. 역사, 유물이라고 다 지루한것은 아닌것 같다고 느꼈고, 김남형은 여행을 자주 가지 않아 뜻깊은 여행이 되었을 것이다. 보지 않아 재미있었다고 말했다.

10 눈물의 집에가는길 평촌→산본까지 걸어왔음 이기분을 너희들은 모를꺼임ㅋㅋㅋ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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