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원의 주제 24 삶에로의 초대인 지혜 잠언 성경본문 잠언 1:1~31:31
잠언 역시 욥기와 마찬가지로 지혜서에 속한 책입니다 잠언 역시 욥기와 마찬가지로 지혜서에 속한 책입니다. 본래 지혜서는 인간과 자연 및 세상만물을 지배하는 기본 원리들이나 법칙들을 연구하여 글로써 표현해 놓은 것을 말합니다. 따라서 지혜서에 표현되어 있는 각종 지혜는 인간의 지적인 활동을 총괄하는 것이요, 오늘날 우리가 학문이라고 부르는 것과 똑같은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지혜의 탐구는 이집트나 바벨론을 비롯한 고대 근동 전역에서 성행하던 보편적이고도 국제적인 현상이었으며 이스라엘도 예외는 아니었습니다.
구약성서에서 지혜사상을 취급하고 있는 책으로는 욥기와 잠언 및 전도서 등을 들 수 있습니다 구약성서에서 지혜사상을 취급하고 있는 책으로는 욥기와 잠언 및 전도서 등을 들 수 있습니다. 이 중에서 욥기와 전도서는 인간의 삶에 얽힌 복잡한 문제들, 곧 고통이나 죽음, 가치, 존재 등의 문제를 취급하는 지혜서요, 잠언은 세상에서 성공적으로 살아갈 수 있는 실제적인 교훈들을 수집해 놓은 지혜서입니다. 책으로 남겨져 있지는 않지만 솔로몬이 가지고 있던 자연에 관한 각종 지식 역시 당시의 지혜 개념 속에 포함되고 있습니다.(왕상 4:33)
본과에서 설명하고자 하는 잠언은 전반적으로 세상에서 성공을 거두기 위해서는 어떠한 삶을 살아야 하느냐를 교훈하고 있지만, 동시에 인간의 지혜가 가진 한계를 긍정하면서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이 최고의 지혜임을 강조합니다. 잠언은 또한 지혜를 의인화하여 지혜가 본래 하나님께 속한 것이라고 말합니다. 이 점에서 이스라엘의 지혜는 주변 국가들의 지혜와는 다른 성격을 갖습니다. 이와 아울러 이스라엘의 지혜는 공의의 하나님에 대한 믿음을 그 근간으로 한다는 점에서 독특성을 갖습니다. 즉 이스라엘 사람들은 지혜라는 보편적인 현상을 여호와 하나님께 대한 신앙고백의 차원에서 이해하고 있는 것입니다.
생각을 여는 주제 우리가 세상을 살아가는데 필요한 지혜와 지식들보다 더 의뢰해야 할 대상은 무엇입니까? 우리는 과연 금이나 진주를 찾듯이 하나님의 지혜를 추구하고 있습니까? 자신의 지혜와 명철을 지나치게 의지하고 있는 것은 아닙니까? 남의 유익을 도모하고 자기가 속한 공동체의 평화와 안녕을 위하기보다는, 자기 자신의 유익만을 위해서 하나님의 지혜를 찾고 있는 것은 아닙니까?
엯시대적 배경
메소포타미아 라르시에서 발견된 창조의 책, 주전 1900년경 시대적 배경 . 메소포타미아 라르시에서 발견된 창조의 책, 주전 1900년경
길가메쉬 서사시 토판, 주전 650년경, 대영박물관, 영국 시대적 배경 . 길가메쉬 서사시 토판, 주전 650년경, 대영박물관, 영국
시대적 배경 . 고대 바벨론 신화가 기록된 석판
시대적 배경 . 파피루스
시대적 배경 . 파피루스에 그려진 소
시대적 배경 . 하란의 트롤라(벌집 모양의 흙집)
시대적 배경 . 하란 유적지
시대적 배경 . 우르의 지구랏트
시대적 배경 . 솔로몬 왕
시대적 배경 . 예루살렘의 초막절
시대적 배경 . 지혜의 길
시대적 배경 . 포로에서 돌아옴
말씀의 해석
주요내용 첫 번째 잠언 – 하나님에 대한 경외 (잠1:1~7) 두 번째 잠언 – 의인화된 지혜(잠1:8~9:18) 세 번째 잠언 – 인간 지혜의 한계점(잠10:1~24:34) 네 번째 잠언 – 공동체의 평화와 안녕을 지향하는 지혜 (잠25:1~31:31)
1 첫 번째 잠언 – 하나님에 대한 경외 (잠1:1~7)
말씀의 해석 1. 첫 번째 잠언 – 하나님에 대한 경외 . 기도에 힘쓰는 유대인
말씀의 해석 1. 첫 번째 잠언 – 하나님에 대한 경외 . 성전 서쪽 벽에서 새 토라를 봉헌하는 의식
2 두 번째 잠언 – 의인화된 지혜 (잠1:8~9:18)
말씀의 해석 2. 두 번째 잠언 – 의인화된 지혜 . 태양의 창조, 미켈란젤로
말씀의 해석 2. 두 번째 잠언 – 의인화된 지혜 . 창조의 아름다움
3 세 번째 잠언 – 인간 지혜의 한계점 (잠10:1~24:34)
말씀의 해석 3. 세 번째 잠언 – 인간 지혜의 한계 . 통곡의 벽
4 네 번째 잠언 – 공동체의 평화와 안녕을 지향하는 지혜 (잠25:1~31:31)
말씀의 해석 4. 네 번째 잠언 – 공동체의 평화와 안녕을 지향하는 지혜 지파별 상징
말씀의 해석 4. 네 번째 잠언 – 공동체의 평화와 안녕을 지향하는 지혜 아담의 창조
말씀의 해석 4. 네 번째 잠언 – 공동체의 평화와 안녕을 지향하는 지혜 아름다운 세계
말씀의 해석 4. 네 번째 잠언 – 공동체의 평화와 안녕을 지향하는 지혜 손과 이마에 붙이는 테피린
말씀의 해석 4. 네 번째 잠언 – 공동체의 평화와 안녕을 지향하는 지혜 말씀의 해석 4. 네 번째 잠언 – 공동체의 평화와 안녕을 지향하는 지혜 .
성찰과 나눔 가장 훌륭한 지혜와 지식은 하나님을 아는 것이요 그를 경외하는 것입니다. 하나님 없는 지혜나 명철은 무익한 것이요 생명이 없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값진 보화를 찾듯이 하나님을 찾으며 그의 명철을 의뢰해야 하겠습니다. 하나님의 지혜로 세상을 화평하게 만들며 이웃의 평안과 유익을 증진시켜야 할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나라와 그 의를 먼저 구하는 것이요, 지혜로운 자가 할 일이 아니겠습니까?
신학적 의미
신학적 의미 서론 잠언이 지혜의 말씀을 뜻한다면 그 ‘지혜’(wisdom)는 무엇을 뜻하는가? 지혜는 일차적으로 ‘전문 기술’, ‘학문적 지식’, ‘윤리 도덕적 교훈’, ‘정치적 수단을 포함하는 보편타당한 원리’등을 의미한다. 그러나 지혜는 원리뿐 아니라 개인과 사회생활을 건전하고도 풍요롭게 하는 길을 인도하는 ‘지침’이라는 의미도 가진다. 그런 의미에서 지혜는 ‘원리’와 함께 ‘행동 규범’같은 것이다. 지혜는 그러기에 ‘합리성’, ‘타당성’, ‘경험’, ‘사색’의 축적에서 온 것이다. 그 대신에 지혜는 시간성과 역사성과는 관계를 가지지 않는다. 그래서 시간은 흘러도 지혜는 변하지 않는 진리성을 가진다. 이러한 전제에서 보더라도 지혜는 잠언의 독점물이 될 수는 없다. 이방 세계에도 역사적으로는 잠언보다 훨씬 먼저 고대 문명국가들 속에 지혜서들이 존재해온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이것을 ‘기름진 초승달’의 문화 혹은 지혜라고 부를 수 있을 것이다.
신학적 의미 서론 바로 이 기름진 초승달 문화권에 속하는 고대 애굽에는 ‘시누혜 이야기’, ‘두 형제 이야기’, ‘프타호테프의 교훈’, ‘아멘엠오페트의 교훈’등의 설화를 통한 지혜가 있었으며, 메소포타미아에는 ‘수메르의 서사시’로 알려진 격언이 있었다. 그리고 바벨론과 가나안에도 서사시, 격언, 찬미 등 다양한 지혜서들이 존재해 왔다(보다 심층적인 연구를 위해 장일선 저 「구약세계의 문학」, 대한기독교출판사, 1980을 참조하시오). 세계 문명의 발상지 중 하나인 메소포타미아와 “기름진 초승달”이 지혜의 한 근원이었다면, 또 다른 발상지인 인도와 중국에서 등장한 불교나 유교도 넓은 의미에서 ‘지혜’를 바탕으로 한 종교적 현상이라고 볼 수 있다. 물론 서구 문명의 계보에서 보면 그것은 희랍 철학, 로마의 문화(특히 웅변학, 건축술, 항해술), 르네상스, 산업혁명, 그리고 오늘의 과학 기술 혁명으로까지 이어져 온 것이다
신학적 의미 서론 잠언은 ‘지혜의 말씀’ 혹은 ‘지혜자들의 모음’을 의미했다. 모세5경(창세기, 출애굽기, 레위기, 민수기, 신명기)의 저자를 모세 이름으로 하고, 시편의 저자를 다윗의 이름으로 했다면, 잠언은 솔로몬 왕의 잠언으로 명명되어왔다. 그러나 여기에서 중요한 것은 누가 저자였느냐에 있지 않다. 오히려 이스라엘의 지혜가 이방의 지혜와 무엇이 같고 무엇이 달랐는가라는 질문에 있다.
1 이방인의 지혜와 이스라엘의 지혜, 잠언
신학적 의미 1. 이방인의 지혜와 이스라엘의 지혜, 잠언 이러한 세속적-문화적 지혜와의 관계에서 이스라엘의 지혜인 잠언은 어디에 서 있는가? 이 질문은 잠언을 해석하는데 중요한 단서가 된다. 학자들의 연구에 의하면 솔로몬의 잠언은 고대로부터 전해오는 애굽, 수메르, 바벨론의 문화와 지혜로부터 큰 영향을 받은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그 근거로는 솔로몬의 정치적 국제화(cosmopolitan)와 외교적 능력으로 그는 애굽과 바벨론 문화를 폭넓게 접하기도 하고 수용하는 관계에 있었다는 것이다. 스바 여왕의 방문과 대화는 이방문화의 접촉을 예증한다. 그러기에 잠언은 문체 형식이나 언어 사용에 있어서 이방문화의 지혜와 많은 흡사성을 가진다. 보편 타당적인 진리, 공감하는 경험, 심오한 도덕률과 합리주의가 바로 그것이다. 그러므로 히브리적이라 해서 ‘세속적’인 것, ‘문화적’인 것과 동떨어진 것이 아니라, 이방문화의 영향을 받기도 하고 세상적인 도덕에 참여하기도 하며 법칙과 규범들을 공유하기도 한다.
신학적 의미 1. 이방인의 지혜와 이스라엘의 지혜, 잠언 여기서 기독교 윤리를 예로 든다면 기독교 윤리라고 해서 기독교인들은 문화, 지혜, 정치, 경제, 사회, 가정, 모든 인간관계로부터 분리된 행동규범을 가진다고 볼 수는 없다. 사실 한국 교회와 그리스도인들의 문제는 기독교 윤리는 마치 초문화적, 초정치적, 초경제적인 그 무엇으로 생각하는데 있다. 이스라엘의 지혜인 잠언은 일차적으로 인간들의 경험과 사색에서 나온 진리, 도덕률같은 지혜를 수용하고 있다. 이것은 신앙의 세속화가 아니라 삶과 문화의 표현인 것이다. 그러나 이스라엘의 지혜인 잠언이 이방의 지혜와 근본적으로 다른 것은 무엇 때문인가? 잠언은 인간의 지혜를 수용함에도 불구하고 이방의 지혜와 근본적으로 구분되는 것은 그 모든 지혜와 지식이 인간 경험에서 오는 보편 타당적 진리가 아니라 야웨 하나님을 경외하는 믿음의 틀에서 오는 하나님의 지혜라는 점이다. 여호와를 경외하는 신앙이 지혜의 근원인 것이다.
신학적 의미 1. 이방인의 지혜와 이스라엘의 지혜, 잠언 잠언 신학이 가능한 것인가? 잠언 신학은 일차적으로 ‘지혜’와 ‘지식’을 죄악시하거나 이단시하지 아니하고 오히려 하나님의 ‘선물’로 수용하고 긍정하는데서 출발한다. 여기서 기독교인들도 세상의 학문이나, 지식이나, 지혜나, 정보화 시대의 전문성 모두를 하나님의 선물로 수용해야함을 암시한다. 기독교인이라 해서 무지해도 된다거나, 세상의 지혜로부터 도피한다거나 하는 것은 가장 비성서적인 신앙의 태도이다. 그러나 잠언 신학은 여기서 한 가지를 분명히 한다. 지혜와 지식을 수용하되, 지혜와 지식 그 자체가 곧 진리라고 보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모든 지혜와 지식은 한계가 있으며 그 자체가 진리는 아니라고 본다. 오히려 지혜와 지식의 근본은 여호와 하나님께 있으며, 그를 경외하는 신앙에서 비로소 지혜와 지식은 의미를 갖는다고 본다. 그러므로 잠언에 나오는 모든 훈계와 도덕률은 야웨를 믿는 신앙 안에서 보고, 해석하고, 행동할 때 의미 있는 것이다.
신학적 의미 1. 이방인의 지혜와 이스라엘의 지혜, 잠언 프린스턴 대학교 서양사 교수인 하비슨 교수(H.Harbison)는 ‘나는 왜 기독교 역사가인가’라는 물음에 이렇게 대답한다. “나는 이 역사를 친히 창조하시고 지금 그 과정을 친히 섭리하시는 하나님을 믿고 섬기기에, 두렵고 떨리는 마음으로 그의 역사(서양사)를 대하고 연구하고 가르치고 있다.”
2 여호와를 경외하는 신앙과 ‘동기론’
신학적 의미 2. 여호와를 경외하는 신앙과 ‘동기론' 그러나 문제는 야웨 하나님을 경외하는 신앙을 가지고 ‘명령을 지키며’(잠 3장), ‘아버지의 훈계를 들으며’(잠 4장), ‘화목하고’(잠 27장), ‘술을 마시지 않으며’(잠 20장), ‘베풀며’(잠 3장) 살지만, 그 신앙과 행동 사이에는 두 가지로 나뉘는 내적 동기(inner motive)가 존재하고 있다는데 있다. 니그렌(A.Nygren)은 그의 유명한 저서 「아가페와 에로스」 (Agape and Eros)에서 인간 내면에 숨어있는 동기를 ‘자기 사랑’(eros)과 ‘자기 희생’(agape)으로 나누어 설명한다. 하나님을 신앙한다고 하면서도 그리고 내 이웃에게 나누어 주는 윤리적 실천을 수행하면서도 만일 한 사람이 이 모든 것을 “자기 사랑”(eros)이라는 숨은 동기에서 했을 때 그것은 악한 것이 된다는 것이다.
① 하나님 신앙 -> 윤리적 행동 -> 자기 사랑(eros) -> ‘악’ 신학적 의미 2. 여호와를 경외하는 신앙과 ‘동기론' 잠언 3:27의 “네 손이 선을 베풀 힘이 있거든 마땅히 받을 자에게 베풀기를 아끼지 말며”라는 말씀처럼 신앙 안에서 이웃을 도와주었다 하더라고, 그 동기가 ‘자기 사랑’(eros)에서였다면 그것은 자기 명예나 자기의 도덕적 성취를 과시하기 위한 것으로 전락하기 쉬운 것이다. 그러나 이웃을 신앙 안에서 도와주되 그 내적 동기를 ‘자기 희생’에 두었다면, 돌아올 것이 있는가를 계산하지 않고 조건 없이 주는 행동으로서 그것은 곧 선이 될 것이다. 그러기에 우리는 잠언 신학이 주는 구도를 연상할 수 있을 것이다. ① 하나님 신앙 -> 윤리적 행동 -> 자기 사랑(eros) -> ‘악’ ② 하나님 신앙 -> 윤리적 행동 -> 자기 희생(agape) -> ‘선’
3 기독교 윤리 (신앙 윤리)란?
신학적 의미 3. 기독교 윤리 (신앙 윤리)란? ‘잠언에 대한 신학적 해석이 우리와 일상적인 기독교 윤리에 무슨 의미를 주는가’라는 질문은 오늘의 한국교회 변화를 위한 중요한 실마리가 된다. 우선 잠언을 중심으로 형성되는 처음 기독교 윤리는 ‘규범윤리’(normative ethics)라고 불리우는, 때로는 율법주의적 윤리로 해석할 수 있는 입장이다. 이는 잠언에 나오는 모든 교훈과 훈계를 문자적으로, 율법적으로 실천하려는 태도이다. 한 마디로 이는 ‘하지 말라’(do not)의 윤리이다. 이는 한국 교회가 오랜 세월 빠져 온 윤리적 입장이다. 그러나 규범 윤리는 잠언 신학을 잘못 이해하는 것이다. 신앙 없는 도덕률에 강조를 두기 때문이다
신학적 의미 3. 기독교 윤리 (신앙 윤리)란? 다른 극단적인 기독교 윤리는 ‘도덕무용론’(Antinomianism)이다. ‘하나님의 은혜가 충만하니 신앙인에게 세상의 윤리와 도덕이 무슨 의미가 있는가’를 외치며 사는 사람들이다. 주로 ‘종파’운동에 속한 사람들의 윤리 행태가 이 같은 도덕무용론으로 나타나며, 한국의 왜곡된 부흥 운동이나, 사이비 기도원이나, 비뚤어진 종파운동에서 우리는 자주 이 같은 도덕무용론을 본다. 이들도 잠언 신학을 잘못 이해하고 있는 것이다. 하나님 신앙은 반드시 생활과 사랑으로 나타나야하는 것인데 그들은 이것을 포기한 것이다.
신학적 의미 3. 기독교 윤리 (신앙 윤리)란? 기독교 윤리의 세 번째 유형은 ‘상황 윤리’이다. 제3의 윤리라고도 불리우는 상황 윤리는 철저한 율법주의와 도덕무용론 중간 그 어느 곳에 서 있다고 본다. 모든 윤리적 결단은 ‘규범’에서가 아니라 공동체가 처해있는 ‘상황’에서 이루어지며, 중요한 것은 사랑을 가지고 상황에 따라 최선을 선택하는 길이 상황 윤리라는 것이다. 즉, 옳고 그름의 판단이 행동을 결정하는 것이 아니라 그 때의 상황에서 최선을 선택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상황 윤리는 신앙에서 시작하여 내적 동기로 연결되는 근본적인 ‘선’을 상실한 데 있다. 그렇다면 상황 윤리란 무엇인가? 잠언 신학이 제공하는 윤리의 근본적인 구조는 ‘규범’도 아니고, ‘무용론’도 아니며, ‘상황’도 아니다
잠언은 이 사람들을 불러 ‘의인’이라고 불렀다. 신학적 의미 3. 기독교 윤리 (신앙 윤리)란? 오히려 하나님을 경외하는 신앙에서 시작하여 이웃을 사랑하고, 공동체 번영을 위한 행동으로 나타나는 것이다. 그리고 이 하나님 신앙과 행동 사이를 이어 놓는 다리는 존 브라이트(John Bright)의 말을 빌리면 ‘마음이 가난한 자’이며, 자기 사랑인 에로스(eros)가 아니라 자기 희생인 아가페(agape)와 하나님을 향한 빈 마음이어야 한다. 잠언은 이 사람들을 불러 ‘의인’이라고 불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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