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권과 사회 2019학년도 2학기
제5강 제2의 근대혁명과 인권 01 코뮌과 인권 02 바이마르 헌법과 인권 03 사회주의와 인권
INDEX 01 코뮌과 인권
03 인권 보장의 그림자 (1) 극심한 빈부격차 죽도록 일하는 99% 1835년 임금 – 온가족이 일해도 생계유지 불가 도시로의 인구 이동 -> 빈민가 평균수명 : 28세(1806) -> 20세(1840) 사태를 방치하는 1% 정부 자유계약이론을 바탕으로 사태 방치 노동권 미인정 빈민구제법 – 빈민 보호 미명 아래 통제
01 코뮌과 인권 (1) 제2의 근대혁명 근대 시민혁명의 한계 봉착 엄청난 빈부격차-피폐한 99%의 노동자 여전한 차별-노동자, 여성, 인종 자유권, 재산권 중심의 인권 제2의 근대혁명 프랑스-1848년 2월과 6월 혁명, 1871년 파리코뮌 독일-1918년 11월 혁명 소련-1917년 사회주의 혁명
01 코뮌과 인권 (2) 프랑스 1848년 혁명 프랑스의 상황 소외된 노동자 계급-허울뿐인 인권선언, 경제권력에 의한 경제적 강제 -> 사회주의 등장(마르크스) 1847년 경제불황-식량부족, 물가상승, 실업 증대. 이에 대처하지 못하는 정부 1832년 6월 봉기를 소재로 한 레 미제라블 2월 혁명 1848년 2월 22일 파리에서의 전국 개혁연회에 대한 금지령은 혁명의 도화선이 됨. 이튿날 기조 내각이 사임하였으나 민중의 폭동은 가라앉지 않고 격렬한 시가전으로 확대. 24일 왕인 루이 필리프 퇴위 2월 혁명 결과 왕은 영국으로 망명하고 임시정부 구성. 임시정부는 공화주의파와 루이 블랑 등의 사회주의파가 대립했으며 무산자들에게 일자리를 제공하기 위한 국립작업소(Atelier nationaux) 구성
01 코뮌과 인권 (2) 프랑스 1848년 혁명 6월 혁명 1848년 4월 말 제헌의회를 구성하는 선거 실시. 이 선거에서 급진적 사회주의자는 모두 낙선. 1848년 6월, 정부가 국립작업소를 폐쇄하자 많은 노동자들이 바스티유광장에 모여 시위를 벌였고 정부는 이를 무참히 진압 은행가·대지주·산업자본가 등은 힘을 되찾아 질서당 결성. 온건한 헌법을 의회에서 승인. 앞선 혁명으로 부유층은 다시 권력 획득 하지만 노동자들도 계급의식을 획득하게 됨. 프롤레타리아의 탄생
01 코뮌과 인권 (2) 1871년 파리코뮌 파리코뮌 파리 코뮌(La Commune de Paris)-1871년 3월 18일 ~ 5월 28일까지 파리에서 프랑스 민중들이 처음으로 세운 사회주의 자치 정치 세계 처음으로 노동자 계급의 자치에 의한 민주주의 정부라고 평가 코뮌은 세계사에서 처음으로 사회주의 정책들을 실행에 옮겼으며, 단기간에 불과하였지만 사회주의 운동에 큰 영향을 줌. 경과 프랑스는 프로이센과의 전쟁에서 패배. 파리 시민들의 농성에도 불구하고 1871년 1월 28일 휴전조약 체결 → 프로이센군이 파리에 입성한 후, 베르사유 궁전에서 독일 제후들에게 추대되는 형태로 프로이센 국왕 빌헬름 1세가 독일 제국 황제로 즉위함으로써 독일 제국 성립 파리 시민은 국민군을 중심으로 조약에 불만을 갖고 항전의 의지를 꺾지 않음.
01 코뮌과 인권 (2) 1871년 파리코뮌 경과 국민군은 시청을 점거하고 ‘중앙위원회’ 결성 중앙위원회는 포고문을 발표하여 ‘코뮌(인민의회)의 선거가 실시될 것이며, 중앙위원회는 그 때까지의 잠정기관’임을 선포 3월 26일 실시된 코뮌평의회 선거 실시. 85명의 평의원이 선출되었고, 28일에 코뮌의 성립을 선포. 이후 5월 20일까지 파리를 자치적으로 통치
01 코뮌과 인권 (2) 1871년 파리코뮌 경과 코뮌평의회는 파리의 자치를 선언하고, 프랑스를 코뮌, 즉 지역사회의 연합(혹은 연방)으로 재탄생시키려고 노력. 코뮌 내부에서 선출된 평의원은 소환(리콜)될 수 있었으며, 보수는 근로자의 평균 임금과 동일 평의원들에게는 자신을 선출한 시민에게 자신의 활동과 정책에 대해 보고할 의무가 있고, 이를 실행하지 않는 자는 파면 3월 29일 열린 제1회 평의회는 산하에 집행위원회를 비롯하여 재무, 군사, 사법, 보안, 식량 공급, 노동·공업·교환, 외무, 공공사업, 교육(exécutive, militaire, subsistances, finances, justice, sûreté générale, travail, industrie et échanges, services publics et enseignement) 등 10개 위원회 구성 5월 21일 정부의 강제진압 실시(“피의 일주일”). 이 과정에서 사망한 자는 적게는 1만 명 부터, 많게는 5만 명까지로 추정. 연루자 10만여 명이 체포되어 그 중 4만여 명이 기소
01 코뮌과 인권 (2) 1871년 파리코뮌 성과 세계 최초의 인민국가-코뮌평의회를 비롯한 산하 위원회의 위원들은 인민들로부터 권리를 위임받은 자(délégué(s)), 즉 수임자에 불과 노동정책-10시간 노동, 기업의 노동자 자주경영, 노동자의 경영진 선출, 최저임금제, 야간노동 금지 교육정책-가톨릭 수도회 계획의 학교를 접수하고 정교분리에 입각한 세속주의 교육정책 수립, 초등교육 무료∙의무화, 직업교육 강화 여성해방-여성동맹의 코뮌건설 및 방어 활동 참여, 자유연합(자유혼인)인정, 여성에 대한 연금지급 실패하기는 하였으나 프랑스 일반 민중들의 시대적 요구가 담김. 경제적 불평등과 형식적으로만 다루어지던 인권 문제를 본격적으로 다룬 사회적 실험. 이후 사회주의와 아나키즘에 지대한 영향을 미침
INDEX 02 바이마르 헌법과 인권
02 바이마르 헌법과 인권 (1) 19세기 독일 1848년 혁명 독일지역은 신성로마제국의 제후국들인 영방국가로 뿔뿔이 흩어져 있었음. 1806년 신성로마제국이 붕괴된 이후, 1815년 영방국가들을 모아 독일 연방 성립.(오스트라아 제국과 프로이센 왕국이 독일연방의 주도국가) 프랑스 2월 혁명에 영향을 받아 1848년 3월 5일 남부 독일의 자유주의자들이 하이델베르크에 모여 전독일 통일회의 준비를 결정.(자유주의적 통일 시도) 1848년 5월 18일부터 프랑크푸르트 암 마임(Frankfurt am Main)의 성 바울 교회당에서 열린 최초의 국민의회인 프랑크푸르트 국민의회 결성 국민의회는 독일 국민의 기본권을 근간으로 하는 프랑크푸르트 헌법 초안을 제정하여 전독일인에게 자유·평등한 시민권과 민주주의적 제반 권리를 승인 오스트리아를 제외한 소독일주의에 의한 독일 통일의 방향이 제시되었으며, 1849년 3월 프로이센 왕 빌헬름 4세를 독일 황제로 선출했으나 그는 거부
02 바이마르 헌법과 인권 (1) 19세기 독일 독일제국 1862년 오토 폰 비스마르크 프로이센 왕국의 재상으로 취임. 의회의 반대를 무릅쓰고 강력한 군사력과 군비증강을 주장하여 이른바 “철혈정책” 추진 1866년, 산업과 군사력이 증강한 프로이센은 프로이센-오스트리아 전쟁을 일으켜 오스트리아 군을 격파하고 북독일 연방을 결성하고, 오스트리아 제국을 독일 연방에서 추방(소독일주의 형태의 통일 진행) 1870년, 프로이센-프랑스 전쟁에서 프랑스를 물리치고, 나폴레옹 3세를 포로로 잡는 등 파리에 입성 베르사유 궁전에서 독일 제후들에게 추대되는 형태로 프로이센 국왕 빌헬름 1세가 독일 제국 황제로 즉위함으로써 독일 제국이 성립 국가와 자본의 결탁
02 바이마르 헌법과 인권 (2) 바이마르 공화국과 헌법 독일제국의 붕괴 독일은 제1차 세계대전에 참여하였고 결국 패배. 제1차 세계대전 말기인 1918년 11월 3일 독일 북부 항구도시 킬에서 수병들이 봉기. 이후 노동자들이 결합하여 노동자∙병사평의회가 기존 지방정부 대체. 이는 독일 전역으로 확산. 민중혁명은 결국 독일제국 황제 빌헬름 2세를 폐위. 바이마르 공화국의 수립 11월 9일 빌헬름 2세가 네덜란드로 망명하면서 제정은 무너졌고, 기존 총리가 사회민주당에 임시정부 수립 제안 및 수락. 당일 공화국 수립 1919년 1월 19일 헌법 제정을 위한 제헌의회 선거가 실시되고 사회민주당이 다수당이 됨.(독일 민주당, 가톨릭 중앙당과 연립정부 구성) 2월 6일 바이마르에서 국민의회 회합. 7월 31일 바이마르 헌법 가결, 8월 11일 공포
02 바이마르 헌법과 인권 (2) 바이마르 공화국과 헌법 바이마르 헌법의 특징 바이마르 헌법은 독일은 물론 다른 나라 사례에서도 찾기 어려운 새로운 내용을 담고 있음. 사회권의 인권목록화 소유권 행사시 의무 동반. 공공복리에 이바지 토지의 분배 및 이용은 국가가 감독 기업의 공동 소유화 가능 노동자의 단결권 인정
02 바이마르 헌법과 인권 (2) 바이마르 공화국과 헌법
INDEX 03 사회주의와 인권
03 사회주의와 인권 (1) 러시아의 정치적 상황 차르의 엄혹한 통치, 후진적 자본주의 19세기 후반에서야 산업화 진행 봉건적, 자본주의적, 민족적 억압 견디기 어려운 민중의 상황 1917년 러시아 혁명 2월 혁명-제1차 세계대전의 장기화는 민중의 생활을 더욱 어렵게 하였음. 1917년 2월 시위가 발생하였고 이후 시위 진압을 거부한 일부 사병들이 참여하면서 혁명으로 발전. 결국 3월 2일 황제 니콜라이 2세가 폐위되고 제정체계 붕괴. 이후 부르주아와 사회주의자 연립의 임시정부 수립 10월 혁명-레닌을 중심으로 하는 볼셰비키 조직이 임시정부를 무너뜨리고, 소비에트 정권 수립
03 사회주의와 인권 (2) 소비에트 연방에서의 인권 특징 권력분립이 아닌 집중제 선택(소비예트에 집중) 인간 착취의 폐지를 근간으로 함. 문제점 현실 사회주의에서의 인권은 제대로 보장되지 않음. 민주주의 없는 집중제-대의원에 입후보자, 소환 등이 유명무실 자유권, 사회권, 평등권, 참정권 등이 규정되어 있었으나 제한이 많았음. 표현의 자유는 ‘근로자 이익에 적합하고, 사회주의 제도를 견고히 하기 위한 목적’의 표현이어야 한다는 제약. ‘인민의 적’은 권리 향유의 주체가 아니게 됨. 교육, 학문의 자유도 제대로 보장되지 않음. 정부와 다른 의견은 ‘계급의 적’, ‘인민의 적’으로 규정되어 억압. 전체주의적 독재 체제였던 소련은 1991년 몰락하게 됨.