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미술사 (1950-1955) 정헌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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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미술사 (1950-1955) 정헌이

1951 -바넷 뉴먼의 두 번째 개인전이 실패로 돌아간다. -바넷 뉴먼의 두 번째 개인전이 실패로 돌아간다. -동료 추상표현주의자들에게 버림받은 그는 미니멀리즘이 등장한 후에야 비로소 선구자로 추앙받게 된다.

1953 -작곡가 존 케이지가 로버트 라우센버그의 작업 <타이어 자국>에 참여한다. -작곡가 존 케이지가 로버트 라우센버그의 작업 <타이어 자국>에 참여한다. -라우센버그, 엘스워스 켈리, 사이 톰블리의 다양한 시도를 통해 지표의 흔적이 표현적인 자국에 대항하는 수단으로 발전한다.

1955 -일본에서 첫 번째 구타이 전시가 열린다. -이로써 모더니즘 미술이 미디어를 통해 확산되고 있으며 미국과 유럽 이외의 지역에서 활동하는 미술가들에 의해 재해석되고 있음이 확인된다. -파리의 드니즈 르네 갤러리에서 열린 <움직임>전과 함께 키네티시즘이 시작된다.

1957 -문자주의 인터내셔널과 이미지주의 바우하우스라는 소규모의 두 전위 그룹이 통합되어 전후 예술 운동 중 가장 정치 참여적이었던 상황주의 인터내셔널이 결성된다.

1951: 바넷 뉴먼의 두 번째 개인전이 실패로 돌아간다 1951: 바넷 뉴먼의 두 번째 개인전이 실패로 돌아간다. 동표 추상표현주의자들에게 버림받은 그는 미니멀리즘이 등장한 후에야 비로소 선구자로 추앙받게 된다. Barnett Newman (L), Jackson Pollock and Tony Smith at the Betty Parsons Gallery, April 1951 Barnett Newman (1905 –1970)

로버트 머더웰이 1950년 첫 개인전에 대해 “당신을 동료라고 생각했는데 이 전시는 우리 모두를 겨냥한 비판입니다”: 뉴먼의 작품은 마더웰을 비롯한 추상표현주의자들의 작품을 지배하던 제스처적인 수사법과 대조적인 것이었다. 추상표현주의자들은 마더웰의 말에 공감했는지 폴록을 제외하고는 1년 후에 열린 두 번째 전시 오프닝에 참석하지 않았다. 1951년 전시에서 선보인 뉴먼의 작품은 자신의 작품이 모두 비슷하다는 언론의 편견을 깨기 위해 다양성에 관심 ‘띠’ 대신에 ‘지퍼’라는 단어를 사용한 것은 ‘지퍼’라는 단어에는 단순한 상태가 아니라 행위가 함축돼 있기 때문. Barnett Newman, Onement II, 1948, 152.4 × 91.4 cm

Adam , 1951 Eve, 1951

The Voice, 1950, 250x250cm The Name II, 1950, 250x250dm

Vir Heroicus Sublimis (영웅적 숭고함을 향하여), 1950~1951, 242.2x541.7cm 서로 다른 색채의 지퍼 다섯 개가 약 5.5미터 너비의 엄청난 크기의 강렬한 적색 화면을 불규칙하게 분할하는 작품이었다. 이 커다란 작품과 높이는 같지만 너비가 3.8센티미터에 불과하며, 오직 적색 지퍼 하나(지퍼의 양쪽은 더욱 짙은 적색)만으로 구성된 <황무지>는 꼭 <영웅적 숭고함을 향하여>에 딸린 이상한 부속물 같았다. <영웅적 숭고함을 향하여>의 가장 오른쪽 지퍼의 두께는 캔버스 가장자리에 있는 적색 ‘바탕’의 두께와 같으므로 여기에서 형상과 배경, 윤곽과 형태, 선과 평면 같은 전통적인 대립은 사라지게 된다.

Barnett Newman, Here I, 1950. 석고와 채색된 나무, 243. 8x67. 3x71. 8cm Barnett Newman, Here I, 1950. 석고와 채색된 나무, 243.8x67.3x71.8cm. The Wild, 1951, 243x4.1cm 조각처럼 보이지만 명백한 회화 작품인 <황무지>는 거대한 적색 캔버스에서 지퍼 하나만 떼어 내어 벽으로 옮긴 것처럼 보였고, 결국 전후 미국 미술사상 최초의 “Shaped canvas”가 되었다. 자신의 최초의 조각 작품인 <여기 I>은 <황무지>의 사물성이 간과되거나 과장되지 않도록 바로 옆에 배치됐다. 두개의 지퍼로 구성된 <여기 I>은 실제 공간을 가로지르며 자율성을 선언하는 듯하다.

토마스 헤스 “생일이던 1948년 1월 29일 뉴먼은 짙은 카드뮴 레드 (인디언 레드나 시에나 레드와 같이 광물성처럼 보이는 짙은 색의 안료)로 칠한 작은 캔버스 하나를 놓고 그 중앙에 테이프를 한 줄 붙였다. 그리고 그 위로 재빨리 밝은 카드뮴 레드를 칠해 색상을 테스트했다. 뉴먼은 꽤 오랫동안 그림을 바라봤으며 실제로 8개월 동안이나 연구를 거듭한 결과 탐구를 끝마쳤다.” 이처럼 뉴먼은 오랫동안 ‘적절한’ 주제를 갈구해 왔다. 그러나 <하나임 I>에 대해 지금까지 통용돼 온 표준적인 설명, 즉 이 작품이 창세기 도입부에 나오는 빛과 어둠의 분리를 회화적으로 표현한 것이라는 해석은 이 작품의 전적으로 새로운 면모를 설명하지 못한다. 그 이전에 뉴먼은 최소 3년간 “회화가 애초에 존재하지 않기라도 한 것처럼 그리고 무에서 출발”하겠다는 자신의 욕망을 세계의 기원이라는 주제를 통해 형상화해 왔다. Barnett Newman, Onement I, 1948. 캔버스에 붙인 마스킹 테이프에 유채, 69x41cm

처음으로 ‘자동기술’ 방식을 활용해 신화적 주제들을 발아의 이미지로 형상화한 드로잉 작업 땅의 여신이 가이아 신화 Gaia was the great mother of all: the primal Greek Mother Goddess; creator and giver of birth to the Earth and all the Universe; the heavenly gods, the Titans and the Giants were born from her union with Uranus (the sky), while the sea-gods were born from her union with Pontus (the sea). Her equivalent in the Roman pantheon was Terra. Barnett Newman Gea, 1944–45 Oil and oil crayon on cardboard 70.5 x 55.7 cm

Genesis00The Break, 1946. oil on canvas 61 x ca. 69 cm The Beginning, 1946 oil on canvas 101.6 x 75.6 cm

<하나임 I>의 주제가 새로운 것이 아니라면 주제를 전달하는 형식은 새로운가? <순간>에서 이미 직사각 화면과 그것을 좌우 대칭으로 나누는 수직 요소가 등장했다. 그러나 개념적으로나 구조적으로나 <순간>과 <하나임 I> 사이에는 엄청난 차이가 있다. 뉴먼은 <하나임 I>이후 작품들을 통해 형식은 이미 존재하는 내용을 전달할 뿐이라는 철학적 관념의 토대를 무너뜨리고 있다. 문제는 ‘바탕’에 있다. <하나임>의 화면 (애초에는 “미리 준비된 바탕”이자 물감의 가장 아래층으로 의도된 바탕)은 고르게 채색된 것에 비해 <순간>의 배경은 확정적이지 않고 막연하며 ‘띠’로 인해 공간 깊숙이 후퇴한다. 이 작품의 ‘띠’는 아직까지 ‘지퍼’가 아니다. Barnett Newman, Onement I, 1948. 캔버스에 붙인 마스킹 테이프에 유채, 69x41cm Moment, 1946 oil on canvas 76.2 x 40.6 cm

뉴먼은 <순간>을 비롯해 이 시기의 작품에서 띠는 “배경의 대기 같은 느낌, 즉 자연에 존재하는 대기와 같은 느낌”을 부여한다고 말했다. 혹은 “공간과 색채를 조작함으로써” 만물이 탄생하기 이전의 혼돈 상태인 공(空)을 파괴하려 했다. 궁극적으로 뉴먼은 <순간>에서 화면에 속하지만 화면과 전적으로 일치하지 않으며, 그 결과 자신의 경계를 이탈해 확장하는 것처럼 보이는 이미지를 확보할 수 있었다. 1948년 작품 제목 <Onement>는 영어 ‘속죄 atonement’의 어원으로, ‘하나로 됨이라는 사실’을 의미한다. 이 작품은 일체성(wholeness)을 재현하지는 않지만, 화면과 지퍼를 하나의 통합체로 결합함으로써 일체성을 선언한다. Onement I, 1948 Moment, 1946 뉴먼의 작품에 주기적으로 등장하는 좌우대칭은 우리 신체의 수직적 축이 시지각은 물론 우리가 보는 대상 앞에 놓일 수밖에 없는 조건을 구조화하는 요소라는 사실을 전제로 한다. 또한 우리는 좌우대칭을 지각하자마자 곧바로 우리 자신의 신체를 인식하는 동시에 시각장의 범위를 성정하게 된다. 이렇게 좌우 대칭에 대한 지각은 자명한 것이며, 순간적이다. 60년대 미니멀리즘 작가들에게 하나의 성서가 된 <지각의 현상학>의 저자인 철학자 메를로-퐁티에 따르면, 우리가 자신도 모르게 세계에 속하는 존재임을 감지하게 되는 것은 바로 유아기부터 시작된 우리의 수직성 때문이다. Be I, 1949, 283.2x213.4 x cm

Chathedra, 1951 <영웅적 숭고함을 향하여>와 함께 1951년에 전시된 커다란 작품들을 계기로 뉴먼은 평생 그를 따라다닌 강박 중 하나였던 규모 (scale)의 문제에 관심을 돌리게 됐다. 여기서 규모는 <하나임 I>에서 탐색된 현전(presence)의 현상학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전후 미국 작가 중에서 리처드 세라보다 앞서서 작품의 규모를 도덕적 차원과 관련 지은 사람은 뉴먼이 유일하다.

Barnett Newman, 18 Cantos, 1963-64, A portfolio of 18 lithograph prints and one cover page

Anna’s Light, 1968. 270x600cm.

Vir Heroicus Sublimis (영웅적 숭고함을 향하여), 1950~1951, 242.2x541.7cm 시야에 대한 통제를 포기하도록 만드는 과잉 뉴먼의 그림은 그의 동료 추상표현주의자들이 제작한 동일한 크기의 작품보다 더 거대해 보였다. 그 이유는 시각적으로 거의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뉴먼의 작품이 우리에게 작품을 단번에 받아들이라고 종용하기 때문이다. 관람자는 거대한 색면 틈으로 작용하는 지퍼 중 하나에 시선을 고정하려 하지만, 자신도 모르게 어느새 시선을 확장하게 된다. 강렬한 색채의 바다에 휩쓸린 관람자는 결코 전체를 훑어볼 수는 없음에도 불구하고 그 전체가 존재한다는 사실을 인식할 수밖에 없다. 이렇게 우리는 그 전체를 ‘저기가 아닌 여기’로 체험하게 된다. 사람들은 큰 작품을 멀리서 보려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이 전시의 큰 그림들은 가까이서 보도록 의도된 것이다.뉴먼에게 크기는 시야를 초월하는 수단이었다.

Newman, “The Sublime is Now”, 1948—장소에 대한 감각 이 글에서 쓰인 ‘숭고’란 단어 ‘비극’ 대신 일시적으로 사용했던 것 뉴먼에게 ‘숭고’는 ‘기억, 연상, 향수, 전설, 신화’에 기대지 않고 홀로 혼돈과 마주하여 용감하게 인간 운명과 대면하는 누군가가 자신이 어디 있는지 감지할 수 있게 해 주는 무엇이다. 다시 말해 숭고는 그런 누군가에게 ‘여기’와 ‘지금’에 대한 감각을 부여하는 것이다. 1948년부터 뉴먼은 관람자에게 장소에 대한 감각, 즉 그 자신의 규모에 대한 감각을 주고 싶었다고 주장. 에드먼드 버크나 임마누엘 칸트 같은 철학자에게 ‘숭고’ 개념은 “총체성 관념에 대해 일시적으로 느끼는 부족함”이었다. 뉴먼이 말하고자 한 ‘숭고’는 개념으로서의 공간이 아니라 그 자신의 ‘현전 (presence)’이며, 무한성이 아니라 ‘규모’이며, “시간의 감각”이 아니라 “신체가 지각하는 시간”이었다. 곧이어 뉴먼은 철학적 숭고 개념에 작별을 고했고, 숭고가 “인간이 존재한다는 관념”을 표현하기에는 너무도 보편적인 개념이라고 봄. 뉴먼이 ‘다이아그램’이라 불렀던 ‘보편적인 것’은 언제나 부정적 의미로 사용되었다.

뉴먼은 <하나임I>을 제작하기 3년 전, 자신이 거장이라고 생각했던 몬드리안을 비판. 몬드리안의 그림이 기하학적 미술, 좋은 디자인, ‘자연으로부터의 추상화’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 1960년대에 와서야 뉴먼은 실제로 자신의 미술과 이론이 직관을 중시한다는 점에서 몬드리안과 매우 흡사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몬드리안과 공통점이 많다는 사실을 인식하고서야 비로소 몬드리안에 대해 느꼈던 감정의 실체를 파악하게 되었다. 미니멀리즘 작가들과의 토론 덕분에 그는 자신의 ‘일체성’ 개념이 관계적 구성이라는 전통적 방식에 의존한 몬드리안의 미술과 전적으로 상반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뉴먼은 몬드리안의 사회적 유토피아와 관계 미학을 교조주의, 합리주의, 공포 정치와 관련 짓게 됐다. 이제 뉴먼은 몬드리안의 ‘형식주의’와 ‘내용의 부재’를 비난하기보다는, 이제 몬드리안의 추상에 내재된 사회적 기획에 대해 갖는 반감을 자신의 무정부주의 정치학의 관점에서 설명했다. Who's Afraid of Red, Yellow and Blue I,  1966, oil on canvas, 190 x 122 cm

Who's Afraid of Red, Yellow and Blue III, oil on linen, 1967,  224 x 544cm.  It was attacked with a knife by Gerard Jan van Bladeren in 1986 and restored by Daniel Goldreyer in 1991.

대칭은 뉴먼의 미술을 지탱하는 특징이었지만, 이제 그것은 수년 전 스텔라의 흑색 회화가 그랬던 것처럼 대칭을 금기시했던 몬드리안을 직접적으로 겨냥하고 있었다. 프랭크 스텔라는, “당신은 한 귀퉁이에서 한 일을 다른 귀퉁이에 있는 무엇으로 균형 잡으려 한다.”고 조롱. Who's Afraid of Red, Yellow and Blue II, 1967, acrylic on canvas, 305x259cm

Who's Afraid of Red, Yellow and Blue IV, 1969~1970, oil on canvas, 274 x 603 cm

Barnett Newman, n.d. Sketch pen & ink on paper 37.5 x 27.5 c

1953: 작곡가 존 케이지가 로버트 라우센버그의 작업 <타이어 자국>에 참여한다 1953: 작곡가 존 케이지가 로버트 라우센버그의 작업 <타이어 자국>에 참여한다. 라우센버그, 엘스워스 켈리, 사이 톰블리의 다양한 시도를 통해 지표의 흔적이 표현적인 자국에 대항하는 수단으로 발전한다. John Cage (1912~1992), Merce Cunningham(1919~2009), Robert Rauschenberg(1925~2008)

Malevich, Black Square, 1915 White on White, 1918 Robert Rauschenberg, White Painting, 1951

Robert Rauschenberg, Untitled, c. 1951 Robert Rauschenberg, Untitled, c. 1951. Oil and newspaper on four canvas panels, 221 × 434.3 cm

텅 빈 캔버스 텅 빈 캔버스만큼이나 ‘모험’의 현장에서 후퇴한 것도 없다. 힘든 싸움을 통해 자기 ‘존재’의 “형이상학적 실재”를 선언하려 했던 액션페인팅 화가들의 무대는 이 텅 빈 캔버스를 계기로 모노크롬 레디메이드로 변형됐다. Robert Rauschenberg, White Painting, 1951

추상표현주의에 대한 적대감 당시 추상표현주의는 하나의 보편적 미학 용어로 통용되고 있었다. 블랙마운틴의 교수였던 드 쿠닝, 로버트 마더웰, 잭 트보르코브와 같은 추상표현주의자들은 물론, 이들을 따랐던 학생들에게도 채색된 자국이 개인의 독특한 흔적이라는 생각은 자율성, 자발성 그리고 그 자국의 이데올로기에 수반된 모험과 함께 일종의 신조처럼 자리잡고 있었다. <드 쿠닝 드로잉 지우기>는 작가의 붓질에 과도한 의미를 부여하는 추상표현주의를 겨냥하여, 지우는 동작의 반복만큼이나 이런 정서에 반하는 것도 없다는 점을 분명히 드러냈다. 여기서 제작자의 정체성과 관련된 어떤 흔적도 남기지 않는 ‘지우는 행위’의 대상은 드로잉 자국과 그것을 지운 흔적 모두였으며, 그 지우는 방식은 기계적이었다. Erased de Kooning Drawing, 1953 64x55cm.

Automobile Tire Print, 1953. 캔버스에 부착된 종이에 잉크, 41.9x671.8cm. 다다의 귀환 타이어 자국처럼 기계적으로 만들어진 선만큼이나 비자발적이고 작가의 개성이 드러나지 않는 것도 없을 것이다.

John Cage, 4’ 33’’, 1952, 악보 선불교의 영향을 받은 케이지는 ‘행위’의 인위성, 즉 작곡과 관련된 일체의 행위에 대한 반대로서 수동성을 찬양했다. 만물을 구축하는 보편적인 질서는 유연과 무작위라는 관념에 매료된 케이지에게 음악은 침묵과 소음이 우연히 뒤섞인 무엇이었다. 1951년 여름, 젊은 피아니스트 데이비드 튜더는 블랙마운틴에서 케이지의 최근 작품 <4분 33초>를 연주했다. 라우센버그의 <흰색 회화> 연작은 케이지와의 상호 교류를 통해 탄생했다. 하나에서 두 개로, 다시 세폭, 네폭, 다섯 폭, 일곱 폭으로 단순한 수열 공정에 따라 제작된 이 연작은 내러티브는 물론 지시 대상도 없는 것처럼 보였다. 대신 그 형태들은 주변의 떠도는 인상을 붙잡는 듯했고, 그 방식은 케이지의 음악이 청중의 숨소리나 기침 소리를 그대로 반영한 것과 동일했다. Robert Rauschenberg, White Painting, 1951 실제로 케이지가 언급했듯이 <흰색 회화>는 먼지 입자, 빛, 그림자가 “착륙하는 활주로”였고, 라우센버그 또한 늘 자신의 연작에 대해 “그림자를 포착하는 흰색 회화”라고 말했다.

이 무렵 사진 작업을 활발히 했던 라우센버그는 스쳐가는 그림자가 드리워지는 스크린으로서의 회화 개념과, 초점이 맞춰진 부분의 인상을 기록하는 사진의 감광 표면을 연관시켰다. Robert Rauschenberg Untitled [self-portrait (II), Black Mountain], ca. 1950 Untitled (self-portrait, Black Mountain), 1952

Robert Rauschenberg and Susan Weil, Untitled [feet and foliage], ca 그는 <흰색 회화>를 제작하기 1년 전에 발, 손, 고사리, 여성 누드의 그림자를 청사진 종이의 파란 바탕 위에 기록하는 작업을 했는데, 그림자를 드리운다는 관점에서 본다면 이런 거대한 “레이요그램” 작업은 흰색 회화와 더욱 유사해진다. Female Figure (Blueprint), 1950 monoprint on blueprint paper, Rauschenberg and Susan Weil: untitled, 1950  (exposed blueprint paper, more than 6' in length) 

Robert Rauschenberg Making a Print, 1951 Robert Rauschenberg, Ceiling + Light Bulb, 1950 그림자와 사진의 관계, 또는 레디메이드가 그것이 선택된 바로 그 순간, 즉 ‘만남’의 지표(index)가 되는 상황 모두에서 문제가 됐던 ‘지표의 본성’을 뒤샹이 다뤘던 것처럼, <흰색 회화>에서 회화와 사진과의 관계를 탐구했던 라우센버그의 작업은 타이어 자국과 드 쿠닝 지우기를 통해서 지표적 흔적에 대한 광범위한 이해로 귀결됐다. 이 지표적 속성으로 인해 성격이 다른 세 가지 작품 모두 ‘비 구성 noncomposition’이란 동일한 논리를 따르게 된다. 즉 라우센버그는 어떻게 자국이 상징적 의미 (흔히 ‘표현적’ 자국에서 기대되는 내적 생명력)를 띠지 않고 외부 세계로부터 새겨질 수 있는지, 즉 그 원인이 되는 물리적 대상의 이차원적 흔적을 기록할 수 있는 지와 관련된 비구성의 기본 원리들을 이미 간파하고 있었다.

'Walkaround Time' by Merce Cunningham, 1968 'Walkaround Time' by Merce Cunningham, 1968. Choreography: Merce Cunningham; Stage set and costumes: Jasper Johns.  Jasper Johns' stage set for Merce Cunningham, based on Marcel Duchamp's The Large Glass

비(非) 구성을 위한 법칙 Ellsworth Kelly (1923~ ) 이 무렵 지표의 논리에 천착하던 켈리 또한 작가 고유의 흔적을 제거하고 비구성 형태를 획득할 수 있는 방법을 발견했다. 그러나 라우센버그와는 달리 켈리는 뒤샹을 선례로 삼지 않았으며, 추상표현주의가 아니라 기하학적 추상을 극복하고자 했다. Ellsworth Kelly, Window Museum of Modern Art, Paris, 1949. 두 개의 패널로 구성된 나무와 캔버스에 유채, 126.3x49.5x1.9cm

당시의 구성적 기하 주상은 의식적으로 개인의 분노를 새겨 넣는 액션 페인팅의 붓질과 거리가 멀었지만 여전히 표현적인 것으로 인식됐다. 왜냐하면 여기서 미술가는 ‘이성’의 씨실과 날실로 세계를 직조하는 조물주였기 때문이다. 당시 켈리는 이와 같은 ‘구성’의 정서에 저항했다. “성당의 아치 천장이나 도로의 아스팔트에서 발견되는 형태들이 더 가치 있고 의미 있게 다가 왔다. 그것들은 기하학적 회화보다 훨씬 더 감각적인 경험을 제공한다. 내가 본 무언가의 해석 또는 새롭게 발견한 어떤 내용을 재현하는 그림을 그릴 바에야 차라리 대상을 발견하고 그것을 ‘있는 그대로’ 제시하려 했다.” 팔레 드 도쿄의 긴 직사각형 유리 창문과 그 사이의 문설주 패턴에 매료된 켈리는 두 장의 유리판으로 여닫이 창을 만들고, 그 나무 부조 하단에 문설주를 삽입해서 실제 창문을 ‘있는 그대로’ 복제했다. 일종의 추상회화처럼 보이는<창문, 파리근대미술관>은 지시 대상 (복제되거나 스텐실로 본뜬 실제 대상)을 곧바로 활용한다는 점에서 작가의 구성을 별도로 요구하지 않았고, 동시에 그 자체가 지시 대상으로 보이기까지 했다. Ellsworth Kelly, Window Museum of Modern Art, Paris, 1949. 두 개의 패널로 구성된 나무와 캔버스에 유채, 128x50x2cm

Ellsworth Kelly, Neuilly, 1950,  59,1 x 80 x 3,8 cm. 지표의 형태로 켈리의 작품 표면에 전사된 이 발견된 형태들은 때로는 사물일 수도, 때로는 건축물일 수도 있었다. <뇌이 쉬르 센>이라는 파리 외곽 지역에 있는 한 병원 정원의 보도블록은 이 작품에서 저부조 형태로 옮겨졌다.

아치형 다리는 <흰색 판>에서 원래 다리와 그 다리가 물에 비친 모습이 결합된 채 표현되었다. 켈리는 <창문, 파리근대미술관>의 제작을 계기로 자신의 미술에서 진행된 해방의 과정을 “이미 만들어진 (already made) 것이라고 표현했다. “내가 알고 있던 회화, 그것은 나에게 이미 완료된 것이었다. 새로운 작품은 익명적이고 서명이 기입되지 않은 회화-오브제여야만 했다.내가 보는 장소와 사물 모두 있는 그대로 제작 가능한 대상이 됐다. 거기에 어떤 것을 덧붙일 필요도 없었다…. 구성은 이제 필요하지 않다. 주제는 이미 만들어진 채로 존재하며, 나는 어디서든 그것을 활용할 수 있었다.” Ellsworth Kelly, White Plaque: Bridge Arch and Reflection, 1952~1955, Oil on wood, two panels separated by a wood strip, 164.6 x 121.6 cm

Ellsworth Kelly, La Combe I, 1950. Oil on canvas, 96.5 × 161.9 cm   Ellsworth Kelly, La Combe I, 1950. Oil on canvas, 96.5 × 161.9 cm <협곡>에서는 계단이나 건물 정면에 드리워진 그림자가 옮겨졌다. 뒤샹이 <너는 나를/나에게>의 드리워진 그림자를 제작할 때 그랬던 것처럼, 켈리 역시 발견된 형태를 캔버스에 신중하게 전사했다. 켈리는 뒤샹과 동일한 전략을 구사하면서 이미 지표인 것(드리워진 그림자)을 다시 지표(전사한 후 채색한 지표)로 만들 수 있었다. 대상의 흔적이나 자국은 ‘구성되지 않고’도 캔버스 표면을 분할하고 있었다.

<커다란 벽을 위한 색상들>에서 켈리는 내부 구성을 피하기 위해 ‘이미 만들어진’ 단위인 그리드를 채택하고, 색상표에 근거해 색상을 결정한 후 그것을 임의로 배열하였다. 켈리는 존 케이지와의 만남을 통해서 우연의 개입을 받아들였다. 실재로 우연은 발생한 사건의 흔적이라는 점에서 지표의 또 다른 존재방식이었고, 그 사건의 목격자가 개입하는 것을 배제한다는 점에서 구성을 피하는 또 다른 방법이었다. 발견된 오브제를 우연과 결합하는 것은 도시 환경에서도 얼마든지 가능했다. Ellsworth Kelly Colors for a Large Wall, 1951 64개의 패널로 구성된 캔버스에 유채, 243.8x243.8cm

50년대 초반만 해도 켈리처럼 지표를 활용해 기하학적 추상에 대항하는 것은 아주 드문 사례였기에 그의 작품은 기하 추상의 변형에 불과한 것으로 잘못 인식됐다. 또 이후에는 미니멀리즘의 선구적 작품으로 알려지기도 했다. 지표가 추상표현주의의 표현적 붓질에 저항하는 수단으로 받아들여진 것은 재스퍼 존스가 <원 그리는 장치>(1959)를 시작으로 일련의 회화 작품을 제작하기 시작한 이후의 일이다. 캔버스 한 편에 물감을 묻힌 나이프를 고정시키고 캔버스를 회전시켜 나이프의 물감이 발라지도록 한 이 작품에서 존스는 채색이 마르기도 전에 붓질을 가하여 물감을 뭉갰던 드 쿠닝의 악명 높은 자국을 모방했다. Jasper Johns (born 1930), Device Circle, 1959, Encaustic and collage on canvas with object, 101.6x101.6cm

지표의 귀환 Cy Twombly (1948 – 2011) 블랙마운틴에 다녔던 사이 톰블리는 1953년 스테이블 갤러리에서 라우센버그와 함께 전시회 개최. 그의 작품은 라우센버그의 <흰색 회화> 와 윤이 나는 검은색 콜라주와 같은 전시실에 전시. Untitled, 1953 Tiznit, 1953

톰블리의 작품은 드 쿠닝보다도 폴록의 드립 페인팅을 드로잉하는 작업 추상표현주의의 작가적 흔적에 대항해 톰블리가 택한 전략은 자발적인 붓질을 ‘장치’로 전환하는 것은 아니었다. 그의 전략은 오히려 그 자국 자체를 낙서의 형태로 기록하는 일, 다시 말해 그 자국을 오염되지 않은 화면을 난도질한 익명의 흔적으로 기록하는 일이었다. 이는 “아무개 이곳에 다녀가다”와 같이 사실을 선언하는 무수한 낙서의 형태와 별반 다를 것이 없었다. 형태상 낙서는 드리워진 그림자나 타이어 자국보다 덜 지표적이지만, 이전에 침투된 적이 없는 공간에 침입한 외부 존재의 흔적이라는 점에서 숲 속의 부러진 나뭇가지나 범죄 현장에 남겨진 단서와 유사하다. Cy Twombly, Untitled, 1953, Oil based house paint and wax crayon on canvas, 132.5x132.5cm

<멋대로 굴러가는 바퀴>에 와서야 톰블리의 자국은 비로소 그 위력과 일관성을 갖게 된다. <멋대로 굴러가는 바퀴>에 와서야 톰블리의 자국은 비로소 그 위력과 일관성을 갖게 된다. 수년 전 제작된 라우센버그의 <드 쿠닝 지우기>에 내재된 지우는 붓질의 폭력성이 노출된다. 두 사람 모두 ‘구성하지 않기’ 위한 전략으로 반복과 자의성에 주목한 것처럼, 액션 페인팅이 추구한 작가의 ‘자기 현전’에 맞서고자 지표를 전략적으로 택한 것이다. Cy Twombly, Free Wheeler, 1955.캔버스에 가정용 페인트, 크레용, 연필, 파스텔, 174x189.2cm.

이런 의미에서 낙서는 액션페인팅 화가들의 신조의 근거가 되는 기본 전제를 깨는 것이다. 낙서는 일종의 찌꺼기로 존재한다. 이런 의미에서 낙서는 액션페인팅 화가들의 신조의 근거가 되는 기본 전제를 깨는 것이다. 그 신조란 작품은 작가의 정체성을 비추는 거울이며, 작가는 이런 자기 인식의 행위를 통해 작품의 진실성을 가늠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렇게 거울이 존재의 모델 (거울에 비친 주체의 자기 현전)로 작용한다면, 낙서 자국은 부재의 기록이자 사건이 일어난 후에 남은 흔적이다. Cy Twombly: Leda and the Swan, 1962

Cy Twombly, Cold Stream, White wax pencil on canvas, 1966 자크 데리다가 <그라마톨로지>에서 설명했듯이 형식상 모든 그래픽 흔적은 하나의 사건을 그 이전과 이후로 분리함으로써 자기 현전(주체가 자국을 만든 바로 그 순간)을 왜곡시키며, 그 결과 자기 현전은 자신으로부터 멀어지게 된다. 바로 그런 제작자의 현전을 통해 자국은 찌꺼기, 다시 말해 잔여물이 된다. 그러므로 구조상 낙서는 그 낙서 자국에 낙서를 한 제작자의 부재를 입증함으로써, 그것이 더럽힌 표면을 공격할 뿐 아니라 거울에서 으레 기대되는 작가의 반사상을 깨뜨리고, 작가마저 공격한다.

1955a: 일본에서 첫 번째 구타이 전시회가 열린다. 이로써 모더니즘 미술이 미디어를 통해 확산되고 있으며 미국과 유럽 이외의 지역에서 활동하는 미술가들에 의해 재해석되고 있음이 확인된다. 이는 브라질에서 부상한 신구체주의에서도 마찬가지이다. 일본 구체미술협회는 화가 요시하라 지로에 의해 1954년 창단되어 1972년까지 지속되면서 혁신적이고, 창의적인 스타일로 일본의 미술을 이끌었던 그룹이다. 미술 소재와 표현의 경계를 넘어서며 독창적이며, 실험적인 미술을 추구했던 구체미술협회는 미국의 추상표현주의와 동시대의 미술운동이었다. 요시하라 지로는 “이전에 아무도 하지 않았던 것을 하라!”는 슬로건으로 화가들을 부추겼다. 그리고, 미술과 퍼포먼스를 결합했고, 오브제와 창작 과정, 미술과 관람자, 일상의 경계를 무너트렸다. ‘구타이 (具體)’는 인간의 영혼과 자유를 실험하는 민주적인 미술운동을 지향했다. 소재도 깡통, 장난감, 밧줄, 맨발 등 일상생활과 몸뚱아리를 활용하는 구체적인 오브제였으며, 특정 장소 설치에서는 하늘, 물, 모래, 창호지 등을 사용해 공원과 해변, 또는 폭발로 폐허가 된 장소는 갤러리가 됐다. 구체미술협회는 일본과 세계의 문화적, 사회적 정치적 배경 속에서 구체미술운동의 미학인 독창성과 개인주의를 표방한 구체미술협회는 부단한 실험을 지속했다. 구체미술협회는 관서지방에서 지역적으로 시작됐지만, 곧 국제 현대미술 운동과 호흡을 함께 하게 된다. 미국의 추상표현주의, 앵포르멜, 그룹 제로(Gruppe Zero, 1950년대 독일에서 시작된 반사실주의 그룹) 해프닝(Happenings), 그리고 환경 미술과 동시대의 조류를 구축하기에 이른다.  1972년 구체미술협회는 요시하라 지로의 사망으로 해산된다.

Hans Namuth <가을 리듬>을 그리고 있는 잭슨 폴록, 1950.

폴록에 대한 독창적 오독 폴록의 일본 순회전, 1951; 물감을 쏟아 붓는 장면을 찍은 사진의 영향 구타이가 퍼포먼스 측면에서 폴록에게 주목한 것은 가장 흥미로운 20세기 미술의 ‘창조적 오독’ 가운데 하나. Action Painting: 해롤드 로젠버그의 반-형태주의적 해석: 캔버스가 ‘행위의 장 (arena)’이며 그림 자체보다 그것을 생산한 제스처가 훨씬 중요하다는 것—실존적 몸부림 시라가 가즈오(1924~ )는 붓을 던져 버리고 발로 그림을 그리기 시작: 이런 신체적 방법이 폴록이 캔버스를 바닥에 놓고 작업하는 방식의 극단화라고 생각했다. 이중의 관심: 1) 일본의 전통적인 미술(예를 들면 서예)로 돌아가지 않기 위해 흔적을 남기는 근본적으로 새로운 방법을 고안하고 2)미술 행위를 놀이의 퍼포먼스로 변화시키기 위해 일본 문화의 고도로 의식적인 특성을 이용해야 한다는 것. ‘구타이’란 명칭 자체가 도구 혹은 수단을 의미하는 ‘구(具)’와 신체 혹은 물체를 뜻하는 ‘타이(體)’라는 두 글자로 이루어진 단어 폴록과 마찬가지로 그들은 붓을 통해 하나로 연결되는 손과 제스처, 서명의 끈을 끊어야 한다고 주장. 우연성과 우발성 강조 물감을 칠하기 위해 장난감 자동차, 진동기, 물뿌리개, 소총, 물감 던지기, 화살로 물감 주머니 뚫기 등이 사용. 1957년부터는 시각과 청각을 동시에 사용하여 다다이즘 연극처럼 그로테스크하고 관객에 대해 공격적인 태도를 취하는 쇼를 무대에 올렸다. (모토나가 사다마사의 연기 대포) 전시를 명상적인 공간과 우아한 조각 오브제가 있는 거대한 놀이 공원으로 생각

Shiraga Kazuo(1924~ ) 1955년 10월 도쿄에서 열린 첫 번째 구타이 실내 전시의 오프닝에서 시라가는 관객 앞에서 젖은 진흙 더미에 몸을 던지고 반라로 몸부림쳤다. 이들은 행위의 결과로 완성된 그림의 자취들이 특별히 가치 있다고 생각하지 않고 그저 퍼포먼스나 멀티미디어 설치를 위한 소도구 정도로 여겼다.

시라가 가즈오, <Work II>, 1958. 183x243cm

무라카미 사부로, <통과 Passage>, 1955년 10월 그가 남긴 구멍들은 일본 전통 가옥의 아이콘인 병풍을 공격하는 고의적인 징표였다.

1956년 7월 소나무 숲에서 열린 두 번째 야외 전시에서 모토나가는 물감을 푼 물이 담긴 기다란 비닐봉지를 나무 사이에 매달아 햇빛을 통과시켰고, 요시하라 미치오는 모래에 구멍을 파고 전구를 묻었으며, 시마모토는 고르지 않은 스프링 위에 널빤지를 얹은 좁고 긴 무대를 만들고 그 위로 사람들을 걷게 했다. 가나야마는 하얀 비닐 띠에 300개에 달하는 검은 발자국을 찍어 나무에 이르는 기다란 길을 만들었다. 구타이 전시에 선보인 많은 작품들은 관객을 참여시키는 것이어서 놀이 같다는 인상을 주었고, 새로운 재료에 대한 관심을 보여주었다. 이 둘은 종종 결합되어 ‘두려운 낯설음’의 분위기를 낳기도 했다. 다나카 아츠코는 오프닝을 위해 감전의 위험을 무릅쓰고 수십 개의 백열 전구와 색깔 있는 네온관으로 만든 <전기 드레스>를 입었다. 일본을 방문한 미쉘 타피에가 구타이 작가들에게 앵포르멜 미술을 소개하며, 그들을 설득하여 에너지를 회화에 쏟게 했는데, 이후 구타이의 연극적 산물들은 더 이상 단순한 소품으로 여겨지지 않았으며 자율적, 관념적 추상으로서 전시되기 시작했다. 이후 구타이의 에너지는 서서히 퇴보했다. Tanaka Atsuko  (田中 敦子, 1932 -2005), Electric Dress, 1956

스스로에 반하는 기하학: 신구체주의 (Neoconcretismo) 1950년 상파울로 근대미술관에서 열린 막스 빌 회고전이 계기 막스 빌의 ‘구체미술’은 모든 것이 산술적 계산에 의해 계획되는데 종종 위상수학에서 형태를 빌려왔다. Max Bill (1908 –1994) 스위스

Quinze variations sur une meme theme, 135-38, Lithographie, 32 X 30 cm Max Bill Endless Ribbon, Version IV, 1961-62 Max Bill,  Quinze variations sur une meme theme, 135-38, Lithographie, 32 X 30 cm

Lygia Clark (1920 – 1988), Brazilian Lygia Clark, Composicao, 1953 리지아 클락은 막스 빌이 도상학적인 면에서만 과학에 접근하는 방식을 넘어서기로 결심한다. 그녀의 첫 번째 주요 작품은 나무로 만든 모듈적인 조각 그림 퍼즐. 여기서 그녀는 컬러 블록 사이에 존재하는 검은 색 틈에 긍정적 역할을 부여하고 그 테두리 자체를 회화적 요소로 변형시키고자 애썼다. 그녀의 목표는 평면 기하학과 합리주의의 토대가 되는 텅 빔과 충만함, 안과 밖의 대립을 없애는 것 Composition, 1954

Josef Albers, Structural Constellations, 1953~1958 알베르스의 <구조적 배열>에서 모호한 공간 표현을 발견한 클라크는 붓 자국 없이 기계적으로 칠해진 광택 없는 검은 색 정사각 화면을 흰색 선으로 그 경계를 그리거나 분할했다. 이 흰색 선은 화면 안쪽으로 움푹 들어가 테두리라기보다는 경첩처럼 보였다. 이렇게 완성된 클라크의 회화 연작은 목재 부조에 보다 가까웠다. 비튼 것 같은 환영을 일으킨 클라크는 <선형적 달걀>이라는 원형 그림에서는 환영 자체를 성취 Lygia Clark, Modulated Space (Maquettes), 1958 Linear Egg, 1958

Lygia Clark (1920~1988). 베니스 비엔날레 브라질관 전시 전경, 1968 Lygia Clark, Cocoon, 1959 <고치>는 단일한 한 장의 금속판을 부분적으로 자르고 접어서 만든 것으로 전체적으로 보면 잘라 내 버린 부분이나 더해진 부분은 없었다. 그래서 어느 쪽에서 보더라도 정면은 항상 정사각형이지만 한 발 옆에서 보면 관람자가 발견할 수 있는 내부 공간을 숨기고 있었다. 즉 접은 자리가 접히지 않은 듯한, 입체가 압축된 평면인 듯한 환각을 일으켰다. 이들 초창기 작업에서 클라크는 자신의 위상 연구 (한 평면의 뒷면이 존재하지 않을 수 있는지에 대한 연구)를 주체와 대상 간의 관계 방식으로 옮겨 갔다.

<짐승>의 핵심은 바로 평면이 입체를 포함하고, 그 입체가 고치처럼 펼쳐질 수 있다는 것 <짐승>의 핵심은 바로 평면이 입체를 포함하고, 그 입체가 고치처럼 펼쳐질 수 있다는 것. 1960~1964년에 제작한 이 작품은 경첩이 달린 금속판으로 제작됐기 때문에 지지대 없이 세울 수 있었으며, 이 구조물을 조작했을 때 금속판이 어떻게 분절되고 배열될지는 예측할 수 없었다. 이들 초창기 작업에서 클라크는 자신의 위상 연구 (한 평면의 뒷면이 존재하지 않을 수 있는지에 대한 연구)를 주체와 대상 간의 관계 방식으로 옮겨 갔다. <짐승>은 그 모양을 바꾸기 위해 그것을 조작하려고 하는 누구에게나 자신의 법칙과 한계를 갖고 반응하는 유기체라고 할 수 있다. 대개 그것은 특정한 제스처를 요구하거나 갑자기 뒤집힌다. 즉 <짐승>과 관람자 간의 대화는 성공할 수도, 실패할 수도 있지만 언제나 그 대화는 타자를 통제할 수 있으리라는 우리의 생각을 무너뜨린다. Lygia Clark, Animal, 1960

Lygia Clark, Caminhando (길 내기, 걷기), 1964 “가위를 들고 종이 띠의 한 부분에 찔러 넣어 띠를 따라 죽 자른다. 밴드가 두 조각이 나지 않도록 앞서 자른 선과 겹치지 않게 주의해야 한다. 띠를 한 바퀴 돌고 난 후, 앞서 자른 선의 오른쪽을 자를지 왼쪽을 자를지는 순전히 당신에게 달려 있다. 선택이라는 아이디어가 가장 중요하다. 이 경험의 독특한 의미는 행위 자체에 있다. 작품이란 당신의 행위일 뿐이다. 당신이 띠를 계속 자르는 한 그 띠는 점점 가늘어지고 점점 얽히게 된다. 길이 너무 좁아져서 더 이상 자를 수 없을 때 길 내기는 끝이 난다.” 끝에 남는 것은 스파게티 국수처럼 바닥에 쌓인, 곧 쓰레기통에 버려질 종이 더미 뿐. “오직 한 종류의 지속이 존재할 뿐이다. 그것은 바로 행위이다. 행위가 바로 <카민한도>를 만든다. 그 이전에도 이후에도 아무 것도 존재하지 않는다.” “당신이 자르고 있는 사이 당신이 무엇을 자르게 될 지 그리고 무엇을 잘랐는지 모르는 것이 핵심이다…. 이런 제안이 미술 작품으로 간주되지 않는다고 해도, 심지어 그 행위가 함축하는 바에 대해 회의적이라 할지라도 그것을 할 필요가 있다.” 이들은 대상에 대해 어떤 고려도 하지 않을 뿐 아니라 연극성에 대한 어떤 개념도 참조하지 않았다. 그보다 중요한 것은 ‘미술’이 일종의 치료나 사회사업이 된 것처럼 미술가라는 개념 자체가 점차 무의미해진다는 것. 신구체주의자들의 제안은 “행위를 위한 장”일 수도 있다. 그러나 작가 주체의 표현을 위한 도구로서는 아니다. ‘관객’과 ‘오브제’는 ‘참여자들’과 ‘제안’으로 대체된다.

1955b: 파리의 드니즈 르네 갤러리에서 열린 <움직임>전과 함께 키네티시즘이 시작된다. 1955년 4월 6일 드니즈 르네 갤러리에서 열린 <움직임>전

Jesús Rafael Soto (1923 - 2005) Venezuelan 격자모양의 천장에 수 천 개의 얇은 플라스틱 튜브를 매달아 놓은 거대한 작품은 마치 기계가 진동하는 듯한 상황을 연출 불완전한 신체적 감각을 생성하기 위해 기하학에 천착한 소토의 이중적 입장 Jesús Rafael Soto (1923 - 2005)  Venezuelan

1955년 드니즈 르네 갤러리에서 작품 <나선 Spiral>을 들고 있는 헤수스-라파엘 소토 Jesus-Rafael Soto, Spiral, 1950 Jesús Soto Bicho (Creature), 1959. Paint on wire and wood

Untitled, 1979 Yaacov Agam (1928~ )in front of a building he decorated in Tel Baruch, Tel Aviv, Israel

Pol Bury (1922 - 2005) Belgian 16 Balls, 16 Cubes in 8 Rows 1966 3069 White Dots on an Oval Background 1966

Jean Tinguely (1925 –1991) Swiss Jean Tinguely, Homage to New York, 1960, self-destroying sculpture

Victor Vasarely (1906~1997), Hungarian French Vega, 1970, Serigraph 57.15 cm x 57.15 cm

Victor Vasarely – Olbio II, 1953

 Black & White period (1954-1960)

Vasarely, Yellow Manifesto, 1955, <movement> Exhibition Catalogue. 20세기 미술에서 움직임의 역할에 대한 간략한 역사를 소개 Marcel Duchamp: Bicycle Wheel, 1913. 'Rotary Glass Plates (Precision Optics), 1920 Precision Optics, 1925 Anemic Cinema, 1926  

Naum Gabo, Kinetic Construction, 1919~1920. 금속, 채색 나무, 전기 기계장치, 61.6x24.1x19cm

Alexander Calder (1898~1976) Mobile à Moteur "Red Frame", 1931 Mobile à Moteur, "Black Frame", 1934.  1 Red, 4 Black plus X White, 1947.

Jean Tinguely: Méta-Malevich Series (15 pieces), 1954 Méta-Kandinsky I, 1956

Jean Tinguely, Metamatic No Jean Tinguely, Metamatic No. 9, 1958,  Round rubber belt, steel rods, painted sheet metal, wire wooden pulleys, two clothes pins and electric motor, 35-1/2 x 56-5/8 x 14 1/4"

Vassilakis Takis, 1925~ Greek French Vassilakis Takis, Signaux Vassilakis Takis, N 740, mixed media, disc diam: 75 cm, sphere: 30 cm, 1966

Brigit Riley (1931~ ) British, Op Artist Cataract 3, 1967

키네틱 아트의 흥망성쇠 1965년 <움직임> 10주년 기념전, <움직인 2> 개최: 10개국 60명의 작가가 참여—키네틱 아트의 승리를 기념하기 위해 기획되어 대중적 성공을 거두었지만 키네틱 아트의 종말이 시작되고 있음을 알리는 것이었다. 같은 해 뉴욕 근대미술관에서 <반응하는 눈> 전 1966년 베니스 비엔날레의 회화 부분 대상이 아르헨티나의 훌리오 레 파르크 (Julio le Parc)에게, 1968년 조각 부분 대상이 헝가리 출신 니콜라스 쇠페르 (Nicholas Schoffer)에게 돌아갔을 때 파국의 정점 몰락의 원인: ‘옵 아트’의 부상 1955년 전시의 각축 표면이 단순하게 광학적으로 움직이는 환영적 움직임 (바사렐리) 관람자의 움직임에 따라 달라 보이는 작품 (바사렐리, 소토, 아감) 관람자가 조립하는 오브제 (뷔리와 아감이 시도했지만 곧 포기) 자연 에너지 (칼더의 바람과 중력) 나 기계 에너지 (탱글리)를 이용한 오브제 그 자체의 운동 이 미술의 역할과 이성(과학)과 맺고 있는 관계에 대한 모순적 태도는 키네틱 아트가 새로운 미술 사조로 단일화되는 데 직접적인 방해물이 됨 바사렐리의 휴머니즘에 입각한 유토피아적 관점과, 합리주의를 기계 장치를 통해 패러디한 탱글리, 자아를 지워버림으로써 구성성을 공격한 소토의 관점 차이

MoMA 1965: The Responsive Eye Soto Exhibition at Signals (London), 1965

The exterior of Signals at 39 Wigmore Street, London, 1966 Front cover of Signals: News bulletin of the Centre of Advanced Creative Study Vol 1, Nos. 3 and 4, October–November 1964 Dedicated to the work of Takis

David Medalla (1942~ ), cloud canyons no 2, 1964 <구름 협곡>은 액상 비누와 물을 섞어 채운 직사각형 나무 상자로 구성된 단순한 기계인데, 속에 펌프가 있어서 비누 거품이 상자 위로 천천히 흘러내렸다. 이 거품 덩어리는 한스 아르프의 후기 대리석 조각의 감각적인 곡선을 연상시키지만, 한편으로는 아르프 조각의 영구불멸성을 조롱하는 것이다.

Jean Arp, Shell formed by a human hand, 1935, Plaste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