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원의 주제 25 삶을 긍정하는 유신론적 허무주의 전도서 성경본문 전도서 1:1~12:14
엯전도서의 배경
1 전도서의 명칭과 배경
2 전도서의 저자
전도서의 배경 . 솔로몬 왕
본문과 해석
첫 번째 말씀 – 세상만사의 헛됨 – 허무주의 (전1:1~11; 12:1~8) 본문과 해석 첫 번째 말씀 – 세상만사의 헛됨 – 허무주의 (전1:1~11; 12:1~8) 두 번째 말씀 – 하나님 역사의 불가의성 (전 3:1~4:16) 세 번째 말씀 – 인간 한계의 긍정 (전1:12~26) 네 번째 말씀 – 하나님의 심판에 대비 (전12:9~14)
1 첫 번째 말씀 – 세상 만사의 헛됨 - 허무주의 (잠1:1~11; 12:1~8)
본문과 해석 1. 첫 번째 말씀 . 애곡
전도자가 이르되 헛되고 헛되며 헛되고 헛되니 모든 것이 헛되도다 본문과 해석 1. 첫 번째 말씀 – 세상만사의 헛됨 – 허무주의 사건의 내용 & 용어 해설 “전도자” (전 1:2) 전도자가 이르되 헛되고 헛되며 헛되고 헛되니 모든 것이 헛되도다
전도자가 이르되 헛되고 헛되며 헛되고 헛되니 모든 것이 헛되도다 본문과 해석 1. 첫 번째 말씀 – 세상만사의 헛됨 – 허무주의 사건의 내용 & 용어 해설 “헛되고 헛되며 헛되고 헛되니” (전 1:2) 전도자가 이르되 헛되고 헛되며 헛되고 헛되니 모든 것이 헛되도다
한 세대는 가고 한 세대는 오되 땅은 영원히 있도다 본문과 해석 1. 첫 번째 말씀 – 세상만사의 헛됨 – 허무주의 사건의 내용 & 용어 해설 “땅은 영원히 있도다” (전 1:4) 한 세대는 가고 한 세대는 오되 땅은 영원히 있도다
이미 있던 것이 후에 다시 있겠고 이미 한 일을 후에 다시 할지라 본문과 해석 1. 첫 번째 말씀 – 세상만사의 헛됨 – 허무주의 사건의 내용 & 용어 해설 “이미 있던 것이 후에 다시 있겠고” (전 1:9) 이미 있던 것이 후에 다시 있겠고 이미 한 일을 후에 다시 할지라 해 아래에는 새 것이 없나니
이전 세대들이 기억됨이 없으니 장래 세대도 그 후 세대들과 함께 본문과 해석 1. 첫 번째 말씀 – 세상만사의 헛됨 – 허무주의 사건의 내용 & 용어 해설 “그 후 세대들과 함께 기억됨이 없으리라” (전 1:11) 이전 세대들이 기억됨이 없으니 장래 세대도 그 후 세대들과 함께 기억됨이 없으리라
2 두 번째 말씀 – 하나님 역사의 불가사의성 (전 3:1~4:16)
“마음을 다하며” (전 1:13) 마음을 다하며 지혜를 써서 하늘 아래에서 행하는 본문과 해석 2. 두 번째 말씀 – 하나님 역사의 불가의성 사건의 내용 & 용어 해설 “마음을 다하며” (전 1:13) 마음을 다하며 지혜를 써서 하늘 아래에서 행하는 모든 일을 연구하며 살핀즉 이는 괴로운 것이니 하나님이 인생들에게 주사 수고하게 하신 것이라
“내 마음이 지혜와 지식을 많이” (전 1:16) 내가 내 마음 속으로 말하여 이르기를 보라 내가 크게 되고 지혜를 본문과 해석 2. 두 번째 말씀 – 하나님 역사의 불가의성 사건의 내용 & 용어 해설 “내 마음이 지혜와 지식을 많이” (전 1:16) 내가 내 마음 속으로 말하여 이르기를 보라 내가 크게 되고 지혜를 더 많이 얻었으므로 나보다 먼저 예루살렘에 있던 모든 사람들보다 낫다 하였나니 내 마음이 지혜와 지식을 많이 만나 보았음이로다
지혜가 많으면 번뇌도 많으니 지식을 더하는 자는 근심을 더하느니라 본문과 해석 2. 두 번째 말씀 – 하나님 역사의 불가의성 사건의 내용 & 용어 해설 “지혜가 많으면 번뇌도 많으니” (전 1:18) 지혜가 많으면 번뇌도 많으니 지식을 더하는 자는 근심을 더하느니라
“내가 나를 위하여 집들을 짓고” (전 2:4) 나의 사업을 크게 하였노라 내가 나를 위하여 집들을 짓고 포도원을 일구며 본문과 해석 2. 두 번째 말씀 – 하나님 역사의 불가의성 사건의 내용 & 용어 해설 “내가 나를 위하여 집들을 짓고” (전 2:4) 나의 사업을 크게 하였노라 내가 나를 위하여 집들을 짓고 포도원을 일구며
3 세 번째 말씀 – 인간 한계의 긍정 (전 1:12~26)
좋은 이름이 좋은 기름보다 낫고 죽는 날이 출생하는 날보다 나으며 본문과 해석 3. 세 번째 말씀 – 인간 한계의 긍정 사건의 내용 & 용어 해설 “죽는 날이” (전 7:1) 좋은 이름이 좋은 기름보다 낫고 죽는 날이 출생하는 날보다 나으며
“초상집에 가는 것이” (전 7:2) 초상집에 가는 것이 잔칫집에 가는 것보다 나으니 모든 사람의 끝이 본문과 해석 3. 세 번째 말씀 – 인간 한계의 긍정 사건의 내용 & 용어 해설 “초상집에 가는 것이” (전 7:2) 초상집에 가는 것이 잔칫집에 가는 것보다 나으니 모든 사람의 끝이 이와 같이 됨이라 산 자는 이것을 그의 마음에 둘지어다
영은 그것을 주신 하나님께로 돌아가기 전에 기억하라 본문과 해석 3. 세 번째 말씀 – 인간 한계의 긍정 사건의 내용 & 용어 해설 “흙” (전 12:7) 흙은 여전히 땅으로 돌아가고 영은 그것을 주신 하나님께로 돌아가기 전에 기억하라
영은 그것을 주신 하나님께로 돌아가기 전에 기억하라 본문과 해석 3. 세 번째 말씀 – 인간 한계의 긍정 사건의 내용 & 용어 해설 “하나님” (전 12:7) 흙은 여전히 땅으로 돌아가고 영은 그것을 주신 하나님께로 돌아가기 전에 기억하라
본문과 해석 3. 세 번째 말씀 – 인간 한계의 긍정 사건의 내용 & 용어 해설 지옥의 문, 로뎅
본문과 해석 3. 세 번째 말씀 – 인간 한계의 긍정 사건의 내용 & 용어 해설 고대 이스라엘인의 무덤 동굴
4 네 번째 말씀 – 하나님의 심판에 대비 (전 12:9~14)
신학적 의미
신학적 의미 서론 헬무트 틸리케(H.Thielicke)는 그의 저서 ‘허무주의’(Nihilism)에서 한 여인의 사례를 들고 있다. 38세의 한 여인이 네 번에 걸쳐 자살을 기도했다. 그 여인은 우울증을 앓고 있는 정신질환 환자였다. 거기에는 이유 하나가 있었다. 부주의로 인해 자신의 한 살된 아기가 염산을 먹고 엄마가 보는 앞에서 죽어간 일이었다. 이 비극적 사건 이후 이 여인은 정신병 환자로 변했던 것이다. 2년이 지나는 동안 이 여인은 그 충격과 좌절을 극복해가는 그 어떤 징후도 보이지 않았다. 더욱 놀라운 일은 이 여인은 자기 아기의 죽음 이라든지, 거기에 대한 죄의식 이라든지, 겪고 있는 절망이나 슬픔 같은 감정표현을 단 한번도 표출하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아무런 감정의 반응도 보이지 않았다. 그 여인에게 남은 것은 ‘공허’(emptiness)뿐이었다. 죽은 아기를 가슴에 안았을 때, 그 여인은 진정한 절망을 경험하고 있는 것처럼 삶들에게 보이기 위해 거짓 절망으로 위장했다는 것이다
신학적 의미 서론 여기서 중요한 것은 여인의 자살 시도이다. 그녀는 아기의 죽음 때문에, 자신의 견딜 수 없는 절망 때문에 자살하려 했던 것이 아니었다는데 문제가 있었다. 오히려 그녀의 자살시도는 홍수처럼 다가오는 ‘공허’(emptinesss)와 ‘허무’(nihil)에 대한 반응이었다. ‘허무’를 도피하기 위해 자살을 선택하려 했던 것이다. 아기의 죽음이 그 여인을 자살로 몰아가는 것이 아니었다는 사실에 주목하게 된다. 아기의 죽음은 이미 어두워져 가는 여인의 공허와 허무를 자극했을 뿐이었다. 아기의 죽음 때문에 자살하려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허무를 도피하는 수단으로 자살을 시도한 것이었다. 의학에서는 이 여인의 병명을 ‘정신분열증’(schizopgrenia)이라고 부른다. 이 여인은 오늘의 모든 현대인들의 실존을 대변한다고 본다.
1 허무주의(nihilism)란?
신학적 의미 1. 허무주의(nihilism)란? 구약 가운데 지혜 문학에 속하는 욥기, 잠언, 전도서 중에서도 삶을 철저한 비관주의로 묘사하고 있는 것이 전도서이다. 잠언이 지혜를 하나님의 선물로 보면서 삶의 긍정과 낙관주의를 교훈하고 있다면, 전도서는 모든 것은 ‘헛되고, 또 헛된’ 비관론을 설교하고 있어서 극도의 대비를 이룬다. 전도서의 허무성을 이해하기 위해서 우리는 먼저 무엇이 ‘허무주의’ 인가를 규명할 필요를 가진다. 허무주의(nihilism)는 ‘nihil’이라는 어원에서 왔으며, nihil은 ‘무’(nothingness)를 뜻한다. 허무주의는 이 ‘무’를 찬양하는 사상이다. ‘무’를 마치 실재와 진리인양 찬양하고 신봉하는 일종의 종교이다. 인간의 죽음, 죽음 이후에 아무것도 남지 않는 좌절 그리고 그 ‘무’에 대한 공포와 인간은 계속 씨름해 왔으며, 그 씨름의 주제가 ‘허무주의’이다. 일차적으로 전도서의 테마는 ‘영화’와 ‘부귀’를 다 누리고 난 후 남은 것은 아무것도 없다는 사실을 경험하고 노래한 저자(솔로몬일 수도 있고, 후대의 편집자일 수도 있다)의 기록이다..
신학적 의미 1. 허무주의(nihilism)란? 전도서는 허무주의를 노래한 고백과 시이다. 허무주의는 역사적으로 ‘노스틱주의’(Gnosticism)의 철학적 구조 속에 깊숙이 침투하였고, 이 사상은 초대 교회 신앙을 크게 흔들었다. 노스틱주의는 선한 ‘영’(Aeon)과 악한 ‘육’으로 이원화하여 사람, 세계, 우주를 이해한다. 선한 ‘Aeon’이 악한 ‘육’에 감금되어 있는 것이 인간이고, 인간의 삶이라고 이해한다. 그러기에 악한 육과 관계된 모든 것은 ‘허구’이고, 거짓이며, 또 죄악이다. 그러므로 구원은 이 악한 ‘육’을 탈출하여 ‘Aeon’이 다시 하늘로 올라가는 때이다. 바로 이 구원의 방법은 ‘고행’, ‘자학’, ‘금욕’, ‘자살’등으로 표현되었다. 피상적으로 볼 때 허무주의는 바울의 신앙 고백 가운데도 표현되었다.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롬 7:24) 단테(Dante)의 신곡 중에 나오는 지옥은 공간이 아니라 ‘무’로 표현되고 있으며, 이도 삶의 허무주의의 한 단면이다.
신학적 의미 1. 허무주의(nihilism)란? 20세기에 들어서면서 세계가 제1차, 2차 세계대전을 치루고 난 이후, 인간이 무한대로 발전시킬 수 있다고 장담했던 서구 문명의 극치가 산산조각이 난 후, 강하게 부상한 실존주의 사상 그 저변에는 ‘허무’, ‘무존재’(non-being)사상이 깊숙이 자리 잡았다. 삶은 궁극적으로 non-being이라고 보았던 틸리히(P. Tillich)도 현대인의 허무주의를 표출하기 위해 사용한 사상적 주제였다. 여기서 전도서를 쓴 전도자는 말한다. “은금과 왕들의 보배와 여러 도의 보배를 쌓고 또 노래하는 남녀와 인생들의 기뻐하는 처와 첩들을 많이 두었노라”(전2:8). “은을 사랑하는 자는 은으로 만족함이 없고 풍부를 사랑하는 자는 소득으로 만족함이 없나니 이것도 헛되도다”(전5:10). 무엇으로도 삶의 ‘허무’를 메꿀 수 없는 한계의식과 허무주의는 전도서만이 아니라 문명의 극치를 추구하는 현대인의 깊은 위협이요, 공포임에 틀림 없다. 허무주의는 우리 삶의 허구성과 허무를 솔직히 드러내고 또 그것을 과감히 노래하는 사상이다.
2 무신론적 허무주의 (atheistic nihilism)
신학적 의미 2. 무신론적 허무주의(atheistic nihilism) 그러나 문제는 허무주의 그 자체에 있지 않다. 오히려 문제는 누구에게나 심층에 내면화되어 있는 삶의 ‘허무’와 ‘무의미성’을 어떻게 대면하고 또 해결 하려는가에 있다. 그 하나를 허무주의(nihilism)라고 부를 수 있다. 헬무트 틸리케(H. Thielicke)는 이것을 ‘위장된 허무주의’라고 부른다. ‘무신론적 허무주의’ 혹은 ‘위장된 허무주의’는 삶의 ‘허무’와 ‘무’를 인간이 고안한 방법으로 극복해보려는 사상과 운동을 지칭한다. 틸리케는 독일 히틀러와 나치스를 그 예로 든다. 일본의 가미가제도 같은 범주에 들며, 북한의 공산정권도 이 범주 안에 있다. 그들은 한결같이 애국주의라는 이름으로 전쟁을 ‘거룩하고’, ‘목적이 있으며’, ‘정의’로운 것으로 만든 후 수많은 젊은이들을 죽음으로 몰아가는 정치 지도자들이며, 이들이야 말로 ‘삶의 허무’를 거룩 전쟁의 수단으로 극복하려는 위장된 허무주의자들인 것이다.
신학적 의미 2. 무신론적 허무주의(atheistic nihilism) 위장된 허무주의는 정치인들의 거짓된 선동에만 있는 것은 아니다. 틸리케에 따르면 부흥강사들과 교회지도자들도 이 범주에 속하기 쉽다는 것이다. 거룩한 음성과 말투로, 멋있는 몸짓으로, 마술적인 슬로건을 가지고, 때로는 격앙된 감정으로 회중을 계획된 목적으로 끌고 가는 것이야말로 위장된 허무주의라는 것이다. 마치 삶의 ‘허무’와 ‘무’를 극복할 수 있는 것 같은 환상에로 사람들을 잘못 인도하고 있기 때문이다. 자살을 여러 번 시도한 38세의 여인은 허무를 자살로 극복하려 했으며, 오늘의 많은 젊은이들은 향락과 폭력, 그리고 마약으로 허무성을 이겨 보려 한다. 이것은 위장된 허무주의인 것이다. 한국교회가 행여 왜곡된 ‘교회성장론’에 심취되어 교회의 외적 팽창과 프로그램의 나열 그리고 교회봉사가 마치 삶의 ‘허무’를 극복하는 길이라고 셜교한다면, 이도 위장된 허무주의의 과오를 범하는 결과가 될 것이다.
3 전도서 신학 – 유신론적 허무주의
신학적 의미 3. 전도서 신학 – 유신론적 허무주의 전도서도 허무주의에서 출발하였다. 그러나 전도서는 무신론적 허무주의 혹은 위장된 허무주의는 아니다. 전도서는 헛되고 헛된 삶의 한계를 그 어떤 비본질적인 방법으로 위장하거나 은폐하려 하지 않는다. 이것은 전도서의 신학과 사상을 이해하는데 대단히 중요한 단서이다. 오히려 전도자는 틸리케의 말을 빌리면 ‘고백적 허무주의’(confessional nihilism)이다. 전도서가 고백적 허무주의라고 하는 이유는 ‘삶의 무의미성’, ‘삶의 허무’와 절망을 인간의 인위적인 수단이나 방법으로 극복하려 하지 않고 있다는 사실에 출발한다. 전도자는 자신이 누린 영화와 부귀를 가지고 허무를 위장하지도 않았다.
신학적 의미 3. 전도서 신학 – 유신론적 허무주의 오히려 전도자는 영화가 끝나고 부귀가 사라진 그 뒤에 찾아온 허무와 ‘무’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인정하고 또 그것을 고백할 수 있었다는 의미에서 ‘고백적 허무주의’인 것이다. 틸리히(Paul Tillich)교수는 그의 저서 ‘존재로의 용기’(The Courage to Be)에서 삶의 허무와 무의미, 그리고 절망과 불안을 있는 그대로(위장하지 아니하고) 받아들이는 용기를 ‘절망의 용기’(courage of despair)라고 불렀다. 전도서의 신학은 ‘헛되고 헛되도다’의 허무를 찬양하거나 노래한 것이 아니라 허무를 삶의 실재로서 솔직히 받아들이고 고백했다.는 점에서 ‘절망의 용기’를 수용한 것이었다. 그러므로 전도서는 비과주의와 허무주의를 찬양하는 서사시가 아닌 것이다.
신학적 의미 3. 전도서 신학 – 유신론적 허무주의 전도서를 허무주의 사상으로만 해석할 때 우리는 그 뒤의 숨은 메시지를 놓치게 된다. 삶 그 자체가 한계라는 엄숙한 실존을 있는 그대로 고백한 것이라고 보아야 할 것이다. 여기서 ‘회개’란 말은 절망과 허무에 대한 있는 그대로의 자기 고백이고, 수용인 것이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전도서 신학은 이 절망의 용기에서 끝나지 않는다는 데 있다. 절망의 용기에서 출발한 전도서는 삶의 허무 뒤에는 영원하신 하나님이 계시다는 사실을 수용하고 있다. 우주를 창조하시고 또 경륜하시는 하나님은 삶과 역사의 주시요, 생명이심을 고백하는 용기에로 이어졌음에 주목해야 한다. 욥과 같이 하나님과의 극적 만남은 없었지만, 전도자는 ‘창조주’하나님 안에서만 허무와 ‘무’를 극복할 수 있다는 신앙고백으로 결론을 얻는다.
신학적 의미 3. 전도서 신학 – 유신론적 허무주의 ‘신앙의 용기’(courage of faith)이다. 무신론적 허무주의는 삶의 허무를 위장된 수단과 방법으로 극복하려 하지만, 그것은 자기 파멸로 가는 길이다. 그러나 유신론적 허무주의는 삶의 허무를 있는 그대로 고백하고 수용하지만, 그 허무 이후는 오직 창조주 하나님께 있다는 신앙에서 해결을 찾는다. 여기서 유신론적 허무주의는 본래의 삶과 세상은 허무와 절망이지만, 그것을 하나님 안에서, 하나님을 창조주로 기억하는 신앙 안에서 바라볼 때에 삶과 세상은 하나님의 영광과 뜻을 실현해 가는 소중한 터전으로 변화된다는 것을 교훈으로 남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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