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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1강 초기 기독교의 전역사: 고대 유대교의 형성과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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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념 정리: 복습 고대 유대교 vs 초기 유대교?:
고대 유대교 – 랍비 유대교(미쉬나의 형성 A.D.250년 경) – 근대 유대교(1730) 역사적 형성기: 페르시아(B.C. 521~) -> 헬레니즘 제국(B.C. 330~) ->로마제국(B.C. 63~): 예루살렘 / 성전 멸망과 형성기의 유대교 및 형성기의 기독교 (유대전쟁 A.D. 66~70 이후) 페르시아 시대(귀환-알렉산더 등장 이전) - 에스라 귀환과 개혁: “율법의 백성”(토라) - 제 2 성전 재건: 제2성전기 - 권력의 핵심: 대제사장(사독계열) 등장 - 왕의 소멸/예언자의 마지막 활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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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 유대교의 기틀 외세 통치하의 독립 종교로의 길 1) “이스라엘의 회복”과 유대 공동체의 건설
- 건설의 내용: 성전과 토라 - 에스라의 개혁과 사회적 갈등: “유다인”과 “암 하아레츠” - 귀환 공동체의 “표준”: 토라, 유대교의 삶과 신앙의 모든 것 규정 2) 이스라엘의 정체성과 유대교: 이스라엘의 회복 - 국가적 정체성이 아닌, 종교적 정체성(외세 치하의 독립종교) - 성전(聖殿), 성도(聖都), 성지(聖地)로 펼쳐지는 거룩의 외연 - 토라와 그에 따른 종교적 삶이 그 내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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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이스라엘 종교의 변화와 유대교 1) 예언에서 묵시로 - 묵시문학의 기원은 지혜가 아닌 예언 - 기능의 변화: 예언자(현실 속에서 하나님의 신탁의 대언자) -> 묵시가(초역사적 상징의 해석자) 2) 토라와 지혜의 만남 - 토라: 이스라엘 삶의 내용(what to do) - 지혜: 이스라엘 삶의 방법(how to do) - 합류: 야웨 경외는 토라의 중심 토라는 지혜의 원천 3) 이스라엘 종교의 새로운 길 가. 집단에서 개인으로 - 종교적 삶의 체험은: 토라의 실천과 연구(제사장에서 점차 서기관 주도) - 종교는 이제 집단적 정체성의 체험이 아닌, 개인적 경험으로 강화 나. 종교적 리더십의 변화 - 제사장적 신정 통치가 왕정을 대신 - 묵시적 지혜자가 예언자를 대신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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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 유대교의 본질 요약 토라 중심, 선택의 언약, Is 회복을 중심으로 한 유일신 신앙
“이스라엘”의 핵심 아이콘: 성전, 성지, 토라 보편주의 vs 특수주의: 하나님의 통치와 사랑은 모든 민족vs 이스라엘? 고대 유대교의 특성: 이방인의 통치에 대한 입장에 따라 다양한 “종파”의 프리즘 형성 이 유대교의 전통 안에 존재하는 기독교의 모체인 “예수 운동”의 의미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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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기 기독교 역사의 시작 유대 특수주의에서 세계 보편주의로
1. 예루살렘 공동체의 성격: “기독교적” 유대교 - 율법을 어느 정도 준수하고 있는가? - 성전 예배에 참여하고 있는가? - 성경(구약)을 경전으로 삼고 있는가? 2. 이 공동체의 지도자들의 성향 가. 예수님의 동생 야고보: a. 유대교 내에서 “의로운 자”으로 불림 b. 그러나 63년 “율법 위반”으로 순교 c. 예루살렘 회의(행 15장)의 수장으로서 율법에 대한 중용적 입장? 나. 예수님의 “수제자” 베드로 a. 예루살렘 교회의 초기 복음 운동 이끌어 감 b. 베드로의 “외식”(갈 2:11-14): 이방인과의 식사 c. 베드로의 체험: “보자기 환상,” “피장이 시몬”과 함께 거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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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기 기독교의 보편주의적 경향 1. 바울의 회심의 의미 - 유대교의 종파적 프리즘에서
- 그의 사명: “이방인의 사도”(베드로는 “할례받은 자에게로” 갈 2:7-10) 2. 가장 중요한 요소는? - 헬레니즘 세계와 문화의 전파 - “코이네”를 사용하는 디아스포라 유대인의 기능(스테파노스, 필립 … 행 6장~) - 이 모든 것의 근원은?: 나사렛 예수 그의 삶과 죽음, 선포된 하나님 나라의 성격이 “모든 인간을 향한 야웨 하나님의 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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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연습 1 (행 1:1-11/12) 누가에 의하면 예수님의 지상생애와 부활의 핵심적인 내용을 어떻게 표현하는가? 그리고 그것을 복음서에 나타난 예수님의 사역의 핵심어로 기록하면? ?(1,1-3) 이 본문에서 제자들의 질문과 예수님의 대답을 통해 전제되는 유대교적 신앙과 일치되는 점은? 그들은 여전히 율법을 지키고 있는가? 근거는? 행 1:8이 사도행전의 요약 핵심어라고 할 때, 이 표현에 담긴 유대교적 특수주의과 기독교적 보편주의를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 것인가? 그리고 그것이 역사상에서 이전될 때, 사도행전에서 구체적으로 실현되는 모습은 무엇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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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연습 2 (행 1:12-26) 이 본문을 통해서 초기 예루살렘 공동체의 구성원을 3그룹으로 재구성한다면?(V13-14)
베드로가 제안한 “열 둘”의 “보궐”의 근거를 생각해 볼 때, 이 공동체가 행동의 기준으로 삼고 있는 것은?(정확한 표현 두 구절을 인용하여 설명) “보궐”의 기준은 무엇이고, 그것이 “기독교”의 역사에 어떤 시금석이 되었을까?(“열 둘”과 “사도”의 관계를 설명해 보세요) “사도”의 사명은 정확히 무엇인가? 행 1장 전체에서 기능적으로 세례 요한이 언급되는 이유를 유대교와 기독교의 관계에서 설명한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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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2 강 Hellenistic Judaism의 성격
헬레니즘과 유대교의 충돌 제 2 강 Hellenistic Judaism의 성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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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역사적 상황과 헬레니즘의 영향 1) 팔레스타인의 역사적 상황
- 알렉산더의 동방정벌( ): 사후 안티고누스와 프톨레메우스 - 이집트 프톨레메우스 왕조의 지배( ): 그 후 셀류쿠스와 - 시리아의 셀류쿠스 왕조의 지배( ) - 안티오쿠스 IV의 지배(175)와 마카베우스의 봉기 시작(167) - 유다의 마카베우스 가문의 발전: 종교적 독립(162), 대사제 요나단 등극(152), 시몬 드디어 독립!(142) - 하스몬 왕조(142-63)과 로마에 의한 정복(B.C. 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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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알렉산더의 정복의 영향 - 도시의 성장: 군사도시로 그리스 도시국가적 성격 - 무역의 성장: 예루살렘의 국제도시화 - 공통언어(코이네)의 보급: 김나지움과 시민권 개념 - 전쟁기술의 유입(이후 유대 묵시문학, 마카베우스 봉기에 영향) - 그리스적 통치기술의 본질: 세금과 ‘세리’제도 관구(nomos) 조직과 군사관리자(oikonomo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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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평화의 시기 3) 프톨레메우스 왕조 치하의 100여년 - 프톨레메우스 II 필라델푸스(285-246) : 평화의 최고조
- 예루살렘: “코엘레-시리아”의 국제무역 중심(페니카아 무역상) - 유급 군인(해외 파병), 무역, 노예(프톨레메우스 I 소테르 때, 10만명 이집트로): 지중해 연안, 북아프리카 지역의 유대인 디아스포라의 기원 - 신흥 부자 가문의 등장: 프톨레메우스 III 시절 토비아스 가문의 요셉 - 세금 대납업으로 막대한 차익: 트라슨 요르단 지방차지 - 귀족과 상층 사회의 국제경제적 이익 참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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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헬레니즘의 문화적 힘(코이네) 팔레스타인에서의 그리스어 사용 상황 - 일상화된 상용어, 무역어, 국제어 - 귀족층과 군인들 - 지식인의 표지(“hellenigein”): 그리스어를 제대로 사용함, 그리스식 라이프 스타일(아리스테이스의 편지 #131) - 예루살렘의 김나지움 개교(175?): 호머의 글을 학교에서 사용 - 이중 이름: 아람어와 그리스어(케파-페트로스, 사울-파울루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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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가 이미 3세기에 유대 팔레스타인에서 헬레니즘 문화와 유대 상층부와의 상당히 강력한 조우가 있었다.
100여 년간의 평화적 통치시대는 팔레스타인 내부의 경제적 신학적 발전에서 과도하게 평가될 수는 없다. 그러나 이 헬라와 과정은 유대 백성들 모두에게 동일하게 적용될 수는 없다. 주로 동부 피정복지의 특권적 상층부에만 해당: 중요한 사제 및 평신도 사제귀족과 부유한 도시민들 이들에게서는 자유로운 사유와 생활방식이 호감을 끌었고, 이러한 그룹에서는 그리스적 “계몽”과 “세계화의 프로그램” 에 영향을 받음. 여기에서 옛 전승에 대한 회의적 태도인 새로운 “지혜학파”와 (경제적 문화적 발전을 저해하는)율법에 대한 비판이 발전되었다. 이 발전의 끝이 “헬라화 개혁시도”(175)인데, 이는 백성들 대다수의 단호한 저항(마카베우스 봉기)에서 좌절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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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카베우스 가문과 하스몬 왕조 시대의 유대교의 특징: 종파화된 유대교
헬레니즘에 대한 유대교의 저항 II 마카베우스 가문과 하스몬 왕조 시대의 유대교의 특징: 종파화된 유대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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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스몬 가문의 계보와 정치적 종교적 의미 유다 마타디아 168-7 모데인에서 봉기
마카베우스 왕가 행적 유다 마타디아 모데인에서 봉기 유다 마카베우스( ) 164 성전 재탈환 및 재봉헌 요나단 ( ) 152/3 셀류커스 왕에 의해 대사제 임명 시몬 ( ) “진정한 예언자가 등장하기까지”(I마카15,41) 영도자 및 대사제직 요한 하르카누스 세가지 직임 통일: 영도자, 대사제, 예언자 ( ) 사독가문과 제휴, 바리새파 축출, 유대인 통합 사마리아(그리심 성전 파괴), 이두매 정벌(강제할례) 아리스토불루스 자칭 최초의 “왕”, ( ) 갈릴리 (사두개 득세, 반 바리새 성향) 정벌 알렉산더 얀네우스(103-76) 주변의 그리스 도시들 정벌 알렉산드리아 살로메 바리새파 득세(산헤드린) 및 사두개파 숙청 (76-67) 헤롯 이후 계속 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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헬레니즘 시대의 유대교 내부의 개혁운동의 흐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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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의 유대교와 기독교에 있어서 구원의 문제 이른바 “계약적 규범주의”란 무엇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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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약적 규범주의(covenantal nomism) E.P.샌더스
- 팔레스타인의 유대교(200BCE-200CE)의 핵심: 계약과 율법 - 기독교적 관점: 유대교(post-biblical Judaism)는 이스라엘 종교의 경직화: 하나님의 은혜에 의해 주어진 계약과 그에 대한 순종이 하나님의 자비를 얻기 위한 편협한 율법주의(petty legalism)으로 변질되었다. - 그러나 이러한 테제는 후기 유대교 자료들을 잘못 읽은 결과이다. “계약의 준수가 하나님과의 교제에 이르기 위한 것이 아니라, 그 교제를 깨지 않고 유지하기 위함이었다”. - 대부분의 문헌들에서 발견되는 것은: “순종은 계약에서 한 인간의 지위를 유지시키지만, 그것은 하나님의 은혜를 그런 것으로서 얻을 수는 없다.” - “후기 유대교”에서 “계약”이라는 어휘가 나타나지 않는다는 것은 당시 유대교에서 계약은 전제되었고, 랍비들의 관심은 “어떻게” 계약적 의무를 충족시킬 것인가”였다. - 쿰란도 자신들이 참된 계약을 소유했고, 계약의 참된 해석자임을 자처했다. 결국, 이 시기의 유대교에서 계약이라는 용어가 희귀한 한 것은 그것이 본질적으로 common하였기 때문이며, “순종”은 보편적으로 계약 안에 존재하는 것에 합당한 행동이었지, 하나님의 은총을 얻는 수단으로서는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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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약적 규범주의의 구조: 유대교의 일반적 형태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선택하셨고, 율법을 주셨다. 그 율법이 의미하는 것은 하나님의 약속은 그 선택을 유지하고, 순종을 요구한다. 하나님은 순종에 보답하시고, 죄를 벌한다. 율법은 속죄의 수단을 제공하고, 속죄는 계약적 관계의 유지나 재정립을 가져온다. 이 패러다임(순종과 속죄와 하나님의 자비)인 계약 안에 유지되고 있는 모든 자들은 구원될 사람들에 속한다. 결국: 1./8.은 선택과 궁극적 구원은 인간의 업적보다는 하나님의 자비에 의해 이루어진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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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적 유대교(E.P. Snaders): 유대종파와 리더십의 문제
유대교의 종파들이 유대교를 이끌지는 않았다. 소수의 귀족 제사장들인 사두개인과 평신도 사제들이 바리새파에 속한 것과는 달리, 대다수의 제사장과 레위인들(apion 2,108: 20000여명)은 단순히 Common Judaism에 속했었다. 제사장들은 유대교에서 전통적인 종교적 법적 권위를 가졌다: 다윗 왕조의 회복의 기대라는 당시 유대교에 대한 우리의 통념과는 달리 유대인들은 군주체제에 대한 적대감을 가졌다. 유대, 특히 외세의 원격 통치하의 예루살렘에서는 그러한 군주적 권위보다는, 차라리 제사장들이 다스리는 신정체제를 선호했다. 대제사장은 로마를 대리하는 최고의 실제 권위였다. 예수의 성전 정화(막 11,15-19)에서 성전을 ‘강도의 굴혈’로 묘사했고, 요세퍼스도 사제들의 부패를 언급했지만(어는 종교에나 부패는 있다), 일반적으로 사제들은 율법을 엄격하게 고수함으로 성전에서 하나님을 신실하게 섬겼다. 유대전쟁에서도 로마에 대한 헌신과 결탁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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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on Judaism: 1. 신학적 측면 1) 유일신 사상 유일하고 참되신 하나님 창조주로 지금까지 다스리심
유대인들은 이방인들이 생각하는 “이세상의 신들”과 사탄의 세력을 인정했으나(고전 10,20; 고후 4,4; 11,14), 그것이 유일신 사상을 침해하는 것은 아니었다: 그들은 모두 유일하신 하나님께 굴복 될 것이다(고전 15,24-26 빌 2,10f). 유대인들은 이방 신들과 관계하여서는 안됨. 2) 하나님의 선택과 율법 계약: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보호하고 인도하며, 그들은 하나님을 복종함 이 계약사의 3가지 계기: 아브라함을 부름(창 17), 출애굽(출 14), 시내산에서 모세에게 율법의 수여(출 19,16~신) 그러나 이 계시는 모세로 끝나지 않고, Is에게 땅을 주고 예언자를 통해서 말씀하시고, 구속하고 보호하신다. 이것이 선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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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회개, 심판, 용서 율법을 범하면 회개하고 희생제사를 드린다. 여기서 만일 다른 사람에게 상해를 입혔다면 배상한다. 하나님은 회개하는 죄인을 언제나 용서한다. 회개하지 않는 죄인은 심판한다(예, 질병). 죄인이 이것을 하나님의 응징으로 받아들인다면, 그는 아직 계약백성 이다. 이 같은 시스템은 민족 전체에도 적용된다: 이스라엘의 범죄가 국가적 심판을 가져왔고, 겸허한 회개를 낳게 했다. 하나님은 언제나 자기 백성을 구속하시고, 그들은 비록 상처를 입었지만 그에 대한 신실함을 유지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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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정통 유대교적 실천 1) 유대인은 하나님을 예배하고 섬긴다
제 2계명 적용: 다른 신들을 섬길 수 없다(출 20,4; 신 5,8). 예루살렘에서: 유대남자, 순례축제 때, 매년 3회. 그러나 1세기에는 디아스포라 현상으로 이것이 불가능하게 됨으로 팔레스타인에서 멀리 있는 유대인은 아마도 년 1회 규정, 그러나 디아스포라들은 거의 실행하지 않았을 것임. 그러나 성전세금은 여전히 지불했다: 전체 유대 공동체를 위해서 희생제사를 드리는 것을 보조하기 위해. 성전 이외에서의 예배: 유대인은 주된 계명을 하루에 두 번씩(“눕고 일어날 때” 신 6,4-5), “네 마음과 … 주 너희 하나님을 사랑하라”와 기초 계명 몇 가지를 반복함. 이것은 회당(유대인의 “기도의 집”으로 기도와 율법연구를 위해 모임)에서 아침 저녁 기도 때에 암송됨. 유대인은 매일 집에서, 매주 안식일에 회당에서 예배하였다. 2) 아들에게 할례를 줌(아브람함과의 언약 창 17) 3) 제 7일 안식일 노동 금지, 안식년 경작 금지(팔레스타인) 4) ‘부정’하고 ‘가증’한 음식을 피했다(레 11; 신 14): 대표적으로 돼지고기와 조개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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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성전에 들어가기 전에 자신을 정결하게 한다. 성전 예배 전의 정화예식은 모든 고대 종교의 한 부분 ‘부정’의 주요 근원 : 정자와 생리유출 등 생식기의 유출 물(유산, 출산, 시신 레 11; 민 19). 이런 신체적 과정은 삶과 죽음과 가장 직접적으로 연관되기에, 거룩하고 불변하는 것(즉, 하나님의 임재)과 떨어져야 한다. 몇몇 그룹은 이런 성서적 경건에서 발전된 정결을 발전시켰다: 기도 전 혹은 식사전후 손씻기 6) 의미: 이러한 제의 실행을 그들만 행한 것은 아니었다. 고대세계에서 신들을 예배하고 동물 희생제사를 드리거나, 성전을 후원하는 것, 거룩한 날을 준수함, 제의 참가 전 손씻음, 물뿌림도 일반적이었다. 유대인의 독특성: 그러한 일반적 제의실행을 특별하게 정의하였다; 유일한 성전; 유일한 하나님 예배; 매주 그것도 제 7일; 몸 전체를 물에 잠그는 것(유일) 모든 문화에는 음식률이 있다: 그리스와 로마인들도 개를 먹지 않았다. 이집트의 제사장들이 돼지고기를 삼가하기는 하지만, 유대인들이 돼지고기와 조개류를 먹지 않는 것은 유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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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례: 이집트의 제사장들과 다른 셈족들도 남자들은 할례를 한다
할례: 이집트의 제사장들과 다른 셈족들도 남자들은 할례를 한다. 그렇지만 유대인들은 그들의 문화에서 그토록 주요한 의미로 할례를 반드시 요구한다. 이방인들은 유대인들의 이러한 철저한 율법준수를 주목하여 바라보았고, 조소했다. 신상 없는 유일한 성전, 그리스 로마의 신들을 숭배하는 것을 거절하는 것, 그리고 가장 맛있는 돼지고기를 먹지 않는 것은 이상한 것이었다. 디아스포라 유대인들은 주변의 문화에 동화되려 하지 않았다. 그 주된 이유는: 그런 행위들은 ‘신적인 계명’이었기 때문. 즉, 유대인들에게 음식률은 전통이 아니라, 음식에 관한 하나님의 명령이기 때문이다. 유대 율법의 가장 놀라운 점: 개인으로서 와 시민으로서의 행위를 포함하는 삶의 전체를 하나님의 권위 하에 놓는다는 것. 유대교에서 ‘종교’는 그레코-로망 세계 처럼 단지 축제와 제사가 아니라, 삶의 모든 것을 포괄한다: 요세퍼스 아피온 반박문 2,171 “종교는 우리의 모든 행동과 일과 말을 관할한다. 우리의 율법의 수여자는 이 모든 것을 깊이 고려하지 않고 모호하게 해 놓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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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기 기독교 역사의 시작 유대 특수주의에서 세계 보편주의로
1. 예루살렘 공동체의 성격: “기독교적” 유대교 - 율법을 어느 정도 준수하고 있는가? - 성전 예배에 참여하고 있는가? - 성경(구약)을 경전으로 삼고 있는가? 2. 이 공동체의 지도자들의 성향 가. 예수님의 동생 야고보: a. 유대교 내에서 “의로운 자”으로 불림 b. 그러나 63년 “율법 위반”으로 순교 c. 예루살렘 회의(행 15장)의 수장으로서 율법에 대한 중용적 입장? 나. 예수님의 “수제자” 베드로 a. 예루살렘 교회의 초기 복음 운동 이끌어 감 b. 베드로의 “외식”(갈 2:11-14): 이방인과의 식사 c. 베드로의 체험: “보자기 환상,” “피장이 시몬”과 함께 거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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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기 기독교의 보편주의적 경향 1. 바울의 회심의 의미 - 유대교의 종파적 프리즘에서
- 그의 사명: “이방인의 사도”(베드로는 “할례받은 자에게로” 갈 2:7-10) 2. 가장 중요한 요소는? - 헬레니즘 세계와 문화의 전파 - “코이네”를 사용하는 디아스포라 유대인의 기능(스테파노스, 필립 … 행 6장~) - 이 모든 것의 근원은?: 나사렛 예수 그의 삶과 죽음, 선포된 하나님 나라의 성격이 “모든 인간을 향한 야웨 하나님의 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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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4 강: 사도행전과 사마리인의 문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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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이른바 사마리아주의(‘Samaritanism’)이란?
유대교 안에 있지만 사마리아인들만의 독특한 야웨신앙(Yawhism)을 말함(모세 율법에 기초한) - 정경: 오경만을 인정. 히브리 정경이 예루살렘 전통을 강조한 맛소라 본문에 기초한 ‘잘못된 토라 버전’이라고 하고, 이와는 반대로 세겜과 그리심의 제의 센터를 중심으로 한 자신들만의 독특한 사마리아 오경을 가짐 성전: 예루살렘과 독립된 성전을 추구(그리심 성전) 제사장: 예루살렘 제사장과 독립된 전통(사마리아 역대기는 대제사장의 기원을 아론을 넘어 아담까지 연장함) 메시아 기대: ‘모세같은 선지자’보다는 종말론적 메시아를 고대함(여호수아=구원자) 결국 유대교 가운데서 가장 급진적인 종파로 인정: 예루살렘을 이스라엘의 구속사에서 배제시킨다. 초기 유대교의 랍비들은 사마리아인들이 이방인이 아닌, 유대의 ‘암 하아레츠’(땅의 사람들). 그러나 일관된 견해는 아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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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사마리아의 기원은 언제? 가장 오래된 기원은 722 B.C. 앗시리아에 의해 이스라엘의 북왕조가 멸망하면서 그곳에 남았던 사람들과 타지에서 이주해 온 사람들과의 관계에 의해 규정됨 그러나 역사적으로는 사마리아의 등장은 포로기 이후 느헤미야(4장) 시대에 문제가 구체적으로 언급 됨 ‘사마리아 역대기’의 관점: - 자신들은 고대 요셉 지파의 후손으로 가나안 정착시 세겜에 거주한 제사장들의 후손 - 남은 지파는 사마리아인과 유대인 뿐으로서 - 사마리아의 토라에 있는 ‘모세신앙’을 전수한 여호수아 지도 하에 세겜에 정착한 사람들 - 유대인들은 실로에서 경쟁하는 성소를 세운 분리주의자들 - 이들은 엘리 제사장, 성전을 건설한 솔로몬, 맛소라 정경을 이룩한 에스라 라는 것. 그러므로 자신들이 참다운 이스라엘의 신앙전통을 보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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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사마리아의 역사 재구성 요세푸스의 가설: 포로기 이후 사마리아의 분리
(먼저 자료 왕상 17장;고대사 9, ; 11, 를 읽자) - 외국인 이주설: 원래 쿠타족에서 이주해 왔다 - 그리심 성전의 제사장은 예루살렘의 제사권에서 나온 것이다(정략결혼). - 반 사마리아 정서의 표현 : 그들은 원래 ‘이스라엘’이 아니었고, 정치적 상황에 따라 움직였던 ‘기회주의적’인 성향을 가졌다. - 문제점: 산발랏(느 4장)을 알렉산더와 동시대인으로 생각. 그렇다면 유대주의(Judaism)에서 사마리아주의(Samaritanism)의 분열은 페르시아시대인가, 헬레니즘 시대인가? 2) 구약성서(왕하 17:21-42) - 유일하게 왕하 17:29에 “shomronim”(사마리아 사람들)이 나옴 - 이들이 이주민들인가, 사마리아의 원주민(북왕국 이스라엘 사람들 왕상 17장의 내용은?!)인가 - 그러나 이것은 “이스라엘의 자손들”(bnei Israel)과의 차별성을 주장하기 위한 본문 - 결국 “사마리아 사람들”(shomronim)은 포로에서 돌아온 사람들이 아닌, 이스라엘의 남은 자들을 지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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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 사마리아의 역사는? 세겜의 재건설: 알렉산더 사후 마케도니아인의 거주지가 됨.
정착민과 원주민들은 히브리인의 하나님 야웨를 예배했다. 이 때 그리심 근처 세겜에 성전 건설하여 고대 이스라엘의 전통을 회복하려 함 이때 사마리아 오경을 편집하여 유다주의에 대한 독자적인 리더십을 주장함 유대인들 가운데 일부는 사마리아은 혼합주의를 경멸 175BC 안티오커스 IV의 헬레니즘 강요에 대한 사마리아인들의 반응은 유대주의와는 달리 수용했을 것 요한 히르카누스(134BC~)의 팽창정착으로 그들을 점령한 후 128BC에 세겜의 성전 파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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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초기기독교와 사마리아주의 복음서의 사마리아인에 대한 언급들 가. 공관복음서: 반/친 사마리아 정서
눅 17:16(10명중 사마리아인 한명만 감사 v18. “이 외국인”) 사마리아의 고을에 불을!(9:51-56) 선한 사마리아인의 비유 (10:33) 마 10:5(사마리아의 고을로 가지말고 차라리!) 나. 요한복음 4장: 사마리아여인과 고을에 복음 사마리아인의 메시아 기대: “(모세와 같은) 선지자로소이다”(4:19)=“그리스도”(4:29) “세상의 구주”(4:42) 이틀 머물고, 많은 사람들이 그를 믿었다. 이 메시아 신앙은 요한복음의 공동체의 신앙 8:48 “예수는 사마리아인이며, 귀신들렸다” 예수는 귀신들렸다는 것만 부인!(49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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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사도행전에서 사마리아의 문제 가. 스테판의 설교와 순교의 의미는? - 그의 설교의 특징: 예루살렘 성전에 대한 비판
- 하나님은 성전에만 계시지 않는다. - 예수의 성전비판과 연관 나. 빌립의 전도와 마술사 시몬의 에피소드 - 박해로 흩어진 자들의 행로: 사마리아 - 시몬에게도 성령이!(8:16-17) 다. 사마리아 여러 도시 전도의 성공(8:8. 25) 라. 이것은 구속사적 패러다임인 “예루살렘-유대-사마리아-땅끝”의 과정으로 이해 결국 이것은 초기기독교가 사마리아에 대해 ‘유대주의’와는 다른 관점을 가졌다는 것이다: 친 사마리아주의! 그들은 유다, 갈릴리 뿐만 아니라 사마리아인들을 그리스도 아래서 통합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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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리 Samaritanism과 초기기독교의 운동은 모두 유대교 내부의 종파운동
- 역사적으로 초기 예수 복음 운동에서는 유대주의의 금기가 더욱 분명하였지만, 예수는 이미 두로와 시돈, 게네사렛을 넘어 이방인과 사마리아로 갔다. - 예수는 갈릴리인 이었다. 그는 사마리아와 유대지역을 통합한다. - 예수 이후에 초기기독교는 사마리아 친화성(특히 누가-행전, 요한복음)을 표시한다. - 사도행전은 구속사적 도식 완성: 예루살렘-유대-사마리아-땅끝(이방인) - 이것은 기독교 복음이 가지고 있는 성격: 유대주의적 특수주의보다는 보편주의적 경향이 본질적인 영향을 미쳤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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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울의 생애와 선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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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울의 생애 가. 유대교에서 “기독교”로 1) 초기 예루살렘의 공동체와 기독교의 성격 새로운 유대교=“기독교”
2) 초기기독교에서 바울의 위치 가. 회심의 의미: 박해자에서 옹호자로(무엇을?) 나. 바울의 사명: “이방인의 사도”란? (과제2: 해당 본문 2개 찾기) 3) 바울의 걸림돌 가. 예루살렘 총회: “율법과 복음”(행 15:1-29) 나. 걸림돌의 핵심은?(갈 2:1-10; 11-14) 다. 크라우디우스의 칙령(행 17:7, 41년): “소요를 일으키는 유대인들을 로마에서 추방하였다”(수에톤, 클라우디우스 25,4) (실제로 로마에서 추방된 유대인은? 약 49년? 행 18:2) 4) 바울이 서신서를 쓴 주요 이유 가. 유대인들이 주장에 대한 복음의 변호 나. 유대교로부터 독립된 종교(복음) 다. 결과: 복음의 승리와 기독교 공동체의 확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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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다소의 바울 생애의 편력: 유대 근본주의자에서 보편적 유대교의 주창자로! - 길리기아의 다소(Tarsus) 출신
토론: 바울은 로마의 시민권자인가?(행 22:28 politeia, politeuma) 그렇다면 어떻게 얻었을까? 이것이 그의 직업과 관계있었을까? - 그는 유대교 근본주의자?(cf. 갈 1:14): 예수 추종자들을 박해하는 역할 - 박해의 이유는?: 예수 운동은 토라를 무너뜨리는 것이라고 생각. 왜? 갈 3:13(=신 21:23) - 다마섹(Damascus)의 회심이 그에게서 무엇을 변화시켰는가?: 유대교의 율법의 옹호자에서 율법 대한 비판적 견해로? 그 핵심에 “부활의 주”의 체험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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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예수 운동과의 접촉 (갈 1:13-24 바울의 공식적인 선교활동 이전의 편력) - 회심 후 아라비아의 선교사 3년(32-35) - 나바테와 갈리리의 전쟁으로 다메섹으로 돌아왔으나 나바테 왕의 박해(고후 11:32)로 예루살렘으로 망명 - 여기서 베드로와 야고보(주의 동생)와 대화하여(갈 1:18ff) 자신의 회심과 선교활동으로 자신에 대한 의구심을 없앰 - 시리아와 길리기아로의 여행 - 사이프러스와 소아시의 선교(행 13-14장) - 고전 15:1-8이 의미하는 바는?: 복음의 공유 바울이 전한 복음의 전승과 12사도들이 전한 복음은 일치하고 있다. 그것은 무엇인가? 토론: 바울의 신학의 중심이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와 부활의 주”에 있게 된 이유는? - 그는 예수님의 공생애를 경험하지 못하였다: 예수의 요구와의 차이 자비량 선교(살전 2:9; 4:11), 직업 유지(고전 7:17f), 창기들은 하나님 나라에서 제외(고전 6:9 cf. 마 21:32) - 그의 신학의 중심: “나무에 달린 저주 받은 자”가 “부활의 주”와 동일시 되는 역설 - 유대교의 유일신의 문제는 어떻게 해결되는가?: 오직 하나님이 죽은 자를 일으키심(부활)으로 예수는 하나님이 되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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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바울 생애의 연대기 1) 확실한 연대 - 클라우디우스 포고로 유대인의 로마 추방(행 18:2): 수에톤 Cl 25,4=주후 49년 브리스길라와 아굴라의 고린도 도착은 바울의 도착 얼마 전 - 아가야의 총독 루시우스 갈리오의 집권시작(행 18:12): 초여름 바울은 1년 반 고린도에 머뭄(행 18:11) 고린도에서 바울에 대한 고소: 51년 여름 ->그러면 바울의 고린도 도착은 약 50년 초! 2) 불확실한 연대 - 회심: 33년(예수의 죽음 후 3년) - 48년 여름? : 안디옥에 잠간 들름 (사도회의는 이 전: 46/48?) - 51/52: 안디옥 여행 - 에베소 체류(2 3/4년): 52-54/55 (이 기간 중 살전? 감옥체류중 빌립보서?) - 고린도의 마지막 체류: 55/56 - 예루살렘 도착: 56년 초 (이 기간 중 가이사랴 감옥?) - 펠릭스/페스도 총독 교체: 58 - 로마 도착: 59년(감옥 체류) - 사망: 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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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 바울의 여행 예루살렘 여행 - 첫 번째 여행(15일) 다메식 회심 후 약 2년 몇 개월 후(바나바와 함께)
- 두 번째 여행(모금전달) 아가보의 예언(클라우디우스 치세하에 있을 전세계적 기근) 선교 여행 - 1차(행 13장에만 나오고, 바나바와 함께 안디옥 교회에서 파송 됨): 키프러스 -> 피시니아 - 2차(그리스): 더베 -> 루스트라(디모데) -> 프리기아-> 갈라디아-> 트로아(환상) -> 마케도니아(유럽!) - 3차: 에베소를 전초기기로 2년간 머물며(고린도서 등 많은 서신왕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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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 바울의 서신의 연대기별 정리 48 초: 사도회의 48 여름: 안디옥 들름
참고: 제 2차 선교 여행(48년 여름-50년?) 빌립보->데살로니가 -> 베뢰아 -> 아테네 -> 고린도 48 초: 사도회의 48 여름: 안디옥 들름 50/51 여름(2차 선교 여행 마침; 고린도 체류 1½): 살전? 51/52(안디옥 여행) 52~54/55(에베소 체류 2½): 갈?+고전+고후(중간부분 2:14-7:4 관계악화+ 눈물의 서신 10-13장) 54/55초(에베소 감옥): 빌+몬? 56 초(마케도니아 그리스 체류): 고후 7장(화해의 서신)+ 8-9장(연보서신)+갈+롬? 58 초(예루살렘 여행과 가이사랴 구금) 58~60(로마여행 구금): 빌+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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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6 강 바울의 1차 선교와 그 결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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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울의 1 차 선교와 그 영향 구브로 출신의 바나바가 길리기아의 다소에 가서 사울을 데려와 안디옥에서 1년간 복음의 사역을 하여 큰 성과가 있었다(행 11:26). 그 후 바나바와 사울은 대 기근(클라우디우스 황제 시절 중 46-48년)을 당한 예루살렘의 형제들을 돕기 위한 구제 헌금을 전달하기 위해 예루살렘으로 갔다(행 11:27-30; 12:25) . 안디옥 교회의 리더십: 선지자들과 교사들(바나바, 시몬 니게르, 구레네인 루기오, 마나엔, 사울)에게 주의 성령이 지시함을 따라 움직이는 것으로 보아, 특정한 한 사람의 지도체제가 아니라, 잘 조직된 집단적인 지도체제 하에 있었을 것. 이들이 바나바와 사울을 파송 경로: 시리아의 안디옥-키프러스 섬-바보-앗달리아(요한 마가의 예루살렘 귀환)-비시디아의 안디옥-이고니온-더베-루스드라-안디옥(비)-앗달리아-안디옥(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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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브로는 바나바의 고향이었기에 이곳으로 먼저 갔다. 이곳의 수도인 항구도시(동쪽 해안) 살라미에서 회당의 전도(13:5)
구브로는 바나바의 고향이었기에 이곳으로 먼저 갔다. 이곳의 수도인 항구도시(동쪽 해안) 살라미에서 회당의 전도(13:5). 그들은 예루살렘 방문(구제 헌금 전달)을 마치고 돌아오며 요한 마가를 데려왔는데(12:25 cf. 12;12), 그는 아마도 유대적 성향? 이 세 명은 섬을 횡단하여 서쪽 해안 항구도시 바보(로마 총독 체류지)에서 바예수라는 유대인 선지자를 만나서, 총독 서기오 바울이라는 로마인을 대상으로 이른바 ‘Power Encounter’가 일어난다(13:4-12). 여기서부터 사울의 아름은 바울로 바뀌어 불리고, 주요인물로 등장하기 시작한다. 이것은 마술사 시몬을 꾸짖는 베드로의 행동과 어떤 관계가 있을까?(행 8:18-24) 배를 타고 밤빌리아의 버가로 건너갔으나, 이곳에서 마가가 바울을 떠난다. 이 헬라 대도시 버가에서 회당이나 다른 사역은 크게 일어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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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바나바와 바울은 이 비옥한 해안 도시 버가의 선교를 포기하고 급히 북쪽 야만인들의 국경지대인 아나톨리 고원으로 떠나야 했을까?(E. Trocme, 92)
건강의 이유?(말라리아) 그들은 타우르스 산맥을 넘어야 하는 이 험란한 곳으로 왜 가야 했을까?: 로마로 향하는 길! 로마 통치하의 도시(식민지 지위)인 비시디아의 안디옥! 이 도시는 서쪽 해안인 에베소와 시리아 북쪽을 연결하는 Via Sebaste 대로상에 있는 도시였기에! 루스드라도 로마의 식민지였고, 더베도 클라우디우스 황제시절부터 준 식민지 지위 획득한 도시였고, 이고니움도 식민지위 획득 예비도시 상태 이들 모두는 로마가 동서방을 육로로 연결하는 전략적 거점 도시들이었다. 이들은 따라서 다소의 배후도시였다. 그렇다면 1차 선교의 방향은 시작은 바나바의 연고지로 갔지만, 바울이 주도하는 곳을 향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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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7 강 2차 선교 여행 (행 15:36-18: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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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차 선교 여정 1 15:40-16:5 시리아-길리기아-루스드라-더베(디모데 할례)
16:6-10 브루기아-갈라디아-드로아(“우리” 단락 시작-여행일기?) 16:11-40 빌립보 복음화(뤼디아의 영접과 가정교회 모델, 감옥에서 구출=베드로의 경우와 유사 “우리” 단락 종결 17:1-9 데살로니가에서(유대적대자들의 고소: 누가-행전의 모델) 17:10-14 베뢰아로(고상한 상류귀족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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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차 선교 여정 2 17:15-34 아테네로(회당과 아레오바고 논쟁)
18:1-18 고린도에서(데살로니가 전서/고린도서 기록, 바울의 “동역자들” 브리스길라와 아굴라; 로마에서 와서 되돌아 갔다가, 다시 와서 바울과 만남, 총독 갈리오 앞에서 바울: 아직 로마가 기독교에 적대적이지는 않음) 18:19-22 안디옥으로 돌아 옮(가이사랴에 내려, 예루살렘에 들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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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울의 독립 안디옥 사건 이후 관계 결렬 - 야고보, 예루살렘, 베드로(갈 2:11-14)
- 바나바와 요한 마가 문제(행15:36-41) - 이것은 안디옥과 교회와의 결별을 의미 그 후 시리아와 길리기아를 돌면서 다시 갈라디아 남부를 방문(행15:36-41). - 사역의 성공 - 디모데를 발견하여 양육 - 예루살렘 의 규정들을 전해줌(행 16:4=15:28 우상제물, 피 목매어 죽인 것 음행 멀리 함?/갈 2:7-9 바울과 예루살렘 제자들과의 사역의 인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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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울은 왜 왜 이 경로를 택했을까? 자기의 고향 다소를 통해 1차 선교지(더베 루스드라 이고니온 비시디아의 안디옥)를 방문하여 그 결실을 북돋움 그러나 갈릴리 남부지역에 안디옥(비)에서 북서부연안 로마 식민지드로아까지, 브리기아의 외지 고원지역 수백킬로를 육로로 걸어서 갔다. 이 지역에서의 복음전파 기록은 없다. 드로아의 환상(여기서는 나중에 돌아오는 길에 강론할 뿐: 유두고 사건 행 20:6-12)으로 처음으로 해로(海路)를 향하게 됨: 마케도니아인의 복음의 요청 왜 이길을?: 로마를 새로운 이방인 선교의 중심지로 세우려는 비전! 마케도니아는 갈라디아 남부와 로마의 중간도시. 로마로가는 중간 캠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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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케도니아 선교 1) 빌립보에서 제대한 로마군인과 라틴계 농민들 거주. 회당이 없음.
그리 대단하지 않은 로마의 식민도시에 왜? 로마로 가는 중간 기지 도시 외곽의 기도처에서 선교 시작: 옷감 장수 루디아 수세 후 가정교회로 선교사들의 거처제공. 신실한 바울의 물질적 영적 후원자(고후 11:8 빌 4:15f). 마케도니아 지역에서 예루살렘 구호헌금에 적극적 참여(고후 11:8-9) 소녀 축귀사건과 수감 탈옥 간수의 회심(16:16-34) 로마시민권 주장과 도시를 떠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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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데살로니가에서 주요한 도시 암비볼리아 아볼로니아 거쳐 회당이 있는 지방의 수도 로마 총독관저가 있는 데살로니가로(17:1): 이탈리아로 가는 중요한 중간지점! 선교의 결실(17:2-4): 몇몇 유대인, 마낳은 경건한 그리스인, 적지 않은 귀부인 유대인들의 반발: 야손을 고발, 베뢰아로 피난하여 사역. 다시 데살로니가 회당 지도자들이 재차 공격(17:5-13) 디모데와 실라를 남겨두고 바울은 뱃길로 300Km떨어진 아테네로 피난 깊은 신뢰관계 그 후 2회 방문(살전 2:17-3:10 행 19:21). 동역자 파송(디모데와 에라스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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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아테네에서(17:16-34): Paperwork I
아레오바고 토론: 대도시에서 이방인 청중대상의 전형적 설교 ‘대학도시’에서 지식인들을 대상으로? 이 설교를 분석해 보자. 논쟁한 철학파의 이름은 그들이 주장하는 바가 바울의 설교에서 나오고 있다면 어는 부분인가? 그들이 바울의 설교에서 느낀 신선한 점은? 강론내용은 사도 바울의 설교의 요소가 많이 빠져있다. 그것은 무엇일까? 큰 효과는 없었다. 아테에의 선교도! 고린도로! 다시금 로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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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고린도에서(18:1-17) 146BC에 로마군에 파괴된 후 1세기 후 로마의 식미지 도시로 재건: 육로와 해로가 교차되는 지형적 잇점. 상업적 번영과 국제적 인구유입으로 급격한 발전 기원전 27년 아가야 지방의 수도가 됨. 총독 거주지. 자유로운 로마의 분위기 아굴라와 부리스길라(천막제조업 동업자): 클라우디우스 칙령으로 로마(!)에서 추방당한 유대인들 실라와 디모데가 마케도니아의 헌금 모금하여 합류: 사역에 전념할 수 있음 유대인의 거절과 이방인의 선교: 디도 유스도가 거처를 줌. 회당장 그리스보의 집이 세례를 받음. 고린도 교회의 급성장. 1년 반 체류 세네카의 형제 갈리오가 총독으로 부임(52-53)시 유대인의 비울 피소: ‘이 사람은 법을 어기면서 하나님을 공경하라고 선동하는 자’(18;13) 그러나 그것은 유대교의 일!(로마의 눈에는 아직 기독교 공동체는 유대교에 속한 종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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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고린도에서 시리아로!: 브리스길라와 아굴라와 함께
에베소에 들름(18:18-23): 이것은 서신서에는 찾을 수 없는 행로. 왜 로마로 가지 않았을까?: 클라우디우스 칙령 머리를 깍는 나실인 서약(18:18): 비할례자 선교사명에 대한 헌신의 다짐?(갈 2:7-9) 에베소에서 복음 전해달라는 요청을 뒤로하고 홀로 떠나 팔레스타인 가이사랴로, 예루살렘 교회 방문과 안디옥 방문: 냉대!(거의 활동한 흔적이 없다(한절로 기록! 18: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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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I. 3차 선교여행(18:23-21:14) 결국 안디옥을 떠나 갈라디아 남부와 부르기아의 자신이 개척한 교회를 견고히 하는사역! 에베소에 도착 체류: 3년(20:31) 그러나 회당은 여전히 그를 거절, 두란도 서원에서 사역(Cf. 19:8 석달+19:10 2년+19:21 남은 기간) 이 두란노 사역의 큰 성공(19:10)하여, 그의 동역자들은 아시아 전역에 교회개척(19:10, 20 주의 말씀이 흥왕한 새로운 기독교의 중심 에베소 cf. 골 1:7; 4;13 계 3:14-22). 그러나 여기서 바울은 격렬한 반대와 저항 투옥도 경험(고전 15:32 고후 1:8). 여기서 빌립보서 쓴 흔적(빌 1:7, 13f). 에베소에서 그는 명실상부한 지도력을 발휘 그러나 빌립보 교인들의 ‘개들’ ‘행악자들’ 등장 고린도의 상황 악화: 알렉산드리아 지식인 아볼로를 따르는 자들(18:24-28 고전 1:12 3:4) 바울 권위의 위기(고전 3: !) 디모데, 그 후 디도를 고린도에 파송(55-56년) 19:1-41 초창기 에베소(요한의 세례만 알던 이들은 어떤사람?) 19:11-19 예수와 바울의 이름으로 축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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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1 다시 로마의 꿈! 20:1-3 마케도니아에서 그리스 땅으로 57-58년 고린도 도착 3달 동안 체류(여기서 로마서 기록?) 다시 마케도니아와 빌립보로(“우리” 단락 다시 시작) 20: 년 오순절에 도착하고자 소아시아 연안을 따라 에베소를 지나 밀레도로 항해하여 예루살렘으로! 10여명과 함께 그는 이제 고립된 반항아가 아니라, 이방교회의 지도자! 20:17-28 밀레도의 고별설교(에베소의 장로들에게 토록과 고난 예견, 장로들을 감독자요 목자로 세움=목회서신과의 연관성?: 거짓 가르침, 돈을 멀리하라: 장로는 공동재산의 운영관리자) 21:1-6 두로에서의 극적인 이별 21:7-14 가이사랴로(빌립의 지비에서 네 딸 중 아가보의 예언: 바울 투옥된다! 예수와 같이 바울도 예루살렘에서 잡혀 죽임 당할 것) 바울의 야고보 방문(21:17-26)및 선교 보고및 협상: 그러나 바울의 좌절(단호한 충고와 정결예식 이행으로 유대교에 충성을 보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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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울의 2~3차전도 여행 로마 삼관 아피오광장 빌리보 보디올 네압볼리 타렌툼 데살로니가 압비볼리 베뢰아 버가모 드로아 앗소
예루살렘 가이사랴 실루기아 안디옥 다소 버가 잇달리아 이고니온 루스더라 더베 에베소 드로아 네압볼리 빌리보 압비볼리 데살로니가 베뢰아 아덴 고린도 바보 살라미 구브로 돌레마이 두로 시돈 알렉산드리아 구레네 로마 삼관 아피오광장 보디올 타렌툼 레기온 수라구사 멜리데 뵈닉스 라세아(미항) 그레데 밀레도 서머나 두아디라 사데 라오디게아 버가모 앗소 바울의 2~3차전도 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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