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 종교가 없다고 했던 서양 관찰자들 방원일(서울대학교 종교학과)
개요 한국에서 19세기에 이루어진 ‘종교 없음’ 서술들 한국에서 19세기에 이루어진 ‘종교 없음’ 서술들 ‘종교’에 대한 서양인들의 문화적 전제가 한국에서의 경험에 어떻게 적용되면서 상호작용을 하였느냐 하멜, 귀츨라프, 오페르트, 로웰, 밀른, 알렌
1. 하멜의 종교 서술 그들의 종교, 사찰, 승려, 종파에 대해 말해 보자면, 백성들은 여러 우상을 섬기는 등 이교도를 믿는 것은 사실이지만, 실로 우상보다는 그들의 권세가들을 더 숭상함. 고관과 양반은 우상숭배 따위는 거들떠보지도 않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그들 자신이 우상 위에 군림하는 양 자만심이 강했음.
…… 설교라든지 교리문답 같은 것은 그들에게는 아예 알려져 있지 않고, 서로에게 자기 믿음을 강요하려 들지도 않음 …… 설교라든지 교리문답 같은 것은 그들에게는 아예 알려져 있지 않고, 서로에게 자기 믿음을 강요하려 들지도 않음. 다들 이미 신앙을 가지고 있으며, 또 전국에 걸쳐 우상숭배가 이미 만연된 상태이기 때문에 종교에 대한 논쟁을 벌일 필요도 없음.
1-2. 하멜 판본의 역사
불어 번역(미뉘톨리) "Pour la Religion, les Corefiens n'en ont prelque point. Le menu peuple fait bien quelque grimace devant les Idoles, mais ils ne les révérent guéres, & les Grands les honorent encore moins, parcequ'ils fe croyent être quelque chofe de plus qu'une Idole. …… Du reflte ils ne favent ce que c'eft que de prédication, ni de miftére, auffi ne difputent ils point de Religion, croyant tous une méme chofe, & la pratiquant également par tout le Royaume."
영어 번역(처칠 판) “As for religion, the Coreans have scarce any. The common sort make some odd grimaces before the idols, but pay them little respect; and the great ones honor them much less, because they think themselves to be something more than an idol. …… For their belief, they are of opinion that he who lives well shall be rewarded, and he who lives ill shall be punished. Beyond this they know nothing of preaching nor of mysteries, and therefore they have no disputes of religion.”
한글 번역 (이병도) “宗敎에 關하여는, 朝鮮人은 거의 아무것도 없다고 할만하다. 普通 種類로는 偶像 앞에서 몇가지 奇怪한 모양을 보이는 것이 있으나(아마 巫堂의 굿하는 것을 이름인 듯) 尊敬이 不足하고, (더구나) 大人(兩班)들은 그보다도 훨씬 不足하게 숭배하니, 그것은 自己네의 地位가 偶像보다 좀 더 나은 양으로 생각하는 까닭이다. ……이 以上에 說敎라던지 神秘奧妙에 關하여는 何等의 아는 것이 없다. 그러므로 그들 사이에는 아무 宗敎上의 討論이 없고, 全國을 通하야 모다 同一한 것만 信하고 行할 뿐이다.”
사그만 판본의 변형 “남자들은 원래 호색한이다”
“한국인들은 거의 종교를 가지고 있지 않다” 비유럽세계에 종교가 없다는 당시 유럽인의 ‘상식’에 의거해서 출판의 과정에서 덧붙여졌을 것. 유럽 독자들의 눈높이를 고려한 임의적인 (사그만 판)
1-3. 유럽 독자들이 하멜 이야기를 수용한 방식 지볼트(Philipp Franz von Siebold): 비그리스도적 야만인이라는 두려운 이미지 <난파기>(Account of Shipwreck)라는 이름으로 유통 당시 유럽에서 유행했던 여행담이나 항해 전집 안에 포함 하멜은 한국의 종교에 대해서 말했을지 몰라도, 유럽 독자들은 한국의 ‘종교 없음’을 읽었다.
1-4. 처음부터 ‘종교 없음’을 말한 것은 아니다 ‘초기 서양 관찰자들은 한국의 종교를 보지 못했다가, 경험이 쌓이자 나중에야 보게 되었다’는 일반론 한국의 ‘종교 없음’에 대해 한때나마 서양인들이 일치되는 견해를 보이는 것은 처음부터 그랬던 것이 아니라 개신교적인 종교 개념이 적용되기 시작한 19세기부터였다.
2. 귀츨라프: 개신교적 관점의 적용 우리는 그들 집에서 우상숭배의 흔적을 발견하지 못했으며 어떠한 종교 의식도 행하는 것을 볼 수 없었다. 이 모든 것으로 볼 때 그들은 매우 비종교적인 민족.
이중적인 종교 정의 보이는 세계와 보이지 않는 세계를 이어주는 연결, 인간과 하느님 간의 거리를 넘어서 다다르게 해주는 연결이 종교이다. 종교라는 이름은 단순한 오류와 미혹의 체계들에도 흔히 붙여진다.
3-1. 오페르트: 가톨릭적 관점 “유구한 종교 관행을 준수하려는 신심과 존중의 감정, 한국인들에게 그러한 감정은 전적으로 결여되어 있다.” “조선의 승려들은 평민에도 훨씬 미치지 못하고, 노비보다 약간 높은 계층인 ‘멸시받는 카스트’에 속한다.” “길가에 꽤 오랫동안 주목받지 못한 채 서 있는, 팔 둘레 두께의 볼품없는 여러 종류의 나무들”“마음이 아팠다”
3-2. 로웰: 천문학자의 종교 대격변 이론 질병과 같은 불행을 설명하기 위한 인간의 노력에 의해서 초자연적인 존재에 대한 믿음이 생겨났다고 주장한다. 그리고 이 미신이 점차 이성의 지배를 받는 종교에 자리를 내어준다 한국의 사례가 로웰에게 흥미로웠던 것은, 그것이 그의 종교이론을 위협하는 ‘예외’ 임진왜란이라는 대변혁이 있었기 때문에 그 이전에 이룬 문명의 단계에서 퇴화하였다는 것이다. 그 결과는, “종교가 부재한 사회, 상류 계층에는 유교 윤리가, 하류 계층에는 옛 미신의 잔재가 자리잡은 사회”의 출현
3-3. 밀른 무속은 ‘미신’이기 때문에 종교로 볼 수 없고, 유교는 행위 규범의 성격이 강하기 때문에 종교가 아니며, 불교는 쇠락한 상황 내가 한국에 종교가 없다고 하는 것은, 한국에 종교가 전적으로 부재(absence)하거나 결핍 (paucity)되어 있다는 사실에 근거해서 하는 말이 아니다. 바로 한국에서 종교가 존경을 받거나 존중받지 못한다는 사실에 근거해서 하는 말이다.
3-4. 알렌 한국 사람에게는 진정 자신의 종교가 없다. 유교는 하느님이 부재한 단순한 도덕 체계이고, 불교는 불명예 속으로 실추되었다. 이와 동시에 원주민들은 천성적으로 경건해서(by nature devoutly inclined) 기독교에 자연스레 매력을 느낀다.
4. 결론: ‘종교 없음’에 깔린 전제들 19세기 말(1880~1900): ‘종교 없음’ 담론 “사람들은 벌거벗었고, 부끄러움도 없고, 종교나 하느님에 대한 지식도 없었다” (내적인 차원) :그들은 어떤 종교도 지키고 있지 않으며, 예배드릴 집도 전혀 없다” (외적인 차원)
의례나 종교 건물과 같은, “종교임을 드러내는 것”(signs of religion)들을 통해서 종교를 찾으려 했고, 거기서 어려움을 겪었다 귀츨라프가 찾고자 했던 “인간과 하느님 간의 연결”을 계속해서 찾아내고자 했던 노력 “하느님에 대한 지식”이 한국에도 존재한다 ‘종교 없음’에서 ‘종교 있음’으로의 전환 (1900년 이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