팬인가? 제자인가? 3장 로마 바울참수교회 입구 참수당하는 사도 바울
팬인가? 제자인가? 3장 로마 바울참수교회 입구 십자가에 거꾸로 달리는 베드로
성경봉독 누가복음 7:36-50 팬인가? 제자인가? 2장
7:36 한 바리새인이 예수께 자기와 함께 잡수시기를 청하니 이에 바리새인의 집에 들어가 앉으셨을 때에 37 그 동네에 죄를 지은 한 여자가 있어 예수께서 바리새인의 집에 앉아 계심을 알고 향유 담은 옥합을 가지고 와서 38 예수의 뒤로 그 발 곁에 서서 울며 눈물로 그 발을 적시고 자기 머리털로 닦고 그 발에 입맞추고 향유를 부으니 39 예수를 청한 바리새인이 이것을 보고 마음에 이르되 이 사람이 만일 선지자더면 자기를 만지는 이 여자가 누구며 어떠한 자 곧 죄인인 줄을 알았으리라 하거늘
7:40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시몬아 내가 네게 이를 말이 있다 하시니 그가 이르되 선생님 말씀하소서 41 이르시되 빚 주는 사람에게 빚진 자가 둘이 있어 하나는 오백 데나리온을 졌고 하나는 오십 데나리온을 졌는데 42 갚을 것이 없으므로 둘 다 탕감하여 주었으니 둘 중에 누가 그를 더 사랑하겠느냐 43 시몬이 대답하여 이르되 내 생각에는 많이 탕감함을 받은 자니이다 이르시되 네 판단이 옳다 하시고 44 그 여자를 돌아보시며 시몬에게 이르시되 이 여자를 보느냐 내가 네 집에 들어올 때 너는 내게 발 씻을 물도 주지 아니하였으되 이 여자는 눈물로 내 발을 적시고 그 머리털로 닦았으며
7:45 너는 내게 입맞추지 아니하였으되 그는 내가 들어올 때로부터 내 발에 입맞추기를 그치지 아니하였으며 46 너는 내 머리에 감람유도 붓지 아니하였으되 그는 향유를 내 발에 부었느니라 47 이러므로 내가 네게 말하노니 그의 많은 죄가 사하여졌도다 이는 그의 사랑함이 많음이라 사함을 받은 일이 적은 자는 적게 사랑하느니라 48 이에 여자에게 이르시되 네 죄사함을 받았느니라 하시니49 함께 앉아 있는 자들이 속으로 말하되 이가 누구이기에 죄도 사하는가 하더라 50 예수께서 여자에게 이르시되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으니 평안히 가라 하시니라
팬인가? 제자인가? 3장
<팬인가 제자인가> 카이 아이들먼 바른 신앙 = 제자도 <팬인가 제자인가> 카이 아이들먼 프롤로그(서두)에서 ‘”나는 팬이었습니다” 제자도가 없는 기독교는 언제나 그리스도가 없는 기독교 이다. (디트리히 본회퍼)
바른교회 바른신앙 제 3 장 지식인가? 친밀함인가? 반쪽짜리 마음으로는 어림도 없다.
제 3 장 지식인가? 친밀함인가? 반쪽짜리 마음으로는 어림도 없다. 하나님에 관해 아는 것 vs. 하나님을 아는 것. 제 3 장 지식인가? 친밀함인가? 반쪽짜리 마음으로는 어림도 없다. 하나님에 관해 아는 것 vs. 하나님을 아는 것. 배우 리얼 앤드류스 <제너럴 호스피털> 드라마 배우 가 캘리포니아 남부에서 목회할 때 성도. 모임에 참석 - 팬들이 많이 옴. 팬들은 자신이 좋아하는 배우에 대한 엄청난 정보를 갖고 있음. 태어난 곳, 졸업한 학교들, 자녀의 나이, 심지어 음식 알레르기까지 줄줄이 꿰고 있음. 그러나 그 팬들이 그 배우를 진짜로 아는 것이 아니다. 그들은 배우에 '관해서만' 알 뿐이다. 그들은 사소한 사실들을 알 뿐, 나는 그의 신앙여정을 정확히 알 고 있고, 그들은 출연한 장면과 그의 배역이 극중에서 겪는 고통은 알았지만, 나는 그의 실제 인격을 알고, 그들은 그에 "관해서만" 알았지만, 나는 그를 "개인적으로, 인격적으로" 하는 친구읻다. 성경에 바리새인이라는 종교지도자들. 하나님에 대한 지식에서 타의 추종을 불허했다. '성경퀴즈대회'가 있었다면 상을 모두 싹쓸이했을 것. 그들은 "하나님에 관해" 모르는 것이 없었다. 하지만 하나님을 알지는 못했다. 마15장8절에 예수님은 이러한 바리새인들에 관해 가혹한 평가. "이 백성이 입술로는 나를 공경하되 마음은 내게서 멀도다“ 이보다 더 팬을 정확히 표현한 말도 찾아보기 힘들다. 바리새인처럼 팬도 머리로는 하나님을 열심히 연구하지만 그분께 마음을 드리지는 않는다. 하나님에 관한 지식은 넘쳐나지만 하나님을 진정으로 알지는 못한다. 지식과 친밀함, 이것이 팬과 제자를 가르는 결정적인 차이중 하나다.
@ 팬인가 제자인가 진단하기 2 ----예수님에 '관해서' 아는가? ----아니면 예수님을 '진정으로' 아는가? 누가복음 7장에 한 바리새인 시몬이 예수님을 저녁 만찬에 초대. 그러나 기본적이 대접도 하지 않음. -- 그러나 바리새인 시몬은 예수님께 입맞춤의 환영도, 발을 씻어드림도, 머리에 부을 기름도 없었다. 섭섭했던 예수님의 모습이 너무나 선하게 떠오름.. 눅 7:44 여자를 돌아보시며 시몬에게 이르시되 이 여자를 보느냐 내가 네 집에 들어오매 너는 내게 발 씻을 물도 주지 아니하였으되 이 여자는 눈물로 내 발을 적시고 그 머리털로 씻었으며 7:45 너는 내게 입맞추지 아니하였으되 저는 내가 들어올 때로부터 내 발에 입맞추기를 그치지 아니하였으며 7:46 너는 내 머리에 감람유도 붓지 아니하였으되 저는 향유를 내 발에 부었느니라 1)귀빈이 오면 뺨에 입맞춤. 특별히 귀한 손님이면 손에 입을 맞추었다. 인사할때 입맞춤을 빼먹는 것은 노골적인 무시이다. 2)식사전에 반드시 발을 씻어야 한다. 그런데 정말 귀한 손님이 찾아오면 주인이 직접 발을 씻어주었다. 그렇지 않으면 종을 시켜 손님을 발을 씻기게 했다. 3)정말 귀한 손님에게는 머리에 부을 기름도 제공했다. 비싸지는 않아도 기름을 제공하면 손님을 귀히 여긴다는 뜻이었다. 바리새인 시몬은 평생 성경연구, 성경암송, 메시아에 대한 300개이상의 예언을 토씨하나 틀리지 않고 읊을 수 있었다. 그러나 정작 그는 눈앞에 앉아 계신 메시아를 알아보지 못했다. 그는 예수님에 관해서는 모르는게 없었지만, 정작 예수님을 알지는 못했던 것이다.
팬인가 제자인가 진단하기 2 ---예수님에 관해서 아는가? ---예수님을 진정으로 아는가? 예수님에 관한 믿음과 예수님의 믿음 - 내가 가진 믿음은 어느 것인가? 롬 1:17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하나니 기록된 바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함과 같으니라 ---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하나니. 팬은 지식과 친밀함을 혼동한다. 팬은 예수님에 관해 아는 것과 그분을 진정으로 아는 것을 구분하지 못한다. 교회안에는 팬이 수두룩하다. ( 교회 교육방식의 문제 -성경공부 ) 오해하지 마라 하나님의 말씀을 공부하는 시간은 더없이 귀하다. 예수님도 구약 성경을 수없이 인용하셨다. 그분도 그만큼 열심히 공부하셨다는 증거이다. 문제는 지식자체가 아니다 지식만 있고 친밀한 관계는 없는 상태이다. (귀신 같은 믿음?나와 무슨 상관입니까? )
깊은 차원의 앎이 있어야 한다. 아마도 성경에서 친밀한 관계를 가장 잘 표현한 말은 '알다'이다. 이 '알다"는 말은 단순한 지식보다 더 깊은 차원의 앎을 의미한다. 창4:1 "아담에 그 아내 이브를 알았다" (KJV) 야다는 다음과 같이 정의하는 것이 가장 정확하다. "서로를 완전히 아는 것" NIV 성경은 야다를 번역 - 아담과 그 아내 하와와 동침하매 '야다'는 단순한 지식을 넘어서는 앎을 의미한다. 가장 친밀한 연합이다. 한 히브리어 학자는 이 단어를 "영혼의 뒤엉킴"으로 정의한다. 야다는 지식을 넘은 친밀함을 말한다.
여호와여 주께서 나를 살펴 보셨으므로 나를 "아시나이다" 생각해보라. 남편과 아내의 연합을 지칭하는 표현이 하나님과 우리사이의 앎에 대해서도 똑같이 사용된다. 예수님에 관해서 안다고 해서 제자가 아니다. 이제는 예수님을 친밀하게 알아야 제자라는 사실을 이해하게 되었다. 엡3:17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께서 너희 마음에 계시게 하옵시고 너희가 사랑 가운데서 뿌리가 박히고 터가 굳어져서 3:18능히 모든 성도와 함께 지식에 넘치는 그리스도의 사랑을 알아 3:19 그 넓이와 길이와 높이와 깊이가 어떠함을 깨달아 하나님의 모든 충만하신 것으로 너희에게 충만하게 하시기를 구하노라 구약에서 '야다'는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자주 사용되었다. 특히 하나님이 우리를 아시는 앎을 지칭하는 용어로 자주 사용된다. 시편139편 다윗은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아심을 표현하고 있다. 시 139:1 -4 여호와여 주께서 나를 살펴 보셨으므로 나를 "아시나이다" 주께서 내가 앉고 일어섬을 "아시고" 멀리서도 나의 생각을 밝히 "아시오며" 나의 모든 길과 내가 눕는 것을 살펴보셨으므로 나의 모든 행위를 익히 "아시오니" 여호와여 내 혀의 말을 알지 못하시는 것이 하나도 없으시니이다 .
예수님께 친밀한 애정을 표현했던 여인 누가복음7장 바리새인 시몬의 집에 불청객 여인이 찾아옴. 분위기가 썰렁해진다. 긴장감. 분위기가 썰렁해진다. 긴장감. 37절 바리새인 집에 찾아온 불청객여인은 , 더 정확히 말하면 마을 사람이 다 아는 창녀다. 7:37 그 동네에 죄를 지은 한 여자가 있어 예수께서 바리새인의 집에 앉아 계심을 알고 향유 담은 옥합을 가지고 와서 그런데 그 자리는 이 여인이 갈수 없는 자리였다. 그러나 예수님을 만나고픈 간절함이 그 여인에게 용기를 주었다. 그리고 이 여인은 예수님을 영접한다. 바리새인 시몬에게 멸시받은 예수님이 이 여인에게는 귀한 영접을 받는다. (멸시하는 신앙 / 영접하는 신앙) 그 차이는 무엇일까? 예수님의 비유속에 그 의미가 담겨있다. 눅 7:41 이르시되 빚 주는 사람에게 빚진 자가 둘이 있어 하나는 오백 데나리온을 졌고 하나는 오십 데나리온을 졌는데 7:42 갚을 것이 없으므로 둘 다 탕감하여 주었으니 둘 중에 누가 그를 더 사랑하겠느냐 7:43 시몬이 대답하여 이르되 내 생각에는 많이 탕감함을 받은 자니이다 이르시되 네 판단이 옳다 하시고 죄인임을 알고 주님앞에 나오는 자와 죄인임을 까먹고 남의 죄를 탓하며 나오는 자. (영접하는 신앙과 멸시하는 신앙의 차이 )
하나님, 예수님을 멸시/영접하는 신앙 영접하는 신앙과 멸시하는 신앙의 예 눅 7:44 시몬에게 이르시되 하나님, 예수님을 멸시/영접하는 신앙 영접하는 신앙과 멸시하는 신앙의 예 눅 7:44 시몬에게 이르시되 너는 내게 발 씻을 물도 주지 아니하였으되 이 여자는 눈물로 내 발을 적시고 그 머리털로 씻었으며 45 너는 내게 입맞추지 아니하였으되 저는 내가 들어올 때로부터 내 발에 입맞추기를 그치지 아니하였으며 46 너는 내머리에 감람유도 붓지 아니하였으되 저는 향유를 내 발에 부었느니라
하나님을 예수님을 멸시/영접하는 신앙 영접하는 신앙과 멸시하는 신앙의 예 바리새인 시몬의 초청 동네 죄인인 한 여자 하나님을 예수님을 멸시/영접하는 신앙 영접하는 신앙과 멸시하는 신앙의 예 바리새인 시몬의 초청 동네 죄인인 한 여자 (멸시하는 신앙) (영접하는 신앙) 1)발씻을 물 (X) 1) 눈물로 발을 적시며 2)환영 입맞춤 (X) 2)발에 그치지않고 입맞춤 3)머리에 기름부음 (X) 3) 옥합향유로 발닦음
이스라엘의 하나님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내가 전에 네 집과 네 조상의 집이 내 앞에 영영히 행하리라 하였으나 이제 나 여호와가 말하노니 결단코 그렇게 아니하리라 나를 존중히 여기는 자를 내가 존중히 여기고 나를 멸시하는 자를 내가 경멸히 여기리라 [삼상2:30]
예수님께 친밀한 애정을 표현했던 여인 눅 7:44 그 여자를 돌아보시며 시몬에게 이르시되 이 여자를 보느냐 내가 네 집에 들어올 때 너는 내게 발 씻을 물도 주지 아니하였으되 이 여자는 눈물로 내 발을 적시고 그 머리털로 닦았으며 7:45 너는 내게 입맞추지 아니하였으되 그는 내가 들어올 때로부터 내 발에 입맞추기를 그치지 아니하였으며 7:46 너는 내 머리에 감람유도 붓지 아니하였으되 그는 향유를 내 발에 부었느니라 누가복음 7장의 이 여인처럼 예수님과 친밀한 시간을 보낸 적이 있는가? 예수님앞에 자신을 완전히 쏟아낸 적이 있는가? 눈물을 흘리며 예수님께 사랑의 표현을 해본적이 있는가? 창피를 무릎쓰고 예수님께 애정을 표해 본 적이 있는가? 자신의 가장 귀한 것(향유 옥합)을 드려 예수님께 감사함을 드린 적이 있는가? 다시 말해 예수님에 관해서가 아니라 예수님을 진정으오 알고 있는가? 아는 것이 힘이 되는가? 아는 것이 병이 되는가? 밤중에 예수님을 몰래 만나러 온 니고데모와 백주대낮에 창피함을 무릎쓰고도 예수님 발앞에 무릎꿇은 여인 결국 모든 지식을 갖춘 종교지도자는 팬이었고, ("이 백성이 입술로는 나를 공경하되 마음은 내게서 멀도다"마15:8)) 예수님께 친밀한 애정을 표현했던 창녀는 제자로 판명이 났다. 이제 우리 자신에게 물어보자, 나는 이야기의 어떤 인물에 가까운가? (예화) 교회로 메일 한통 --- 자신을 등록교인명부에서 빼달라는 내용이었다. 그 이유: "카일 목사님의 설교가 마음에 들지 않습니다." 도저히 납득이 가지 않아 전화 심방 -- 횡설수설 해명을 하다가 중요한 말을 내뱉었다. "음 … 목사님의 설교가 제 삶을 뒤흔드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습니다." 삶을 뒤흔든다? 이거야말로 설교자의 소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