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킷 리스트 중 하나였던 “ 남도 맛 기행 ”.. 이라고 하면 왠지 거창한 느낌이지만, 사실 저주받은 미각으로써 왠만한 건 다 맛있는 나로써는 “ 맛 기행 ” 이라는 표현은 어울리지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 맛 기행 ” 이라는 테마를 잡은 건 남도하면 역시 “ 맛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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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킷 리스트 중 하나였던 “ 남도 맛 기행 ”.. 이라고 하면 왠지 거창한 느낌이지만, 사실 저주받은 미각으로써 왠만한 건 다 맛있는 나로써는 “ 맛 기행 ” 이라는 표현은 어울리지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 맛 기행 ” 이라는 테마를 잡은 건 남도하면 역시 “ 맛 ” 이라는 이미지가 강한게 자리잡고 있어서일까 ? 여행을 떠나기까지 동기나 여러가지 배경은 차차 얘기하기로 하고 일단 거쳐온 지역부터 얘기해 볼까 한다. 담양 → 광주 → 곡성 → 순천 → 여수 → 벌교 → 목포.. 컨셉은 하루 한 끼는 한 지역을 대표하는 먹거리로, 맛집을 찾아서.. 그 외에는 아무래도 좋았다.. 뭐 왠만큼 여행 다녀 본 사람들은 눈치챘을지도 모른다. 담양 떡갈비와 죽통밥, 곡성 참게탕, 순천 짱뚱어탕, 여수 게장 백반, 벌교 꼬막 정식, 목포 낙지 백반... 광주 ? 광주는 담양에서 곡성 넘어갈 때 광주를 경유해야 해서, 하루 잠을 잤던 곳이다. 순천에서는 삼 일을 잤다. 곡성, 여수, 벌교의 중심에 있어서 굳이 숙소를 여러 곳 찾아 다녀야 하는 번거로움 때문이기도 했지만, 순천만의 고요함이 좋았고, 무진 게스트 하우스 이모님이 전해 주신 남도의 정이 좋았다고나 할까 ? 이모님보다는 누나라고 불러야 할 나이 차이긴 하지만, 굳이 내 나이를 밝히진 않았다. 에피소드 1 해외 여행은 배낭 여행을 몇 번 해 봤지만, 국내 여행은 드물어서 이상하게 왠지 더 긴장됐다. 뭐 굳이 이유를 얘기하자면 해외에서는 한국 사람이 없어서 사람들의 시선에서 자유로웠는데, 국내에서는 왜 혼자 다니냐는 사람들의 물음에 적절한 대답을 찾기가 힘들다고나 할까 ? 뭐 이런 저런 걱정은 떨쳐버리고 가볍게 구미에서 광주 가는 고속 버스에 몸을 실었다. 이번엔 항상 들고 다니는 작은 캐리어도 놓고 나왔다. 가방 하나에 탭북하고 카메라, 속옷, 양말만 넣고 가벼운 마음으로 떠났다. 눈치챘을지 모르지만, 땀에 절은 위아래 겉옷은 한 번도 갈아입지 못 했다는 것.. 갈아 있을 옷도 가져가지 않았고, 짐을 늘리고 싶은 마음도 없었다. 그렇게 고속 버스를 시작해, 시외 버스, 시내 버스, 농어촌 버스를 교통 카드 하나로 환승에 환승을 해 가면서 순천만에 도착했다. 이모님이 게스트 하우스 사람들 친분 ? 을 도모하기 위해서 간식을 준비해 주셨다. 나처럼 혼자 여행 온 사람도 있고, 친구와 여행 온 사람도 있었는데 대화의 핵심은 “ 내일로 ” 였다. 여기서 내일로를 모르는 사람들은 당연히 30 대 이상이지 않을까 ? 정말로 뮤지컬 한다던 서른 넷 아저씨와 나만 “ 뭐지 ? 내일로 ” 였고, 회사원을 포함한 이십대 친구들은 내일로로 이야기를 이어갔다. 모르는 분들을 위해 간단히 얘기하자면 일본의 “ 패스 ” 와 비슷한 건데, 내일로 패스를 사면 기간 내 기차를 무제한으로 이용할 수 있고, 관광지 할인 또는 무료 입장이 가능하다는 말씀.. 하지만 나이 제한이 있다는 거.. 아직 나이 어린 친구들은 내일로 여행을 추천한다.. 회사 다니는 입장에서 굳이 할인까지 해 가며 여행을 하고 싶은 마음은 없지만, 그래도 나이 제한이 있다는 건 젊었을 때 할 수 있는 특권이 하나 더 있는 건데, 그걸 하지 않는다면 나이 먹어 아쉽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그렇게 내일로와 세대 간의 갈등, 타인과의 갈등에 대해서 열변을 토하다 필름이 끊겨서 잠이 들었다. 이모님이 간식과 함께 소주와 맥주를 주셨는데, 다들 달아 올라 각자 오천 원씩 걷어서 간식 타임 ? 을 계속 이어 나간데다가 처음부터 나만 소맥을 따라주는 바람에 잰가를 만져보지도 못 하고 다음달 11 시가 되어서야 일어날 수 있었다. 에피소드 2 담양에서 오리 떡갈비와 죽통밥을 먹었는데, 남도의 맛깔라는 반찬을 더 먹기 위해서는 떡갈비 정식을 시켰어야 됐지 싶다. 옆자리 가족들이 메뉴판을 달라고 해서 고심 끝에 떡갈비 정식을 시켰는데, 머리를 치는 깨달음.. “ 먹기 전에 메뉴를 봐라, 모르면 물어봐라 ”. 한식대첩 2 에서 준우승 하신 어머님 얼굴은 보지도 못 하고 숙소를 찾기 위해 농어촌 버스를 타고 산을 넘어 광주로 이동했다. 네이버에서 게스트 하우스를 겨우 찾아 땀을 닦고 무한 도전 본방 사수를 했다. 여행 첫 날 가장 고민했던 건 우습지만, 무한 도전을 보고 다음날 떠날 것인지, 일단 떠나고 나서 숙소를 잡아 무한 도전을 볼 것인지였다. 무한 도전이 끝나고, 옆에 광주 구장에서 기아와 롯데가 7 회째 경기를 이어가고 있어서 살짝 구경 나갔다. 표 파는 곳은 문을 닫았고, 게이트에서 잡지도 않아서 뭐 그냥 들어갔다.. 광주 사람들은 여기 다 와 있던 것처럼 사람들이 많았다. 3 루에서 외야로 살살 걸어가서 자리를 잡았다. 외야는 공원처럼 꾸며져서 테이블마다 맥주 파티 ? 가 이어지고 있었다. 가족단위로 모인 무리에서 젊은 두 친구가 끼어서 같이 맥주를 마시고 있었나 보다. 아저씨가 구수한 광주 사투리로 기아를 응원하고 있다가 그 젊은 친구들에게 맥주를 따라주며 “ 근디 자네들은 워데서 왔단가 ?” 라며 물어 봤다. 아저씨가 물어본 건 아마도 전남 어느 군에서 왔냐는 물음이 아니었을까 ? 근데 그 친구들 대답이 뜻밖이었다. “ 부산에서 왔습니다 ” 어라 ? “ 그럼 지금 워데를 응원하고 있는겨 ?” “ 롯데인데예 ” “ 뭐시여 ? 시방 내가 롯데 응원하로 온 애들한테 공짜로 맥주 따라 주고 있는겨 ? 워메 환장하겄네.” 사람들이 그 풍경에 다들 웃고 난리다. 옆에 계신 어머님 왈 “ 그라제. 이게 절라도 정이제.. 우리는 상대편 응원하러 온 애들한테도 공짜로 맥주 주고 그런당께.” 마침 기아가 롯데한테 큰 점수차로 지고 있는 차라 분위기가 삭막할 것도 같은데, 의외로 재미있는 풍경이다. 구미에 처음 왔을 때 지역 감정의 색을 느끼고 조금 힘들었던 시절이 있었는데, 그 때도 지금처럼 그저 나만의 선임견 때문에 받아 들이지 못 했던 건 아니였을까 ? 구미에 처음 왔을 때 경상도 사람들의 거친 말투 때문에 적응하기 힘들었지만, 지금은 그런 경상도의 화끈한 성격이 오히려 부럽다. 기아의 아쉬운 ? 패배와 광주의 구수한 사투리를 뒤로 하고 다음날 곡성을 위해 일찍 잠이 들었다.

에피소드 3 순천만에서 아쉬운 삼일 밤을 보내고, 가을에 다시 한 번 오리라 다짐하며 벌교를 향해 출발했다. 원래 계획은 보성 녹차밭과 해남 땅끝 마을도 들렀다 가려고 했는데, 일정에 너무 쫓기면 여행이 아니라 숙제를 하는 느낌이라 다음에 다시 오기로 마음 먹었다. 처음 남도 맛 기행을 버킷 리스트에 올리게 된 이유는 역시 한식대첩이다. 그 전에도 생각은 있었지만, 그저 생각뿐이었다. 광주를 중심으로 담양에서 시작해서 목포까지 시계 방향으로 돌고 있는 걸 눈치 빠른 사람들은 이미 알고 있지 않을까 ? 다음에 다시 오게 된다면 담양에서 시작해서 순천으로 반시계 방향으로 돌게 되겠지. 벌교 꼬막을 배 터지게 먹고 나서 태백 산맥 문학관에 들렀다. 태백 산맥을 이미 책으로 읽었고, 영화로도 봤었지만, 이렇게 문학관에 와서야 벌교가 태백 산맥의 배경지라는 걸 알게 되었다. 염상구가 벌교 패권을 얻기 위해 기차 철로 위에서 담력 싸움을 벌였던 철교를 지날 때는 그 이미지가 머리 속에 그려졌다. 벌교를 한 바퀴 산책하기 전에 태백 산맥 문학관에 들러본다면 벌교가 좀 더 색다르게 보일 것이다. 색깔론이 아직까지도 확연하게 드러났던 시대에서 학교를 다녔고, 군대를 갔다 왔던 지라 아무런 거리낌없이 흑백론 안에 있던 나에게 태백 산맥은 그야말로 충격이지 않았을까 ? 그야말로 살기 위해서 우익이 된다거나 좌익이 된다거나, 대부분은 기회 주의자였던 그런 시대가 아니었을까 ? 지금 시대의 사람들이 그 시대를 살았다면 어쩌면 더 처절하게 기회 주의자가 되지 않았을까 ? 시간이 많이 흘렀어도 많은 사람들이 그 시대의 상처를 치료받지 못 한 채 극우적인 삶을 살고 있고, 오히려 같은 사회 주의 국가인 중국과 베트남 같은 나라와 친한 걸 보면 아이러니다. 조정래 작가는 끊임없이 협박을 받았고, 혹시 살해 당할 지 몰라 유서를 두 번 남겼었다. 국가보안법 무협의 판결이 내려진 게 2005 년도의 일이다. 태백 산맥이 나온지가 언젠데, 이렇게 늦게 무협의 판결이 내려진 건 아마도 그만큼 우리 민족의 상처가 깊었던 까닭이 아니었을까 ? 여행하면서 좋았던 건 많았지만, 나만의 추억으로 남겨 두고 싶기에 이만 여기서 이야기를 마칠까 한다. 뭐 그렇게 재미있는 에피소드도 아니고.. 곡성에서 가정 역까지 증기 기관차를 타고 와서 내가 찾던 맛집까지 섬진강을 따라 사점 4.3km 를 걸었던 일. 무진 게스트 하우스 이모님이 야밤에 여행자들 다 태우고 순천 야경을 보여 주셨던 일. 여수 아쿠아플라넷에서 시간을 확인해 가며 공연을 봤던 일. 담양 환벽당에서 느긎하게 낮잠 잤던 일. 3D 영화 같았던 순천만의 푸른 갈대밭. 동남아를 연상케 하는 목포의 춤추는 바다 분수. 끝내 한식대첩 3 우승팀을 가르쳐 주시지 않았던 곡성의 참게탕 사장님. 자외선 차단제를 바르지 않은 탓에 팔에 화상을 입어서 하루 종일 가렵다. 찬물에 씻고 연고를 바를 때마다 남도 음식의 맛과 남도 사람들의 정이 떠오른다. 교통비와 식비로 인해 이번 달 카드 사용은 이미 Max 다. 카드 명세서를 받으면 다시 한 번 남도의 추억이 떠오르지 않을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