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사회와 정치 제6강. 중국의 정치사상과 문화 신라대학교 국제관계학과 교수 이 동 윤
1. 마오쩌둥 시대의 정치사상과 문화 ○ 정치구조와 사회·경제적 변화의 흐름은 자연스럽게 정치사상 및 문화에 있어서도 변화를 초래하듯이 중국의 정치사상과 정치문화는 각 시대별 흐름에 따라 점진적 변화가 이루어져 왔다. 1. 마오쩌둥 시대의 정치사상과 문화 ○ 1949년 10월 중화인민공화국의 수립 직후 마오쩌둥의 시대는 대외적 자립과 대내적 권력투쟁의 시기 - 1949년 12월 마오쩌둥의 소련 방문: 중국은 같은 공산주의 국가로서 소련의 도움을 필요로 하였으나, 스탈린의 고압적 태도와 냉대로 모멸감 초래 - 이후 마오쩌둥은 ‘마오쩌둥 식 경제개발’ 정책에 따른 중국의 독자적 노선 구축 - 1956년 쌍백운동(雙百運動) 추진: 내부적으로 마오쩌둥의 정책적 독단이 이루어지자, 지식인들을 중심으로 비판세력 등장 - 마오쩌둥은 쌍백운동을 중단하고 ‘대약진운동’을 통한 정풍운동 유도 - 이러한 일련의 변화는 지속적으로 ‘문화혁명’과 연동
1) 정치문화적 특징 ① 정치제일주의(政治第一主義) - 마르크스의 변증법적 유물론에 따라, 경제적 생산양식(수단)의 소유는 경제적 계급을 구분하며, 물질적 재화의 생산양식은 결국 하부구조(경제)로서 상부구조 (정치)를 결정 - 그러나 마오쩌둥은 하부구조의 변화가 반드시 상부구조의 변화로 이행되는 것은 아니라고 보고, 상부구조와 하부구조의 변혁을 위해 지속적인 계급투쟁을 주장 - 정치제일주의는 결국 정치․경제․사회의 모든 현상들이 결국 정치적 성격으로 지닌다는 의미이며, 당을 중심으로 한 상명하달(上命下達) 식 관료주의와 명령 체계의 확립을 의미한다. - 정치제일주의는 문화혁명 당시 정풍운동의 일환으로 강조되었는데, 이른바 사상적 통일과 중국공산당 정화, 청년세대에게 혁명적 경험 제공, 교육․위생․ 문화 부문의 정예주의 탈피 등을 그 내용으로 하고 있다. - 결과적으로 마오쩌둥은 보다 이상적인 중국식 공산주의 사회를 구성하고자 정치제일주의를 채택, 이것은 결국 공산주의 원형의 변질 초래
② 평균주의(平均主義) - 평균주의는 사회적 지위나 재화의 균등한 분배를 주장하는 일종의 정치적 이상. - 중국 사회는 전통적으로 계층적 구분과 위계질서가 바탕을 이룬 사회이나, 마오쩌둥은 이러한 계층 간 차별구조를 부정하고, 계급적 탈피를 통한 평등한 사회 주창 -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오쩌둥 시대의 경제개발은 모든 인민 대중에게 확산되지 못하였으며, 이것은 스탈린주의적 경제발전전략 아래 농업을 희생한 공업화에 전념하였기 때문 - 즉, 농업생산 및 수출을 통해 잉여자본을 축적하고, 이것을 공업화 자금으로 활용했던 소련식 경제발전전략과 달리 중국은 농업 부문의 잉여가치가 창출되지 못한 가운데 농업 부문의 희생을 통해 공업 부문의 양성을 도모하여 실패 초래 - 문화혁명 시기를 거쳐 어느 정도 제도화가 이루어진 평균주의는 노동자와 농민, 도시와 농촌, 육체노동과 정신노동 사이의 격차를 해소하는데 어느 정도 효력 발생, 그러나 이것은 결과적으로 ‘하향 평준화’를 의미
- 중국의 공산주의 역사는 문화혁명과 천안문 사태 등으로 대표되는 지식인 탄압 과 반지식주의로 점철 ③ 반지식주의(反智識主義) - 중국의 공산주의 역사는 문화혁명과 천안문 사태 등으로 대표되는 지식인 탄압 과 반지식주의로 점철 - 중국공산당 지도부가 실용주의 노선을 채택할 경우 상대적으로 지식인의 역할 강조, 반대로 이념적 투쟁이 강조될 경우 지식인의 가치는 부정되고 탄압 초래 - 마오쩌둥의 반지식주의 노선은 이른바 1956년의 ‘쌍백운동’으로부터 기인* - 당시 마오쩌둥은 사상적 자유를 통해 지식인들의 협조를 구했으나, 오히려 지식인들은 마오쩌둥 체제의 정책을 비난하여 지식인에 대한 회의감 초래 - 이후 마오쩌둥은 반우파투쟁을 통해 1958년 대약진운동을 주도하고, 1966년 부터 문화혁명을 통해 지식인들에 대한 철저한 탄압 주도 - 마오쩌둥은 “공산당 없이 인민공화국도 없다”라는 구호 아래 반사회주의적 독초를 제거한다는 미명 아래 지식인들에 대한 통제와 탄압 유도 * 백화제방(百花齊放) 백가쟁명(百家爭鳴): 온갖 꽃들이 만발하고,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뜻을 펼친다.
2) 정치제도적 특성 ① 공산당 일당지배체제 - 중국공산당은 군대는 물론 국가에 대해서도 절대적 지위와 권력을 보장받는다; 당은 국가에 권력을 위임하고, 국가가 위임 받은 권력이 제대로 행사되는지를 감독 - 중국공산당은 국가기구, 군대 및 기타 모든 조직들에 대해 절대적 권한을 행사, 특히 당 내에서는 당 중앙이 최고기구로서 절대적 권력 형성 - 중국공산당은 대략 4,000만 명의 당원으로 구성되는데, 중국 정치를 지배하는 통일체이며, 독점적 권력정당 - 중국공산당의 구조는 5년마다 한 번씩 1,500명 이상의 대표가 모이는 전국대 표회의를 열어 약 200명에 달하는 중앙위원회 위원을 선출하고, - 중앙위원회는 1년에 1번씩 회의를 소집하며, 약 20여 명의 정치국 위원을 선출 - 정치국은 중국공산당의 지도기관이며, 6~7명의 최고위급 지도자로 구성되는 정치국 상무위원회는 당 뿐만 아니라 중국 전체에 대한 최고의 지도권 행사
② 군중노선(群衆路線) - ‘군중노선’이란 중국 혁명 당시 마오쩌둥에 의해 제기된 중국공산당의 대중투쟁 지도원칙을 의미. - 즉, 공산당의 모든 활동은 끊임없이 대중의 자각과 자발적 행동에 의존하고 결정됨과 동시에 대중 속에서 그 정당성이 검증된다는 의미 - 일반 대중의 요구를 수렴하는 방식으로서 제시된 군중노선은 중국공산당의 혁명운동 과정에서 인민 대중을 정치적으로 동원하는 효과를 극대화 - 그러나 이러한 정치적 동원체제는 하의상달(下意上達)이 아닌 위로부터의 명령 체계를 형성함으로써 국가권력의 강화와 국가에 대한 국민의 봉사 강조 - 중국공산당은 이러한 군중노선을 확대하고 조직화하기 위해 다양한 군중조직을 형성 ◦ 중화전국총공회(中華全國總公會: 약칭 ‘총공회’이며 공회는 노동조합을 의미) ◦ 농민협회(農民協會) ◦ 중국공산주의청년단(中國共産主義靑年團) ◦ 중화전국부녀연합회(中華全國婦女聯合會) 등
2. 덩샤오핑 시대의 정치사상과 문화 ○ 덩샤오핑: 1921년부터 1924년 사이 프랑스 유학기간 중 공산주의 운동 참여, 소련 유학을 마치고 귀국하여 공산주의 혁명에 가담한 유학파 공산주의자 1) 정치문화적 특징 ① 경제제일주의(經濟第一主義) - 마오쩌둥의 사망 이후 중국은 점진적인 개혁개방을 통해 정치경제적 변혁 초래, 시장경제의 활성화가 추진되어 이른바 경제제일주의 도래 - ‘흑묘백묘론’(黑猫白猫論)은 경제제일주의를 가장 잘 표현하는 용어 - 사상해방과 실사구시(實事求是)의 세계관 및 인식론 확산 - 그럼에도 불구하고, 덩샤오핑은 사회주의 노선과 공산당 지배, 마르크스․레닌 주의와 마오쩌둥 사상, 무산계급 독재 등 네 개 항목의 기본원칙 주창 ⇒ ‘중국 특색의 사회주의’를 표방 - ‘사화’(四化): 관료의 연소화, 지식화, 혁명화, 전문화 등을 통해 중국 전통의 원로정치 폐단을 줄이고 실질적인 개혁개방의 효과를 극대화하기 위한 조치 - 1979년부터 1983년 사이 제1단계 개혁조치로 ‘농업생산 책임제’에 입각한 농업개혁을 단행, 1984년부터 1988년 사이 제2단계로 도시 상공업 개혁, 1989년부터 제3단계로 대외개방 추진 - 1992년 덩샤오핑의 ‘남순강화’(南巡講話): 지속적인 개혁개방의 확대를 강조
② 능률주의(能率主義) - 덩샤오핑은 중국이 당면한 주요 모순은 계급 간 모순이 아니라 국민 대중의 물질적 욕구와 기대 상승에 미치지 못하는 사회생산력이라고 인식, 생산성 극대화를 강조 - 중국의 경제발전을 저해하는 정치권력의 지나친 간섭과 통제를 배제하고, 마오쩌둥 시기의 평균주의를 일소하기 위한 능률주의 강화 - ‘선부론’(先富論): 누가 먼저 부자가 되던 우선적으로 경제성장이 이루어진 곳으로부터 발전을 확산 ③ 지식존중주의(智識尊重主義) - 마오쩌둥과 달리 덩샤오핑은 지식존중주의를 내세우며 경제발전을 추진하기 위해 전문 지식을 갖춘 테크노크라트(technocrat) 우대 - 이러한 지식존중주의는 덩샤오핑에 의해 주도된 관료사회의 ‘사화’를 통해서도 잘 알 수 있으며, 이들 테크노크라트를 통해 경제발전 주도 - 덩샤오핑 시대에 이르러 지식인에 대한 우대는 교육 활성화를 주도하게 되어 다양한 영역의 유학 붐이 일기도 함.
2) 정치제도적 특성 ① 파벌정치(派閥政治) - 중국은 그 어느 국가보다도 인간과 인간 사이의 ‘관계’(關係)를 중요시하며, 인정과 인윤, 인연에 기반을 둔 개인적 관계를 형성하는데 노력 - ‘인정’: 집단적 향촌문화에 기반을 두고, 혈연과 이웃을 중심으로 한 ‘정’(情)을 중요시, ‘인륜’: 사람으로서 마땅히 지켜야 할 도리인자 자연적 질서, ‘인연’: 자연과 사회가 만들어내는 각종 관계의 설정을 의미 - 중국의 파벌정치는 중국 사회에 만연되어 있는 관계문화의 소산 ② 원로정치(元老政治) - 당이나 정부 내부에 공직적인 직책을 갖고 있지 않고서도 배후에서 ‘국가원로’라는 명분 아래 자신의 정치력과 영향력 행사 - 원로정치를 실행한 대표적 인물로 덩샤오핑, 그는 문화혁명 당시 모든 권력을 박탈당한 바 있기 때문에 전면에 나서 정치력을 발휘하기보다 배후에서 영향력을 과시
3. 장쩌민 시대의 정치사상과 문화 ○ 장쩌민(江澤民): 1946년 중국공산당 가입 이후 덩샤오핑에 의해 발탁 1) 정치문화적 특징 ① 신권위주의(新權威主義) - 장쩌민 시대에는 개혁개방의 성과와 문제점이 동시에 표출되던 시기 - 1989년 천안문 사태의 발생 이후 중국의 정치개혁 논쟁은 잠시 중단되었으나, 1997년부터 다시금 정치개혁에 대한 논의 재개 - 장쩌민은 각종 요직에 자신의 인맥을 포진시킨 이후 덩샤오핑에 의해 추진된 개혁개방의 지속적인 추진을 견지하는 한편, 정치적 안정과 사회적 기강을 강조 하는 부국강병책을 주도 - 신권위주의는 과거 봉건적 권위주의와 달리 권력을 장악한 지도부가 강력한 리더십을 통해 경제발전을 가속화하여 실질적인 자유와 민주화를 달성하자는 것 cf.] 개발독재와 유사 - 중국의 지속적인 경제발전을 위해서는 정치적 안정과 사회적 기강을 바로 잡아 나가는 것이 필요하다는 논리
② 3개대표론(三個代表論) - 3개대표론이란 중국공산당이 그 동안 중국의 사회생산력 발전, 선진문화의 발전 방향, 인민의 근본적 이익을 올바르게 대표함으로써 중국을 발전적으로 이끌 수 있었다는 이론 - 이것은 개혁개방 이후 점차 복잡해진 사회적 부작용과 관련, 중국 정부는 이러한 국민적 반발을 무마하기 위해 중국공산당 지배의 정당성을 예시 2) 정치제도적 특성 ① 집단지도체제(集團指導體制) - 덩샤오핑 시기의 권력구조는 덩샤오핑을 권력의 정점으로 8명의 혁명원로들에 의한 집단제도체제 구축 - 장쩌민 시기도 집단지도체제의 권력구조는 그대로 유지, 권력의 정점이 없는 가운데 상호 협력과 견제 강화 - 권력의 과도한 집중을 통해 표출되는 정치적 폐단을 막기 위한 정치구조 장쩌민 체제 아래 정치국 상무위원회의 위원 7인이 각각 분업적 역할과 권한 - 장쩌민은 1인 중심의 강력한 리더십을 발휘하기 보다는 주용기(朱鎔基), 이붕 (李鵬) 등과 권력을 분점하여 집단지도체제 형성
② 의법치국체제(依法治國體制) - ‘의법치국이’란 법에 따라 나라를 다스린다는 의미로서 헌법과 법률적 규정에 입각한 국가 건설 목표 - 과거 마오쩌둥이나 덩샤오핑 시기에 개인의 권위를 중심으로 한 통치가 이루어 졌다면, 장쩌민은 1999년 헌법 개정을 통해 법치주의 강조 - 이것은 개혁개방 이후 사회적으로 만연된 사회주의 이념의 약화, 공직사회의 부패, 사회적 범죄율 증가 등의 폐단을 막기 위한 조치, 해외투자의 안정성을 보장하기 위한 또 다른 함의 내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