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학과 20051299 정성희 국제관계학과 20060666 이보람 국제관계학과 20110769 김윤혜 일본 사회의 변화와 민족문제의 새로운 전개 경제학과 20051299 정성희 국제관계학과 20060666 이보람 국제관계학과 20110769 김윤혜
목 차 서론 세계화 속에서의 일본의 민족주의 문제 본론 ㅇ전통적 소수민족 집단 ㅇ 뉴커머의 등장 ㅇ 닛케진 결론
동질성의 신화, 변화하는 현실 니혼진론 동질성에 관한 1985 ‘외교청서 의견 1986년 나카소네 야스히로 동질성에 관한 의견 1985 ‘외교청서 니혼진론 1980년대부터 이질적 인구집단 증가- 소수집단, 뉴커머, 올드커머, 닛케진
2. 전통적 소수민족 집단 패전 이후 특정한 정치적 이데올로기적 맥락에서 만들어지고 유포된 것이다. 오구마 에이지 민족적 동질성에 대한 지배적 믿음 에도 불구하고 일본 사회에서 다양한 소수민족 집단은 존재해왔다. 오구마 에이지 패전 전에는 다양한 형태의 혼합 민족론이 우세했지만 패전 이후 단일 민족론이 급격히 부상하였고, 정착하였다. 부락민 아이누 오키나와인 자이니치 일본의 소수집단 패전 이후 특정한 정치적 이데올로기적 맥락에서 만들어지고 유포된 것이다.
부락민 - 천민 가장 큰 규모의 집단으로, 다른 일본인과 인종적, 민족적으로 동일하지만 오랜 역사를 통해 천민집단으로 차별당해 왔다. (108p) 인도 카스트 제도 아래의 천민 달리트’ 조선의 천민 일본의 부락민
부락민 - 천민 에타 히닌 에도시대: 신분제가 강화되면서 일본인과 거주지가 분리 됨 메이지유신 : 공식적으로 천민이 해방. 신평민이라는 또 다른 차별 차별 – 혼인, 취업 등의 영역에서 은밀한 방식으로 지속 됨. 그 자손들이 종사하는 일은 원래 에타나 히닌의 역할과 무관한 것이 대부분이지만 혈통성에 근거한 차별은 계속되어 왔다. (P 109p)
아이누 (자신의 땅에서 추방된 사람들) 메이지 유신 후에 ‘훗카이도’란 명칭으로 일본 영토로 완전히 포섭되면서 아이누에 대한 차별과 편견은 훨씬 가속화되었다.
일본과 동화되다 인종주의적 관념 식민주의적 국가의 확장에 의해 고유의 영토와 자원을 빼앗겼으며 전통적인 삶의 방식이 붕괴 당한 사람들 (109p) ‘문명개화’ 담론 아이누는 “야만인, 미개인종” 따라서 생존경쟁에서 도태될 수 밖에 없는 집단으로 간주되었다 (109p) 법적으로는 일본의 시민에도 불구하고 오랫동안 일본 사회에서 철저하게 타자화된 민족집단으로 만들었다. 아이누 레블스 홋카이도에 살던 젊은 아이누인들이 도쿄로 건너와 만든 밴드이다. 오랜 시간 무관심과 차별 속에 사라져 가고 있던 아이누 민족의 문화를 보전하고자 현대적 느낌의 아이누 전통음악 퍼포먼스를 선보이고 있다. 인종주의적 관념
오키나와인- 류큐 열도의 원주민 인종적으로는 본토 일본인과 구분되는 가장 큰 집단. 에도시대 초기 사츠마번에 복속 15C~17C 독립된 왕국인 류큐왕국 에도시대 초기 사츠마번에 복속 1879년 메이지 정부에 의해 한 현으로 편입되어 오키나와현이 되었다. 청일전쟁 후 일본화 과정의 가속화로 인해 많은 오키나와인이 하와이, 멕시코, 브라질, 필리핀 등으로 이민 청일전쟁 후 일본화 과정이 가속화로 인해 많은 오키나와인이 하와이, 멕시코, 브라질, 필리핀 등으로 이민. 특히 오키나와전투, 미군 점령, 본토반환은 오키나와 사람들로 하여금 부정적 혹은 저항적 민족정체성을 키우는데 결정적으로 중요한 역할. 10
저항적 민족 정체성
재일 한인 (자이니치) 식민주의를 통해 일본 내 소수민족 집단이 된 경우. 해방 후에도 여러 이유로 귀국하지 못하고 일본에 체류. 자이니치의 출발. 다른 민족집단의 경우 법적으로 일본인임에 비해, 이들은 귀화를 하지 않는 경우 외국인 이라는 점 일본의 공식적 대응은 앞서 언급한 것처럼 소수민족집단의 존재를 부정하거나, 주류 일본사회로의 강요된 동화주의로 특징지어진다. 일본사회에서 매우 비가시적인 존재. 커밍아웃 을 하는 것과 같은 본명 선언
3. 뉴커머의 등장 ! 1980년 소수민족 문제는 관심 밖 민족 문제 의식 일본인의 인식과 태도가 변하게 된 배경 소수민족 문제는 관심 밖 민족 문제 의식 일본인의 인식과 태도가 변하게 된 배경 1. 외국인의 수적인 증가 OLD COMER NEW COMER
2. 이질적 집단의 가시성이 매우 커졌다. 일본의 브라질 이민자 아이들 2. 이질적 집단의 가시성이 매우 커졌다. 올드커머 : 외모로 구분이 잘 안되고 문화적으로 거의 동화되어 있었다. 뉴커머 : 일상적인 영역에서도 이들의 가시성을 크게 높였다 뉴커머 분리거주의 양면성 효과 1) 특정지역에 밀집해 살면서 일본 안에 그들만의 독자적 문화 형성 : 아이치현의 도요타 시는 브라질 2) 여러 대중매체가 이러한 일본 내의 이국인 이국문화를 경쟁적으로 취급하면서 어떤 면에선 일본 내부의 多민족성이 안방 안으로 직접 전달되는 면도 있다. 도시 중심부나 특정 산업이 분포한 지역에 편재한다. 그리고 일본인과 분리거주 특성. 성산업 - 신주쿠, 남성외국인 노동자 - 아이치, 시즈오카, 가나가와, 군마현 등 (자동차 제조업 집중 지역) 일본의 브라질 이민자 아이들
80년대: 일본사회의 민족적 구성의 변화를 선도한 것은 사이공의 함락, 라오스, 3. 국제인권레짐에 의한 영향 (외압의 영향) 80년대: 일본사회의 민족적 구성의 변화를 선도한 것은 사이공의 함락, 라오스, 캄보디아에서의 대규모 탈출로 인한 인도차이나 반도 출신 난민들의 증가 (p116) 국제사회가 일본에게 난민수용에 대한 압력을 강화 재일조선인, 중국인에 대한 차별이 일본이 난민을 받아들이는 데 소극적인 배경 이라고 지적. 일본인은 순수한 혹은 무의식적인 인종차별주의자라고 비판. 1979년 국제인권규약 1982년 난민조약(국제인권규약보다 더욱 엄격- 조약의 내용과 모순되는 입법이 있으면 국내법 개정해야함) 을 비준하게 됨. 외국인에게 여러 가지 제약 1978년 정주허가 15
외국인 노동자의 증가 노동자 유입의 3단계 1. 1970년대 후반에서 1980년대 중반까지 (동남아시아와 동아시아로부터 많은 불법 노동자가 유입된 시기) - 흥행비자로 호스티스나 매춘부 등 성관련 산업에 종사하는 사람들이 왔음. (자파유키상) 2. 1980년대 중 후반~1990년대 (남성 외국인 노동자가 대규모로 들어옴) - 이들은 제조, 건설, 금속, 플라스틱등 일본인이 기피하는 산업현장과 소매업이나 식당 호텔 등 서비스업에 종사
타 민족 노동자의 급증과 그들이 가시화 되면서 일본에서 외국인 노동자 문제가 주요한 사회문제 로 논의됨. 비 숙련 직종에 외국인 노동자를 받아들이는 것을 적극적으로 지지 산업계 정부는 외국인 노동입국을 합법화 하는 것에 대해 여전히 주저 정부 ㅇ노동부족 현상이 계속 되고 심각해지는 고령화와 소자화, 젊은이들의 단순노동 기피현상은 단순노동력을 제공할 정책적 대안을 매우 절실하게 만들었다. ㅇ과거 서유럽 국가들의 경험에 근거하여 외국인 노동자 유입이 결국 장기적인 이민자집단의 출현 (정주화)을 결과하지 않을까, 이것이 정치적 사회적 갈등원인이 되지 않을까 우려하여 소극적 태도 유지 (119p)
3. 1990년 6월 이후(출입국관리 및 난민 인정법 ’이 적용 되기 시작) ㅇ 외국인 노동자를 양분해서, 지식기술을 가진 사람들을 확대수용하고 ‘단순노동자’ 의 유입을 인정하지 않는다. ㅇ 중소기업의 노동부족을 해결하기 위해 일본계 외국인인 이른바 ‘닛케진’ 에게 취업자격 부여. ‘연수생’ 비자 수도 확대. ㅇ 결과적으로 외국인 단순노동자도 양분화. 대규모의 합법 및 불법 노동자집단이 생겨남
닛케진의 정의 ㅇ 닛케진의 정의 - 1868~1973년 사이에 다른 나라로 이민 갔던 일본인들의 자손 - 일본에 들어와 있는 외국인 노동자와 관련해서는 주로 남미에 거주하는 브라질이나 페루 국적의 일본인 후손과 그 배우자
닛케진이 왜 논란이 되었는가? ㅇ닛케진의 수 증가 - 출입국 관리법 개정 ㅇ 닛케진에 대한 일본인의 인식 - 서로를 보는 관점 - 문화의 차이 - 생활 양식
닛케진의 증가이유 이 대안으로 나온것이 해외의 닛케진에게 3년간의 정주자(定住者) 신분을 부여 (갱신가능)하고 합법적인 1980년대 일본 경제의 호황과 더불어 나온 젊은이들의 3K업종 기피현상 이 대안으로 나온것이 해외의 닛케진에게 3년간의 정주자(定住者) 신분을 부여 (갱신가능)하고 합법적인 취업 자격을 주는 것 다인종 다문화의 서유럽 사회를 보고 외국노동자를 들이지 않으려는 일본 정부의 노력
닛케진에 대한 일본인의 인식 닛케브라질인이 처음 우리 동네에 왔을 때 정말 놀랐다. 그 희한한 모습들이라니, 도대체 이 사람들이 누군가 싶었다. 그들은 모습은 일본인처럼 보였지만 진짜 일본인은 아니었다. 전혀 다르게 행동하고, 외국어를 쓰고, 이상한 옷을 입고 있었다. 꼭 텔레비전에서 보는 가짜 울트라맨처럼 가짜 일본인처럼 보였다… 우리는 브라질의 닛케진이 일본인의 후손으로 훌륭한 일본의 전통을 유지해 왔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비록 외국에서 태어났지만 그들은 일본가정에서 자랐기 때문에 적어도 조금은 같아야 한다. (p124) (츠다 타케유키, 1998년 논문 「“The Stigma of Ethnic Difference: The Structure of Prejudice and 'Discrimination' toward Japan's New Immgrant Minority” 」중)
뭐야, 이 요상한 집단은! 닛케진에 대한 일본인의 인식 예의도 모르고 밖에서 애정표현이나 해 대고 공동규칙도 안 지키고 시끄럽게 떠들고 음악 크게 틀질 않나 게 으 른 남 미 인
이들의 선조들에 대한 기억- 일종의 ‘실패자’ 닛케진에 대한 일본인의 인식 계층적, 민족적 편견 심화 3K업종에 돈 벌러 온 일종의 데카세기(出稼ぎ) ‘돈만 아는 집단’이라는 생각 이들의 선조들에 대한 기억- 일종의 ‘실패자’
닛케진과 일본인간의 인식 닛케브라질인 - 온전한 일본인 x - 완전한 외국인 x - 이는 일본인의 혈통과 문화 두 가지 모두 가져야 온전한 일본인 이라는것 결국 닛케진은 일본인과 외국인의 ‘사이’존재
닛케진과 일본인간의 갈등 ㅇ 닛케진이 일본인을 보는 관점 부정적 why? - 다른 외국인보다 요구가 많다 - 통합하기를 강요한다 이에 브라질성 강화 ex) 삼바축제
닛케진과 일본인 갈등해결은? ㅇ 닛케진을 포함한 외국인 노동자의 유입은 인종적 민족적 단일성과 관련해 기존에 유지했던 관념에 심각한 도전 제기 ㅇ 서로를 인정해야 함 ㅇ 일본정부는 다문화 정책의 초점을 어디에 두어야 하는가?
결 론 ‘영원한 영주권자’로배제(재일조선인) 국제화에 역행하기 보다는 다문화를 포용하는 사회로 나아가는 것이 바람직함. 결 론 ‘영원한 영주권자’로배제(재일조선인) 혈통은 같지만 문화와 언어의 차이, 고로 외국인(닛케진) 단일민족이라는 신화는 이제 재조정해야하지 않을까 국제화에 역행하기 보다는 다문화를 포용하는 사회로 나아가는 것이 바람직함.
질문 세계화 시대, 민족성을 강조하는 교육이 바람직한가? 2. 일본과 비교해서 우리의 다민족에 대한 인식은 어떠한가?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