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술과 전향 -Martin heldergger 디지털미디어의 이해 기술과 전향 -Martin heldergger 정통전! 권진성
목 차 – 하이데거 vs 후설 들어가는말 서론 본론 결론
후설 vs 하이데거 후설(Edmund Husserl, 1859~1938) 철학이야말로 모든 개별학문의 이론적 기초가 되어야 한다고 주장한 인물이자, 이른바 ‘현상학 운동’의 지휘자. 하이데거(Martin Heidegger,1889~1976) 후설의 현상학을 발판 삼아 존재의 의미와 인간 실존의 뿌리를 추적한 독일의 철학자. 전통 철학을 존재 망각의 역사로 규정하고, 존재 물음을 새롭게 던짐으로써 새로운 철학함의 전형을 보여준 20세기 지성사의 거인.
하이데거의 숲
들어가는 말 “존재하는 것의 일별” 이라는 제목으로 네개의 강연 사물, 작업대, 위험, 전향 기술과 전향을 출간
- 서 론 - 인간의 끝없는 불안 하지만 현대의 기술적인 세계에서 고유성이 깨짐 - 서 론 - ◆ 풍요롭고 인간다운 삶을 가능하게 하는 것은 무엇일까? 기술(technology) : 도구나 연료의 사용 →기술은 인간의 삶을 변화시켰다. 하지만 현대의 기술적인 세계에서 고유성이 깨짐 인간의 끝없는 불안
- 서 론 - 그래서 제어할 수 없을 만큼 팽배해버린 기술적 세계의 위험 속에서 인간이 기술을 합리적으로 조정, 통제하여 - 서 론 - 그래서 제어할 수 없을 만큼 팽배해버린 기술적 세계의 위험 속에서 인간이 기술을 합리적으로 조정, 통제하여 기술의 노예가 아닌 영원한 주인으로 살아남을 수 있는 길을 제시하고자 하였다.
- 본 론 - 1. 기술에 대한 도구적․인간학적 규정 2. 탈은폐: 도발적 닦아세움(닦달) 3.존재의 역운(歷運) 4. 위험(危險)과 전향
1. 기술에 대한 도구적․인간학적 규정 기술의 존재는 하나는 기술은 목적을 위한 수단이라는 것 인간 행동의 하나라는 것 기술에는 연장, 기구, 기계 등의 제작과 사용이 속하며, 이 때 제작된 것과 사용된 것 자체도 기술에 속하며, 욕구와 이 욕구를 만족시키기 위한 목적들도 기술 따라서 기술은 하나의 수단이며 인간행동의 하나라고 보는 기술에 대한 통념을 기술의 도구적․인간학적 규정이라고 부른다
그러므로 인간의 자기 이해는 기술에 대한 이해를 포함한다. 1. 기술에 대한 도구적․인간학적 규정 “기술은 기술의 본질과 같은 것이 아니다. … 그러나 최악의 경우는 기술을 중립적인 것으로 고찰할 때이며, 이 경우 우리는 무방비 상태로 기술에 내맡겨진다. (기술과 전향) 기술은 비중립적인 것이다. 기술 그 자체가 인간의 한 부분이다. 그러므로 인간의 자기 이해는 기술에 대한 이해를 포함한다. ◉ 인간의 한 부분은 그 인간이 사용하는 기술이다- 아이디철학자
하이데거는 우리에게 근대 형이상학의 표상적 사유로부터 본질적 사유로의 도약을 요구하며 경고하고 있다. 1. 기술에 대한 도구적․인간학적 규정 도구란? 인간과 사물 사이에 끼어 든 사물에 대한 인간의 관계에 속하게 되며 변화를 수반하게 하는것 도구적인 것은 존재함, 현존함,단지 야기 시킴, 인과성 인간학적 규정 -> 인간의 행위 행위를이룸 자연이 여하튼 계산 가공 지배될 수 있는 것 하이데거는 우리에게 근대 형이상학의 표상적 사유로부터 본질적 사유로의 도약을 요구하며 경고하고 있다.
2. 탈은폐: 도발적 닦아세움(닦달) 기술의 의미를 근원적으로 파악‘테크네’로 소급 본래 희랍어 테크네는 어떤 것에 정통해 있음 -> 어떤 것을 생산 테크네는 일종의 인식개념 그런데 인식이라 함은 감추어진 것을 드러내도록 열어 젖히는 탁월한 유형 -> 탈은폐 방식 테크네의 근원적 본질은 탈은폐 즉 진리와 근원적 관계 현대기술은 이러한 독특함을 도발적 요청 혹은 닦아세움 모든 것이 어떻게 존재하고 있는가 하는 그 방식과 양상을 제시해 주어야 하며, 다양한 형태의 닦아세움의 지평에 서 있는 곳에서는 탈은폐에 맞추어 존재해야한다.
3.존재의 역운(歷運) 각시대의 형이상학을 존재가 역사적으로 자신을 보낸것. 현대인들에게 지극히 생소한 개념 비합리주의적인 공상 => 영감(inspiration)이라고 하이데거 특유의 해석 우리는 오늘날 인간과 존재의 공속의 형세를 그러한 존재의 진리의 역운에서 찾아야 한다.
3.존재의 역운(歷運) 기술의 본질 즉 존재 진리의 역운을 게수텔(Gestell)로 규정-> 닦달 도발적 요청의 의미를 지닌 닦아세움의 집합명사 -> 게수텔 여기에는 극단적인 부정의 의미 즉 게수텔은 단순히 모든 세움(Stellen) 일반의 집합을 의미하지 않고 오히려 도발적으로 요청하는 그러한 세움의 집합을 의미 닦달은 바로 오늘날 존재 진리의 역운이다. 그리고 이 존재 진리의 역운을 통해 인간과 존재의 공속은 이루어진다. 그러므로 오늘날의 인간은 닦달의 본질영역에 의거해서만 이해될 수 있다.
4. 위험(危險)과 전향 탈은폐의 역운은 위험 바로 그 자체 탈은폐의 역운 중 닦달이야말로 최고의 위험 왜냐하면 닦달의 영역에서 존재자는 오로지 부품으로만 탈은폐되고 인간은 부품의 주문자로만 존재한다. 전향이란 존재의 본질의 참됨(존속)에로 오는 그러한 전향이고 이러한 전향은 오직 은폐된 본질 자체 내에서 전향적인 위험이 무엇인가에 대해 바로 그 위험으로서 제대로 합당하고 밝게 드러날 때에만 일어나게 된다. 위험은 위험으로서 전개되자마자 구원의 힘을 자기 안에 간직하고 이 구원이란 바로 존재를 다시 그 본질에로 불러 들여 보호하고, 존속하는 것을 의미한다. 존재는 다른 어떤 것에 의해 야기되지 않기에 존재의 전향은 갑작스럽게 번뜩임으로서 일어난다.
4. 위험(危險)과 전향 기술비판은 단순한 시대 비판이 아니며 기술의 윤리학도 아니다. 기술비판은 존재 진리의 역운, 위험의 장소와 존재의 전향을 묻는 존재의 장소론 이었다. 기술비판을 일종의 기술의 현상학으로 규정한다. 왜냐하면 기술의 감추어진 본질을 경험하고 그 본질 속에 숨쉬는 구원의 힘을 다시 말해 존재의 전향을 밝게 드러내려는 하나의 시도였기 때문이다.
- 결 론 - 기술은 도구도 아니며 더욱이 인간에 의해 만들어진 것도 아니라는 것이다. 기술은 본질적으로 인간만의 문제가 아니며, 결코 중립적이지 않고 인간의 실존과 직결되어 있다. 기술의 문제는 결코 기술적으로 해결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라 근본적으로 인간과 세계와의 새로운 관계를 정립할 것을 요청하기 때문이다. 인간이 기술의 본질을 극복할 수 있다면 인간은 존재의 주인임에 틀림없다. 우리가 기술의 문제를 해결하느냐하는 물음은 개개인 모두를 위한 물음일 뿐만 아니라 새로운 세계문명의 건립에 참여하고 있는 모든 국가를 위한 물음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