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후기 지적 패러다임의 변동 실학,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 조선 성리학의 성장과 호락논쟁 청대 학술의 유입과 서적의 유통 지식과 학풍의 변화 사례: 홍대용의 학문과 지적 전환(?)
실학에 대한 이해史 일제강점기 실학 연구의 출발 1. 실학,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 식민사학의 아사미 린타로(淺見倫太郞), 『朝鮮法制史稿』(1922) 주자학 = 반민족적, 반민중적, 비실용적 실학자로서 정약용에 주목; 진흙 속에 묻힌 진주, 조선의 행복 30년대 조선학운동 차원의 실학; 정인보, 문일평, 안재홍 등 실학; 노론 학풍과 다른 민족적, 민중적 학풍 1934년 다산 서거 99주년; 정약용을 루소에 비유, 閭田論을 국가사회민주주의적 토지제도로 해석 (안재홍) 과학적, 실용적 실학서로서 여유당전서, 담헌서 등 활자로 간행 (정인보) 우리 역사 속의 위대한 과학적 성취에 대한 주목 과학만이 살길이다; 과학데이 (다윈의 기일, 4.21, 1935년~~)
“세계에 자랑할 보배 열가지” 동아일보 1935년 1월 1일 “세계에 자랑할 보배 열가지” 동아일보 1935년 1월 1일 팔만대장경 고려활자 첨성대 측우기 석굴암 고려청자 금강산 금속활자 (조선 태종) 거북선 飛車
실학에 대한 이해史 해방 후 실학 연구의 계승 1. 실학,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 50-60년대: 주자학 對 실학 (근대사상의 맹아) 천관우, 홍이섭, 윤사순, 이을호, 한우근 70년대 이후 이우성: 경세치용(성호학파), 이용후생(북학파), 실사구시(김정희) 김용섭-김준석: (남인 강조) 국가재조론: 노론계의 보수적 개혁론(주자도통) 對 남인계의 진보적 변법개혁론(실학) 봉건사회해체론: 아래로부터의 민중적 혁명론 對 위로부터의 실학적 개혁론 지두환: (노론 강조) 근대지향적, 진정한 실학은 北學 주자성리학 → 조선성리학 → 북학 최근 일부의 이해 (구만옥, 김호 등) 道理와 物理, 규범과 법칙을 분리하는 탈중세적 사상 – 근대과학과 유사한 과학적 사고의 출현 50년대 마루야마 마사오(丸山眞男)의 후쿠자와 유키치(福澤諭吉) 해석의 틀
실학 연구에 대한 반성 비판적 질문들: 한영우의 대안 in [다시, 실학이란 무엇인가](2007) 1. 실학,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 실학 연구에 대한 반성 비판적 질문들: 역사적 실체인가? 탈주자학적 근대사상인가? 진보적 변혁사상인가? 한영우의 대안 in [다시, 실학이란 무엇인가](2007) 이분법적 역사 이해의 한계에 대한 인식: 주자학/탈주자학, 봉건제/자본제, 보수/진보, 중세/근대, 비과학/과학 등 조선후기 지향한 사회: ‘유교적 이상주의에 입각한 大同사회의 구현’ 『예기』萬運편에 나타나는 만민공유, 만민평등의 이상사회 – 정조대 꿈꾸었던 사회? 서구역사학의 이론으로 설명할 수 없는 역사이론적 틀의 부재 ‘조선후기 = 근세적 유교사회’론 제시 종래 근세=조선시대론과 다름: 서구적 근세(Early Modern)를 지양했다고? 박지원의 ‘法古創新’, 대한제국의 ‘舊本新參’의 이념?
1. 실학,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 실학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 지적 혁명(intellectual revolution)의 차원에서 소위 ‘실학’을 조선후기에 일어난 지식의 대(?)변동으로 접근하면? 패러다임의 변화(쿤) 또는 담론의 변화(푸코) 차원에서 성공과 실패의 목적론적, 발전사관적 접근을 지양하고 내적인 변화와 외적인 변화의 종합적 이해가 필요
호락논쟁이란? 2. 조선 성리학의 성장과 호락논쟁 논쟁의 전개 논쟁의 핵심은? 1709년 湖西학계 내에서 권상하의 문인 이간과 한원진 사이의 人性과 物性의 同異 논쟁으로 시발. 18세기 전-중반기 논쟁의 핵심은? 호서학계: 人物性異 聖凡心異 / 낙하학계: 人物性同 聖凡心同 왜 견해가 달라졌나? 物에 대한 이해 차이; 객관세계로 보느냐(낙), 금수와 동일한 의미로 보느냐(호) 호론: 현실의 계층질서를 더욱 공고히 해서 위기를 타개하려 낙론을 三無分(人獸,儒釋,華夷)이라 공격 (한원진) 낙론: 도덕적 본성을 지닌 개개사물을 통합하면서 봉건질서의 위기를 극복하려 하층민을 교화해야하고, 교화시키려면 도덕성을 갖춘 존재로 인정해야 가능하다(박윤원, 임성주) 견해 차이에 따른 결론의 차이 낙론: 공부방법을 쉽게, 보다 많은 사람이 도덕적 경지에 도달하도록 추구 호론: 성-범을 구분하고, 수양의 주체가 더 많은 노력으로 완벽한 수양을 추구
호락논쟁의 지성사적 의의 17세기 예송논쟁 - 말세 이후 조선의 새로운 질서, 정체성 찾기 2. 조선 성리학의 성장과 호락논쟁 호락논쟁의 지성사적 의의 17세기 예송논쟁 - 말세 이후 조선의 새로운 질서, 정체성 찾기 18세기 전반 호락논쟁은 조선의 주체로서 사대부의 정체성 찾기 낙론: 사대부 자신들의 본체 체험에 대한 강한 자부심 태극(리)은 초월적 존재가 아니라 마음의 현실에서 체험하는 대상일 뿐 마음에 대한 깊은 관심 호론: 현실세계를 규정하는 원리(즉 규범)에 대한 관심에 집중 태극(리)은 초월적으로 존재하는 것. 체험의 대상이 아니라, 철저한 객관적 인식의 축적으로 도달하는 것 현실적 욕망의 세계를 객관 규범으로 제어하고 질서화하려는 것. 왕권마저도~~ 예송에서 호락 논쟁으로의 학술적 업그레이드 영조대 초반까지 호론 우위. 탕평과의 대립 등으로 점점 열세화 정조대에는 낙론이 절대적 우위. 이후 경화학계 주도
18세기 중엽 이후 사상계의 대변화 18세기 전반의 호락논쟁은 심각-치열한 사상 논쟁의 정점 2. 조선 성리학의 성장과 호락논쟁 18세기 중엽 이후 사상계의 대변화 18세기 전반의 호락논쟁은 심각-치열한 사상 논쟁의 정점 18세기 중엽 이후의 지성계의 지각 변동 경화사족의 문화코드를 보라 외적 배경 청대 학술과 서적의 유입 국내서적의 유통과 출판 문화의 성장 학풍의 변화 세가지 고증학적 학문연구 패러다임: → 漢學-宋學 논쟁을 낳기도 학문적 관심의 변화: 경전 공부/과거시험 공부와 거리를 둔 ‘學’의 추구, 소설, 小品관심 博學의 추구: 임원경제지를 보라
중국에서의 지식의 대변동 송학-정주학이 쇠퇴하고, 고증학이 성장 양자강 유역 강남 학술공동체의 성장이 큰 배경 3. 청대 학술의 유입과 서적의 유통 중국에서의 지식의 대변동 송학-정주학이 쇠퇴하고, 고증학이 성장 Philosophy에서 Philology로의 변화 수기치인의 학을 지양, 실증적-엄밀한 지식, 지식 그 자체를 위한 지식을 지향 17세기의 고염무, 염약거, 18/19세기의 대진, 완원, 옹강방 등 17세기 경세학 중심, 18 중엽 이후 漢學으로서 實事求是적 지식의 창출을 지향하는 학풍이 주류 양자강 유역 강남 학술공동체의 성장이 큰 배경 강남 학술공동체란? Kuhn의 Scientific Community. 패러다임(또는 에피스테메)를 공유한 일련의 학자 네트웍 대규모 학술 사업의 주체들: 崇禎曆書 사업(1643) – 서양 과학의 전래 고금도서집성(1726) 1만권, 사고전서(1772-1787) 7만 9천권 (규장각도서 14만 8천권) 19세기 徐乾學 형제 주도의 편찬사업: 明史, 大淸會典, 大淸一統志, 通志堂經解 등
서적을 통한 청대 학술의 유입 16말-17초부터 사신행을 통해 대규모 서적의 유입 서적 수입의 여건 3. 청대 학술의 유입과 서적의 유통 서적을 통한 청대 학술의 유입 16말-17초부터 사신행을 통해 대규모 서적의 유입 허균; 1614, 15년 연행시 4천여권 이의현; 1720년, 1416권. [圖書編], [三才圖會] 등 서호수; 1776년 [사고전서] 구입 포기하고, [고금도서집성] 5200권 서적 유입의 가장 큰 주체는 정부, 소장처는 규장각 사신 일행에 참여한 사적인 구입 열풍 경화세족의 서적 구입과 소장 욕구; 홍한주의 [지수염필] 왈; 19세기 장서가 심상규 4만권, 조병귀, 윤치정 3-4만권, 이하곤 후손가, 서유구 서재 8천여권 유만주의 [흠영]; 내용의 70-80-%가 독서 이야기 – 書儈를 통한 중국 서적 열풍 서적 수입의 여건 청대 학술의 융성, 서적 간행량의 양적인 팽창 서적 중개인의 존재; 書班 서적 시장의 융성; 건륭시기(1735-1796) 琉璃廠
국내의 서적 유통: 사적인 공간 譯官과 書儈가 유통의 주체 書肆(書店) 출현 3. 청대 학술의 유입과 서적의 유통 국내의 서적 유통: 사적인 공간 譯官과 書儈가 유통의 주체 역관이 수입하고, 서쾌가 유통시키고 역관: 영리적 목적, 개인적인 지적 욕구 책거간꾼; 서쾌(북학의), 冊儈(미암일기); 16세기부터 출현, 18세기 중엽에 큰 역할 가장 큰 손 曺神仙 (19세기 초); 서지학적인 재능 영조 47년 明紀輯略 사건 書肆(書店) 출현 15세기까지 校書館에서 간행과 유통 독점 16세기 전반 중종대 書肆의 필요성 논의, 출현은 18세기 중엽 이후인듯 坊刻本 서적의 간행은 사적인 서점 출현의 계기 1576년 [攷事撮要] 마지막 페이지 기록: 1576년 7월 “水標橋下北邊二第里門 河漢水家 刻板 買者尋來” 抄書 유행: 18세기 후반 전문적 직업꾼화. 이덕무
고증학적 학문 연구의 패러다임 서적의 간행 유통 소장이 hardware – 고증학은 software 4. 지식과 학풍의 변화 고증학적 학문 연구의 패러다임 서적의 간행 유통 소장이 hardware – 고증학은 software 청대 학술 고증학의 수용은 시대의 거대한 자연적 흐름 북벌론, 대명의리론의 허상화 → 청 문명과 학술은 중화라는 인식 지배적 → 북학 시대적 당위 거대한 중국 서적 – 지적 호기심 자극, 고증학 수용 ‘扶正學 闢邪學’의 정조 – 고증학의 의도와 통함 경전에 담긴 오염된 것들을 제거해 본래의 순정 유학을 복원한다 한송절충론: 주자학의 의리지학은 지키되, 고증학의 새로운 방법론으로서 고증지학은 배우자
고증학적 학문 연구의 패러다임 고증학은 결국 經學을 변화시킨다 4. 지식과 학풍의 변화 경전 이본의 수집과 분석 - 경전의 원본 찾기와 오염 가려내기 주자의 해석도 오염? 나아가 경문까지도 문제점 지적 정약용의 논어고금주, 신작 – 송대 이후 주석은 모두 오염 결국 경전의 원문을 해체 - 삼대의 참다운 원본 복원 – 종래 알고 있던 경전 내용과 다른 새로운 원전 출현 – 이것이 지식의 혁명 시발 정약용의 경학 – 삼대의 고제를 반영하는 참된 원본, 즉 경전을 복원하려는 작업까지만~ 최한기의 기학 – 경전을 해체, 새로운 지식의 체계를 구축하려
독서 취향과 저술의 변화 저술 양상의 변화 닥치고 독서! 취향 4. 지식과 학풍의 변화 경전 중심 독서 탈피, 수많은 다양한 분야의 서적을 탐독 홍석주의 권장도서목록 (1810); 424종 1만 6000권, [홍씨독서록] 금기시하던 주제의 서적들 독서 특히 남녀 애정과 기녀를 다룬 소설들; 西廂記, 금병매 등 小品류; 사소한 것들(名物)을 다룬 전문 서적들 총서류, 類書류 서적들 넘쳐남 저술 양상의 변화 箚記體; 독서 노트식 글쓰기. 경전 주해에서 벗어난 전근대 비평적 글쓰기의 전형 과거의 차기체가 주로 경전 노트라면, 문헌학, 고증학, 박물학 등 다양한 주제의 차기체 기록. 저자 자신의 주관적 사적인 견해 강하게 표출 홍한주의 지수염필, 홍석주의 학강산필, 홍길주의 수여방칠, 수여난필 숙수념 등 차기체 글 모아 類書로 간행 - 이익의 [성호사설], 이규경의 [오주연문장전산고]
독서 취향과 저술의 변화 李玉의 잡록을 보라! 癡(매니아)와 癖(취미)에 빠진 조선 지식인 4. 지식과 학풍의 변화 문체반정의 희생양 煙經(1810); 4권 분량의 담배 예찬. 호기심으로 쓴 책치고는 거대한 분량 道文一致의 글쓰기를 비웃듯 대부분 무료함을 달래기 위한, 호기심에서 비롯된 글들 癡(매니아)와 癖(취미)에 빠진 조선 지식인 본래 병적인 상태의 부정적 의미 – 18세기에 미덕 박제가 왈: ‘사람에게 癖이 없으면 쓸모 없는 사람이다’ 한가지 정도의 癡는 미덕: 벼루에 미친 정철조; 호가 石癡 지식에 대한 새로운 태도 동기의 무목적성과 순수성을 옹호하는 지식관 성리학의 거대담론에서 벗어난 다채로운 세계에 대한 관심과 시야의 확대 잡다한 지식이 가치있는 지식으로 전환. ‘經으로 정리된 잡 지식’ 이옥의 연경, 이서구의 녹앵무경(앵무새), 유득공의 발합경(비둘기) 등
博學의 추구: 叢書와 類書의 편찬 17세기 이수광의 [芝峰類說] (1614) 18세기 후반 이후 총서 편찬 활발 4. 지식과 학풍의 변화 博學의 추구: 叢書와 類書의 편찬 17세기 이수광의 [芝峰類說] (1614) 이수광: 서울 학인의 학풍을 드러낸 학자로 주목 (한영우, 고영진) ‘침류대학사’의 활동 명대 류서, 총서의 영향을 받은 조선 최초의 류서 이후의 류서들: 18c 이익의 [성호사설], 19c 이규경의 [오주연문장전산고] 18세기 후반 이후 총서 편찬 활발 명대 이후 고증학의 발달로 유행; [한위총서], [지부족재총서] 등 연암그룹에서 총서편찬 시도 박지원: [三韓叢書] 1784년 편찬 시작, 미완성 서유구 주도, 연암그룹 대거 참여한 [小華叢書] 편찬, 유만주의 [해내총서] ‘우리’ 지식의 종합 우리 것도 가치 있다. 중국 지식과 서적에 대한 선호가 우리 것으로도 돌려진 것 海東, 東國이라는 접두 명칭의 저작들 넘쳐남 대동수경, 동국비어고, 아방강역고 / 해동역사 / 대동여지도 등 / 東曆까지도~~
‘지식의 혁명’인가? 과연 고증학적 패러다임이 조선 지식인이 공유하던 담론인가? 4. 지식과 학풍의 변화 ‘지식의 혁명’인가? 과연 고증학적 패러다임이 조선 지식인이 공유하던 담론인가? 청의 강남 학술공동체 같은? 경화사족을? 북학파? 연암일파를? 많이 부족할 것! 그러나 지식인의 모습(존재 양상, 성격, 지향성)은 정말 달라졌다 사유-지식 창출의 주체로서 자신에 대한 이해, 자의식의 형성은 주목할만 계몽주의 시대 주체로서의 인간 자아에 대한 인식과 비교해 보라! 내가 누구인가? 박지원의 <答蒼厓> “화담이 길에서 못 돌아가 울고 있는 사람을 만남. 집 나올때 장님, 사이에 눈뜨고 집을 못 찾음. 화당 왈: 다시 눈을 감아라!” 이용휴의 <還我箴> “내가 처음 태어났을때 순수했는데, 점점 지식을 습득하면서 순수함을 잃었다. 사람들은 내가 경전을 인용해 그럴싸하게 꾸며대면 칭찬한다. 그러면서 ‘참나’를 잃었다. 어느 순간 제 정신이 들어 본래의 나로 돌아왔다” 자찬묘지명의 유행: 정약용의 <자찬묘지명> → 호락논쟁기 사대부의 정체성 찾기의 업그레이드!
‘지식의 혁명’인가? 자기를 알아주는 벗에 대한 우정의 추구로 4. 지식과 학풍의 변화 북학파 학인들의 우정 국경을 넘은 우정 박지원의 교우론 <繪聲園集跋> “옛날에 벗을 말하는 자가 벗을 第二吾라 했다. 羽에서 朋이 나오고, 手와 又로 友를 만들었다. 새에 두 날개가 있고, 사람에 양손이 있는 것과 같다” 마테오 리치의 <교우론>(1595): “吾友非他 卽我之半 乃第二我也 故當視友如己焉 友之與我 雖有二身 二身之內 其心一而已” <교우론>에 대한 馮應京의 서문 “東海西海 此心此理同” 국경을 넘은 우정 홍대용(1766, 36)의 육비(49), 엄성(35), 반정균(25)과의 필생의 우정 홍대용의 <간정동회우록>은 후배 학인들의 필독서이자 연행의 모범 홍량호-기윤, 김정희 - 완원, 옹방강
‘지식의 혁명’인가? 사대부의 전형에서 벗어난 새로운 지식인의 출현 4. 지식과 학풍의 변화 경화사족은 전형적인 사대부의 모습에서 탈피 유량지식인의 등장 몰락한 사대부, 여항인, 민중 지식인 등 지식 자체를 생계의 수단으로 여항인 자제들의 전문적 교육자: 엄계홍, 천수경, 안광수 등 학교 시설 설치할 정도, 300여명의 대규모 학생 모집 지방에는 4-5개 마을마다 하나의 書齋 訓長은 더 좋은 조건, 學錢을 찾아 떠돔 科場은 지식을 사고파는 최대의 거래처 정조대 문과 응시자 15만명 巨孼과 寫手라는 대리 시험인 : 이옥의 <유광억전> 풍수가, 過客은? 19세기 농민 반란 지도자들 전문가로 나선 지식인들: 유송년(歌客), 崔北(화가) 등
홍대용: 부유한 특권 세력으로 행복하게 살다 가다 5. 홍대용의 학문과 지적 전환 홍대용: 부유한 특권 세력으로 행복하게 살다 가다 자 德保, 호 湛軒, 弘之, 병약하고, 기질이 급했다! 본관 南陽, 父 洪櫟, 母 청풍 김씨의 첫째 아들 6대조 홍진도, 인조반정의 정사공신 3등(남양군 봉)으로 노론계 명문 집안 1731년(영조 7년) 충청도 천원군 수신면 장산리 수촌마을 출생 1742년(12세) 김원행의 석실서원 입학 1759년(26세) 아버지 나주목사, 나주에서 나경적 만나 혼천의, 자명종 제작 시작 1762년(32세) 혼천의 2대, 자명종 완성, 농수각 짓고 설치 1765년(35세) 서장관 홍억(숙부)의 자제군관으로 겨울-봄 북경 여행 남천주당 방문 선교사들과 필담 유리창에서 항주의 선비들과 평생의 절친 – [간정동회우록] [을병연행록] 한글로 집필 1770년(40세) 수촌마을에서 서울로 이사, 북학파 학인들과 교유 1773년(43세) [의산문답], [주해수용] 집필 1774년(44세) 세자익위사의 侍直(정8품) – [계방일기] 이후 3년의 내직(+사헌부 감찰), 6년의 수령직(태인현감, 영천군수) 1783년(53세, 정조 7년) 53세로 고향에서 卒, 묻힘
노론 낙론계의 일원 조선후기 지식 창조의 주도그룹 김원행의 석실서원; 12세 입학 5. 홍대용의 학문과 지적 전환 남양주군 석실리 노론 洛論계의 중심 무대; ‘人物性同論’/ 湖論 - 異論 과거보다 순수 학문을 지향; [석실서원 학규] 長幼나 귀천을 막론하고 학자가 되고자 하는 뜻을 가진 이면 누구나 입학시킨다! 과거 공부 하고자 하는 이는 다른 서원에 가라! 언어는 신중히 하고, 의관은 언제나 단정하게 하며, 괴력난신을 말하지 말라!
행복했던 북학파 학인들과의 교유 5. 홍대용의 학문과 지적 전환 25세에 석실서원 방문한 박지원과 첫 만남 40세 이후 서울 생활은 인생의 전성기; 남산 중턱에 집 풍요롭고 아름다운 서울, 강남이 부럽지 않다. [성시전도] 백탑 부근 북학파 일원과의 행복했던 교유 박지원, 정철조, 이덕무, 박제가, 유득공, 이서구, 김용겸 등 술과 노래, 그리고 밤샘 토론; 특히 1772-3년(42-3세) 사이
북경 여행의 경험; (1765.11.2 – 1766.5.2) 왕복 4개월, 체류 2개월 아무나 갈 수 없던 행운-특권 5. 홍대용의 학문과 지적 전환 북경 여행의 경험; (1765.11.2 – 1766.5.2) 왕복 4개월, 체류 2개월 아무나 갈 수 없던 행운-특권 자제군관의 제도; 숙부 홍억이 서장관 노론 낙론계 명문 집안이기에 가능 꿈과 돈을 찾아서! 연행사절단(3-500여명)에게는 돈을! 젊은 사대부 학인에게는 평생의 꿈; 성지 순례? 학문의 메카!
북경 여행의 경험; (1765.12.27 – 1766.3.1) 남천주당 방문 5. 홍대용의 학문과 지적 전환 신기한 기물들; 천문기구(망원경 등), 파이프 오르간 예수회 선교사와의 필담; 흠천감 정 할러슈타인(劉松齡), 부정 고가이슬
북경 고관상대 남회인(Verbiest)의 천문기구들
북경 여행의 경험; (1765.12.27 – 1766.3.1) 강남 항주의 선비들과의 평생의 交友 5. 홍대용의 학문과 지적 전환 북경 여행의 경험; (1765.12.27 – 1766.3.1) 강남 항주의 선비들과의 평생의 交友 북경의 고시촌, 서점가; 琉璃廠 항주에서 올라온 세 선비; 엄성, 반정균, 육비 [간정동회우록] 3권 집필; 국경을 초월한 天涯知己,‘交友’의 모범, 同學 인식 이덕무; “눈물이 줄줄 흐르는”감동 박제가; “문득문득 미친듯하여 밥 먹던 숫가락질을 잊고 세수하다가도 씻기를 잊을” 정도 줄줄이 연행길 오름
사대부 과학자 홍대용 나경적과의 만남(1759년 26세) 혼천의 2대와 자명종 제작 [농수각의기지] 집필, [주해수용] 所收 5. 홍대용의 학문과 지적 전환 사대부 과학자 홍대용 나경적과의 만남(1759년 26세) 나주목사로 근무하던 아버지 물염정(화순적벽)에서 동복 출신의 나경적(70세), 안처인을 만나, 의기투합 혼천의 2대와 자명종 제작 1762년에 2대(대-소)의 혼천의와, 자명종 완성 집 연못에 籠水閣 [농수각의기지] 집필, [주해수용] 所收 천문 의기 연구의 결과물 혼천의, 혼개통헌의, 혼평의 등 18세기 후반 사대부 과학자들의 선구 서명응, 서호수, 정철조, 이가환, 홍양해, 홍길주 등
[醫山問答]에서 펼친 파격적 우주론(1773년 43세) 5. 홍대용의 학문과 지적 전환 [醫山問答]에서 펼친 파격적 우주론(1773년 43세) 지구-지동설의 주장: 땅은 둥글고 돈다! 무한우주와 다세계설: 무한한 우주에 여러 星界가 존재할 수 있다. 역외춘추론: 오랑캐 땅에서 중화의 교화가 펼쳐질 수 있다! 그 역사적 의미는? 독자적인 코페르니쿠스적 창안? 서양과학의 극복을 넘어 조롱? 탈주자학, 중화주의 부정?
홍대용 우주론(자연지식)의 두 가지 구성 요소 5. 홍대용의 학문과 지적 전환 홍대용 우주론(자연지식)의 두 가지 구성 요소 성리학적 우주론 전통 (象數學的 우주론) – 홍대용은 부정 氣論的 우주론 17세기 이후 유입된 서양 과학 서양식 세계지도: 광대한 세계 서양식 우주론; 사원소설과 지구설 정밀한 천문 데이터
유입된 서양 과학의 내용 5. 홍대용의 학문과 지적 전환 서양식 세계지도 1603년 [坤輿萬國全圖] 유입 광대한 세계 + 地球, 대척지, 무중심
유입된 서양 과학의 내용 5. 홍대용의 학문과 지적 전환 서양식 우주론: 사원소설에 입각한 지구설 [乾坤體義](1605), [表度說] 등 사원소설 地球 + 대척지 + 무중심
유입된 서양 과학의 내용 5. 홍대용의 학문과 지적 전환 改曆과정의 정밀한 천문학-수학 수용 1644년 時憲曆으로의 개력 사업 시작 (김육 주도) 1654년 시헌력서(日課曆) 반포
중국-조선 학인들의 인식과 반응은? 5. 홍대용의 학문과 지적 전환 광대한 세계 - 불온하다 둥그런 땅과 무중심 - 비상식이다 너무 작은 중국, 세계의 일부에 불과 중화적 세계관을 무력화 둥그런 땅과 무중심 - 비상식이다 대척지의 인간 세계; 상식적 감각경험과 충돌 중심이 없는 세계; 중국이 세계의 중심이 아니란 말인가? 문명과 야만의 구분이 없어지는 ‘말세’ 일반적인 유가 지식인들의 태도; ‘存而勿論’ 불가지론적 입장에서 부정. 그러나 완전한 부정은 아님. 나중을 기약하면 여지를 남김 홍대용은?
성리학적 우주론 전통 - 氣論的 우주론 5. 홍대용의 학문과 지적 전환 氣를 통한 우주와 자연 이해는 오래된 비유가적 전통 [淮南子](BC2) 天文訓 미분화된 무형의 원초적 氣의 분화 淸輕한 氣는 위로 올라가 天, 重濁한 氣는 아래로 내려가 地. 천기와 지기의 작용으로 일월오성과 만물 생성. 천지는 모두 고체 개천설과 잘 부합, but 물리적으로? [黃帝內經](前漢代)의 전통: 大氣擧之: 氣가 무거운 地를 들어줌 도가들의 계승: 氣의 우주론적 역할을 계승 葛洪(283-363)의 ‘萬里强風說’40리 상공 太淸한 곳의 氣 상태
성리학적 우주론 전통 - 氣論的 우주론 5. 홍대용의 학문과 지적 전환 張載(1020-1077)의 [正夢]; 비유가적 전통의 ‘氣의 메커니즘’을 체계화, 신유학의 우주론으로 전환 太虛; 우주의 태초의 상태, 混沌未分의 원초적 氣가 충만된 상태 氣는 우주 발생의 물질적 근원으로 상정 태허는 無에서 有로 생겨난 것이 아닌, 태초의 단계일 뿐 태허에서 微動의 動이 발생, 원초적 기의 분화 시작 왜 미동이 발생? 氣의 본질적 속성! 순수한 陰의 기가 가운데 엉기어 땅, 떠오른 양기가 바깥에서 운동하며 하늘을 구성. 하늘은 기의 상태 천기(양)와 지기(음)의 작용으로 천체들 생성되고 운동이 발생
성리학적 우주론 전통 - 氣論的 우주론 5. 홍대용의 학문과 지적 전환 朱熹(1130-1200)가 계승, 구체화: 분화과정의 회전운동의 역할 태허에서 발생한 기의 분화는 미동의 회전운동(左旋). 분화의 진행에 따라 회전운동도 빨라짐 안쪽일수록 회전속도 느리고 짙은 기의 상태. 중심에서 기의 응집, 응결로 찌끼(渣滓)가 地를 이룸 우주 바깥일수록 회전속도 빠르고 엷은 기의 상태, 그러나 빠른 속도 때문에 剛硬한 상태 기의 회전력으로 무거운 땅이 우주 허공에서 지탱 9천의 重層, 맨 바깥의 하늘은 딱딱한 기의 상태(軀殼) 일월오성과 별의 위치(?), 9천 각각에 위치하지는 않음 혼천설과 기론적 우주 생성 과정의 통일적 설명
경쟁하는 두 과학? 동아시아 우주론 서양 우주론 NO!!! 새로운 우주론 만들기? 유가 행위자 평평한 땅, 상하 5. 홍대용의 학문과 지적 전환 경쟁하는 두 과학? 동아시아 우주론 유가 행위자 평평한 땅, 상하 氣, 太極, 卦象, 오행 다양한 우주적 사유의 전통 서양 우주론 예수회사 행위자 둥그런 지구, 중심-주변 사원소, 원운동 조물주가 만든 완벽한 우주 NO!!! 새로운 우주론 만들기?
홍대용의 서양 우주론 이해와 지적 전환(?) 5. 홍대용의 학문과 지적 전환 기론적 우주론의 방식; 즉 성리학적 방식 地球의 문제 해결이 중심 논제 서양 사원소설; 중심과 주변의 구도 중국의 우주공간; 상하 구도 땅의 구형; 불안정, 원인이 필요 대척지, 무상하, 중화적 세계관과의 충돌 등 상수학에서는 오히려 간단히 해결 선천방원도에서 구함
李瀷(1681-1763)의 地心論 [성호사설] “발직방외기”: 5. 홍대용의 학문과 지적 전환 李瀷(1681-1763)의 地心論 [성호사설] “발직방외기”: “땅은 둥그런 하늘의 가운데에 있다, 하늘은 하루에 한 바퀴 씩 돌고, 그 둘레가 엄청나니 그 운동력도 매우 굳셀 것이다, 그런데 이렇게 굳세게 회전하는 하늘의 안쪽에 있는 것은 그 세력이 안쪽을 향해서 모이지 않는 것이 없다, 이것은 둥근 주발의 안에 어떤 물체를 놓고 기틀을 사용하여 회전시키면 그 물체는 떠밀리고 쏠리다가 주발의 정 중앙에 도달해서야 움직임을 그만 두는 것과 같은 이치이다” 둥근 물체는 상하사방에서 모두 중심으로 향하는 그 무언가가 있다. 땅을 둘러싼 氣의 회전력이 지구를 우주 공간에 버티게 해주고, 지심으로 향하는 세력을 만들고, 대척지 문제를 해결
홍대용의 방식은? 氣의 메커니즘 [의산문답](1773년) 5. 홍대용의 학문과 지적 전환 “광막한 태허(太虛)에 가득 찬 것은 오직 기(氣)로서 안(內)도 없고 바깥(外)도 없으며, 시작(始)도 없고 끝(終)도 없다. 이러한 기가 끝없이 넓게 쌓여 결국은 응취(凝聚)하여 질(質)을 이루는데, 허공을 둘러싸고 돌거나 가운데 머물면서 선전(旋轉)하니, 그것들이 바로 지(地)․월(月)․일(日)․성(星)의 무리들이다.” [의산문답]에서 張載의 기론적 우주론 전통 + 회전하는 地球!!
5. 홍대용의 학문과 지적 전환 氣의 上下之勢 “무릇 땅 덩어리는 회전 운동하길 하루에 한 바퀴 돈다. 땅의 둘레는 9만리이고 하루는 12시이다. 9만리나 되는 너비를 12시간 내에 도니, 그 운행의 급함은 번개만큼 빠르고 포탄보다도 빠르다. 땅이 이처럼 급하게 돈다면 허기(虛氣)가 물살이 솟구치듯이 움직여 허공 중에서 애 돌면서 땅으로 모여들고 만다. 이리하여 상하지세(上下之勢)가 있게 되니, 이것이 지면 위의 형세이고 지면에서 멀어질수록 이러한 형세는 없어진다.” 이익의 지심론 메커니즘과 반대! 땅의 회전력이 상하지세를 만듬 결국 땅의 회전력이 둥그런 땅을 가능하게
地球와 地動의 메커니즘 5. 홍대용의 학문과 지적 전환 땅을 둘러싼 氣와 허공 중의 氣의 마찰의 작용 두 기가 부딪혀 격렬하게 요동 치면서 땅 위의 기가 지면으로 향한다. (강가, 바닷가 파도를 비유) 대기의 기가 급하게 회전해도, 땅 위의 기는 땅과 함께 운동하므로 인간이 땅의 운동을 지각 못함 지구설과 지동설을 동시에 해결
최한기(1803-1877)의 기론적 뉴튼과학 읽기 5. 홍대용의 학문과 지적 전환 氣輪說: [지구전요](1857), [성기운화](1867) 천체를 둘러싼 기의 대 회전 메커니즘. 만유인력의 원인을 설명하는 이론: 태양 중심 우주구조와 만유인력 현상의 문제 1830년대 조석의 문제에서 출발; 被輪 개념 모든 천체가 기의 수레바퀴 모양으로 회전 운동 지구와 달의 피륜이 부딪히면서 기의 요동 침 기의 요동 침이 바로 조석을 일으킴 1857년 기륜설; 지구전요, 성기운화(1867년) 기륜설로 전체 우주 내의 천체들간의 현상을 설명 인력으로 일어나는, 불규칙한 운동의 원리들을 기륜으로 이해 뉴튼 조차 밝히지 못한 우주의 “일반적 원리”라고 믿음
다세계설과 역외춘추 <무한한 우주>와 <다세계>의 가능성 논리의 연장으로 <역외춘추>를 주장 5. 홍대용의 학문과 지적 전환 다세계설과 역외춘추 <무한한 우주>와 <다세계>의 가능성 “은하계(銀河界)란 여러 계(界)를 총칭한 것으로 우주공간을 두루 돌면서 하나의 큰 고리를 이루었다. 이 고리(즉 은하계) 가운데에는 많은 계가 있는데 그 수가 천만이나 된다. 태양계도 그 중에 하나이니, 은하계야말로 태허(太虛) 중의 일대계(一大界)이다. 그러나 이것은 지구에서 볼 때 그러할 뿐, 지구에서 보이지 않는 바깥에도 은하계와 같은 것이 몇 천만억이 될지 모를 일이니, 나의 아득한 눈으로 은하계가 일대계이다라고 경솔하게 말하기 어려울 것이다. ” ([의산문답]에서) 우리 인간 세계와 같은 세계가 몇 개나 더 있을지? 장현광(1554-1637)이 주장했던 우주설; 시공간적 선후천지의 존재 논리의 연장으로 <역외춘추>를 주장 <역외춘추>는 오히려 스케일이 작은 것에 불과!!
[醫山問答]에서 펼친 파격적 우주론(1773년 43세) 5. 홍대용의 학문과 지적 전환 [醫山問答]에서 펼친 파격적 우주론(1773년 43세) 코페르니쿠스적 전환(?) - 장자적 寓話의 플롯 實翁과 虛子의 대화 30년 동안 유학을 헛 공부한 허자, 아무도 알아주지 않음, 알아주는 이 찾아 북경을 다녀오면서 의무여산에 올라가 실옹을 만남 허자의 헛됨, 독단적 사유를 조롱하며, 파격적 우주론을 설파 [의산문답]의 글쓰기; 진지하지 않은, 하루 밤 안주거리일수도! 탈주자학, 탈중화주의(?) - 이질적 두 과학의 만남의 한 예 이질적 자연 지식에 대응하는 지식인의 자연스런 패턴! 새로운 (우주론) 지식-네트웍 만들기: Actor-Network Theory 관점 서양 우주론 지식을 해체, 성리학 우주론 지식-네트웍에 성공적으로 등록 홍대용(조선 유학자들)은 직면한 문제를, 그의 방식(성리학적 우주론 전통)으로 풀었다! 만족스러운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