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혁명과 나폴레옹시대사 2013년 1학기 4. 앙시앙 레짐의 위기 2(신분사회) 2013년도 1학기 백인호
신분사회에 대한 논쟁 1 제1신분: 성직자 2 제2신분: 귀족 3 제3신분 제4신분? 4 5
I. 신분사회에 대한 논쟁
1. 신분사회에 대한 논쟁 3신분구도의 유래 11세기 초 Laon의 주교 Adalberon은 사회적 기능에 따라 사회구성원들을 3 신분으로 구분 Oratores 기도하는 자 Bellatores 싸우는 자 Laboratores 노동하는 자 교회는 기독교 수호자의 임무를 싸우는 자 즉 기사에게 부여함 12세기에 기사와 귀족은 동일 집단으로 통합됨
1. 신분사회에 대한 논쟁 귀족의 어원 라틴어 nobilis는 고귀한, 혹은 출중한이라는 형용사 귀족의 특성은 사회적 우월성 귀족이라는 평판을 얻으려면, ①귀족의 혈통, ② 미덕(용맹), ③귀족다운 생활방식(vivre noblement)을 갖추어야 한다 1577년 François de la L’Alouëte: “유구한 가문 출신이며, 대대손손 귀족의 소명과 조상의 미덕과 충성심을 유지해온 자들이야말로 진정한 귀족이자 혈통귀족이다"
1. 신분사회에 대한 논쟁 귀족화와 신분상승의 열망 1579년 블루아 왕령이후 귀족이 되는 모든 길은 왕을 통해야 함 평민은 귀족이 되려면 왕이 제시하는 여러 종류의 그물망을 통과 해야함 1)왕이 부여하는 귀족증서 혹은 특허장 취득: 프랑수아1세 이후 남발. 루이 14세시대에 무더기로 매매. 1696년 500건, 1702년 200건, 1715년에 중단 2)귀족의 지위가 보장된 특정한 법관직이나 시행정관직취득: 1485년 샤를8세가 대법관실 국왕비서에게 20년간 관직 종사를 조 건으로 귀족증서를 부여하면서 시작. 대법관실 관직수: 1494년 60 개, 1709년 1549로 급증 재정수요가 늘어나면서 관직매매의 규모와 귀족화 범주도 증가. 국새상서, 국무참사, 고등법원 법관, 청원심사관도 귀족지위 부여 1560년 이전 신흥귀족의 17%, 1560-1600년 48%, 17세기: 61%
1. 신분사회에 대한 논쟁 18세기 보르도 귀족의 출신성분 귀족 가문의 수 % 대검귀족 222 36.6 관직보유자 254 42.0 국왕비서 35 5.8 시 행정귀족 2 0.3 외국귀족 9 1.5 문인 29 4.8 기타 55 9.0 세대가 바뀔수록 구귀족과 신흥귀족, 혈통귀족과 법복귀족의 경계 는 불분명해졌다. 점차 두 집단의 이해관계가 중첩됨. 18세기 중엽부터 관직매매는 거의 봉쇄됨
1. 신분사회에 대한 논쟁 롤랑 무니에(Roland Mousnier) 피에르 구베르(Pierre Goubert) “역사가들이 계급사회로 파악하고 있는 것을 당시대인들이 스스로의 사회집단의 계층제를 지닌 전통사회로 이해한 것이다.” 롤랑 무니에(Roland Mousnier) “어떤 다른 구분보다도 신분적 계층제에 의한 구분이 당시의 실상을 잘 드러낸다.” 보벨 / 로뱅 “불평등한 법적 상태를 가리키는 신분이 비록 봉건적인 생산 양식 아래 있는 계급과는 완전히 일치하지는 않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신분이 계급관계에서 비롯된 계층제를 구체화하고 보증해주기 때문에 단순한 허구 이상의 본질적인 기능을 수행했다”
1. 신분사회에 대한 논쟁 신분제 사회? 계급사회? 이 시기는 또한 계급적 구조, 신분사회라는 옛 계급구조와 새로운 자본주의 체제의 계급구조가 정면으로 부딪히는 시기 사실상 두 세계 사이에는 다양한 형태의 상호침투가 있었으며, 여러가지 법적 상태가 뒤섞여 나타남 구체제의 신분은 우리에게 매우 모호한 상태로 나타난다
2. 제1신분
2. 제1신분: 성직자 성직자 왕국의 제 1신분 성직자 수는 전 인구 0.7%(17 만) 종류 : 재속성직자/수도성직 자 하나의 신분인 성직자 교육을 독점
혁명전과 혁명후의 세 신분
2. 제2신분
3. 제2신분: 귀족 귀족 사실상의 제 1신분 실질적인 동질성을 지닌 유일한 신분 전국민의 1.5%에 해당(2만5천-5만5천 가문에 약 30만명) 종류 : 혈통귀족 / 법복귀족
부르고뉴공작 도팽 루이/퐁파두르 후작부인
계층화의 결과 복합적이면서도 동질적인 집단이 형성 귀족 상층부의 대귀족 (les Grands) 종루귀족 고등법원 귀족 중소지방 귀족 계층화의 결과 복합적이면서도 동질적인 집단이 형성
3. 제2신분: 귀족 귀족적 반동 신분제는 어느 정도 개방되어 있었음 귀족 중 역동적인 집단이 점차 새로운 투자에 관심을 기울임 18세기 후반에 가장 두드러진 것은 특권계급의 반동이라는 공격적인 거부 ex) 18세기 중엽까지 사회적 신분상승의 수단이었던 장교직에서도 귀족의 반동이 나타나 평민출진이 장교자리에 오르는 것을 금하고 군대내의 새로운 귀족 작위를 금지 시킴 이러한 귀족신분의 폐쇄는 마침내 노골적인 계급충돌로 발전
3. 제3신분
4. 제3신분 제 3신분 -특권계급과 같이 명확한 구조를 가지고 있지 않음 -제3신분은 “하나의 완전한 국민이며 모든 것이다. 그러나 족쇄가 채워지고 억압된 상태의 모든 것이다“(시에예스) -사회계층의 하층으로 내려갈수록 계층제의 엄격성은 훨씬 완화 -농촌에 사회적 평가에 입각한 강한 계층제가 존재 -이들이 다양성을 넘어 통일성을 이루는 것은 특권층에 대한 반대와 시민적 평등에 대한 요구 1
4. 제3신분 신분제 사회 ① 신분사회는 구체제 말기에도 매우 활력을 지닌 것으로 보임 ② 신분사회관은 여전히 그 효력을 가짐 2 ① 신분사회는 구체제 말기에도 매우 활력을 지닌 것으로 보임 ② 신분사회관은 여전히 그 효력을 가짐 ③ 신분사회는 특권계급의 반동을 고취시킴 ④ 신분의 매력이 사라지게 된 것은 신분사회의 세분화 및 계층제와 양립될 수 없는 “자유계약에 입각한 새로운 사회”가 대두하면서부터
4. 제3신분 제3신분의 약진과 곤경 3 인구 2,800만 중 2,600만 이상 “하나의 완전한 국민이며 모든 것, 그러나 족쇄가 채워지고 억압된 상태의 모든 것” 제 3신분이 다양성을 넘어 통일성을 이루는 것은 특권층에 대한 반대와 시민적 평등에 대한 요구 때문
4. 제3신분 상 층 부르조아지 제3신분의 계서제 중 층 부르조아지 중 소 부르조아지 도 시 민중계급 농 민
4. 제3신분 동업조합 ① 신분사회의 도식에 가장 이상적으로 부합되는 조직은 “소상점 및 점포의 세계” 부합되는 조직은 “소상점 및 점포의 세계” = 중간 규모의 도시수공업 동업조합(compagnies) 5 ② 왕권과 시자치제에 의해 설정되고 보장됨 ③ 관리조직 및 치안조직 등을 규정하는 법규를 가짐
4. 제3신분 동업조합 ④ 하나의 폐쇄된 세계로서 동업조합이 자신의 특권을 옹호한 결과, 일정한 체계가 엄격하게 설정됨 6 ④ 하나의 폐쇄된 세계로서 동업조합이 자신의 특권을 옹호한 결과, 일정한 체계가 엄격하게 설정됨 ⑤ 긴장관계가 다양하게 나타나, 동업조합은 스스로를 보호해야 했음 ⑥ 발명이 수공업에 대한 부정한 경쟁자로 파악되어 이에 대한 반감이 컸음 ⑦ 17세기 낸 번영을 누린 동업조합은 18세기에 들어서서 몰락
4. 제3신분 부르조아지의 힘과 다양성 부르조아지 = 제 3신분의 주도계급 마르크스 역사가들의 부르주아 선별기준 7 부르조아지 = 제 3신분의 주도계급 마르크스 역사가들의 부르주아 선별기준 ①생산수단을 자유로이 소유한자 ②유일한 노동력을 자유계약에 의해 사용하는자 ③상품가치와 적용된 노동력의 보수사이에 이익 을 차지하는 자 부르조아들은 귀족과 도시민중계급․농민의 중간적 속성을 보여줌
4. 제3신분 부르조아지의 정의 레진느 로뱅의 정의: “자본주의적인 사회관계의 영역에서 8 레진느 로뱅의 정의: “자본주의적인 사회관계의 영역에서 사회․경제적으로 지배적인 위치에 있는 도시와 농촌의 모든 사람들을 묶는 평민이라는 법전 신분을 가진 계급이며, 그러한 영역의 존재가 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 다른 형태의 국가기구, 비록 시차가 있기는 하지만 끝내 다른 형태의 생산적인 틀의 설정을 전제하기 때문에 그러한 사회적 관계와 연관되지 않는 특권세력에 대해 적대적일 수 밖에 없는 계급.”
사회적 위치와 경제적 지위를 기준으로 한 부르조아지의 종류 4. 제3신분 사회적 위치와 경제적 지위를 기준으로 한 부르조아지의 종류 4. 기업가 부르조아지 (entrepreneur) 5. 상업 부르조아지 장인 및 소상점주 부르주아지(소부르주아지) 1 금리생활자 부르주아지 2 자유직업 부르주아지 3 기업가 부르주아지(entrepreneur) 4 상업 부르주아지 5 산업 부르주아지 6 금융 부르주아지 7 Soboul은 이를 묶어 “대부르조아지”로 정의
4. 제3신분 Albert Soboul의 통계 장인 및 소상인 부르주아지: 65-70% 자유직업 부르주아지: 10-20% 금리생활자 부르주아지: 10% 3 대부르주아지: 5-10% 4
장인 및 소상점주 부르주아지 (소부르조아지) 4. 제3신분 장인 및 소상점주 부르주아지 (소부르조아지) ① 사업가 부르조아지들처럼 이윤으로 살아가며 생산수단을 소유 ② 전체 부르조아지의 2/3에 해당 ③ 하위로 갈수록 자본의 역할은 감소하고 노동의 역할이 증대 ④ 장인과 소상점주는 소규모 상업 및 수공업에 연결 ⑤ 이런 전통적 경제형태는 생산 및 교환기술의 변화로 위기에 직면 ⑥ 경제적 자유에 반대하고 경제활동에 대한 규제 지지 (물가상승으로 이익을 본 계층) ⑦ 반대로 종속적인 장인 노동자들(도시민계급)은 물가상승으로 손해를 봄 1
4. 제3신분 금리생활자 부르조아지 (rentier) ① 상업 또는 사업에 관여하는 부르조아지 ② 전체 부르조아지의 10%정도 (18세기 내내 증가) ③ 성분 : 사회계층의 상하로 다양하게 분포 ④ “부르조아지적 생활방식”을 지님 ⑤ 금리의 원천도 다양 ⑥ 토지재산은 전체토지의 12~45%로 추정 (비율은 도시로 갈수록 높아짐) 2
4. 제3신분 자유직업 부르조아지 ① 제 3신분의 대변자 역할 (이들 가운데 대부분 혁명가들이 출현) ② 전체 부르조아지의 10~20% 차지 ③ 조상은 대개 상인 / 원초적 자본은 이윤 ④ 귀족작위가 없는 관직보유자, 사무관, 재무관 등 ⑤ 법률전문직이 이 집단의 최상층에 위치 (의사들은 이발사 겸직. 존경도 못 받음) ⑥ 생활조건은 천차만별 3
기업가 부르조아지 (entrepreneur) 4. 제3신분 기업가 부르조아지 (entrepreneur) ① 직접적으로 이윤에 의해 생활하는 능동적 부르조아지 ② Adam Smith는 이들을 “기업주(le chef d’entreprise)”라 부름 ③ 매우 다양한 집단 4
4. 제3신분 상업 부르조아지 ① 바다에 접한 항구 도시에서 특히 번영 ② 흑단무역과 노예무역은 막대한 수닙원천으로 작용 ③ 항구와 상업도시에서 막대한 부축적 ⇒ 부르조아지의 우월성을 주장하는 “입헌파”와 “지롱파”가 나타남 ④ 당시 프랑스 사회에 사회적 우위의 상징이었던 토지를 매입하고 대규모 공업에도 출자 5
4. 제3신분 산업 부르조아지 ① 겨우 도매업의 영역을 벗어나고 있었음 (공업은 오랫동안 도매업의 부속물에 불과) 18세기에 발전한 농촌 공업도 이러한 형태 ② 값비싼 생산설비를 한 새로운 산업에 대규모의 자본주의적 생산이 등장 ③ 석탄산업의 혁신 ④ 주식회사의 형성 : 수많은 노동자에 대한 합리적인 착취와 집중화 가능해짐 ⑤ 특권층은 여전히 제철산업의 중요부분 보유, 그러나 귀족은 관심 없는 분야 6
4. 제3신분 산업 부르주아지(2) ⑥ 완만하게 성장한 분야 : 기초산업, 모직공업, 전통적 직물공업 등 ⑦ 급속한 성장분야 : 석탄산업, 야금업, 새로운 직물업 등 이른바 신흥산업 ⑧ 프랑스 공업의 팽창력이 현저한 반면, 공업성장이 프랑스 전반적인 경제성장에 미친 영향은 상대적으로 미비 농업-지대상승은 공업 발달에 영향을 미침 상업-구조가 공업성장의 영향을 받음 7
4. 제3신분 금융 부르주아지 ① 부르조아지 제 1의 지위를 차지 ② 혈통귀족계급과 연력된 진정한 부르조아지 특권계급 ex) 은행가, 군대 납품업자, 재정관리인 ③ 사회적 역할도 광범위 ex) 계몽사상가 등의 후견인이 되기도 함 ④ 간접세 징수와 국채, 초기 주식회사의 출현에 힘입어 막대한 재산 축적 ⑤ 간접세의 가혹한 징수로 인해 평판이 나빴음 8
4. 제3신분 부르주아지 결론 이와 같은 경제활동은 부르조아지들에게 계급의식을 갖도록 함 1750년대 이후 부르주아지는 신분질서로 끌어들이기에는 너무 수가 많아져 독자적인 계급의식이 나타남. 스스로가 특권계급과 어쩔 수 없는 적대관계에 있게 함 1782년 세귀르법은 최소한 4세대에 걸쳐 귀족만 군고위직에 임명한다고 규정함
4. 제3신분 도시민중계급: 일용할 양식 특권층에 대한 증오로 혁명적 부르조아지와 긴밀하게 연결되었으나 여러 범주로 나뉘어지며, 형명기간에도 행동통일이 이루어지지 않은 계급 “인민”이라는 용어로 지칭되기도 함 이들은 중소 부르조아지인 자코뱅과 상뀔로뜨 사이에는 엄청난 간격 존재 1
4. 제3신분 도시민중계급: 일용할 양식 종속적 장인계층 민중계급과 소부르조아 지의 경계에 자리하나 1 민중계급과 소부르조아 지의 경계에 자리하나 실제로는 종속된 임금노동자에 불과 직인과 도제 2 동업조합의 직인과 도제는 마스터(장인)에게 철저히 종속됨
4. 제3신분 매뉴팩쳐 노동자 도제 제도는 강요되지 않으나 더 엄격한 작업장 규율을 준수해야 함 서비스업 임금 노동자 도시민중 가운데 가장 중요한 계급
1789년 Saumur-en-Auxois 도시민중계급의 분류 4. 제3신분 도시민중계급: 일용할 양식 종속적 장인 181가구 27% 매뉴팩처 노동자 54가구 8% 서비스업종 종사자 285 42% 극빈자 157 23% 합계 677가구 100% 1789년 Saumur-en-Auxois 도시민중계급의 분류 (1319가구 가운데 677가구(55%)가 도시민중계급)
에른스트 라부르스의 연구:18세기 서민층의 생계비 지출 4. 제3신분 도시민중계급: 일용할 양식 빵값 50% 채소,베이컨,포도주 16% 의복류 15% 난방비 5% 조명비 1% 기타 13% 전체 100% 에른스트 라부르스의 연구:18세기 서민층의 생계비 지출
4. 제3신분 도시민중계급: 일용할 양식 1 18세기에 이들의 생활조건이 악화됨 18세기의 물가상승은 민중계급의 빈곤을 심화 시키고, 굶주림 때문에 상뀔로뜨가 동원됨 인민대중의 적대세력 : 특권세력 1 민중계급의 요구사항 :세금부담의 경감 민중의 근본적 요구 : 빵 분명히 부르조아지의 요구와 정면으로 대치됨
4. 제3신분 농민:현실적 단결, 잠재적 대립관계 -1789년 전체 인구 2800만 가운데 2100만 이상이 농민 (적어도 86%) -농민들의 혁명 가담 동기 : 영주적 부과조와 봉건제의 잔재 -프랑스 농민은 토지를 소유하였는데, 이는 지역에 따라 22~98%로 대략 40%로 추정되나 이것은 물론 인구에 비해 매우 미미함 1
4. 제3신분 농민의 부담 ① 왕실에 대한 부담 : 수확의 60% ② 교회에 대한 부담 : 수확의 7~8% ③ 영주에 대한 부담 : 제일 무거움 지대와 기타 영주적 부과조 등 2~67%, 대략 2~20% ④ 다음해의 파종을 위한 비축 : 수확의 20% 2
4. 제3신분 농민층의 분화 (법률적 관점) ① 농노․상속불능자 :전체 농민의 5% A. 인신적 농노(serf de corps) :추적권에 의해 강제로 잡아들이는 농노. 거의 없다. B. 상속불능자(serfs d’héritages) :자유로우나 자녀가 없거나 토지를 떠나면 재산을 몰수 a. 인신적 상속불능자 b. 물적 상속불능자 ② 자유농민 : 전체 농민의 95% 3
4. 제3신분:농민 소작방식 4 1)정기 차지제le fermage:임차대기간(대개 9년)동안 매년 일정액을 금납하거나 물납함. 주로 대경작지, 비옥한 평원지대에서 지배적인 소작방식. 풍작으로 몇년의 흉작을 견뎌냄. 2)절반소작제le metayage:매년 수확물의 일정 비율을 나누어 갖는 방식. 주로 남서부지역 가난한 지역의 불안정한 수확때문에 생긴 방식. 프랑스 농지의 2/3이나 3/4을 차지함.
4. 제3신분: 농민 독립농민과 의존농민 A.독립농민paysans indépendants 5 A.독립농민paysans indépendants a.소작청부인 fermiers généraux:소작지 지대징수를 청부맡아 중간 착취의 이득을 얻고, 새로운 임대계약설정으로 소농층을 완전 지배 b.대차지농 gros fermiers:임대농지를 독차지한 농촌 부르조아지로 농민들의 증오와 원한의 대상 c.자영농 labourers= ménagers:넉넉하고 부유하여 독립적으로 살만 한 농민 B.의존농민 paysans dépendants a.소농층ménagers: 불충분한 토지에 의존하여 궁핍 b.날품팔이 농민manouvriers ou journaliers:농민의 30%-40%. 이들도 미소한 토지를 보유 하나 대부분 토지없는 농촌 프로레타리아
4. 제3신분: 농민 결론: 농민의 요구 ① 봉건적 부과조의 문제:일치된 견해 진정서에 보면 봉건적 부과조와 십일조가 과중하고 부당하여 증오의 대상이었다. 십일조와 샹파르는 화폐로 지불할 것을 요구. ② 토지 문제: 분열된 견해 토지가 부족하고, 토지 소유자가 되어야 한다고 주장. 그러나 성직자 재산도 양도하라고 요구하는 진정서는 드믈었다. ③ 농업자본주의보다는 국왕의 조세에 반발: 세율이 전국적으로 일치하지 않고 귀족은 면세 받는 것에 반대. 특권층도 세금 납부할 것을 요구.
4. 유랑민들: 제4신분? 유랑민들이 파리에만 2만명, 인구의 10%(1790년) 1.전형적인 거지들과 유랑자들 2.장거리 여행자들 3.소외된자들, 추방된 자들déclassés
결론: 사회변화와 신분사회의 해체 -18세기 초 대부분의 유럽은 신분적 질서에 입각한 사회구조를 가짐 -현실은 신분제와는 거리가 멀었음: 신분제는 생산자에 대한 비생산자의 착취를 호도하는 측면이 강함. 귀족과 성직자만 특권신분이었고 제3신분은 그 부담을 짊어짐. 하층으로 가면 신분적 질서란 별 의미가 없음 -1750년대 이후 서유럽에서 전통적 신분제 사회 해체징후가 증가함. 이는 경제 성장과 인구 증가로 도사가 확대되고, 사회적 유동성이 커지면서, 산업사회로의 이행에 접어듬 -1750년대 이후 신분적 질서와 계급적 질서가 교차하면서 대조의 시대를 만듬: 18세기 성장의 혜택을 가장 많이 본 계층은 부르주아지, 그러나 하층민은 변화의 희생자였으며 새로운 빈곤이 나타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