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 예술가들이 말하는 직업에 관한 조언
예술가들이 말하는 직업에 관한 조언 직업이 의미가 있어지기 위해 필요한 두 가지 요건 1. 사람들은 크든 작든 사람들의 고통을 줄이거나, 아니면 사람들에게 기쁨, 이해, 위안을 안겨주어 이 세계를 더 좋은 곳으로 만드는 데 보탬이 된다고 느낄 수 있는 직업 2. 의미 있는 직업은 본인의 가장 깊은 재능 및 관심과 일치한다고 느껴져야 한다. 이런 직업은 우리의 내면에 잠재해 있는 소중한 능력을 극대화할 기회를 주고, 그래서 우리가 한 일을 되돌아볼 때 그것이 다른 사람들과 나 자신에게 나의 가장 성실하고, 진정하고, 가치 있는 특질을 말해준다고 느낄 수 있어야 한다. 사회에 첫발을 들였을 때 자신의 삶으로써 무엇을 해야 할지 고민하는 것도 놀라운 일이 아니다.
예술가라는 직업 예술가라는 직업은 현명한 선택이라기보다 매력적으로 보여 선택할 때가 더 많고, 이는 언젠가 반드시 예술가가 되어보겠다는 희망을 고취시킨다. 창조적인 직업에 대한 꿈은 수많은 젊은이를 완전히 사로잡는다. 성공한 예술가는 우리 시대에 가장 이상적인 일을 하며 사는 것처럼 보인다. 오로지 타고난 개성에 기반해 다른 사람들의 삶에 결정적 영향을 안겨주는 축복받은 사람들과 그들의 활동에 감탄한다. 관람자들이 그 영향을 위해 기꺼이 돈을 지불한다는 사실은 참으로 매력적이지만, 예술적 직업의 전망은 세상의 필요는 물론이고 사람들 대부분이 발휘할 수 있는 능력과 절망스러우리만치 단절되어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술가들의 궤적에서 우리는 중요한 가르침을 이끌어 낼 수 있다. 예를 들어, 사람은 어떻게 자신의 천직을 발견하고, 영감의 순간들을 직업으로 전환하며, 자신의 재능을 상품화할 수 있을까? 이 가르침들은 제한적이고 상업적으로 성공하기 어려운 예술이라는 영역과 동떨어진 사례들에도 유용하게 적용될 수 있다.
직업 직업의 문제는 종종 기묘한 느낌에서 시작된다. 우리는 살면서 절대 하고 싶지 않은 백 가지 일이 무엇인지는 안다. 하지만 우리의 꿈을 어느 방향으로 이끌어갈지에 대해서는 막연히 갈망할 뿐 분명한 그림으로 그려내지 못한다. 현 상황을 바꾸고 싶고, 흥미롭고 가치 있는 일을 하고 싶지만, 자신의 관심사가 어디에 있는지 현실적으로 초점을 맞추지 못한다. 자신의 문제를 다른 사람 탓으로 돌리거나, 경쟁의 장이 자신과 맞지 않는다고 투덜대고, 자신의 부족함을 과장하거나, 가장 가까이 있는 ‘안정된’ 직업, 우리의 내적 욕구에 아무런 답을 주지 못하지만 최소한 돈을 벌 수 있고 권력자들의 간섭을 피할 수 있는 그런 직업에 안착한다. 인내심을 조금 발휘해, 방향 때문에 겪는 혼란은 진정한 직업을 찾는 정당한 행위에 꼭 필요한 과정임을 깨닫는 것이 현명하지 않을까? 길을 잃었다는 느낌은 자신이 불행한 운명에 매여 있다는 증거라기보다, 결실을 맺기 위한 탐사에서 반드시 거쳐야 하는 첫 단계다.
선망과 감탄 어린 시절부터 우리는 부러움이 마음을 좀먹고 상하게 한다는 충격적인 이야기를 아주 많이 접하는 탓에, 부러움의 건설적이고 본질적인 특질을 못 보고 지나친다. 우리는 부러움을 통해 할 수 있는 중요한 일을 놓치고 만다. 선망이야말로 미래의 지도를 그리는 작업이 될 수 있다. 우리는 부러움을 창피하게 여기고, 자신의 실패를 확증하는 감정으로 여기지만, 그 대신 우리가 부러워하는 모든 사람에 관해 본질적이고 생산적인 질문을 하나 던져야 한다. 내가 여기에서 무엇을 배울 수 있는가? 안타깝게도 부러움의 감정은 쉽사리 혼란스럽고 모호해진다. 우리는 사람과 상황 전체를 부러워하지만, 사실 부러움의 대상을 차분히 분석할 기회가 주어지면 실제로 우리의 꿈에 열쇠가 되어줄 부분은 한 조각에 불과하다는 사실이 드러난다. 우리가 부러움을 부정하거나 그것에 이끌려 절망에 빠지는 대신 부러움을 차분히 음미한다면, 우리는 그 깊은 지옥으로부터 어떻게 우리 자신이 될지에 대한 중요한 단서들을 이끌어낼 수도 있다. –자신의 영웅과 관계 맺기
필립 제인스 드루테르부르, <저녁 호수 풍경>, 1792.
조지프 말로드 윌리엄 터너, <발디오스타의 산 풍경>, 1845.
윌리엄 터너는 화가의 길에 들어설 당시 유명한 풍경화가, 필립 제임스 드 루테르부르를 신처럼 존경하고 적잖이 부러워했다 윌리엄 터너는 화가의 길에 들어설 당시 유명한 풍경화가, 필립 제임스 드 루테르부르를 신처럼 존경하고 적잖이 부러워했다. 터너는 루테르부르가 산, 들판, 폭포, 나무를 그리는 방식의 진가를 알아보았다. 처음에 터너는 개성과 상상력이라고는 없는 방식으로 그저 충실하게 영웅의 그림들을 모사했다. 시간이 흐르자 그는 자신의 감탄을 비판적인 눈으로 분석할 줄 알게 되었다. 그는 자신이 루테르부르의 작품에서 어떤 면에 지신으로 감동했는지 그 자신에게 더 열정적으로 물었고, 문제들을 세밀히 조사했을 때 자신의 존경이 처음에 상상했던 것보다 더 선택적이었음을 알게 되었다. 터너가 진정으로 감탄한 것은 루테르부르가 구름과 비에 비친 햇살의 효과를 표현한 방식이었다. 그는 후기의 가장 독창적인 작품들에서 바로 그 점을 부각시키기로 결심했다.
Phillip James De Loutherbourg, The Battle of the Nile, 1800. Turner, The Slave Ship, 1840 터너는 존경하는 선배의 작품에서 그를 진정으로 흥분시켰던 측면을 연구할 줄 아는 용기를 겸비하고 있었다. 터너의 예에서 우리는 영웅을 대하는 한 방법으로, 그가 했던 일에 초점을 맞추고 그의 여러 업적들 중 하나를 가려내 그것을 새롭게 강조할 수 있음을 알게 된다. 우리가 보통 새로움이라 부르는 것은 단지 어느 선배의 작품에서 하위 주제였던 것을 현명하게 부각시킨 사례일 수 있다. 터너는 자신의 감탄을 모호한 방식으로 전개해나갈 수도 있었다. 그는 그저 루테르부르가 사용한 전반적인 방식을 계속 모방하면서 창조자가 아닌 추종자로 남을 수도 있었다. 그는 20대 초에 루테르부르의 하늘을 볼 때 마음 속에서 일어나는 흥미와 흥분의 소란스럽고도 특별한 신호를 무시할 수도 있었다. 만일 그랬다면 세계는 그의 위대한 후기작들의 매혹적이고 강렬한 아름다움을 결코 몰랐으리라.
Van Gogh Painter on the Road to Tarascon, 1888 프란시스 베이컨, <빈센트 반 고흐의 초상화를 위한 습작 V>, 1957. 처음 그림을 시작했을 때 베이컨은 빈센트 반 고흐에 깊이 감동했다. 고흐의 초상화를 위한 그의 연구가 이를 입증한다.
예술가가 존경하는 선배와 교감하면서 자신의 정체성을 발견하는 데 사용해온 또 다른 기술은 조합이다 예술가가 존경하는 선배와 교감하면서 자신의 정체성을 발견하는 데 사용해온 또 다른 기술은 조합이다. 후세에 영향을 준 명 개의 유명한 요소를 골라내 지금까지 아무도 시도해본 적이 없는 방식으로 결합하는 것이다. 프랜시스 베이컨의 화풍은 오늘날 명백하고 완전해 보이지만, 이 수준에 이르기까지 그는 일정 범위의 각기 다른 예술적 관심을 점차 하나로 혼합하는 여정을 거쳤다. 처음 그림을 시작했을 때 베이컨은 빈센트 반 고흐에 깊이 감동했다. 고흐의 초상화를 위한 그의 연구가 이를 입증한다. 프란시스 베이컨, <빈센트 반 고흐의 초상화를 위한 습작 V>, 1957.
Francis Bacon, Homage to Van Gogh, 1985. 우리가 아는 한에서 프랜시스 베이컨이 화가가 되는 과정은 반 고흐를 동경하는 마음이 들끓고 있는 도가니 속으로 여러 주제를 던져 넣은 실험의 연속이었다. Francis Bacon, Study for a Portrait of Van Gogh IV , 1957
프랜시스 베이컨, <십자가 책형의 기본 형상을 위한 세 개의 습작>, 1944 11930년대부터 1950년대까지 여러 해 동안 베이컨은 다양한 공감과 열정을 꾸준히 조합했다. 예를 들어 11935년 그는 파리의 헌책방에서 구강 질환에 관한 책을 우연히 발견했다. 거기에 실린 채색 도판들은 보통 사람들이라면 역겨워하면 고개를 돌렸을 테지만 그에겐 매혹적으로 보였다. 같은 해에 그는 에이젠스타인의 영화 <전함 포템킨>에서 간호사가 비명을 지르는 충격적인 장면을 보았고, 여기에 그 자신이 천식 발작을 일으켰을 때 숨쉬려고 고생하던 경험과 억압적인 아버지의 얼굴이 격조로 일그러졌을 때의 기억을 결합했다.
Francis Bacon, Study of Velasquez’s Portrait of Pope Innocent X, 1953. Velázquez's 1650 portrait of Pope Innocent X.
그는 티치아노도 새로 발견했다. 베이컨은 그의 캔버스에서 시각적 평면을 단순화하고 깊은 갈색 빛깔을 배경으로 만들어낸 존엄하고 엄숙한 분위기에 깊은 인상을 받았다. 이 요소들은 저마다 독립적인 생명력을 지니고 있었지만, 베이컨은 그것들을 소화하고 결합해 그전까지 누구도 상상하지 못한 새로운 상호 공감을 만들어냈고, 자신의 천재적이고 원숙한 화풍을 완성시켰다. Francis Bacon, Study after Pope Innocent X by Velazquez, 1951
르코르뷔지에, <인간의 집>에 실린 스케치, 1942. 많은 사람들처럼 르코르뷔지에도 자신이 원하는 삶의 모습을 스케치하는 것으로 첫 발을 내디뎠다. 학생과 도제를 거치던 시절의 초기 노트들에는 그의 후기 건설 프로젝트의 분위기를 연상시키는 건물들이 빠른 펜 놀림으로 그려져 있다. 이 스케치들이 감동적인 것은 그가 자신이 원하는 미래의 직업을 얼마나 어렸을 때부터 알고 있었는지, 그리고 그렇게 되기까지 얼마나 오랜 세월을 기다렸고 얼마나 큰 노력을 기울였는지 보여주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저마나 내면에 소설이나 그림 같은 것을 하나씩 품고 있다. 거의 모든 사람들은 자신의 창조물과 경력이 어떤 모습일지 순간의 직관으로 느낀다. 문제는 순간의 통찰을 하나의 작품으로 변화시킬 만큼 끈기와 인내를 키울 수 있느냐이다. 꿈에서 출발해 창작에 이르기까지 감내해야 하는 희생을 생각하게 된다. 어려움이란 정상적인 것이다.
Le Corbusier. Villa Savoye in Poissy, 1931 우리는 다른 사람과 우리 자신에게서 많이 배워야 한다. 그리고 인내해야 한다. 타고난 결함들을 극복해야 한다. 여기에는 헛된 희망, 위험을 마주하지 않으려는 소극적 태도, 실패의 고통스러운 교훈을 받아들이지 않으려는 나약함, 달갑지 않은 사람의 충고는 듣지 않으려는 편협함 등이 포함된다. 더 나아가 성공은 여러 긍정적 자질을 계발하라고 요구한다. 예를 들어, 생각이 다른 사람에게 자신의 생각을 설명하는 능력, 사람들을 실망시키고도 그들에게 호감을 잃지 않는 힘, 전체를 위해 작은 이익을 포기하는 능력 등이다. 우리는 성숙함의 이런 상이한 원천들을 점차 하나로 결합하고 효율적으로 사용할 필요가 있다. 르코르뷔지에의 성장은 인생의 숙성 과정을 보여주는 좋은 예이다.
고통에 대한 경의 좋은 관계를 위해서는 적절한 예측이 필요하기도 하다. 예를 들어 결혼 생활에도 많은 갈등과 고뇌가 있는 것은 확실하지만, 그런 정도의 고통을 미리 예측하고 받아들인다면, 더 좋은 상대를 찾아 떠나고 싶은 유혹은 감소할 것이다. 이처럼 기대치를 건설적으로 낮추는 방법은 직업에도 적용될 수 있다. 지금 이 맥락에서 예술의 임무는 우리의 슬픔에 존엄성을 부여하는 것이다. 굴욕, 자기회의, 금전적 불안은 우리가 싸워나가야 할 인생의 문제들이지만, 그건 우리가 멍청하거나 무능해서가 아니다. 우리는 종교의 역사에서 가르침을 얻고, 개인적으로나 사회적으로 고통의 이미지들에 반복적으로 주의를 기울이고 경의를 표하는 습관을 정착시켜야 한다. 스테인드글래스, 샤르트르 대성당, 1150. 기독교 미술은 가장 중요한 인물이 비참하고 절망적인 상황에 처했을 때의 모습을 강조한다. 그 목적은 고통과 슬픔이란 삶이 잘못된 길로 들어선 결과가 아니라, 옳은 일을 하고자 할 때 흔히 따라오는 부산물임을 상기시켜주는 데 있다.
Nicolas Poussin, Landscape With A Man Washing His Feet At A Fountain, c.1648
푸생의 <샘에서 발을 씻는 남자가 있는 풍경>은 모든 종류의 노동에 관한 진지한 메시지를 담고 있다 푸생의 <샘에서 발을 씻는 남자가 있는 풍경>은 모든 종류의 노동에 관한 진지한 메시지를 담고 있다. 샘에서 발을 씻고 있는 그림 왼쪽의 남자는 노동을 상징한다. 그의 직업이 무엇인지는 알 수 없으나 그다지 로맨틱한 직업은 아니다. 우리는 그가 이미 먼 길을 걸어왔고 앞으로도 분명 갈 길이 먼 것을 알 수 있다. 그곳에 다다른다 하여 그에게 특별한 보상이 있으리란 보장은 전혀 없다. 그는 자신의 피로와 싸워야 한다. 오른 쪽에 있는 젊은이는 열심히 일하지 않은 까닭에 아내에게 혼쭐이 나고 있다. 이 그림에서 노동은 따분하고 피할 수 없는 삶의 조건이다. 이 그림에는 우리도 그런 태도를 받아들여 삶이 끊임없이 어렵게 느껴지더라도 너무 낙담하거나 화를 내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바람이 배어 있다. 푸생은 우리의 과도한 기대에 이의를 제기하고 있다. 모퉁이를 돌면 저기 어딘가에 안락하고, 부유하고, 짜릿하고, 즐거운 삶이 있지만, 우리만 부당하게 소외되어 있거나 우리가 그 동안 그 위치를 알 만큼 영리하지 못했을 뿐이라는 착각을 버리라고. 이 화가는 위풍당당한 나무들, 옛터, 고요한 하늘을 이용해 그림을 시각적으로 장엄하게 만들어, 자칫 따분한 교훈으로 다가올 수도 있는 메시지에 힘과 위상을 부여한다.
Nicolas Poussin, Landscape with a Woman Washing her Feet
이는 어떤 일을 하느냐가 중요하지 않다는 말이 아니다. 의미 있는 일을 하든, 관리직에 있든, 야심찬 사업을 벌이든, 창조적인 활동을 하든, 겉으로 보이는 모습과는 무관하게 속사정은 대개 그리 매혹적이지 않다는 것이 푸생의 메시지이다. 푸생은 그 자신과 친구들에게 인생은 다른 곳에 있지 않으며, 근심과 노고는 인간 조건의 따돌릴 수 없는 동행자임을 말하고 있다. 지금 벌어지고 있는 상황의 중요성을 과소 평가하지 말자. 지금 벌어지는 일들이 번잡하고, 혼란스럽고, 느리고, 속되고, 무섭게 여겨질 수도 있다. 그러나 가장 존경스럽고 기록할 가치가 있는 역사적 시기들도 실제로 그 당시에는 그런 식으로 느껴졌을 것이다. 노동도 그와 같다. 노동은 대단히 가치 있고 잔잔히 순항하고 있을 때조차 대개 반복적이고, 지루하고, 인정과 보상이 부족하게만 느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