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양일두고택 1기 이승준, 유병국, 이정상
지정현황 문화재명 : 함양 일두고택(咸陽 一蠹古宅) 지 정 별 : 중요민속자료 제186호(지정일 1984년 1월 10일) 소 재 지 : 경상남도 함양군 지곡면 개평리 262-1번지 건립연대 : 1690년 안채 최초 건립, 1843년 사랑채 건립
일두 정여창(1450~1540) 세종 32년 (1450)에 정육을의 세 아들 중 장남 김굉필과 함께 영남사림의 명유인 점필재 김종직의 문하에 들어가 학문 을 연마 임금의 권유로 41세의 나이로 문과에 응시해 급제하여 비로 소 벼슬길 에 나섬 중앙에서 벼슬한지 4년 만에 고향 백성들을 돌보고자 안의현 감으로 나 가길 자청해 고향으로 돌아옴 연산군 때에 스승인 김종직과 더불어 무오사화(1498년)에 연 루되어 함 경북도 종성으로 유배되어 55세의 나이로 별세
연혁 일두 종가는 정여창으로부터 현 종손 의균까지 18대이며 입향조 정지의가 처 음 개평마을에 들어온 때로부터 600여년의 역사 최근까지‘정여창가옥’또는‘정병호 가옥’으로 불리어옴 → 2007년 정여창의 호를 붙여 ‘일두 고택’으로 명명 현재의 일두 고택 일곽은 언제 조성되었는지는 정확히 알 수 없으나, 정여창선 생의 생가 터를 기반으로 현재의 일곽이 형성되었다고 전해지고 있음을 보아 정여창선생이 태어나기 전인 1500년대 이전부터 건물터가 형성된 것으로 추정 정여창선생 사후 100여년이 지난 1690년대에 새롭게, 경사가 있는 대지에 주 향을 남서향으로 하여 안채를 중심으로 건물이 앉혀지고, 그 일곽을 형성한 것 으로 추정
마을 입지 행주형(行舟形) 서고동저
마을 입지
안채 영역 -여성 사랑채 영역 - 남성 주향은 남동향 위계적 영역성을 담장과 건물들의 미묘한 결합에 의하여 공간 구성 완충공간
튼 ‘ㅁ’자형의 자유형 배치 중문채
‘집을 지을 때 먼저 정침 동쪽에 사당(가묘)를 세운다.’ 주자가례 ‘집을 지을 때 먼저 정침 동쪽에 사당(가묘)를 세운다.’ -> 정여창 고택은 안채의 뒷편에 배치된 점이 특이 사당영역 창고영역 주향은 남동향 위계적 영역성을 담장과 건물들의 미묘한 결합에 의하여 공간 구성
주향은 남동향 위계적 영역성을 담장과 건물들의 미묘한 결합에 의하여 공간 구성
주향은 남동향 위계적 영역성을 담장과 건물들의 미묘한 결합에 의하여 공간 구성
정면: 6칸 좌측면: 2칸 우측면( 배면의 벽장 제외): 4칸 濯淸齋 흐트러진 마음을 맑게 하는 곳
기단 네모형태의 자연석 한벌대로 구성, 사랑채와 달리 매우 낮게 처리, 평안함을 추구->성리학적자연관
정면: 8칸 측면: 2칸 (근세에 증축된 주방은 제외)
안방 후퇴 부분의 지붕처마를 바깥쪽으로 더 길게 빼냄 ->안방에 반침을 넣기 위하여 3640mm 3040mm 안방 후퇴 부분의 지붕처마를 바깥쪽으로 더 길게 빼냄 ->안방에 반침을 넣기 위하여
종합고찰 일두고택은 명문세가인 하동 정씨 종택으로 정여창선생 사후 약 100여년이 지나 지금의 안채가 건립되었고, 또한 안채와 사랑채의 150년의 시차를 두고 형성되어 왔기 때문에 조선중기와 조선후기의 한옥에 대한 건축양식사(建築樣式史)적 차원에서도 중요한 가치 일두고택 일곽의 배치특징을 통하여서도 그 면모를 알 수 있다. ‘채’와 ‘담’에 의하여 형성된 건물배치는 유교의 철저한 교리인 ‘남녀유별(男女有別)’에 바탕을 두고 엄격하게 그 영역성을 확보 경북 안동지방의 □자형 공간구성과 또 다른 튼□자형 공간구성으로 남부지역 전통한옥 공간특징을 잘 보여주고 있어 건축사적 의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