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북공정(東北工程) -고구려사를 중심으로
동북공정(東北工程) 東北邊疆歷史與現狀系列硏究工程 동북변강역사여현상계열연구공정
1. 중국의 고구려사 연구 흐름 2. 동북공정의 의미, 배경,현황 3. 고구려사 왜곡의 핵심 4. 대응 방안 차 례 차 례 중국에서 만주 지방의 역사, 지리, 민족 문제 따위를 연구하는 국가적 연구 사업의 명칭. ‘동북변강사여현장계열연구공정(東北邊疆史與現狀系列硏究工程)’을 줄여 이르는 말이다. 중국에서 만주 지방의 역사, 지리, 민족 문제 따위를 연구하는 국가적 연구 사업의 명칭. ‘동북변강사여현장계열연구공정(東北邊疆史與現狀系列硏究工程)’을 줄여 이르는 말이다. 차 례 차 례 1. 중국의 고구려사 연구 흐름 2. 동북공정의 의미, 배경,현황 3. 고구려사 왜곡의 핵심 4. 대응 방안
1. 중국의 고구려사 연구 흐름 1949 ~ 1980년대 : 고구려사 = 한국사 1980년대 : ‘一史兩用論’ 1990년대 : 統一的多民族國家論
중국을 구성하는 56개 민족의 역사는 모두 중국의 역사. 2. 현재의 중국 영토 안에서 이루어졌던 과거의 역사는 중국은 통일적 다민족국가론을 지향한다. 중국을 구성하는 56개 민족의 역사는 모두 중국의 역사. 2. 현재의 중국 영토 안에서 이루어졌던 과거의 역사는 모두 중국의 역사이다. 중화민족이란 현재 중국 영토에 사는 민족과 과거 중국 영토에서 살다 없어진 민족 모두. 그들이 건립한 나라와 영토는 모두 중화민족의 영토이다. 끝까지 남송을 지키다 죽은 악비는 동족인 금나라와의 화의를 가로막은 민족의 역적! 징기스칸은 중국 최대의 영웅, 몽골은 중국 역사, 몽골이 지배했던 모든 지역은 중국이 회복해야 될 고토 !
‘동북’이란 중국의 동북쪽 3성인 지린성·랴오닝성·헤이룽장성을 모두 지칭한다. (20c초까지 동북3성은 關外) 2. 동북공정의 의미와 배경 2-1.동북공정의 의미 ‘동북’이란 중국의 동북쪽 3성인 지린성·랴오닝성·헤이룽장성을 모두 지칭한다. (20c초까지 동북3성은 關外)
동북공정의 대상
동북공정이란 동북3성에서 발원한 모든 민족의 역사를 중국 민족과 역사에 편입시키려는 작업이다. <대상>고조선,부여고구려, 발해
잠깐만, 중국은 동북쪽의 공정만 추진할 까요?
NO!!! 우린 그 외에도 여러 개의 공정을 추진했거나 추진할 예정이다 해.
중국의 공정시리즈 단대공정 탐원공정 서북공정 서남공정 북방공정 남방공정 해양변강공정
가-1.단대공정 斷代工程 단대공정은 1996년 시작, 2000년 11월9일 완료.'거대 중국 만들기' 역사 프로젝트. 전한시대의 역사가 사마천조차 포기해 버린 하.상.주 3대 왕조의 연대를 확정하고 현재의 중국 영토 안에서 일어난 모든 문명을 중국의 것으로 끌어들인다. 동북공정은 서북공정.서남공정과 함께 단대공정을 지역별로 나눠 구체화하는 일종의 '실행 프로그램'이다.
가-2.탐원공정探源工程 탐원공정은 '중화문명의 시원을 캐는 계획‘. 신화와 전설을 역사 영역으로 포섭한다. '중국'이라는 실체를 1만 년 전으로 끌어올리기 위해 영국의 스톤헨지보다 건립 연대가 앞선 BC.4,100여 년 전의 세계 최고(最古) 천문대가 발견됐다고 발표했다. 이 유적이 요순 (堯舜)시대의 흔적이라고 주장하며, 2002년 중국 후난(湖南)성의 대형 고분이 1만 년 전 순(舜)임금 무덤으로 추정된다고 밝혔다.
나. 서북공정 신장 위구르족을 대상으로 한 역사 및 지리에 대한 종합연구. 신장 위구르족을 대상으로 한 역사 및 지리에 대한 종합연구. 위구르족(돌궐)은 투르크메니스탄이라는 혈족 국가를 옆에 두고, 멀리 터키까지 이어지는 방대한 민족이다. 중국 영토가 된 지 250년밖에 안 됐기 때문에 위구르족 일부는 동투르키스탄 개국을 목표로 독립운동을 벌이고 있다. 위구르는 지금도 외모.언어.문자.종교가 중국과는 전혀 다르다. 중국 정부는 정치적으로는 적극 한족의 대량 이주를 지원하며 학술적으로도 그들을 중국 역사로 편입시키고 있다.
다. 서남공정 중국은 1986년 서남공정을 통해 티벳을 중국의 역사로 편입시킨다. 중국은 한장동원론(漢藏同源論)을 통해 중국인인 한족과 티베트의 장족은 문화와 언어의 뿌리가 같다고 한다. 7세기 초 국가를 형성한 이후 원(元)과 청(淸)대를 제외하고는 독립적인 국가를 유지해온 티베트의 역사를 말끔히 지우고, 당(唐)대 장안(長安.현재의 西安)까지 세력을 넓히면서 중앙아시아의 패자로 군림했던 8세기의 티베트 역사도 통째로 빠졌다.
라. 북방공정 중국은 1995년 '몽골국통사' 3권을 출판하면서 "몽골의 영토는 중국의 영토"라고 주장했다. 몽골이 현재 외몽고(몽골공화국)와 중국 내몽고(네이멍구)자치구로 분할돼 있어 언제든지 영토분쟁이 일어날 수 있다. 몽골은 청의 멸망을 틈타 1911년 독립을 선언했다. 현재 몽골공화국은 소련의 지원을 받아 1924년에는 몽골인민공화국의 개국을 선언했다. 네이멍구는 일본의 패퇴 이후 중국이 접수했다. 중국은 징기스칸을 중국의 영웅으로 추대하는 작업을 하고 있다.
마. 남방공정 남방공정은 운남을 비롯한 미얀마, 태국, 베트남 접경지역 관련 공정이다. 기원전 208년 중국 역사에 처음 등장하는 남비엣(南越)의 수도는 지금의 광저우(廣州)인 피언응우다. 베트남은 남비엣이 자주독립 국가였다고 주장하는 반면, 중국은 남방지역에 할거한 지방정권이었다고 기술하고 있다. 베트남이 나중에라도 광둥(廣東), 광시(廣西)에 대한 영유권을 주장할 가능성에 대비한 역사적 명분 쌓기의 일환이다.
바. 해양변방공정 대만, 해남도의 역사에 대한 공정으로 멀리 일본의 오키나와, 필리핀 등과도 연결된다.
서북공정 중국의 공정들 동북공정 북방공정 서남공정 단대공정 탐원공정 남방공정 해양변강공정 중국 사회과학원 산하 - 변강사지연구중심 북방공정 서남공정 단대공정 탐원공정 남방공정 해양변강공정
2-2. 동북공정의 의도 및 배경 (56개의 소수민족/ 영토/ 지하자원 + 중화민족) (간도문제, 중.조 변계의정서체결) ① 연변 자치족 자치구에 대한 불안감 해소와 대처 ② 자국 내 소수 민족 안정문제와 국가적 통합 (56개의 소수민족/ 영토/ 지하자원 + 중화민족) ③ 북한정권 붕괴 후 한반도에 대한 영향력 확보 (간도문제, 중.조 변계의정서체결) ④ 동북지역의 개발 토대 마련 ⑤ 동북아 패권국가로 부상하기 위한 교두보 (新帝國主義)
중국의 소수민족
한국과 중국의 역사학자 토론중 중국측 역사학자: “광개토왕은 후연(後燕)으로부터 396년에 '평주목ㆍ요동ㆍ대방 2국왕(平州牧遼東帶方二國王)'에 봉해졌다.” 그러므로 광개토대왕은 중국의 지방관이다. 우리측 역사학자: 중국의 다른 왕들의 책봉명에 대하여 열거하면서 “이것은 일종의 관례이다. 그렇다면 중국의 모든 왕은 지방관이냐?” 어느 老 중국학자: "고구려가 중국임은 신념이다"
2-3. 동북공정의 현황 1980~1995 1995~2001 2002~2003 2004년이후 통일적 다민족 국가론의 확립→ 고구려 연구 다량 국가 정책에 의한 고구려사 본격연구(1차완성) → 중국 사회 과학원 중점 과제 연구 결과로 ‘고대 중국 고구려 역사 총론’발행 동북공정의 실시(2차완성기) 고구려 유적을 정비하여 세계문화유산에 등록 추진, 오녀산성 진열관과 집안박물관 완성 3차왜곡시작 →중국외교부홈페이지, 사전, 교과서, 박물관에 ‘고구려는 중국의 지방정권’ 현재, 한중간의 구두합의는 지켜지지 않고 동북공정은 계속되는 상태 1 3 2 4
2002년 2월 ~ 2007년 2월 한화 3조원 예산으로 연구 추진 고구려사 연구 과제 15개/ 간도 연구과제 12개 완성 2007년 이후~: ‘구두양해’ - 양국은 고구려사 문제의 정치화 방지 위해 노력 사회과학원 추진 지방대학에 분산 (연변사범대학, 길림사범대학, 동북사범대학) 백두산을 10대 명산으로 지정 학문 연구단계 자국민 보급화 단계 (고구려역사지식문답, 고구려역사지식)
또 하나의 공정 “백두산 공정” 2006년 9월 6일 백두산에서 동계아시안게임 성화 채화 2018년 백두산에서 동계 올림픽 추진
3. 고구려사 왜곡의 핵심 구체적인 왜곡사례와 한국의 반박 (1) 중국 측 왜곡 쟁점 한국 측 반박 한국사이다. 중국 측 왜곡 쟁점 한국 측 반박 만주에서 시작된 고조선, 부여, 고구려는 중국사이다. <상서대전> 기자조선 – 위만조선 – 한사군 기자 조선설 한국사이다. 고조선 = 단군조선 + 위만조선 삼국유사에 기록 만리장성의 영역은 대동강까지이다. 만리장성영역 만리장성의 영역은 요하를 넘지 못한다. <사기> 고구려의 주몽은 중국 고이(高夷)의 후예이다. (전욱 고양씨) 고구려 종족 고조선, 부여와 같은 예맥족이다.
구체적인 왜곡사례와 한국의 반박 (2) 중국 측 왜곡 쟁점 한국 측 반박 고구려는 중국과 조공,책봉관계를 맺은 중국 지방정권이다. 조공의 성격 당시 외교의 한 형태이자, 무역방식이다. 변강의 소수민족 세력을 통제하기 위한 중국 내부의 통일전쟁이다. 수.당 전쟁 고구려와 수․당 간 전개된 국제전이다. 고구려와 고려는 별개의 국가 이다. 고구려와 연계성 고려는 고구려를 계승한 국가 이다. <국호, 북진정책, 서희>
1. 고조선, 부여, 고구려, 발해는 중국 역사이다.
고구려를 중국 서진시대(265~317년)의 영역으로 표시한 중국 검인정 역사부도.
미국 미네소타 주립대학과 브루클린대학 등 유명대학 인터넷 사이트에 소개된 세계지도에 중국 청(淸)대에서 일제 강점기까지 한반도를 중국 영토로 왜곡해 소개하고 있다. 2004.11 .9 (서울=연합뉴스)
삼국유사-일연 "위서에 말하기를 '2000년 전에 단군 왕검이라는 이가 있어 아사달 산에 도읍을 세우고 개국을 하니 이름이 조선이요, 중국의 요와 같은 시대이다'. 고조선=단군조선-위만조선
고조선의 영역
2. 만리장성의 영역은 대동강이다.
간도와 동해를 조선 영해로 표시한 영국지도(1940)
유럽에서 출판한 '보곤디(R. de Vaugondy·1750년) 지도 - 중국 청나라가 1719년 만든 '황여전람도(皇與全覽圖)'의 동판을 이용해. 당시 조선과 청나라의 국경이 압록강과 두만강이 아님을 잘 보여주고 있다. 연세대학교 동서문제연구김우준 교수 제공.
나는 예맥족 해모수의 아들이 아니라 고양씨의 후손이란 말이지. 주나라 역사책인 일주서에 나오는 고이가 고구려의 조상이고, 고구려는 신하국가로서 서주에 조공도 바쳤단다. 고이는 바로 중국전설에 나오는 고양씨의 후손이지. 3. 고구려왕조는 중국 고양씨의 후예 나는 예맥족 해모수의 아들이 아니라 고양씨의 후손이란 말이지.
이론의 논리적 모순 중국주장 : 고구려 왕의 성이 '고'씨인데, 이것은 삼황오제의 후예가 고씨로서 왕조개창있으므로 고구려의 왕족은 중국민족이다. 또한 한 4군내의 현도군 내에서 고구려가 건국되었으므로 중국의 역사다. (일주서근거] 반박 : '일주서'라는 책은 청나라의 위서로 판명났으며, 고구려의 동이=예맥=맥족이라고 중국의 고대역사서인 삼국지위지 동이전 등지에도 기록되어 있으나 이것을 무시하고 일주서만 따르고 있다. 고구려는 고조선,부여와 같은 예맥족
4. 고구려는 중국에 조공을 바친 중국의 지방 정권이다. 중국 황제는 그 대가로 고구려를 중원 왕조의 일부로 책봉 해주 었다. 고구 려의 왕들은 중국황제에게 조공을 바쳤다. 고구려는 스스로 중국의 지방 정권 으로 자처하였다. 조공을 바친 고구려는 중국 역사의 일부일 수 밖에 없다.
조공책봉문제 중국주장: 고구려의 여러 국왕들은 중원 왕조에 조공을 바치고 책봉을 바쳐왔고, 현도군왕 등으로 중국 지명을 본따 칭하기도 하였다. 따라서 고구려는 중국왕의 임명을 받은 중국의 지방정권이다. 반박: 고대의 조공책봉은 무역과 외교 형식일 뿐. 베트남과 가야, 신라, 일본, 백제까지 모두중국의 역사가 되어야 한다.
결코 침략이 아니며 중국 고유 영토를 회복해 중국을 통일하려 했다. 5. 수 ·당 전쟁은 내전이다. 을지문덕도 중국의 장군이지 ㅎㅎ 결코 침략이 아니며 중국 고유 영토를 회복해 중국을 통일하려 했다. 중원 통일정권이 변강 소수민족을 통제하던 과정이다.
중국의 장수이지롱… 연개소문도
6.고려와 고구려는 전혀 무관하다. 고구려가 멸망한 후 300년 가까이 지나서야 고려가 건국된다. 따라서 중국사인 고구려는 한국사인 고려와는 아무런 관계가 없다. 고려는 한사군 낙랑의 지배자, 왕씨가 세운 나라로 낙랑의 후예이다. 너희들이 세운 나라는 아무런 상관이 없단 말이지^^
한국에서 주몽은 물론 연개소문까지 드라마로 만들 정도로 존경할까? 중국 역사드라마를 한국에서 만들어 주니 참 기특한지고~ 고구려가 망하고 나서 지도층 유민들은 중국으로 융화하였다. 고구려 멸망 후 총 69만호 중에 2만~3만호의 유민들이 중국으로 들어갔다. 이들 중 다수가 왕족이나 귀족이었으므로 고구려는 중국과 완전하게 합쳐진다. 중국의 지방정권, 고구려가 얼마나 유명하면 한국에서 주몽은 물론 연개소문까지 드라마로 만들 정도로 존경할까? 중국 역사드라마를 한국에서 만들어 주니 참 기특한지고~
고려의 고구려 계승문제 반박: 왕건의 선대는 백두산에서 내려왔고, 고려인 스스로가 고구려 계승자라는 의식을 갖고 있다. 고구려의 수도 평양 중시, 북진정책 추진. 송에서 고려에 사신으로 왔던 서긍의 고려도경에 보면 고려가 건국을 해서 받드는 민족은 고구려이며, 고려는 고구려, 발해를 계승한 나라라고 설명하고 있다. 고구려와 고려의 300년, 낙랑과 고려의 차이는 수배
중국주장: 고구려멸망 후 지배층의 일부는 신라, 일부는 발해, 일부는 돌궐 가기도 했지만, 다수는 중국으로 끌려갔다. 고구려 유민 문제의 향방 중국주장: 고구려멸망 후 지배층의 일부는 신라, 일부는 발해, 일부는 돌궐 가기도 했지만, 다수는 중국으로 끌려갔다. 대부분은 그 지역인 만주에 살면서 중국인이 되었을 것이다. 만주에 남은 사람을 제외하고 중국이 그때 강제로 끌고간 사람이 10만명 추산된다. 고구려 유민의 대부분이 중국에서 뿌렸다. 반박: 과연 누가 고구려 계승의식을 가지고 생활하는가에 대하여 생각해봐야 한다. 그러나 이 부분에 대해서는 우리나라가 더 정교하게 연구해야 한다.
감정적 차원의 대응은 NO
① 전문 연구기관 설치 : <고구려 연구센타> ② 남북공조: 가칭 < 한민족 역사연구소> 4. 우리의 대응방안 (1) 1. 정부차원의 대응 ① 전문 연구기관 설치 : <고구려 연구센타> ② 남북공조: 가칭 < 한민족 역사연구소> ③ ‘간도협약’ 무효소송 제기 < 국제협약 유효기간 100년 >
① ‘한중일 역사교과서’ 편찬 ② 여러 학문과의 연계필요 ③ 어문 연구자 양성 ④ 간도에 대한 종합적 연구 조사 우리의 대응방안 (2) 2. 학계차원의 대응 ① ‘한중일 역사교과서’ 편찬 ② 여러 학문과의 연계필요 ③ 어문 연구자 양성 ④ 간도에 대한 종합적 연구 조사 ⑤ 북한 학계와의 연계 ⑥ 국제적 연대 공동 대응 ⑦ 발해사 연구활동 강화
3. 시민단체의 대응 ① ‘우리역사바로알기 시민연대’ : 고구려 지킴이 범국민 100만 서명운동 ② ‘고구려 역사연대’ 우리의 대응방안 (3) 3. 시민단체의 대응 ① ‘우리역사바로알기 시민연대’ : 고구려 지킴이 범국민 100만 서명운동 ② ‘고구려 역사연대’ ③ ‘민족혼 되찾기’ ④ ‘국학운동 시민연합’
우리의 대응 방안(4) 4. 교사 차원의 대응 ① 전문가적 자질 함양 http://cont151.edunet4u.net/WT15097/ ② 역사교사 모임 활성화하기 ③ 동북아지역 역사교사 교류 확대하기 ④ 수학여행으로 활용하기 ⑤ ‘역사바로알기 날’ 제정하기 ⑥ ‘반크’ 활동 지원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