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태론과 통사론에서의 위치부류(position class) 형태론 집담회 / 한국어통사론연구회 2016. 2. 19. 박진호
위치부류란? 오래 전부터 position class, template morphology, slot-filler morphology 등으로 불려 온 현상이 있음. 주로 동사 형태법(verbal morphology)이나 명사 형태법(nominal morphology)에서 동사/명사 어근/어간의 앞이나 뒤에 일정한 순서로 배열된 자리 (position, slot)들이 있고 각 자리를 채워 줄 수 있는 요소가 있는데 같은 자리에 속한 요소들끼리는 상호 배타적이고 (공기 불가, 계열관계) 서로 다른 자리에 속한 요소들끼리는 공기 가능하나 항상 일정한 순서 로만 공기할 수 있음.
위치부류의 예시 한국어 동사 형태법 한국어 명사 형태법 임홍빈(1987) 목정수(1998, 2003 등) 어간 + p1 + p2 + p3 + p4 + p5 + p6 + p7 + p8 p1: 옵/사옵/사오/오 p2: 시 p3: 었 p4: 겠 p5: 습 p6: 더, 니, 디 p7: 다, 까 p8: 요, 마는 한국어 명사 형태법 명사 + p1 + p2 + p3 + p4 + p5 p1: 에, 에게, 로, 에게로, 와/과 p2: 부터, 까지, 대로, 만큼, 처럼, 같이 p3: 만, 뿐, 마저, 밖에, 보다, 조차 p4: 이/가, 을/를, 은/는, 도, (이)나 p5: 요, 말이야 임홍빈(1987) 목정수(1998, 2003 등)
본 발표의 목표 위치부류의 이상적 모습(canon, ideal) 및 이로부터의 여러 이탈 (deviation)의 양상을 정리한다. 특히 portmanteau position class의 한국어 문법 기술에서의 효용성을 강조한다. 위치부류의 개념이 형태론뿐 아니라 통사론의 영역에도 적용 가능한지 탐색한다. 결론: 통사론에도 적용 가능하다. 위치부류라는 형태론적 현상이 의미범주와 어느 정도의 상관관 계를 갖는지 검토한다. 결론: 상관관계가 있기는 하나 완전한 것은 아니다.
위치부류의 이상적 모습(canon, ideal) 핵심 속성 자리와 자리 사이의 순서는 항상 일정하다. 하나의 요소는 하나의 자리에만 나타날 수 있다. 같은 자리에 속한 요소들끼리는 공기할 수 없다. 부가적 속성 모든 자리가 다 채워져야 하는 것은 아니다. 필수적인 자리도 있고, 수의적인 자리도 있다. 필수적인 자리에 아무 요소도 나타나지 않았다는 것이 유의미할 수 있 다(significative absence, zero element)
현대 표준 한국어 관형절의 위치부류적 기술 V + p1 + p2 + p3 p1은 수의적 위치. p2는 필수적 위치. 이 자리에 ‘-시-’가 안 나타났다고 해서, 그것이 significative absence라고 하기 어려움. zero element를 상정할 필요 없음. (ø를 무분별하게 상정하는 것은 경계해야 함) p2는 필수적 위치. 현대 한국어는 시제 언어이며, 주절뿐 아니라 관형절에서도 시제 표시가 필수적. 현재 표지 ‘-느-’, 과거 비완망 표지 ‘-더-’가 이 자리에 나타날 수 있으며 이 자리에 ‘-느-’도 ‘-더-’도 나타나지 않았다는 것은 significative absence임. 이 significative absence는 과거 완망을 나타냄. zero element 상정 가능. p3에 ‘-(으)ㄹ‘이 오면, p2가 출현할 수 없음. (대안적 기술은 후술)
canon으로부터의 일탈 1: portmanteau 위치부류 어떤 요소가 어느 한 위치의 요소와만 배타적인 것이 아니라 이 요소가 출현하면 인접한 둘 이상의 요소의 출현이 불가능한 경우가 있음. 이런 요소들이 속한 위치부류는 보통의 둘 이상의 위치부류의 portmanteau에 해당함.
한국어 명사 형태법에서의 portmanteau 위치부류 p1 (JC) p2 (JP) p3 (JQ) p4 (JD) p5 (JE) 에 에게|한테 께 (으)로 서 써 다|다가 부터 까지 더러 대로 만치|만큼 처럼 같이 만 뿐 뿐만 마저 밖에 보다 조차 가|이 ㄴ|는|은 ㄴ|는|은커녕 (이)나 도 ㄹ|를|을 (이)라도 말이에요 |말이야 |말이죠 |말이지 |말입니다 요 야 (이)고 과|와|(이)랑|하고 없이, 치고 깨나, (이)란, 커녕 아, (이)시여, (이)여 마다 (이)야, (이)야말로 들 의 목정수 교수의 조사 분류 체계를 바탕으 로 수정/보완한 것. 5개 부류 어느 하나 에 깔끔하게 속한다 기보다 둘 이상의 부 류에 걸쳐 있는 조사 들이 있음. ‘의’: p4~5 ‘치고’: p1~3 ‘(이)란‘: p1~4 호격조사: p1~5
한국어 동사 형태법에서의 portmanteau 위치부류 주절 어간 + p1 + p2 + p3 + p4 + p5 + p6 + p7 + p8 + p9 p1: 옵/사옵/사오/오 p2: 시 p3: 었 p4: 겠 p5: 습 p6: 더, 느 p6~7: 니, 디 p7: 이 *역사적으로도 ‘니‘는 ‘느이’, ‘디’는 ‘더이‘의 융합 p8: 다, 까, 냐 p9: 요, 마는 관형절에서 ‘-(으)ㄹ‘이 나타나면 ‘-느-’, ‘-더-’ 등의 p2 요소가 나 타날 수 없음을 고려하여, ‘-(으)ㄹ‘을 p2~3의 portmanteau 위 치부류에 속하는 것으로 볼 수도 있음.
canon으로부터의 일탈 2: reversible 위치부류 다른 여러 기준에 입각해서 수립된 위치부류가 특정 조건 하에 서 순서가 뒤집힐 수 있음. 순서가 뒤집혀도, 각 위치부류에 속한 요소들은 그대로임.
한국어 명사/동사 형태법에서의 reversible 위치부류 도구격 조사 ‘-로‘는 p1, [한정, 단독, only]의 ‘-만’은 p3이나, ‘-로만‘의 순서뿐 아니라 ‘-만으로‘의 순서도 가능 ‘-로만‘이 현대 한국어의 전반적인 공시적 질서에 부합되는 순서이고 ‘-만으로’는 이전 시기에 ‘-만‘의 명사로서의 지위를 반영하는 흔적 중세 한국어: ‘-더시-’ ~ ‘-시더-’; ‘-거시-’, ‘-시거-’ 통시적 변화의 과도기에서 구형과 신형의 공존 ‘-옵시-’ ~ ‘-시옵-’; ‘-오시-’ ~ ‘-시오-’ ‘-옵/오-’의 기능 변화에 따른 순서 관계의 변화를 반영 통시적 변화와 관련된 순서 관계의 유동성인 경우 외에, 안정된(stable) 체계에서도 reversible 위치부류가 어느 정도로 광범위하게 나타나는지 조사가 필요함.
통사론에서의 위치부류 선적 순서(linear order)에 대한 제약이 통사법보다 형태법에서 더 강한 경향이 있기는 하나 형태법에서도 뒤집히는 일이 있는 것을 감안하면 이것은 정도의 문제인 듯. 그렇다면 문장 구성요소들 사이의 순서에 대한 강한 제약이 있는 언어 의 경우 통사법에서의 위치부류(position class in syntax)도 생각할 수 있음. 실제로 여러 언어의 전통적인 문법 기술이 (위치부류라는 용어는 사용 하지 않았더라도) 사실상 위치부류와 비슷한 방식으로 이루어져 왔음. Pattern Grammar, 구문문법의 발상법과도 맥이 통함.
영어 명사구 구조의 위치부류적 記述 p1 + p2 + p3 + N p3: p3-1 + p3-2 + p3-3 + p3-4 p1: both, all p2: the, a/an (관사); this, that (지시사); every, each, some, any, many, much, several (양화사) p3: 형용사 p3-1: few, little, numerous (수량) p3-2: big, small, large (크기) p3-3: 대다수의 성상 형용사 p3-4: American, economic, historical (관계 형용사)
중국어 이동 동사구의 위치부류적 기술 V + p1 + p2 + p3 + p4 p2와 p3+p4는 reversible 위치부류 p1 요소는 V 뒤에 오거나 V+p3 뒤에 옴. V+p1+p2: 拿了一本书 V+p3+p1+p2: 拿出了一本书
canon으로부터의 일탈 3: ambifixal 위치부류 대개의 위치부류는 prefixal인지(어근/어간 앞에 옴) suffixal인지 (어근/어간 뒤에 옴)가 확고히 정해져 있음. 그러나 간혹 이 점에 대해 유동적인 위치부류가 있음.
중세한국어 否定 동사구의 위치부류적 기술 N + V: 부정소 + 동사 V + N: 동사 + 부정소 N: 아니, 몯 (ambifixal 위치부류) N 위치에 오는 ‘아니‘, ‘몯’의 단어부류 지위(품사)는 부사 N이 V 앞에 올 때는 별도의 부가 조치 불필요. N이 V 뒤에 올 때는 V에 ‘-디‘를 붙이고 N 뒤에 dummy verb ‘-’를 넣 는 등의 부가 조치 필요. N 위치에 오는 ‘아니‘, ‘몯’의 형태·음운론적 지위는 일종의 접어(clitic) final, before, pro-clitic 기준요소(host)가 domain의 끝에 있고 (final) host 앞에 오고 (before) 뒤 요소에 음운론적으로 의존함 (pro-clitic) domain 끝 요소가 합성동사일 때 host를 무엇으로 할지에 대해 방언간 변이 있음: 못 따라가- vs. 따라 못 가-
자리와 의미 범주의 상관관계 같은 자리에 나타날 수 있는 요소들은 모두 같은 의미범주에 속하는가? 논거를 명시적으로 제시하지 않고서 당연히 그럴 것이라고 전제하는 경 우가 많으나, 항상 그런 것은 아님. 하나의 위치에 의미상 이질적인 것들이 공존하기도 하고 의미상 비슷한 것들이 여러 위치에 흩어져 있을 수도 있음.
자리와 의미 범주의 상관관계 앞에서 살펴본 영어 명사구의 경우 p2 위치에 ‘the, a/an’ 등의 관사, ‘this, that’ 등의 지시사, ‘every, each, some, any, many, much, several’ 등의 양 화사가 공존함. 이들은 의미상 이질적임이 분명하며 다른 언어에서는 이들이 별도의 위치부류를 형성하기도 함. The Atlas of Pidgin and Creole Language Structures (APiCS) 31 Co-occurrence of demonstrative and definite article
Stump (1993: 138-139)의 언급 (13) Traditional assumptions about members of the same position class: a. they are in complementary distribution (so that the appearance of one in a given form excludes the appearance of the others in that same form); b. they stand in the same hierarchical relationship to other affixes in the same word; c. they appear in the same linear order with respect to other affixes in the same word. In addition to the properties in (13), there is a fourth property which members of the same position class exhibit frequently (though not invariably): (14) Members of the same position class realize alternative specifications of the same morphosyntactic feature(s). Although affixes belonging to the same position class frequently exhibit all four of the properties in (13) and (14), it is well known that (14) is not actually a necessary property of such affixes.
중세 한국어 시상 표지: ‘, 더, 거’ 중세 한국어 시제-상에 대한 논의에서, ‘, 더, 거’가 같은 위치부류에 속하므 로 동일한 의미 범주에 속할 것이라는 생각이 흔히 있음. ‘, 더, ø’는 ‘현재 : 과거비완망 : 과거완망’이라는 유명한 3원적 시상 체계를 이룬다는 것이 분명하나 ‘거’의 지위는 이 셋과 상당히 다름. ‘거‘에는 완료상(perfect) 용법과 양태/서법 용법이 있으며 사용 빈도, 필수성에 있어서 위의 셋보다 훨씬 떨어짐. 상 체계에서 완망상(perfective, aorist) 대 비완망상(imperfective, imperfect)의 대립도 가지고 이와 별도로 완료상도 가지는 언어들이 꽤 있는데 대개 완망상, 비완망상은 문법화의 정도가 매우 높고 사용 빈도와 필수성이 높은 반면에 완료상은 이에 비해 사용 빈도, 필수성이 낮은 것이 보통임. 요컨대, 같은 위치부류에 속하는 요소라고 해서 지위가 대등할 것이라고 속단 해서는 안 됨.
한국어 명사 형태법에서의 위치부류와 의미범주 목정수 교수가 설정한 5가지 조사 부류는 위치부류의 측면에서 타당함. 목정수 교수는 하나의 위치부류에 속하는 조사들이 모두 같은 의미범주 에 속할 것이라고 (뚜렷한 논증 없이) 가정하는 듯한데 이 가정이 타당한지에 대해서는 별도의 논증이 필요함. 함께 p4에 속하는 ‘이/가‘, ‘을/를‘과 ‘은/는‘, ‘도‘가 같은 위치부류에 속한 다는 사실을 보임으로써 이들이 하나의 의미범주를 형성한다는 결론으 로 곧장 넘어갈 수 있는 것이 아님. 이들이 정보구조와 관련된 기능을 한다는 공통점이 있기는 하나 ‘이/가‘, ‘을/를‘은 격 기능도 함께 수행하고 ‘도‘의 기능은 주로 세로 초점(亦同)과 관련되는 반면에, ‘이/가‘는 가로 초점과 관련되고, ‘은/는’는 세로 초점과 관련된 용법(대조)과 가로 관계 에서의 화제 표시 용법이 있다는 차이점도 있음. 하나의 위치부류 내 요소들이 의미의 측면에서 어떻게 조직되어 있는지 에 대해, (naïve한 가정이 아니라) 본격적인 검토가 필요함.
참고문헌 Good, Jeff (2003), Strong Linearity: Three Case Studies Towards a Theory of Morphosyntactic Templatic Constructions, UC, Berkeley Ph.D. Dissertation. Good, Jeff (2011), The Typology of Templates, In: Language and Linguistics Compass 5(10), pp. 731-747. Good, Jeff (2016), The Linguistic Typology of Templates, Cambridge University Press. Inkelas, Sharon (1993), Nimboran Position Class Morphology, In: Natural Language and Linguistic Theory 11, pp. 559-624. Kari, J. (1989), Affix Positions and Zones in the Athapaskan Verb Complex: Ahtna and Navajo, In: International Journal of American Linguistics 55-4, pp. 424-454. McDonough, Joyce (2000), Athabaskan redux: Against the position class as a morphological category, In: W. U. Dressler et als. (eds.), Morphological Analysis in Comparison, John Benjamins Publishing Company, pp. 155-178. Manova, Stela and Mark Aronoff (2010), Modeling affix order, In: Morphology 20, pp. 109-131. Manova, Stela (ed.) (2015), Affix Ordering Across Languages and Frameworks, Oxford University Press. Nordlinger, Rachel (2010), Verbal morphology in Murrinh-Patha: evidence for templates, In: Morphology 20-2, pp. 321-341. Simpson, J. and M. Withgott (1986), Pronominal Clitic Clusters and Templates, In: Hagit Borer (ed.), Syntax and Semantics 19: The Syntax of Pronominal Clitics, Academic Press, Inc., pp. 149-174. Stump, Gregory T. (1991), On the Theoretical Status of Position Class Restrictions on Inflectional Affixes, In: Yearbook of Morphology 1991, pp. 211-241. Stump, Gregory T. (1993), Position classes and morphological theory, In: Yearbook of Morphology 1992, pp. 129-180. Stump, Gregory T. (1997), Template morphology and inflectional morphology, In: Yearbook of Morphology 1996, pp. 217–24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