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미술이론입문 4주 1913년 절대 추상의 등장 칸딘스키
표현주의와 입체파는 왜 아방가르드인가? 이야기해보기: 에밀 놀데, <보데의 댄서>, 1910 두 가지 아방가르드가 어떻게 다른가? 에밀 놀데, <보데의 댄서>, 1910 피카소, <어코디언 연주가>, 1911
상징주의-표현주의-야수주의 (19세기-20세기 독일 표현주의와 동유럽의 미술운동들 독일 표현주의-다리파 (1910-14) 청기사파(1911-1917) 절대추상 (1913) 데스틸 (1917) 구축주의 (1917-1929) 바우하우스 (1919-33) 상징주의-표현주의-야수주의 (19세기-20세기 칸딘스키= 표현주의 + 체계적인 추상(형식주의)
칸딘스키와 몬드리안 칸딘스키, <구성 7>, 1913 . 몬드리안, <구성, 거대한 붉은 면, 노랑, 검정, 회색, 그리고 파랑>, 1921. 칸딘스키, <구성 7>, 1913 .
오늘 수업 칸딘스키와 절대 추상 (ca. 1913) 칸딘스키와 바우하우스(1920-30년대)
I. 칸딘스키와 절대 추상 아방가르드 미술과 사회 20세기의 가장 대표적인 추상화가 칸딘스키는 서구 도시 문명에 비판적이었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 칸딘스키는 미술 이론가로서, 교육자로서, 아방가르드적인 미술이 사회 개혁에 어떻게 참여할 수 있는가에 관심을 기울였다.
칸딘스키: 사회비판가에서 미술이론가로서
칸딘스키 정리 -1913년에 절대 추상: 칸딘스키는 유럽 화단에서 20세기 초에 절대추상에 이른 선구자들 중의 하나이다. 1913년 즈음에 마르크(Marc)나 말레비치(Malevich)와 함께 알아볼 수 있는 자연적인 대상이 부재한 추상화에 이르렀다. -미술이론의 선구자: 그의 저서로는 <Concerning Spirituality in Art>(1913) and later <Point and Line to Plane>(1926) 이 있다.
청기사파 (1911-17) ‘청기사’는 1911년 뮌헨에서 그들의 첫 전시회 때 만든 연감의 제목이며 1930년 칸딘스키는 ‘청기사’라는 명칭이 다음과 같이 유래되었다고 설명한다. “우리는 둘 다 청색을 좋아하였고 마르크는 말을 그리고 나는 말탄 기사를 좋아했다. 이렇게 해서 이름이 저절로 생겨났다.” 청기사파 연감 표지, 1911-12.
청기사파의 시대적 배경 청기사 작가들은 이름이 연상하는 바—구세주, 혹은 구원자 전쟁, 그리고 미술: 청기사 작가들이 주로 절대추상에 다다르게 되는 1913년은 세계 1차 세계대전 (1914-1917)의 전초전에 해당하는 시기였다. 따라서 그들의 작품에 많이 등장하는 홍수 , 신비한 동물들의 이미지들은 당시 유럽의 정치적/역사적 상황과 밀접한 연관을 갖는다.
1차 세계대전 (1914-1917)
2. 대안 종교 ‘신지학’의 영향: 20세기 초 서구 기독교의 대안으로 러시아와 동유럽에서 영향력을 행사하던 종교 2. 대안 종교 ‘신지학’의 영향: 20세기 초 서구 기독교의 대안으로 러시아와 동유럽에서 영향력을 행사하던 종교. 몬드리안에게 더욱 큰 영향 (신지학-체계적인 형태의 변이) 3. 민속미술의 영향 (1908-10): 바바리안 지역의 무르나우 민속 미술들, 힌터글래스말레리 (유리판 뒤에 그리는 스텐이 글라스 타입의 그림); 칸딘스키는 1908년부터 1910년 무르나우 예술의 영향을 받은 작품을 제작하고 마르크도 1910년에 무르나우 방문
블르브스키(P. Blavatsky)의 ‘<신지학자들>, 1879-1885의 표지와 도표
칸딘스키의 초기 작업(원시주의) 칸딘스키는 원래 법과 음악을 모스크바 대학에서 공부하였고 그곳에서 교수까지 된 인물 그러나 그는 1895년에 모네의 그림을 보고서 화가가 되기로 결심하고 독일로 이주. 1911-17년에 그는 마르크와 함께 청기사파(Blaue Reiter, Blue Rider)를 조직 1차 세계대전(1914-17)이 발발하자 러시아로 돌아갔다가 혁명 정부(1917)와 의견 마찰로 다시금 독일로 돌아와서 바우하우스(1922-33)에서 교편을 잡게된다.
칸딘스키: 순수추상으로의 길 1895 인상주의 그림 발견 1908-1901 무르나우 1909-1913 구성, 즉흥, 인상—음악에서와 같이 순수하게 색과 형을 사용하는 방법 1913 완전 추상: 구성이 더욱 더 완전한 추상이 되고 이에 반해서 작품의 제목은 대결, 갈등을 상징하는 것들이 주가 됨.
1895: 인상주의 그림의 발견 “나는 짚가리를 알아볼 수 없었다. 이처럼 알아볼 수 없다는 것이 나에게는 불쾌하고 괴로운 일이었다. …그렇지만 나에게 완전히 분명했던 것, 그것은 나의 모든 꿈들을 넘어서는 힘, 예기치 않았고 또 전에는 나에게 숨겨져 있었던 팔레트의 힘이었다….나에게 전적으로 확실해진 것은 예술은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강력한 것이며, 다른 한편으로 회화는 음악이 보유하는 것과 같은 힘을 개발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인상주의의 발견 (1895); 모스크바 전시회에서 .”
모네, 짚가리: 아침 눈 효과, 1891.
칸딘스키, <빌리지의 바바리안 산>, 1909
바바리안 (독일 알프스, 호수 근처) Maria Marc, Franz Marc, Bernhard Koehler, Heinrich Campendonk, Thomas de Hartmann & (seated) Wassily Kandinsky 1911
1908-1901: 무르나우 칸딘스키와 민속미술 <무르나우의 교회>, 1908; <푸른산>, 1908-09
무르나우 글래스 회화(뒤에서 그리는 방식) 프란츠 마르크, <푸른 말>, 1911.
칸딘스키의 체계적인 색상과 형태 접근 방법
1909-1913 칸딘스키의 구성 칸딘스키, 구성을 위한 스케치, 1910-11: “색은 피아노의 건반이요.”
칸딘스키, <즉흥>, 1911; <인상>, 1913
1913 절대 추상 칸딘스키, <구성 6>, 1913; 대포와 눈사태의 테마; 1914-17년 1차 세계대전 직전 칸딘스키의 작업들은 점차로 묵시론적인 테마를 담게 된다.
칸딘스키, <구성 7>, 1913; 대포와 눈사태의 테마, 거대한 크기, ‘정신과 물질의 갈등’
청기사파의 미술사적 배경과 추상: a. 추상과 감정이입 보링거의 영향: 마르크는 칸딘스키에게 쓴 편지에서 '나는 지금 보링거가 쓴 “추상과 감정이입”이라는 것을 읽고 있는데 이것은 우리가 절실하게 필요로 하는 건전한 지적 태도를 보여준다. 아주 잘 정리되어 있고 명료하고 이지적인, 아주 이지적인.” 실제로 보링거가 논문을 발표하였던 1910년에 칸딘스키와 마르크는 뮌헨에 머물고 있었다.
추상 (고딕양식과 숭고의 미) Exter 성당 노트르담 성당의 가고일, 1169-1345 괼른 성당, 1248-1880; 카스퍼 다비드 프리드리히, <바닷가의 수도승>, 1809
프랑스 낭만주의 풍경화 프리드리히 The painter should not paint only what he sees in himself. Should he, however, see nothing within himself, he should refrain from painting what he sees around him. (Caspar David Friedrich)
감정이입 (르네상스와 자연주의) 미켈란젤로, <다비드>, 1501-1504; 레오나르도, <비투루비안 인간>, 1490; 모네, <해뜨는 인상>, 1873
b. 독일 낭만주의와 형태심리학(Gestalt Theory) 형태심리학은 독일의 낭만주의 아래에서 생겨난 색채 이론이다. 형태 심리학은 신지학과 유사하게 기본 형태나 색채에 대한 사람들의 공통적이면서도 보편적인 반응에 중점을 둔다. 자연스럽게 이를 바탕으로 추상화가들은 특정한 색상이 지닌 상징적인 의미나 시지각적인 반응에 관심을 두게 된다. 그리고 추상화의 근거를 찾게 된다.
형태심리학 쾨테는 색상에 대한 경험주의적인 관점을 피력한다. 색상이 더 이상 절대적인 특성을 지닌 것이 아니라 우리의 눈과 감정에 호소하는 수단으로 여겨지기 시작하였다. 쾨테의 색상환, 1809
c. 음악과 추상예술이론 실제로 색상이 감성적으로 보는 이를 자극하기에 좋다고 생각하였던 당시 화가들은 색상의 음악적인 요인을 발견하고자 하였다. 음악은 당시 가장 추상적인(즉 무엇을 굳이 재현하지 않고서도 감수성을 전달할 수 있는) 장르로 여겨졌다. 들로네이나 마티스 등은 음악으로부터 깊은 영감을 얻었다. 앞에서 말한 칸딘스키의 무소르스키 무대디자인, 쿠프카의 푸가 등은 모두 음악과 추상미술의 시작이 얼마나 깊은 연관성을 지닌지를 보여주는 예이다.
Matisse, <Dance>, 1910. Delaunay, <Simultaneous Contrasts: Sun and Moon>, 1913; dated on painting 1912 Matisse, <Dance>, 1910.
1913년 절대 추상의 전세계화 쿠프카 1912 칸딘스키/마르크 1913 말레비치 1913 몬드리안 1914-1917
마르크, <결투하는 형태들>, 1913
쿠프카, <두 개 원반의 푸그>, 1912.
말레비치, <검은 사각형>, 1913
몬드리안, <구성 2번, 선과 색상의 구성>, 1913
2. 칸딘스키와 바우하우스 (1920-30년대) 그러나 과연 얼마만큼 색상과 형태에 대한 순순하고 체계적인 접근이 내적 정신세계를 드러내는데 효과적으로 사용될 수 있을 것인가? 칸딘스키가 자신의 미술이론을 저서로 발간할 뿐 아니라 직접 미술교육에 참여하게 됨. (1922-33) 바우하우스는 1919-33 (바이마르, 1919- 1925, 데사우 1925-32, 베를린 1932- 1933)
바우하우스란? 바우하우스는 기본적으로 혁신적인 미술, 소위 추상 미술 운동과 새로운 디자인 운동을 결합하여 새로운 미학을 학생들에게 교육시키고자 하였다. 초기 독일 표현주의와 바우하우스의 관계를 보여주는 첨탑 목판화 Lyonel Feininger, Cathedral, Cover of 1st program of Bauhaus April 1919, woodcut
낭만주의와 체계적인 이론의 발전 The Elements of Color: A Treatise on the Color System of Johannes Itten Based on His Book the Art of Color
Sphere of Colorful Bands, c.1919-20 Bauhaus Dessau (1920s)
칸딘스키의 바우하우스 시기 (1922-33) 칸딘스키는 1922년-33년에 이르러 바우하우스에서 기본형태 (Theory of Form) 라는 시간을 맡아 가르쳤다. 바우하우스는 기본적으로 기본/응용의 두 단계로 되어 있고 기본 시간에 기초 형태와 색에 대한 보다 개인적이고 창조적인 접근을 하게 된다. 이어서 응용 시간에 이를 다양한 디자인 분야에서 적용하게 된다.
케싱거, <기본 색상과 형태의 관계>, 1929-30 Wassily Kandinsky, Theory of Three Primary Colors Applied to the Three Elementary Forms 케싱거, <기본 색상과 형태의 관계>, 1929-30
칸딘스키 바우하우스 수업 시간에 음악을 시각적으로 분석한 그래프 칸딘스키 바우하우스 수업 시간에 음악을 시각적으로 분석한 그래프 http://giphy.com/gifs/drawing-painting-bauhaus-LtUeOyfXl5wFa
바우하우스 시절 칸딘스키의 구성 칸딘스키, <구성 8>, 1923
<흰 바탕 2>, 1923. <몇 개의 원>, 1930.
무소르니스키의 전람회의 그림을 위한 연극 무대 디자인, 데사우, 1928
바우하우스와 총체연극 (1916-1932)
그림 16, 무소르니스키의 전람회의 그림을 위한 연극 무대 디자인, 데사우, 1928
칸딘스키의 예술적 목적 내적 필연성: 내면적(정신적이고 초월적이며 보는 세계와는 차별화된 세계)인 시각 + 외향적, 외면적(일차적으로 경험될 수 있고 시각적으로 명료하며 경험될 수 있는)인 수단 주관성과 객관성의 (변증법적) 통합: 그렇다면 칸딘스키의 예술과 이론은 정신적인 것을 어떻게 외면적으로 표현하는가의 문제이다. 뿐만 아니라 이것이 주관적인 표현이 아니라 객관적인 정신적 세계의 표상이 되어야 한다.
<예술에 있어서 정신적인 것에 대하여>(1912-3)의 요점; 어떻게 하면 정신세계를 표현하되 보다 체계적이고 객관적이며 순수한 색채와 형태의 이론에 바탕을 두고 할 것인가?
토론: 칸딘스키가 던진 질문 그러나 칸딘스키의 후기 작업들은 기계적이라는 비판을 듣는다. 과연 주관적인 감정을 객관적, 체계적으로 계획해서 표현하는 것이 가능할까? 과연 인간이 객관적이고 보편적으로 색상과 형태에 반응한다고 할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