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남아 사회와 정치 제3강. 동남아의 역사 2: 식민지배 이후 신라대학교 국제관계학과 교수 이 동 윤
1. 동남아의 식민지배 개관 ○ 현실적으로 동남아 식민지배 시기(근대사)는 현대사의 연장선: 정치 경제적 발전과 사회 문화적 구성에 영향 ① 현재 동남아의 헌정/정치체제는 거의 대부분 식민지배 국가들의 영향 ② 동남아 국가들의 현재 국경선은 식민지 구획의 영향 ③ 서구의 식민지 경영은 동남아의 사회/문화구조와 경제체제를 왜곡 ※ 동남아 역사의 식민지배 시기 구분 ① 유럽의 동남아 진출과 식민지배 (16세기∼19세기): 유럽 열강들이 최초 동남아 에 접근하여 식민지를 개척하기까지의 시기, 이것은 다시 16세기부터 17세기 사이와 18세기부터 19세기 사이로 구분 - 16세기∼18세기 초반: 교역을 위한 교두보 마련과 식민지 탐색을 위한 시기 예] 스페인, 포르투갈, 네덜란드 등 식민제국주의 후발 국가들의 동남아 탐색 - 18세기 후반∼19세기: 서구 유럽의 제국주의와 식민지배가 본격화된 시기 예] 인도네시아: 네덜란드, 미얀마(버마), 말레이시아: 영국, 인도차이나 반도 (베트남, 캄보디아, 라오스: 코친차이나 건설): 프랑스, 필리핀: 스페인과 미국
2. 유럽 열강의 동남아 진출과 식민지화 (16세기∼19세기) ② 민족주의 태동과 독립운동사 (20세기 초, 특히 1920년대∼1930년대): 서구적 이념과 정치이론에 입각한 민족주의와 독립운동이 태동되었던 시기 예] 필리핀: 호세 리잘, 베트남: 호치민, 인도네시아: 수까르노, 미얀마: 아웅산 등 ③ 일본의 침략과 동남아의 대응 (1941년∼1945년): 제2차 세계대전이 발발하고 아시아 지역에서 일본에 의한 태평양전쟁이 발생, 유럽은 일본의 침공으로 퇴각 하고 일본의 단기적 점령과 군정통치 단행 → 일본의 점령정책에 대한 동남아 각 국가들의 내부적 대응은 보다 다양한 형태로 표출 예] 태국: 일본과 공수동맹, 인도네시아: 독립을 위한 협력관계, 필리핀 → 적대관계 2. 유럽 열강의 동남아 진출과 식민지화 (16세기∼19세기) - 서구 열강의 동남아 지배는 16세기부터 그 기원을 찾아볼 수 있으나, 동남아의 식민지화가 보다 본격적으로 전개된 것은 18세기 중엽부터이다. - 유럽 열강의 중국, 일본 진출을 위한 교두보로서 동남아의 지정학적 가치가 높아 지기 시작, 향신료, 농산물 경작과 천연자원 채굴에 따른 산업적 이익 증가
1) 대륙부 동남아 국가 ① 미얀마(버마, Burma): 영국의 식민지배 - 영국의 인도 식민지배 이후 동진정책에 따른 마찰 (정치적 지배구조의 차이) - 버마 꼰바웅 왕국의 우유부단한 대응정책 - 제1차 버마전쟁 (1824-1826) - 제2차 버마전쟁 (1852) - 제3차 버마전쟁 (1885-1886) ② 베트남(Viet Nam): 프랑스의 식민지배 - 영국의 동진정책에 따른 프랑스의 대응정책 - 베트남 왕실의 대응정책 미진: 국제적 현실감각 부족 - 프랑스의 남부지배 (1859-1862) - 프랑스의 중부/북부 지배 (1873-1885) - 프랑스는 왕실 보존을 조건으로 안남(1884)과 통킹(1884)을 보호령으로 복속 - 베트남 왕조는 왕실의 안위를 조건으로 국가를 프랑스에게 복속, 베트남 왕조의 군주는 1945년 까지 폐위되지 않고 존속
③ 캄보디아: 프랑스에 의한 식민지배 - 캄보디아는 대륙부의 작은 국가군으로서 19세기 중반까지 태국과 베트남의 내정 간섭 심화(예] 태국과 베트남의 경쟁관계 사이에서 완충지대 역할, 조공관계) - 베트남을 점령한 프랑스는 캄보디아 지역까지 영토 확장: 그 명목은 대외적으로 태국과 베트남 사이에서 캄보디아의 생존을 보장해 주겠다는 것 - 캄보디아 왕실의 요청으로 프랑스는 캄보디아 왕권체제를 그대로 유지시킨 채 그들이 조정하는 형태를 취하면서 캄보디아 식민지배 완성 ④ 라오스: 프랑스에 의한 식민지배 - 19세기까지 라오스는 소규모 군소국가 형태로 유지되며 태국의 속국으로 존재 - 1885년부터 1899년 사이 프랑스는 라오스를 무력으로 침공, 베트남의 라오스 에 대한 종주권을 주장하며 태국으로부터 라오스를 강제적으로 편취 ⑤ 태국: 독립국가 유지 - 태국은 동남아에서 유일하게 식민지배를 받지 않은 국가, 영국과 프랑스 사이에서 태국이 완충지대(bumper zone) 역할을 수행했기 때문 - 그러나 태국은 독립국가를 유지하기 위해 영국과 프랑스에게 그들의 영토를 많은 부분 할애 (예] 태국 서부와 남부 일부: 영국, 라오스와 캄보디아: 프랑스) - 태국의 독립국가 유지와 완충지대 역할은 리더십의 결과(예] 라마 4세(몽꿋 왕) 의 문호개방, 라마 5세(쭐라롱껀 국왕)의 개혁정책: 일본의 메이지유신과 비교)
2) 해양부 동남아 국가 ① 인도네시아(Indonesia): 네덜란드의 식민지배 - 18세기 네덜란드는 자바 왕국의 왕위계승전쟁 개입 - 19세기 수마뜨라 지역까지 영토 확장 - 한때 영국의 지배가 이루어진 바 있으며, 동티모르 지역은 포르투갈 지배 ② 말레이시아(Malaysia), 싱가포르(Singapore): 영국의 식민지배 - 페낭을 교두보로 싱가포르 사이를 해협식민지로 구축 - 보르네오 사라왁 지역: 백인 라자 James Brook 군림 ③ 브루나이(Brunei): 영국의 식민지배 - 1888년 영국의 보호국 복속: 상징적 이슬람 왕국으로 존속 * 말레이시아, 보르네오를 통괄하는 영국령 해협식민지 건설 ④ 필리핀(Philippine): 스페인 → 미국의 식민지배 - 1571년 마닐라 지역에 식민지 개척 - 1898년 미국-스페인(미서) 전쟁의 귀결로 미국에 복속 * 1905년 가츠라-태프트 조약: 조선은 일본이, 필리핀은 미국이 식민지 관할
② 번성기 (10∼12세기 전후): 대륙부 동남아는 캄보디아 지역의 앙코르(Angkor) 왕국을 중심으로, 도서부 동남아는 말레이 반도 및 인도네시아 수마뜨라 지역의 스리위자야(Srivijaya) 왕국을 중심으로 최고의 정치․사회적 번성기 향유 - 지리적 특성에 따라 대륙부의 경우 농업에 기반을 둔 농경문화 발전, 도서부의 경우 상업에 기반을 둔 해상무역 발전 - 이 시기부터 동남아 왕국들은 각각의 고유한 문화적 전통과 정치․경제체제를 형성, 이것은 현재까지 영향을 미치게 된다. ③ 쇠퇴기 (16세기∼18세기): 동남아 지역의 가장 영향력 있는 양대 세력이었던 앙코르 왕국과 스리위자야 왕국이 다양한 정치․경제적 원인에 의해 붕괴되자 제국은 다시 군소왕국들로 분열, 각각의 세력 다툼과 경쟁, 그리고 이 시기부터 전개된 서구 열강들의 침입으로 점차 쇠락의 길을 걷기 시작 - 동남아 지역에 있어서 13∼14세기는 역사적 사료나 구전되는 내용이 불분명 하여 정확한 파악이 이루어지지 않는 사라진 역사로 불린다. - 대륙부의 경우 앙코르 왕국이 망하자, 버마․태국․베트남 등지의 왕국들이 영토 확장을 둘러싸고 상호 경쟁하는 춘추전국 시대를 형성 - 도서부의 경우 스리위자야가 멸망하자, 말레이시아․인도네시아 등지의 군소 왕국들이 출몰, 각각의 영토를 점유, 이후 말라까 왕국으로 연계된다. - 그러나 이러한 과정에서 동남아의 왕국들은 서구 열강의 침입을 받게 된다.
3) 유럽 식민지배의 영향 ① 경제적 변형: 식민지 종속경제와 자본주의 경제체제의 왜곡, 부의 불평등 문제 등 - 16-17세기 초반까지 스페인과 포르투갈, 네덜란드는 동남아 지역의 향신료 무역을 독점하면서 거대한 경제적 이익 추구(과거 스리위자야의 해상무역 복원) - 19세기부터 식민지 수탈이 강화되어 농지개발을 통한 플랜테이션 농업 개발 예] 고무, 야자나무, 커피, 담배, 쌀농사 등 - 이를 통한 생산은 대부분 식민당국이 수탈, 다수 농민이 소작인 형태로 전락 - 천연자원의 무분별한 채굴로 자연 생태계 파괴(예] 주석 등) - 유럽 본토에 종속된 왜곡된 자본주의체제 유입: 식민지배 본토의 원자재 공급과 생산품 판매를 위한 전초기지 역할 수행 - 지주(地主) 계급의 탄생은 식민지배 폐지 이후 부익부 빈익빈 불평등 현상의 주요 원인 제공 ② 종교적 영향: 기독교 개종 및 종교 갈등 - 식민지배에 의한 영향으로 필리핀, 동티모르 등은 가톨릭 개종사업 전개: 토착 종교와 종교갈등 유래 - 오늘날 동남아의 종교분쟁은 태국 남부, 필리핀 남부, 인도네시아 등지에서 다양한 형태의 종교적 분리주의 운동 전개
③ 사회구조적 영향: 도시화와 인구 증가, 아시아계 이주민 유입 - 동남아 수도 지역을 중심으로 한 식민지배 개발은 급격한 도시화와 더불어 도시- 농촌 간 경제적 격차 유발 - 농촌 지역의 경지개발로 농토를 강제적으로 상실한 농촌 인구가 도시로 유입: 범죄와 환경오염 등 여러 가지 폐단 초래 - 오랜 과거 2차례에 걸친 중국계 인구의 유입 이외에도 식민지 농작물 관리와 간접지배를 위해 중국 상인 및 노동자 계층 강제 유입 - 초기 싱가포르 등 항구지역을 중심으로 상권을 형성한 중국인들은 유럽 식민 지배자에 기생하여 동남아인들 위에 군림하며 착취를 대행하는 중간관리자로 변신: 동남아 화교자본 축적의 기원 - 식민지배 폐지 이후 인도네시아, 말레이시아 등지에서 화교에 대한 동남아인의 공격적 대응 및 인종갈등의 원인 제공 ④ 정치적 영향: 헌정 및 정치체제, 정치문화의 답습 - 동남아의 각국은 식민지배로부터 독립한 이후 주로 그들을 지배했던 유럽 국가 들의 정치체제를 그대로 답습: 독립국가 수립과정의 효율성 유도 - 필리핀: 미국의 양원제 국회와 대통령제, 말레이시아: 영국의 의원내각제, 인도네시아: 네덜란드의 정당명부식 비례대표제 국회의원선거 방식 (보다 자세한 내용은 개별 국가들의 정치발전 과정을 통해 설명)
3. 동남아 민족주의 태동과 독립운동사 (1920∼30년대) ○ 근대 민족주의의 유입과 독립운동: - 식민지 청년 엘리트들의 유럽 본국 유학과 민족주의 유입 - 자유민주주의와 사회주의(공산주의) 유입 → 민족독립운동의 노선 결정 - 유럽의 제1차 세계대전 등 불안정한 공백기에 독립운동 조직화·활성화 ○ 근대 민족지도자를 중심으로 독립운동 활성화 - 식민지배국에 유학을 다녀온 젊은 선각자들을 중심으로 민족독립 의식 고취 - 이들의 투쟁의 노선과 방법은 각 국가마다 다른 방향으로 전개 필리핀: 리잘 인도네시아: 수까르노 버마: 아웅산 베트남: 호치민
4. 일제 침략과 동남아의 대응 (1941년∼1945년) ○ 일제의 동남아 진출과 식민지배정책: - 아시아 지역의 대동아공영권 주창 → 점령군이 아닌 해방군 자처 - 독립운동세력을 지원하고, 유럽과 중국인을 적으로 간주(중국인 학살 등 인권 유린 사태 초래) ○ 동남아 국가들의 반응과 대응: 각 국가마다 상이한 대응방법 채택 - 베트남: 항일·항불 운동 전개(독자적 노선) - 태국: 공수동맹 체결(버마 침공), 타이민족주의(Pan-Thai Nationalism) - 인도네시아: 전략적 제휴, 수까르노와의 동상이몽 - 버마: 전략적 제휴, 아웅산과 30인의 동지 - 필리핀: 적대관계 유지 (미국의 영향) ○ 일본의 패전 이후 유럽 각국의 식민지 재진입이 추진되었으나, 각 국가 마다 강렬한 저항과 다양한 독립운동 전개 ※ 일본은 대동아공영권, 아시아인을 위한 아시아 주장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화교 및 현지인 학살 등을 통해 점령군으로 군림 ※ 동남아 민족지도자들의 전략적 제휴는 한국의 친일파 개념과 다른 의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