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C의 발칸유럽 201203506 천지연 201203368 조예진 201203673 최희재
Contents ⅰ ⅱ ⅲ 20C의 제1.2차 세계대전과 발칸유럽 20C의 사회주의 하에서의 발칸유럽 20C의 민주화 시기의
제 1차 세계대전 vs 동맹국 1914.7.28~1918.11.11 까지 일어난 세계 전쟁 독일 오스트리아-헝가리 오스만투르크 불가리아 연합국 영국, 프랑스 세르비아 러시아 이탈리아 루마니아 vs
1차대전의 원인 범게르만주의 범슬라브주의 범슬라브주의 게르만족의 세계지배 실현 슬라브민족의 유대를 목표 사라예보 사건(1914.6) 범게르만주의
러시아가 세르비아의 보호를 위해 오스트리아에 선전포고 1차 대전 전개과정 오스트리아가 세르비아에 선전포고 러시아가 세르비아의 보호를 위해 오스트리아에 선전포고 이탈리아가 삼국협상에 의해 설득됨 미국이 독일에 선전포고 1차 대전 종전
연합국 승리(1918.11) ↓ ‘베르사유 조약’
제 2차 세계대전 vs 1939.9.1~1945.9.2 까지 일어난 세계 전쟁 추축국 인류 역사에서 가장 큰 피해를 낳음 독일, 일본 이탈리아, 헝가리 루마니아, 불가리아 크로아티아 독립국 연합국 미국, 영국 폴란드, 소련 프랑스 유고슬라비아 왕국 vs
2차대전의 원인 2차 대전 발발 독-소 불가침 조약 체결 독일의 폴란드 침공 세계 대공황으로 인한 전체주의 등장 영국,프랑스 + 폴란드 상호 조약 체결 독-소 불가침 조약 체결 독일의 폴란드 침공 2차 대전 발발 연합군의 독일에 대한 막대한 전쟁배상금 세계 대공황으로 인한 전체주의 등장 독일의 베르사유 체제에 대한 반발
2차 대전 전개과정 영국, 프랑스가 독일에 선전 포고 독,소에 의한 폴란드 분할 점령 독일의 영국을 제외한 서유럽 점령 독-소 불가침 조약 파기 소련의 승리 연합국의 이탈리아 점령 연합군, 노르망디 상륙작전 독일, 일본의 항복
2차 대전의 결과 유고슬라비아 사회주의 연방 공화국 (1945~1991) 파르티잔 연합국의 승리 소련에 의해 대부분의 동유럽이 사회주의화 ★유고슬라비아 요시프 브로즈 티토 (Jосип Броз Тито) 소련의 도움 없이 독자적인 공산화를 이끌어냄 우스타샤 정권 체트니크 부대 파르티잔
사회주의 하에서의 발칸유럽 •발칸유럽의 연대 Ⅵ 티토의 사망 이후 Ⅳ 티토이즘 Ⅰ소련과 유고슬라비아 Ⅶ 자주노선을 채택한 루마니아 저는 발표하기에 앞서서 대략적으로 간단하게 발칸유럽의 연대를 정리 해 보았습니다. 제 2차 세계대전이 터지고 발칸유럽의 사회주의화는 소련에 의한 공산화와 유고슬라비아의 티토에 의한 공산화로 나누어집니다. 그 과정에서 티토에 불만을 품은 스탈린은 공산주의자 정보 기구인 코민포름에서 유고슬라비아를 제명합니다. 이 사건이 코민포름 분쟁이며, 그 후 둘은 동시에 티토-스탈린 결별을 발표하게 됩니다. 티토는 이후 새로운 노선을 창설하게 됩니다. 이게 티토이즘이고 티토와 스탈린이 결별한 후 얼마되지 않아 1950년 6월 25일 한국전쟁이 일어나게 됩니다. 한국전쟁에 대해서는 뒤에 자세히 설명하도록 하겠습니다. 그리고 1980년 5월 4일 티토가 사망합니다. 자주노선을 채택한 루마니아는 후르시쵸프의 사회주의 국제 분업 구상에 따라 일어나게 된 것인데 연대순으로 하면 한국전쟁 뒤에 오는 건데 설명의 편의를 위해서 맨 마지막에 설명하도록 하겠습니다. 제 2차 세계 대전 Ⅱ 코민포름 분쟁 Ⅲ 티토-스탈린 결별 Ⅴ 한국전쟁
Brotherhood and Unity~!! 사회주의 하에서의 발칸유럽 Ⅰ소련과 유고슬라비아 소련의 중부유럽(체코, 슬로바키아, 폴란드, 헝가리) 장악→소련에 의한 공산화 Brotherhood and Unity~!! → 자력으로 공산화를 이루는데 성공!! 2차 세계대전 이후 소련은 중부유럽(체코, 슬로바키아, 폴란드, 헝가리)를 장악하고 이 나라들은 소련에 의해 공산화가 진행됩니다. 그러나 유고슬라비아의 티토는 문화, 종교, 역사적 차이점으로 갈라져 있던 유고슬라비아내 민족들에게 민족간 형제애와 단결, Brotherhood and Unity를 강조하면서 자력으로 공산화를 이루는데 성공합니다. 알바니아의 경우에 있어서도 티토의 지원을 통해 알바니아 또한 공산화를 이루게 되는데 이 대가로 알바니아 알바니아 인이 다수 거주하고 있던 코소보 지역을 유고슬라비아에게 양보하게 되는데, 이후 코소보 지역은 발칸유럽의 주요 분쟁지역으로 부각되게 됩니다. → 티토의 지원을 통한 알바니아의 공산화 (이후 코소보 지역은 발칸유럽의 주요 분쟁지역으로 부각되게 됨) 유고슬라비아의 티토
Ⅱ 코민포름 분쟁(Cominform Conflict) 사회주의 하에서의 발칸유럽 Ⅱ 코민포름 분쟁(Cominform Conflict) 스탈린은 티토의 독자 행보에 대한 반발로 1948년 소련 및 동유 럽 국가들의 정치적 연합 단체였던 코민포름으로부터 유고슬라비 아를 강제 축출 다음은 코민포름 분쟁을 설명하도록 하겠습니다. 이 사진은 스탈린과 티토 인데요, 티토는 동유럽 내에서 독자 공산화를 성공했다는 강한 자부심을 지니고 있었고, 이를 기초로 발칸유럽내에서 영향력을 확대해 가고자 했습니다. 하지만, 스탈린은 이러한 티토의 독자 행보에 대한 반발로 1948년 소련 및 동유럽 국가들의 정치적 연합 단체였던 코민포름으로부터 유고슬라비아를 강제 축출하고, 동유럽 내에서 반소련주의자들을 티토주의자로 몰아 숙청해 나가게 됩니다. 티토와 그 지도부는 동유럽 내에서 유일하게 독자 공산화 를 성공했다는 강한 자부심을 지니고 있었음
1948년 코민포름 총회 → 유고슬라비아영구제명 결정 (코민포름 분쟁) 사회주의 하에서의 발칸유럽 Ⅲ 티토-스탈린 결별 1948년 코민포름 총회 → 유고슬라비아영구제명 결정 (코민포름 분쟁) ↓ 1949년 티토-스탈린 결별 유고슬라비아의 엄청난 재정적 위기 1949년 중화 인민 공화국의 선포 1950년 6월 한국전쟁발생 → 강대국으로 부터의 지원 코민포름 분쟁이후 1949년 소련과 유고슬라비아는 동시에 티토-스탈린 결별을 발표합니다. 당시 유고슬라비아는 모든면에서 소련과 동유럽 국가들에 의존하고 있던 상황에서 모든 원조와 교류의 중단은 엄청난 타격이었습니다.그 영향으로 유고슬라비아는 엄청난 재정적 위기를 겪습니다. 하지만 1949년 중화인민공화국이 선포되면서 유고슬라비아는 중국 쪽으로 다가서기 시작하면서, 재정상황도 조금씩 나아지기 시작합니다. 하지만 중국이 비동맹국 회의에 참석하게 되자 유고슬라비아도 자연스럽게 중립국이자 비동맹국으로 인식됩니다. 결과적으로 1950년 6월에 발생한 한국전쟁을 계기로 유고슬라비아는 미국을 비롯한 서유럽의 대규모 경제, 군사지원을 얻어내는데 성공하게 되고, 이후, 코민포름 분쟁과 한국전쟁 경험을 기초로 당시 냉전체제하 어느 블록에도 속하지 않고 자국의 안전과 발전을 위한 방책으로 새로운 외교 노선인 비동맹주의를 창설합니다. ‘비동맹주의’ 창설
사회주의 하에서의 발칸유럽 Ⅳ 티토이즘(Titoism) 비동맹정책- 외교정책 자주관리제도- 경제, 사회정책 유고슬라비즘(Yugoslavism)- 민족정책 다음으로 티토이즘을 설명하겠습니다. 티토이즘은 크게 세가지로 구성될수 있습니다. 민족정책인 외교정책인 비동맹정책 경제, 사회정책인 자주관리제도로 구성됩니다. 먼저, 유고슬라비즘의 예로는 혼혈정책인 유고슬라비아인들 들수가 있는데 세르비아인과 크로아티아인이 결혼해서 낳은 아이는 유고슬라비아인이 됩니다. 티토는 이렇게 정치적 민족주의를 지향했습니다. 정치적 민족주의란 민족과 국가를 동일시 하고, 민족보다는 국가를 중요시 합니다. 민족이 같든 다르든 한 국가 내에 있으니깐 우린 같은 민족이다 이런 개념이라고 생각하시면 됩니다.(정치적 민족주의의 반대 개념은 문화적 민족주의인데, 이 문화적 민족주의는 민족과 국가는 별개이며, 국가보다는 민족에 대한 충성을 강조합니다. 그 예로는 세르비아니즘이 있습니다.) 앞의 슬라이드에서 설명드린(티토-스탈린결별)사건의 결과물로써 코민포름 분쟁과 한국전쟁 경험을 기초로 당시 냉전체제하 어느 블록에도 속하지 않고 자국의 안전과 발전을 위한 방책으로 새로운 외교 노선인 비동맹주의를 창설 하였는데, 여기서 비동맹주의란? 주요 강대국 ,미국과 소련, 양극화된 어느 한 분파에 편파되지 않으며 자국의 이익이나 각국의 협력에 따라 이익을 모색하는 국제정치의 한 방법으로써 주로 신생국사이에서 발생하는 이 이주의는 강대국을 배재하기보다는 새로운 방침을 통하여 세력의 불균형을 해소한다고 생각하시면 될 것 같습니다. 티토이즘의 마지막 단락인 자주관리제도는 회사의 이익창출의 기초가 되는 노동자들이 회사의 명령에 따라 일하기보다는 노동자들의 주체적으로 일을 하는 민주적 경영방식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쉬운 예로는 키친아트라는 회사를 꼽을수가 있습니다. 이 회사는 부도난 기업을 인수하여 새로운 경영자가 아닌 노동자들이 직접경영을 하여 우량기업으로 되살렸습니다. 다음은 티토에 대한 평가입니다. 엄격하고 경직된 관료조직 중심의 스탈린식 공산주의 체제를 거부한 티토의 공산주의 노선은 많은 언론과 여론으로 부터 인간의 얼굴을 한 사회주의라는 긍정적인 평가를 받았다고 합니다. • 엄격하고 경직된 관료조직 중심의 스탈린식 공산주의 체제를 거부한 티 토의 공산주의 노선은 서유럽의 많은 지식인들과 여론으로부터 ‘인간의 얼굴을 한 사회주의’라는 긍정적인 평가를 받음
→소련과 그 위성국가들의 침공저지!! →비동맹 외교 정책!! 한국전쟁이 유고슬라비아에 끼친 영향과 그 의미는? 사회주의 하에서의 발칸유럽 Ⅴ 한국전쟁 한국전쟁이 유고슬라비아에 끼친 영향과 그 의미는? →소련과 그 위성국가들의 침공저지!! →비동맹 외교 정책!! 한국전쟁을 계기로 유고슬라비아가 비록 NATO에 가입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미국, 영국, 그리고 프랑스 서구 국가들로부터 분명한 지원과 원조를 약속 받게 되는데, 무엇보다도 서구 국가들의 이러한 대응은 소련이나 그 위성국가들이 유고슬라비아를 침공하려 했던 뜻을 꺾어 놓았다. 이후, 비슷한 외교노선을 견지하고 있음을 확인하게 된 제 3 세계 국가들 인도, 이집트등 과의 외교적 연대를 통해 독자적 외교 노선인 ‘비 동맹 외교정책’의 기틀을 수립하게 된다.
Externally Internally 사회주의 하에서의 발칸유럽 Ⅵ 티토의 사망 이후 비동맹 외교의 한계점이 드러나는 가운데 티토의 사망은 유고슬라비아에 게 대외적인 위기감을 증폭 시킴 •여러 민족들의 권리 확대 요구와 시위 발생 •자주관리 제도의 여러 문제점이 노출되면서 민족간 지역간 갈등확대 1980년 5월 4일 베오그라드에서 티토의 사망으로써 내부적으로 외부적으로 영향을 미치게됩니다. 내부적으로는 권리확대와 시위가 발생하고, 민족 및 지역간의 갈등이 발생하였습니다. 외부적으로 비동맹 외교의 한계점이 드러났습니다. 노동자들이 회사의 경영보다 자신들의 이익추구를 하는 경향으로 바뀌어 기존의 긍정적인 효과가 이질된것입니다. 발표가 길어서 지루하시죠 ?제가 티토의 사망에대해 인터넷을 조사하던중 장례식 동영상이 있어서 잠깐 보고 다음 슬라이드로 넘어가겠습니다.
동유럽 국가의 경제여건에 따라 특화 산업부문을 배정 공업화 수준이 낮았던 루마니아는 원료생산기지로서의 역할 수행 사회주의 하에서의 발칸유럽 Ⅶ 자주노선을 채택한 루마니아 스탈린 사후, 1956년 새로운 소련의 실권자로 등장한 후르시쵸프의 ‘사회주의 국제 분업(Socialist International Division of Labor)의 구상 사회주의 국가간 다자간 서로서로 협력 해야 해!! 루마니아가 자주노선을 채택한 이유는 스탈린 사후 소련의 새로운 실권자로 등장한 후르시쵸프의 사회주의 국제 분업의 구상에 있다고 보시면 됩니다. 후르시쵸프는 그동안 사회주의 국가들간의 경제 교류를 확산해 가던 방식을 벗어나, 사회주의 국가간 다자간 협력 조정기능을 본격화하는 분업 안을 통해 효율적 경제 협의체 구성에 대한 구상을 발표하게 된다. 루마니아는 다른 동유럽국가보다 공업화 수준이 낮은 농업국가입니다. 그래서 소련의 사회주의 국제분업의 제의에 자국의 공업화 수준과 경제적 실태를 조사한 결과 원료생산기지로써의 분업은 자국에게 큰 도움을 주지못 할것으로 판단하여 이를 거절하였습니다. 이에 따라 루마니아는 사회주의 국제분업과는 별개로 자국 스스로 국가이익과 주권을 독차지하는 자주독립노선을 채택하게 되었습니다. 반면에 미국은 마셜플랜을 통해 제 2차 세계대전의 피해를 극복하고 경제 발전을 지속해 나가고 있었다. 동유럽 국가의 경제여건에 따라 특화 산업부문을 배정 공업화 수준이 낮았던 루마니아는 원료생산기지로서의 역할 수행 루마니아의 거절 자주노선 수립
20세기 : 민주화 시기의 발칸유럽 1. 민족주의 성향의 확대 2. 각 나라 독립과 유고내전 안녕하세요 저는 20세기 민주화 시기의 발칸유럽을 발표하겠습니다. 첫번째로 민족주의 성향의 확대 두번째 각 나라 독립과 유고내전 세번째 2006년 6개 공화국의 분리로 나누어봤습니다. 3. 유고슬라비아 6개 공화국의 분리
민주화 이후 발칸 유럽은? 연방 국가들의 분열과 민족 간 분쟁 심화 동유럽 국가들의 EU 및 유로존 가입
민족주의 성향의 확대 1. 민족주의 성향 확대 사회주의 체제의 베를린 장벽 붕괴 몰락 공산당일당 독재의 폐지 다당제 선거 실시 3개 이상의 정당이 존재하는 정당제의 하나. 첫번째 민족주의 성향이 확대된 배경을 보면 1989년 베를린 장벽 붕괴로 상징되는 사회주의 체제의 몰락과 공산당 일당 독재의 폐지 그리고 3개이상의 정당이 존재하는 정당제의 하나인 다당제 선거는 유고슬라비아 각 공화국 내 연방탈퇴를 전제로 한 민족주의 정치 지도자들과 민족주의 성향의 확대를 낳았다.
1국가 2체제의 정치 형태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 연방/ 스르프스카 공화국 ) 세르비아계(49%) 보스니아 무슬림,가톨릭 크로아티아계(51%) 2. 각 나라 독립과 유고내전 1국가 2체제의 정치 형태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 연방/ 스르프스카 공화국 ) 1991년 6월 슬로베니아, 크로아티아 독립 선언 유고내전 발생 보스니아 국제 평화안 데이턴 합의안 1992년 1991년 6월 사회주의 유고슬라비아 연방의 구성 공화국이었던 슬로베니아와 크로아티아가 독립을 선언하였고 뒤이어 유고내전은 유고슬라비아 연방군이 슬로베니아와 크로아티아의 독립을 막기 위해 슬로베니아를 침공함으로써 시작되었다. 이웃하고 있던 크로아티아에서의 내전은 보스니아 내 크로아티아인들과 무슬림들의 연방으로부터의 독립을 자극하였습니다. 유고내전은 곧 바로 1992년 보스니아 독립선언과 함께 발생한 보스니아 내전으로 확대되었습니다. EN과 UN이 여러 차례 제시한 평화한 시도가 실패하자 내전에 개입한 미국의 중재로 1995년 11월 데이턴 합의안에 의해서 보스니아 내전은 종결되었습니다. 이에 따라 보스니아는 1국가 안에 정교도 세르비아계의 스르프스카 공화국과 보스니아 무슬림과 카톨릭 크로아티아계가 차지안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라는 2체제의 정치 형태로 등장하게 되었습니다. 보스니아의 분리가 확실해지자 유고슬라비아 연방 공화국 수립을 하게됩니다. 보스니아 독립선언 ,보스니아 내전 발발 1992년 4월 유고슬라비아 연방 공화국 수립
슬로베니아,크로아티아,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 3.유고슬라비아, 6개 공화국으로 분리 6개의 개별 공화국으로 분리 마케도니아 내전 슬로베니아,크로아티아,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 세르비아 , 몬테네그로, 마케도니아 코소보 독립문제 보스니아 민족문제 마케도니아 내전, 코소보 독립문제 ,보스니아 민족문제등 여러 차례의 내전 결과 사회주의 유고슬라비아는 2006년 6월 독립을 선언한 몬테네그로와 더불어 모두 6개의 개별 공화국으로 분리되었습니다.
구유고슬라비아의 마케도니아 공화국 으로 국명 마케도니아 내전 1990년 5월 티토 사망 1991년 9월 국민투표를 통해 독립 선포 그리스 마케도니아 독립 당시 EU 회원국이던 그리스가 고대 마케도니아 제국에 대한 역사적 정통성을 들어 마케도니아의 독립에 반발, 양측은 군사적 대치 상태까지 이르렀다. 그러나 미국과 유럽 각국의 개입으로 큰 충돌없이 양국 관계는 곧바로 정상화됐다. 구유고슬라비아의 마케도니아 공화국 으로 국명 1993년 UN 중재안
코소보 내 세르비아인과 알바니아인들의 갈등 밀로쉐비치의 대세르비아 민족주의 니토의 세르비아 공습 코소보 평화안 통과 세르비아(종교:그리스 정교)에 속한 자치주 주민의 다수는 알바니아계(종교:이슬람교) 코소보 전투 코소보 내 세르비아인과 알바니아인들의 갈등 밀로쉐비치의 대세르비아 민족주의 당시 코소보에선 소수민족이면서 경제와 정치 주도권을 행사하고 있던 세르비아인들과 다수 민족이면서도 열악한 환경 속에 살고 있던 알바니아 인들 사이에 갈등고 충돌이 끊이지 않고 있엇다. 민족주의에 대한 공개적 발언과 함께 강력한 세르비아 민족주의 부활을 선언. 마침내 코소보 내 알바니아인들의 인권수호를 전제로 내세운 나토가 세르비아를 공습함 .이사진은 나토의 세르비아 공습을 그린 그림이다. 수많은 인명피해가 발생하자. 결국 러시아의 중재로 양측은 1999년 6월 10일, 코소보에서 세르비아군의 즉각 철수, UN평화유지군의 코소보 주둔을 원칙으로 하는 코소보 평화안에 합의한다 세르비아의 인종청소가 전 세계에서 비난을 받았으며, 이를 지시한 유고슬라비아의 밀로셰비치 대통령이 전쟁범죄로 후에 체포되었다. 독립선언은 했으나 아직 세계로부터 인정받지 못하고 있음. 니토의 세르비아 공습 코소보 평화안 통과
폐허가 된 정교도 교회 전쟁으로 인한 코소보 난민들 폐허가된 건물 , 정교도 교회를 볼수있다. 터키 문화의 영향을 받은 모스타르다리
동유럽 국가들의 EU와 유로존 확대 EU의 중동부유럽 확대 과정 민족 갈등과 분쟁을 경험 체제전환에 따른 혼란 1989년 베를린 장벽 붕괴와 소련의 해체 이후 중•동부유럽은 체제전환에 따른 혼란 그리고 민족 갈등과 분쟁을 경험.그러나 상당수 국가들은 어려움을 극복하고 정치적 사회적 안정을 위해 EU 가입을 통한 진정한 유럽사회로의 편입이라는 이상을 국민들에게 홍보하여 동유럽 국가들의 EU와 유로존 가입을 확대했습니다. 2004년 슬로베니아,2009년엔 슬로바키아가 새롭게 유로존에 가입했구요 2012년을 목표로 EU가입을 앞두고 있는 크로아티아를 비롯해 EU가입절차를 밟고 있는 세르비아등이 있습니다, 이사진은 루마니아에서 2007년 1월 1일자로 EU에 공식 가입한 루마니아의 부쿠레슈티 시민들이 EU기를 흔들며 새해를 축하하고 있다. 앞으로도 이러한 상황속에서, 동유럽 국가들은 진정한 유럽 국가의 일원으로써의 발전과 밝은 미래를 앞두고 있습니다. 동유럽 국가들의 EU와 유로존 확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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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VALA LEP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