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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세기 한국어 한국어의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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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세 한국어의 성격 한국어사의 시대 구분에서 임진왜란이 끝난 뒤 17세기 초부터 19세기 말까지 3세기에 걸친 기간을 근세/근대 한국어라고 부름. ‘근대’라는 용어는 역사학, 사회과학에서 특별한 의미로 불리므로, ‘근세 한국어‘가 오해를 방지하기 위해 나은 용어임. 중세 한국어와 근세 한국어를 가르는 경계선이 임진왜란이라는 생각은 별다른 근거가 없음. 전란으로 인한 인구이동, 방언 접촉이 언어 변화를 야기했을 수 있으나, 임진왜란 이 야기한 그러한 변화에 대한 증거는 아직 찾을 수 없음. 중세어와 근세어 사이의 차이는 16세기에 축적된 변화의 산물. 근세어 문헌은 중세어에 비해 非균질적인 모습을 보임. 근세어의 공시적 질서를 파악하기가 쉽지 않음. 중세어 및 현대어와의 차이, 이 둘 사이의 과도기라는 측면이 부각됨. 그러나 어느 시기나 공시적 질서와 통시적 변화의 양 측면이 공존함. 근세어가 다른 시기에 비해 더 불안정한 시기였던 것은 아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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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세어 문헌의 표기법 중세어에 비해 전반적으로 혼란스러운 모습. 음소적 표기와 형태음소적 표기 문헌 간행 주체가 다변화됨.
현대의 맞춤법 같은 어문 규범이 존재하지 않았음. 언어 변화를 문자 표기가 신속히 반영하지 못하고 뒤처지게 됨. 보수적 표기와 改新的 표기가 공존. 심지어 한 문헌, 한 페이지 안에서도. 음소적 표기와 형태음소적 표기 음소적 표기: 음성언어를 소리 나는 대로 적는 것. 예: 수피, 숩도 형태음소적 표기: 각 형태소의 외형을 되도록이면 고정시켜 적는 것. 예: 숲이, 숲도 한국어 표기법의 여러 문제들은 이 두 원칙을 어떻게 조화시킬 것인가에서 발생. 세종이 직접 짓거나 관여한 문헌은 형태음소적 표기를 따름. 15세기의 대다수 문헌은 음소적 표기를 따름. 근세어 문헌도 대체로 음소적 표기를 따르나, 형태음소적 표기도 섞여 있으며 점차 증가하는 경향을 보임. 20세기에 주시경 학파에 의해 형태음소적 표기가 다시 승리를 거두게 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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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철과 분철 체언, 용언 어간이 자음으로 끝나고 조사, 어미가 모음으로 시작될 때(모음 어미, 매개모음어미) 어간말 자음을 어간의 종성으로 표기할지 어미의 초 성으로 표기할지의 문제가 발생. 연철: 어미의 초성으로 표기. 예: 바비, 머거. 음소적 표기를 따른 것. 분철: 어간의 종성으로 표기. 예: 밥이, 먹어. 형태음소적 표기를 따른 것. 15세기 대다수 문헌은 연철을 택했으나, 근세어 시기에 점차 분철이 증가 하는 경향을 보임. 과도분철: 분철할 이유가 없는데도, 형태소 내부에서 분철하는 것. 닐으고 重綴: 어간말 자음을 어간의 종성 및 어미의 초성으로 두 번 적는 것. 완전 중철: 동일 자음을 두 번 적는 것. 예: 밥비, 먹거 부분 중철: 종성과 다음 음절 초성을 다르게 적는 것. 예: 닙피, 덥퍼 ‘ㅍ, ㅌ, ㅋ, ㅊ‘ 등은 초성에서는 제대로 실현되나 종성에서는 ‘ㅂ, ㄷ, ㄱ, ㅅ‘으로 실 현되는 현상을 반영한 것. 재음소화 표기(混綴): ‘ㅍ, ㅌ, ㅋ‘을 ‘ㅂ, ㄷ, ㄱ‘과 ‘ㅎ‘으로 분해하여 표기 닙히, 덥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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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기상의 혼란 ‘ㄴ’과 ‘ㄹ’의 混記 음절말(종성)의 ‘ㅅ’과 ‘ㄷ’ ‘ㆁ’과 ‘ㅇ’
語中에서 본래 ‘ㄴ’인 것을 ‘ㄹ’로 표기하거나 본래 ‘ㄹ’인 것을 ‘ㄴ’으로 표기하는 일이 많음: 거/거, 어미/어미, 놀라/놀나, 진실로/진실노 이것들 중에는 당시의 실제 발음에 있어서 ‘ㄴ’과 ‘ㄹ’이 동요되는 현상을 반영한 것도 있겠으나, 많은 경우 단순히 표기상의 문제. ‘놀라’를 ‘놀나’로도 표기할 수 있었다는 것은 유음화가 발생한 것을 전제로 함. 음절말(종성)의 ‘ㅅ’과 ‘ㄷ’ 15세기에는 전혀 혼동이 없었던 종성 ‘ㅅ‘과 ‘ㄷ‘이 16세기부터 혼기를 보임. 본래 ‘ㅅ‘인 것을 ‘ㄷ‘으로 표기한 경우와 본래 ‘ㄷ‘인 것을 ‘ㅅ‘으로 표기한 것이 공 존하다가, 점차 ‘ㅅ‘으로 통일되어 감. ‘ㆁ’과 ‘ㅇ’ 15세기에 ‘ㆁ’은 [ŋ], ‘ㅇ’은 ø 또는 [ɦ]를 나타내어 엄격히 구분되었었으나 점차 ‘ㆁ’이 종성으로만 표기되게 됨에 따라 종성의 [ŋ]을 굳이 ‘ㆁ’으로 표기하지 않아도 음절내의 위치에 의해 ø 또는 [ɦ]를 나타내는 ‘ㅇ’과 구분될 수 있으므로 점차 초성, 종성 가릴 것 없이 ‘ㅇ’으로 표기되게 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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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음 체계 단모음 16세기에 ‘ㆍ’가 음운론적 단어의 제2음절 이하에서 음소로서의 자격을 상실하여 주로 ‘ㅡ’로 변함. 음운론적 단어의 제1음절에서는 17세기에도 ‘ㆍ’는 음소로서의 자격을 굳건히 유지. 단지 ‘’이 ‘흙’으로, ‘매’가 ‘소매’로 표기되는 것이 나타남. 이들은 ‘ㆍ’가 제1음절에서 ‘ㅏ’로 바뀐 후대의 변화 경향과도 일치하지 않으며 ‘ㆍ’가 아직은 제1음절에서 동요를 보이지 않던 시기에 들쑥 나타난 것. 이 두 단어를 가지고 제1음절에서 ‘ㆍ’의 음소적 지위가 흔들렸다고 보기는 어려움. 17세기의 단모음 체계는 15, 16세기와 별 차이 없음. 이중모음 용언 어간말 y 뒤에 모음어미가 연결될 때 그 사이에 y가 하나 더 삽입되거나 어간 말의 y가 음절 경계 뒤로 이동하는 현상(-아→야/야)이 17세기에도 많이 나타 남. y를 off-glide로 갖는 하향 이중모음이 만약 단모음으로 바뀌었다면 위와 같은 일은 벌어지지 않았을 것. 이들 하향 이중모음이 여전히 이중모음으로 남아 있었음을 보여줌. 이중모음 체계도 중세어의 질서를 유지하고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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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성 합용병서와 어두자음군 17세기에 오면 ‘ㅄ’과 ‘ㅆ’의 혼기, ‘ㅳ’과 ‘ㅼ’의 혼기 등이 많이 나타남.
/, /쑥, -/쓰-, 쏘-/-; /, 나/나 또한 이전 시기의 ‘ㅴ’이 ‘ㅺ’, ‘ㅲ’으로 표기되고, 이전 시기의 ‘ㅵ’이 ‘ㅳ’ 으로도 표기됨: 디-/디-/디-, 리-/리-/리-; / 이것은 이전 시기의 ‘ㅂ’계, ‘ㅄ’계 어두자음군이 더 이상 자음군으로 발 음되지 않고 경음으로 발음되었음을 시사함. 근세어 문헌에서 경음은 각자병서, ‘ㅅ’계 합용병서, ‘ㅂ’계 합용병서의 세 가지 방식으로 표기되다가 점차 ‘ㅅ‘계 합용병서로 통일되어 감. 全一道人, 朝鮮語譯 등 18세기 경에 한국어를 가나로 표기한 자료에는 ㅅ계 합용병서에 해당하는 부분에 ‘ス(su)’라는 표기가 나타남. 安田章, 岸田文隆 등: 이것을 轉寫(transcription)로 보아 당시 한국어에서 ㅅ계 합 용병서의 ‘ㅅ’이 [s]로 발음되었음을 보여 주는 증거로 해석 宋敏: 轉字(transliteration)으로 보아 음가에 대한 증거로 볼 수 없다고 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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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개음화 구개음화의 정의, 전형 ‘ㄷ’ 구개음화와 ‘ㅈ‘ 구개음화
경구개음이 아닌 자음이 특정 조건 하에서(주로 i, y 앞. 어떤 언어에서는 모든 전설모음 앞) 경구개음으로 바뀌는 현상 일종의 동화 현상. 모음에 의한 자음의 동화. i나 y는 전설 고모음으로서 이들 모음 앞에서는 다른 조음위치의 자음보다 경구개음이 가 장 발음하기 쉬움. 한국어사에서는 특히 ‘ㄷ’, ‘ㅌ’이 i, y 앞에서 ‘ㅈ’, ‘ㅊ’으로 바뀐 것이 구개음화의 전형으로 간주됨. ‘ㄷ’ 구개음화와 ‘ㅈ‘ 구개음화 ‘ㄷ’이 i, y 앞에서 경구개음 ‘ㅈ’으로 바뀐다고 할 수 있으려면, 음소 ‘ㅈ’이 이미 i, y 앞에서 경구개음의 이음으로 실현됨을 전제로 함. ‘ㄷ’ 구개음화는 ‘ㅈ‘ 구개음화를 전제로 함. 음소 ‘ㅈ’은 15세기에는 i, y를 포함한 모든 모음 앞에서 항상 치조음 [ʦ](공명음 사이에서는 유성음 [ʣ])로 실현. 중앙 방언에서 음소 ‘ㅈ’이 17세기 후반에 i, y 앞에서 경구개음 [ʧ], [ʤ]로 실현되게 되고 17세기말에 음소 ‘ㄷ’이 i, y 앞에서 다른 음소 ‘ㅈ’으로 바뀌는 현상이 생김. ‘ㅈ’ 구개음화는 하나의 음소가 이음을 하나 더 갖게 되는 변화였지만, ‘ㄷ’ 구개음화는 하나의 음소가 다른 음소로 바뀌는 변화. 전자는 동일한 문자 ‘ㅈ’으로 표기되었으므로 그 예를 문헌에서 찾아낼 수는 없음. 단지 ‘ㄷ’ 구개음화에 조금 앞서 일어났을 것이라고 추론할 수 있을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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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개음화의 하위유형과 지리적 전파 ‘ㄷ’ 구개음화는 먼저 남부 방언에서 발생.
경상 방언이 반영된 重刊 杜詩諺解는 17세기 중엽에 이미 많은 ‘ㄷ’ 구개음화를 보여준다. 중앙 방언에서 ‘ㄷ’ 구개음화는 18세기 문헌에서야 활발하게 나타남. ‘ㄷ’ 구개음화가 먼저 남부 방언에서 발생한 뒤에 서서히 북상하여 17세기말에 중앙 방언에 도 改新波가 미쳤던 것. 그러나 이 개신파는 중부 지역을 넘어서 평안도까지 이르지는 못했음. 평안 방언은 예나 지금이나 구개음화의 영향을 전혀 받지 않았다. 남부 방언과 아울러 함경 방언도 구개음화의 진원지 역할을 했다는 주장도 있음. 남부 방언에서는 ‘ㄱ’의 구개음화도 활발하게 일어남: 길>질, 기름>지름 ‘ㄱ’ 구개음화는 개신파가 중앙 방언에까지 미치지 못함. ‘ㅎ’의 구개음화(‘ㅎ’이 I, y 앞에서 경구개 마찰음 [ɕ]로 바뀌는 현상)도 남부 방언 에서 활발하게 일어남: 형>셩>성 중부 방언은 일부 어휘에만 ‘ㅎ’ 구개음화가 적용됨: 현마>혈마>설마, 힘드렁->심드렁하-, 믈>쎨믈>썰물, 혀캐>셔캐>서캐 ‘ㅎ’ 구개음화는 ‘ㅅ’ 계열의 구개음화가 이미 이루어져 있음을 전제로 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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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개음화와 방언접촉 방언접촉시에 일어나는 현상들 (Trudgill, Dialects in Contact)
교정(correction): 열세방언 화자가 자기 방언형을 위세방언형으로 고치는 것. 과도교정(hypercorrection): 교정을 과도하게 하여 틀린 위세방언형을 쓰는 것. 自方言固守(dialectism): 자기 방언에 대한 pride를 가진 화자가 타 방언의 위협 속 에서도 자기 방언형을 고수하는 것. 과도自方言固守(hyperdialectism): 자기 방언형을 고수하려다가 과도하게 하여 틀린 자기 방언형을 쓰는 것. 17세가 경상 방언 화자 교정: 자기 방언에서 구개음화된 ‘ㅈ‘을 쓰나 의식적으로 중앙 방언을 흉내내어 ‘ㄷ ‘으로 발음/표기. 과도교정: 중앙 방언에서 원래 ‘ㅈ‘인 것을 ‘ㄷ‘으로 고침. 重刊 杜詩諺解: 가지(枝)>가디, 지->디-, 고지(花)>고디, 짗(羽)>딫 18세기 중앙 방언 화자 남부 방언에서 발생하여 北上하던 ‘ㄱ‘ 구개음화에 대해 저항감이 있었음. 자방언고수: 중앙 방언의 ‘ㄱ‘을 유지. 과도자방언고수: 중앙 방언에서 원래 ‘ㅈ‘인 것을 ‘ㄱ‘으로 고침. 짗>깃, 질삼>길쌈, 맛디->맛지->맛기->맡기-, 디새>지새/지와>기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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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ㅅ’과 ‘ㄴ‘의 구개음화 ‘ㅅ’ 계열과 ‘ㄴ’도 ‘ㅈ’ 계열과 마찬가지로 i, y 앞에서 경구개음 의 이음을 갖게 됨.
현대어 자음 체계에서 ‘ㅅ, ㅆ, ㄴ‘이 치조음이라고 하는 것은 편의상의 진술일 뿐이고, 더 정확히 말하자면 치조음-경구개음. ‘니냐녀뇨뉴’가 ‘이야여요유’로 바뀌는 두음법칙은 ‘ㄴ’의 구개음 화 때문에 생긴 현상. 너기->녀기->여기-, 녛->넣-/옇- ‘나뭇잎’, ‘홑이불’과 같은 합성어에서 ‘ㄴ’이 덧나는 현상은 ‘닢’, ‘니블’ 등이 아직 ‘ㄴ’을 가지고 있었을 시기에 합성이 일어나 굳 어진 것. ‘ㄴ’은 일종의 화석 사실은 ‘ㄴ‘이 첨가된 것이 아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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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순모음화 양순 자음 뒤에서는 (특히 후설 고모음의 경우) 평순모음보다는 원순모 음을 발음하기가 쉬움.
중세어까지는 양순 자음 ‘ㅁㅂㅍㅃ’ 뒤에서 모음 ‘ㅡ’가 그대로 발음되었 음. 그래서 ‘믈’(水)과 ‘물’(衆), ‘브르-’(呼)와 ‘부르-’(演) 등이 구별될 수 있었음. 17세기말부터 양순 자음 뒤에서 모음 ‘ㅡ’를 ‘ㅜ’로 바꾸는 변화가 일어남. 譯語類解: 블(火)>불, 무미-(氽水), 부티-, 무던-, 붓- 新傳煮硝方諺解: -로부터, 풀, 부어, 풋. 원순모음화는 일종의 동화 현상: 자음에 의한 모음의 동화 원순모음화는 18세기에 들어가서 좀 더 본격적으로 많은 예들이 나타남. 형태소 경계를 사이에 두고서도 일어남: 품+으니→푸무니, 품+으로→푸무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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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언 어간말 ‘ㄼ’의 변화 현대어에는 어간말에 ‘ㄼ’을 갖는 용언이 많이 있는데 (밟-, 떫-, 얇-)
15세기에는 이것이 모두 ‘ㄹㅸ’이었음. 물론 ‘ㅸ’이 소실된 뒤에는 ‘ㅂ’과 [ɦw]로 비자동적 교체를 보이게 됨. -(踏)>-/오->밟-, -(穿)>듧-/들우-(>뚫-), -(白), -(哀), -(竝). 중세어부터 불규칙활용을 하던 이들 용언이 현대어에 와서는 모두 규칙 활용을 하게 된 점이 특이. 新傳煮硝方에 이미 ‘으며’라는 형태가 나오는 것이 주목됨. 음절말의 ‘ㄼ’은 15세기에는 두 자음 다 발음되었었는데 근세어 시기에 자음군단순화를 겪어 오늘날에는 한 자음만 발음될 수 있음. 두 자음 중 어느 것이 탈락되는가 하는 것은 뒤에 오는 자음에 따라, 그 리고 방언과 화자에 따라 차이를 보임. 고(新傳煮硝方 5), 거(-거, 家禮諺解 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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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수어간교체 어사의 변화 일부 단어에서는 이전 시기의 ‘ㄹㅇ’[lɦ] 연쇄가 그대로 유지되지만
갓쟐애’(革囊), 몰애(沙), 열이-(被開), (粉) 대체로 ‘ㄹㄹ’로 바뀌는 경향이 강함. 놀애>놀래/놀내, 몰애>몰래, 놀>놀, > 일부는 그냥 [r]로 변하기도 했음. 노래, 모래 아주 드물게는 오히려 [ɦ]이 다시 ‘ㄱ’으로 강화되어 표기되기도 함. 禪家龜鑑: 벌에/벌게, 즐어(夭)/즐거 이것은 방언형일 가능성이 높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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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타 변화 유기음화 및 경음화 ㅺ>ㄲ ‘ㅍ’ 앞의 ‘ㄹ’ 탈락 ‘ㅈ’ 계열 앞의 ‘ㄴ’ 삽입
16세기에 나타나기 시작했던 것으로 17세기에도 몇 예가 보임. 고ㅎ(鼻)>코, 고키리(象)>코키리, 갈ㅎ(刀)>칼, ㅎ(臂)>, 닷(故,理由)>탓, 불무>풀 무, 녁>녘; 곶> ->-, 슷-(拭)>씃-, 듧-(穿)>-/-, 곶-(揷)>-, 딯-(搗)>띻- ㅺ>ㄲ 현대어에는 어간말에 ‘ㄲ’을 갖는 단어가 꽤 있는데 이들은 모두 중세어에서는 ‘ㅺ’ 이었음: -(折)>꺾-, (外)>밖, -(削)>깎-, -(編)>엮-, -(炒)>볶- 어간말의 ‘ㅺ’이 ‘ㄲ’으로 바뀐 것은 17세기 문헌에 처음 나타남. ‘엇게’(肩), ‘잇긋’(盡)도 이 시기에 ‘억게’, ‘익긋’으로 나타나 형태소 내부에서도 동일 한 변화가 일어났음을 알 수 있음. ‘ㅍ’ 앞의 ‘ㄹ’ 탈락 앒(前)>앞; 알-(痛)>아-, 골->고-. cf. 잎-(吟)>읊-, 넙-(廣)>넓- ‘ㅈ’ 계열 앞의 ‘ㄴ’ 삽입 초-(藏)>초->초-, 더디->더지->던지-, 그처(斷)>근처, 가치(鵲)>간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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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사 -/은, -/을, -의 공동격 ‘-와/과’
15세기에는 모음조화에 따라, 그리고 체언 말음이 자음이냐 모음이냐에 따라 ‘-/ 는//은’, ‘-/를//을’로 교체를 보이던 주제 보조사와 대격 조사가 17세기에 오면 모음조화와 관계 없이 체언 말음이 모음이면 ‘-’, ‘-’, 자음이면 ‘-은’, ‘-을’로 표기되는 경향을 보임. ‘ㆍ’가 제2음절 이하에서 이미 비음운화하여 모음조화가 의미를 상실한 시기이므로 이것은 표기상의 관습일 뿐 실제로 모음의 음가가 달랐던 것은 아닐 것. 속격 ‘-/의’도 ‘ㆍ’의 비음운화와 모음조화의 붕괴에 따라 ‘-의’로 단일화되어 표기 되는 경향. 공동격 ‘-와/과’ 15세기에는 교체 조건이 철저히 지켜져 모음과 ‘ㄹ’ 뒤에서는 ‘-와’[ɦwa], ‘ㄹ’ 이외의 자음 뒤에서는 ‘-과’[kwa]가 사용됨. 17세기에는 ‘ㄹ’과 모음 뒤에서도 ‘-과’가 쓰인 것을 많이 볼 수 있음. ‘ㄹ’ 뒤의 ‘-과’는 현대에까지 이어졌지만 모음 뒤의 ‘-과’는 근세어 시기의 일시적 현 상이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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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격조사 ‘-가’ 捷解新語에 주격조사 ‘-가’가 여러 번 나타남.
그러나 모음 뒤에서도 여전히 ‘-ㅣ’를 쓰는 경향이 절대적이어서, 현대 어와 같이 ‘-가’가 ‘-이’의 이형태로 확고하게 자리를 잡은 것은 아님. 선행 체언의 말음이 모두 y라는 점도 특기할 만함. 분포가 그렇게 제약되어 있다는 것은 17세기가 ‘-가’의 발달의 초기임 을 시사. ‘-가’의 기원에 대한 논란. 일본어의 주격조사 ‘が’를 차용한 것이라는 설 주격조사 ‘-가‘의 초기 예들이 捷解新語라는 점. 편자 강우성은 임란 때 포로 생활 10년. 동사 ‘가-’의 활용형 ‘가’에서 왔다는 설 의문조사 ‘-가‘에서 왔다는 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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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어말어미 ‘-오-’의 쇠퇴 명사형어미가 15세기에는 반드시 ‘-오/우-’를 취하는 ‘-옴/움’이었는데 16세기부터 ‘-오/우-’가 빠지고 ‘-음’으로 나타나기 시작. ‘-오’는 ‘오’의 원순성이 뒤 음절로 이동하여 ‘-으되’로 많이 나타남. 그래서 ‘-으되’의 ‘-으-’는 마치 매개모음인 것처럼 보이게 되었지만 이것은 진정한 매개모음과는 차이가 있음. ‘ㄹ’ 뒤에서 탈락하지 않음. 현대에 와서 매개모음으로 이어지지 않음. 이와 비슷한 변화로 ‘-오라’>‘-으롸’가 있음. 주어가 1인칭일 때 쓰이는 평서형 老乞大諺解 등 일부 문헌에 일시적으로만 나타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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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자 대우법 체계 16세기에 이미 ‘--’의 기능 변화(객체 높임→상대 높임) 및 이에 따른 위 치 변화, 반말체의 확립 등의 변화가 일어남. 17세기에는 이들 변화가 더욱 확고하게 자리를 잡음. 반말체 종결어미 ‘-(으)이’ ‘’, ‘리’, ‘’, ‘뇌’, ‘데’, ‘도쇠’, ‘새’ 등 통시적 관점에서 보면 각각 ‘다’, ‘리다’, ‘다’, ‘노다’, ‘더다’, ‘도소다’, ‘사다’에서 절단과 축약을 통해 형성된 것이겠지만 이 시기 공시적으로는 용언 어간이나 선어말어미 ‘--’, ‘-노-’, ‘-더-’, ‘-돗-/ 도소-’, ‘-사-’ 뒤에 종결어미 ‘-(으)이’가 붙은 것으로 볼 수 있음. 또는 ‘-’, ‘-뇌’, ‘-데’, ‘-새’ 등을 하나의 굳어진 어미로 볼 수도 있음. 이들 반말체는 이전 시기의 ‘쇼셔’체에서 절단과 축약에 의해 만들어졌기 때문에 상대 높임법상 등급이 ‘쇼셔’체보다는 낮음. 그래서 이전 시기의 ‘야쎠’의 자리를 메꿀 수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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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자 대우법 체계 15세기와 비슷하게 세 등급을 설정할 수 있는데
이들 각각에 청자 높임(또는 화자 겸양)으로 기능이 변질된 선어말어미 ‘- -’이 삽입되면 청자 대우법상 등급이 조금씩 올라감. ‘--’은 종결형 외에 연결형, 전성형 등에도 쓰이기 때문에 단순히 청자 높임의 기능만 하는 것이 아니라 문맥에 따라 ‘-시-’와 어울려서 주어를 높이기도 함. 아주 덧높임 아주 높임 예사 덧높임 예사 높임 안 높임 평서 ...응이다 ...응이다 ...의 ...의 ...다 의문 ...응잇가 ...응잇가 ...은가 ...은가 ...냐 명령 쇼셔 쇼셔 소 소 (여)라 청유 사이다 사이다 새 새 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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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어말어미 ‘--’>‘--’ 현재시제를 나타내는 선어말어미 ‘--’는 중세어에서 모음 앞에 서 ‘ㆍ’가 탈락되는 것 말고는 별다른 교체를 보이지 않았음. 16세기부터 ‘다’가 ‘다’로도 나타나기 시작하여 자음어미 앞 에서 이형태 ‘-ㄴ-’이 생겼고 17세기에 오면 ‘고나’가 ‘고나’로 나타나 ‘--’이라는 이형 태가 등장. ‘놋도다’>‘도다’>‘다’>‘다’의 변화에서도 ‘--’의 등 장을 볼 수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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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사화소의 세력 판도 변화 15세기에는 명사형 어미로 ‘-옴/움’이 널리 쓰였고 ‘-기’는 쓰임이 매우 제한적.
모음 뒤에만 쓰이고 빈도도 낮으며 절 전체를 명사화한다기보다 동사를 명사로 파생시키는 파생접사에 가까웠음. 근세어 시기에 ‘-기’는 점차 세력을 확장하고 ‘-옴/움’ 및 그 후대형 ‘-음’은 세력 이 위축되어 전세가 완전히 역전됨. 현대어의 세력 판도에 접근. 근세어의 ‘-기’는 어떤 면에서는 현대어보다 쓰임이 더 넓었음. 현대어에서는 ‘-기’가 쓰이지 않는 환경에까지 쓰이기도 했음. 절은 명사형 어미에 의해서도 명사화되지만 관형형 어미와 의존명사의 결합에 의해서도 명사화될 수 있음. 관형형 어미와 의존명사를 사용해서 명사화할 때에는 양태적 의미(당위 또는 가 능성)를 갖는 경우가 많음. 15세기에는 관형사형 어미 ‘-ㄴ/ㄹ’과 의존명사 ‘’, ‘’를 사용하는 방식이 일반 적. ‘것’도 15세기에 존재했으나 ‘것’은 기원적으로 실질명사적인 의미가 강해서 명 사화소로는 잘 쓰이지 않았었음. 16세기부터 ‘것’이 명사화소로 자주 쓰이기 시작. 17세기에 오면 ‘것’의 이러한 쓰임이 더욱 두드러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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