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강. 한국과 러시아
1 한-러 관계 현황 1990년 9월 수교 이후 양국은 10차례 이상 정상 상호방문 및 20차례 이상의 정상회담 등을 통해 정무·경제·문화·영사 등 다양한 분야에서 우호협력 관계를 확대·발전 2010년 수교 20주년을 기념하는 다양한 행사를 통해 양국 간 미래지향적 협력기반 강화 현재 한·러관계는 2008.9월 이명박 대통령 러시아 방문 이래 ‘전략적 협력 동반자 관계’(strategic cooperative partnership)로 규정
2 2차 대전 이후 한-소 관계 1945.2 얄타회담(미·영·소)에서 한반도 분단 결정 이후 소련은 38도선 이북을 점령하고 군정을 김일성을 위원장 중심의 공산주의 통치 실시 1945년 일본의 패색이 짙어지자 소련은 포츠담 선언에 참가,히로시마에 원자폭탄이 투하되자 1945.8.9 대일 선전포고 후 한·소 국경을 넘어와 작전 개시 1945.12 모스크바 3상 회의에서 미·영·중·소 4국 외상은 최고 5년의 신탁통치를 결정하였으나, 남한주민의 반대에 봉착 1946.1 미·소 공동위원회 예비회담 이후 2차에 걸쳐 미·소 공동 위원회를 개최, 통일정부 수립을 논의에서 소련의 집요한 공작으로 결렬되었고, 미국은 한반도 문제를 UN에 제출하여 한국위원단 구성 한국위원단의 활동은 북한의 반대로 좌절 1948.2 UN 총회의 결의에 따라 남한만의 총선거로 대한민국 탄생
2 2차 대전 이후 한-소 관계 소련이 북한을 승인한 이래 남한과는 대화창구를 닫고 있었으며, 제한된 범위 내에서 접촉 한·소간에는 1970년대 이래 점진적으로 교류 증가 1989.12 한·소 양국 영사처 개설 합의 - 1990.2 주모스크바 한국 영사처 개설 - 1990.3 주서울 러시아 영사처 개설 ※ 1989.4.3 주서울 소련 상공회의소 설치 ※ 1989.4.7 주모스크바 한국무역관 설치 ※ 1991.8.7 주한 무역대표부 개설 4. 한·소 수교 1990.9.30 한·소 외무장관 회담시 대사급 외교관계 수립 5. 한·소 정상회담 - 1990.6.4 샌프란시스코 정상회담 ※ 한·소 수교 원칙에 합의
3 양국 정무 관계 양자 정무관계 일반: 안정적 발전, 정상간 교류를 포함, 양국간 고위 인사교류 강화를 통해 양국 관계 심화, 발전 북 핵 문제 관련 양국 협력: 러시아 측은 한반도의 비핵화 및 북 핵 불용원칙을 견지하고 있으며, 북 핵 문제의 6자 회담을 통한 평화적 해결을 지지 지역기구 및 국제기구에서의 양국협력: 동북아, 아·태지역 및 유럽에서 평화와 안보를 확보하고 다자간 협력을 구축하기 위해 협력 남·북·러 3각 협력사업: 뿌찐 대통령 집권(2000년) 이래 러측이 지속적으로 우리측에게 제안해온 사안, ① TKR/TSR 연결사업, ② 러시아 천연가스관의 한반도 통과 사업, ③ 전력 망 연계사업, ④ 북한 산업시설 현대화 사업
4 양국 통상 관계 –교역, 투자 2010년 이후 양국 교역 액, 큰 폭의 증가: ※ 주요 수출품 : 승용차, 자동차부품, 합성수지, 무선전화기, TV 등 ※ 주요 수입품 : 원유, 나프타, 무연탄, 천연가스, 알루미늄괴 등 2. 한국 기업의 대러 투자 사례 - 2005.9 한국 야쿠르트(주) 라면공장(2,000만 달러) - 2006.6 오리온(주) 초코파이 공장(2,000만 달러) - 2006.9 LG전자 모스크바州 공장(1.5억 달러) - 2007.9 롯데백화점(3억 달러) - 2008.9 삼성전자 칼루가州 공장(1.9억 달러) - 2009.10 현대모비스 물류센터(0.5억 달러) - 2010.6 롯데 호텔(3억 달러) - 2010.9 현대자동차 상트페테르부르그 공장(4억 달러) - 2010.9 롯데제과 칼루가州(0.85억 달러) - 2010.10 KT&G 칼루가州 공장(1.27억 달러)
4 양국 통상 관계 –극동 시베리아 ■ 극동시베리아 지역 개발 참여 러시아: 극동시베리아 개발에 전략적 중요성 부여 - 인구 감소, 중국과 접경 등 국가 안보적 중요성 부여 ※ 러시아 정부는 2009.12월「 극동·자바이칼지역 사회경제발전 전략 2025」 승인 - 낙후된 인프라 개발, 소득수준 향상을 위해 동북아 인근국의 투자 필요, 지리적으로 동아시아와 인접, 이 지역과 경제적 유대관계 강화 필요 한국: 극동시베리아 지역이 보유한 풍부한 자원(에너지, 광물, 수산 등) 필요 - 한반도와 접해있어 물류측면에서 유럽 러시아 지역과 연결, 북극항로본격 개발 등에 있어 중요성 고려 - TKR-TSR 연결, PNG 공급 등 남·북·러 3각협력 추진에 있어서 극동시베리아지역의 중요성 고려
5 재외 국민, 영사 관계 ■ 재 러시아 교민 현황 : 6,000여명 직업별 - 유학생 2,000여명 ※ 모스크바 1,400명(대학생 이상 800명), 상트페테르부르크 350명, 극동지역 250명, 기타 지역 200명 - 주재원 500여명(가족 포함 1,500명) - 선교사 등 종교인 200여명(가족 포함 700명) ※ 천주교성당 1개, 개신교 교회 약 70개, 불교 1개 자영업자·기타 500여명(가족 포함시 1,800명) 2. 지역별 - 모스크바 3,500명, 노보시비르스크 200명, 상트페테르부르크 800명 연해주, 하바로프스크, 사할린 등 극동지역 1,000명 ■ 국내 체류 러시아인은 9,550명(2010.8.31 현재)
6 고려 사람 ■ 거주현황 약 200,000명(2006.5월) 중앙관구(모스크바) 15,000명, 남부관구(볼고그라드/로스토프) 71,000명, 북서관구(상트페테르부르크 등) 10,000명, 볼가, 우랄, 시베리아관구(옴스크, 톰스크, 알타이 등) 9,000명, 극동관구(연해주, 하바로프스크, 사할린 등) 90,000명, 기타 10,000명 ※ CIS 지역거주 전체 동포 수는 약 50만 명으로 추산
7 고려 사람 이주, 정착 역사 고려인 동포는 1864년 빈곤과 기아의 탈출구로서 연해주와 아무르 강 지역에 최초 이주 고려인 동포는 1864년 빈곤과 기아의 탈출구로서 연해주와 아무르 강 지역에 최초 이주 1937년 스탈린의 강제이주 정책에 의해 극동에서 생활기반을 박탈 당하고 중앙아시아로 이전 1956년 흐루쇼프 집권 후 강제 이주된 소수민족 지위가 일부 복권, 고려인 동포들도 거주이전이 공식적으로 허용되었으며, 중앙아 지역에 국한되지 않고 러시아 전체에 분포, 정착하기 시작 1993년 러시아 최고회의는 스탈린의 강제이주 정책으로 피해를 입은 고려인, 유태인, 독일인 등 소수민족에 대한 명예회복 결의
7 고려 사람 이주, 정착 역사 구소련 붕괴 이후 수년간 사회, 경제 및 내전 등의 이유로 고려인 동포 수만명 이 중앙아시아에서 대거 러시아와 주변 CIS국가로 이주, 최근에는 우즈베키스탄, 키르기스 등 상대적으로 경제발전이 낙후된 지역의 고려인들이 비교적 경제사정이 양호하고 농업여건이 유리한 북 카프카스와 연해주 등 극동 지역 및 모스크바 등지로 이주하고 있는 추세 러시아 고려인사회는 5~7세대에 걸쳐 러시아에 체류하면서‘ 장 류보미르’前연방하원의원‘, 남 류드밀라’공훈배우(2007.4월 작고) 등과 같이 러시아 정치·경제·문화계에 폭넓게 진출 고려인들은 모국의 발전상에 대해 자긍심, 한·러 수교 이전까지 모국과의 단절로 인해 우리 고유의 언어, 문화, 전통, 관습을 접촉할 기회가없었으나 최근에는 모국에 대한 관심도(언어, 문화 등 포함)가 높아지는 추세, 한류도 한 몫 대표적인 고려인 기업가로는 김 이고르(前 MDM 은행장, 러시아내 97위 부호, 2008년 기준), 태 스타니슬라브(Laser Craft 사장) 등
8 우리 정부의 지원 현황 고려인 동포 명예회복(1993년 러 의회) 언어와 전통, 문화와 관습 등 민족정체성 유지·복원: 로스토프, 블라디보스톡, 하바로프스크, 유즈노-사할린스크에 교육원 설치 및 180여 개 한글학교 운영 고려인 이주동포의 재정착 및 재해피해 지원: 중앙아 지역으로부터 러시아로 이주해온 동포 재정착 지원 차세대동포의 민족동질성 유지·복원: 청소년 모국방문사업, 유학알선 등을 통한 동질성 회복 유도 한인 러시아 이주 140주년(2004년) 기념행사 지원 고려인 정주 70주년(2007년) 기념행사 지원
9 한·러 간 자매·우호교류 체결 현황 교류도시명 자치단체명 결연 일자 비고 블라디보스토크 부산 1992 자매결연 상트 뻬쩨르부르크 2008 톰스크 울산 2003 우수리스크 창원(마산) 1999 하바로프스크 주 경남 1996 야쿠츠크 창원 우호교류 옴스크 진주 20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